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한인의 후예를 찾아서 6 (민혜기)] 쿠바 한인의 후예를 찾아서 6 > 아메리카 이민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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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쿠바 한인의 후예를 찾아서 6 (민혜기)] 쿠바 한인의 후예를 찾아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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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3,856회 작성일 10-06-07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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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극기와 캐나다 국기를 들고 기타반주에 맞춰 ‘만남’을 노래하고 있다.
▲ 황혜진 약사가 무슨 말인지 이들의 말을 들어주고 있다.
 
 
카디나스 한인 후예들
 
1월 17일 토요일이었다. 오후 4시 또 다른 지역 카디나스(Cardinas city)시에 살고 있는 한인 후예들을 방문하고 한글학교 실정도 알아보고 저녁 6시엔 이 지역 한인들과 교회에서 만나 저녁 회식도 하며 휄로우쉽을 갖기로 한 날이다.
 
바라데로 시에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였다. 도피코 목사와 마르타 임께서는 우리 일행을 한인회 전 회장이었다는 부인이 기다리고 있는 댁으로 안내했다. 나름대로 한인회가 조직이 되었었나 보다. 집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으나 사는 집이 깨끗하고 정갈해 보였다. 한글학교는 폐쇄 된 상태였고 쿠바 어느 지역에도 한글학교가 없다는 것이다. 한글학교를 통해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게 된 교사는 다른 나라로 추방되었고 가르치는 사람 없는 한글교실은 자연히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지역은 다른 도시보다 한인 후예들이 많이 살고 있어
한인회도 조직되어 모임도 종종 갖는가 보다.
    
우리 일행을 이지역의 아파트 단지를 이루고 있는 어느 허름한 아파트 앞에 내려놓았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 한분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 방문을 미리 연락 받았는지 모른다. 처음으로 한인후예 실제 사는 모습을 보는 기회였다.
흔히 볼 수 있는 가난한 동리의 서민아파트란 인상을 주었다. 최소한 일용할 양식은 정부로 부터 배급받는다고 했다. 절대 빈곤이 얼마나 이들을 위협하고 있는지 얼 핏 눈엔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가 우리들이 가지고 간 선물을 직접 전달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본 말끔이 차려 입은 쿠바 출신 한인은 몇 마디 따끔한 소리를 해준다. 우리의 선의가 그 분들의 자존심을 건드렸지 모른다.
주는 사람은 자선을 베푼다는 뿌듯함이 있을지 모르나 받는 사람의 입장은 거지같은 대상으로 자기들이 취급되지 않았는가 비참한 심정이 일어났었나 보다. 한국전쟁 이후 1950년대  후만 선교부를 통해 미국에서 구호물자가 보따리 보따리 들어왔었다. 신학교 재학중이었던 우리들에게도 구호물자는 기숙사로 보내왔고 우리는 갖가지 모양의 옷들을 입어보면서 차라리 즐겼었다는 기억이 있는 나였다.
그런데 나 개인이 구호대상이 되어 전달 모습 사진을 찍고 가난의 티가 노출되었었다면 자존심이 무척 상했었을 것이란 생각에 미치자 참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고 싶었다. 전달 방법에 서툴렀던 우리들에게 받는 자의 입장을 배려해보라고 가르쳐준 두 번째 날의 경험이었다. 주는 자가 받는 자 보다 더 지혜로워야한다는 일깨움이기도 했다.
마탄자스에서 황혜진 약사가 준비한 약품들을 나누어 주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진통제를 비롯한 소화제 등을 받으려고 손을 한꺼번에 내 미는 바람에 잠시 혼란스러웠다. 황약사는 마침 그 자리에 의사가 있어 그에게 의약품을 맡기며 필요한 사람들의 치료에 써달라고 부탁 하고 있다. 병원 모든 치료가 무료이나 그 시설과 약품 부족은 공급이 수요를 당해 낼 수가 없다고 한다. 마탄자스의 경험을 살려 황약사는 준비한 약품을 카디나스 전 한인회장에게 건네주면서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을 당부했다.    
 
 저녁 약속 시간보다 좀 늦어 카디나스 한인후예들이 기다리고 있는 모임장소로 갔다. 동부에 위치해 있는 쿠바는 토론토와의 시차가 별로 없다. 밖은 어두움이 깃들이기 시작했다. 교회 당 안에서 40여명이 넘는 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모습이 좋아 보였다. 나는 ‘이곳 사는 사람들의 형편이 좀 나은가 보네요.’ 김목사에게 물었다. ‘그런게 아닙니다. 초대받은 이들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옷으로 성장하는 것이 이들의 습관입니다.
예의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러나 실생활은 여전히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죠’ 황순일 선생의 사회로 준비해 온 프로그램을 이들에게 보여주었다. 태극기도 나누어 주고 캐나다 국기도 나누어 주었다. 그 답례로 한 구릅의 남녀노소 어린아이들까지 함께 기타리스트의 인도에 따라 애국가를 부르고 놀랍게도 ‘만남’을 불러주고 있지 않은가.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어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노랫말도 또렷하다. 얼마나 많이 연습을 했을까. 한국어는 한마디도 구사 못하는 이들이 노래를 배우면서 한국말 공부도 했으니 한글 공부는 바로 이렇게 노랫말을 익히는 동안 절로 배우게 되지 않을까. 동기만 부여해주면 어떤 것이든 가능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우리도 함께 불렀다. 손 에 손에 든 태극기와 캐나다 국기가 우리 만남을 극대화 시키는 듯 캐나다 이민 일세와 이들과의 만남은 감동으로 우리 모두의 가슴 저변을 촉촉하게 해주었다. 우리가 떠난 후에도 바라건데 한인 후예들이 이렇듯 한데 모여 사랑과 관심을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다 
 
본당에서 순서가 끝난 후 8시나 되어서야 식탁이 준비되어있는 교회 친교실로 우리는 안내되었다. 볶은 밥에 야채 그리고 디저트로 케이크 같은 것이 나왔다. 얼마나 시장 했겠나. 밥상 준비된 것은 이미 한 시간도 넘었으리라 짐작이 갔다. 
가족단위로 이들은 즐거운 듯 밤은 점점 깊어가고 있으나 화기애애한 분위 속에서 일일이 테이불을 찾아 인사하는 우리들을 반기고 있다.  헤어짐의 아쉬움은 여전했다. 윤팀장은 기념으로 카디나스 한인회에 한복과 전통악기를 선물로 주고 왔다. 그리고 참석 자 모두에게 금일봉 전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밤 11시 넘어 숙소로 돌아 온 우리들의 몸은 지쳤으나 오늘 하루 동안 우리들의 미숀 행보를  재검토하며 취약점을 다시 살펴보았다.
내일 을 위한 준비와 오늘의 성찰은 구릅이든 개인이든 보다 나은 길을 향한 성숙한 모습 그리고 팀-웍을 결속 시키는 필수적인 과정이란 생각을 했다.
 
민혜기
충남 홍성 출생
한국신학대학, 교육대학을 거쳐 교사 역임
1973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 한인 문인협회장 역임
2001년 한국 수필 등단
저서: 동인자-내가 선 땅에서 아직도 겨울은 길어
      흔들렸던 터전 위에
      토론토에서 히말라야 고산족 마을따라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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