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주 한인문학의 위상과 과제 - 미주 한인문단의 대비적 특성 : 이 명 재 (중앙대 명예교수,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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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갈릭 댓글 0건 조회 3,825회 작성일 12-02-1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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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미주 한인문단의 대비적 특성
논자는 모처럼 미주문단 여러분과 만나서 대화하는 자리이므로 보다 진지하게 미주문단의 현황과 상관된 특성적 문제점들을 여타 지역의 한인문학 특질들과 비교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다만 논자로서 밝혀서 전제해 둘 바로서는 사회주의권과 한반도에 인접한 한인문학에 대해서는 여러 번 답사, 연구한 바 있는 반면에 정작 미주의 그것에 대해서는 다소 생소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오진하거나 어림으로 판단해 버릴 위험성이 있는 대신에 오히려 멀리서 선입견 없이 올바로 파악할 소지도 많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장단점들을 함께 의식하면서 논자 나름대로 평소 생각하고 오던 것에다 당면한 세미나 준비 중에 얻은 정보들과 실제로 현지에서 구한 자료들을 입체적으로 활용하여 몇 가지 진솔하게 말해두고 싶다.
1) 자유로운 자기구현의 문화 광장
ㅡ향수와 정체성 찾기 욕구를 문학으로 꽃피우자
미주 한인문단은 나름대로 흑인폭동 같은 이질문화와의 갈등이나 충격도 없지 않겠으나 비교적 자유로운 여건에서 이민자의 꿈을 구현할 수 있는 자기 구현의 광장이다. 적어도 미국에는 새로운 인민의 천국을 찾아 러시아 땅으로 망명했던 조명희 작가가 척박한 그 땅에 한국문학의 씨를 뿌린 10년 만에 그곳 작가의 집에서 인민의 원수라는 죄목으로 희생당하는. 따위의 위험성은 없다 또한 정든 연해주를 두고 중앙아시아 황무지에 강제 이주된 다음해에 그 원동(遠東) 땅이 그리워 쓴 글로 인해 20여년 필화(筆禍)를 겪은 고려인 시인의 고초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특히 구소련의 고려인들은 공민증마저 받지 못해서 거주 이전까지도 제한 받았을 뿐더러 심지어는 소련을 조국으로 정한 나머지 ‘고국’이나 ‘모국’이란 어휘마저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철저하게 검열의 규제를 받았던 터였다. 그 결과 레닌과 스탈린 및 혁명찬양에 치우친 송가를 거듭해오게 마련이던 그곳 고려인들의 처지는 재미 한인문학도들에게 타산지석이 되고 남는다.
그리고 강릉을 떠나 연해주-동경-중국 동북지방을 전전하다가 8.15 조국광복을 일주일 앞두고 용정의 집으로 향하던 길에 일제의 앞잡이들 손에 의해 목숨을 잃은 심연수(沈連洙) 시인 역시 예외가 아니다. 더욱이 예의 중국 문화 대혁명 무렵 그 거센 소용돌이에 빠져들어서 숱하게 옥고를 치른 조선족 문인들의 수난 또한 참고가 된다. 그런 만큼 미주문인들은 자유로운 표현과 발표 지면의 좋은 조건에 부응할 만큼 좋은 글을 치열하게 많이 빚어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생활여건 속에서 공산권에 월경해 사는 동포들의 기구한 운명과 절실함에 비해 미주 한인들은 자유롭게 열린 평등과 기회의 광장을 스스로 선택하여 자기 꿈에 도전하는 보람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만큼 미주 한인들의 작품에 나타난 고독이며 향수 내지 일시적인 좌절은 고려인이나 조선족의 그것에 견주면, 이질적인 기존의 서양사회에 진입하는 통과의례일 정도로 낭만적이고 밝은 빛을 드러낸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사회주의 진영의 한인 작품들에는 우울과 체념의 그림자가 투박하게 드러난 대신 자유진영에 사는 한인 작품들에는 그런 어둠과 장막을 걷어낼 기민성과 슬기 넘치는 유연성이 깃들어 있음을 만나곤 한다.
연이나 띄워보세, 저 맑고 푸른 하늘에
바람결은 지금 솔솔 솔솔 이만리
창공도 푸르러 천만리 (2개 연 생략)
올라서 올라서
북(北)쪽에 기우뚱 허리 굽혀 인사요
또한 남쪽에 기우뚱 고개 숙여 인사 하네
줄은 늘어진 배를 팽팽히 조여
지금 태산도 아스라이 아래라
그러한 기슭에 금(禁) 그어 놓은
기나긴 사연도 아래요 (4줄 생략)
칼날처럼 바람 가르는 연 줄 타고
푸르륵 푸르륵 음향쳐 오는
저 조선의 창호지 소리는
진정 누구의 흐느낌이련고
연은, 지금 올라 올라서
하늘에 천만리 (3개 연 생략)
그렇다, 그래
주인이면서도
머슴 되어가는 사실(事實)에 관하여
극히 무디려고만 하는
이 조선반도의 마비된 하반신(下半身)에
우리의 맑은 피 휘돌아
다시 제 걸음 걷게
어서어서 연줄을 퉁퉁 퉁퉁 퉁기세 (한 연 생략)
한무학의 시「연을 띄우는 그 사연은」의 보기에서처럼 고국을 떠나 이국에 나가 살면서 조국을 그리워하며 지내는 마음이 궁하지 않게 연을 띠면서 생각하는 것으로 표출하고 있다. 당국의 검열 등으로 으레 국가나 민족을 다루지 못하고 자신의 가난하고 험한 삶의 역정을 토로하게 마련인 고려인 문단이나 조선족 문단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사회주의 지역에서는 연이나 조선의 창호지 말고는 ‘주인이면서도 / 머슴 되어가는…’ 등속의 표현을 하기 어려웠다. 고려인과 조선족의 살림 터수나 표현의 여건이 그만큼 자유롭지 못해서인 것이다.
2) 전약후강의 문단 추세
ㅡ미주 한인문학은 상대적으로 발전성 많아
세계 각 지역의 한인문학을 문단사적으로 살펴보면, 일찍이 한반도에 인접한 두만강 건너 연해주로부터 먼저 키워온 구소련 고려인 문학에 비해 미주의 한인문학은 대조적이다. 그것은 미주문단이 공간적으로 두만강 너머 사회주의권 경우와 달리 태평양 건너 먼 자유주의권 지역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뿐만이 아니다. 살펴보면, 사실 연해주에서 기초를 마련한 고려인 문단은 1930년대 후반의 강제 이주 이후에도 척박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벡키스탄 등지에서 한글신문 《레닌기치》등을 통해서 나름대로 왕성한 창작 욕구를 보여 왔다. 하지만 알마타를 중심으로 한글문학의 메카를 이루었던 고려인 문단은 연해주에서 이주해온 1세대들의 노쇠에 이어 구소련의 해체 및 한글을 읽을 만한 독자층의 격감 등으로 인해서 현재는 급속히 약화되어 소진된 상태에 처해 있다.
그런가 하면, 미주지역의 한인문단은 초기의 경우, 일부 문학 애호가 수준의 필자들에 의해서 한글신문《新韓民報》등을 통한 습작이 행해졌을 뿐이다. 그러다가 1930년대에 들어서야 강용흘이 한국적인 소재를 영어로 쓴 『초당』(1931)등의 작품으로 미국문단에 그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그 후로는 한동안의 공간을 지나서 195,60년대에 김용익의「뒤웅박」(1956), 작품집 『행복의 계절』(1960)과 김은국의『순교자』(1964), 등의 수준급 영문소설들이 한인문단의 명맥을 유지해 왔었을 정도이다. 그만큼 미주의 한글문단은 1970년대까지도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런 미주 한인문단에 전례 없이 한글문학의 번창기를 이룬 것은 앞에서 언급한 바처럼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이다. 역시 미국의 새 이민법이 개정된 이후인 1970년대 들어 대폭적인 미주로의 이민 대열에 한국의 중견전후 문인들이 다수 합류해서 생활의 터전을 잡았던 때문이다. 최태응, 박남수, 고원, 한무학, 주평, 이철범, 김용팔, 김선현, 김송현, 김호길, 마종기, 최연홍, 송상옥, 이언호, 전달문, 박상륭, 조윤호, 이세방, 이계향, 김송희, 박시정, 곽상희 , 최정자 등. 이들 문인들은 그 전후에 미주에 있으면서 서울문단에 등단절차를 밟거나 현지에서 신인상으로 데뷔하여 참여한 후배 문인들과 더불어 각 지역에 문인단체를 결성함과 동시에 여러 문예지를 발간하여 한글문학을 활성화하였다. 여기에 새로 두각을 나타낸 김난영, 노라옥자 켈러, 차학경, 이창래, 캐시송 , 이혜리 등의 한인 1.5세대 내지 2,3세대들이 현지어 문단에 합세하여 미주 한인문학이 성과를 높이며 폭넓게 구축되었다.
위와 같은 고려인 문단의 전강후약(前强後弱) 추세와 조선족 문단의 보합세에 비하면 바야흐로 미주의 한인문단은 전약후강(前弱後强) 현상을 이루고 있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욱 지속될 터이므로 점차로 미주의 한인문단이 고려인 문단이나 조선족 문단을 여러 면에서 추월하여 새로운 국제 한인문학을 이끌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직접, 간접으로 검열을 받고 으레 당이나 정부로부터 선별적인 보조금으로 겨우 작품집 한 권쯤을 출간하던 정도의 어려움을 겪기 마련인 고려인 문단이나 조선족 문단 경우와는 차별성이 있다. 이렇게 경제적인 여건 면에서도 대개는 자비로써 스스로 작품집을 마음대로 출판할 수 있는 여건을 누림은 미주문단인의 행운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미주 한인문단 구성원 여러분은 스스로 이런 대세로 찾아든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적극적으로 활용해 나가야 할 것이다.
3) 모국문단에의 의존과 탈피
ㅡ미주를 새로운 한인문학 중심지로 가꾸자
한반도에서 본디 경제적인 동기와 정치적인 망명 등으로 변강월경을 해서 정착했던 사회주의권의 고려인문단과 조선족 문단이 처음에는 문화의 원천 면에서 본국(京城-서울)의 문단에 기댄 채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기초적인 문단 정보나 문장 기법수련은 물론 주제면의 고향의식과 식민지치하의 국권을 회복하려는 독립활동 및 일련의 조상들 문화 지키기 의식 등도 이에 포함된다. 그만큼 옛 노령이던 연해주 해삼위 일대와 만주 땅 용정지방 일대의 한글문단은 한반도 문학의 한 지류였다. 그러면서도 일제 강점기 무렵에는 지류였던 그곳에서 생활하던 문학도들이 광복 후에는 한반도에 돌아와서 오히려 한국의 중심문단에 적잖은 기여를 해왔음이 사실이다. 남한 측 경우만 하더라도 서울 문단에서 활동하는 문인들 태반이 청소년기에 식민지의 고뇌가 서려 있는 압록강, 두만강 건너의 이국 체험을 활용해서 역사의식의 각인과 제재의 확대를 꾀해 왔던 것이다. 특히 빈번했던 일련의 만주 체험은 안수길의 『북간도』, 김성종의 『여명의 눈동자』밖에 김광주, 박영준, 박화성의 작품 등에 그 배경으로 많이 활용되어 왔다. 이런 보기들은 앞의 3장 가운데 중국지역 항목에서도 논술한 바처럼 전후세대에까지 폭넓게 이어져 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그들 월경민들이 중국이나 소련 통치를 받으면서는 오히려 영향주고 받기의 위치가 뒤바뀌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제2차 대전 직후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문인들이 평양에 파견되어 북한문단에 소비에트 문학을 전수시켰던 것이다. 이전에는 한반도 문단의 미미한 하나의 지류로 고단하게 커오던 고려인 문단이 조국 광복 이후에 국제 정세의 바람을 타고 큰 변혁을 가져온 현상이다. 그 결과로써 이념화된 나머지 특정지도자나 사회주의 체제를 찬양한 송가문학(頌歌文學)과 목적문학으로 굳어진 북한문학이 남한 문학과 상치된 가운데 민족문학의 이질화를 심화시킨 편이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고려인문단이나 조선족문단에 비해서 실로 이민의 역사가 뒤지지 않는 미주문단은 아직도 분단본국인 서울문단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이다. 미주의 여러 지역 문인단체에서 간행하는 문예지들 출판을 서울에 위탁해 왔으며 문단으로의 데뷔 루트 역시 서울 위주로 행해왔다. 문예적인 기법이나 주제선택 및 문장 면에서는 물론이요 심지어는 문인단체 선거전마저 미주문학은 거의 서울 아류적 요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점차 미주문단이 늘상 붙박이처럼 되어 있던 서울의존성을 벗어나서 서울 문단과의 긴밀성은 유지하되 보다 차별성 있고 특성화된 이주문학적인 미주문단을 가꾸어 나감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이런 면에서는 필자도 다음 같은 평론가의 견해에 동조하는 편이다. 1930년대 무렵에 미국문단에 접근하기 시작한 미주한인문학은 1970년대 이후 지난 세기말까지 기성의 서울 문인들 합류로 활력이 넘쳤지만 아무래도 아직까지도 서울문단의 방계적 연장에 그쳐 있었으므로 앞으로는 새로운 발전계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새천년의 시대를 맞이하여 미주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문인들의 의식구조가 종래의 모국지향적인 콤플렉스에서 탈피하여 ‘미주한인문학’이 자생할 수 있다는 자의식에서부터 출발한다.
이제는 거의 실시간 대일 정도로 지구촌 곳곳이 일일생활권인 만큼 미주 한인문단이 퇴영적인 재래의 모국의존성에서 탈피하여 거듭나야할 것이다. 그야말로 문화의 세기 구현을 위하여 미주 한인문학은 더욱 민족적 정체성을 지닌 채 보다 첨예하게 열린 세계 문학 진입을 위해서라도 서울중심의 모국 문단을 극복하여 앞서나가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어쩌면 해외 유학한다는 자세로 미주사회에서의 이중 언어적인 요소도 오히려 모국어와 현지어를 상보적(相補的)으로 적극 활용할 일이다. 다분히 아마추어적인 미주한인 문학의 발상이나 제재부터 경쟁력 있는 수준으로 심화시켜서 국내외로 상품화시켜나가는 방안을 스스로 모색해 가야 마땅하다. 좋은 작품을 열심히 빚어내다보면 머지않아 미국에서도 서울의 청탁원고로 바쁜 전업 작가시대도 맞이할 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일찍이 영국에서 매이 플라워호 배를 타고 낯선 대륙에 닻을 내린 이민자들이 오히려 새 미국을 건설하여 주객을 뒤집을 만큼 세계를 이끌고 있는 사실도 참고가 될 수 있다. 이제 미주 한인문단도 필요한 만큼 현지에서 한글과 영문출판사를 손수 경영하면서 보다 알찬 작가를 자생적(自生的)으로 배출해 내고 분국의 문학 지망생들도 등단시키는 등 풍토를 조성해 갈 차례이다. 물론 생활 현장에서 뛰어야 할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그런 미온적인 대응으로서는 늘상 아마추어의 문단 벽에 갇히게 마련이다. 용감한 자에게는 복이 따를지니 대륙에 온 개척자의 자세로 본격적인 창작의 길에 임하다보면 점차 새로운 문학의 열풍을 일으켜 메마른 한반도에 싱그러운 문학의 단비를 내리는 미주발 (美洲發) 한류(韓流)의 주인공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쯤은 미주 한인문단이 전후 소련의 지시에 따라 수동적으로 북한 측에 소비에트 문학을 전수했던 예와는 다르게 미주 한인문단이 보다 능동적으로 나서서 새로운 문학의 과제 개척에 임해야 할 계제라고 여겨진다. 따라서 지금까지 성장기반을 마련해온 미주한인문단은 앞으로 스스로 거듭나서 구미의 새로운 문예 흐름과 한국의 전통성을 아우른 통일시대 한겨레문학의 새 기수로서 열린 세계문학 광장으로 이끄는 국제한인문학의 선도자 역을 맡 을 것으로 기대된다.
4) 나머지 상이한 특성들 이 부분도 다른 활자처럼 통일해 주세요
ㅡ 기독교 영향, 아마추어 성향, 문단불화 현상
그동안 눈여겨본 바에 의하면 미주문단은 본국이나 여타 지역의 한글문단에 비해서 아무래도 특이한 몇 가지 성격들이 드러나고 있다고 파악된다. 어쩌면 조심스러운 지적이겠으나 사심이 없는 한국문학도의 처지에서 밝혀두는 것도 참고해둘만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다음의 세 가지로 거론할 수 있다.
우선 미주문단은 여러 문학적 모임이나 문예동인지들에서 다분히 기독교계의 긍정적인 영향 하에서 이루어진바 많다는 점이다. 낯선 미국생활에서 다름 아닌 교회가 한인들의 만남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정보소통 및 겨레의 공동체적 성격에 말미암은바 자연스런 소산물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문인단체가 형성되기 시작하던 80년대 초엽부터 서부의 미주 크리스찬문인협회를 비롯해서 미주 한국기독교문인협회와 90년대에 발족된 동부의 미주 크리스찬문학가협회 등의 조직 활동과 전체문단에서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그들의 기관문예지를 통한 문단활동은 적지 않은 것이다. 적어도 이런 종교 성향의 문학 써클은 여타 지역의 한인문단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 요소이다. 다만 아직 소박해서 선교적인 내용에 치우치지는 않았더라도 본래의 문학지 성격에 부합될 만큼 보다 진지한 문학성을 지녀나가 진정으로 미주 한글문학 발전에 좋은 역할을 해나가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미주문단의 문학성을 들자면 특정한 몇 분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아마추어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편이라고 여겨진다는 점이다. 그야 물론 문화나 언어 및 사회여건이 판이한 미국 사회의 현실 환경에 적응하며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제약이 큰 때문이기도 해서일 터이다. 그런데다 일부의 현지 신인 배출과정에 미쳐 충분한 문장 수련과 엄격한 검증을 거치지 못하고 문인을 졸속으로 등단시키는 폐단이 따르게 마련인 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더러는 기본적인 문예 문장이 다듬어지지 않은 채 밀도감 있는 묘사보다는 안이한 서술로 대하는 글쓰기들이 원인일 만큼 아쉬운 면이 자주 발견되고 있다. 그 구성이나 상징성 및 억지로 낯설게 하기식을 시도하는 경우들도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아직 미주에서는 한글 독자층이 적은 나머지 문예지는 물론이요 작품집마저 상품으로 팔리기보다는 증정하기 일쑤인지라 절실한 작가적 동기를 부여받지 못한 이유도 아마추어성을 조장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미주 한국일보에서도 금년부터 청탁한 문학작품에 소정의 원고료를 책정해서 지불한다니 점차 소박한 아마추어 수준은 벗어날 것이 기대된다.
끝으로 미주 한인문단에서 아쉬운 바는 문인단체간이나 동인 또는 문인 상호간에 서로 경원하면서 비방하거나 외면하는 문단의 불화 현상이란 점이다. 이런 문제야 말로 서울을 비롯한 본국문단 풍토에도 없지 않지만 미주 현지의 한글문단은 그보다 더 심한 폐단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일은 필자 역시 지난여름에 LA에서 손수 절실하게 겪은 바 있다. 필자 나름으로는 모처럼 미주 서부의 여러 문학단체가 공동 주최하는 20회 가까운 정례모임에 참가한 기회에 현지 문단의 귀중한 문인 몇 분을 직접 만나서 근황을 살피고 작품자료를 구해보려던 터였다. 조사한 바로는 그분들이 80년대를 전후해서 여러 문학 동아리를 지도하며 미주문단을 추스르고 각종 문예지도 간행하게 하는 동시에 창작 면 등에서 한글문단을 크게 활성화한 장본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래 전부터 서부에서 활약하고 있는 고원 시인, 송상옥 작가, 전달문 시인이 주된 대상이었지만 정작 두 사람은 면회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들은 서로 다른 문학제나 출판기념회 등의 행사를 외면할뿐더러 제명까지 할 정도로 배타적인 감정을 두고 있다는 실정을 알고서였다. 바라건대 앞으로는 미주의 한인문단 회원들이 멀리 이국땅에서 고생하며 산다는 동병상련의 처지에서 서로 더 양보하며 너그럽게 포용해서 화합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5. 남은 과제와 전망
논자는 윗글에서 한국현대문학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답사, 연구하며 생각해온 한반도 밖의 여러 지역 한인문학의 중요성과 그 현황을 대비하면서 미주문학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런 접근 노력은 곧 미주한인문학의 방향모색은 물론이요 한국문학의 거듭난 발전과 직결되는 당면과제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미주를 포함한 세계 주요지역의 한인문학은 각 문화 주체가 다문화적인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름대로 민족적인 정체성을 추스르는 문학적 과제로도 연결되는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디아스포라로 지칭하듯 모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이민족 틈에 섞여서 생활하는 한인들은 말 그대로 소수민족 출신의 경계인(marginal men)이란 불안의식 속에서 뼈저린 소외감과 향수에 젖게 마련이다. 그런 이방적 삶의 실상이나 절실한 감정들을 속속들이 표출해낸 작품들은 더 소중한 민족문학의 자산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새로 쓸 우리 문학사는 모름지기 한반도의 남북문학을 주로 삼되 나라 밖의 여러 지역에서 형성된 한인들의 한글작품과 현지어 작품까지를 아울러서 진정 올바르고 입체적인 한겨레 통일문학사로 정립되어야 마땅하다. 그런 면에서 이번 논의는 그 기초적인 설계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마땅히 거듭날 만큼 새로운 세기에 부응하는 문학관과 다문화 세계로 열린 그야말로 바람직한 한국 민족문학의 정립 작업에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다. 이글은 나름대로 위와 같은 동참의식에서 개괄해본 노력의 일환으로 행해졌다. 이민 100년사를 지낸 미주 한인문학은 모름지기 한반도 밖 한글문단과 현지어 문단 양면에서 새롭게 세계 한인문학을 선도하는 역할을 맡아야 할 것으로 기대된다. 구소련이나 중국, 일본 지역들과는 대조적으로 이민 인구가 증가 일로에 있는 이 지역의 한인문학 발전 가능성은 충분하다. 지정학적으로 미주가 중남미나 캐나다 및 호주 등과 가까워서 만이 아니다. 미주지역은 무엇보다 상대적으로 대륙에 인접한 예의 중국 조선족 문학과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의 경직성이나 영세성 보다는 훨씬 자유롭고 유연성 등으로 전향적으로 발전할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이다.
더구나 한반도에 인접한 재일본(在日本) 동포 문인들이 모국어를 경원한 채 일본어 위주로 창작하는 경우를 감안하면 미주 현지어를 통한 주류문단 진입과 한글문학의 활성화는 그만큼 대견하며 당당한 바 있다. 한글과 영어를 통한 이중언어(二重言語)로써 미국 주류사회에 진입하는 세계 공통어를 일상화하는 미주에서는 오히려 선진 구미(歐美)의 문화를 선별적으로 수용하기 수월하고 전통의식과 변혁의 면에서도 다문화사회의 틈새 공략에 갑절 유리한 조건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미주의 한인문단은 이런 여건의 특장점들을 활용하여 본국문단의 새로운 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역시 다문화, 다민족 속의 정보화 사회인 21세기는 이전처럼 군사침략이나 경제 지배보다는 국제적으로 문화전략을 통한 무한 경쟁이 요구되고 있다. 미주한인 문학인들은 이런 시대적 여건 속에서 스스로 세계 어느 민족보다 우수하고 유능한 자질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 미주의 이민 1세대와 1.5세대, 또는 2, 3세대가 각기 모국어나 현지 영어를 상호보완적으로 활용하며 정체성 있고 특성화된 창작 활동을 지속한다면 여느 본국 문인보다 노벨 문학상마저 이곳 한인 문단에서 먼저 수상할 가능성이 많다. 우리는 아무래도 한반도를 모기지로 삼되 동북아의 연변지역이나 중아아시아의 알마타에 형성된 한글 문단의 메카와는 또 다른 재외(在外)한인 문학의 센터를 이곳 미주 현지에 가꿀만하다. 새로 이루어진 그 센터에서는 원활하게 세계 속의 한인문학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수시로 세계 각 지역 한인문학 정례 세미나와 정보교환, 문예지를 통한 협력을 하며 보다 효율적으로 한민족의 통일문학을 발전시켜 나갔으면 한다.
논자는 모처럼 미주문단 여러분과 만나서 대화하는 자리이므로 보다 진지하게 미주문단의 현황과 상관된 특성적 문제점들을 여타 지역의 한인문학 특질들과 비교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다만 논자로서 밝혀서 전제해 둘 바로서는 사회주의권과 한반도에 인접한 한인문학에 대해서는 여러 번 답사, 연구한 바 있는 반면에 정작 미주의 그것에 대해서는 다소 생소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오진하거나 어림으로 판단해 버릴 위험성이 있는 대신에 오히려 멀리서 선입견 없이 올바로 파악할 소지도 많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장단점들을 함께 의식하면서 논자 나름대로 평소 생각하고 오던 것에다 당면한 세미나 준비 중에 얻은 정보들과 실제로 현지에서 구한 자료들을 입체적으로 활용하여 몇 가지 진솔하게 말해두고 싶다.
1) 자유로운 자기구현의 문화 광장
ㅡ향수와 정체성 찾기 욕구를 문학으로 꽃피우자
미주 한인문단은 나름대로 흑인폭동 같은 이질문화와의 갈등이나 충격도 없지 않겠으나 비교적 자유로운 여건에서 이민자의 꿈을 구현할 수 있는 자기 구현의 광장이다. 적어도 미국에는 새로운 인민의 천국을 찾아 러시아 땅으로 망명했던 조명희 작가가 척박한 그 땅에 한국문학의 씨를 뿌린 10년 만에 그곳 작가의 집에서 인민의 원수라는 죄목으로 희생당하는. 따위의 위험성은 없다 또한 정든 연해주를 두고 중앙아시아 황무지에 강제 이주된 다음해에 그 원동(遠東) 땅이 그리워 쓴 글로 인해 20여년 필화(筆禍)를 겪은 고려인 시인의 고초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특히 구소련의 고려인들은 공민증마저 받지 못해서 거주 이전까지도 제한 받았을 뿐더러 심지어는 소련을 조국으로 정한 나머지 ‘고국’이나 ‘모국’이란 어휘마저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철저하게 검열의 규제를 받았던 터였다. 그 결과 레닌과 스탈린 및 혁명찬양에 치우친 송가를 거듭해오게 마련이던 그곳 고려인들의 처지는 재미 한인문학도들에게 타산지석이 되고 남는다.
그리고 강릉을 떠나 연해주-동경-중국 동북지방을 전전하다가 8.15 조국광복을 일주일 앞두고 용정의 집으로 향하던 길에 일제의 앞잡이들 손에 의해 목숨을 잃은 심연수(沈連洙) 시인 역시 예외가 아니다. 더욱이 예의 중국 문화 대혁명 무렵 그 거센 소용돌이에 빠져들어서 숱하게 옥고를 치른 조선족 문인들의 수난 또한 참고가 된다. 그런 만큼 미주문인들은 자유로운 표현과 발표 지면의 좋은 조건에 부응할 만큼 좋은 글을 치열하게 많이 빚어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생활여건 속에서 공산권에 월경해 사는 동포들의 기구한 운명과 절실함에 비해 미주 한인들은 자유롭게 열린 평등과 기회의 광장을 스스로 선택하여 자기 꿈에 도전하는 보람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만큼 미주 한인들의 작품에 나타난 고독이며 향수 내지 일시적인 좌절은 고려인이나 조선족의 그것에 견주면, 이질적인 기존의 서양사회에 진입하는 통과의례일 정도로 낭만적이고 밝은 빛을 드러낸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사회주의 진영의 한인 작품들에는 우울과 체념의 그림자가 투박하게 드러난 대신 자유진영에 사는 한인 작품들에는 그런 어둠과 장막을 걷어낼 기민성과 슬기 넘치는 유연성이 깃들어 있음을 만나곤 한다.
연이나 띄워보세, 저 맑고 푸른 하늘에
바람결은 지금 솔솔 솔솔 이만리
창공도 푸르러 천만리 (2개 연 생략)
올라서 올라서
북(北)쪽에 기우뚱 허리 굽혀 인사요
또한 남쪽에 기우뚱 고개 숙여 인사 하네
줄은 늘어진 배를 팽팽히 조여
지금 태산도 아스라이 아래라
그러한 기슭에 금(禁) 그어 놓은
기나긴 사연도 아래요 (4줄 생략)
칼날처럼 바람 가르는 연 줄 타고
푸르륵 푸르륵 음향쳐 오는
저 조선의 창호지 소리는
진정 누구의 흐느낌이련고
연은, 지금 올라 올라서
하늘에 천만리 (3개 연 생략)
그렇다, 그래
주인이면서도
머슴 되어가는 사실(事實)에 관하여
극히 무디려고만 하는
이 조선반도의 마비된 하반신(下半身)에
우리의 맑은 피 휘돌아
다시 제 걸음 걷게
어서어서 연줄을 퉁퉁 퉁퉁 퉁기세 (한 연 생략)
한무학의 시「연을 띄우는 그 사연은」의 보기에서처럼 고국을 떠나 이국에 나가 살면서 조국을 그리워하며 지내는 마음이 궁하지 않게 연을 띠면서 생각하는 것으로 표출하고 있다. 당국의 검열 등으로 으레 국가나 민족을 다루지 못하고 자신의 가난하고 험한 삶의 역정을 토로하게 마련인 고려인 문단이나 조선족 문단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사회주의 지역에서는 연이나 조선의 창호지 말고는 ‘주인이면서도 / 머슴 되어가는…’ 등속의 표현을 하기 어려웠다. 고려인과 조선족의 살림 터수나 표현의 여건이 그만큼 자유롭지 못해서인 것이다.
2) 전약후강의 문단 추세
ㅡ미주 한인문학은 상대적으로 발전성 많아
세계 각 지역의 한인문학을 문단사적으로 살펴보면, 일찍이 한반도에 인접한 두만강 건너 연해주로부터 먼저 키워온 구소련 고려인 문학에 비해 미주의 한인문학은 대조적이다. 그것은 미주문단이 공간적으로 두만강 너머 사회주의권 경우와 달리 태평양 건너 먼 자유주의권 지역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뿐만이 아니다. 살펴보면, 사실 연해주에서 기초를 마련한 고려인 문단은 1930년대 후반의 강제 이주 이후에도 척박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벡키스탄 등지에서 한글신문 《레닌기치》등을 통해서 나름대로 왕성한 창작 욕구를 보여 왔다. 하지만 알마타를 중심으로 한글문학의 메카를 이루었던 고려인 문단은 연해주에서 이주해온 1세대들의 노쇠에 이어 구소련의 해체 및 한글을 읽을 만한 독자층의 격감 등으로 인해서 현재는 급속히 약화되어 소진된 상태에 처해 있다.
그런가 하면, 미주지역의 한인문단은 초기의 경우, 일부 문학 애호가 수준의 필자들에 의해서 한글신문《新韓民報》등을 통한 습작이 행해졌을 뿐이다. 그러다가 1930년대에 들어서야 강용흘이 한국적인 소재를 영어로 쓴 『초당』(1931)등의 작품으로 미국문단에 그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그 후로는 한동안의 공간을 지나서 195,60년대에 김용익의「뒤웅박」(1956), 작품집 『행복의 계절』(1960)과 김은국의『순교자』(1964), 등의 수준급 영문소설들이 한인문단의 명맥을 유지해 왔었을 정도이다. 그만큼 미주의 한글문단은 1970년대까지도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런 미주 한인문단에 전례 없이 한글문학의 번창기를 이룬 것은 앞에서 언급한 바처럼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이다. 역시 미국의 새 이민법이 개정된 이후인 1970년대 들어 대폭적인 미주로의 이민 대열에 한국의 중견전후 문인들이 다수 합류해서 생활의 터전을 잡았던 때문이다. 최태응, 박남수, 고원, 한무학, 주평, 이철범, 김용팔, 김선현, 김송현, 김호길, 마종기, 최연홍, 송상옥, 이언호, 전달문, 박상륭, 조윤호, 이세방, 이계향, 김송희, 박시정, 곽상희 , 최정자 등. 이들 문인들은 그 전후에 미주에 있으면서 서울문단에 등단절차를 밟거나 현지에서 신인상으로 데뷔하여 참여한 후배 문인들과 더불어 각 지역에 문인단체를 결성함과 동시에 여러 문예지를 발간하여 한글문학을 활성화하였다. 여기에 새로 두각을 나타낸 김난영, 노라옥자 켈러, 차학경, 이창래, 캐시송 , 이혜리 등의 한인 1.5세대 내지 2,3세대들이 현지어 문단에 합세하여 미주 한인문학이 성과를 높이며 폭넓게 구축되었다.
위와 같은 고려인 문단의 전강후약(前强後弱) 추세와 조선족 문단의 보합세에 비하면 바야흐로 미주의 한인문단은 전약후강(前弱後强) 현상을 이루고 있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욱 지속될 터이므로 점차로 미주의 한인문단이 고려인 문단이나 조선족 문단을 여러 면에서 추월하여 새로운 국제 한인문학을 이끌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직접, 간접으로 검열을 받고 으레 당이나 정부로부터 선별적인 보조금으로 겨우 작품집 한 권쯤을 출간하던 정도의 어려움을 겪기 마련인 고려인 문단이나 조선족 문단 경우와는 차별성이 있다. 이렇게 경제적인 여건 면에서도 대개는 자비로써 스스로 작품집을 마음대로 출판할 수 있는 여건을 누림은 미주문단인의 행운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미주 한인문단 구성원 여러분은 스스로 이런 대세로 찾아든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적극적으로 활용해 나가야 할 것이다.
3) 모국문단에의 의존과 탈피
ㅡ미주를 새로운 한인문학 중심지로 가꾸자
한반도에서 본디 경제적인 동기와 정치적인 망명 등으로 변강월경을 해서 정착했던 사회주의권의 고려인문단과 조선족 문단이 처음에는 문화의 원천 면에서 본국(京城-서울)의 문단에 기댄 채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기초적인 문단 정보나 문장 기법수련은 물론 주제면의 고향의식과 식민지치하의 국권을 회복하려는 독립활동 및 일련의 조상들 문화 지키기 의식 등도 이에 포함된다. 그만큼 옛 노령이던 연해주 해삼위 일대와 만주 땅 용정지방 일대의 한글문단은 한반도 문학의 한 지류였다. 그러면서도 일제 강점기 무렵에는 지류였던 그곳에서 생활하던 문학도들이 광복 후에는 한반도에 돌아와서 오히려 한국의 중심문단에 적잖은 기여를 해왔음이 사실이다. 남한 측 경우만 하더라도 서울 문단에서 활동하는 문인들 태반이 청소년기에 식민지의 고뇌가 서려 있는 압록강, 두만강 건너의 이국 체험을 활용해서 역사의식의 각인과 제재의 확대를 꾀해 왔던 것이다. 특히 빈번했던 일련의 만주 체험은 안수길의 『북간도』, 김성종의 『여명의 눈동자』밖에 김광주, 박영준, 박화성의 작품 등에 그 배경으로 많이 활용되어 왔다. 이런 보기들은 앞의 3장 가운데 중국지역 항목에서도 논술한 바처럼 전후세대에까지 폭넓게 이어져 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그들 월경민들이 중국이나 소련 통치를 받으면서는 오히려 영향주고 받기의 위치가 뒤바뀌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제2차 대전 직후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문인들이 평양에 파견되어 북한문단에 소비에트 문학을 전수시켰던 것이다. 이전에는 한반도 문단의 미미한 하나의 지류로 고단하게 커오던 고려인 문단이 조국 광복 이후에 국제 정세의 바람을 타고 큰 변혁을 가져온 현상이다. 그 결과로써 이념화된 나머지 특정지도자나 사회주의 체제를 찬양한 송가문학(頌歌文學)과 목적문학으로 굳어진 북한문학이 남한 문학과 상치된 가운데 민족문학의 이질화를 심화시킨 편이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고려인문단이나 조선족문단에 비해서 실로 이민의 역사가 뒤지지 않는 미주문단은 아직도 분단본국인 서울문단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이다. 미주의 여러 지역 문인단체에서 간행하는 문예지들 출판을 서울에 위탁해 왔으며 문단으로의 데뷔 루트 역시 서울 위주로 행해왔다. 문예적인 기법이나 주제선택 및 문장 면에서는 물론이요 심지어는 문인단체 선거전마저 미주문학은 거의 서울 아류적 요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점차 미주문단이 늘상 붙박이처럼 되어 있던 서울의존성을 벗어나서 서울 문단과의 긴밀성은 유지하되 보다 차별성 있고 특성화된 이주문학적인 미주문단을 가꾸어 나감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이런 면에서는 필자도 다음 같은 평론가의 견해에 동조하는 편이다. 1930년대 무렵에 미국문단에 접근하기 시작한 미주한인문학은 1970년대 이후 지난 세기말까지 기성의 서울 문인들 합류로 활력이 넘쳤지만 아무래도 아직까지도 서울문단의 방계적 연장에 그쳐 있었으므로 앞으로는 새로운 발전계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새천년의 시대를 맞이하여 미주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문인들의 의식구조가 종래의 모국지향적인 콤플렉스에서 탈피하여 ‘미주한인문학’이 자생할 수 있다는 자의식에서부터 출발한다.
이제는 거의 실시간 대일 정도로 지구촌 곳곳이 일일생활권인 만큼 미주 한인문단이 퇴영적인 재래의 모국의존성에서 탈피하여 거듭나야할 것이다. 그야말로 문화의 세기 구현을 위하여 미주 한인문학은 더욱 민족적 정체성을 지닌 채 보다 첨예하게 열린 세계 문학 진입을 위해서라도 서울중심의 모국 문단을 극복하여 앞서나가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어쩌면 해외 유학한다는 자세로 미주사회에서의 이중 언어적인 요소도 오히려 모국어와 현지어를 상보적(相補的)으로 적극 활용할 일이다. 다분히 아마추어적인 미주한인 문학의 발상이나 제재부터 경쟁력 있는 수준으로 심화시켜서 국내외로 상품화시켜나가는 방안을 스스로 모색해 가야 마땅하다. 좋은 작품을 열심히 빚어내다보면 머지않아 미국에서도 서울의 청탁원고로 바쁜 전업 작가시대도 맞이할 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일찍이 영국에서 매이 플라워호 배를 타고 낯선 대륙에 닻을 내린 이민자들이 오히려 새 미국을 건설하여 주객을 뒤집을 만큼 세계를 이끌고 있는 사실도 참고가 될 수 있다. 이제 미주 한인문단도 필요한 만큼 현지에서 한글과 영문출판사를 손수 경영하면서 보다 알찬 작가를 자생적(自生的)으로 배출해 내고 분국의 문학 지망생들도 등단시키는 등 풍토를 조성해 갈 차례이다. 물론 생활 현장에서 뛰어야 할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그런 미온적인 대응으로서는 늘상 아마추어의 문단 벽에 갇히게 마련이다. 용감한 자에게는 복이 따를지니 대륙에 온 개척자의 자세로 본격적인 창작의 길에 임하다보면 점차 새로운 문학의 열풍을 일으켜 메마른 한반도에 싱그러운 문학의 단비를 내리는 미주발 (美洲發) 한류(韓流)의 주인공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쯤은 미주 한인문단이 전후 소련의 지시에 따라 수동적으로 북한 측에 소비에트 문학을 전수했던 예와는 다르게 미주 한인문단이 보다 능동적으로 나서서 새로운 문학의 과제 개척에 임해야 할 계제라고 여겨진다. 따라서 지금까지 성장기반을 마련해온 미주한인문단은 앞으로 스스로 거듭나서 구미의 새로운 문예 흐름과 한국의 전통성을 아우른 통일시대 한겨레문학의 새 기수로서 열린 세계문학 광장으로 이끄는 국제한인문학의 선도자 역을 맡 을 것으로 기대된다.
4) 나머지 상이한 특성들 이 부분도 다른 활자처럼 통일해 주세요
ㅡ 기독교 영향, 아마추어 성향, 문단불화 현상
그동안 눈여겨본 바에 의하면 미주문단은 본국이나 여타 지역의 한글문단에 비해서 아무래도 특이한 몇 가지 성격들이 드러나고 있다고 파악된다. 어쩌면 조심스러운 지적이겠으나 사심이 없는 한국문학도의 처지에서 밝혀두는 것도 참고해둘만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다음의 세 가지로 거론할 수 있다.
우선 미주문단은 여러 문학적 모임이나 문예동인지들에서 다분히 기독교계의 긍정적인 영향 하에서 이루어진바 많다는 점이다. 낯선 미국생활에서 다름 아닌 교회가 한인들의 만남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정보소통 및 겨레의 공동체적 성격에 말미암은바 자연스런 소산물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문인단체가 형성되기 시작하던 80년대 초엽부터 서부의 미주 크리스찬문인협회를 비롯해서 미주 한국기독교문인협회와 90년대에 발족된 동부의 미주 크리스찬문학가협회 등의 조직 활동과 전체문단에서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그들의 기관문예지를 통한 문단활동은 적지 않은 것이다. 적어도 이런 종교 성향의 문학 써클은 여타 지역의 한인문단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 요소이다. 다만 아직 소박해서 선교적인 내용에 치우치지는 않았더라도 본래의 문학지 성격에 부합될 만큼 보다 진지한 문학성을 지녀나가 진정으로 미주 한글문학 발전에 좋은 역할을 해나가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미주문단의 문학성을 들자면 특정한 몇 분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아마추어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편이라고 여겨진다는 점이다. 그야 물론 문화나 언어 및 사회여건이 판이한 미국 사회의 현실 환경에 적응하며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제약이 큰 때문이기도 해서일 터이다. 그런데다 일부의 현지 신인 배출과정에 미쳐 충분한 문장 수련과 엄격한 검증을 거치지 못하고 문인을 졸속으로 등단시키는 폐단이 따르게 마련인 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더러는 기본적인 문예 문장이 다듬어지지 않은 채 밀도감 있는 묘사보다는 안이한 서술로 대하는 글쓰기들이 원인일 만큼 아쉬운 면이 자주 발견되고 있다. 그 구성이나 상징성 및 억지로 낯설게 하기식을 시도하는 경우들도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아직 미주에서는 한글 독자층이 적은 나머지 문예지는 물론이요 작품집마저 상품으로 팔리기보다는 증정하기 일쑤인지라 절실한 작가적 동기를 부여받지 못한 이유도 아마추어성을 조장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미주 한국일보에서도 금년부터 청탁한 문학작품에 소정의 원고료를 책정해서 지불한다니 점차 소박한 아마추어 수준은 벗어날 것이 기대된다.
끝으로 미주 한인문단에서 아쉬운 바는 문인단체간이나 동인 또는 문인 상호간에 서로 경원하면서 비방하거나 외면하는 문단의 불화 현상이란 점이다. 이런 문제야 말로 서울을 비롯한 본국문단 풍토에도 없지 않지만 미주 현지의 한글문단은 그보다 더 심한 폐단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일은 필자 역시 지난여름에 LA에서 손수 절실하게 겪은 바 있다. 필자 나름으로는 모처럼 미주 서부의 여러 문학단체가 공동 주최하는 20회 가까운 정례모임에 참가한 기회에 현지 문단의 귀중한 문인 몇 분을 직접 만나서 근황을 살피고 작품자료를 구해보려던 터였다. 조사한 바로는 그분들이 80년대를 전후해서 여러 문학 동아리를 지도하며 미주문단을 추스르고 각종 문예지도 간행하게 하는 동시에 창작 면 등에서 한글문단을 크게 활성화한 장본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래 전부터 서부에서 활약하고 있는 고원 시인, 송상옥 작가, 전달문 시인이 주된 대상이었지만 정작 두 사람은 면회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들은 서로 다른 문학제나 출판기념회 등의 행사를 외면할뿐더러 제명까지 할 정도로 배타적인 감정을 두고 있다는 실정을 알고서였다. 바라건대 앞으로는 미주의 한인문단 회원들이 멀리 이국땅에서 고생하며 산다는 동병상련의 처지에서 서로 더 양보하며 너그럽게 포용해서 화합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5. 남은 과제와 전망
논자는 윗글에서 한국현대문학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답사, 연구하며 생각해온 한반도 밖의 여러 지역 한인문학의 중요성과 그 현황을 대비하면서 미주문학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런 접근 노력은 곧 미주한인문학의 방향모색은 물론이요 한국문학의 거듭난 발전과 직결되는 당면과제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미주를 포함한 세계 주요지역의 한인문학은 각 문화 주체가 다문화적인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름대로 민족적인 정체성을 추스르는 문학적 과제로도 연결되는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디아스포라로 지칭하듯 모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이민족 틈에 섞여서 생활하는 한인들은 말 그대로 소수민족 출신의 경계인(marginal men)이란 불안의식 속에서 뼈저린 소외감과 향수에 젖게 마련이다. 그런 이방적 삶의 실상이나 절실한 감정들을 속속들이 표출해낸 작품들은 더 소중한 민족문학의 자산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새로 쓸 우리 문학사는 모름지기 한반도의 남북문학을 주로 삼되 나라 밖의 여러 지역에서 형성된 한인들의 한글작품과 현지어 작품까지를 아울러서 진정 올바르고 입체적인 한겨레 통일문학사로 정립되어야 마땅하다. 그런 면에서 이번 논의는 그 기초적인 설계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마땅히 거듭날 만큼 새로운 세기에 부응하는 문학관과 다문화 세계로 열린 그야말로 바람직한 한국 민족문학의 정립 작업에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다. 이글은 나름대로 위와 같은 동참의식에서 개괄해본 노력의 일환으로 행해졌다. 이민 100년사를 지낸 미주 한인문학은 모름지기 한반도 밖 한글문단과 현지어 문단 양면에서 새롭게 세계 한인문학을 선도하는 역할을 맡아야 할 것으로 기대된다. 구소련이나 중국, 일본 지역들과는 대조적으로 이민 인구가 증가 일로에 있는 이 지역의 한인문학 발전 가능성은 충분하다. 지정학적으로 미주가 중남미나 캐나다 및 호주 등과 가까워서 만이 아니다. 미주지역은 무엇보다 상대적으로 대륙에 인접한 예의 중국 조선족 문학과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의 경직성이나 영세성 보다는 훨씬 자유롭고 유연성 등으로 전향적으로 발전할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이다.
더구나 한반도에 인접한 재일본(在日本) 동포 문인들이 모국어를 경원한 채 일본어 위주로 창작하는 경우를 감안하면 미주 현지어를 통한 주류문단 진입과 한글문학의 활성화는 그만큼 대견하며 당당한 바 있다. 한글과 영어를 통한 이중언어(二重言語)로써 미국 주류사회에 진입하는 세계 공통어를 일상화하는 미주에서는 오히려 선진 구미(歐美)의 문화를 선별적으로 수용하기 수월하고 전통의식과 변혁의 면에서도 다문화사회의 틈새 공략에 갑절 유리한 조건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미주의 한인문단은 이런 여건의 특장점들을 활용하여 본국문단의 새로운 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역시 다문화, 다민족 속의 정보화 사회인 21세기는 이전처럼 군사침략이나 경제 지배보다는 국제적으로 문화전략을 통한 무한 경쟁이 요구되고 있다. 미주한인 문학인들은 이런 시대적 여건 속에서 스스로 세계 어느 민족보다 우수하고 유능한 자질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 미주의 이민 1세대와 1.5세대, 또는 2, 3세대가 각기 모국어나 현지 영어를 상호보완적으로 활용하며 정체성 있고 특성화된 창작 활동을 지속한다면 여느 본국 문인보다 노벨 문학상마저 이곳 한인 문단에서 먼저 수상할 가능성이 많다. 우리는 아무래도 한반도를 모기지로 삼되 동북아의 연변지역이나 중아아시아의 알마타에 형성된 한글 문단의 메카와는 또 다른 재외(在外)한인 문학의 센터를 이곳 미주 현지에 가꿀만하다. 새로 이루어진 그 센터에서는 원활하게 세계 속의 한인문학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수시로 세계 각 지역 한인문학 정례 세미나와 정보교환, 문예지를 통한 협력을 하며 보다 효율적으로 한민족의 통일문학을 발전시켜 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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