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족이 즐겨찾는 꿈의 낙원, 리장 > 문화도시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문화도시


 

배낭여행족이 즐겨찾는 꿈의 낙원, 리장

페이지 정보

작성자 레몬 댓글 0건 조회 2,055회 작성일 11-08-23 23:52

본문

4.jpg
 
윈난(雲南)성 리장꾸청(麗江古城)  
여강고성은 옛날의 영화와 사회 모습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 문화와 민족 풍치를 집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잘 정돈된 고건축물은 물론 지금도 옛 모습대로 사용하고 있는 체계적인 수로, 소수민족인 나시(納西)족 문화 등이 잘 어우러진 진귀한 보물같은 고도(古都)다.
옥룡설산 전경
중국의 남서쪽 운남성의 여강 나시족 자치현에 있는 옥룡설산의 큰 줄기 아래쪽 고원(해발 2416m)에 있다.
동북으로 상산(象山) 금홍산(金虹山)이 있고, 서북으로 사자산(獅子山),동남과 서남으로 평천(平川)이 흐른다. 총 면적은 약 3.8㎢.
성안으로 3개의 개천이 흐르며 골목 골목으로 이어진다. 거리과 가옥은 하천의 높낮이에 따라 만들어졌고, 석교와 목교 등 300여개의 다리가 있다.
소수민족 나시족의 삶과 문화가 깃든 배낭여행족의 천국
옛 이름은 나시족의 고어로 ‘공본지(鞏本芝)'. ‘공’은 창고를 뜻하고, ‘본’은 마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지’는 시장이다. 고성이 마치 큰 창고와 같아 이렇게 불렀다. 원나라 때 ‘대엽장(大葉场)', 명나라 때 ‘대연상(大研厢)', 청나라 때 '대연리(大研里)'라 했고, 중화민국의 개국과 더불어 ‘대연진(大研镇)'로 이름이 바뀌었다.
‘대연(大研)’은 원나라 때의 ‘대협(大葉)’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지역의 패권을 쥐고 있던 나시족의 우두머리가 목씨(木氏)로 고대 나시족의 4대 혈통 중 하나인 ‘엽(葉)’ 계열이었기 때문에 원나라 이후 높인 말인 ‘대엽(大葉)과 발음이 비슷한 ‘엽(葉)’이나 ‘연(研)’으로 부르다 훗날 ‘대연(大研)'으로 굳어진 것이다.
 역사 배경
나시족의 조상들은 송나라 말에서 원 나라 초기(12세기 말에서 13세기 중엽)에 걸쳐 이 곳에 정착했다. 원나라 때는 안주(安州)에 부속됐었고, 명나라 때 ‘부귀영화가 모두 있는 곳(富冠諸土郡)'이라 불린 만큼 번성했다.
목씨 관리들은 성 안에서 대규모 토목 공사를 했고, 명나라 때의 관리 서하(徐霞)는 자신의 유람기에 '왕궁이라 의심할 만큼 건축물이 아름답다(宮室之麗 擬于王者)'고 기록했다.
 주요 유람 코스와 주변 명승
사방가(四方街)
대연진(大研镇)의 중심으로 네 갈래 길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 골목에 이른다. 큰 길과 작은 골목이 거미줄처럼 자리 잡았고, 작은 교량이 다시 이 길을 연결하고 있다. 그 물길은 가가호호 집 옆으로 흐르고, 집집마다 수양버들이 시냇물을 따라 심어져 있다.
물길은 다시 몇 갈래로 나뉘어 길과 골목, 집과 담을 따라 온 성을 두루 흘러간다. 명 나라와 청 나라 때 만든 300여개 크고 작은 다리가 시냇물 위를 가로 지른다.
골목마다 오채화석(五彩花石)이 깔려 있어 비가 와도 질퍽거리지 않고, 여름에도 흙과 먼지가 없이 깨끗하다. 또 사방가에는 아직도 예전처럼 시냇물을 이용해 거리를 청소하는 시설이 있어 정기적으로 거리를 씻어내 깨끗함을 유지하고 있다.
목부(木府)
명 나라 때 리장 토사부(土司府)로 ‘대관원'(大观园)’이란 이름도 얻었다. 목부(木府)는 고성의 서남쪽에 있고, 베이징의 자금성을 모방해 만들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돌로 만든 '충의방(忠義坊)'이다. 정교한 공예는 가히 중국 최고라 할 수 있다.
옥천공원(玉泉公园 일명 黑龍潭)
흑룡담의 가을
고성에서 북쪽으로 약 4km 떨어진 상산 자락에 있다. 고성으로 흐르는 시냇물의 수원지다. 용담에 비친 옥룡설산이 천하기경이다.
옥봉사(玉峰寺)
리장에 있는 7대 라마불교 사찰 중 하나다. 주변에 수목이 무성하고, 풍경이 아름답다. 사당 안에 수령이 약 500년이나 된 산다화(山茶花)가 있다. 해마다 만송이의 꽃이 핀다 하여 ‘만궤다화(萬机茶花)’라고도 불린다.
옥룡설산(玉龙雪山)
리장(丽江)현에서 북쪽으로 15km 정도 떨어져 있는 명산이다.
옥룡설산(玉龙雪山)은 북반구에서 위도상 가장 남쪽에 있는 만년설산이다. 일년 내내 눈이 쌓여 있는 옥룡십삼봉(玉龙十三峰)은 북에서 남으로 장장 35km를 길게 이어져 있다. 산허리에 구름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은 멀리서 보면 은백색의 커다란 용과 같다. 그래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
주봉(主峰)인 선자두(扇子陡)는 해발 5596m로 아직도 미답봉으로 남아 있다.
관광용 케이블카가 설치돼 있다.
운삼평(云杉坪)
금수곡(锦繡谷)이라고도 부른다. 해발 3240m에 있는 원시 운삼림 속의 거대한 초목지다. 백수하(白水河)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15분쯤 오르면 도착한다.
봄부터 여름까지 새싹이 피어나고 꽃이 만개하면 초록 융단을 깔아 놓은 듯 하다. 운삼평(云杉坪)에서 옥룡설산을 조망하는 것도 일품이다.
옛 나시족에겐 운삼평이 이상향이었다. 이 곳에서 연인들이 자유롭게 사랑하고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한 나시족의 젊은 연인들이 자살하던 곳이었다.
지금은 나시족의 젊은이들이 피리 불고, 춤 추며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나시 동파문화박물관(纳西 东巴文化博物馆)
흑룡담(黑龙潭) 공원의 후문에 있다. 동파(东巴)문화를 연구하고 유물을 전시하는 곳이다. 당 나라 때 유물은 물론 당백호(唐伯虎) 장대천(张大千) 서비홍(徐悲鸿) 등 많은 고승들의 서화, 양승암(杨升庵) 임칙서(林则徐) 등 유명 인물의 서예 진품을 소장하고 있다.
 노고호(瀘沽湖)
푸른 노고호
리장꾸청에서 100km 떨어진 만산(万山)에 있다. 면접은 48㎢ 이고, 평균 수심이 45m다. 가장 깊은 곳은 93m이고, 수심 12~14m까지 보일 만큼 물이 맑다.
호수가에 사는 나시족 계열인 마사인(摩梭人)들의 모계 가정과 혼인 풍습을 볼 수 있다.
호도협(虎跳峡)
흙탕물이 쏟아지는 호도협
모험가(冒险家)의 낙원이다. 심(深), 험(险), 기(奇), 절(绝), 수(秀)를 한꺼번에 만끽할 수 있다.
청장고원(青藏高原)과 운귀고원(云贵高原)의 연결부로써 옥룡설산과 합비설산 사이의 협곡이다. 금사강 급류의 침식 작용으로 형성된 곳이다.
총 길이 17km의 호도협(虎跳峡)은 가장 좁은 곳은 30m로 중간에 큰 돌이 누워 있는데 호랑이가 건너 뛰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호도협(虎跳峡)이라 한다.
3900m의 표고차는 세계 최고이며, 미국의 콜로라도 대협곡보다도 표고차가 크다.
보산 석두성(寶山 石头城)
석두성 전경
“큰 돌 위에 서 있는 마을”이다.
원 나라의 홀필렬(忽必烈)이 남부 지방을 정벌할 때 '가죽 주머니를 이어 건넜다(革囊渡江)’는 곳으로 리장에서 북으로 100km 떨어진 곳에 있다.
영지 버섯처럼 생긴 큰 돌 위에 100채의 나시족 민가가 있다. 집집마다 돌침대, 돌항아리, 돌탁자 등을 사용하고 있다.
석고 장강제일만(石鼓长江第一湾)
장강제일만
여강에서 30km 떨어진 석고진(石鼓镇)은 ‘소강남(小江南)'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곳이다. 차마고도의 요충지로써 예로부터 전략적으로 반드시 차지해야 할 땅이었다.
명 나라 가정(嘉靖)년간에 나시족 군대의 전공을 기념하기 위해 커다란 돌로 북을 세웠다.
청강고원에서 발원해 많은 산맥을 횡단하며 남으로 흐르던 장강이 이 곳 석고진에서 갑자기 동북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그래서 ‘장강제일만’이다.
교통
항공 - 선천, 광조우, 청두, 충징, 귀양, 쿤밍, 징홍,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리장까지 운항한다.
기차 - 바로 가는 것은 없다. 쿤밍에서 따리(大理)까지, 청두에서 판즈화(攀枝花)나 충징에서 판즈화(攀枝花)까지 기차를 탄 뒤 버스로 바꿔 타야 한다. 쓰촨성의 판즈화에서 리장까지는 침대 버스로 8시간.
버스 - 쿤밍의 동풍 체육관에서 매일 리장까지 운항한다. 약 8시간 소요. 따리의 창산 호텔 앞에서 출발하는 것은 약 3시간 걸린다.
침대버스는 쿤밍 남부 버스터미널과 서부 터미널에서 출발하는데 리장까지 약 10시간이 걸린다.
 
220.jpg
 
219.jpg
 
216.jpg
 
215.jpg
 
214.jpg
 
213.jpg
 
212.jpg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