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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보톡스 보다 - 이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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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9,069회 작성일 10-09-2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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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 이게 뭐야?’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빗다보니 오른쪽 옆머리에 하이얀 색깔의 작은 올 하나가 삐죽 튀어나온 것이 눈에 들어온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하얗게 센 머리 한 올이 밖으로 얼굴을 내어 밀고 거울 속에서 내 눈 속을 헤집고 있었다.  ‘아니, 이럴 수가?’ 얼른 손으로 잡아내려고 거울을 앞에 두고 두 명의 내가 두개의 머리카락을 상대로 열심히 싸움을 벌였다.  손에 금방 잡힐 듯 하면서도 쉬 잡히지 않았다.  이건가 잡으면 검은 올이 잡혀있고, 아니참 이거지 하고 열심히 끌어 당겨놓아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색깔 짙은 검은 머리다.  씨름 끝에 겨우 잡아 당당하게 뽑아내어  ‘어디 감히...’라며 눈을 흘겼다.  도리어 하얀 그것은 나를 올려다보며 ‘이젠 너도 어쩔 수 없어’라고 외치는 것이 아닌가.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내 친구들은 지금 거의 모두 머리에 물감을 들이고 있다.  머리에 까망, 또는 갈색을 넣어 자기 원래의 흰머리 색깔을 감추고 있다.  좀 이른 친구는 벌써 10년 전부터 앞머리와 옆머리 부분에 듬성듬성 하얀 눈꽃을 덮고 사는 친구들도 있었다.  난 그래도 어머니를 잘 만난 덕인지 우리 어머니처럼 늦게 흰 머리가 나는 것이다.  어머니는 나중에 늙어서까지 머리가 남들처럼 많이 희어지지 않고 보기 좋은 정도의 머리 색깔을 가지고 계셔서 친구 분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셨다.  그러한 어머니 덕분에 나도 지금까지 내 나이또래의 다른 사람들이 거의 다 하는 염색이라는 것을 해 본적이 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나에게 잡힌 흰머리는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나도 이제 흰머리가 나기 시작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내 마음을 사로잡으며 뭔지 모를 허전함이 쌓였다.

  나이가 들었다는 허전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내 모습에서 나이를 볼 수 있는 어떤 다른 부분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오로지 머리가 희어졌으니 나이가 들었다는 뜻이 아니다.  뭔가 내 모습에서 나이가 든 사람으로서의 냄새가 나는가.  

  성경에 보면 ‘너는 센 머리 앞에 순종하라’고 하셨다.  머리만 희고 생각하는 것이나 말, 행동은 그렇지 못하다면 어떻게 될까?  나이 어린 사람들이 ‘센 머리’ 앞에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과연 들까?  센 머리 앞에 순종할 마음이 생기도록 말과 행동을 하고 살까 나는?  아직 나이 어린 사람들이 봤을 때 ‘센 머리 앞에 순종할’자격을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을 할까 하는 걱정이다.  
  사람이 40이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데, 50살이면 자신의 말과 행동에도, 결국 전 인격에 책임을 져야할 나이가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벌써 40도 넘어 50의 고개에 들어섰으니 나의 얼굴과 나의 행동에, 그리고 말에 모든 책임을 져야하는 시기를 맞이한 것이 아닐까.  과연 나는 그러한가?  
  머리만 희어서 나이는 들어 보이는데 행동거지나 말이 전혀 나이든 사람의 그것과는 다르다면.  아직도 철이 없어서 남들로부터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라면.  나이든 것이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양 무게만 잡으려는 사람이 된다면.  목에 힘만 잔뜩 주고 실천에는 영 형편없는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머리가 허연 모습으로 아랫사람들을 대할 때에 전혀 어른으로써의 모습이 아니라 권위만 누리려는 사람이 되지는 않았을까.  나이는 들어 머리는 하얗게 되었는데 하는 행동이 여전히 시기하고 질투하고 분쟁하고 다투는 사람은 아니었을까.  내 삶의 작은 이익을 위하여 나의 ‘센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일은 없는가 하는 걱정이 생긴다.

  나이 드는 것이 싫어서 여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화장을 넘어 ‘변장’을 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는 ‘나이보다 어려보이군요’라는 소리를 예쁘다는 말보다 더 좋아한다.  머리는 늘 염색을 하여 흰머리를 가린다.  주름을 펴기 위하여 얼굴의 피부를 당기고, 50살이 되어도, 60살이 되어도 주름 하나 없는 팽팽한 피부를 유지하려 안간 애를 쓰며 사는 여자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40이 된 여자를 20대로 보는 것도 좋은 것이 아닐 게다.  50에 들어선 여자를 “30대 인줄 알았습니다.”라고 하는 말을 듣는 것이 과연 행복일까?  
  차라리 나이에 맞도록 늙어가는 모습이 더 아름답지 않을까?  얼굴의 주름이 남에게 푸근함을 줄 수 있다.  머리카락의 반쯤은 흰 색깔이 편안한 인상을 주지 않을까.  무조건 젊어 보이는 것 보다는 나이에 맞게 푸근함을, 여유를 가지는 것이 아름다움일 게다.
  나도 이만큼 나이가 들었으니, 누군가가 “30대처럼 젊어 보여요.”라는 말 보다는 “인생의 여유로움이 있는 편안한 모습을 가지셨군요.”라는 말이 더 좋을 것 같다.

  어릴 때 나이든 분들이 나이 어린 내 눈에도 바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도록 말을 하거나 행동하는 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본 적이 있었다.  ‘난 나중에 나이 들어서 그러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자랐었다.  그런데 과연 지금의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걱정이다.  어릴 때 내가 생각하던 그러한 어른의 모습을 갖추었는가.

  나는 오늘도 주름을 가리기 위한 화장이나 보톡스 맞을 생각보다는 차라리 나이에 맞게 생긴 나의 주름을 잘 손질해야겠다.  머리 염색약을 고르기보다 흰머리를 단정하게 빗으며 내면을 잘 다듬어야지.  나의 센 머리에 부끄럽지 않는 그러한 모습을 가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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