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주 한인문학의 위상과 과제 - 세계 한인문학 활동상과 연구 동향 : 이 명 재 (중앙대 명예교수,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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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갈릭 댓글 0건 조회 3,544회 작성일 12-02-19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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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계 한인문학 활동상과 연구 동향
모름지기 한반도의 한국문학을 주로 하되 부차적으로 나라밖에서 민족문학을 뒷받침하는 국외 한인문학은 우리문학의 소중한 실체이다. 사실 한국문학사에서 거의 도외시해왔던 국외 한인문학은 이제 본국 문학과 대응하는 문학 위성적인 실체로서 반영시켜야 마땅한 것이다. 다음의 실상들에서 드러나는 여러 동향과 특성들을 참고하여 우리문학을 보다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세계 여러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인문학은 특히 한글을 통한 한겨레 민족문학으로써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일찍이 지방어문학(地方語文學)을 주도한 한글작품은 헤르더(Herder)의 이론처럼 민족문학(National Literature)의 실체인 동시에 동시대의 괴테(Goethe)가 창안한 세계문학(World Literature)의 한 구성부분인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 밖의 세계 여러 지역에서 형성되고 있는 한인들의 작품들은 한겨레 통일문학사의 필수적인 재료로 활용하게 된다.
1) 주요 지역의 한인문단 활동상
구체적인 면에서 실지의 국제 한인문학은 실로 지구촌의 전역에 걸쳐서 이루어져 왔다. 우리는 이를 크게 다음 두 갈래로 나누어 살필 수 있다. 우선 역사적, 지정학적(地政學的)으로 북방의 대륙에 인접한 중국이나 러시아 등의 사회주의권과 그 후 점차적으로 왕래가 잦아진 현해탄이나 태평양 건너 일본, 미주, 호주에 걸친 자유주의권이 그것이다. 한반도 밖의 한인문학은 실제로 비교적 근세 이후에 들어서며 한반도에 접경해 있는 사회주의권 지역에서 먼저 형성되었다.
(1) 구소련지역의 고려인문단
한글로 이루어진 현대 한인문학을 주로해서 살펴보면 두만강 너머의 러시아 연해주에서 이루어진 고려인 문단부터 시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1920년대 중엽 이후 노령으로 망명한 작가 조명희(趙明熙)가 그곳 해삼위의 신한촌(新韓村)과 소왕령 근처 육성촌(六姓村) 등지에서 교편을 잡으며 우리 한글문학의 씨를 뿌렸던 것이다. 제자들은 1937년에 고국과 단절된 듯 멀리 떨어진 중앙아시아로 이주된 후 소련의 통제체제 속에서도 한글신문 《레닌기치》등을 통해서 꾸준하게 카자흐스탄 알마타 중심의 한글문단을 이루었다. 그리고 조국광복 후에는 고려인 문인 일부가 평양에 들어가 초창기 소비에트 문학을 키워냈었다. 그 고려인 문인들은 그러면서도 소련 붕괴 이전까지 그곳 알마타 등지에서 공동작품집『시월의 해빛』『해바라기』『꽃피는 땅』등과 개인 창작집을 10여권 한글 단행본으로 출판했다.
그들 고려인 문단은 모국체험의 유형에 따라 세 가지 부류로 구성되어 있다. 강태수, 김준, 연성용, 조기천, 태장춘 처럼 두만강 건너 연해주에서 살다가 1937년 겨울에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한 부류와 이정희 정장길 최영근1처럼 제2차 대전 이후 사할린에서 알마타 등지로 이주해간 부류가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한국 전쟁 이후 북한에서 선발된 유학생으로 모스크바 등에서 공부하던 중에 탈북하여 소연방 어느 지역 등에 정착한 3진(三眞) 문인이나 양원식 등의 부류이다.
따라서 일찍이 한반도로부터 낯선 땅을 유랑해온 디아스포러적인 속성을 지닌 이들 작품의 특성은 본디의 한국문학과는 상이한 면을 지니고 있다. (1) 고려인 문인들 작품에는 오랜 세월 동안 먼 이국으로 나와서 사는 데서 오는 자기 정체성 찾기 의식에서 고유한 자신의 언어를 지키려는 <모국어 사랑과 자기 정체성 찾기>성향이 짙다는 점이다.. (2) 또한 고국을 떠나 연해주나 중앙아시아로 떠돌아다니는 일상에서 오는 <방랑의식과 향수>가 작품 속에 배어 있다는 점이다. (3) 거기다가 인종이나 풍습이 상이한 데서 생기는 <문화갈등 속의 적응노력>이 곧잘 작품에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4) 끝으로 중요한 고려인문학 특성의 하나는 역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 통제 체제에 의해 <정론적인 송가성향>이 그 주제나 제재를 규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유진영과는 상이한 글쓰기에서의 이(4)항 제약점에 의해 고려인문단은 대체로 투박한 문장 표현 면에서나 설익은 상징 기법 내지 도식적인 이념 면 등에서 다분히 소박하고 습작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런 고려인의 한글문단도 그나마 1세대들의 쇠퇴와 모국어 독자층이 줄어듦과 동시에 위축일로에 있다. 그 대신에 근래 모국에서 사업이나 유학 등으로 현지에 터전을 닦고 있는 서울 문단 출신 일부가 고려인 한글문단의 새로운 변혁 세대로 보강되고 있는 현상이 참고가 된다. 그런가 하면 한편으로 한글문단 사정과는 다르게 이민 2, 3세대인 작가 김 아나톨리, 박 미하일, 시인 허로만 등이 나름대로의 러시아어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어서 대조됨을 드러내고 있다.
(2) 중국지역의 조선족문단
또한 한반도의 월경민으로 이루어진 중국 조선족의 한글문단도 소련 고려안의 그것 못지않게 민족문학의 꽃을 피우며 꾸준하게 이어져 왔다. 구한말 이후 한국 유민이 두만강과 압록강 건너 동북삼성(東北三省ㅡ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 가운데 간도지방에 정착하여 연길이나 용정의 조선족 밀집지역을 이루었다. 그리고 1930년대 무렵에는 한글 문학 동인지와 여러 작품집을 펴내서 한반도 밖 한글 문단의 메카인 연변 조선족 자치주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중국 조선족 문학은 “중국 소수 민족 문학의 하나이기에 물론 중국문학 범주에 속하기는 하지만 그의 연원과 발전과정, 특성 등, 모든 방면에서 자기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이들은 나름대로 두드러지게 민족 정체성 지키기나 이념적 송가 성향을 띠고 있다. 그 가운데 작가 김창걸, 강경애, 시인 리욱, 시인 윤동주 등이 많이 알려지고 시인 김성휘, 김철, 작가 김학철, 리근전, 극작가 황봉룡 등을 거쳐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민족수난과 이민의 역사가 속속들이 스며있는 용정이나 연길에 걸친 연변조선족 자치주 중심으로 왕성한 한글문학으로써 한반도 밖 한글문단의 살아있는 메카를 이루고 있는 중이다.
1930년대부터 옛 간도(間島-연변조선족 자치주)지방에서 생활을 하면서 창작하다가 광복이후 남북한문단에 합류한 사람들이 많음을 참고할 수 있다. 북한문단의 경우에는 시인 김조규, 김북원, 박팔양, 작가 김영팔, 현경준 등이 인접한 관계를 유지한다. 또한 남한문단에 편입된 문인 중에는 작가 염상섭, 안수길, 박영준, 박계주, 손소희, 윤금숙, 송지영, 그리고 시인 유치환, 김달진, 윤영춘 등을 비롯해서 젊은 세대층이 한국문단 전반에 끼친 영향력은 적지 않다. 적어도 직, 간접적으로 간도체험을 한 후대 문인들의 분포는 폭 넓게 퍼져 있다. 시인 김규동, 김수영, 김용호, 민영, 박의상 등과 작가 손창섭, 추식, 김용운, 황석영, 김성종 등이 그것이다.
이 지역은 지금까지《연변일보》《도라지》《천지》《연변문학》《문학과 예술》등의 문예지와 한글 신문 및 한국어 방송 등으로 한인문학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특수공간이다. 수많은 시집과 작품집 또는 『문학사료전집』 등이 시리즈로 출간됨과 동시에 서울 문인들도 자주 왕래하며 각종 문학세미나 등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조선족자치주에서는 요즘도 각종 신문사나 잡지사 또는 문학단체에서 주최하는 청소년 대상의 각종 글짓기 대회와 문학상 공모 및 기성 문인에 대한 시상 행사들이 빈번하게 이어지고 있다.
현재 중국 전역에 2백만 여 명의 조선족 인구와 그에 따른 한글 활용도를 감안하면 다음 같은 글도 조선족문학 이해에 좋은 참고가 된다.
중국조선족의 문학은 민족의 삶과 밀착되어 우리의 삶을 고무하여 왔고 우리의 문화전통을 꽃피우는 한편 한족을 위주로 한 기타 형제민족의 우수한 문화를 흡수하여 독특한 중국 특색의 조선족문학을 창조함으로써 민족의 생존과 번영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러므로 이 조선족문학은 중국문학 백화원의 한 떨기 꽃으로 되며 아울러 세계 조선어 문학권내에서의 독특한 자기의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3) 일본지역의 교포문단
한편 일본에서는 위 공산권 한글 문단과 대조적인 한인문학 성향을 보이고 있다. 극히 미미한 일부의 조총련계 한글 문학지를 제외한다면 대다수 문예지나 종합지를 비롯한 단행본과 신문지상에 한인작가의 한글작품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일본으로 귀화한 한인 작가들의 작품이 일본어로 유수의 지면에 일본 귀화인의 갈등과 소외감 등으로 한인의 뿌리 깊은 정체성 찾기 의식을 수준 높게 투영하여 이름 높은 상을 수상할 수준을 보인다. 이런 현상은 여느 남북 미주나 호주에서 형성된 한인문학과도 상이하게 일본의 한인계 문단의 특수성이다.
재일 교포(한인) 경우는, 사실 중국 조선족 자치주나 소련 연해주 지역보다 더 먼저, 자유롭게 드나들던 공간임에도 요즘 한인들의 한글문예지나 한글 작품집마저 출간되지 않고 있음은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일찍이 신문학 초창기인 1919년 초엽에는 한국최초의 종합문예지인 《창조》창간호를 다름 아닌 동경에서 간행했던 사실들을 감안하면 특이한 일이다. 그 후로는 일본에 『朝鮮口傳民謠集』등을 일본어로 번역 소개한 김소운 시인의 연재수필인『木槿通信』등도 마찬가지로 일어로 발표되었다.
그런가하면, 재일교포 작가들이 일본어 소설로 주목받는 성과는 계속된 편이다. 1940년에 제6회 아쿠다카와상(芥川賞) 후보작에 오른 김사량(金史良)의 『빛 속으로』에는 일본인과 조선인 부모사이에서 혼혈아로 태어난 인물들을 통해서 민족적 고뇌를 표출하고 장혁주의「餓鬼道」는 식민지 조선의 참상을 그린 작품으로 참고가 된다. 또한 1970년대에는 김석범의 장편『火山島』가 제주도의 4.3 항쟁을 실화적으로 발표하여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그리고 근년에 이회성, 이양지(李良枝), 유미리(柳美里), 현월(玄月) 등의 교포작가들이 일본 최고권위의 아쿠다카와 상을 수상하며 각광을 받아왔다.
또한 광복 이후 일부 재일동포 문인들이 한글(국문)을 통한 조총련계 중심의 한인문단도 형성되고 있음은 사실이다. 1945년 10월 한글신문 《민중신문》 발간 이래로 동인지를 출간해오던 문인들이 1948년 초에는 그 무렵 백민회, 조선문학자회 등으로 난립되었던 여러 문인단체들을 발전적으로 해체, 결합하여 이른바 ‘재일조선문학회’를 결성하여 기관지 《조선문학》 등을 발행하며 계속 친북적인 작품 활동을 해나왔다. 그러나 미일양국의 압력으로 1949년에 ‘조련’이 강제 해산 당한 다음, 1955년 5월의 ‘총련’ 결성을 계기로 주체적 문학 활동에 큰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고 그들 계열에선 주장한다. 특히 1955년 5월에 있었던 총련 결성 이후인 1959년 6월에 가진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문예동)’ 결성 이후 창간된 기관지 《문학예술》을 비롯하여 《조선신보》, 《조대문학》, 《조선청년》, 《조선상공신문》 등에 발표하여 일본 내의 한글문단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들 작품들은 다분히 북한식 문학성향으로 경직, 이념화되고 있어 대다수 일본인이나 자유진영 측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을뿐더러 자료마저 제한되어 있는 실정이다.이런 면에서 근년에 서울에서 출간된 《해외동포문학》재일조선인 시, 소설집은 유용한 가치가 되고 있다.
(4) 미주지역의 한인문단
미주이민 100주년 나이테를 그려온 미주 한인문단은 위에서 살펴본 타 지역의 국외한인문단과는 대조적인 양상으로 활성화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우선 미주의 한인문단은 근년 들어 일본이나 중국 또는 중앙아 지역의 그것에 비하여 두드러지게 많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미주 한인문단은 그쪽 사회에서의 한인들 역사가 깊은데도 지지부진한 모습이더니 1965년의 미국 이만법 개정을 계기로 점차 대거 새 삶의 터전을 찾아듦과 동시에 비약적으로 발전해간 셈이다. 이민자 중에는 비교적 중산층인데다 한반도에서 흔히 고등교육을 받은 인적 자원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서울에서 등단한 기성 문인도 포함되어 있던 면도 참고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현재 한국과 미주에서 등단절차를 마친 문인 수효는 LA지역 2백여 명, 기타지역 2백여 명, 기타 영어로 미국 주류문단서 활약하는 문인들을 통틀어 4백 명 남짓한 정도로 추산된다.
따라서 미주에서 형성된 한인들의 문단 두 갈래 가운데 한글을 통한 문단과 영어를 활용한 미국 주류문단이 질량으로 균형을 이루는 발전상을 보인다. 이전에는 1930년대 강용흘의 장편 『초당』이나 1960년대 김은국의 장편소설들에 이어 한동안 소강상태를 보이던 영어 활용의 한인문단 성과가 부쩍 커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나 90년대에 들어서 1.5세대와 2,3세대에 의한 작품성과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이를 테면 미국 주류문단에서도 화제를 일으켰던 한인 문단이 질적인 경쟁력을 인정받는데 비해서 한글문단은 상대적으로 양적인 풍성함을 드러냈다. 차학경의 『딕테』(1982), 케시 송의 『사진 신부』(1983), 김난영의 『토담』(1986), 이창래의 『원어민』(1995), 노라 옥자 켈러의 『종군 위안부』(1887), 이혜리의 『쌀이 있는 정물화ㅡ할머니가 있는 풍경』(1996), 수쟌 최의 외국인 학생』(1998) 등에 걸친 일련의 성과들이 보기가 된다. 이들 한인들의 현지어 문학은 작품내적인 성과를 거둔 데 비하여 정작 한글문단은 양적인 성장에 머물고 있는 사실들을 살필 수 있다.
미주 한인(Korean American)문단 형성이 이민 초창기 이래 문예지 발간이나 협회 구성면에서 본격화되기는 1980년대에 접어들어서 서울 문단에서 활동하다가 도미하여 있던 중견 문인들에 의해서 향해졌다.미주 한인문단 판도는 흔히 알려진 바처럼 주로 한인들이 많이 사는 LA중심의 서부와 뉴욕 중심의 동부로 나눌 수 있겠는데 물론 타 지역에서도 활성화되고 있다. 그 원인은 역시 “고국을 떠나 타 문화의 충격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하나의 상황, 우리 존재의 표현이 문학적 욕구로 분출, 점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그들은 미국 주류문단과는 대조적으로 민족공동체적 소수 민족의식과 경계인 및 이방인적 문학단체를 결성하고 다투어서 열정적으로 여러 매개체인 문예지도 잇따라 발간하고 있다.
먼저 서부지역에 사는 한인 문인들 가운데 일부는 뜻을 같이하여 1982년에 서울의 문인협회와는 별개의 미주 한인문인협회를 결성하였다. 이 단체에서는 그해 가을에 송상옥 전달문 김호길 등이 주선하여 1973년부터 발행해 오던 동인지 《지평선》에 이어서 기관지《미주문학》을 창간한 이래 최근 35호에 이르도록 미주 문예지로선 유일하게 한국문예진흥원의 지원금을 받아 계간으로 펴내고 있다. 1983년에는 미주 크리스찬 문인협회가 발족되고 다음해에 기관지 《크리스찬 文學》을 창간하여 최근까지 통권 18집을 냈다. 이어서 1887년 7월에는 장르 문예지의 효시인 재미 시인협회가 출범한 이래 작년까지 연간 엔솔로지 《外地)》 16집과 2004년부터 연간 문예지 《미주시세계》3호까지 펴내고 있다.
1995년 가을에는 10년 전부터 김호길 시인 중심으로 행해오던 시조연구회를 미주시조시인협회로 재발족한 이후 문예지 《해외시조》등을 간행하며 이국에서의 고유한 민족문학 장르창작과 선양에 임하고 있다. 1997년에는 조윤호 회장이 해외한민족작가협회를 창립하여 전 세계에 걸친 한민족문학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신인 배출 역할도 겸해 기관지 《해외문학》지를 꾸준히 연간으로 펴내고 있다. 또한 1999년 가을에 김영중, 조만연 등이 재미수필문학가협회를 창립함과 동시에 그해 연말 《재미수필》지를 창간한 이래 현재 7집까지 연간으로 간행해 오고 있다. 2001년에는 소설가협회도 결성되고 이민 백주년 기념으로 한국소설가협회와 공동작품집 나는 지난여름 네가 그 땅에서 한 일을 알고 있다』를 출판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2000년대에 들어서 LA의 전달문, 김문희 시인 등이 계간지 《해외문학 울림》과 범세계적인 내용의 한글 종합문예지《문학 아메리카》를 두어 권 속간한 바 있다. 이밖에 이 지역에서는 2003년에 미주 한국아동문학가협회까지 발족되어 매년 《미주아동문학》을 간행하면서 문학세미나와 신인상 제도를 열고 있음이 확인된다.
한편 동부지역에서도 서부지역에 뒤질세라 그곳 한인문학 키우기와 활성화에 노력하고 있다. 1985년부터 문예지 《신대륙》을 3호까지 내오다가 1989년에 미국 동부 한국문인협회를 발족시키고 1991년에 기관지 《뉴욕문학》을 창간하여 연간으로 발행하여오고 있다. 뉴욕에 이어서 에틀란타 문인협회에서는 《한돌문학》을 간행하고 1990년에는 워싱턴문인회가 결성된데 이어 《워싱턴문학》을 창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시카고 지역에서는 이미 1983년에 문인회를 발족시켜 역시 1996년 가을에는 명계웅 회장 중심으로 《시카고문학》을 창간하여 계속해 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부보디는 뒤늦게나마 1990년에야 뉴욕 중심으로 미주 크리스찬 문학가협회가 발족되고 기관지로 《미주이민문학》을 내고 있다. 같은 해 장르별로도 결성된 워싱턴수필가협회에서 동인지 《워싱턴 뜨기》를 펴내고 2001년에는 미주한국수필가협회에서 정기간행물《미주 에세이》를 간행하고 있다. 여기에 참고할 사항의 하나는 1981년에 시카고대학의 한 문학 써클로 창립된 동아리 모임(Moim)도 한인문단 행사에 동참하여 동부지역 한인문학 발전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문학동아리 형식의 모임들은 서부나 동부에도 적지 않게 분포된 채 활성화되어 미주 한인문학의 발전을 돕는 버팀목 구실을 하고 있다. 뿐더러 여기서는 본의 아니게 소개에서 누락될 수 있는 문예동인지와 몇 앤솔로지를 포함해서 여러 지방에서 활동하면서 여러 문인들 스스로 많은 작품집을 내서 여러 모로 미주문단을 풍성하게 하고 있음은 물론이지만 여기서는 일일이 거론할 수 없으므로 생략한다.
더욱이 2000년대에 들어서는 미주 안팎에도 연결될 만큼 큰 문인 단체가 결성되어 미주 한인문학의 국재교류, 발전을 도모하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2001년에는 동부와 서부를 아우른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미주지역위원회가 결성(회장 전달문)되어 새로운 면모로서 기관문예지 《미주 펜문학》을 연간으로 내고 있다. 나아가서 2004년에는 《센프란시스코 펜문학》도 내고 있다. 2002년에는 이민 100년을 계기로 모처럼 미주한인문학단체연합회가 이루어져서 『미주문학대사전』을 엮어내고 미주 한인문학을 총괄해 보는 계기도 만들었다.
이처럼 활발해진 여러 문인 단체와 으레 서울의 출판사에서 발행되는 일련의 문예지들은 문인들의 창작활동을 촉진하며 미주의 한인문단 발전을 뒷받침하는 조건으로서 중요하다. 이렇게 근년의 미주한인문학은 근래의 캐나다 한인문단이나 시드니 수필문학회의 활성화 등과 함께 호주의 한인문학회 발전상을 보여 주목된다. 특히 미주의 한인문단은 일찍이 조명희에 의해 연해주에서 한인문학의 씨앗을 틔우다 드디어는 척박한 중앙아시아 에 뿌리를 내려 반세기 남짓 맥을 이어오다 이제는 쇠퇴한 소비에트 고려인 한글문단과는 여러모로 대조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2) 한인문학의 연구동향
그런데 이렇게 오래 전부터 형성, 발전되고 있는 한반도 밖의 한인문학의 연구는 지역에 따라 시차를 두고 점차적으로 알차게 접근하는 추세를 보여 왔다. 그럼에도 그들은 거시적인 민족문학의 시각에서라기보다는 미시적인 고찰에 그쳐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도 비교적 초기에 국외 한인문학 연구의 필요성을 의식하고 논평식 논문으로 문제 제기했던 이는 장윤익과 홍기삼으로 파악된다. 이들의 각성에 비하면 뒤늦은 대로 2000년대에 들어서 앞에 든 국제한인문학회가 출범하여 이 분야에 학문적인 체계화를 도모하게 되었음은 뜻 깊다고 생각된다.
이제 예의 한인문학 연구를 실행해 나온 연구 동향을 대체적인 권역별 우선순위로 간추려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윤곽으로 파악된다.
먼저 재일교포 문학에 대해서는 한일 국교 정상화 전후기인 1960년대 무렵부터 일부 일본의 한국문학 연구가나 일문학 전공의 한국 교수 층 중심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대개 재일본 작가 ― 장혁주, 김달수, 김석범, 이회성 등의 작품이나 작가론을 흔히 비교문학적인 접근 등을 통해서 단속적인 논문으로 다룬 것이었다. 여기에는 물론 한때 일본에서 각광받던 김사량, 김소운에 대한 한국문학 전공자의 참여도 함께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80년대 이후 본격적인 일문학 전공 세대들이 심도 있게 접근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한창의 학위논문이나 유숙자의 저서 등이 보기가 된다. 특히 그동안 일본에서 한글로 행해진 문학작품에는 자료의 접근조차 여의롭지 않았으나 최근 재일 조련계 연구자들의 성과를 만날 수 있어 재일교포문학의 일본어 작품 일변도 현상은 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중국 조선족 문학의 경우, 연변 조선족자치주 연변대학의 권철, 김병민 등에 의해 지속적으로 연구되어 한반도 학자들 연구와 잇닿는 편이 있다. 남한에선 광복 이전의 농민 문학은 오양호에 의해서 1970년대 중엽부터 시작하였지만 문헌연구에 그친 편이었다. 그러다가 공산권과의 교류 길이 열린 1980년대 말엽 이후 중국조선족의 한글문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진 편이다. 상호 소통의 공간이동에 따라 한중을 오가며 현지를 답사하고 상호 비교하는 접근도 원활해졌다. 광복이전이나 이후에 걸쳐 집중적인 관계논문을 단행본으로 묶어낸 오양호의 여러 논저나 채훈과 조규익의 저서 등에서도 확인된다. 또한 공산권과의 학문교류가 시작된 무렵에 한중합동연구 성격을 띤 『연변지역 조선족 문학연구』도 여기에 참고 된다.
재일교포 문학이나 중국조선족 문학에 비해서 소련 고려인 문학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훨씬 늦게 행해졌다. 공산권에 대한 정보교환이 폐쇄된 데다 중앙아시아라는 거리감에 연유된 탓으로 보인다. 그래서 1990년대 말까지 고려인들 시가를 단편적으로 소개되던 것을 논자가 2000년 직전 무렵부터 원동의 연해주와 중앙아시아 현지에 수차 답사하고 생생한 자료를 구하여 종합적으로 조사, 연구하여 몇 편의 논문과 단행본으로 펴낸 바 있다. 또한 장사선 ․ 우정권도 수차 현지를 탐사하며 연구 업적을 저서로 정리해 내서 평소 우리 학계에서 소원시해오던 이 분야의 공백을 메우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국외에서도 김필영에 의해 방대한 자료 중심의 저서가 추가되어 많은 도움을 준다. 앞으로 가능하면 구소련 지역의 고려인 문단은 현지 러시아어로 활동한 고려인 작품까지 종합적으로 연구함 직하다고 본다. 구소련의 고려인 문학에 대한 연구는 이민족 사회 속에서 고단하게 사는 한인들의 애환에 앞서 다가올 통일시대에 대비해서 북한에 처음 소비에트 사회주의 문학을 전수한 고려인 문인들의 성향과 실체에 접근하여 남북한 문학의 이질성을 푸는 열쇠로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한반도의 한국문학을 주로 하되 부차적으로 나라밖에서 민족문학을 뒷받침하는 국외 한인문학은 우리문학의 소중한 실체이다. 사실 한국문학사에서 거의 도외시해왔던 국외 한인문학은 이제 본국 문학과 대응하는 문학 위성적인 실체로서 반영시켜야 마땅한 것이다. 다음의 실상들에서 드러나는 여러 동향과 특성들을 참고하여 우리문학을 보다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세계 여러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인문학은 특히 한글을 통한 한겨레 민족문학으로써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일찍이 지방어문학(地方語文學)을 주도한 한글작품은 헤르더(Herder)의 이론처럼 민족문학(National Literature)의 실체인 동시에 동시대의 괴테(Goethe)가 창안한 세계문학(World Literature)의 한 구성부분인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 밖의 세계 여러 지역에서 형성되고 있는 한인들의 작품들은 한겨레 통일문학사의 필수적인 재료로 활용하게 된다.
1) 주요 지역의 한인문단 활동상
구체적인 면에서 실지의 국제 한인문학은 실로 지구촌의 전역에 걸쳐서 이루어져 왔다. 우리는 이를 크게 다음 두 갈래로 나누어 살필 수 있다. 우선 역사적, 지정학적(地政學的)으로 북방의 대륙에 인접한 중국이나 러시아 등의 사회주의권과 그 후 점차적으로 왕래가 잦아진 현해탄이나 태평양 건너 일본, 미주, 호주에 걸친 자유주의권이 그것이다. 한반도 밖의 한인문학은 실제로 비교적 근세 이후에 들어서며 한반도에 접경해 있는 사회주의권 지역에서 먼저 형성되었다.
(1) 구소련지역의 고려인문단
한글로 이루어진 현대 한인문학을 주로해서 살펴보면 두만강 너머의 러시아 연해주에서 이루어진 고려인 문단부터 시작된 것으로 파악된다. 1920년대 중엽 이후 노령으로 망명한 작가 조명희(趙明熙)가 그곳 해삼위의 신한촌(新韓村)과 소왕령 근처 육성촌(六姓村) 등지에서 교편을 잡으며 우리 한글문학의 씨를 뿌렸던 것이다. 제자들은 1937년에 고국과 단절된 듯 멀리 떨어진 중앙아시아로 이주된 후 소련의 통제체제 속에서도 한글신문 《레닌기치》등을 통해서 꾸준하게 카자흐스탄 알마타 중심의 한글문단을 이루었다. 그리고 조국광복 후에는 고려인 문인 일부가 평양에 들어가 초창기 소비에트 문학을 키워냈었다. 그 고려인 문인들은 그러면서도 소련 붕괴 이전까지 그곳 알마타 등지에서 공동작품집『시월의 해빛』『해바라기』『꽃피는 땅』등과 개인 창작집을 10여권 한글 단행본으로 출판했다.
그들 고려인 문단은 모국체험의 유형에 따라 세 가지 부류로 구성되어 있다. 강태수, 김준, 연성용, 조기천, 태장춘 처럼 두만강 건너 연해주에서 살다가 1937년 겨울에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한 부류와 이정희 정장길 최영근1처럼 제2차 대전 이후 사할린에서 알마타 등지로 이주해간 부류가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한국 전쟁 이후 북한에서 선발된 유학생으로 모스크바 등에서 공부하던 중에 탈북하여 소연방 어느 지역 등에 정착한 3진(三眞) 문인이나 양원식 등의 부류이다.
따라서 일찍이 한반도로부터 낯선 땅을 유랑해온 디아스포러적인 속성을 지닌 이들 작품의 특성은 본디의 한국문학과는 상이한 면을 지니고 있다. (1) 고려인 문인들 작품에는 오랜 세월 동안 먼 이국으로 나와서 사는 데서 오는 자기 정체성 찾기 의식에서 고유한 자신의 언어를 지키려는 <모국어 사랑과 자기 정체성 찾기>성향이 짙다는 점이다.. (2) 또한 고국을 떠나 연해주나 중앙아시아로 떠돌아다니는 일상에서 오는 <방랑의식과 향수>가 작품 속에 배어 있다는 점이다. (3) 거기다가 인종이나 풍습이 상이한 데서 생기는 <문화갈등 속의 적응노력>이 곧잘 작품에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4) 끝으로 중요한 고려인문학 특성의 하나는 역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 통제 체제에 의해 <정론적인 송가성향>이 그 주제나 제재를 규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유진영과는 상이한 글쓰기에서의 이(4)항 제약점에 의해 고려인문단은 대체로 투박한 문장 표현 면에서나 설익은 상징 기법 내지 도식적인 이념 면 등에서 다분히 소박하고 습작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런 고려인의 한글문단도 그나마 1세대들의 쇠퇴와 모국어 독자층이 줄어듦과 동시에 위축일로에 있다. 그 대신에 근래 모국에서 사업이나 유학 등으로 현지에 터전을 닦고 있는 서울 문단 출신 일부가 고려인 한글문단의 새로운 변혁 세대로 보강되고 있는 현상이 참고가 된다. 그런가 하면 한편으로 한글문단 사정과는 다르게 이민 2, 3세대인 작가 김 아나톨리, 박 미하일, 시인 허로만 등이 나름대로의 러시아어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어서 대조됨을 드러내고 있다.
(2) 중국지역의 조선족문단
또한 한반도의 월경민으로 이루어진 중국 조선족의 한글문단도 소련 고려안의 그것 못지않게 민족문학의 꽃을 피우며 꾸준하게 이어져 왔다. 구한말 이후 한국 유민이 두만강과 압록강 건너 동북삼성(東北三省ㅡ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 가운데 간도지방에 정착하여 연길이나 용정의 조선족 밀집지역을 이루었다. 그리고 1930년대 무렵에는 한글 문학 동인지와 여러 작품집을 펴내서 한반도 밖 한글 문단의 메카인 연변 조선족 자치주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중국 조선족 문학은 “중국 소수 민족 문학의 하나이기에 물론 중국문학 범주에 속하기는 하지만 그의 연원과 발전과정, 특성 등, 모든 방면에서 자기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이들은 나름대로 두드러지게 민족 정체성 지키기나 이념적 송가 성향을 띠고 있다. 그 가운데 작가 김창걸, 강경애, 시인 리욱, 시인 윤동주 등이 많이 알려지고 시인 김성휘, 김철, 작가 김학철, 리근전, 극작가 황봉룡 등을 거쳐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민족수난과 이민의 역사가 속속들이 스며있는 용정이나 연길에 걸친 연변조선족 자치주 중심으로 왕성한 한글문학으로써 한반도 밖 한글문단의 살아있는 메카를 이루고 있는 중이다.
1930년대부터 옛 간도(間島-연변조선족 자치주)지방에서 생활을 하면서 창작하다가 광복이후 남북한문단에 합류한 사람들이 많음을 참고할 수 있다. 북한문단의 경우에는 시인 김조규, 김북원, 박팔양, 작가 김영팔, 현경준 등이 인접한 관계를 유지한다. 또한 남한문단에 편입된 문인 중에는 작가 염상섭, 안수길, 박영준, 박계주, 손소희, 윤금숙, 송지영, 그리고 시인 유치환, 김달진, 윤영춘 등을 비롯해서 젊은 세대층이 한국문단 전반에 끼친 영향력은 적지 않다. 적어도 직, 간접적으로 간도체험을 한 후대 문인들의 분포는 폭 넓게 퍼져 있다. 시인 김규동, 김수영, 김용호, 민영, 박의상 등과 작가 손창섭, 추식, 김용운, 황석영, 김성종 등이 그것이다.
이 지역은 지금까지《연변일보》《도라지》《천지》《연변문학》《문학과 예술》등의 문예지와 한글 신문 및 한국어 방송 등으로 한인문학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특수공간이다. 수많은 시집과 작품집 또는 『문학사료전집』 등이 시리즈로 출간됨과 동시에 서울 문인들도 자주 왕래하며 각종 문학세미나 등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조선족자치주에서는 요즘도 각종 신문사나 잡지사 또는 문학단체에서 주최하는 청소년 대상의 각종 글짓기 대회와 문학상 공모 및 기성 문인에 대한 시상 행사들이 빈번하게 이어지고 있다.
현재 중국 전역에 2백만 여 명의 조선족 인구와 그에 따른 한글 활용도를 감안하면 다음 같은 글도 조선족문학 이해에 좋은 참고가 된다.
중국조선족의 문학은 민족의 삶과 밀착되어 우리의 삶을 고무하여 왔고 우리의 문화전통을 꽃피우는 한편 한족을 위주로 한 기타 형제민족의 우수한 문화를 흡수하여 독특한 중국 특색의 조선족문학을 창조함으로써 민족의 생존과 번영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러므로 이 조선족문학은 중국문학 백화원의 한 떨기 꽃으로 되며 아울러 세계 조선어 문학권내에서의 독특한 자기의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3) 일본지역의 교포문단
한편 일본에서는 위 공산권 한글 문단과 대조적인 한인문학 성향을 보이고 있다. 극히 미미한 일부의 조총련계 한글 문학지를 제외한다면 대다수 문예지나 종합지를 비롯한 단행본과 신문지상에 한인작가의 한글작품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일본으로 귀화한 한인 작가들의 작품이 일본어로 유수의 지면에 일본 귀화인의 갈등과 소외감 등으로 한인의 뿌리 깊은 정체성 찾기 의식을 수준 높게 투영하여 이름 높은 상을 수상할 수준을 보인다. 이런 현상은 여느 남북 미주나 호주에서 형성된 한인문학과도 상이하게 일본의 한인계 문단의 특수성이다.
재일 교포(한인) 경우는, 사실 중국 조선족 자치주나 소련 연해주 지역보다 더 먼저, 자유롭게 드나들던 공간임에도 요즘 한인들의 한글문예지나 한글 작품집마저 출간되지 않고 있음은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일찍이 신문학 초창기인 1919년 초엽에는 한국최초의 종합문예지인 《창조》창간호를 다름 아닌 동경에서 간행했던 사실들을 감안하면 특이한 일이다. 그 후로는 일본에 『朝鮮口傳民謠集』등을 일본어로 번역 소개한 김소운 시인의 연재수필인『木槿通信』등도 마찬가지로 일어로 발표되었다.
그런가하면, 재일교포 작가들이 일본어 소설로 주목받는 성과는 계속된 편이다. 1940년에 제6회 아쿠다카와상(芥川賞) 후보작에 오른 김사량(金史良)의 『빛 속으로』에는 일본인과 조선인 부모사이에서 혼혈아로 태어난 인물들을 통해서 민족적 고뇌를 표출하고 장혁주의「餓鬼道」는 식민지 조선의 참상을 그린 작품으로 참고가 된다. 또한 1970년대에는 김석범의 장편『火山島』가 제주도의 4.3 항쟁을 실화적으로 발표하여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그리고 근년에 이회성, 이양지(李良枝), 유미리(柳美里), 현월(玄月) 등의 교포작가들이 일본 최고권위의 아쿠다카와 상을 수상하며 각광을 받아왔다.
또한 광복 이후 일부 재일동포 문인들이 한글(국문)을 통한 조총련계 중심의 한인문단도 형성되고 있음은 사실이다. 1945년 10월 한글신문 《민중신문》 발간 이래로 동인지를 출간해오던 문인들이 1948년 초에는 그 무렵 백민회, 조선문학자회 등으로 난립되었던 여러 문인단체들을 발전적으로 해체, 결합하여 이른바 ‘재일조선문학회’를 결성하여 기관지 《조선문학》 등을 발행하며 계속 친북적인 작품 활동을 해나왔다. 그러나 미일양국의 압력으로 1949년에 ‘조련’이 강제 해산 당한 다음, 1955년 5월의 ‘총련’ 결성을 계기로 주체적 문학 활동에 큰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고 그들 계열에선 주장한다. 특히 1955년 5월에 있었던 총련 결성 이후인 1959년 6월에 가진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문예동)’ 결성 이후 창간된 기관지 《문학예술》을 비롯하여 《조선신보》, 《조대문학》, 《조선청년》, 《조선상공신문》 등에 발표하여 일본 내의 한글문단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들 작품들은 다분히 북한식 문학성향으로 경직, 이념화되고 있어 대다수 일본인이나 자유진영 측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을뿐더러 자료마저 제한되어 있는 실정이다.이런 면에서 근년에 서울에서 출간된 《해외동포문학》재일조선인 시, 소설집은 유용한 가치가 되고 있다.
(4) 미주지역의 한인문단
미주이민 100주년 나이테를 그려온 미주 한인문단은 위에서 살펴본 타 지역의 국외한인문단과는 대조적인 양상으로 활성화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우선 미주의 한인문단은 근년 들어 일본이나 중국 또는 중앙아 지역의 그것에 비하여 두드러지게 많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미주 한인문단은 그쪽 사회에서의 한인들 역사가 깊은데도 지지부진한 모습이더니 1965년의 미국 이만법 개정을 계기로 점차 대거 새 삶의 터전을 찾아듦과 동시에 비약적으로 발전해간 셈이다. 이민자 중에는 비교적 중산층인데다 한반도에서 흔히 고등교육을 받은 인적 자원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서울에서 등단한 기성 문인도 포함되어 있던 면도 참고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현재 한국과 미주에서 등단절차를 마친 문인 수효는 LA지역 2백여 명, 기타지역 2백여 명, 기타 영어로 미국 주류문단서 활약하는 문인들을 통틀어 4백 명 남짓한 정도로 추산된다.
따라서 미주에서 형성된 한인들의 문단 두 갈래 가운데 한글을 통한 문단과 영어를 활용한 미국 주류문단이 질량으로 균형을 이루는 발전상을 보인다. 이전에는 1930년대 강용흘의 장편 『초당』이나 1960년대 김은국의 장편소설들에 이어 한동안 소강상태를 보이던 영어 활용의 한인문단 성과가 부쩍 커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나 90년대에 들어서 1.5세대와 2,3세대에 의한 작품성과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이를 테면 미국 주류문단에서도 화제를 일으켰던 한인 문단이 질적인 경쟁력을 인정받는데 비해서 한글문단은 상대적으로 양적인 풍성함을 드러냈다. 차학경의 『딕테』(1982), 케시 송의 『사진 신부』(1983), 김난영의 『토담』(1986), 이창래의 『원어민』(1995), 노라 옥자 켈러의 『종군 위안부』(1887), 이혜리의 『쌀이 있는 정물화ㅡ할머니가 있는 풍경』(1996), 수쟌 최의 외국인 학생』(1998) 등에 걸친 일련의 성과들이 보기가 된다. 이들 한인들의 현지어 문학은 작품내적인 성과를 거둔 데 비하여 정작 한글문단은 양적인 성장에 머물고 있는 사실들을 살필 수 있다.
미주 한인(Korean American)문단 형성이 이민 초창기 이래 문예지 발간이나 협회 구성면에서 본격화되기는 1980년대에 접어들어서 서울 문단에서 활동하다가 도미하여 있던 중견 문인들에 의해서 향해졌다.미주 한인문단 판도는 흔히 알려진 바처럼 주로 한인들이 많이 사는 LA중심의 서부와 뉴욕 중심의 동부로 나눌 수 있겠는데 물론 타 지역에서도 활성화되고 있다. 그 원인은 역시 “고국을 떠나 타 문화의 충격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하나의 상황, 우리 존재의 표현이 문학적 욕구로 분출, 점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그들은 미국 주류문단과는 대조적으로 민족공동체적 소수 민족의식과 경계인 및 이방인적 문학단체를 결성하고 다투어서 열정적으로 여러 매개체인 문예지도 잇따라 발간하고 있다.
먼저 서부지역에 사는 한인 문인들 가운데 일부는 뜻을 같이하여 1982년에 서울의 문인협회와는 별개의 미주 한인문인협회를 결성하였다. 이 단체에서는 그해 가을에 송상옥 전달문 김호길 등이 주선하여 1973년부터 발행해 오던 동인지 《지평선》에 이어서 기관지《미주문학》을 창간한 이래 최근 35호에 이르도록 미주 문예지로선 유일하게 한국문예진흥원의 지원금을 받아 계간으로 펴내고 있다. 1983년에는 미주 크리스찬 문인협회가 발족되고 다음해에 기관지 《크리스찬 文學》을 창간하여 최근까지 통권 18집을 냈다. 이어서 1887년 7월에는 장르 문예지의 효시인 재미 시인협회가 출범한 이래 작년까지 연간 엔솔로지 《外地)》 16집과 2004년부터 연간 문예지 《미주시세계》3호까지 펴내고 있다.
1995년 가을에는 10년 전부터 김호길 시인 중심으로 행해오던 시조연구회를 미주시조시인협회로 재발족한 이후 문예지 《해외시조》등을 간행하며 이국에서의 고유한 민족문학 장르창작과 선양에 임하고 있다. 1997년에는 조윤호 회장이 해외한민족작가협회를 창립하여 전 세계에 걸친 한민족문학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신인 배출 역할도 겸해 기관지 《해외문학》지를 꾸준히 연간으로 펴내고 있다. 또한 1999년 가을에 김영중, 조만연 등이 재미수필문학가협회를 창립함과 동시에 그해 연말 《재미수필》지를 창간한 이래 현재 7집까지 연간으로 간행해 오고 있다. 2001년에는 소설가협회도 결성되고 이민 백주년 기념으로 한국소설가협회와 공동작품집 나는 지난여름 네가 그 땅에서 한 일을 알고 있다』를 출판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2000년대에 들어서 LA의 전달문, 김문희 시인 등이 계간지 《해외문학 울림》과 범세계적인 내용의 한글 종합문예지《문학 아메리카》를 두어 권 속간한 바 있다. 이밖에 이 지역에서는 2003년에 미주 한국아동문학가협회까지 발족되어 매년 《미주아동문학》을 간행하면서 문학세미나와 신인상 제도를 열고 있음이 확인된다.
한편 동부지역에서도 서부지역에 뒤질세라 그곳 한인문학 키우기와 활성화에 노력하고 있다. 1985년부터 문예지 《신대륙》을 3호까지 내오다가 1989년에 미국 동부 한국문인협회를 발족시키고 1991년에 기관지 《뉴욕문학》을 창간하여 연간으로 발행하여오고 있다. 뉴욕에 이어서 에틀란타 문인협회에서는 《한돌문학》을 간행하고 1990년에는 워싱턴문인회가 결성된데 이어 《워싱턴문학》을 창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시카고 지역에서는 이미 1983년에 문인회를 발족시켜 역시 1996년 가을에는 명계웅 회장 중심으로 《시카고문학》을 창간하여 계속해 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부보디는 뒤늦게나마 1990년에야 뉴욕 중심으로 미주 크리스찬 문학가협회가 발족되고 기관지로 《미주이민문학》을 내고 있다. 같은 해 장르별로도 결성된 워싱턴수필가협회에서 동인지 《워싱턴 뜨기》를 펴내고 2001년에는 미주한국수필가협회에서 정기간행물《미주 에세이》를 간행하고 있다. 여기에 참고할 사항의 하나는 1981년에 시카고대학의 한 문학 써클로 창립된 동아리 모임(Moim)도 한인문단 행사에 동참하여 동부지역 한인문학 발전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문학동아리 형식의 모임들은 서부나 동부에도 적지 않게 분포된 채 활성화되어 미주 한인문학의 발전을 돕는 버팀목 구실을 하고 있다. 뿐더러 여기서는 본의 아니게 소개에서 누락될 수 있는 문예동인지와 몇 앤솔로지를 포함해서 여러 지방에서 활동하면서 여러 문인들 스스로 많은 작품집을 내서 여러 모로 미주문단을 풍성하게 하고 있음은 물론이지만 여기서는 일일이 거론할 수 없으므로 생략한다.
더욱이 2000년대에 들어서는 미주 안팎에도 연결될 만큼 큰 문인 단체가 결성되어 미주 한인문학의 국재교류, 발전을 도모하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2001년에는 동부와 서부를 아우른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미주지역위원회가 결성(회장 전달문)되어 새로운 면모로서 기관문예지 《미주 펜문학》을 연간으로 내고 있다. 나아가서 2004년에는 《센프란시스코 펜문학》도 내고 있다. 2002년에는 이민 100년을 계기로 모처럼 미주한인문학단체연합회가 이루어져서 『미주문학대사전』을 엮어내고 미주 한인문학을 총괄해 보는 계기도 만들었다.
이처럼 활발해진 여러 문인 단체와 으레 서울의 출판사에서 발행되는 일련의 문예지들은 문인들의 창작활동을 촉진하며 미주의 한인문단 발전을 뒷받침하는 조건으로서 중요하다. 이렇게 근년의 미주한인문학은 근래의 캐나다 한인문단이나 시드니 수필문학회의 활성화 등과 함께 호주의 한인문학회 발전상을 보여 주목된다. 특히 미주의 한인문단은 일찍이 조명희에 의해 연해주에서 한인문학의 씨앗을 틔우다 드디어는 척박한 중앙아시아 에 뿌리를 내려 반세기 남짓 맥을 이어오다 이제는 쇠퇴한 소비에트 고려인 한글문단과는 여러모로 대조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2) 한인문학의 연구동향
그런데 이렇게 오래 전부터 형성, 발전되고 있는 한반도 밖의 한인문학의 연구는 지역에 따라 시차를 두고 점차적으로 알차게 접근하는 추세를 보여 왔다. 그럼에도 그들은 거시적인 민족문학의 시각에서라기보다는 미시적인 고찰에 그쳐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도 비교적 초기에 국외 한인문학 연구의 필요성을 의식하고 논평식 논문으로 문제 제기했던 이는 장윤익과 홍기삼으로 파악된다. 이들의 각성에 비하면 뒤늦은 대로 2000년대에 들어서 앞에 든 국제한인문학회가 출범하여 이 분야에 학문적인 체계화를 도모하게 되었음은 뜻 깊다고 생각된다.
이제 예의 한인문학 연구를 실행해 나온 연구 동향을 대체적인 권역별 우선순위로 간추려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윤곽으로 파악된다.
먼저 재일교포 문학에 대해서는 한일 국교 정상화 전후기인 1960년대 무렵부터 일부 일본의 한국문학 연구가나 일문학 전공의 한국 교수 층 중심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대개 재일본 작가 ― 장혁주, 김달수, 김석범, 이회성 등의 작품이나 작가론을 흔히 비교문학적인 접근 등을 통해서 단속적인 논문으로 다룬 것이었다. 여기에는 물론 한때 일본에서 각광받던 김사량, 김소운에 대한 한국문학 전공자의 참여도 함께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80년대 이후 본격적인 일문학 전공 세대들이 심도 있게 접근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한창의 학위논문이나 유숙자의 저서 등이 보기가 된다. 특히 그동안 일본에서 한글로 행해진 문학작품에는 자료의 접근조차 여의롭지 않았으나 최근 재일 조련계 연구자들의 성과를 만날 수 있어 재일교포문학의 일본어 작품 일변도 현상은 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중국 조선족 문학의 경우, 연변 조선족자치주 연변대학의 권철, 김병민 등에 의해 지속적으로 연구되어 한반도 학자들 연구와 잇닿는 편이 있다. 남한에선 광복 이전의 농민 문학은 오양호에 의해서 1970년대 중엽부터 시작하였지만 문헌연구에 그친 편이었다. 그러다가 공산권과의 교류 길이 열린 1980년대 말엽 이후 중국조선족의 한글문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진 편이다. 상호 소통의 공간이동에 따라 한중을 오가며 현지를 답사하고 상호 비교하는 접근도 원활해졌다. 광복이전이나 이후에 걸쳐 집중적인 관계논문을 단행본으로 묶어낸 오양호의 여러 논저나 채훈과 조규익의 저서 등에서도 확인된다. 또한 공산권과의 학문교류가 시작된 무렵에 한중합동연구 성격을 띤 『연변지역 조선족 문학연구』도 여기에 참고 된다.
재일교포 문학이나 중국조선족 문학에 비해서 소련 고려인 문학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훨씬 늦게 행해졌다. 공산권에 대한 정보교환이 폐쇄된 데다 중앙아시아라는 거리감에 연유된 탓으로 보인다. 그래서 1990년대 말까지 고려인들 시가를 단편적으로 소개되던 것을 논자가 2000년 직전 무렵부터 원동의 연해주와 중앙아시아 현지에 수차 답사하고 생생한 자료를 구하여 종합적으로 조사, 연구하여 몇 편의 논문과 단행본으로 펴낸 바 있다. 또한 장사선 ․ 우정권도 수차 현지를 탐사하며 연구 업적을 저서로 정리해 내서 평소 우리 학계에서 소원시해오던 이 분야의 공백을 메우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국외에서도 김필영에 의해 방대한 자료 중심의 저서가 추가되어 많은 도움을 준다. 앞으로 가능하면 구소련 지역의 고려인 문단은 현지 러시아어로 활동한 고려인 작품까지 종합적으로 연구함 직하다고 본다. 구소련의 고려인 문학에 대한 연구는 이민족 사회 속에서 고단하게 사는 한인들의 애환에 앞서 다가올 통일시대에 대비해서 북한에 처음 소비에트 사회주의 문학을 전수한 고려인 문인들의 성향과 실체에 접근하여 남북한 문학의 이질성을 푸는 열쇠로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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