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넬리(NELLY) : [캐나다/강기영] > 아메리카 이민문학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아메리카 이민문학


 

소설 소설: 넬리(NELLY) : [캐나다/강기영]

페이지 정보

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6,191회 작성일 10-04-30 22:12

본문

[캐나다/강기영] 넬리(NELLY)

아빠, 넬리 왔어!
딸아이의 전화다. 넬리가 병원에 입원 했던 날짜를 꼽아 보았다.닷새 만이다.
영리한 진돗개지만 역시 짐승은 짐승인가 보다. 넬리란 집에서 기르던 진돗개의 이름이다. 교통사고를 당하여 아랫도리가 만신창이의 허물어진 모습으로 실려 갔는데, 죽지 않고 닷새 만에 퇴원이라니.
물론 그 동안 매일 동물병원을 다녀오는 아들과 딸아이를 통하여 넬리의 병세를 듣고는 있었지만 그게 반가운 일만은 아니었다. 다행이 넬리가 죽지는 않을 듯하고 조금씩 호전되어가고 있다는 소식에도, 반쯤은 착잡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내놓고 내색할 수는 없었다. 강아지 때부터 3년을 길러오며 든 정이 나라고 아이들보다 못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상상 외로 많은  입원비에 너무나 놀랐다. 가끔, 카나다에서는 개를 기르다 잘못 되면 집안 말아먹는다는 식의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냥 들 하는 소리지 그런 일을 정말 내가 겪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조금 호전되는 듯 하다가 갑자기 악화되어 죽었다는 소식을 은근히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 동안 이리저리 계산해 보다가 명색이 가장의 수입이라는 게 개 한 마리의 치료비에 비해도 너무나 초라함이 부끄러웠다.
사고를 당한 첫날은 응급치료와 더불어 첨단장비를 동원한 여러 가지 진단을 하였을 테니까 입원비가 많이 나왔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하룻밤 입원비가 740달라나 되었다. 한 시간 당 8불 몇 십 전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아들 녀석의 수입으로는 90시간을 일해야 넬리의 하룻밤 입원비가 되었고, 시간당 12불을 받는 내 수입으로는 세금 제하면 80시간을 일해야 하는 돈이다.

 그런 넬리가 닷새 만에 돌아왔다니 일단 한 숨 놓였다. 뒷다리가 하나는 부러지고 하나는 관절이 빠졌는데, 수술을 하게 되면 돈이 추가되고, 결과가 안 좋아 뼈에 쇠를 박을 일이 생기면 천 칠 백 불이 또 추가되고. 이런 상황에서 넬리의 치료비를 계산하기란 어려운 노릇이었다. 그런데 넬리가 닷새 만에 퇴원 했다니 어려운 수학문제가 의외로 쉽게 풀리어 마침표를 찍듯 경쾌한 일이었다.

 같은 권투선수라도 흑인 선수가 피를 흘리면 백인 선수보다 덜 아픈 생각이 들 듯, 넬리 같이 영리하고 깔끔한 개는 외형이 투박하거나 덩치 큰 개들보다 치료비가 훨씬 예민 하리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까탈스러운 개는 치료도 오래 거릴 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우였다.



 바쁜 마음으로 현관문을 들어서자 넬리가 달려 나오는 대신, 식구들의 짧은 비명, 외침, 탄식들이 뒤섞인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를 금방 짐작할 수 있었다.
종일 혼자 집을 지키다 식구들이 돌아 오는 기척이 들리면 펄펄 뛰며 달려 나오던 습관대로 넬리는, 나의 기척에 벌떡 일어나다가 나뒹굴어 졌음이 분명했다. 뒷다리 하나는 여러 조각으로 금이 가고, 나머지도 관절이 빠져 두 다리가 다 못쓰게 된 넬리의 몸으로는 무리였다.

 쓰러진 아픔에다 식구들이 붙잡고 있어 일어나지는 못했지만 귀를 뒤로 젖혀 얼굴을 뾰족하게 만들어 나를 반겼다.감아 올린 꼬리는 물론 몸통까지 리듬 있게 흔들었지만 첫눈에도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우선 눈빛이 그랬다.박제된 짐승의 잘 박아 놓은 눈처럼 검고 윤기 있던 동자는 흰자위로 싸였다.어렴풋이 역광으로 비치는 콘택트렌즈처럼 윤곽도 색깔도 바래 보였다.반기고는 있었지만 눈이 그렇게 변하고 보니 정신이 온전 할 런지가 의심되었다.선 듯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기가 어쩐지 머뭇거려졌다.몸도 형편없이 말라 있었다.어찌나 야위었는지 바로 닷새 전의 모습이 전혀 상상돼지 않았다.닷새를 꼬박 굶었다 해도 그렇지,이건 전혀 다른 개가 되어 있었다.사람도 닷새 굶어 그렇게 된다면 군대 갈 사람이 없겠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이 스쳤다.그렇다 보니 주둥이는 더욱 뾰족해져 한결 여우처럼 보였다.넬리는 진돗개의 특징을 거의 갖춘 편이었으나 얼굴에 털이 좀 짧고 주둥이가 뾰족한 모양이 아주 순종은 아닌 듯 싶었다.그래서 넬리를 본 사람들은 여우 같다고 한 마디 씩 들 했다.언젠가,딸아이가 데리고 나갔을 때 도로 보수공사를 하던 인부 두 사람이 넬리를 보고는 여우다,아니다하며 내기를 걸 더라는 웃지 못할 얘기도 들었던 터였다.

처음에는 두 개가 다 부러졌을 것으로 생각했던 다리가 하나는 관절만 빠졌다 하여 다행인 줄 알았다.그런데 의사는 관절이 빠진 다리가 더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당부했다.많이 좋아지다가도 잘못하면 다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사람이라면  부러진 다리는 깁스를 하고,빠진 관절은 집어 넣어 안정만 취한다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별 문제 없다.그러나 개는 사람처럼 가만히 있어 주질 않으니 치료가 간단치 않을 듯 했다.넬리의 부러진 다리는 골절 상태가 심하지 않아서 인지 아니면,개는 원래 그렇게 하는지는 몰라도 깁스를 하지 않았다.그리고 관절이 빠진 다리는 바싹 꺾어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몸통이 붙여 밴드로 칭칭 감았다.그러니 일어서려면 부러진 다리 하나로 균형을 감당해야 하는데 그게  무리였다. 넬리 쪽에서 보면 갑자기 다리 하나가 잘려 나가고,나머지도 제 멋대로 덜렁이는 상황일 것이다.그런데도 넬리는 평소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밖에서 기척이 들거나 식구들의 움직임에 벌떡벌떡 일어서다가 나뒹굴었다.답답한 노릇이다.어쩌다 일어나는 데까지 성공을 하여도 갓 태어난 망아지가 이리저리 쏠리며 균형을 못 잡듯 후둘거렸다.그러면 식구들은,뼈가 바삭 부서지며 금방이라도 내려 앉을까 봐 기겁을 했다.동물병원에서는 이런 상태의 개를 어떻게 치료할까.어쩜,진통제를 듬뿍 넣은 링겔을 꽂아 일어서지 못하는 좁은 공간에 가두어 두지는 않을까.차츰,개가 사람보다 치료하기 휠씬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개의 치료비가 그렇게 비싸야 하는 이유를 알 만도 했다.연년생으로 대학생이 된 아들과 딸아이는 넬리의 병세와 고통이 우선이었지만 같은 개를 놓고도 나는 돈을 걱정했다.만약 다시 뼈가 내려 앉는다면 아이들은 그게 넬리가 불구가 되는 소리이고,그렇더라도 살아만 달라는 기도를 할 것이다.그렇지만 나에게는 그게 돈 나가는 소리로 들릴 것이다.그래서 나는 나대로 넬리를 신주단지 모시 듯 할 수 밖에 없다.그게 아이들에게는 개에 대한 아버지의 순수한 애정으로 보이는 모양이다.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치료비가 추가 부담되는 불행한 일이 일어난다 해도 이미 합의된 사항으로 간주되는 모양이었다.한국처럼 가장의 권위가 서지도 않고,부모에 대한 공경이 의미 있게 교육되지도 않는 카나다에서 힘 없는 가장은 쓸쓸할 수밖에 없다.이미 나는 그 쓸쓸함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나는 나이가 많아지거나 근무기간이 길어진다고 수입도 늘어나는 직장을 가진 게 아니었다.그런데도 세월 따라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지출은 늘어갔다. 거기에서 벌어지는 갭(GAP)은 어쩔 수 없이 가장의 권위와 상쇄될 수 밖에 없었다.



 넬리의 사고는 카나다의 가을 날씨 치고는 드물게 청명하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듯 하기 때문에 일어난 사고였다.
 가을걷이와 겨울 준비가 안성맞춤인 일요일이었다. 며칠 추적이던 비도 말끔히 걷히고, 아직 춥지는 않고, 바람도 없고, 너구나 일요일이고. 카나다에서 이런 날을 맞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은 여름이 끝나는가 하면 가을도 없이 곧바로 겨울이 되는 게 카나다의 날씨였다.
 나는 벌써부터 미뤄오던 뒤란의 창고 보수공사를 더 이상 미적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삽이며 갈퀴 등 잡동사니를 넣어 두던 오래된 가건물이 지난 겨울 폭설 때 반쯤 내려 앉았는데도 이 핑계 저 핑계로 게으름을 피웠다. 큰 맘 먹고 일찍부터 시작한 일이 뚝딱거리다 보니 그런대로 손 맛이 왔다.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아내까지 들락 였다. 그러더니 장갑에 전정가위까지 들고 그럴싸한 품으로 이곳 저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정상대로라면 아내는 한나절까지 침대에 있어야 했다. 아내는 어느 편인가 하면, 무슨 일이던 깔끔하게 정돈하여 야무지게 끝을 맺는 성격이 아니었다. 어쩌다 마음 먹고 옷장이나 신발을 정돈해도 얼마 안 가 다시 헤집어야 했다. 당장 신을 슬리퍼나 늘 입는 옷가지도 구별 없이 몽땅 치워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내의 그런 습관을 들쑤신다로 격하시켜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집은 평범한 방갈로다. 그런데 뒤란은 큰 편으로 채소밭으로 일군 텃밭도 꽤 넓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채소는 풍성했지만 일손은 적잖게 가는 편이었다. 바로 그 텃밭이, 그리고 일손이 나의 권위를 잃어가는 부분을 메워주는 공간이었다.
 아내는 벌써 파를 뽑아 다듬지도 않은 채 한 무더기 지어 놓았고, 올해는 심지 않아 저절로 나왔는데도 손가락처럼 굵어진 아욱도 몇 대 꺾어서 밭고랑에 놓았다. 그때쯤 딸아이기가 넬리를 앞세워 나왔다. 딸아이도 여느 때 같으면 침대에 있어야 할 시간이다. 이미 아침에 용변을 끝낸 넬리인데 다시 나와도 신나기는 마찬가지다. 목줄을 풀어 놓자 사방으로 날뛰며 좋아했다. 자라면서 점점 사나워 져 집안이 아니고는 목줄을 풀어 놓는 곳이 뒤란 뿐이었다.

 겉으로는 참 좋아 보였다. 흔히 말하는 이민 성공케이스-이민 10여년이 지나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처럼 보였다. 반 이상이 월부이긴 하지만 정원이 딸린 집이 있고, 아내는 거기에서 텃밭을 가꾸고, 성장한 딸아이는 애견과 잔디 위에서 뛰어 놀고. 화폭에 담는다면 참으로 평화스러워 보이는 한 장의 그림이 되겠다. 그러나 나는 작업에 열중하느라 다른 데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내가 언제 앞들로 나갔는지, 넬리가 그 뒤를 따랐는지, 넬리에게 목줄을 씌웠는지도 까맣게 몰랐다.
한 바탕들 소란을 피우더니 또 들쑤셔 놓았구나.
 흩어진 채소들과 시들고 있는 아욱을 보며 잠시 이런 생각을 했음 직 하다.
앞 뒷마당이 통하는 쪽문이 열려 있어 두어 번 닫았음 직도 하다. 넬리를 풀어 놓으면 뛰쳐 나가지 않게 쪽문을 닫는 습관대로 왜 칠칠 맞게 문은 열어 놓고 들락이누하며 아내를 잠지 떠 올렸음 직도 하다.
 처음 넬리의 비명이 들렸을 때 몇 번은 어느 집 개가 저러나 하고 무심코 넘겼다. 그러다 넬리? 하는 생각이 머리를 후려 쳤다. 용수철처럼 튕긴다고 생각하며 모퉁이를 돌아서는 데 유난히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이내 그 하늘이 쨍그르 깨지는 착시현상이 왔다.
넬리의 비명은 그만큼 날카로웠다. 무척 짧은 순간에도 두 가지 장면이 머리 속을 스쳤다. 싱크대에서 떨어지는 칼에 꽂힌 넬리가 붉은 피를 뿜어내는 모습과 설설 끓는 곰국이 넬리의 몸을 덮어 씌우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넬리가 쓰러져 있는 곳은 의외로 집 안이 아니라 바깥 도로 옆 잔디밭이었다. 나보다 먼저 달려온 아내가 발을 동동 구르며 쓰러져 있는 넬리는 가리켰다. 이미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숨만 헐떡이며 경련하는 넬리의 뒤에서는 변인지 피인지 팥죽 같은 액체가 꾸역꾸역 나왔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할 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이 다쳤다면 그렇게 난감하지는 않을 듯 했다.
 넬리 차에 쳤어! 이제 넬리 죽었네!
 역시 속수무책인 아내도 엉거주춤 뒤로 물러서서 발만 굴렀다. 나 역시 그랬다. 아무리 집에서 기르던 개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엉겁결에 공격 할 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앞섰다. 아내의 울부짖는 소리가 안에까지 들렸는지 곧바로 딸아이가 달려 나왔다. 제지할 틈도 없이 딸아이는 넬리의 목을 껴안았다. 숨만 헐떡일 뿐 공격하지는 않았다. 그 경황 중에도 아내의 손에 갈퀴가 들렸는 게 보였다.
 뒷밭을 헤집던 아내가 끝도 안 맺고 앞들로 나와 향나무 사이에 박힌 낙엽을 털어 내던 모양이다. 건성으로 하다 보니 앞 뒷마당을 몇 번 들락 였을 테고, 쪽문을 닫지 않아 넬리가 나갔던 모양이다. 넬리는 자라면서 움직이는 물체는 무엇이든 공격하려는 습관이 생기더니, 나중에는 오토바이는 물론 자동차가 지나가도 겁 없이 달려 들어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러다가 목줄이 풀린 넬리가 기어이 임자를 만나 꼴이었다.
 가까이서 살펴보니 앞다리 두 개는 괜찮아 보였고 주인도 알아보는 눈치였다.
차가 타고 넘은 것 같지는 않았다.
 금방 명줄이 끊어지지는 않겠구나 하는 판단과 함께 예전에 보았던 개 한 마리가 떠 올랐다. 아랫도리를 차가 타고 넘었는지 두 다리는 명태같이 말라 붙었는 데도 앞다리 두 개로 몸을 질질 끌고 다니는 개를 본 적이 있었다. 마침 비 온 뒤끝이라 흙투성이의 몰골이 더욱 흉했겠지만 그래도 쏘아 죽이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 애썼다. 불길하게도 그 개가 있던 기억 위에 넬리의 모습이 자꾸 겹쳐졌다. 어차피 개 구실을 하기 힘든다면. 나는 안락사를 생각했다. 그러다 일요일임이 떠올랐다. 그것도 쉽지 않을 듯 했다. 사람도 아닌 개를 위하여 일요일도 여는 동물병원이 있을는지 절망스러웠다.
 딸아이는 엎드려 넬리의 목을 껴안고 얼굴을 비비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딸아이가 약간의 틈을 주자 넬리가 오히려 떨어지지 않으려 기대왔다. 아무리 개지만 공포에 떨고 있음이 분명했다.
 넬리야, 죽지마! 너 죽으면 언니는 다시 나쁜 사람 될지도 몰라.
 나는 여지 껏 딸아이가 그렇게 슬피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다시 나쁜 사람이라는 딸아이의 중얼거림이 세차게 머리 속을 후려쳤다. 그 동안 잊었던 악몽이 되살아 났다. 정말로 넬리가 죽는다면, 그렇다면 딸아이가 다시 변할는지 모른다! 끔찍한 일이다.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었지만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아들이 나왔다.
 빨리 이멀젼시로 가야지 울고만 있음 다야?
 아들은 한 살 위인 누나에게 통박부터 주었다.
 일요일인데 어느 병원이 문을 연다고.
 얼른 내가 끼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곧 험한 언사들이 오가면 싸움으로 번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면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와는 달리 둘의 사이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나아지기는커녕 둘은 성인의 나이가 되면서 아예 대화를 끊고 지냈다. 꼭 필요한 말은 간단한 단어로 대신했다. 어쩌다 몇 마디 대화가 길어지면 금방 언쟁으로 변했다. 둘 사이를 좁혀 보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결과는 허사였다. 나중에는 차라니 둘 사이에 대화가 없는 게 오히려 편하기까지 했다.
 전화 해 봤는데 이멀젼시 애니멀 하스피텔이 두 곳이 있대, 센데이와 홀리데이만 오픈하는.
 그러고 보니 늦잠을 자거나 소파에서 뒹굴며 텔레비전이나 보는 줄 알았던 아들이 이미 사태를 파악한 모양이다.
나는 녀석의 모습을 본 기억이 없는 데 어느 틈에 이런 사고 대처 능력이 있었는지 대견했다. 하긴 대학을 2년씩이나 마쳤으니 부모의 눈높이가 아니라면 벌써 다 큰 녀석이긴 하지만.


 아이들만 보내기가 뭣해서 아내가 따라 나서기로 했다. 둘만 있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데 그 전에 가족끼리 간단히 결정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동물병원 응급실이 하나는 가깝지만 다운타운에 있었고, 다른 하나는 외곽에 있었다. 마침 일이 공교롭게 되느라고 자동차에 문제가 생겨 다음날 정비소로 들어갈 약속이 되어 있었다. 응급실은 다음날 아침인 월요일 8시까지만 열기 때문에 당장 입원을 시켰다가, 다음날 새벽에 다시 개를 찾아 또 다른 병원에 입원시켜야 했다.

사람이라면 앰블런스에 맡기면 그만이지만, 개는 그런 일이 일일이 주인의 몫이었다.거리는 가깝지만 언제 서 버리지 모르는 차로 복잡한 다운타운을 들락이기는 꺼려졌다.그래서 내린 결론은 일단 외곽에 넬리를 입원 시킨 후 자동차는 그곳에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집으로 가는 일정을 택했다.이렇게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언성을 높여야 할 대목이 분명 있을 것 같아 조마조마 했는데 둘은 의외로 차분했다.딸아이와 아들이 얼굴을 맞대고 진지하게 대화라는 모양을 보기는 참으로 오랜만이다.둘 만 두어도 하루 종일 재잘대며 잘도 놀던 생각이 영화처럼 흘렀다.평소에 깔끔을 떨던 딸아이 였지만 핏물 섞인 오물이 옷에 범벅이 되어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자동차에 엔진을 걸어 놓은 아들이 큰 수건 두 개를 가져와,하나는 자기 누나 옷에 받혀주고,하나는 접어서 임시 등받이를 주었다.딸아이가 넬리를 안은 불편한 자세가 마음 걸렸던 모양이다. 넬리를 태운 세 식구가 사라지자 집안은 갑자기 적막에 싸였다. 혼자만 팽개쳐진 채 모두들 떠나버려 허전함과 두려움에 떨던 어릴 적 공포가 꿈결처럼 가물거렸다.


 진돗개 한 마리 안 키워 볼텨?
 3년 전 넬리와의 인연은 이런 전화 통화에서 시작되었다. 이민 선배인 그는 딸이 셋이나 돼 늘 개를 키웠는데. 진돗개라니 한 마리 더 키워 보고 싶다며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개라면 어릴 적 집에 키워 보기는 했었다.
늘상 동네 사람들이 그렇듯, 집안의 어른들도 강아지 한 마리를 구하면 적당히 키워 삼복 중에 잡아 먹게 마련이었다. 그러니 요즘 눈으로 보면 키웠다고 불 수도 없겠다.
 글쎄요, 그런 생각도 해 보았는데 한 번 생각해 볼까요, 어쩌구 하면 머뭇거리는 데 팔팔한 성격의 선배는 알았어하며 찰칵 전화를 끊었다. 사람도 참, 무엇을 알았다는 건지. 이런 생각이 오래 꼬리를 물 겨를도 없이 선배는 곧바로 들이 닥쳤다.

 진돗개 순종이라는 군.
 선배는 밑도 끝도 없이 강아지 한 마리를 던져 놓고 정차금지 구역에 차를 세웠다며 총총 사라졌다. 졸지에 강아지 한 마리가 생기고 보니 한 동안 어리벙벙했다. 강아지는 아직 진돗개의 특성이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이목구비도 가지런하고 털도 뭉실한 게 귀여웠다.
 아직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바들바들 떠는 녀석을 조그만 상자에 휴지를
깔고 넣으니 이내 잠들었다.


 그러고 보니 개를 한 마리 키워 볼까 생각했던 적이 없지는 않았다.
 딸아이가 사춘기 때였다. 둘레에서 흔히 듣는 얘기지만 나와는 무관하게 여겼던 일들이 차츰 현실로 나타났다. 첫번 째 징후는 전화통화가 길어지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기를 들고 살았다. 그러더니 학교 생활이 엉망으로 변해갔다. 그도 그럴 것이 이불을 뒤집어 쓰고 라도 밤새껏 전화에 매달렸으니 등교시간에 맞춰 일어나기란 불가능했다. 달래 보고 야단도 쳐봤지만 허사였다. 반듯하고 야무지던 애가 불안해지고 산만해 보였다. 외출 시간이 불규칙해짐은 물론 외박하는 날까지 생겼다. 담배 냄새도 나고, 가방에서는 본드 튜브도 나왔다. 이쯤 되다 보니 학교가 문제가 아니었다.나는 감정조절 능력이 마비되 전화기를 부셔도 보고,생일 때 선물한 옷을 찢어버리는 무지막지한 행동도 해 보았지만,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불똥은 엉뚱한 데로 튀어 아내와 사이에 쌓여가던 감정의 골만 깊어졌다.
 전전긍긍하다 보니 둘레에는 쉬쉬하며 숨겨서 그렇지,나와 같은 걱정으로 속태우는 교포들이 의외로 많았다.하지만 이런 둘레의 사정도 나에게 큰 위로가 되지는 못했다.마약으로 폐인이 되거나 아예 가출해 버리는 애들도 있다며 가벼운 탈선은 나중에 좋은 경험이라는 위로도,위로가 아니라 딸아이가 그렇게 될 런 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둔갑 됐다.아무리 머리를 흔들어도 마약에 절은 딸아이가 어른거렸다.왜 일까.도대체 무엇 때문에 딸아이가 그렇게 망가지는 것일까.어른들에게도 애로가 있듯 이민 2세들에게도 갖가지 어려움이 있겠지만 도무지 그 이유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혹시 그 이유가 가정에서 비롯되었다면 단서가 될만한 일이 있기는 했다.아내와의 사이에 쌓여가던 감정이 폭발되어 심하게 부딪치던 장면을 딸아이가 목격한 적이 꼭 한 번 있었다.영어에 한계가 있는 중년의 남자가 카나다로 이민 와서 가질 수 있는 직업이란 대개 몸으로 때우는 일이 고작이다.나라고 예외는 아니었다.대신 아내는 달랐다.어찌 된 일인지 비슷한 수준의 일자리는 남자에 비해 여자 할 일이 휠씬 많았다.너와 내가 수입이 같은 데 내가 왜 꿀리냐는 아내의 생각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나는 자꾸 작아지고 아내는 자꾸 커지는 대각선이 마주치는 점에서 말하자면, 최후의 결전을 벌렸던 셈이다. 아내보다 작아질 내일의 내 초라한 초상을 알기에 통곡하는 심정으로 치사하게 아내의 과거까지를 물고 늘어 졌을 것이다. 그런데 없는 줄 알았던 딸아이가 밖에서 울고 있었다.
딸아이가 자세하게 들었다면 아내의 숨겨 온 역사가 고스란히 들켰을 런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나이가 아니었고, 또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후로는 감정의 골이 깊어도 앙금으로만 쌓아 놓을 뿐 부딪치지는 않았다. 딸아이도 이내 그 일은 잊은 듯 했다. 하도 답답해서 추측 가능한 일들을 짚어 보았을 뿐 그런 일이 딸아이를 탈선 시켰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어른들의 문화적 고충-나는 6.25때 월남하여 일가를 이룬 외삼촌의 고생담을 전설처럼 듣고 자랐는데 그 외삼촌에게 편지를 쓰며 이런 표현을 했었다. 그래도 ,삼촌! 삼촌은 그때 말은 통했었잖아요?-못지 않은 상처가 있었는지 모른다, 아이라고 묵살당해서 그렇지. 영어를 못하여 자기 또래에게도 굽신거리는 아버지.어머니로 변해 버린 듯한 엄마.자기보다 현저히 앞서가는 동생의 영어실력.이런 사람들의 얼굴이 감당하기 힘들게 낯 선 얼굴로 변해 갔을지 모른다. 한국말도 영어도 잘 해 보였지만, 사실은 둘 다 서툴었는지 모른다.
 그럴 즈음, 말썽을 부리던 어느 집 아이가 개를 사줬더니 거기에 정을 붙이며 많이 달라지더라는 얘기를 들었다. 나도 솔깃해서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다가 선배에게까지 흘렸던 모양이다. 말하자면 개라도 한 마리 길러볼 까 하는 내 넋두리를 선배는 잊지 않고 기억해 두었다가 진돗개로 배려해 준 셈이다.


 병원에 간 식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너 시간 동안 별 검사를 다 했는데도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머리나 뱃속은 크게 다치지 않았다구, 뒤에 다리 두 개가 다쳤대요. 엑스레이를 보여 주는 데 다리 하나는 완전히 부셔졌구, 다른 하나는 관절이 빠져 나왔다구요. 자세한 것은 조사가 끝나봐야 안대구.
 아내였다. 음성이 짐작보다 활기 찼다.
 우선은 넬리가 죽지 않을 런 지도 모른다는 검사 결과가 아내를 그렇게 만든 모양이다.
 애들한테 뭣 좀 먹였소? 하루 종일들 굶었는데.
 그렇찮아두 방금 주스랑 빵 한 조각씩들 먹었어요. 여태까지들 물 한 모금도 못 마시더니.
 아이들도 마찮가지였나보다. 잠시 바꿔 준 딸아이의 음성은 심한 감기환자처럼 젖어 있었다. 종일 얼마나 울었는지가 짐작됐다. 넬리의 입원비는 하룻밤에 정확히 740달러였다. 액수로 보아 사람도 받기 힘들 CT 나 MRI등 모두 받았을 것으로 짐작됐다.


 다음날 아침 어수선하게 두런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불면증이 따라다니는지라 수면제 삼사 마신 술이 과하여 깊은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날이 채 밝지도 않은 새벽인데 아내와 두 아이는 외출 준비 중이었다. 응급실에서 넬리를 퇴원 시켜, 다시 다른 병원에 입원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병원에 두고 왔기 때문에 한 시간이 더 걸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서둘렀다. 내가 잠이 깰 까봐 조용히들 움직였다. 늦잠이 많던 집에 이례적인 풍경이었다.
통상대로라면 일찍 일어난 내가 발끝으로 걸음을 옮기며 출근 준비를 하고 넬리가 그 뒤를 졸졸 따라 다녔다. 언제부터인가, 내 출근 준비를 혼자 알아서 하는 일이 아주 자연스러워 졌다.
아침 식사는 물론, 도시락 준비도 습관이 되다 보니 공치사를 할 만큼 부담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쏘세지 조각이라도 던져 주면 낼름 받아 먹는 넬리가 옆에 있어 꼭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출근 때도 퇴근 때도 넬리만은 언제나 내 앞에 있었다.
 여덟 시간 정도의 취침은 잠을 못 잤다고 생각하는 아내에게 그날 새벽 기상은 확실이 무리였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얼굴이 병자처럼 부석부석했다.
선잠에서 깨어서인지 걸음거리도 불안했다. 그런 아내를 아들과 딸이 옆에서 부축했다.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처음 보듯 낯설었다. 이물질이 끼어 틈이 벌어졌던 사람들이 화해의 악수를 하는 모습 같았다. 아직 미명인데 넬리를 향하여 집을 나서는 식구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멀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 가슴으로 들어 오는 착각이 들었다.

 병원에서는 넬리의 성질 때문에 애를 먹는 모양이었다. 엔간히 사나운 개들도 병원에 가면 고분고분하기 마련인데, 넬리는 그 몸을 해 가지고도 성깔을 있는대로 부려 의사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더란다.
 순종이라고 가져 온 넬리는 자라면서 보니 아주 순종은 아닌 듯 했다. 딸아이는 진돗개 박사라도 되려 듯 도서관과 인터넷을 뒤지고 다녔다. 학교까지 때려 치웠던 딸아이 인지라 책을 가까이 하는 모습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했다. 딸아이가 찾아내는 진돗개의 사진과 비교하면 넬리의 주둥이가 조금 뾰족하고 목덜미의 털도 조금은 풍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천성은 영락없는 진돗개였다. 오히려 외모 만큼 야성이 섞였는지 주인이 아니면 무섭게 사나웠다.
 얼떨결에 강아지 한 마리가 생기기는 했지만 막상 집에 갖다 놓고 보니 난감한 일들이 많았다. 짐을 만난 것 같아 후회도 되었다. 개를 집안에서 키운다는 건 생각도 못한 일이다. 평소에 집안에서 개를 기르는 사람들을 경멸하는 말도 서슴지 않던 터였다. 우선 차고 한 켠에 자리를 마련 했는데 밤이 되자 어미를 찾는 낑낑 소리가 집안까지 들렸다. 마침, 늦게서야 귀가하던 딸아이가 이런 상황을 목격하고 신경질로 나왔다. 길러서 잡아 먹을 거냐고 따졌다. 딸아이가 방으로 옮기고 우유를 주자 몇 모금 핥더니 이내 잠들고는 신기하게도 밤새 조용했다. 다음날은 꼬리까지 흔들었다. 밥 한 숟갈을 고깃국에 말아서 주려던 아내는 또 한 번 딸아이에게 호통을 맞았다. 딸아이는 단번에 달라졌다. 도서관으로 달려가 책을 한 아름 빌려 오고, 인터넷을 뒤지고, 동물 병원을 다녀 오며 개를 기르는 준비를 마친 딸아이는 헌법을 반포하듯 개를 기르는 규칙을 발표했다. 언제까지는 무엇을 하루에 몇 번 씩 먹이고, 또 얼마가 지나서는 무슨 주사를 맞히고 먹이는 무엇으로 바꾸고, 쵸콜릿은 절대로 주면 안되고.딸아이가 어느새 개 기르는 전문가로 변한 것 같아 어리둥절했다. 얼마나 복잡하고 단호한 지 그새 개를 기르는 방법이 완전히 바뀌었나 착각이 될 정도였다. 한국에서는하며 예전에 개 기르던 얘기를 꺼내다가 호되게 당하고는 아내나 나나 쑥 들어갔다.
 딸아이가 개를 제대로 기르긴 기를 모양이었다. 이름도 자기의 영어 이름에서 두 자를 바꾸어 NELLY(넬리)라고 붙였다.

 넬리는 자라면서 어찌나 깔끔한 지 어려서 뒤뚱거릴 때 두어 번 카펫을 적신 후로 실례라고는 몰랐다. 막연히 염려했던 귀찮은 일들 이를테면, 대소변을 아무 데나 흘리고 신발이나 옷을 물어 뜯는 일 등은 일어나지 않았다.
깜박해서 이틀이나 용변을 못 누인 적이 있는 데도 끽 소리 없이 참을 정도였다. 좋아하는 음식을 주어도 게걸스레 덥석 물지 않았다.
 나는 넬리의 커가는 모습을 보며 조용하고 단정하던 형을 떠 올리곤 했다.
형은 나와는 달랐다. 훌쩍이는 콧물을 팔 소매로 닦으며 개구쟁이로 뛰놀다 문뜩 바라 본 형의 모습은 언제나 가을 하늘처럼 깨끗하여 나를 주눅 들게 했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땀 투성이가 되어 쉰내가 나는 데도, 형은 어떻게 왔는지 이마에 땀 한 방울 없이 코밑에 솜털이 보송보송하기까지 했다. 장마 끝무렵 웅덩이가 패인 흙 길을 걸어도 나와는 달리 형의 바짓가랑이에는 요술쟁이처럼 흙 한 덩이 묻어 있지 않았다. 그렇게 조용하여 풀잎 냄새가 날 것 같던 형이 떠나간 것도 벌써 오래 전 일이다.


 몰골이야 어떻건 살아서 돌아온 넬리가 다행이긴 했지만, 당장 닥친 일들이 난감했다.
 무엇보다 용변을 누이는 게 제일 큰 문제였다. 관절이 빠진 다리는 몸에 붙여 밴드로 감았으니 꼼짝달싹 할 수 없고, 나머지 다리를 사용해야 하는 데, 그마저 여러 조각으로 금이 가 아직 완전히 붙지 않은 상태이니 온전히 설 수가 없었다. 잘못 서다가 금간 뼈들이 아주 내려 앉으면 이 천불을 들여 뼈 속에 쇠를 박는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경고가 있고 보니, 조마조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그만 변화에도 평소의 습관대로 벌떡벌떡 일어나려 해 가슴이 조였다. 그래서 생각해 낸 아이디어가 배 밑에 수건을 감가 등쪽으로 손잡이를 만들어 넬리가 일어서려는 기척이 있으면 개보다 먼저 사람이 들어 올리는 방법이었다. 말이 쉽지 항상 개 옆을 떠나지 못하고, 개보다 잽싸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너무 낮으면 다리가 땅에 닿고, 너무 높으면 거꾸로 물구나무 서는 꼴이 되어 놀란 개가 요동 치다 보면 동동 매달리거나 바닥에 쳐박히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가족 모두가 굿 판처럼 난리를 치뤘다. 사고를 당하고 보니 몸에 손 대는 걸 질색하는 진돗개의 습성이 원망스러웠다. 순한 개 같으면 주인이 안아서 처리하면 편할 텐데.
 그래도 처음에는 별 탈 없이 지나가 주었다. 입원해 있는 동안 줄 곧 링겔로 버텼는지 배변의 양과 횟수도 그리 잦지 않았다. 그러나 먹이를 조금씩 늘려 가면서 그야말로 사투가 시작됐다.
어쩐 일인지 갈수록 나아지는 기색은 없고, 오히려 점점 심해졌다. 넬리는 배변이 시작되려면 입을 벌리고 혓바닥을 길게 빼 숨을 헐떡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백 미터를 전속력으로 질주한 선수가 숨을 고를 만큼 숨이 턱에 닿아서야 요동을 시작했다. 그런 기색이 보이면 한 사람을 목줄을 짧게 쥐어 몸의 흔들림을 줄이며 넬리를 어르고, 또 한 사람은 아랫도리를 들어 올렸다. 그럴 때면 아내는 신문지를 펴 들고 용변을 받으러 넬리의 항문을 쫓아 다녔다.

사람과 개가 모두 녹초가 될 만큼 휘 젖고서야 겨우 팥죽 같은 혈변을 흘렸다.
그것도 갈수록 심했다. 변이라기 보다는 피가 썩은 오물같이 비릿하게 역한 냄새가 났다. 처음에는 혈변이 손등에 묻고, 얼굴에 튕겨도 신문지도 까느라 야단했지만 곧 카펫까지도 포기해 버렸다.
이런 난리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때없이 반복됐다. 오죽하면 아내가 임시 휴가까지 내었다. 나도 지쳤지만, 아내는 지치다 못해 마음까지 약해지는 눈치였다. 넬리가 커가는 사이에 약속은 안 했는데도 식구들은 저마다 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분담됐다. 아침에 산책과 용변은 내 차지였고, 먹이는 챙기는 일은 아내의 몫이었다. 그 외에 목욕을 시키고 병원에 드나드는 일들은 딸아이가 맡았다. 넬리에게 제일 정성을 쏟기는 딸아이였지만, 넬리가 제일 따르기는 오히려 먹이를 주는 아내였다.
 식구들은 모두 지쳐갔지만 오히려 넬리를 돌보는 일은 갈수록 적극적이었다. 그리고 익숙해졌다. 누구 하나 꾀를 내거나 싫증을 내는 식구는 없었다. 신경이 곤두 섰는데도 서로 부딪치는 일도 없었다. 밤을 지키는 일은 주로 아내와 내가 맡고, 대신 낮에 고생한 아이들은 재웠다. 우리 둘도 한 사람은 소파에 박혀 새우잠을 자다가 증세가 시작되면 깨웠다. 그런데 아내는 내가 눈을 붙이려면 매우 불안해 했다.
아내가 나를 의지하고 싶어 하는 것을 보기는 오랜만이다. 마치 내가 쓰고 있는 우산 속으로 밀고 들어 오는 착각이 들었다. 그건 영락없는 예전 아내의 모습이었다.
 아들과 딸아이 둘만 놔두면 언제 험악한 분위기가 될 지 모른다는 걱정도 기우였다. 아들은 그 동안 넬리를 싫어하는 줄 알았다. 딸아이가 보는 앞에서 발길로 툭툭 지르고 깽 소리가 나도록 완력으로 찍어 누르기가 일쑤였다.

그러면 딸아이는 자기가 모욕을 당하듯 도끼눈으로 맞섰다. 그런데 그런 아들이 놀랍게도 수많은 넬리의 모습을 디지털 카메라로 컴퓨터에 저장해 놓고 있었다.
부모가 사준 게 아니라 자기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샀으니 말은 안 했지만, 곱지 않은 시선으로 흘겨 보았던 디지털 카메라였다. 사고가 나자 다른 식구들이 의아할 정도로 넬리에게 집착하던 아들이 꺼내 놓은 넬리의 사진이었다.

얼마나 되었다고 넬리의 생생한 모습은 신선하기까지 했다. 사고를 당하던 날 아침에 찍은 사진도 있었다. 밖에 있는 식구들을 유리를 통하여 바라보며 뒷발은 앉았고, 윗몸은 바짝 일으킨 뒷모습 사진이었다. 갑자기 그런 넬리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열망처럼 끓어 올랐다. 나와 아내는 물론이고, 딸아이는 너무나 감동하여 동생의 진심이 믿어지지 않는 눈치였다. 생각해 보니 무심코 넘겼던 아들의 행동도 떠 올랐다. 아들은 개밥으로는 고급인 고기 통조림을 심심찮게 사다 놓곤 했었다.
  넬리야, 너 몰랐어?. 오빠가 너 그렇게 사랑한 거.
 딸아이는 엎드려 지쳐있는 넬리의 뺨에 얼굴을 비비며 너무나 감동하여 눈물까지 훌쩍였다.
 아들은 딸아이가 좋아하는 넬리이기 때문에 대놓고는 못하고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애정을 가졌던 모양이다.


 그날 밤에 악몽 같던 일이 떠 올랐다.
아들과 딸이 견원지간이 되어 집안 분위기를 흉가처럼 황량하게 만든 사단은 아들의 연행에서 비롯되었음이 확실하다.
애매하게 경찰에 연행되어 다음날 돌아 온 아들은 거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원래도 침착한 아이였지만 말수가 더욱 적어지고 책상에 앉는 시간이 길어져 모범생으로 변한 듯이 보였다. 사실상 성적도 올랐다. 그만 또래들의 유행은 경멸하는 눈치였다. 그러다 문득 언젠가부터 아들이 딸아이와 일체의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딸아이의 방황이 절정에 달해 집으로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지경으로 외박이 잦던 어느날 밤, 갑자기 경찰 두 명이 들이 닥쳤다. 가슴부터 쿵하고 내려 앉을 이유는 충분했다. 경찰은 무례하지 않았지만 굳은 표정으로 양해를 구했다. 그런데도 투박한 구두를 신고 뚜벅뚜벅 올라오는 모습이 침략자 같았다. 칼부림 사건이었다. 사내놈 들 사이의 사건이니 딸아이가 직접 연관되지는 않았겠지만 공포가 밀려왔다. 요컨데 딸아이의 방을 수색할 수 있냐였다. 수색영장은 내밀지 않았는데 내 쪽에서 제발 그렇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경찰이 개입되면 내 힘으로 속수무책이던 해결 방법을 찾을 런지도 모른다는 실날 같은 희망에서였다. 주로 전화번호와 메모쪽지를 뒤졌다. 무슨 조직 관계를 알아내려는 듯 했다. 경찰의 수첩에는 아들의 이름도 있었다. 의아했지만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 딸을 구해는 길이 어디에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들은 혐의가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였지만, 딸아이 친구들 수첩에 아들의 이름이 있을 것이라는 쪽으로 이해했다. 자가 깬 아들은 영문도 모른 채 경찰에 끌려가는 꼴이 되었다. 다음날 돌아 온 아들은 물어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별 말이 없었다. 그러며 웃음기와 밀수가 적어졌다.
 딸아이의 열병이 시작된 건 그 즘은 이었다. 얼만 간의 도피생활에서 고생은 했지만 심각하지는 않았다. 패거리들의 조직관계를 고자질 했다는 누명를 뒤집어 쓰지 않기 위한 도피라 내가 돕지 않을 수가 없었다. 멀쩡하던 아이가 춥다는 말 한 마디를 남기며 갑자기 쓰러졌다. 마치 교통사고를 당하듯 순식간의 일이었다. 응급실로 실려 갔는데 도무지 병명 나오지 않았다. 열이 40도를 오르내리게 되니까 딸아이는 의식을 잃고 헛소리를 했다. 의사들도 당황하여 다른 병원에서 그 방면의 권위자를 초빙하기까지 하는 모양인데 역시 병명은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는 혹시 개에게서 감염되지 않았나 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넬리는 진돗개이고, 진돗개는 카나다에 잘 알려져 검증된 개가 아니다 보니 혐의를 받기에 충분했다.
애매하게 넬리만 곤욕을 치뤘지만 역시 아니였다.
 아빠, 넬리 잡아먹지 마!
 딸아이는 무의식 중에도 가끔 이런 말을 내 뱉어 사람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딸아이가 한국사람이 개를 먹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내가 별다른 내색을 한 적이 없는 데, 왜 그런 헛소리를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한참 속이 썩을 때는 당장 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않겠노라고 장담했는데 그게 얼마나 막된 소리였는지 가슴이 서늘했다.
 형의 얼굴이 떠 올랐다. 도둑 맞을 것도 없는 시절. 형은 고등학생, 나는 중학생이었다. 우리는 집에서 기른 쫑을 끌고 뒷산으로 올랐다. 집의 어른들도 침착한 형이 쫑 하나 쯤은 실수 없이 해 내리라고 믿었던 모양이었다. 형이 앞서고 나는 보조역할을 했다. 단단히 뻗은 가지에다 쫑을 매다는 데까지는 일단 성공했다. 그런데 매듭이 부실했던 모양이다. 공중에 매달려 버둥대던 쫑이 매듭이 풀리며 툭 떨어졌다. 놀란 우리는 쨉싸게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죽다 산 개가 미칠 수 있고, 주인도 물 수 있다는 것 쯤은 우리도 알고 있었다.
여차하면 나무로 기어 오를 판이었다. 그러며도 한편으로는 쫑!쫑! 하며 살살 달래 보았다. 멍하니 앉았던 쫑은 그제서야 정신이 나는지 주인을 알아보고 꼬리치며 다가왔다. 형은 다시 매듭을 단단히 만들어 쫑을 매달아 올렸다.
 됐다!
 쫑이 쭉 뻗자 형은 단호히 말했다.
형의 얼굴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밴 것을 보기는 그 때가 처음이었다.
 사경을 헤매던 딸아이가 거짓말처럼 툭툭 털고 일어나기는 열병을 얻을 때와 비슷했다. 어찌나 쉽게 일어났던지 나까지도 싱거움을 느낄 정도였다. 말장난으로 표현하면 열병은 열이 내려가니까 그냥 끝인 병이었다. 그래도 하루 이틀 더 두고 보자는 의사에 권유에 따랐지만, 딸아이에겐 아무 일도 나타나지 않았다. 병이 나으면 반가워야 할 의사가 오히려 실망하는 눈치였다. 끝내 병명은 밝혀지지 않았다. 딸아이가 퇴원 할 때는 교활한 속임수에 넘어갔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 보았다. 고개를 옆으로 까닥하는 의사도 있었다.
 집으로 돌아 온 딸아이는 겉으로는 변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달라진 게 있었다. 식성이었다. 딸 아이는 일체의 고기를 거부하는 쪽으로 식성이 변했다. 음식에 고기가 들어가면 작은 조각까지 일일이 골라 내었다. 아무 고기나 마다하지 않던 아이인데 완전히 채식주의자로 변했다. 가족 중에 고기를 먹지 않는 식구가 있음은 상상외로 불편했다. 또 걱정이 되기도 하여 물어 보면 대답은 간단했다. 그냥 싫다는 거였다. 답답했지만 그냥 싫다는 데 더 할말이 없었다. 고기를 먹지 않아서 그런지 성질도 한결 온순해졌다. 대신 공부에 의욕을 보였다.
 무엇보다 때려치웠던 공부에 관심을 보이자, 그 동안의 실망이 기대로 바뀌었다. 백인이건, 흑인이건, 딸아이 또래의 학생이 책가방을 들고 가는 것을 보면 부러움으로 멍하니 바라보곤 하던 나였다.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들은 그런 딸아이에게 경멸의 태도를 보였다. 얼마나 가는지 보자는 눈치였다. 많이 변한 딸아이가 눈에 보이도록 비위를 맞추며 접근해도 아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아들은 딸아이와 관계된 것이면 무엇이든 거부했다. 넬리도 그 중의 하나였다. 딸아이가 애정을 쏟아 붓는 한 넬리는 그 대상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언젠가 둘의 사이를 좁혀 보려고 의도적으로 심하게 다그치고 몰아 붙여 보았다.
 몰라서 그렇지, 그것들이 사람인 줄 알아? 쓰레기지.
 아들은 의외로 완강했다. 나보고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는 식이니 자기는 안다는 말인데그렇다면, 그날 밤 경찰서에서 도대체 무얼 보았다는 말인가.나는 힘의 한계를 느끼며, 아들이 폐쇄적으로 변해가지 않기 만을 바랐다.


 갈수록 더해지던 넬리의 고통이 끝을 향해 치닫는 것 같았다. 고통이 시작되면 발작으로 변하고 눈빛이 달라졌다.
광기가 번득이며 바닥에 깔아 놓은 신문지를 좀벌레처럼 순식간에 갈기갈기 물어 뜯었다. 그럴 때는 주인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입에서 끈적이는 액체까지 줄줄 흘림으로 보아 분명 제정신은 아니었다. 집안은 공포에 싸여갔다. 피와 오물이 썩은 비릿한 냄새가 집안을 더욱 절망스럽게 가라 앉혔다. 나도 등골이 섬뜩했다. 쥐약을 먹은 개가 거품을 입에 물고 날뛰다 서서히 사지를 늘어뜨리듯 넬리도 그렇게 가기를 바랐지만 아직은 때가 이른 모양이었다.
발작을 끝낸 넬리가 선한 눈빛이 되어 꼬리를 흔들어도 선 듯 다가가지 않았다.
아내는 완전히 지쳐 내 뒤에서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그러며도 심한 알러지 환자처럼 목소리는 젖어 있었다. 툭하면 아내 입에 붙어 다니던 카나다라는 말은 쑥 들어갔다. 카나다에서 누가라던가 여기가 카나단데는 아내가 즐겨 쓰던 말이다. 아내 뿐 아니라 엉덩이에서 뿔이 돋는 한국 여자들이 흔히 쓰는 말이다. 웃기지 마라, 남자들아. 카나다가 여자 천국인데 전처럼 계속 당할 줄 알고? 대충 이런 뜻이었다. 이미 나는 권위의 대부분을 잃어버렸건만 아내는 돋아내려는 싹마저 싹둑싹둑 자랐다. 그러던 아내가 내 등 뒤에서 나를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 없으면 무서워.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우려면 아내는 이런 말로 나를 잡았다. 사실 넬리는 그 동안 우리집의 한 식구였다. 호칭도 넬리를 중심으로 아빠,엄마,언니,오빠로 부르는 데 익숙했다. 말하자면 늦게 얻은 늦동이나 다름 없었다. 우리 네 식구는 저 나름대로 실 한 가닥씩을 풀어내 그 끝을 넬리의 몸에 깊숙이 박아 놓았던 셈이다.
 그런 넬리가 악화되는 상황으로 보아 아주 미칠 수도 있다고 판단되었다. 생각이 그 쪽으로 미치자 끔찍한 장면이 어른거렸다. 여차하면 사용할 날카로운 연장을 떠 올리다가 머리를 가로 저었다. 대신 소파 두 개를 기역자로 붙이고 앞쪽은 철망으로 막아 넬리를 감금 시켰다. 우리에 갇혀서도 발작이 멎을 때는 순한 얼굴을 하고 꼬리까지 타박타박 흔들었다. 그런 넬리와 눈을 마주치는 게
 고역이었다. 그날 밤 넬리는 최후의 결전이라도 벌리듯 소파 모서리를 물어 뜯다가 이빨이 부러져 나갔다. 순식간에 가죽은 너덜거리고 이빨이 나사못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 와중에도 딱하고 이빨 부러지는 소리가 딱총처럼 또렷했다. 마지막 파열음 같았다.
 넬리가 너무 아픈 가보다.
 나는 누구에게 랄 것도 없이 몇 번 이런 말을 했었다. 안락사를 말했지만 꼭 꼬집지는 않았다. 아들도 딸아이도 그 말뜻을 아는 눈치였지만 반응은 없었다.
 그런데 아들도 딸아이도 이제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었는지 넬리의 발작이 끝나자 병원에 갈 차비를 차렸다.
이번에는 아들이 넬리를 안았다. 식구들은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넬리야, 아빠한테 빠이 해야지.
 문을 나서던 아들이 잠시 멈춰 나직이 넬리에게 말했다. 아들의 목소리도 역시 젖어 있었다.


 그렇게 갔던 넬리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던 넬리가, 새벽녘이 되어 다시 돌아왔다. 반가움과 두려움이 동시에 오르내렸다. 나는 줄곧 주사 한 대를 맞고 편안히 몸을 늘어뜨리는 넬리를 상상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다리와 몸통을 감았던 붕대도 풀었다.
어기적이면 네 다리로 걷기까지 했다.
나는 비로소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원인은 엉뚱한 곳에 있었다.
 관절이 빠진 다리를 몸에 부착시킬 때 방향도 잘 못 잡고 너무 압박 시켜 발꿈치가 장을 누른 게 원인이었다.
 더구나 넬리의 몸무게가 반으로 줄면서 발꿈치가 막대기 꼴로 뾰족해지다 보니 압박은 더욱 심했다. 발꿈치에 찔린 장에 염증이 생기고, 염증이 심해지며 변이 내려가는 길을 막아 발작까지 일으키는 고통이 따랐다. 장이 썩는 고통!
넬리가 바로 장이 썩는 고통을 겪었던 것이다.
 이제 살아난 겁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부러진 다리나 관절은 많이 좋아졌다며 담당 의사가 덧붙이더란다. 진통제와 염증 치료 약을 먹은 넬리는 오랜만에 편한 모습으로 잠들었다.
 거실에서는 컴퓨터에서 넬리의 사진을 꺼내 보내 아들과 딸아이가 두런거리는 소리가 늦게까지 들렸다. 참으로 듣기 좋았다. 아내도 그런지 몸을 조그만 하게 만들어 내 가슴을 파고 들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