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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들 단결하다 - 죠지 손더스의 <바르도의 링컨>을 읽고, 평화신문, 김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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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 댓글 0건 조회 139회 작성일 21-05-2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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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 2, 미국이 한참 내전 중일 때, 링컨 대통령의 셋째 아들 윌리가 장티푸스로 죽었다. 백악관 연례 갈라가 열리던 밤, 대통령 부부가 내빈들과 치어스를 외치던 시간에 8살 아이는 열에 들떠서 숨을 거둔다. 장례식 날 아침에 링컨은 최대의 사상자 보고를 받는다. 그는 밤에 묘지를 다시 찾아와 새벽까지 아들을 안고 있었다. 내전을 반대하는 정치적 비난과 더불어 남의 아들 삼 천명을 희생시킨 집안에 대한 저주라는 소문도 돌았다. 작가는 내전 당시의 역사와 상상을 엮어서 <바르도의 링컨> 20년 동안 집필한다. 산 자가 죽은 자를 관에서 꺼내 쓰다듬는 세기의 사건을 보려고 바르도의 유령들은 몰려든다. 바르도는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이 있는 곳이다.

 

지체하면 잡힌다


바르도의 영혼 중에 유독 눈에 뜨이는 세 유령이 있다. 볼먼과 베벤스와 토마스 목사가 그들이다. 이웃이지만 고립되어 지내던 중에 어린애가 매장되자 무슨 일인가 궁금해한다. 바르도에는 덩굴손(tendril)이라는 악마적 세력이 있다. 자기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바르도에서 머뭇거린 영들이 덩굴손에 잡혀서 영원히 고착된다. 많은 영들을 바르도에 잡아두려는 악의 세력은 어른에게는 잘 달려들지 못하지만, 아이들이 나타나면 바로 공격을 시작한다. 세 아저씨 유령들은 트레이너 소녀가 왔을 때 그런 일을 목격했다. 어머니가 엄격하여 남자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죽은 소녀는 아기를 가지고 싶어 헤매다가 덩굴 손에게 잡혀 들었다. 소녀는 철 담장에 묶여서 까마귀 등으로 흉측하게 변해갔다. 볼먼도 베벤스도 목사도 그때는 모른 척 했지만, 이번에는 윌리가 빨리 떠나게 도와주고 싶다.

 

이 세 유령들의 사연은 무엇일까. 볼먼은  늦은 나이에 새장가를 갔는데, 어린 신부는 그를 보고 벌벌 떤다. 첫날 밤도 생략하고 아내의 마음이 열리도록 기다리던 중에, 볼먼은 자신이 운영하는 인쇄소의 들보에 맞아서 사망한다. 볼먼은 관을 병자 상자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회복되면 아내 옆으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베벤스는 스무 살도 안 된 청년인데 게이 애인이 변심하자 손목을 끊어서 자살한다. 부엌 바닥에 피를 흘리며 어머니가 달려와서 자신을 구해줄 것을 기다리는데, 창문으로 보이는 세상이 아름답다고 처음으로 느낀다. 80세 목사 토마스는 볼먼과 베벤스의 경우와는 좀 다르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 갔는데, 뜻밖에도 지옥행을 선고받고 바르도로 도망친다. 심판관은 저울에서 말과 심장의 무게가 같지 않았다고 말해준다. 목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는 죄가 없다. 말씀을 주일마다 설교했는데 억울하기만 하다.

 

말하니 시원하다


세 유령은 윌리가 빨리 떠나도록 도와주고 싶은데, 이 아이는 납골소의 지붕에서 미적거리고 있다. 아이가 있을 곳이 아니라며 즉시 떠나라는 마음씨 좋아 보이는 아저씨들의 말에, '그럼 안녕히 계세요' 하고 떠나려는 찰나에 윌리의 눈이 반짝했다. 아버지 링컨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윌리는 반가워서 아버지를 향해 달려가지만 링컨은 그를 보지 못한다. 소년은 자신은 거기에 없는데, 관에서 쪼그라든 벌레 같은 몸을 꺼내 안고 흐느끼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 이 전대미문의 사건을 보려고 바르도의 영들은 깨어난다.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방문을 받은 어린 왕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에 안치소 앞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 영들은 바르도에 머무는 자신들의 결정에 확신이 없어서 왕자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다. 대 혼란 속에서 그들은 동시에 말하기 시작한다.

 

한 남자는 돈과 부동산을 관리하다가 과로로 쓰러져 병자 상자에 실려 왔다. 어리석은 식구들이 재산을 탕진할까 봐 노심초사 복귀를 기다리고 있다. 물도 흐르면 그만이고 돌도 구르면 사라지는 일방적인 세상에서 열심히 돈을 모았다. 그에게는 넘침이 곧 빈곤이다. 묘지의 돌, 나뭇잎, 가지들을 모아 놓고 아침마다 숫자를 세면서 지낸다. 한 부인은 세 딸 걱정에 공 세 개가 앞에 둥둥 떠다닌다. 똑똑한 처녀였지만 남편이 무시하자 정체성을 상실하고 딸들에게 집착한다.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는데 깨보니 병자 상자에 있다. 무거운 공에 눌려 질식할 것 같은데도 늘 껴안고 다닌다. 윌리가 세상으로 돌아가면 딸들에게 말을 전해달라고 안치소 앞으로 달려왔다.

 

바르도도 인종과 계급에 따라 구역이 달라진다. 끝자락에 있던 흑인들도 소문을 듣고 뛰쳐나온다. 백인들은 미천한 흑인이 나설 자리가 아니라고 밀쳐내지만, 노예였던 헤이븐스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마음씨 좋은 주인이 때리지도 않았고, 아내와 살게 해주고, 거기다가 수요일 오후 두시간 자유 시간을 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거야, 그런 자유롭게 평생을 살았다고? 헤이븐스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글을 배우고 싶었지만, 좋은 흑인이 되려고 그런 생각은 다 지웠다. 한 흑인 소녀는 목소리를 아예 내지 못한다. 주인 남자, 아들들, 길가는 남자들에게 수시로 끌려가서 곤욕을 치러서 자신을 무슨 짐승 정도로 여긴다. 사연 없는 유령은 없다. 가슴 속 응어리가 튀어 나오고, 윌리처럼 사랑받은 어린 시절도 생각났다. 나의 문제를 누구에게 터놓고 말한 적이 있던가. 바르도는 축제 분위기가 된다.

 

링컨도 나아감이 두렵다


볼먼과 베벤스는 자신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당황하는 윌리를 데리고 링컨 몸 안에 들어간다. 아버지의 생각을 알고 윌리가 결단을 내렸으면 한다. 링컨의 마음은 혼란 자체였다. 아이는 한 살, 세 살, 아홉 살 때 다 다른 모습이었다. 죽어있는 저 몸에 윌리가 계속 있을까. 아이를 붙들고 있음은 한 상태를 고집하는 고착 아닐까. 끊임없이 변하는 두 사랑의 에너지가 잠시 만났다가 끊어져서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갔다. 최고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오늘, 자식을 잃은 사람이 나라 전체에 수두룩하다. 우유부단한 대통령이라는 비난도 당연하다. 나라의 타륜을 쥐고 있는 링컨 역시 다음 단계로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깊다. 전쟁이 악이라면 노예 제도도 악이다. 선으로 가려면 악을 거쳐야 하는가. 윌리는 아버지 몸 안에서 모든 복잡한 생각을 듣는다.

 

윌리는 '그 애는 죽었어'라는 아버지 말을 듣고 폴짝거리며 뛰어나온다. "우리는 죽었어요. 다 죽었단 말예요."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이 기쁜 듯 한 아이의 목소리에 유령들은 움찔한다. 지상에서 마치지 못한 미래를 환상으로 보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공 셋의 엄마는 어른이 된 딸들이 잘살고 있음을 본다. 돈을 모으기만 했던 남자는 자신의 쓸쓸한 미래의 모습을 보더니, 이제는 집착없는 곳에 가서 쉬고 싶다. 자신이 죽인 짐승들을 쓰다듬고 있던 사냥꾼은 그 일이 끝나자 사죄의 미소를 짓는다. 전쟁에서 죽은 한 군인은 주님이 부재한 바르도를 하루빨리 떠나고 싶다. 전시에 창녀와 잠을 잤다는 고백 편지를 부인에게 부치고 나니 홀가분하다. 미련을 버리고 잘못을 고백하고 사죄를 청한 영들은 '푸르릇' 물질 빛 타는 소리(matter light blooming)를 내면서 저세상으로 넘어간다.

 

바르도에서의 시간이 지체되니 볼먼과 베벤스와 목사도 형체가 훼손된다. 윌리에게서 덩굴손이 자라기 시작했다. 서둘러야 한다. 딱지가 된 악의 세력들이 덩굴손으로 윌리의 몸을 둘러싼다. 소년의 몸이 갇히자, 목사는 덩굴손을 자르고 딱지 안에 들어가 윌리를 구출한다. 힘이 다한 목사가 윌리를 볼먼과 베벤스에게 넘겨주고, '하느님의 집'이라고 소리치자, 푸른 빛으로 사라진다. 악의 딱지들이 집요하게 들러붙자, 구경하던 유령들은 힘을 합하여 윌리를 들고 교회로 숨차게 달린다.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다 같이 뛰니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누르고 있던 돌을 치운 것처럼 생기가 돈다. 목사가 말한 하나님의 집, 묘지 안에 있는 교회로 데려가니, 링컨이 성모님

 같은 얼굴로 앉아 있다. "아버지, 안녕히 계세요, 저는 이만 갈게요." 윌리가 물질 빛 피어나는 소리를 내며 사라진다. 얼굴이 환해진 링컨이 조랑말을 타고 백악관으로 돌아간다.

 

내가 팽창한다


세상도 지나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바르도라는 생각이 든다. 집착에 머무르는 유령들은 처참하게 악에 귀속된다. 자신을 잘 모르는 토마스 목사는 우리의 보편적 모습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만 해도 우리는 선한 쪽으로 돌아선다. 말에 전념했던 목사가 윌리를 보내는 행동에 전념하자, 그의 심장과 말은 무게가 같아진다.

 

윌리가 죽던 날, 백악관 파티가 열리던 그 날 밤의 달을 놓고도 사람들의 의견은 초승달, 반달, 보름달이라고 제각각이다. 가짜 뉴스가 판치고 흑인 문제로 분열된 현재 미국의 정치적 모습이다. 자신의 문제에만 박혀 있던 유령들은 처음으로 공동의 목표를 이루고, 트레이너 소녀를 찾아간 볼먼은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고 나니, 물질빛으로 사라진다. 제한된 개체가 팽창하여 사랑을 이루는 방법이자, 너를 도와주다가 내가 구원받는 간단한 로고스이다. 나무 사이로 안개가 걷히고 새벽이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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