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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필 : 아내 [미국/윤학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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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3,637회 작성일 10-04-2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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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최종수] 아내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연어 낚시를 하러 개울물로 나왔다. 태공들이 낚시를 던지고 감고 부지런을 떨고 있었으나, 별로 소득이 없는 눈치들이었다. 나도 한자리 차고 앉아 주섬주섬 낚시를 챙기어 밀갓을 달아 연어가 오름직한 길목을 향해 던졌다.


 그렁저렁 한 시간이 지나도록 입질도 없었다. 지루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망연히 앞산을 쳐다보았다. 모처럼 아내와 함께 나온 낚시인데, 어쩌면 이렇게도 나의 체면을 뭉개버리는지……. 고기들이 밉기도 했다. 미안한 눈으로 아내를 건너다본다. 이렇게 아내를 바라다보는 것은 오늘뿐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아내의 얼굴에서 세월을 보고 잇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자식들을 시집장가 보내고 나니, 아내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몽땅 자식들에게 나눠주고, 빈껍데기의 거미 모양으로 주름이 진 얼굴과 하얗게 퇴색되어 가는 머리칼만 유난히 눈에 띈다.


 그 동안 샛방살이로 전전하면서, 세월이 빠르다는 감각도 느낄사이 없이, 아내는 손끝이 아프도록 일을 했고, 힘겹게 마련한 집마저 팔아버리고 이민 길에 오른 것이 어영부영 14년이 또 흘러 버렸다.


 그 당시, 아내의 나이 오십이 내일 모레인데, 아들을 위해서 이민을 작심한 것은 정말 힘든 결정이었을 것이다.


 정들었던 집을 떠나던 날도 아내는 마당가에 피어난, 화초들을 만지지면서 눈물을 흘렸었다.


 우리가 이민 보따리를 싸들고 공항으로 나올 때, “이제 다시 고향 땅을 밟아보고 죽을 수 있을까…….” 하는 한숨 섞인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나는 미안했었는지 모른다.


 아내는 틈틈이 뒷마당에 만들어 놓은 텃밭에서 소일했고, 갓난 아이를 다루듯 정성을 들여 가꾸어 놓은, 뒤란 텃밭의 상추와 쑥갓은 보기만 해도 행복할 만큼 탐스러웠고, 쌈을 싸 먹으면 너무 연한 것이 입 속에서 살살 녹아드는 것이었다. 아내의 정성을 생각하면 고마운 마음 없이는 먹기조차 아까웠고, 이 상추를 먹어 치우는 것 보다는 그냥 화초로 놓아두고 보는 편이 훨씬 좋을 성싶기도 했다.


 그런데 아내는 아침부터 그 탐스럽고 연한 상추와 쑥갓을 골라가면서 정성스럽게 다듬고 있었다. 오늘 딸이 온다는 전화를 받고는 아내는 마음이 바빴다. 연신 대문 쪽을 바라본다.


 아직도 도착하려면, 한 시간은 족히 남아 있건만, “엄마……!”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내의 손 끝은 부지런히 채소를 다듬고 있었지만 마음은 문 밖을 서성거리며 딸네 가족이 오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그렇게 기다림으로 가슴 설레던 아내의 앞에 손녀딸이 수줍은 표정으로 다가왔고, 딸과 사위가 인사를 하면서 들어왔다. 미처 흙손을 털지도 못한 아내는 돌쟁이 손녀를 끌어안고 기쁜 마음을 감추지를 못했다.


 삽시간에 집안이 웅성웅성하고 사람 사는 집 같았다. 한편 음식 장만이며, 청소며 일거리는 평소보다 많아져 쉴 새 없이 움직이면서도 이 모든 일이 자기의 몫인 양, 딸에게 일거리를 내어줄 줄 모른다. 그저 이렇게 다니러 온 자식들이 고맙고 대견할 뿐이다. 손녀딸의 재롱을 보는 아내는 눈 속에는 온통 행복함이 고여 있고, 세상 살아가는 재미가 몽땅 아내 것처럼 보였다.


 자식이 무엇인데 저리도 좋아할까.


 요즘처럼 행복해 하는 아내를 본 것은 오랜만의 일이었다. 직장에 다니는 사위와 딸이 모처럼 휴가를 얻어 벼르고 별러서 온 친정나들이였다.


행복하고 즐겁고 좋은 시간은 무척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


이틀이 지난 뒤, 애들이 떠나는 날이 왔다.


아내는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이며, 이것저것 챙겨주기가 바쁘다. 무엇이라도 이렇게 많이 들려 보내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서, 두고두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내였다.


 엄마는 무엇이든지 내어주고, 품어주는 속성이 있는가보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보람으로 생각하는 것이 당신의 심성인가보다. 가지고 있는 귀한 것, 어느 한 가지도 자신의 것으로 품지 않고 가족에게 내어 준다. 가족을 위해서는 하나뿐인 생명도 기꺼이 내어 줄 수 있는 이는 아내뿐일 것이다. 바보스러운 아내가 은근히 미운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품에서 손녀딸을 내려 놓으며, “조심들 해서 가거라. 그리고 전화도 자주 하고……. 애기 감기 조심하고…….” 이어지는 당부는 울먹임으로 잘 들리지 않았다.


 눈물을 글썽이며 자식들을 배웅하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머리칼이 햇빛에 반사되어 은빛으로 반짝거리며 눈가의 주름살을 덮고 있었다.


 희끗희끗 빛나는 아내의 머리칼을 보는 순간, 우연히 낚시터에서 보았던 연어가 자꾸만 떠올랐다.


 초가을에 접어들면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북대서양 연안에서 출발한 연어들의 희귀 행렬은 오레곤 지방의 개울로 줄지어 오르기 시작한다.


 상류로 올라가면서 개울물은 깊은 곳도 있었지만 얕은 곳은 발목을 겨우 차오를 정도 밖에 안 되어 하얗게 빛이 바랜 강돌들이 삐죽삐죽 머리를 내밀어 보이고 개울 바닥은 물기만 느껴지는 곳도 있었다.


 그때 몇 마리의 연어가 첨벙거리며 등지느러미를 물 밖으로 내놓은 채 필사의 몸태질로 그곳을 지나쳐 올라간다. 철러덩거린다는 표현보다는 최후의 순간에 도전하는 마라톤 선수처럼, 마지막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 듯이 보였다. 마치 전쟁터에서 필사의 탈출구를 향하여 포복을 하는 군인들을 연상케 한다. 개울 바닥에 몸을 긁히면서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몸 전체가 보일 정도로 물이 얕아지면 펄쩍펄쩍 몸을 튕겨 가며 앞으로 전진한다.


 그때마다 온몸의 비늘은 떨어져 찢어진 깃발처럼 너불거리는 사이로 알몸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연어는 성어(成魚)가  되어 자기가 부화된 이곳으로 희귀하기 시작할 때는 은빛 찬란한 비늘로 몸을 화려하게 치장하고 떠난다. 그러나 먼 길을 오는 동안, 몸의 색깔은 점점 검푸른 색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지금 이곳을 지나쳐 오르는 연어들은 분신인 알의 생명을 안전한 곳에 내려놓고 누울 곳이 아님을 알기에 적당한 장소를 향하여 더 먼 상류로 올라가고 있다.


 연어의 온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비늘도 거의 다 떨어지고, 어떤 것은 잡아 보면 안쓰러울 만큼 다친 것도 있었다. 그들은 적당한 장소에 도착하면 주저 없이 알을 쏟아 놓고는 조용히 죽음을 맞이한다.


연어에게는 이것이 삶의 전체이고 희망이었을 것이다.


딸아이가 손녀딸의 손을 잡고 흔들어 보인다.


언젠가는 저 딸도 지금의 아내와 같이 주름 진 얼굴로 자식들을 배웅하면서 이 자리에 서 있겠지.


 자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아내의 가슴속에는 뿌듯하게 행복이 채워지고, 그 행복이 하나의 물줄기가 되고, 그 줄기를 타고 자식들이 연어들처럼 힘차게 퍼덕거리면서 헤엄쳐 오르고 있었다.


 아내는 흔들던 손을 내리고 장승처럼 한 자리에 서서, 자식들이 탄 자동차가 사라져간 언덕길을 못내 아쉬워 눈을 때지 못하고 있었다.


여울 물 속에는 알에서 깨어 나온 치어들이 자라서 먼 항해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을 품고 이곳까지 올라온 어미를 모르고 있다. 그러나 새끼 연어들은 성어가 되어 알을 품고 다시 이 곳으로, 어미가 온 길을 따라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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