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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의 시 이야기란 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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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4,176회 작성일 10-09-26 20:43

본문

*** 1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박두진 (1916 - 1998) 「해」부분

조지훈, 박목월과 함께 자연을 노래했던 청록파 시인답게 그는 떠오르는 해를 통해 새로운 세계에 대한 밝은 희망을 노래했다.
해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쓰여진 이 시 속에 들어있는 '어둠'은 암울했던 일제의 탄압이나 해방후의 혼란한 상황이라는 걸 쉽게 추측해볼 수 있다. 어둠을 살라 먹고 고운 얼굴의 해가 솟아오르라고 시인은 반복해서 노래한다. 흥겨운 사설이나 타령의 한 자락처럼 그 반복은 흥을 돋운다. 그 흥에 겨워 해는 떠오를 것이다.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로 이 시는 끝을 맺는다.
고운 해가 떠서 자연과 사람이 한자리에 앉아 평화롭고 기쁨이 넘치는 날을 누리게 되기를 바랬던 시인의 꿈은 과연 이루어졌을까.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보면 아직도 이 시는 우리의 염원을 담은 주문이자 기도가 될만하다.
해야 솟아라.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 2

그 蓮잎새 속에서 숨은 민달팽이처럼/ 너의 피를 먹고 자란 詩人, 더는 늙어서/ 피 한 방울 줄 수도 없는 빈 껍데기 언어로/ 부질없는 詩를 쓰는 구나
                          송수권 (1940 - ) 「아내의 맨발ㆍ1 - 蓮葉에게」부분

蓮葉은 송수권 시인 아내의 이름이다. 그녀는 똥장군을 져서 수박을 키우고 30리길을 걸어 수박을 팔았고, 보험회사를 18년간 다니면서 남편을 우리나라 정상의 서정시인으로, 교수로 만들었다. 그런 그녀가 지금 백혈병으로 병상에 누워 있다.
"그녀의 발이 침상 밖으로 흘러나온 것을 보았다/ 그 때처럼 놀라 간지럼을 먹였던 것인데/ 발바닥은 움쩍도 않는다"
송 시인은 그런 아내의 발을 보는 일이 견딜 수 없었다. 아니, 사랑하는 아내가 사경을 헤매고 있음에도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무기력한 자신이 견딜 수 없었으리라.
최근에 송 시인은 아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절필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내의 "피를 먹고 자란 詩"를 바친 것이다. 시 이외에는 가진 것이 없는 시인의 무력한 몸짓이다. 쓰지 않는 시. 그러나 세상의 어떤 시가 이보다 더 가슴을 적시는 사부곡이었던가.
나는 그의 아내가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입술로만 사랑하고 현란한 수사로 꾸며대는 이 위선의 시대에 피를 토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노래하는 시인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 3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그믐처럼 몇은 졸고/몇은 감기에 쿨럭이고/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내면 깊숙히 할 말들은 가득해도/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침묵해야 한다는 것을/모두들 알고 있었다/오래 앓은 기침소리와/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그래 지금은 모두들/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자정 넘으면/낯설음도 뼈 아픔도 다 설원인데/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 가는지/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곽재구 (1954 -  ) 「사평역(沙平驛)에서」 전문

1980년대 젊은이들의 한 정서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시다.
작품 속의 사평역이 지금은 없어진 남광주역을 모델로 했다는 설도 있고 곽 시인의 고향에 있는 남평역의 이름을 고친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 시를 읽는 사람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지만 모두의 가슴에는 뚜렷이 느껴지는 시골 역의 대합실에서 잠시 피곤한 몸을 녹이는 나그네가 된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내면 깊숙이 할말들은 가득해도, 그리웠던 순간들을 떠올리고 한줌의 눈물을 불빛에 던지며 때론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 4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 소리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저 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이은상(1903 - 1982) 연시조 「성불사의 밤」중 첫 수

점 하나 찍혀 있으면 대조가 되어 백지가 더욱 하얗게 보이는 것처럼 조그만 풍경소리가 성불사의 밤을 더욱 고즈넉하게 만들어준다. 스님들의 정신세계를 더욱 깨끗하고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화두나 백지를 돋보이게 하는 점은 하나면 충분하다. 주승에 이어 손마저 잠이 들고 풍경소리 하나만 남는다. 독자는 마침내 홀로 남은 손이 되었다가, 혼자 우는 풍경 소리 그 자체가 된다. 너와 내가 없고 복잡한 세상일도 버리고 자연 속에 침잠해보는 체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짧은 3장의 글 안에 우주를 담은 절창이다. 천년을 내려온 우리의 시, 시조의 힘이다.
작년은 이은상 님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그는 1920년대에 이미 최남선, 이병기 시인 등과 함께 시조부흥운동을 펼쳐 전통 시조의 맥을 잇고 현대시조의 초석을 깔았다.
"나는 시를 즐기지 않는다, 시조를 모른다"고 섣불리 말하지 말자. 가고파, 고향 생각, 그 집 앞, 동무생각, 옛 동산에 올라, 봄처녀, 그리워, 그리움, 금강에 살으리랏다, 사랑, 장안사 등의 노래를 좋아한다면. 그리고 그 수많은 노래들이 이은상 시인의 시(대부분은 시조)에 붙여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낸다면.  





   *** 5

     1
   하늘에 깔아 논
   바람의 여울터에서나
   속삭이듯 서걱이는
   나무의 그늘에서나, 새는 노래한다.
   그것이 노래인 줄도 모르면서

   새는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두 놈이 부리를
   서로의 죽지에 파묻고
   따스한 체온(體溫)을 나누어 가진다.

     2
   새는 울어
   뜻을 만들지 않고,
   지어서 교태로
   사랑을 가식(假飾)하지 않는다.

     3
   -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純粹)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傷)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박남수 (1918 - 1994) 「새」전문

1975년부터 약 20년간 미국의 뉴저지에 거주했었기에 미주동포에게는 더욱 친밀감이 느껴지는 고 박남수 원로시인의 대표작이다. 7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활자로 인쇄된 시보다도 대중가요로 만들어진 통기타 가수의 목소리로 먼저 기억해내기도 할 것이다.
이 시는 슬픈 결말을 갖는다.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純粹)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傷)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 영문도 모르는 채 새는 총에 맞고, 포수는 자기가 노렸던 순수 대신에 매양 한 마리 상한 새만 보게 될 뿐이다.     행복이나 순수, 사랑과 같은 고귀한 가치를 지닌 어떤 것을 겨냥하고 있다면 한 덩이 납과 같은 차가운 물질을 사용해서는 어림도 없다. 노 시인이 피에 젖은 새를 손에 들고 이래도 모르겠느냐며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 6

창을 사랑한다는 것은,
태양을 사랑한다는 말보다
눈 부시지 않아 좋다
(중략)
창을 닦는 시간은
또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시간,
별들은 12월의 머나먼 타국이라고......
   김현승 (1913 - 1975)「창」부분

김현승 시인은 기독교적 주지주의 시인이라고 불려진다. 「가을의 기도」나「눈물」 과 같이 기도문의 형식으로 된 시들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그의 대부분의 시들이 담고있는 밝고 미래지향적인 느낌 때문이리라.
'부처'나 '자비'같은 단어가 한 마디 없어도 불심이 느껴지는 많은 선시에서처럼 위 시는 '주님'이나 '기도'와 같은 말을 쓰지 않았지만 돈독한 기독교적 신앙심이 행간의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좋은 시인이란 해를 사랑한다는 눈부신 표현 대신에 창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 창을 열심히 닦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참고로 아래에 전문을 붙입니다.


          창
                    김현승

창을 사랑하는 것은,
태양을 사랑한다는 말보다
눈부시지 않아 좋다.

창을 잃으면
창공으로 나아가는 해협을 잃고,
명랑은 우리게
오늘의 뉴우스다.

창을 닦는 시간은
또 노래도 부를 수 있는 시간
별들은 12월의 머나먼 타국이라고---.

창을 맑고 깨끗이 지킴으로
눈들을 착하게 뜨는 버릇을 기르고,

맑은 눈은 우리들
내일을 기다리는
빛나는 마음이게---.




*** 7

더 가까이 오시면 우리
타버릴걸요
더 멀리 가시면 우리
얼어버릴걸요
어쩌지요
        고대진 (1952 -  )「독도 2: 섬사랑」부분

위에 인용한 시는 동섬과 서섬이 마주하고 있는 독도를 그린 작품이지만, 우리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관계와 사랑에 대해서도 음미하게 만든다. 가까이 하면 타버리고 멀리 가면 얼어버리는, 그래서 늘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만 보아야하는 사랑이 "어쩌지요"란 말에서 절절하게 다가온다.
'영혼까지 독도에 산골하고'란 독도 관련 시를 모은 시집에 실려있는 고대진 시인의 작품이다. 이 시집은 미주에서 고대진, 오정방, 박정순, 한국에서 나호열, 이생진, 편부경, 여섯 시인이 함께 펴낸 책이다. 우리의 영토에 대한 당연한 사랑과 영유권을 시인답게 시로써 주장하고 시집으로 묶은 것이다. 시가 무슨 힘이 있으랴 하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처럼 강렬한 바램의 응집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성경에서도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그래서 시는 살아서 움직인다. 독도는 우리들의 사랑이요 그리움이다. 어쩌지요.


*** 8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1917-1945) 「서시」전문

몇 년 전 한국의 동서문학관에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과 시로 윤동주 시인과 그의 '서시'가 뽑혔다고 한다. 물론 그가 일제치하에서 사상범으로 복역 하다 사망할 정도로 후손에 부끄러움 없는 면모를 보였던 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이 시를 가장 좋아한다는 얘기는 부끄러움 없이는 하늘을 우러르지 못하는 최소한의 양심을 아직도 우리 한국인들이 갖고 있다는 얘기처럼 나에게는 들린다. 그래서 새해 들어 서시를 새로 읽으며 조국의 미래에 희망을 갖는다.



*** 9

When I get up in the morning
And buckle up the belt,
I am ready.
(나는 비로소 채비가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허리띠를 다 맸을 때.)
    이성열 (1946 -  ) 「The Belt」부분

이성열 시인은 한국어와 영어로 시를 쓰고 미국문단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몇 안 되는 한국 문인 중의 한 사람이다. 이민자의 글답게 그의 시는 시대와 국경, 동물의 세계까지 종횡무진 넘나든다. 위 시에서만 해도 동물들이 사람에게 지배당하는 건 허리띠를 맬 줄 몰라서이고, 일본에 패한 적이 없는 이순신 장군의 비결은 7년 동안 한 번도 허리띠를 푼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허리띠 하나에 매달려 있는 우리의 삶이 지니고 있는 '존재의 가벼움'을 해학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그의 시를 읽다보면 어느새 삶의 허리띠를 다시 한 번 졸라매고 있는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허리띠를 맸다면 외쳐볼만 하다. 새 하루여, 새 해여 오라. I am ready!

---------------( * 전문 )---------------------------
The Belt  

                                                    Sung Y. Yi
When I get up in the morning
And buckle up the belt,
I am ready.

Though it is only a strip of leather
It changes our lives as the Serpent
Changed Adam. He went
To look for some clothes.
He put on his belt.
It protects us from shame or cold,
And make us honorable to the world.

It energizes me like Samson's hair.
The necktie is attractive
But it could be dangerous
And make me weak and timid
Like a salaried man facing the lay-off.

That hot summer in Seoul,
When meat was in high demand,
A thief butcher pounded
My dog, Baduk, for a stew.
He was wearing a collar not a belt.
The animals, including my dog,
Are dominated by humans because
They don't know how to buckle the belt.

In the sixteenth century, my hero Admiral Yi
Fought the Japanese for seven years
And lost not a battle. How?
He invented the turtle ship, used superior strategy
And, first of all, for seven years, he never untied
His belt.


허리띠
                     이성열

나는 비로소 채비가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허리띠를 다 맸을 때.

비록 그것은 하나의 가죽끈에
불과하지만,
태초의 뱀이 아담을 바꾼 것처럼
우리의 삶을 바꾼다.
그는 옷을 찾아 나섰었고
그리고 허리띠도 매었다.
허리띠는 우리를 부끄러움이나
추위로부터 막아주고 세상에 대해 떳떳하게 한다.

삼손의 머리카락처럼 힘나게도 한다.
넥타이는 매력적이지만,
위험하고, 해고를 앞둔
샐러리맨처럼
우리를 유약하고 비겁하게 만든다.

삼복더위의 서울, 개고기 수요가 한창일 때,
어떤 도둑 개백정은 보신탕을 위해
나의 개 바둑이 끌어갔다.
그 때 개는 허리띠를 매지 않고 목줄을 매었었다.

아마도 개를 포함하여 짐승들이
허리띠를 맬 줄 몰라 사람에게
지배만 받고 사는 지도 모른다.

16세기, 나의 영웅 이순신은
7년간의 일본과의 싸움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그 비결?
그는 거북선을 만들었고, 탁월한 전략을 썻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7년 동안
한 번도 허리띠를 풀은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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