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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필: 마지막 일기는 눈안에 묻고 [미국/윤학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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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3,213회 작성일 10-04-26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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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박봉진] 마지막 일기는 눈안에 묻고

아파트는 도심에 둘러싸여 있지만 키 큰 나무들과 잔디와 화초들의 생기 나눔이 사람들의 호흡에 살맛을 더해준다.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다고는 해도 잎새 갈이를 끝낸 활엽수들은 일제히 짙은 녹색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 헌팅톤비치쪽에서 불어오는 안부바람 한 다발에 우듬지 잎새들은 흔들거림으로 평안을 화답하고, 거실 바닥에서 놀고있는 손녀의 볼통이 좌우로 둘레거릴 때마다 까만 머리를 두 갈래로 묶는 매듭의 나비는 연신 날개질을 한다. 일상 셈을 하고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날 이후 열일곱 번째의 초여름은 이렇게 내 곁에 닦아와서 삶의 더위를 입힌다.
그와 함께 살았던 십육년보다 어느새 앞지른 세월의 흔적에 나는 깊은숨을 들이켰다. 소득수준에 따라 턱없이 적은 랜트비만 내고 혼자 사는 시영 아파트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열기는 마냥 훈훈하다. 제네들 집을 두고 아직 미혼인 작은 딸은 모녀의 심령 주파수에 신경을 쓰는 듯 세나흘들이 여기를 들락거리고, 결혼한 큰딸은 참새방앗간 드나들 듯 불쑥 아기를 맡겨놓고 가기도 한다. 거실 안은 아이의 나부댐으로 분주하다. 제 손 닿을 데 놓여있는 작은 사진 액자들을 제자리에 두지 않는다. 제 어미 사진과 이모 사진 그리고 제 사진을 들고 무슨 말인가를 해놓고 이리저리 바꿔놓기 일쑤다. 손주는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말이 있다지만 내겐 꼭 그렇치많은 않은 것 같다. R.N인 큰딸은 낮엔 병원 일을 해야하고 작은딸은 C.P.A로 회계사무실 일을 하기 때문에 도리 없는 노릇이긴 해도 나는 그것이 즐겁다.
언제부터였을까? 저 아이가 들고 있는 액자 자리에서 그의 사진이 거둬진 것은-우리 첫 만남 때 그대로 그는 언제나 푸른 공군제복을 입고 내 마음 자리와 거실의 실내를 채우고 있었는데, 정녕 그는 쇠잔한 기력에 최후의 생기를 짜내 듯 육필로 쓴 마지막 일기를 남겨놓고 하늘로 갔을까? 그리고 나는 그 인고의 세월을 거치면서 어느 때부터 손 따로 마음 따로로 망각의 더께 위에 안주해왔을까? 이제는 빛 바랜 편지뭉치라고 하겠지만 미혼 때 받은 그 편지들은 거개가 세상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한 연모의 말 위주였고 약간의 잔소리가 보태진 것들이기에 훤히 외우다싶이 한다. 그러나 마지막 일기는 아직도 그 한 단어에 막혀서 훵하니 읽히지도, 줄줄 내용이 말해지지도 않는다. 경황 중에 손에 쥐게된 그것은 내 삶의 무게로 감당하기엔 너무 힘든 것이란 것을 그 때는 상상도 못했었다. 아니 명줄을 놓아 버리려고 했던 사람에게는 전혀 마음 쓸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글은 건성으로 보고 넘어갈 뻔했었다. 시작은 반듯했다가 비뚤거렸고 지우고 긋고한 필적과 정리()라는 말에 눈이 멎었다. 그것이 내 발목을 잡을 줄이야-. 쓴 사람의 그 때 상황이 자꾸 눈에 밟혀 더 나갈 수 없는 그 말 때문에 내 목안은 바싹 졸아들었고 시계()는 뿌연 물안개에 젖곤 했었다. 그랬는데 오늘은 그 글이 쉽게 읽히고 있다.
밤은 깊어 사방이 고요하다. 진정제를 주사한 탓인지 통증은 그리 심하지 않다. 나는 정신이 조금 맑아져 대강 마음 정리라도 해두고 싶다. 그러나 무슨 정리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의사는 정확한 말은 안했지만 나는 몇 일 못살고 죽게 될 것이란 것을 알고 있다. 내 나이 이제 45세. 젊다면 젊고 살만큼 살았다면 그런 것도 같은 나이. 그러나 이대로는 도저히 떠날 수 없는 처지다. 어린 두 아이들과 세상 물정 모르고 착하기만 한 아내를 남겨두고 어떻게 이대로 죽을 것인가? 열심히 산다고는 했지만 어느 것 하나 자랑스럽게 내놓을 것이 없다. 어릴 적 어머니 품안에서야 그 얼마나 자랑스런 아들 이였던가. 다 자란 훗날 대통령도 장군도 될 수가 있었고 부자도 위대한 인물도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훗날은 속절없이 사라져가고 이제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채 몇 일 안에, 아니면 오늘밤이 새기 전에 이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
내가 몸 안에 암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은 불과 두 달 전이다. 너무 늦은 발견이라 의사는 수술도 못한다고 했다. 현대 의학으로도 원인조차 뚜렷이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는 암. 그래서 누구나 사형선고처럼 무서워하는 불청객이 하필이면 하찮은 내 몸 속에 숨어 들어와서 기세좋게 번식하여 온몸 구석구석을 제 세상으로 만들다니. 그런데도 나는 그것을 까맣게 모른 채 병원 문 앞에도 안가 봤으니 무슨 할 말이 있으랴. 이 다음이라고 하면서 어려운 이웃 한번 돌보지 않았다. 좋아하는 여행도 못해봤다. 노부모님이 그토록 기다리고 계실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이들 데리고 고국에 다녀오지도 못했다. 언제나 기름때에 젖은 청바지 작업복에 나를 감추고 묵묵히 일만했다. 언젠가는 이루려고 했던 작은 나의 꿈을 위하여 매일매일 그렇게 기다리는 삶을 살아왔었다.
사랑하는 아이들의 철없이 해맑은 모습들. 지금쯤 곤히 잠자고 있을 그 얼굴들을 눈이 아물 때까지 그려보고 또 보고싶다. 이제 운명은 그 아이들을 위해 어떤 것을 마련해두고 있을까? 나의 자랑, 나의 보람과 증거, 나의 분신들, 부디 아름답게 착하게 자라서 복된 삶을 살아다오. 절대로 애비 없는 자식이란 소리는 듣지 않게 무슨 일에나 열심히, 어떤 환경에서도 굳건하게 말이다. 아내여, 오직 측은하고 안쓰러운 나의 반신 사랑이여 나는 정말 눈이 어두웠지요. 그 많은 날들을 변변한 사랑도 나눠보지 못한 채 무덤덤하게만 살았었지요. 내 마음속으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평안한 호사 한 번 시켜주지 못한 미안함을 어떻게 지금 전할 수가 있을까요. 내가 조금만 더 살수가 있다고 한다면 나는 모든 시간을 그대 위해 예비하리다. 어떤 이기심이나 욕망도 다 버리고 세상 끝날까지 즐겁고 만족할 수 있도록 노력하리다. 그러나 부질없는 공상. 옆에 있다면 품안에 꼭 안아보고 싶소. 오직 미안함과 그리움으로......
손을 펴본다. 손톱 밑에 아직도 남아있는 검은 기름때와 닳아 선명치 않는 지문들. 이것도 오래지않아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겠지. 이 허무, 이 답답함을 가슴에 담고 이대로 그냥 사라져야 하다니-. 교회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찾아왔었다. 나이가 연로한 분들도 계셨고 젊은 분들도 있었다. 다 늦고서야 확실히 받아들인 신앙. 부끄러워 자꾸만 움추려 드는 내 영혼의 기도. 주님! 이대로 추한 이 몸을 주님께 맡기기엔 참으로 송구하옵니다. 그러나 이제야 통열히 쏟는 회개. 나는 참으로 어리석었던 한 마리의 양이로소이다. 부족한 이 몸. 성령의 먼 그림자의 그림자로도 채우지 못한 이 영혼. 주님 뜻대로 거두어 주시옵소서.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는데 나의 사랑하는 그를 어디에 묻었을까? 두 눈을 감으면 더 잘 보이는걸 보면 아마도 눈 안에 묻었는지 모르겠다. 자동차 운전대를 잡지 않았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랬지만 어린 아이들에게 약한 모성을 보여줘서는 안되었다. 막 사십 고개를 넘긴 막막한 여인이 그의 손때가 묻은 자동차 핸들을 잡고 겁없이 외국인 회사에 칠 년여를 다녔던 것은 분명히 내 능력은 아니였으리라. 내게 무슨 힘이 있어서 그 무거운 종이 뭉치들을 옮겨 놓아가며 짜르고 접고 찍으면서 책과 신문을 만들어낼 수 있었겠는가? 그때 그 업주는 회사가 잘 되가니까 단시일에 다섯 군데로 업소를 불렸었다. 인쇄소 일을 하면서 내 손은 수세미처럼 되어갔고 콩팥은 탈이 나서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하나뿐인 내 담보물을 거들낸 셈이 된 것이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그 즈음 그 회사도 한쪽 업소에 문제가 생기니까 큰 덩치가 한꺼번에 맥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내 능력의 안팎이 묘하게도 한계점에서 그것에 타이밍이 맞아떨어졌던 것과 세상살이의 이치와 자기 다스림은 어떻게 해야하는 가를 조금은 엿볼 수 있은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자동차가 또 말썽을 부린다. 나를 닮는다. 자주 숨을 흘떡 거리며 털털거린다. 이럴 땐 오래 잊고 있은 생각이 날개를 달지만 나는 그것을 애써 외면한다. 그의 말은 씨가 돼서 이미 그의 세상은 나와 바꾼 것이 됐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하마 들려올 때가 된 듯도 한데 작은 딸한테의 희소식은 아직 가붓하기만 하다. 세월은 잠을 자지 않는데 사람들은 그 남은 정리()를 얼마만큼 해낼 수 있을까?
아내와 같은 나이의 해방둥이들. 그 닭띠들 몇 명이 모여 앉아 뒷산 알밤 터지는 소리 같은 것을 내고 있다. 그 날 이후 십칠년이란 세월의 강을 혼자 건너온 차여사는 지금 자기가 얼마나 뻔뻔이가 됐냐고 마르지 않을 샘물 같은 눈웃음을 흘린다.
바람과 햇볓을 맞받는 활엽수의 잎새는 언제나 짙푸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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