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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소설: 황 노인 이야기 : [미국/전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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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슬리 댓글 0건 조회 6,531회 작성일 10-04-30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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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전영세] 황 노인 이야기

황 노인이 큰아들이 살고 있는 미국에 이주하기로 결심한 것은 이산가족 찾기 운동의 열기가 어느 정도 수그러져 이제는 더 이상 기대해 볼 것이 없다는 서글픈 판단이 황 노인의 의식 속에서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하기야 황 노인으로서도 크건 작건 기대를 걸었던 건 결코 아니었다. 따라서 예측을 빗나간 건 더더욱 아니었다. 말하자면 예측은 하면서도 오히려 그 예측이 빗나가길 기대했던 심정이 배반당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조금은 과장하고 싶은 억울함이 황 노인을 서글프게 만들었다.

큰아들은 그 몇 년 전부터 황 노인의 미국 영주를 위해 수속을 밟아놓고 있었지만 황 노인으로서는 훌쩍 떠날 수 없었던 것이 그래도 한국에 남아있는 편이 통일까지야 기대할 수 없다 하더라도 살아 생전에 고향 땅을 한번 밟아볼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하는 실날같은 기대 때문이었다. 기실 그러한 징후가 과거 여러 번 나타났던 것도 사실이었다. 방구가 잦으면 똥이 된다고 피차 선전을 위한 공수표일망정 남한이나 북한이나 통일을 들먹이는 건 어쨋든 반가운 일임엔 틀림없었다. 남북통일의 실현 여부를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로 요원한 일이었으나 시작이 반이라는 우리 속담이 있듯이 남과 북의 고위 관리가 비록 정치성의 배제라던가 인도주의에 입각이라는 허울좋은 가면으로 위장하긴 했지만 그래도 상호 방문이 수차 이루어지고 또한 보다 폭넓은 범위로의 확대라는 그럴싸한 수식어를 국민 앞에 내놓았다는 것은 황 노인과 같은 남북 이산가족의 당사자들에게는 가누기 힘든 충격임과 동시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고무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하던 과거에는 꿈도 꾸어보지 못했던 일들이 서서히 그 탈을 벗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그 후에도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서 황 노인을 비롯한 남북 이산가족에게 적지 않은 희망을 안겨 주었지만 그 결과나 진전이란 한심할 정도로 미미하기 짝이 없었다.

잔뜩 부풀어올랐던 꿈은 북한의 무성의를 가장한 생트집으로 무산되기가 일수였으며 또한 좀 더 적극적이고 생산적이기를 바랬던 남한의 정책도 여든에 첫 아이 비치듯 감질나기는 매한가지였다.
피차가 선전을 위한 위장술이라는 것이 서서히 드러날 무렵, 또한 황 노인으로서도 희망을 가졌다는 사실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하는 자괴심이 들기 시작하고 이제는 가야겠다고 작정하고 있을 그 무렵에 황 노인을 다시 한번 주저앉게 한 사건이 이산가족 찾기 운동이었다.

기실 이산가족 찾기 운동이 황 노인에게도 해당이 되는지는 황 노인 스스로도 자신있게 말할 수 없었다. 이산가족이란 말 자체만이라면야 어떻게 떼를 써서라도 비벼보겠지만 그 이산가족을 찾는다는 데에 황 노인으로서는 잠시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산된 가족의 당사자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적어도 헤어질 당시에만이라도 살아 있었다는 전제하에서 성립되는 말이 이산가족이라면 황 노인은 주저하지 않고 그 범주에 스스로 끼어들곤 하던 터였다. 절대로, 결단코, 황 노인으로서는 아내와 딸이 그때 인민군 경비병의 총에 맞아 죽었으리란 생각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어떤 확실한 근거위에 그러한 단정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황 노인 스스로가 그렇게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내와 딸도 동석에미가 황 노인의 손에 잡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의 손에 잡혀 어둠 속을 뚫고 무사히 경비망을 벗어났으리라고 믿고 싶었다.

이제는 얼굴모습조차 가물가물해진 40여 년 전의 아내와 그 아내의 등에 엎혔던 생후 7개월 되었던 딸, 이미 황 노인의 기억에 남아있는 아내의 모습을 훨씬 앞질러 간 중년여인이 되었을 그 딸이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 있으리라는 희망은 하나의 종교적인 신념처럼 황 노인의 의식 속에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또한 그 이 세상 어디가 북한 땅 어디라는 확신도 황 노인에게는 이제 하나의 믿음으로 굳어져 있었다. 40여 년의 장구한 세월이 흘러간 지금, 비록 아내와 딸을 찾는 노력은 이미 한계에 도달한지 오래 되었고 따라서 황 노인에게는 어쩔 수 없이 좌절과 포기로 점철된 지나간 과거였지만 아내와 딸이 이 좁은 남한 땅 어딘가에 살아 있었다면 지금까지 어떠한 형태로든 나타나지 않았을 리가 결코 없다고 황 노인은 단정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황 노인이 이산가족 찾기 운동에 걸어보는 기대란 사실 기대라기 보다는 하나의 핑계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간다는 것이 비록 큰아들과 같이 살기 위한 것이긴 하지만 이제 떠나면 다시는 살아 생전에 한국 땅을 - 그것이 남한이건 북한이건 - 밟아볼 수 없으리란 불안감이 황 노인의 구실이라면 구실일 수도 있었다. 그것은 또한 실날같은 희망이나마 가져볼 수 있는 기회조차 포기해야 하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단 하루라도 미국 행을 연기할 수 있는 구실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황 노인의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오히려 영영 가지않을 구실이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나 할까, 동석에미가 저 세상사람이 된 뒤부터 같이 살기 시작한 딸한테도 이제는 저희들끼리 오손도손 살도록 하루 빨리 큰아들에게 가야겠다고 마음은 먹어보지만 그 마음의 뒷켠에는 어떻게 해서든 주저앉을 수만 있다면 주저앉고 싶은 것이 황 노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황 노인으로서는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어렵게 결정한 미국행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평생의 한을 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섣부른 기대로 며칠동안 밤잠을 설친 사건이 한번 있었다. 하기야 그건 황 노인뿐만 아니라 누구나 남북 이산가족이라면 당연히 그럴 만 했다. 황 노인 스스로가 그 주체하지 못 할만큼 들떴던 흥분에 빠져 들어갔던 때는 황 노인이 미국에 온지 일년이 조금 지나서였다. 그날도 황 노인은 처지가 비슷한 정 노인과 시내 한가운데 있는 공원의 벤치에 앉아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우체부가 올 시간에 맞추어 집으로 돌아왔다.

황 노인에게는 매일매일 배달되는 미주판 한국신문이 더할 수 없는 위안거리였다. 미국의 이름 있는 대도시인 C시에서 자동차로 한시간 가량 걸리는 인구 5만 여의 이 조그만 위성도시에는 그만큼 한국인의 수도 많지 않았을 뿐더러 더구나 황 노인과 같은 처지의 죽이 맞는 노인네는 공원을 중심으로 해서 대칭점의 위치에 사는 정 노인뿐이었다. 통털어 30여가구가 될까말까한 한국인의 태반이 이 작은 도시의 밥줄이랄 수 있는 군수회사에 다니고 있고 정 노인의 아들 역시 황 노인의 큰아들과 마찬가지로 그들 중의 하나였다.

황 노인보다 10여 년 먼저 미국에 온 정 노인은 그 10여 년이란 세월에 걸맞게 이 지역에 대해 아는 게 많았고 한국에서 정치권에도 관여했던 경험이 있던 탓으로 한국의 현 실정에 대해서도 황 노인 못지 않은 관심과 식견도 갖추고 있었다. 또한 그만그만한 나이의 노인네들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손수 자동차를 운전하고 다니는 정력적인 노인네이기도 했다.

우편물은 이미 배달되어 있었다. 황 노인은 언제나와 같이 광고지나 편지류는 한켠으로 밀어놓고 신문부터 먼저 펼쳐 들었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남과 북이 선전공세에 곁들여 회담이니 접촉이니 명분 없는 설전으로 한참 바쁜 듯 했다. 선전을 하기 위한 회담인지 회담을 열기 위한 선전인지 그 구태의연한 작태는 황 노인이 한국을 떠나기 이전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여전하군, 여전해. 그 버릇 개주나?

이미 흥분과 좌절, 희노애락의 추가 탄력을 잃어버린 황 노인에게 있어서 멀리 떨어져서 보는 남과 북의 추태는 이제 더 이상 대면하고 싶지 않은, 그러나 결코 강 건너 불로 뒷짐지고 볼 수만은 없는 끈질긴 미련이었다. 한반도의 통일이 남북의 몇몇 정권담당자들만의 감상은 아닐진대 왜 실향민, 남북 이산가족의 절박한 심정은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는단 말인가. 절절한 통한을 가슴에 품은 채 세월의 흐름을 거역하지 못하고 하나 둘 흙으로 되돌아가는 실향과 이산의 세대들에게 그들은 무슨 말로 위로할 수 있으며 얼마나 더 참고 기다리라고 할 수 있는가. 그들이 과연 조국의 통일을 이룩하려는 의도는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거머쥔 정권을 보전하기 위해 7천만 남북 동포의 간절한 소망을 빌미삼아 가면극이라도 하고 있는 것인지 황 노인으로서는 이제 판단기능마저 마비된 듯 했다.

대한민국과 북한괴뢰집단인 남과 북, 미제 도당의 앞잡이와 위대한 수령동지의 인민공화국이 공존하는 한반도. 황 노인에게는 그것이 북한괴뢰집단일 수도 없었고 미제도당의 앞잡이일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철책으로 두동강 난 대한민국과 인민공화국일 수는 더더욱 없었다. 그것은 하나의 통일된 내 나라 내 고향이었다. 황 노인이 태어나고 자라고, 결혼하고 자식낳아 기르고, 동해와 서해와 남해가 있고 그리고 백두산 천지가 있는 곳, 그곳이 지금 이역 만리에서 보는 내 나라 내 고향이었다. 원산의 명사십리가 유명하고 이난영이 목포의 눈물을 뿌리던 그 한반도 내 나라가 황 노인을 비롯한 7천만 동포가 지난 40여 년 동안 애타게 갈망해온 하나의 조국이 아니었던가.

황 노인은 잠시 신문에서 눈을 들어 먼 하늘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눈의 피로를 느낀 건 반드시 노쇄현상 탓만은 아니리라.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는 하얀 줄을 뿜어내는 은빛 여객기 한 대가 이미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태양 빛을 강하게 반사하고 있었다.

- 북한방문 보고.....
여객기를 따라가던 황 노인의 시선이 신문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황 노인은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북한방문이란 네 글자가 황 노인의 칩칩한 동공을 아프게 찌르고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황 노인은 안경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눈을 눌러 비비고 다시 보았으나 틀림없이 그 네 글자는 거기에 있었다. 황 노인은 재빨리 하단의 중간쯤에 있는 C시 한인 중앙교회라고 쓴 집회안내 광고를 읽어 내려갔다.
- 북한방문 보고회 겸 북한동포를 위한 기도의 밤.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종 조상현 목사님의 북한방문 보고회와 북
  한동포를 위한 기도의 밤을 아래와 같이 갖고저 하오니 모든 성도 여
  러분과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오신 분, 실향민, 또한 조국의 통일을 갈
  망하는 여러분의 많은 참석을 바랍니다. 일시 ....  장소 ....

믿을 수가 없었다. 다시 한번 차근차근 읽어보았다. 틀림없이 북한방문 보고회라고 쓰여있었다. 황 노인은 안경을 벗었다. 그리고 신문을 접어놓고 눈을 감았다. 감은 눈을 두 손으로 감쌌다. 이제는 눈을 의심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그 집회안내 광고는 한 목사의 북한방문을 알리고 있었다. 황 노인이 한국에 있을 때나 한국을 떠나 이곳에 와서도 개인차원에서 북한을 방문했다는 기사나 뉴스는 보거나 듣거나 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그것은 상상의 한계를 벗어난, 단지 희망사항이었을 뿐이었다. 황 노인의 가슴은 조용히 뛰기 시작했다.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C시를 떠나 막 집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진입한 정 노인은 아무 말 없이 어둠 속을 달리고 있는 자동차의 운전대를 조심스럽게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루 종일 흐려있던 날씨는 아직도 걷히지 않은 듯 달빛마저 가려서 앞의 시야는 그저 칠흑이었다. 웬지 속도가 더디다고 느껴지는 건 정 노인이 밤길에서 속도를 늦춘 탓도 있었겠지만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황 노인의 야맹현상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황 노인의 그러한 느낌은 야맹현상이라기 보다는 들뜬 흥분에서 오는 조급증이라고 하는 편이 더 타당했다. 정말 미국에 오기를 잘 했다. 황 노인은 이미 신문을 보던 날 그러한 단정을 해버렸었다. 오늘밤 목사님의 말을 듣고는 그 단정이 더욱 더 굳어지는 것이었다. 목사님, 어떻게 해서 북한을 방문하시게 되었습니까. 예, 성도님과 같은 남북 이산가족의 한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 부족한 종에게 명하신 것입니다. 목사님, 저와 같은 사람도 갈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 아, 물론이지요. 우리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열심히 기도합시다. 그러면 하나님은 틀림없이 성도님의 뜻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 이제 아내와 딸을 찾아볼 수 있다는 희망은 희망의 단계를 벗어나 현실로 눈앞에 닥아온 느낌이었다. 그것이 언제일지 모른다는 막연한 느낌도 이제는 황 노인의 의식에 남아있지 않았다. 감을 잡을 수 없는 아내와 딸의 변했을 모습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아련히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40여 년 전의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황 노인은 의자에 달린 머리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지긋이 눈을 감았다.

그날도 오늘과 같은 칠흑의 야밤중이었다. 그 구름 낀 칠흑의 밤을 기다리기 위해 혹은 여관에서 혹은 어렵게 구한 민박에서 혹시나 이상한 눈치라도 채지 않을까 하는 초조한 며칠 밤을 보내고 하나 둘 모여든 일행은 30여명은 족히 돼 보였다. 안내인의 엄격한 지시에 따라 모든 일행은 검은 계통의 짙은 색 옷을 입고 있었다. 한치 앞을 분간 못하는 어둠 속에서 숨소리도 죽인 채 조용조용 움직이는 그 검은 물체들은 흡사 공동묘지에서 무덤을 헤치고 나와 어른거리는 유령들을 연상케 했다.

황민구씨도 아내와 여섯 살 된 아들, 그리고 아내의 등에 엎혀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는 딸과 함께 그 무리 속에 끼어 있었다. 내일 아침이면 황민구씨 가족은 떠오르는 아침해를 남한땅 개성에서 맞이할 것이다. 두고 온 산하, 결코 떠나고 싶지않은 고향산천.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떠나지 않으면 안되는 황민구씨의 심정은 착찹하기만 했다. 남한에 가서 2, 3년만 기다리자. 이 혼란이 안정되고 삼팔선이 터지면 다시 돌아오리라. 황민구씨는 거듭거듭 자신의 마음을 다독였다.

여기를 떠나 인가를 벗어나면 곧 산길로 접어듭니다. 별로 가파르지 않으니까 많이 힘들지는 않을 겁니다. 그 산을 넘으면 논과 밭으로 이어지는 넓은 둔덕과 평지가 나오는데 그 평지를 가로질러 십리정도 가면 다시 높지않은 산의 계곡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 계곡의 산길을 타고 넘으면 남한 땅입니다. 그 산의 내리막 길 중간쯤이 삼팔선인데 나는 여러분을 거기까지만 안내하고 다시 돌아옵니다. 그러니까 거기서부터는 여러분 스스로 가야 합니다. 이미 그 지점부터는 남한 땅이고 길도 험하지 않으니까 염려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큰 소리를 마음껏 질러도 괜찮고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가도 누구하나 뭐라고 할 사람 없습니다. 그 산밑에서 개성까지는 얼마 멀지 않습니다. 곧장 개성으로 가십시요. 거기엔 남한정부에서 월남하는 여러분을 위해 설치한 임시 수용소가 있는데 연고자가 없는 사람은 우선 그곳으로 가십시요. 그러면 거기서 모든 일을 잘 처리해 주고 안내도 해줄 것입니다.
안내인은 어둠속에서 소근대는 말소리가 들릴만한 무리만큼씩에게 같은 지시를 반복했다. 그의 목소리는 작았으나 단호했고 안내인으로서의 노련미가 묻어 있었다.

자, 떠납시다.
일단의 지시를 귓속말로 소근대듯 내린 안내인은 모든 준비가 완료되자 재빠른 동작으로 그러나 사쁜사쁜 가벼운 걸음걸이로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유령의 무리 역시 안내인의 뒤를 따라 소리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령의 무리는 인가를 벗어나자 곧바로 산길로 접어들었다. 깜깜 절벽 어둠 속에서 익숙치않은 길을 걷기 때문인지 대열에서는 돌뿌리에 채여 넘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몇가지 비상식품과 당장 네 식구가 입어야 할 옷가지 몇 벌, 그리고 돈이 될만한 금붙이가 든 룩색을 등에 진 황민구씨는 한 손에는 아들의 손을, 또 다른 손에는 조그만 보따리 하나를 들고 있었다. 아내는 딸을 업은 채 역시 무겁지 않은 보따리를 한 손에 들고 황민구씨의 뒤에 바싹 붙어서 따라오고 있었다.

첫번째의 산길은 예상보다 훨씬 쉽고 짧게 끝났다. 논뚝과 밭고랑으로 이어지는 길이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게 시작되고 있었다. 이미 가을 추수가 모두 끝난 시기여서인지 다행히 논바닥엔 물기가 없었다. 일행 중에서는 벌써 때이른 안도의 숨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황민구씨는 아들의 손을 잡은 자신의 손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뒤에 따라오는 아내를 돌아다보았다. 어둠 때문에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으나 딸을 업은 모습에서 아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딸은 아직 깊은 잠에 빠져있는 모양이었다. 남한 땅에 닿기까지는 깨지 말아야 할텐데.... 깨어나서 칭얼거리기라도 한다면.... 황민구씨도 떠나기 전과는 달리 다소 긴장이 풀린 듯 느슨한 마음이 되어갔다.

그러나 그것은 잠간이었다. 갑자기 앞장서서 가던 안내인이 두 팔을 벌려 행열의 길을 막으며 멈칫했다. 안내인을 선두로 앞에 가는 검은 물체만을 따라가던 대오는 예기치 않은 사태로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정지해 갔다. 그리고 눈을 들어 보이지 않는 어둠을 응시했다.

어 - ?
어 - ?

모두의 입에서는 경악의 소리가 기어들듯 흘러나왔다.
낮으막한 둔덕을 옆으로 끼고 밭고랑을 따라 걷던 일행이 막 그 둔덕을 돌아 나섰을 때였다. 모닥불의 환한 불길이 지척에서 타오르고 있었고 그 주위에는 서너명의 인민군 경비병이 총대를 멘 채 한가로이 둘러서서 늦가을 밤의 한기를 녹이고 있었다. 일행은 모두가 허리를 낯춘 채 숨을 죽이고 안내인의 지시를 기다렸다.
돌아갑시다.

안내인은 손나팔을 만들어 귓속말로 말하고 서둘러 일행을 다시 둔덕 밑으로 되돌아가게 했다.
잠시동안 상황을 살피고 돌아온 안내인은 주저하지 않고 다시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둔덕을 완전히 등에 질 때까지 일행은 계속해서 오던 길을 되짚어 갔다. 둔덕의 초입에 이르자 이번에는 우회하기 위해 논바닥으로 내려섰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허리를 굽힌 채 조용조용 움직여 갔다. 지루하고 숨막히는 시간이 흔들리는 유령의 무리와 함께 칠흑의 어둠 속을 말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 이젠 안심입니다.
안내인으로부터의 전갈이 한사람 두 사람 뒤로 전달되기 시작했다. 이미 둔덕을 완전히 우회한 듯, 조금 전 도깨비불같이 눈앞에 나타났던 모닥불은 이제는 저 멀리서 꺼져가는 촛불같이 가물가물하게 보였다. 총대를 메고있던 인민군 경비병의 모습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하기만 했다.
일행은 서둘러, 그러나 조금은 여유를 되찾은 듯 재빨리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계곡의 입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정지! 누구야!
그때였다. 이번에는 보이지 않는 지척에서 실탄을 장진하는 날카로운 쇠소리와 함께 인민군 경비경의 수하소리가 들려왔다.
엎드려요!
그 소리에 맞추어 안내인의 목소리도 작으나 또렷하게 들려왔다. 혼비백산한 일행은 재빨리 흩어져 논둑밑으로 몸을 엎드려 숨었다.
아풀싸, 함정에 빠졌구나.
그랬다. 그 모닥불은 월남하는 무리들을 평지로 유도하기 위한 함정이었다. 안내인은 혀를 차며 탄식하듯 중얼거렸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이 반동의 새끼들!
탕! 탕! 하늘을 향해 공포를 쏘는 듯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어둠의 허공에서 섬광이 번쩍 했다. 그리고 이쪽을 향해 뛰어오는 몇몇 군화소리가 어지럽게 들려왔다.
사방으로 흩어져 뛰어요! 사방으로!
안내인의 다급한 목소리를 기다릴 것도 없이 일행은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뛰고 있었다. 황민구씨도 지고있던 룩색을 벗어 던지고 손에 잡고있던 아들을 등에 들쳐업었다. 그리고 아내의 손을 덥썩 잡고 어둠 속을 뛰기 시작했다.
탕! 탕! 탕!

뒤에서는 다시 몇 발의 총소리와 고함소리가 산발적으로 들려왔다. 황민구씨는 필사적으로 뛰었다.
가자. 가야 산다.

목표는 산밑의 계곡이었다. 황민구씨는 달리던 길을 우로 꺾었다. 크고 작은 두개의 이등변 삼각형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나타났다. 그 가운데 계곡이 있었다. 저기다. 저기를 넘자. 황민구씨는 눈을 감고 뛰었다. 눈을 뜰 필요는 없었다. 뜨고 있어도 보이는 것은 어둠뿐이었다. 이미 방향은 잡혀 있었다. 한 손으로는 등에 업은 아들을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내의 손을 단단히 잡은채 숨이 차는 줄도 모르고 계곡을 향해 뛰어갔다. 둔덕을 넘고 논밭도 질러갔다. 밭고랑에 발이 채여 넘어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등에 업힌 아들은 저만치 내동댕이 쳐 졌고 황민구씨의 손에 몸의 중심의 일부를 맡긴 채 뛰고있던 아내는 앞으로 폭싹 꼬꾸라지기도 했다. 그러나 신음소리는커녕 숨소리 한번 크게 내지 못하고 황민구씨와 아내는 뛰고 또 뛰었다.
얼마를 그렇게 뛰었을까. 돌뿌리가 발에 채이고 키가 작은 나무의 가지가 앞에서 거치적거리기 시작하자 황민구씨는 아내의 손을 놓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내도 황민구씨 옆에 무너지듯 내려앉았다. 이미 계곡 입구였다.

갑자기 사위는 고요와 적막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황민구씨는 아직도 헉헉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내 역시 차오르는 숨을 감당치 못하고 할딱거릴 뿐이었다.
황민구씨는 눈을 들어 폭풍이 지나간 어둠 속을 굽어보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다. 하나가 보였다. 도깨비불 같던 그 모닥불이, 가물가물 스러져 가듯하던 그 촛불이, 이제는 저 멀리서 한 마리의 사그러지는 반딧불같이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소리쳐 소리쳐 불러도 들리지 않을 듯 했다.
황민구씨는 비로서 안도의 숨을 후 - 우 내쉬었다. 그리고 아내를 돌아다 보았다. 어둠 속의 아내는 딸을 업은 모습으로 희미하게 그 형체만을 나타낼 뿐이었다.
순간 그 안도의 숨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불안감으로 황민구씨에게 다가왔다. 아내의 숨소리가 웬지 익숙치 않다는 것은 벌써부터 느꼈어야 했다. 그것은 아내쪽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다만 폭풍속에서의 혼란과 긴장으로 표면상 느끼지 못했을 뿐이었다. 이제 안도의 숨이 온 몸의 긴장을 서서히 풀어헤치자 그 익숙치 않은 아내의 숨소리는 황민구씨의 의식에 부낭처럼 떠올랐다. 황민구씨는 아내를 향해 돌아앉았다.
여보, 당신 괜찮아? 인숙이도 괜찮고?
그러나 순간 황민구씨는 그 불안감의 실체를 섬뜩하게 느껴야 했다.
어 - 머 - 머! 도 - 동석 아빠가 아니세요?
다 - 당 - 신.... ? 인숙 엄마가 아 - 아 - 아 - 니란 말이요?
어머, 어머나!
황민구씨와 아내, 아니, 어느 낯모르는 여인 동석엄마는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말을 더듬거렸다. 그리고 서로 벙어리가 되어 보이지 않는 얼굴을 응시했다. 짧은 순간이 어둠 속에서 지나갔다. 여인은 주섬주섬 몸을 추스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오던 길을 되짚어 달려가기 시작했다. 황민구씨는 여인을 덥썩 잡아 앉혔다.
이것 봐요, 다시 돌아가면 죽습니다. 죽어요.
그러나 여인은 완강히 저항하며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황민구씨는 있는 힘을 다해 여인을 움켜잡았다.
놔 주세요. 동석아빠한테 가야 돼요. 노세요.
그러지 마십시요. 나와 함께 이 산을 넘읍시다. 개성에 가면 모두 다시 만날 겁니다. 자, 진정하세요.
개성에 가면? 황민구씨는 스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개성에 가면 모두 만날 수 있으리란 말이 그렇게 쉽게 자신의 입에서 나왔다는 게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적이고도 무의식적인 판단은 황민구씨에게 직감적으로 떠오른 희망일 수도 있었다. 아내도, 아내도 개성에 가면 만날 수 있으리란....
때마침 여인의 등뒤에서는 잠이 깬 사내아이의 울음소리가 요란하게 울려나오기 시작했다. 황민구씨는 주저할 수가 없었다. 아들을 다시 들쳐업었다. 그리고 아직도 버둥거리는 여인의 손을 단단히 잡고 보이지 않는 어둠속의 산길은 더듬으며 계곡 속으로 깊이깊이 서둘러 들어갔다.

황 노인이 직접 북한엘 가보고 싶으신 거요?
이미 자정이 가까워 오는 깊은 밤이었다. 비껴 가는 차 한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정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황 노인은 꿈속에서 깨어나듯 눈을 번쩍 떴다.
글쎄요. 가볼 수만 있다면야 오죽 좋겠소만....
북한엔 누가 있는데?
아내와 딸이 있습네다.
황 노인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니, 황 노인 부인은 몇 년 전에 죽었다고 하지 않았소?
예, 죽었지요. 그렇지만 지금 내가 찾고자 하는 아내와 딸은 죽지 않았을 거예요. 분명히 이북에 살아있을 겁니다. 이젠 꼬부랑 할망구가 되었겠지만....
황 노인은 아직도 망막 속에 어른거리는 아내와 딸의 모습으로 가슴이 메어져서 말끝을 맺지 못했다.
아, 그러니까 남북 이산가족이시군요.
그런 셈이지요.
으음, 저런. 그런데 언젠가 황 노인에게는 군 고위 장교 아들이 있다고 했지요?
예. 둘째 아들이 얼마 전에 대령으로 진급했지요. 제 말로는 머지않아 별을 달게 될 거라면서 그 별을 나한테 달아주겠다고 합디다. 그때에는 꼭 돌아와야 된다고....
황 노인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월남전에도 파병되었던 둘째 아들 동석이 이제는 별을 바라볼 수 있는 대령까지 올라갔지만 정말 별을 달 수 있을지 또 그게 황 노인 살아 생전에 이루어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황 노인이나 황 노인의 큰아들을 전혀 닮지 않은, 오히려 닮았다면 더 이상해야 할 둘째 아들은 무골형의 우람한 체격과 그에 걸 맞는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그의 동기생 중에서는 제일 먼저 대령으로 진급한 전형적인 직업군인이었다. 그 둘째 아들이 별을 달게 되리라는 건 시간문제일 뿐 그의 주변 사람들에겐 따놓은 당상으로 받아 들여졌고 누구 하나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 노인만이 선뜻 그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군인이라는 특수신분 때문일 것이다. 2년이 넘는 월남전 참전때에도 둘째 아들은 수없이 많은 무공훈장을 받았고 그때마다 한번도 빠짐없이 황 노인에게 자랑 겸 보고를 해 왔음에도 황 노인은 애비로서 의당 자랑스럽고 반가워 해야할 양의 절반도 느껴보지 못했었다. 귀국하여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그 많은 훈장을 하나하나 황 노인의 가슴에 달아주며 어린애처럼 즐거워하던 둘째 아들 앞에서도 황 노인의 가슴 한쪽은 그저 막막할 뿐이었다. 아버지, 이제는 북한의 괴뢰도당을 쳐 부시고 남북통일을 이룩하는 일만이 우리한테 남았습니다. 두고 보십시요. 제가 제일 먼저 앞장서서 우리의 과업을 수행할 것입니다. 아버지, 그때까지 오래오래 사십시요.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군인. 명령에 따라 총대를 잡고 명령에 따라 아무런 적대감정이나 원한이 없는 사람을 죽여야 하는 군인. 또한 그러한 명령을 스스로 내려야 하는 군인. 그 당사자가 종국에는 내 형제자매가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으며 내 형제자매를 겨눈 총의 방아쇠를 당기라고 명령하는 자가 내 아들이 아니라는 보장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군대는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보호라는 명제 아래서는 절대 필요하다. 그러나 내 나라 내 형제자매를 향해 총뿌리를 겨누는 군대는 군대로서의 명분이 없지않은가.
그런데 황 노인은 방북을 하려고 해요?
뭐가 잘못 되었습네까?
허 - 어. 황 노인 몰라도 한참 모르시는군.
정 노인은 정말 한심스럽다는 과장된 눈빛으로 황 노인을 힐끗 쳐다보고 다시 헤드라이트가 비춰주는 어둠 속을 응시했다.

모르다니요? 아니, 내 아들이 대령이라는 것과 내가 북한에 가보겠다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이요? 한국에서야 갈 수가 없으니까 못 갔지만 여기 조목사님은 다녀오지 않았습니까?
황 노인 역시 어둠 속을 응시하던 시선을 돌려 정 노인을 쳐다보았다.
황 노인은 황 노인의 방북이 아들이 별을 다는데 지장이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까? 아들은 대한민국에 목숨을 바쳐 충성하기로 맹세한 군의 고위 장교입니다. 도대체 충성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특히 대한민국에서 군인으로서의 충성이라는 건 뻔한 것 아닙니까? 북한 괴뢰집단을 쳐 부심으로서 우리 국토를 방위한다는 게 충성의 골자고 또 전부지요. 그런데 그 충성을 맹세한 사람의 아버지는 괴뢰집단으로 실체조차 인정하지 않는 북한엘 가 보겠다는데 한국정부에서 그걸 개의치 않으리라고 생각해요? 어림 한푼어치도 없는 소립니다, 황 노인.
정 노인의 말은 정말 뜻밖이었다. 황 노인으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말을 정 노인은 아무 거침없이 하는 게 신기하기까지 했다.

예 - 에? 그, 그건 무슨 말씀입네까?
한동안을 멍하니 정 노인의 운전하는 옆얼굴을 바라보던 황 노인은 더듬더듬 말했다.
이거 봐요, 황 노인. 내가 한마디 충고하겠는데 좀 깊이 생각해서 행동을 취하도록 해요. 적어도 아들이 한국에서 별을 달기를 원한다면, 아니지요, 아들이 한국에서 무사하기를 원한다면 말입니다.
황 노인은 정 노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지만 그대로 덥썩 받아들이기에는 황 노인의 한국 정치현실에 대한 견문이 너무 좁았다. 황 노인으로서는 해외 영주교포란 한국을 이미 떠난, 말하자면 출가외인이나 삭발위승과 마찬가지로 여겨오고 있었다. 그런데도 해외에 영주하는 교포들이 남과 북이 입을 모아 부르짖는 사상을 초월한 인도주의의 입장에서 잃어버린 혈육을 찾아보기 위한 순수한 동기로 북한에 가보겠다는 것이 그렇게도 한국정부에 관심거리라는 사실도 놀랍거니와 이 미국 땅에까지 한국 정보기관의 끄나풀이 한인들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서 스며들어와 있다는 정 노인의 말은 정말 믿기 어려웠다. 군 고위 장교의 부모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황 노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 행동 하나 하나가 하나도 빠짐없이 감시의 대상이 되고 보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정 노인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황 노인은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 노인은 이미 한국을 떠났기 때문에 한국과는 더 이상 관계가 없다고 생각 하실지 모르지만 한국정부로서는 아직 황 노인은 한국국민입니다. 적어도 황 노인이 미국시민이 돼서 한국국적을 포기하기까지는 말이죠.
딴은 정 노인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황 노인은 아직 한국국민임에는 틀림없었다.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산다고 한국여권을 가진 황 노인이 한국 법을 어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그것이 황 노인 한 사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별을 바라보고 있는 아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정 노인의 충고대로 깊이 생각해서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이었다.

조목사님은 한국에 가족이나 가까운 일가친척이 한사람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미국시민이니까 한국정부에서 방북 한 사실을 안다고 하더라도 할 말이 없는 거지요. 물론 최근 북한의 정책은 미국국적의 취득유무에 관계없이 재미동포에게 문호를 개방해서 특히 남북 이산가족의 북한방문을 선별 허가하는 추세에 있는 것 같고 따라서 황 노인도 앞으로 북한을 방문할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만 그러나 황 노인의 경우는 조금 다르지 않습니까? 설령 운이 좋아서 북한을 다녀왔다고 합시다. 황 노인 한 사람으로서야 앞으로 한국 땅에 다시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면 그런 대로 별 문제는 없겠지요. 한국 정부로서도 미국에까지 와서 황 노인을 잡아갈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한국에 남아있는 황 노인의 가족, 특히 군에 몸담고 있는 아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것 생각해 보셨습니까?

정 노인은 다시 한번 정면을 응시했던 시선을 힐끗 돌려 황 노인을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는 아는 자로서의 우월감이 다소 배어 있는 듯 했다.
황 노인은 가슴이 답답했다. 급히 먹은 음식물이 식도의 중간에서 딱 멈추어 버린 듯 명치가 치밀어 올라왔다. 그런 것 생각해 보셨습니까? 물론 황 노인은 그런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그런 걸 생각할 만큼 유식하지도 못했다. 이제 한 평생을 마감하려는 보잘 것 없는 늙은이가 몇몇 위정자들의 정권욕에 희생된 가장 귀중한 생의 한 부분을 찾아보기 위해 고향 땅을 한번 밟아보겠다는 것이 한국 정부에겐 그렇게도 대단한 일이며 심각한 사건이란 말인가. 해외에 거주하는 교포들까지 정보기관의 끄나풀을 잠식시켜 감시해야 할만큼 한국의 위정자는 스스로에 대해 그렇게도 자신이 없었던가. 왜 떳떳하게 가고 싶으면 가보라. 그리고 스스로 판단해 보라.고 하지 못하는 것인가. 우리는 지금 세살 난 어린아이가 아니지 않은가. 보고 들으면 판단할 능력이 있는 성인이 아닌가. 당장 오늘 조목사님의 북한보고는 눈물없이는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고 가슴아픈 것이 아니던가.

한가지만 더 말할까요, 황 노인? 물론 이 말은 내가 직접 당사자한테 들은 게 아니고 서너다리 건너서 들은 이야기니까 사실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무슨 소린고 하니, 사정은 북한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북한에 남아있는 이산가족이 북한의 고위 관리직에, 말하자면 노동당 간부라던가, 있다면 그 당사자도 월남한 가족이 방북하는 걸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북에 두고 온 이산가족을 찾기위해 이곳의 방북대행기관에 생사확인을 신청하면 비공식 경로를 통해 살아있다는 소식만 전하고 남북통일이 될 때까지는 방북을 강력하게 만류하는 형편이라는 거지요. 왠지 아시겠어요, 황 노인? 북한에도 고위 관직에 있는 사람들에겐 배경이 출세에 큰 작용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허긴 그게 어디 남과 북이 다르겠습니까? 오히려 북한이 더 심할지도 모르지요.

황 노인은 정 노인을 다시 돌아다 보려다가 그만두고 반대편의 창밖으로 어둠 속을 응시했다. 칠흑의 어둠은 조금도 변함없이 황 노인의 시야를 철저하게 닫아놓고 있었다.
배경? 출세? 그렇다면, 인숙이도....? 노동당 간부의 아내가 되어 남편의 출세를 위해서는 월남한 아버지와의 상봉도 마다하는 매정한 딸이 되어있을까. 아버지,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세요. 이제 우리의 위대한 영도자이신 수령동지께서 머지않아 남조선 인민을 악랄한 미제국주의로부터 해방을 시킬 것입니다. 그때 아버지를 찾아 뵙고 마음껏 울어보렵니다....

인숙이가? 내 딸 인숙이가? 아니야. 절대 그럴 리가 없어. 절대. 암, 없고 말고. 황 노인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정 노인은 이제는 할 말을 모두 다 했다는 듯 말없이 운전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밖은 여전히 칠흑 빛 어둠이었다.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천신만고 끝에 개성에 도착한 황민구씨와 동석엄마는 곧바로 남한정부에서 설치한 월남민 임시수용소에 들어갔다. 그것은 황민구씨나 동석엄마나 남한 땅에 찾아 갈만한 친지나 친구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보다는 황민구씨로서는 아내와 딸을, 동석엄마로서는 남편과 아들을 - 동석의 형인 또 하나의 아들이 동석엄마에게 있다는 사실은 삼팔선을 막 넘어서야 알았다 - 찾아야 한다는 절박한 사정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동석엄마의 손을 강제로 끌고 삼팔선을 넘은 황민구씨로서는 동석아빠를 찾아줘야 한다는 스스로의 다짐이 결코 부담스러울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그건 아직도 되돌아가기를 완전히 단념하지 못하는 동석엄마에게 계곡을 넘으며 수십 번 되풀이 한 개성에 가면 모두 만난다는 말이 실은 동석엄마를 위로하기 위한 말이었을 뿐만 아니라 황민구씨 스스로에게 한 말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산발적인 총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렸지만 그건 결단코 어느 목표물을 정조준해서 발사했다고는 볼 수 없었다. 우선은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이 그랬고 다음은 그 어둠 속에서 설사 움직이는 검은 물체가 시야에 잡혔다 하더라도 총구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목표물을 정조준한다는 것이 결코 용이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황민구씨의 판단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황민구씨로서는 아무리 잔악한 인민군 경비병이라 할지라도 무기를 갖지 않은 민간인, 그것도 부녀자와 어린 아이들까지 섞여있는 - 물론 어둠 속에서 그걸 분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벌써부터 그와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터였다 - 무리에게 정조준해서 무차별 발사했으리라곤 믿고싶지 않았다. 그러한 판단으로 미루어 볼 때 황민구씨는 자신이 동석엄마를 아내로 오인했던 것처럼 다른 누가 그 혼란속에서 논두렁밑에 엎드려 있던 아내의 손을 덥썩 잡고 어둠 속으로 뛰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발버둥치는 아내의 손목을 잡아끌고 어느 험한 산이나 계곡을 넘어 삼팔선을 뚫고 곧 이 개성 땅에 오리라 믿었다.

하루를 기다렸다. 그리고 이틀, 사흘을 기다렸다. 월남민은 하루에도 수십명씩 매일 들이닥쳤다. 모두가 야밤을 통해 삼팔선을 넘은 듯 그들의 모습은 공포와 긴장으로 초췌하고 피로해 보였으나 금세 밝은 표정으로 변해갔다. 또한 그들이 들어오는 시각은 황민구씨가 들어온 시각과 비슷한 늦은 오전 중으로 대개 이때가 지나면 뜸해지곤 했다.

황민구씨와 동석엄마는 하루 종일 수용소입구에 서서 한 사람도 놓지지 않고 유심히 관찰했다. 주위에는 황민구씨나 동석엄마와 같은 처지로 삼팔선을 넘다가 가족을 잃은 듯한 몇몇 사람이 더 있어서 서로서로 위안의 말을 주고받곤 했다.
수용소에 들어 온지 일주일이 지나자 황민구씨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 불안감은 아내와 딸이 죽었으리란 불안보다는 아직도 삼팔선을 넘지못했으리란, 따라서 예측하기 힘든 불확실한 미래에서 오는 불안이었다.
그 불안을 현실로 받아들인 건 황민구씨가 수용소로 들어 온지 한달 가까이 지나서였다. 이미 수용소의 규정인 일주일 체류를 세 번이나 통사정을 해서 넘겼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사정해볼 염치도 없었다. 대부분의 월남민들은 빠르면 2, 3일, 늦어도 일주일이면 제 갈 길을 찾아가던가 수용소에서 알선해 주는 곳으로 떠나갔다. 가족을 잃고 혹시나 오늘내일하고 기다리는 몇몇 사람들만이 황민구씨나 동석엄마와 같이 3, 4주씩 머물렀다. 그들 중에는 다행히 기다리던 가족을 만나 기쁜 표정으로 수용소문을 나서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을 남쪽으로 떼어놓곤 했다.
어두운 그늘은 그 것 뿐만이 아니었다. 매일매일 수용소로 들어오는 월남민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삼팔선의 경비가 점점 더 삼엄해 진다는 말이기도 했고 그것을 반증이라도 하듯 최근에 넘어온 사람일수록 그들의 표정은 더욱 더 공포와 피로에 지쳐있었다.
경비가 그리 심하지 않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쪽에서 이쪽으로 또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삼팔선을 넘나드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했으나 이제는 이쪽의 경비도 만만치 않아 되돌아 가 볼 엄두도 낼 수 없는 형편이었다.

불안하고 답답한 4주가 지루하게 지나갔다. 그 4주 동안 수용소를 거쳐간 월남민은 수도 없이 많았으나 황민구씨가 찾는 아내나 동석엄마가 찾는 남편의 모습은 영영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는 아예 개성 땅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던가 아니면 서울로 가서 생활터전을 마련해 가면서 기다려야 할 판이었다.
황민구씨는 다시 동석엄마의 손을 잡아끌다시피 해서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한강이 멀리 내려다보이는 남산의 언덕 받이 해방촌에 자리를 잡았다. 해방 이후 삼팔선을 넘은 대부분의 무연고 월남민들이 처음 발을 딛는 곳이 해방촌이었고 그래서 붙은 이름이 또한 해방촌이기도 했다. 황민구씨의 아내나 동석엄마의 남편도 남한 땅에는 연고가 없었으므로 삼팔선을 넘게되면 우선 해방촌으로 오리라는 기대는 그런 대로 가져볼 만 했다. 그래서 새로 월남해온 사람이 있다는 소식만 들으면 제일 먼저 달려가곤 했다. 때로는 영등포로 간 사람이 있다는 막연한 소문으로 며칠씩 영등포 거리를 헤매고 다닌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세월은 무심히, 그리고 잘도 흘러갔다. 그 가슴이 잘려 나가는 듯한 기다림의 세월이 2, 3년 가량 지났을까, 6.25사변이 터졌다. 황민구씨는 큰아들을 동석엄마에게 맡기고 국군에 자원입대했다. 북진하는 국군의 일원으로 고향에 가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또한 동석엄마의 고향인 황해도 사리원에도 들려서 동석아빠의 생사도 알아볼 심산에서였다. 그러나 그 꿈은 평양입성을 눈앞에 두고 부상병이 되는 바람에 무참히도 깨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동석엄마의 고향집은 찾았으나 이미 그 동네 대부분이 폭격으로 폐허가 된 뒤였고 알아볼 만한 주민은 한 사람도 찾을 수가 없었다.

제대를 했다. 그리고 다시 3년이 더 흘러가고 휴전이 이루어졌다. 1.4후퇴로 봇물 터지듯 내려온 그 많은 북한의 피난민 중에서도 황민구씨의 아내나 동석엄마의 남편은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그 동안 고향 사람도 여럿 만났으나 모두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 뿐이었다.
동석엄마의 등에 엎혔던 아들 동석이 성을 바꿔 황 노인의 친자인 둘째 아들 황동석이 된 것은 휴전이 성립되던 그 해, 동석이가 국민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을 때였다. 때마침 삼팔선 이북에 호적을 둔 월남민을 위한 가호적 제도가 발효 중에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새 호적을 만들 수 있었다.
- 성명, 황동석. 부, 황민구. 모, 허이순. 출생, 단기 4280년 5월 24일.
  호주와의 관계, 자.  평안북도 정주군 정주읍 오류동 757번지에서 출
  생, 부모의 신고로 입적, 편제.
이름이 허이순인 동석엄마가 황민구씨의 본처로, 또 황 노인의 큰아들이 허이순의 친자인 장남으로 호적에 기재된 것도 역시 이때였다. 그리고 황민구씨와 허이순 사이에는 딸 하나를 더 두었다.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 황민구 성도를 위해 부르는 찬송가는 그러나 구슬피 울려 퍼졌다. 황 노인의 관은 서서히 묘혈속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몇 송이의 꽃이 황 노인의 관 위에 놓여졌다. 그때 누군가가 성도 중에서 조용히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리고 반으로 접은 신문을 황 노인의 관 위에 가만히 놓았다. 정 노인이었다.
못난 사람 같으니라구. 성급하기는 원. 남북통일이 눈앞에 닥아 왔는데 좀 더 기다려 보고 갈 일이지.... 쯧쯧쯧.
정 노인의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는 구슬픈 찬송가 소리에 묻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황 노인의 관은 그 신문의 무게에 눌린 듯 조금 빠르게 묘혈속으로 내려갔다.

- 남북 고향 방문단 판문점 통과!
대문짝 만한 특대호 활자와 버스의 창문으로 손을 흔드는 남과 북의 고향방문단 사진으로 전면을 온통 뒤덮은 신문은 그러나 한 삽 두 삽 떠 넣는 흙으로 황 노인의 관과 같이 말없이 묻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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