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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 반죽이 여자라면 - 뉴욕중앙일보: 김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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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 댓글 0건 조회 110회 작성일 21-05-30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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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걷고 들어와. 난 여기저기 좀 다닐 테니." 이건 또 남편의 무슨 변덕인가. 같이 나가자고 방금 해 놓고.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
가는 곳마다 당신이 싫다 하고, 다리 아프다며 불평해서."
"
분명히 함께 간다고 말했는데 뒤집는 이유가 뭐냐니까?"
"
자기 혼자서 줌도 하고 다 하면서" 라고 말꼬리를 흐린다.

친구들과 카페에서 모여 수다 떨듯이, 요즘 나는 줌 수다를 자주 한다. 오전에 줌에서 실컷 떠든 후 부엌으로 갔다. 남편이 먹을 것을 찾는 눈치다. 남은 비지찌개로 점심을 먹었다. "오늘 쇼핑몰로 여기저기 좀 다녀볼까?" 남편이 말한다.
"
그래 좋아" 기분 좋게 합의했다. 그런데 밥 먹는 십오분 사이에 남편의 마음이 바뀐 것이다. 내가 줌을 했다고 심통이 난 것이다.

팬더믹이 시작되자 자식들은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들어왔다. 집에 들어앉은 남편에, 아이의 아이도 함께. 어머니들은 집 안에서 천리만리 발품, 팔품을 판다. 뭐든지 수용하는, 쭉쭉 늘어나는 밀가루 반죽이 여자라면, 남자는 도마에 흩어진 밀가루처럼 혼자 푸석거리다 행주에 묻히는 존재 같다고나 할까. 밀가루라고, 모든 밀가루가 태어날 때부터 친화적 인격을 갖춘 것은 아니다. 두 팔로 백번쯤 팔품을 들여야 한다. 감고 뒤집고 접고 둥글리는 세월을 거쳐서 빵으로 거듭나는 반죽은 여성을 닮았다. 공기를 뿜은 유연한 점성이 줌수다로 발휘되는 데는 나도 어쩔 수 없다.

남편이 핸들을 잡았다. 갈대가 무성한 황량한 호숫가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지프가 달린다. 이보족 여인네들이 살았던 아프리카 초원이 생각난다.

아프리카 속담에 행복할 때는 아버지를 찾고 불행할 때는 어머니를 찾는다고 한다. 치누아 아체베의 소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에 나오는 말이다. 황토 담 안에서 제일 크고 좋은 거처는 여러 부인을 거느린 가장이 혼자 지내는 곳이다. 부인들은 자신의 협소한 거처에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우르르 데리고 산다. 주식인 얌은 가장이 제공하지만, 생선과 작물 등 부식은 여자가 마련한다.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면서, 저녁이면 가장에게 음식을 한가지씩 바친다. 달도 없는 기나긴 밤이면, 어머니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고, 딸들은 동요를 만들어낸다. 아이들은 아버지와 겉돌 수밖에 없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의심도 슬쩍 한다. 동네 혼사가 있으면, 여자들은 음식 거리를 들고 혼주 집으로 간다. 신랑 집의 선발대가 들고 온 야자유는 잔치 음식 마련하는 여자들이 제일 먼저 한잔 씩 걸친다. 술기운과 왕수다의 감칠 맛에 빠지기는 부족민 여자들이나, 나나 닮은 꼴이다.

가상의 행복감에 빠져들고 있었다. 앗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엇박자! 남편이 핸드폰을 연결하여 가요무대를 틀고 있다. 뭐어~ 그쯤이야, 넘어가 주자. 나는 밀가루 반죽같은 여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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