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한인의 후예를 찾아서 3 (민혜기)] 쿠바 한인의 후예를 찾아서 3 > 아메리카 이민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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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쿠바 한인의 후예를 찾아서 3 (민혜기)] 쿠바 한인의 후예를 찾아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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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4,091회 작성일 10-06-0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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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엘 오르데가 도피코 목사는 자신의 승용차와 14인 중형차를 가지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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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덴 마리찰 부학장, 신학생, 김성기목사와 실버 미숀 팀 전원이 진지한 자세로 이야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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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기금마련키 위한 수공예품 만드는 노경의 봉사자들
 
 
혹한의 토론토 피어선 공항은 얼음으로 뒤덮여있었다. 출발 시간은 아침 6시 5분.
3시간의 여유를 두고 공항에 도착해야 된다는 여행사의 지시는 눈 붙일 새도 없이 밤잠을 설치며 서둘러야 했다. 좀 늦어 새벽 4시경 공항에 도착하고 보니 일행들은 벌서 와서  출국 수속까지 거의 마친 상태에서 우리 부부를 기다리고 있다. 탑승시간이 예정 시간보다 반시간 이상 늦었는데 120명 승객을 태울 수 있는 Canjet는 아침 8시가 넘어도 활주로를 벗어날 낌새도 안 보인다. 결국은 얼음 덮인 활주로가 주범으로 우리를 묶어 둔 것이다. 방해물 제거 작업을 눈 여겨 보았다.
얼음을 녹이며 안전하게 비행 할 수 있도록 손바닥만한 창문 밖으로 분주하게 차가 움직이고 세차장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드디어 8시 40분 비행기는 서서히 활주로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토론토에서 3시간 반이 걸리는 비행 거리다. 낮 12시경 Varadero 공항 도착, 짐을 찾아 밖으로 나와 보니 관광 버스들이 주차장 가득 대기하고 있었다.
대부분 휴향지로 가는 여행객들을 실어 나를 버스들이다.
휴양객들을 가득 싣고 온 버스는 몇 군데를 거쳐 우리 일행을 메리아 라스 아메리카 (Melia Las America) 호텔에 풀어주었다. 얼핏 보기에도 고급스런 호텔이다. 대부분 휴향지 호텔들은 그 나라 주민들의 생활 모습과는 상관없이 잘 되어 있다. 일진에 속한 나는 일찍 토론토를 출발했으나 주축을 이룬 실버 미숀 팀은 오후 Air Transits로 당일 밤 열시 반이 넘어서야 호텔에 도착했다. 
도착해 보니 토론토에서도 쉽게 만날 수없는 낯익은 지인들과의 반가운 해후의 기쁨도 누렸다. 혹한을 피해 골프여행까지 올 수 있는 여유로움이 엿 보였다.    
            
도착 다음날부터 강행군이다. 아침 7시면 모두 모여 하루 일과를 위해 기도하며 준비하는 마음, 다짐하고 격려하며 하느님의 임재를 마음깊이 간직하고 현장으로 떠나기 위한 정신적인 무장을 하곤 했다.
우리들의 숙소에서 한 시간 채 못가 Matanzas시에 거주 하는 한인 후예들과  만나기로 한 첫날 아침이다. 오전 9시가 되니 협력 사역자인 오엘 오르데가 도피코 목사는 자신의 승용차와 14인 중형차를 가지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통역관 김성기 목사가 함께 하고 있다.  이 날의 운전기사는 키가 작고 마음씨 착하게 생긴 쿠바인이다. 첫 번 행선지는 신학교가 될 거란다.
거리 풍경이나 사람들이나 모두가 신기한 눈으로 보여 질 만큼 새로운 세계다.
마침내 쿠바 유일의 에쿠메니칼 정신으로 세워진 마탄자스의 복음주의  신학교(Seminario Evancelico De Teolocia)에 도착했다. 단층 건물로 단아하게 세워진 학교 캠퍼스가 차라리 수양관 같다는 인상을 풍겨 주고 있다. 푸른 나무와 빨강 꽃이 여기저기 곱게 피어있다. 신학교 정문 앞 아래로 마탄자스 시 경치가 내려다보이며 멀리 바다가 보인다. 아름다운 자리에 우뚝 선 신학교다.
차에서 내리자 한 중년 여인이 반갑게 맞아준다. 영어로 학교 체풀린(Chaplain)이라고  자기소개를 해준다. 공산 국가 쿠바에 신학교가 있다는 것도 놀라웠는데 풍기는 분위기가 퍽 자유롭다. 쿠바 종교 배우기는 여기서 출발되는구나 싶었다. 우리 일행을 맞이하는 이들의 표정들은  호기심 반 의아해하는 태도를 보였으나 모두 친절하고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우리를 한 강의실로 안내한다. 정방형으로 테이블은 놓여졌다. 오덴 마리찰 부학장을 비롯하여 3명의 신학생 그리고 통역으로 나온 본교 재학중인 김성기목사와 마탄자스 종합대학에서 철학교수로 은퇴한  후 사무처 비서로 일하고 있는 한인 후예 마르타 임 교수와 도피고 목사가 자리하고 있고 실버 미숀 팀 전원이 진지한 자세로 부학장의 시선을 향해 좌정했다.
1946년 감리교 장로교 성공회 개신교단에 의해 설립된 일종의 연합신학교로 이 학교의 역사와 현황을 서반아어로 차근 차근 이야기해주며 김목사는 이를 우리말로 통역해주었다.
감리교 교단이 2005년에 독립해 나가고 지금은 성공회와 장로교 교단이 그 운영의 책임을 맡고 교수진은 신학 부분과 기독교 교육 부분 사회학 부분 등 다양한 커리큘럼 전문 교수가 있고  폭넓게 세계 각처에서 초빙된 객원교수도 있다 했다. 신학생 역시 어느 교파 어느 나라 상관없이 입학 허가 규정에 따라 받아드리고 있고 대부분의 학생은 쿠바 내 각 교단에서 보낸 신학생들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다. 쿠바는 외국선교사를 받아드리지 않기 때문에 종교 비자를 받아가지고 교회 안에서만 활동 범위가 제한되어 있으며 종교는 허용하되 선교 활동은 금지되어 있어 비로소 한인 선교사 부재를 이해하게 되었다. 현재 70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며 가족 및 직원과 공통체 생활을 한고 있다.
쿠바인들의 85%는 어떤 종교든지 같고 있을 만큼 매우 종교적이라며 구지 종교적인 성향을 말한다면 캐톨릭이 40%가 넘고 신교는 8% 나머지는 무속 신앙 또는 아프리카 종교를 신봉한다고 말했다.  
부학장과의 만남이 끝난 후 우리 몇은 구내 Art shop을 찾아 갔다. 몇몇 쿠바 할머니들이 손 뜨게질 하기에 분주하다. 그분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작품들은 방문객에게 팔려나갔고 모든 수익금 일체는 교회 교육비로 쓰여 진다고 했다. 나도 그 곳에서 25패소를 주고 테이블 보 하나를 샀다.
당시 외국인 통용환률은 캐나다 달러 100불을 주면 큐바 돈 71패소정도로 바꿔 준다. 본토인들이 쓰는 돈의 25배가량 된다고 했다. 외국인 통용 태환 패소가치가 캐나다 달러보다 훨씬 높다는데 우린 놀랐다. 
        
신학교방문을 끝내고 우리 일행은 한인 후예들과의 첫 번째 만남의 자리가 될 마탄자스 장로교회를 향해 부지런히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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