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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시대의 음악 - 민족별 악파양식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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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슬리 댓글 0건 조회 1,413회 작성일 11-10-1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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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드르(네델란드) 악파는 유럽전역의 궁정이나 교회에서 활동하여 15세기와 16세기에 걸쳐서 국제적으로 사용되는 음악어법을 퍼트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각 지방마다 그 지역의 특성을 지니며 그 지방 언어를 사용하는 세속노래들이 있었는데 일반 대중에게는 이 노래들이 네델란드 기법의 폴리포니 음악 보다 더 많이 애용되고 알려지고 있었다. 16세기에 이르러서 각 지방의 특성을 지닌 노래들이 더욱 현저하게 발달되자 작곡가들은 그 당시 획일적으로 사용되던 네델란드 기법에 이 노래들의 음악어법을 가미했기 때문에 각 지역마다 독특한 다양한 음악양식이 발달되고 새로운 음악기법과 쟝르들이 생겨나게 된다.
 
이태리
국제적인 플랑드르 기법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그 당시 경향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현저하게 나타난다. 이태리 북부의 만토바, 페라라등의 궁정 및 교회에서 네델란드 출신 작곡가들을 고용하고 활발한 음악활동을 전제하면서 17세기 초부터는 네델란드의 지배를 받던 유럽음악은 이태리의 영향하에 놓이게 되고 이러한 현상은 그후 200년간 지속된다.
 
프로톨라
프로톨라는 음악반주와 함께 시를 낭송하던 습관에서 유래하여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초반에 걸쳐 성행한 이탈리아 세속노래이다. 프로톨라는 세속노래지만 대중적이거나 민속적인 노래가 아니라 귀족들이 즐기던 것으로 이태리 북부의 궁정에서 성행하였다. 수직화음적인 짜임새와 단순한 화성을 갖고 있던 프로톨라는 페트라르카(Petrarca, 1304-74))의 심각한 내용의 시를 사용하게 되었고 이는 후에 마드리갈의 전신이 되었다.
 
마드리갈
마드리갈은 16세기 이태리의 세속노래 중 가장 중요한 쟝르로서 이로 인해 이탈리아가 처음으로 유럽음악의 중심지가 되었다. 베네치아의 시인이며 문학이론가인 벰보(Pietro Bembo, 1470-1547)는 페트라르카의 시를 분석하면서 시의 낭송과 노래를 결합시킬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고, 작곡가들은 시가 내포하는 내용과 분위기를 표현하기에 적절한 음악을 만들려고 노력하였는데 그 결과 16세기의 마드리갈이 탄생하게 되었다.
초기의 마드리갈 작곡가들은 페트라르가의 시를 많이 사용하였는데 대부분의 가사들은 목가적인 사랑을 주제로 하는 시였다. 이 마드리갈은 매우 아름답고 자유로우며 독특한 음악으로 민속음악이 아닌 품위있는 귀족들의 음악이었다. 마드리갈은 그외 특정한 결혼, 잔치, 축제등 궁정에서 열리는 사교모임을 위해서도 작곡되었다. 연주형태는 3-12 사람이 부르는 성악 실내음악으로 보통 한 가수가 한 성부씩 무반주로 부르거나 악기들이 성부를 중복 또는 대신하였다.
1525-45년경까지 작곡된 초기 마드리갈의 대표적 음악가로는 베르들로(Philippe Verdelot), 페스타(Canstanze Festa), 빌레르트, 아르카델트(Jacob Arcadelt)가 있고, 1545-1580년 까지의 중기 마드리갈은 치프리아노 데 로레(Ciprino de Rore 1516-65)에 의해 발전되었고, 후기 마드리갈은 마렌찌오(Luca Marenzio, 1553-99), 제주알도(Carlo Gesualdo, 1561-1613),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1643)들로 유명하다. 이중 제주알도는 반음계 양식의 마드리갈을 지은 것으로 유명하였으며 몬테베르디는 형식면에 있어서 마드리갈의 수주을 최고봉으로 끌어 올렸다.
 
프랑스
아테냥을 비롯한 쟌느깽, 세르미씨등의 세속음악이 라베에르 지휘의 프랑스 폴리포니 앙상불의 연주로 훌륭하게 재현되고 있다. 쟌느깽의 음악만을 녹음한 라비에르 지휘, 프랑스 폴리포니 앙상불의 새로운 샹송 (Chansons Nouvelles)의 명반이 있고, 몬트리올 바하 합창단에 의한 쟌느깽의 유명한 새의 노래 (Chunt des oiseaux), 전쟁 (La Guerre)등이 들어있는 쟌느깽 합창곡집 도 연주가 충실한 음반이다.
 
독일
독일에서는 15세기 까지에도 아직 일류 수준의 작곡가를 한 사람도 배출되지 못하였으며 음악적으로 유럽의 다른 국가들 보다 훨씬 뒤진 상태였다.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초에 걸쳐 독일에서도 프랑스나 이태리처럼 독일적인 양식이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영국
15세기 전반의 영국은 던스터블과 같은 훌륭한 작곡가가 있어 유럽 대륙음악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나 30년에 걸친 장미전쟁의 혼란 때문에 음악활동은 저조하게 된다. 영국내에서 세속음악의 발전은 대륙보다 늦어 헨리 7세에 시작되어 그의 아들로 16세기초 영국을 근 40년 동안 통치한 헨리 8세 때 꽃을 피웠으며 그뒤를 이은 엘리자베스 1세(통치기간 1558-1603)에 이르러 영국음악은 그 절정의 황금시기에 달한다.
 
스페인
15세기를 통해 스페인에서는 플랑드르의 다성음악이 널리 연주되고 있었으며 네넬란드, 프랑스, 독일 음악가들이 스페인의 성당과 부속 예배당에서 노래불렀다. 1442년 아라곤의 알폰소 5세가 나폴리의 왕이된 후 이태리 음악이 스페인에 알려지고 두나라 사이에 음악적 교류가 많았다. 1469년 아라곤의 페르디난드(Ferdinand)와 카스티유의 이사벨라(Isabella)가 결혼하면서 두카톨릭군주는 회교도를 이베리아 반도에서 몰아내고 통일 스페인 왕국을 이룩하고 스페인의 황금시대를 구가하게 된다. 15세기말에 와서 스페인에서도 민족양식이 발달하기 시작하였고 16세기에 들어와서 스페인 세속노래의 대표적인 양식인 비얀시코(Villancico)와 로만스(Romance)가 확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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