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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예 은행나무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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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미 댓글 0건 조회 3,320회 작성일 15-06-16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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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면 낙엽, 낙엽 하면 도심의 도로변을 노란색 물결로 물들이는 은행나무를 빼놓을 수 없다. 은행나무는 소나무, 버드나무와 함께 3대 가로수로 심어져 늦가을의 정취를 더해준다. 하지만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린 은행 열매들은 가을의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코를 찌르는 은행 열매 특유의 고약한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은행나무 밑을 지나는 이들은 분뇨에서나 풍겨나올 법한 역한 냄새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린다. 몇몇 사람들은 바닥에 떨어진 열매를 피하려고 지그재그로 걷기도 하고, 아예 은행나무를 피해 멀찌감치 떨어져 걷기도 한다. 자칫 밟기라도 하면 신발에 묻은 냄새가 계속 따라다녀 그야말로 고역이다. 노란 은행잎의 아름다움으로만 보면 가로수로 안성맞춤인데, 고약한 냄새 탓에 생긴 '은행의 딜레마'이다. 도대체 은행 열매에서는 왜 이처럼 역한 냄새가 풍겨나는 것일까?
은행나무 열매는 외종피(은행 알 겉껍질), 중종피(딱딱한 껍질) 그리고 내종피(식용으로 쓰이는 연질 부분을 덮고 있는 얇은 막)로 되어 있다. 코를 움켜쥐게 만드는 고약한 냄새의 비밀은 바로 열매의 겉껍질에 있다. 겉껍질을 감싸고 있는 과육질에 '빌로볼(Bilobol)'과 '은행산(ginkgoic acid)' 등의 유독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은행나무가 이렇게 고약한 냄새를 내뿜는 이유는 간단하다. 스컹크와 같은 자기방어의 일환이다. 곤충이나 새와 같은 천적들로부터 개체 수 증식의 원천이 될 씨앗(종자)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의 수단이다. 냄새가 고약하고 독이 있으면 동물들에게 기피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 다시 말해 고약한 냄새는 나무의 심통이 아니라 내년에 싹이 틀 씨앗에 끝까지 손이 타지 못하도록 노력하는 자구책의 하나이다.
은행나무의 자기방어 체계는 여러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그 1차 관문이 악취이다. 동물들이 이 성분에 닿으면 옻이 오르는 것과 같은 접촉성 피부염이 유발된다. 설령 동물(곤충)이 이 악취를 견뎌냈다고 해도 은행을 먹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중간 껍질인 중종피는 사람이 도구를 사용해도 벗겨내기 힘들 만큼 딱딱하다. 또 굳건한 의지로 두 관문을 넘어 은행을 먹었다고 하더라도 은행을 다량 섭취했다면 복통이나 설사 증세를 일으키기 십상이다. 그저 아름다운 가로수로만 여겼던 은행나무의 철저한 자기방어 체계가 참 놀랍지 않은가!
그런데 사람들은 왜 굳이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선택해서 심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공해에 잘 견디고 병충해에도 강해 생명력이 길기 때문이다. 다른 나무에 비해 성장을 잘한다는 것은 그만큼 예산 비용이 절감되는 효과 또한 가져오므로 가로수로 적합하다. 또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선사하고, 가을에는 아름다운 경관과 영양 많은 은행을 선물해 주기 때문에 일거양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냄새나지 않는 은행나무만을 심을 수는 없을까. 그럴 때는 수나무만을 골라 심으면 된다.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자라는데, 열매는 암나무에만 열린다. 우리가 열매라고 표현하는 것은 실은 열매가 아니라 은행나무 씨앗이다. 독이 든 과육을 제거하고 먹는 바로 그것이다. 은행나무의 고약한 냄새가 이 씨앗을 보호해 자기 종족을 번식하려고 오랜 노력 끝에 터득한 전략이라면, 희망을 품은 채 작별을 고하는 열매의 냄새가 구수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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