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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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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저 댓글 0건 조회 1,454회 작성일 12-02-22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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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 쪽 색감으로 보면 원색이 많고 화려한 중남미 미술이 현란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생명력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으며 이것이 곧 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입니다.” ‘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전’(이하 라틴전)을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 기혜경 학예연구사의 말이다.
흔히 한국 사람이 방문하기 가장 어려운 대륙으로 중남미와 아프리카가 꼽힌다.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가 역사적으로 우리와 큰 교류가 없어 그 세계에 대한 정보나 관심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중남미에 대해서는 쿠바, 브라질, 멕시코, 베네수엘라 등의 나라에 대해 갖는 낭만적인 호기심이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중남미의 역사에 대해 정통으로 접근하는 의미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라틴전’이 바로 그렇다. 이 전시는 한국에 주재하는 16개 라틴아메리카 국가 대사들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한국에는 블록버스터 전시가 많이 열리지만 주로 유럽 쪽 미술만 다루는 등 내용은 다양하지 않는 것 같다. 라틴아메리카 미술에 대한 전시도 열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국립현대미술관 측에 전달됐다. 근대미술을 소개하는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덕수궁미술관은 미술관 성격에 맞춰 라틴아메리카의 근대미술에 대한 전시를 기획했다. 멕시코, 에콰도르 등 16개 중남미 국가에서 작가 84명의 작품 121점이 들어온 이번 전시는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라틴전을 보기 위해 지난 7월 28일 한국을 찾은 술레이바 비바스 베네수엘라 국립박물관재단 이사장은 라틴전이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시대상황을 종합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여는 전시에서 라틴아메리카는 ‘열대우림이 우거지고 원주민이 살았던 신비한 곳’ 정도로만 취급된다”는 것. “반면 덕수궁미술관의 라틴전에서는 백인지배에 저항한 원주민·혼혈인종의 정신, 전통적 원주민 문화에 기초해 민중예술을 구현하려는 움직임 등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들을 전시하는 등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보여주겠다’는 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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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볼 수 없는 작품을 볼 수 있는 자리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멕시코시티에 살아도 10번 미술관 오면 프리다 작품은 1~2번 볼까말까에요.” 지난 7월 17일 기자가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에 있는 현대미술관을 찾았을 때 안내자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다 칼로(1907~1954)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두 명의 프리다’(1939년작)를 보기 위해 갔지만 해외 전시 중이어서 볼 수 없었다.
멕시코에서 멕시코 출신 대표작가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쉽게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프리다의 인기를 증명한다. 멕시코시티의 교외 코요아칸에서 태어난 그는 드라마틱한 삶과 독특한 자화상 작품으로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가. 소아마비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신체 장애, 이로 인한 불임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멕시코의 또다른 대표 화가이자 남편이었던 디에고 리베라에 대한 사랑 등이 작품의 소재가 됐다. 인디오 전통복식 등 멕시코 전통 문화를 작품에 담고 멕시코적인 민중미술 또한 보여줌으로써 원시적 생명력, 무의식, 정신적 고통을 독특하게 표현해 냈다는 인정을 받는다.
한국에서도 프리다 칼로의 이름은 꽤 알려져 있지만 멕시코 안에서도 프리다의 인기는 최근 들어 더욱 높아졌다고 한다. 지난해 프리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멕시코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그의 작품을 모아 대형 전시를 열었다. 개막식 행사에 대통령이 참석할 정도로 온 국민이 관심을 가졌다. 프리다의 삶과 작품도 재조명됐다. 이 전시는 현재 세계를 돌고 있고 내년에는 일본에서도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이 와중에 프리다 칼로 작품을 섭외해서 라틴아메리카전에서도 볼 수 있게 된 것은 행운에 가깝다. 멕시코 틀라츠칼라 주립미술관은 라틴전에 프리다 칼로 작품을 제공해 준 대신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으로부터 설치작품 ‘토끼와 달’을 포함한 백남준 작품 총 12점을 받아 교환전시를 연다. 수도도 아닌 하나의 주(州)에 속하는 미술관이지만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대표 작가와도 교환전시할 만큼 힘을 갖고 있는 것이다.
멕시코 현지에서 만난 미술관 관계자들은 라틴아메리카전에 출품되는 작품 리스트를 보고 한결같이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대표 작가들의 작품이 모두 모였다”고 놀라워 했다. 중남미 국가들의 미술 작품을 한 자리에 모은 것은 아시아에서 처음이다. 그동안은 일본에서 디에고 리베라,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 호세 클레멘토 오로스코 등 멕시코 3대 벽화가의 회화 작품을 모아 보여줬던 전시가 전부였다. 중남미 미술은 우리에겐 아직 낯설지만 유럽 등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들이 많다. 멕시코 출신으로는 디에고 리베라를 비롯한 3대 거장이 있으며, 콜롬비아 출신의 페르난도 보테로, 아르헨티나 출신의 루치오 폰타나 등도 유명하다. 그동안 유럽이나 미국의 미술을 주로 접했던 한국에서는 이번 전시를 통해 중남미 미술로 시각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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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를 이해할 수 있는 전시 키워드

디에고 리베라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중남미 출신 작가들 위주로 전시를 소개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단순히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데 그치지 않고 중남미의 역사와 정체성을 알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전시의 포인트인 만큼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관점에서 작품을 보는 것도 좋겠다. 작품 소재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를 전시 키워드로 제시하고 이를 통해 그들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자 한다.

화산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는 잘 알려진대로 고원 분지다. 북미 로키산맥에서 이어지는 지형으로 인해 멕시코시티는 해발 평균 2,800m가 넘으며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멕시코시티를 넘어 다른 도시로 갈 때 이 산들을 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유명한 두 개의 설산을 보게 된다. 한여름에도 봉우리에 눈이 쌓여 있을 정도로 높은 이 산 중 하나는 여전히 연기를 내뿜고 있는 화산이다. 멕시코의 화가이자 작가인 아틀 박사(1875~1964)의 작품 ‘별밤의 화산’은 그래서 아주 멕시코적인 작품이다. 멕시코의 광활한 자연 풍경을 주로 그린 그는 작품에 드라마틱한 요소를 담기 위해 화산 근처에 집을 짓고 사는 등 평생 화산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멕시코는 1521년부터 1821년까지 300년 동안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백인의 폭압적인 지배, 인디오와 혼혈인종에 대한 차별 등에 저항하는 비판 글을 아틀 박사란 필명으로 써온 그는 1910년 시작된 멕시코혁명 때 사회 전면에 등장한다. 멕시코 혁명은 30여 년간 이어진 독재을 무너뜨리고 입헌 공화정을 세운 사건. 원주민, 농민 등 모든 멕시코인이 국민으로 인정받는 사회를 목표로 했다. 아틀 박사는 이를 위해 벽화 등 민중과 소통할 수 있는 미술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해 이후 벽화운동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게 된다. 1921년 교육부 장관이 된 호세 바스콘셀로스는 글을 모르는 하층민에게도 혁명 이념을 전달할 수 있도록 공공건물에 큰 벽화를 그리는 벽화운동을 이끌었다. 이에 힘입어 디에고 리베라,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벽화가들이 탄생하게 된다. 멕시코의 벽화운동은 페루 등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02_07_04.jpg 원시적 풍경 열대기후가 많은 라틴아메리카는 자연 자원이 풍부하다. 콜롬비아의 커피,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와인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베네수엘라 작가 에우랄리오 톨레도 토바르(94)의 작품 ‘나라의 열매들’은 베네수엘라의 대표적인 농작물인 카카오, 커피, 옥수수가 의인화된 여성들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멕시코 음식인 또띠아의 주원료가 바로 옥수수다. ‘라틴전’에선 중남미의 독특한 식물을 볼 수 있는 작품들이 여럿 있다. 베네수엘라 작가 시릴로 멘도사(1920~2002)의 ‘수확’은 사탕수수 수확 장면을 보여준다. 불을 질러 사탕수수를 일부 태운 다음 수확하는 그들의 독특한 풍경을 볼 수 있다.
메스티소는 라틴아메리카의 에스파냐계 백인과 인디오와의 혼혈 인종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을 이루는 큰 요소가 바로 혼혈인종이다. 북아메리카는 혼혈인종이 적다. 유럽에서 북미로 넘어온 백인은 선교사가 중심으로, 이들은 가족들을 데리고 왔기 때문에 원주민과 피가 섞이지 않았다. 반면 중남미로 온 백인은 주로 군인들로 현지 원주민과 결혼하면서 다양한 혼혈인종을 만들게 된다. 또한 라틴아메리카를 정복한 백인들은 체력이 약한 인디오 대신 아프리카 흑인 노예를 데려오기도 해 중남미에는 백인, 인디오, 메스티소, 흑인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다양한 혼혈인종들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작가 프란시스코 나르바에스(1905~1982)의 작품 ‘원주민 여인’은 어두운 피부·머리색을 가진 원주민 모습을 보여준다. 전시에는 백인 여성을 그린 막스 히메네스 우에테의 ‘창가의 여인’, 흑인인 엄마의 얼굴과 혼혈인 딸의 모습을 그린 프란시스코 아미게티의 ‘셀레스티나’, 나신의 흑인 여인을 그린 에밀리아노 디 카발칸티의 ‘바이아의 흑인 여인’ 등 다양한 인종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볼 수 있다.

용설란 선인장의 일종인 용설란은 멕시코가 원산지다. 멕시코 술 데킬라의 원료가 된다. 멕시코 작가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1883~1949)의 작품 ‘멕시코의 언덕’에는 용설란이 등장한다. 이 식물의 일부는 잘려져 있다. 그는 멕시코 민중의 상처를 잎이 잘린 용설란이란 상징을 통해 자주 표현했다. 멕시코에는 용설란을 재배하는 대단위 농장이 많았다. 땅 위에 초라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두 명은 가혹하게 노동을 착취 당한 소작농민이다. 그들의 뒤로 보이는 주인집의 대저택과 비교돼 이들의 처지는 더욱 비극적으로 보인다. 프란시스코 도사만테스의 ‘기다림’에도 용설란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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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텍 문명15세기부터 16세기초까지 멕시코 고원에서 번성하던 아메리카인디언의 고대 문명이 아스텍 문명이다. 원시 문화 전통이 일상에서 아직도 살아있는 멕시코에서는 아스텍 문화의 코드 역시 자주 사용된다. 멕시코 혁명 당시 혁명에 역사적 정통성을 부여하고, 다양한 혼혈인종으로 구성된 국가에 민족이데올로기를 심기 위해 아스텍 문명을 적극 끌어들였던 탓이다. 멕시코 작가 디에고 리베라(1886~1957)의 작품 ‘종교의 역사Ⅰ’는 산 제물을 바치는 아스텍 종교의식 과정이 그려져 있다. 손발이 묶인 채 피를 흘리고 있는 희생자, 한 손에 희생자의 심장을 든 의식 거행자, 제단 위 아스텍 신의 얼굴 등이 보인다.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의 ‘상처입은 원주민’에도 아스텍 신의 모습이 등장한다. 스페인군의 공격을 당한 멕시코 인디오는 해골같은 얼굴, 절단된 듯한 신체로 표현됐다. 비참한 인디오의 모습을 전통 아스텍 신의 모습과 비슷하게 그림으로써 식민통치로 인해 생긴 폐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석유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에는 산유국이 많다. 멕시코 역시 산유국이다. 멕시코 작가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1896~1974)의 ‘멕시코의 여명’은 양팔로 정유공장을 껴안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1938년 석유를 국유화시켰던 사건을 담았다. 부당한 임금을 받고 있던 노동자들의 현실을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멕시코 혁명의 절정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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