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오정근: 수필] 인간미 풍기는 캐나다 의료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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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4,910회 작성일 10-06-0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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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검사하러 왔다고 하자 가정의(醫)는 지난 3개월 전에 상태가 정상인과 전혀 다를 바가 없으니까 6개월 간격으로 하자고 했다. 독감 주사를 맞았느냐고 묻고는 직접 주사를 놔주었다. 지난 3개월 전에 의사선생님을 찾아왔을 때에도 가정의(醫)는 모든 일을 당신 손으로 직접 챙겼다. 몸무게도 직접 재었다. 추를 움직여 무게를 재는 투박한 저울을 이용하여 귀찮을 법도 해보이지만 친절했다. 혈압을 재고, 피검사를 위한 혈액채취, 심전도 검사 모든 일을 누구의 도움도 없이 손수하니 황송한 마음이다.
오늘도 주사 후에 알코올 솜으로 문지르고는 일회용 반창고를 대주는 서비스를 잊지 않았다. 초음파 검사를 할 때가 되었다며, 언제 다시 오겠냐고 묻는다. 나는 “이왕 오늘 공복으로 왔으니 오늘 검사를 하고 갔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의사는 빙그레 웃더니 “오늘 아마 예약 취소한 사람이 있을 겁니다” 하면서 바로 전화기를 들더니 초음파만 전문으로 하는 의료센터로 전화를 하여 당장 예약해주었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 재벌이 운영하는 병원에 6개월 간격으로 검진을 다녀본지라 한국병원의 의료시스템도 발전한 줄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무요원이나 의사분들의 인적 서비스는 아직 권위적인 구석이 남아 있다. 나를 챙겨주는 의사선생님으로부터 환자를 친동생처럼 여기고 배려준다는 따스함을 전해진다.
한국에서 복부초음파 검사를 받을 때마다 조금 긴장했던 이유는 내 배 위로 차가운 액체가 닿으면서 이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초음파 스캐너를 잘 미끄러지게 하기 위한 겔 같은 액체가 토론토 병원에서는 미지근하니 내 체온과 비슷했다. 느낌이 좋았다. 한때 한국 TV 드라마에서 어떤 젊은 의사가 청진기를 환자의 몸에 대기 전에 입김으로 따듯하게 해 준 모습이 방영되면서 그 의사 인기가 치솟았다. 시청자들은 그 모습에서 의사의 따듯한 인간미를 발견하고는 한동안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처럼 작은 배려 하나가 환자에게는 엄청난 심신의 안정과 신뢰감을 준다.
초음파가 끝나고 몸을 닦고 검사를 위해 제공된 종이옷을 다시 챙겨 입는 동안 밖에서 기다리던 초음파담당 의사는 나를 보더니, 이번에 찍은 초음파 사진을 보여줄 테니 기다리라고 한다. 의아스러웠다. 한국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궁금한 것을 물어봐도 “담당 의사선생님에게 물어 보세요” 라는 사무적인 대답을 들은 경험이 몇 번있었다. 따라서 나같은 환자는 아예 어떤 질문은 생각하지도 못하도록 길들여 왔었다. 그런데 여기 의사분은 컴퓨터화면으로 내 초음파 사진화일을 불러내더니 지난 6개월 전에 찍은 것하고 비교하며 살핀다. “더 나빠진 게 없어요, 좋은 일이이에요”라고 웃으며 나를 오래 전부터 아는 사람처럼 대하며 말해주었다.
이런 것을 보고 ‘고객감동’이라는 표현이 맞을성 싶었다. 고객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친절에 눈물날 정도로 고마웠다. 한국에서는 병원에 갈 때마다 1주일 전에 혈액검사나 초음파 검사를 미리하고 나서 담당 주치의에게 결과를 보러 가야 했기에 언제나 2주일 연속해서 가야 했던 경험에 비하면 여기서는 특급대우를 받는 기분이다. 갈 때마다 늘 예약시간보다 한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던 경험을 되새겨보면 여기서는 VIP중의 VIP대접을 받는다.
모국에서 종합병원에 진찰받으러 갔을 때 예약된 시간보다 지체가 심해지면 늘 의심이 들곤 했다. 내 앞에 누군가 새치기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말이다. 나도 빽을 써서 새치기를 여러번 해본 터라 양심에 찔리면서도, ‘오늘은 내가 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만섞인 생각도 해보았다. 토론토 성 마이클 병원의 간호사 화일시스템을 보고나서 놀랐다. 당일 면담할 환자의 화일을 순번대로 끼워두는 화일철이 있는데 한 사람을 바꿔치기 하려면 화일을 몽땅 이동해야하는 번거로운 구조를 보고나서 여기서는 새치기란 불가능하겠구나 하는 안도감을 확인하기도 했다.
오늘 또 다시 가정의(醫)가 내게 말하기를 “피검사건 초음파검사건 결과확인을 위해 다시 오실 필요가 없고 전화를 하시면 됩니다. 이상이 있으면 전화가 바로 가기도 합니다.” 라고 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잘못 알아 들었나 싶을 정도였다. 검사 5~6일 후에 전화를 걸면 사무직원은 바로 가정의를 바꿔주곤 했고, 의사선생님은 친절할 설명을 아끼지 않았었다. 초음파 결과에 대해 이미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일 주일 후에 전화로 다시 물어보면 또 친절한 설명을 듣게 될 것이다.
오늘 병원 두 군데에서 의료서비스를 받으면서 양질의 서비스를 받았다는 만족감이 크다. 게다가 끝나고 나올 때 단 한 푼의 돈도 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나라에 대하여 감사한 마음이 크다. 그저 나는 헬스카드만 제시하면 되고, 내 주소가 바뀌지 않았는지 확인만 해주면 된다. 병원에서는 정부에 비용청구를 할 뿐, 국가가 의료비와 고등학교까지 교육비를 부담해주는 캐나다는 그런 면에서 정말 살기 좋은 나라이다. 밝은 면만 보고 살기에도 족하다.
복지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어야 하고 수혜자가 체감하여야 한다. 내가 겪은 캐나다 복지시스템에는 인간미가 넘쳐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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