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 - 김 민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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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세이지 댓글 0건 조회 3,845회 작성일 11-08-1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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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 아이랜드 훼리가 스테이튼 아일랜드에 도착하자마자 맨하탄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떼로 몰리며 질서 정연하게 배 안으로 흡수 됐다. 따라서 할 일 없이 서성이던 비들기들도 그들을 쫒아 빠르게 날라 갔다. 이제부터 30분간 배 안에서의 무대는 펼쳐 지며 드럼과 트럼팻을 부는 악사는 연주를 시작했다. 훼리 승객들은 하나 둘 씩 자리에 앉자 커피에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는 사람, 신문이나 잡지를 읽는 사람, 민영같이 눈을 지긋히 감고 모자른 잠을 자거나 생각하는 사람들로 나누어졌다.
고요히 그리고 아주 묵직하게 배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곤 빠르게 허드슨강을 헤치며 질주해 나갔다. 민영은 속이 탁 트이는 허드슨 강을 바라보는데도 마음은 여전히 답답 했다. 느닷없이 어머니 얼굴이 얼빗 스처간다.
“ 사는 게 다 그렇다. 그러니깐 숨을 조이며 살지는 마라, 아무리 타국땅에서 살기 힘들다고 해도 6.25전쟁 만큼 하겠니? ”
어머니 말씀대로는 그 옛날 6.25전쟁만큼 다급하겠느냐마는 아니 외정 시절에 격은 할머니의 고통을 감히 비교가 될 가마는 그 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그러자 또다시 가슴이 답답해지며 며칠 전 제임스와의 분쟁이 또다시 가슴을 친다.
“ 니 까짓게 뭐니? 등신 개자식... ”
“ 니 까짓게 뭐니? 등신 개자식... ”
민영은 머리가 터질 것 같에 방문에다 머리를 처박으며 소리쳤다. 그러나 방에 있는 제임스는 끔적도 안했다. 민영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속에서 터져 나오는 독기를 있는 대로 퍼부었다.
“ 도대체 니 까짓게 뭔데 나를 비참하게 하니? 어디 말이라도 해 보자구 비겁하게 굴지말고. 그래 난 등신이라 너를 따라 이 땅에 왔다. 그런데 개만도 못하게...”
제임스는 끝내 방문을 걸어 잠구고 열지를 않았다. 아니 한 번 속이 틀리면 며칠을 방문을 잠그고 있는 버릇은 끝내 고치 지 않했다.
민영은 악을 쓰다가 제풀에 지쳐 카펫바닥에 그대로 누워 잠이 들었다. 얼마를 지났을가 누군가 민영의 머리를 스다듬은 느낌에 소스라쳐 눈을 떠보니 동우였다. 다섯 살 먹은 동우는 엄마가 안스러운지 젓가락같이 가는 손으로 민영의 머리를 쓸어 올렸다.
“ 대디가 오늘도 일이 많아 마미하고 말하고 싶지않데? 그래서 마미가 아퍼?”
“ 아냐, 엄마가 몸이 아퍼서 잠간 잠이 들은 거야. 그런데 언제 유치원에 다녀 왔어 난 그것도 모르고... 미안해, 슬기 엄마가 오늘도 수고하셨구나.”
집 가까이 슬기엄마가 있어 그나마 어려울 때 외로울 때 숨통이 트일수가 있어 다행이었다. 그러나 속 마음까지 내 보일수가 없었다. 민영은 아들 보기에 민망에 서둘러 옷을 추스르며 방으로 들어갔지만 눈치가 빤한 동우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졌다.
배는 자유의 여신상을 지나치며 맨하탄의 고층 빌딩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민영은 배에서 내리기 전에 볼일을 봐야 시내에서 민망한 일을 당하지않을 것같에 부지런히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안은 언제나 만원으로 볼일 보는 사람보다 화장하는 여인들로 가득했다. 눈을 치뜨며 검은 솔로 연상 올려부치는 여인, 돼지입술같은 입술에 좀더 돋 보이게 있는데로 덧칠하는 여인, 얼굴이 닳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두드려 되는 여인 그래도 남성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에게 이쁘게 보이려고 저럴 듯 극성이라 하겠지만 남성 또한 자기 만족을 위해, 여자에게 과시하고싶은 마음이나 다를 게 없었다. 그러고 보면 민영 역시 처음에는 제임스에게 멋있는 여인이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을 위해 살고 싶었다.
“쑤산 쑤산 ”
잘 곳이 없어 배 안에서 숙박을 하는 노인인지 모르나 일주일 전에도 그 이전에도 훼리만 타면 만나는 할아버지는 오늘도 여전히 배 안을 휘비고 다니며 구두를 딱으라고 소리를 쳤다. 배 뒤편에선 싸움이 났는지 악을 쓰는 여자 소리가 들렸다. 중년인 노랑머리여인은 머리가 산발이 돼서 “홧규, 에니멀 ” 하며 욕을 퍼부었다. 남자 또한 화가 나서 저리가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배 안에 사람들은 남의 집 불 구경하듯 모른척하고 있다. 그들은 다 알면서도 가장 신사, 숙녀인척 모른 척 하는 것이다. 스페니쉬인지모르나 얼굴이 푸루죽죽한 여인 또한 너는 떠들어라 나는 하나님을 전도 한다고 영어인지 어느 나라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성경구절을 열심히 읽으며 돌아다녔다.
민영은 그들을 바라보다가 “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하다가 또다시 제임스와의 분쟁에 화가 치밀었다. 오늘 따라 창 밖 넘어 허드슨 강이 평화롭게만 보였다. 그러나 강물 또한 하루인들 편안 날이 없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다가 메닥질을 쳤다. 강물 또한 그들대로 질서를 유지하며 자기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인생 또한 물살같이 그렇게 흘러가야한단말인가 아니 흘러가는 물살을 어떻게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단말인가.
민영이 제임스를 따라 미국에 온 지도 어느덧 7년, 이제 동우를 데리고 한국으로 다시 나가 사는 것도 결국 자기 살을 짓이기는 삶이요 한 분 계시는 어머니 가슴에 대 못을 박는 일이었다. 그러는 어머니 역시 초년에 미망인으로 살아온 할머니같은 인생은 아니지만 월남전에 특파원으로 가셨다가 졸지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민영과 민수를 키우느라 고생하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감히 이혼라니 말도 안되었다. 그래도 지금시대는 내 인생 내가 알아서 산다해도 어떻게 한 집안에 세 명의 청상이라니 말도 안되었다.
제임스는 평소에는 어느 가정이나 볼 수 있는 손색없는 남편이자 동우 아버지였다. 다만 어릴 적부터 양부모님 손에 자라 생긴모습은 틀림없는 한국 사람이지만 언어는 물론 정신 ,행동은 영락없는 미국인이라는 게 민영을 아연질색하게 했다. 하긴 민영이 1985년에 제임스를 따라 미국 올 때만 해도 그깐 언어가 뭐 그리 문제가 될가싶었다. 그런데 막상 미국에 오니 하나같이 불만투성이었다. 더욱이 한국인은 물론 동양인같은 사람도 찾아 볼수 없는 카나다 와 근접한 버팔로는 민영을 숨막히게 했지만 무엇보담 먹는 것이 문제였다.
어머니는 그때를 예상하고 김,멸치,고추가루를 싸주어 그런데로 몇 달은 견딜수가 있었지만 미국생활에 적응 할 수록 옛날 한국에서 먹던 것들이 민영을 괴롭혔다. 미국온지 3개월만에 생긴 제임스와의 충돌은 서로 언제 그랬다는 듯이 슬그머니 넘어갔다.
그 다음은 대부분 민영의 생트집이었는데도 제임스는 늘 미안해 했다. 사실 이런 경우 누가 누구에게 미안해 할 일이아니었다.
다만 생활 습관이 틀려서 언어가 안통해서 문화가 서로 달라서 생긴 일들이 그는 무조건 미안해했다. 그렇게 해서 서로 사랑과 인내로 모든 것을 참고 견딜 수가 있었다. 다행이 결혼한지 6개월만에 동우를 가졌고 동우를 낳고 한 일년은 그런데로 서로를 맞추며 살았다. 그러자 제임스가 다니는 컴프터 회사가 맨하탄 이전하므로 맨하탄과 근접한 스테튼 아일랜드로 이사를 했다. 스테튼 아일랜드 원래 이름은 리취몬드라면서 어린시절 부모님과 살았던 곳에 미련이 있는지 그곳으로 이주를 했다.
스테튼 아일랜드는 교통이 불편해도 버팔로 같이 삭막하지는 않았다. 더욱이 동양 그로서리도 있고 한국사람이 꽤 많이 살아 가까이 지나는 이웃은 없어도 눈인사라도 나누는 한국인이 있어 마음이 편했다. 이럴 때 한국 교회래도 나가면 좋으련만 제임스는 한국말을 못하니 그것도 불가능했다. 그렇게 뭔지 모르는 틀에 맞지않은 삶은 마치 엇갈린 수레바퀴같이 곧잘 삐그덕 거렸다.
민영이 제임스를 처음 만난 것은 한국에서 은행에 근무할 때였다. 제임스를 키워주신 양부모가는 제임스가 어느 정도 성인이 되자 한국인의 뿌리를 찾아 주겠다고 친절하게도 한국으로 보낸 것이다. 제임스 또한 다섯 살 때 헤어진 어머니를 어렵프시 기억하고 있는지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가 하는 기대로 한국을 갔다고 했다.
제임스가 달라를 한화로 바꾸기 위해 외환은행에 갔다가 은행창구에서 근무하는 민영을 보는 순간 어머니를 본 것 같은 느낌에 놀랬다고 한다. 그 후 그는 민영을 만나기위해 매일 은행에 오다시피했다. 그 때 제임스는 한국에 온지 일주일 정도였고 연세대학에서 하는 교포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석한 것이 민영과의 인연이 된 것이다. 제임스가 한국말을 할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자신의 한국 이름인 김상진이라는 것뿐이었다. 한 달 동안 그나마 한국말을 배운 것이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가세요 였는데 그것도 계세요, 가세요를 반대로 말하거나 차거나 춥다는 어휘를 구분 못해 오랜지 쥬수가 춥다고 해서 민영을 당황하게 했다.
민영이 제임스 부모가 어떻게 해서 미국으로 이주하게됐는지는 후라싱에 사는 제임스 아버지로부터 대충 들었을 뿐이다. 제임스 아버지는 어머니와 헤어지고 나서 다른 여인과 재혼을 했고, 두 명의 자식이 있었다. 제임스 아버지와 연락이 된 것은 결혼을 앞두고 양부모님 거처를 수소문하여 연락이 됐지만 아버지 입장이 그런지 제임스가 한국에서 결혼하고 케네디 공항에 도착했을 때 공항터미날 에서 잠시 뵈었을 뿐이다.
제임스 아버지는 그나마 제임스를 복지원에 데려다 줄 때 남긴 쇼설 카드넘버가 있었기에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 때 딱 한번 만났을 뿐 제임스는 더 이상 아버지에 관해 언급하지않았다. 다만 한국에서 약사였던 어머니 아버지가 취업이민으로 미국에 와서 자리를 못 잡고 허둥될 때 많은 문제가 생긴 듯 그래서 했다. 그래서인지 제임스가 어릴 때 기억으로는 부모님은 매일 바빴고, 어머니는 곧잘 어딘가 아퍼 침대에 누워 있거나 제임스 몰래 우는 것이 전부라고 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어느날 갑자기 보이지않았고 아버지마자 어디엔가 제임스를 데려다주고는 영영 이별이 됐다고 했다. 다행이 부모님과 같이 찍은 사진 때문에 어머니를 기억할 수 있다고 하는데 어릴 적 사진을 보니 겨우 다섯 살 나이로 제임스는 어머니를 많이 닮아 있었다. 그러고보니 동우 역시 다섯 살 나이로 제임스 어릴 때를 보는 것같에 마음이 아팠다.
민영은 그런 제임스를 생각하면 지금의 인연을 무 자르듯 자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제임스 어머니도 그를 두고 떠나지않으면 안돼는 절박함이 있었기에 떠나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과 민영 또한 견딜 수가 없는 압박감이 그와의 이별을 재촉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민영은 그런 제임스를 생각하면 지금의 인연을 무 자르듯 자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제임스 어머니도 그를 두고 떠나지않으면 안돼는 절박함이 있었기에 떠나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과 민영 또한 견딜 수가 없는 압박감이 그와의 이별을 재촉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때도 그랬다. 제임스 어릴 때부터 이웃에 살았다는 빨간머리 크리스틴이 전화를 하면 마냥 전화 통화를 했다. 미국에 온지 6개월만에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 때 였다. 뜻아닌 크리스티나가 오더니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가자고 했다. 제임스는 막 임신을 한 민영을 데리고 동창 모임에 가기가 그런지 아니면 영어를 못하는 아내가 가봤자 망신이나 당하지않을가싶은지 잠시 다녀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나간 것이 그날 밤 집으로 들어오지를 안했다. 그러나 입덧이 심했던 민영을 애써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크리스티나의 만남은 계속 되었고 그녀는 마치 제임스 옆에 민영이는 아무존재가 아닌 것같이 밤이나 낮이나 불쑥 불쑥 전화를 해됐다. 그럴 때마다 민영의 자존심은 땅으로 떨어지며 견딜수 없는 모욕감에 시달려야 했다.
제임스도 한때는 민영이와 같은 소외감을 느낄 때가 있었다. 민영과 결혼식을 올리고 한달 쯤 친정 집에 있을 때 물위에 기름 같이 누구와도 어울리지를 못했다. 그래도 그건 잠시였고 이내 미국으로 떠났기에 별 문제가 없었다. 다만 그와의 화합은 오직 한가지 길뿐 그가 한국문화와 언어를 이해하는 것과 민영이 영어를 잘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건 마치 민영과 제임스 사이에 가로막힌 산처럼 느꼈다. 산이라면 민영은 이미 처녀시절에 경험한 지독한 추억의 한페이지였다. 그런데 그 산이 이제 또다시 그녀 가슴을 가로막고 있었다.
여교시절 민영의 첫사랑, 선재는 유난히 산을 좋아했다. 그래서 한 달이면 두 번 쯤 산에 가서 지냈고 민영은 그런 선재가 낭만 적이고 멋있는 인생을 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친구 선영은 그런 선재를 보고
“ 뭐! 산을 타는 우리 오빠가 멋지다고 ? 넌 몰라도 너무 우리몰라서 하는 소리야. 엄마가 그러는데 예술이다 운동이다 하는 사람들은 모두 현실 도피고, 이기주위라고 하는데 난 그말이 맞는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우리 오빠도 아빠도 끄덕하면 산이다 골프다 하며 어머니를 외롭게 했거든 .”
고등학교 2학년 가을이었다. 선재는 왠일인지 백운대 등산에 동생을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단짝인 민영이도 같이 갈 것이고 선재는 이런 기회에 민영과의 만남을 게획한 것이다. 산악반의 조장인 선재는 몇몇 대학생들을 데리고 인왕산 줄기 백운대로 가는 날은 날씨까지 화창해 울긋불긋 등산복이 단풍들과 어울려 한무리의 꽃밭같았다. 정상에 오르자 산악부 학생들은 제가끔 버너에 쌀을 씻고 찌개를 끓이며 점심 준비를 했다. 두명의 여대생들과 민영, 선영도 물 심부름에 자잘구래한 심부름을 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한 그들은 산을 타기위해 자일을 어깨에 메고 바위산으로 갔다. 여학생들 또한 선재의 지시하에 산을 탈 만만의 준비를 하고 따라 나섰다. 다만 민영과 선영이는 남아서 먹고난 그릇들을 씻기위해 골짜기로 내려갔고 무려한 시간에 탠트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깜박 잠이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선재가 나타나서는 선영이 몰래 민영을 데리고 울창한 나무 숲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곤 무조간 민영을 아름드리 나무에 밀어붙이며 입마춤을 해 했다.
" 민영아 내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니 ? 이제 곧 대학 입시를 치러야 하니깐 그때까지 참아주는 거야 알았지.“
선재는 그렇게 말하고는 대원들이 찾겠다면서 서둘러 가버렸다. 민영은 너무도 순간적인 일이라 정신이 어떨떨 했지만 선재의 따뜻하고 감미로운 재취에 황홀했다.
평소 선재와의 만남은 어쩌다 선영이 집에 놀러 갔을 때 잠시 눈인사로 끝났지만 언제나 알 수 없는 선재의 뜨거운 눈길에 몸둘바를 몰랐었다. 그런데 그 의미를 그때서야 깨달은 것이다. 그 후 선재의 소식은 어쩌다 선영이가 흘린 말로 그의 소식을 들을 수가 있었다. 그러자 군대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선영이 집을 찾아갈 마음이었는데 마침 선재도 민영을 만나기위해 이별 파티로 동생에게 저녁을 사준다는 핑계를 된 것이다. 그 날 선재는 전에 없이 많은 말을 했고 앞으로의 계획은 군대 다녀와서 학기를 마치고 미국유학을 갈 거라고 은근히 민영에게 암시를 했다. 물론 그의 말속에는 민영과 같이 유학을 떠날 계획과 그래서 영문과를 선택하라고 했다.
선재가 군대에 입대하고 민영 또한 대학을 들어가야 하는데 형편이 그럴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삯바질 해서 사는 처지고 동생 민수도 있는데 민영까지 대학에 들어갈 형편이 못됐다. 그러자 친하게 지내던 선영이 마저 소원해 졌다. 선영은 대학생이고 민영은 사회인이고보니 자연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선재가 죽었다니 민영은 꿈을 꾼 것같이 정신이 멍멍했다. 선재는 그동안 두어 번 그나마 휴가때 잠시 은행에 들러 극장구경도 시켜주고 이런저런 위로의 말을 하고 갔는데 제대를 하자마자 그동안 산에 못갔다고 특히 하얀 눈이 덮힌 겨울 산은 기가막힌 절경이라면서 다녀오겠다고 했는데 영영 이별이 되다니
그런데 제임스가 나타나자 언제 그런 사랑은 했다싶게 그에게 빠지기 시작했다. 아니 미움은 미움으로 다스리고 사랑은 사랑으로 풀어나가야 되는지 사랑이라면 영원히 가슴속에 묻고 살 것같드니 어느틈에 선재를 잃은 가슴에 제임스가 밀어 닥친 것이다.
그런데 제임스와의 결혼이 다시 산으로 변하다니 그건 어쩜 선재의 망령이 시샘을 하는 것 같고 실지로 민영이 꿈속에 선재가 나타나 산으로 데려가면 마음이 후련하기보다 가슴에 돌덩이를 안은 기분같이 답답 했다. 그렇다면 민영의 산은 생의 업보란 말인가
서재겸, 작업실인 컴프터실에서 며칠을 지난 제임스는 얼굴에 쉬염을 하나 가득 달고 나와 후라싱에 가서 저녁을 먹자고 한다. 그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마음이 풀리면 민영을 위해 한국음식점에 가는 것이 대단한 선심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짓도 한 두 번이지 신물이 났다.
“ 이제 이런 짓도 그만 하자. 난 더 이상 참는 것에 한계를 느꼈으니깐 ”
저녁식사가 끝나자 제임스는 노래방으로 민영을 데리고 갔다. 이제 끝장을 낼 처지에 무슨 노래방이라니 기가막혔다. 그러나 따질 것은 따져야 했다.
“ 영, 제발 그만 두자, 저번에도 말했듯이 크리스티는 어릴 적 친구고 혼자 외롭게 사는 친구야 그러니깐 영이 이해를 해줘.”
“ 그러는 나는, 어머니 동생 모두 헤어져서 사는 나는 어떻고 ... 그 친구가 더 불쌍하다는 거니?”
“ 내 말은 그런게 아니라 영은 나도 있고 동우도 있는데 크리스틴은 부모,형제 모두 없잖아 그리고 이혼을 했잖아 그러니깐 나래도 위로를 해야할 것같에서.“
“ 그러니깐 크리스틴은 불쌍하고 나는 괜찮다는 것인데 그러는 나는 너에게 뭐니 그냥 옆에 붙어 사는 사람이니? 그러니깐 크리스틴은 너의 영원한 애인이란말이니? ”
“ 난 영의 마음을 이해 할 수가 없어 왜 그런 것이 화가 나는지. 크리스틴은 어디 까지 친구라고 했잖아.“
“ 어떻게 여자하고 남자하고 친구가 돼니? 그리고 결혼하고도 친구가 돼니?”
“ 그럼 나보고 어쩌란 말야, 정말 미치겠다.”
제임스는 화가나서 머리를 쥐어짰다. 그리곤 어딘가 가버릴 생각으로 노래방 문짝을 힘껏 걷어 찼다. 그러나 집이 아님을 알고 다시 소파에 털석 주저 앉았다. 그러자 소파에서 곤히 잠들었던 동우가 깨서 울기 시작했다.
“ 그래 , 나는 이해 할 수 없는 여자야. 그러니깐 나같이 바가지나 긁어되는 여자랑 그만 두고 크리스틴과 결혼하면 될 거 아냐.”
“ 바가지? 그게 뭔데 ...”
말하다말고 엉뚱한 질문을 할 때는 민영은 도대체 싸움을 왜 하는가 싶었다.
“ 그건 그렇고 이유나 알아보자 화가 나면 났지 왜 끄덕하면 방문을 잠구니? 그렇게 내가 지렁이 같이 보이니.”
“ 지렁이? 그게 뭔지 모르나 꼭 알고 싶으면 말할게 ... 나는 영이 화가 나면 우리 엄마 생각이 나서 그래, 우리 엄마도 아버지랑 싸우다가 가버렸거든 그래서 싸움은 같이 하면 더 큰 싸움이 나기에 피한거야 왜 있잖아 화가나면 앞 뒤 생각없이 정신이 없잖아 그런데 영이 화를 내면 나를 버리고 떠날 것같에서 겁이 났어 나는 영 없으면 못살아. 동우는 어떻하고 동우만큼은 고아를 만들고 싶지않아 나는 영이 필요해 사랑해 영 .”
제임스는 민영을 끌어 앉고 한없이 울기 시작했다. 이십여년 가슴에 묻은 서름이 한꺼번에 복박쳐 오르는 소리라 그런지 마치 애절한 짐승의 소리 같았다.
스테튼 아일랜드 배는 어느덧 맨하탄에 도착했고 사람들은 출구로 모이며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민영 또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부지런히 걸어나갔다. 며칠 전 우연히 발견한 한국신문사에서 하는 컴프터 교실반이 어쩜 자신의 숨통을 트여줄 것 같은 희망에 다리에 힘까지 생겼다.
오늘 따라 청명한 하늘에 새 한 마리가 유유히 날아가는 모습이 새삼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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