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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미연 신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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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미연 신문칼럼 목록
"자코메티 조각인가?" 첫새벽에 걸으러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막대기처럼 날씬하다. 그들의 균일하고 규칙적인 다리 동작은 마치 조각이 걷는 듯하다. 새벽과 아침 사이, 사물이 확실하지 않은 그 시간, 나의 창밖 풍경이다. 삼십 초 후면 사라지고 다른 조각이 등장한다. 매일 보는 익숙한 장면이다. 사월 중순경, 창문 밖 세상에 변화가 왔다. 내가 못 가본 무릉도원이 이럴까? 잠에서 걸어 나온 나는 초현실같은 나무에 넋을 잃는다. 빳빳한 핑크 마분지 같은 꽃이 나무를 뒤덮고 있다. "핑크 핫 핑크의 절정!" 내가 아는…
작성자Angel 작성일 21-05-30 22:51 조회 155 더보기
창으로 빛의 조짐이 보인다. 태양은 어느 곳이나 비슷한가. 차분한 기대감을 주는 새벽 시간, 가파른 층계를 내려온다. 뚜껑을 열어본다. 열 몇 시간 숨을 자유자재로 내뿜어 그것은 구멍이 송송하다. 밤사이 고독에 순해지다 못해 제 멋대로 늘어진 형체를 꺼내어 접고 두들겨서 모양을 만든다. 다시 용기에 넣어서 뜨근한 담뇨로 겹겹이 싸준다. 한 번 더 부풀면서 내적으로 단단해지는 시간이다.  그것은 열병을 앓고 나더니 핸섬해졌다. 길쭉한 원통 모양을 세 등분하여 실로 묶는다. 달군 무쇠 솥에 눕혀서 오븐 안에 넣는다. 구수…
작성자Angel 작성일 21-05-30 22:38 조회 141 더보기
"엄마, 맨해튼에 나가기로 했어요?" 아들이 묻는다. "가기로 했어." 아들은 대꾸가 없다. 별로 마땅치 않은 모양이다. 다음 날 아들은 페퍼 스프레이를 가지고 왔다. 손가락 굵기의 가벼운 플라스틱이다. 같이 가기로 한 친구는 식구들이 반대해서 못 간다는 답이 왔다. 일 년 반 만에 맨해튼에 나갔다. 친구들을 프릭 미술관에서 만나기로 했다. 옛날 위트니 미술관이 몇 년 전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부속 갤러리가 되었다. 이번에 팬더믹을 지나면서, 그 자리에 프릭 미술관이 새로 들어왔다. 4층의 현대식 건물에 고졸한 그…
작성자Angel 작성일 21-05-30 22:52 조회 180 더보기
아들이 작은 애를 병원에 데려간다고 한다. 눈을 자꾸 꿈쩍거리는데,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 시력이 나쁜지, 알레르기가 있는지, 온종일 눈을 그러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한 두 번 보기는 봤다. 밥 먹기 싫을 때 와 냉장고 문 열지 말라고 했을 때, 아이는 눈을 떴다 감았다 했다. 나는 그냥 넘겼는데, 자기 집에서는 정도가 심한가 보다.   남편이 공룡 책을 한권 사왔다. 말이 느린 작은 아이가 유독 공룡은 '다이쉬~~' 하면서 관심을 드러낸다. 나는 한 권만 사 오면 어떡하냐고 걱정을 했다. 아니나 다…
작성자Angel 작성일 21-05-30 22:51 조회 171 더보기
"Don't go home, Stay on the road!" 자랑스러운 이세 작가 이민진이 '파친코'를 낸 직후에 지인에게 들은 말이다. 그 유명한 소설이 하루아침에 뜬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미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북 사인회를 했다고 한다. 오래동안 심혈을 기울여 쓴 책인데도, 그것을 들고 길 위를 떠돌아야 했다니. 미국 아줌마들의 북클럽 수다에 오르는 책이 되자, 이번에는 강연을 하러 바쁘게 길을 다닌다.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는 길은 왜 그렇게 멀기만 할까?
 제시카 브루더가 2017년에…
작성자Angel 작성일 21-05-30 22:50 조회 153 더보기
"누구를 위해 요리하세요?" 맞은 편의 젊고 예쁜 엄마가 물어본다. 열두엇 명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대답이 궁하다. "나를 위해서 요리해요!" 엉겹결에 튀어 나온다.   세계 각국의 요리를 가르치는 선생이 있다고 해서 등록했다. 초등학생 엄마들이 식탁을 둘러 싸고 있다. 테이블은 매너 자체다. 음식 냄새가 배는데도, 다들 옷을 차려 입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여 한 젓갈씩 아주 조금 집어서 맛을 본다.   처음 간 날, 그녀들은 나를 수상쩍게 바라봤다. 저 나이에 요리를…
작성자Angel 작성일 21-05-30 22:47 조회 170 더보기
어둠이 깔린 실내. 원이에노~, 투이에노~, 한박자를 넷으로 쪼개는 연습 중이다. 딱딱 떨어지는 정박자, 아무런 문제 없다. 리듬과 심장이 화답한다. 그래, 이 정도면 뭐, 잘 치는 거지. 자부심이 고개를 든다. 위층에 있던 남편이 내려온다. 연주 잘 들었어, 당신은 모든 음악을 행진곡으로 편곡하는 기막힌 재주를 가졌어...   스산한 바람이 불던 어느 무렵에 피아노를 시작했다. 감성 넘치는 연주에 빠져드는 내 모습을 그리면서. 꿈과 현실은 언제나 오차가 있다. 악보는 차라리 과학에 가까웠다. 일초의…
작성자Angel 작성일 21-05-30 22:46 조회 150 더보기
뒷좌석 카시트에 앉아서 운전하는 여자의 뒤통수를 쏘아본다. 누나가 하알미 라고 부르는 저 사람, 믿을 수 없다. 나를 데려가 어쩌려는지. 하알미도 자꾸 돌아본다. 안경 너머로 살피는 눈을 맞받는다. 시선이 마주친다.   누나가 데이케어에 있는 동안 나는 엄마를 닮은 다른 하알미 집에서 논다. 푹신 동글한 그 하알미가 좋다. 안경 하알미는 누나를 픽업할 때, 잘 노는 나까지 꼭 데리고 간다. 나는 동글 하알미 품을 떠나기 싫어서 앵~ 하고 조금 운다. 순간 동글 하알미는 미소짓고, 안경 하알미는 굳어진다. …
작성자Angel 작성일 21-05-30 22:45 조회 147 더보기
"당신은 걷고 들어와. 난 여기저기 좀 다닐 테니." 이건 또 남편의 무슨 변덕인가. 같이 나가자고 방금 해 놓고.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가는 곳마다 당신이 싫다 하고, 다리 아프다며 불평해서." "분명히 함께 간다고 말했는데 뒤집는 이유가 뭐냐니까?" "자기 혼자서 줌도 하고 다 하면서" 라고 말꼬리를 흐린다. 친구들과 카페에서 모여 수다 떨듯이, 요즘 나는 줌 수다를 자주 한다. 오전에 줌에서 실컷 떠든 후 부엌으로 갔다. 남편이 먹을 것을 찾는 눈치다. 남은 비지찌개로 점심을 먹었다. "오늘 쇼핑…
작성자Angel 작성일 21-05-30 22:42 조회 153 더보기
"아, 이게 웬일?" 시커먼 점점이가 쫙 퍼져 있다. 짐승의 공격은 분명 아닌데, 무슨 역병이 돌았나? 공들여 한 칼질이 허공으로 사라질 판이다. 여름에 오이와 케일을 빼앗겼을 때는 괘씸하더니, 이번에는 정체를 몰라서 황당했다. 밤에는 내 집이 내 집이 아니다. 무단 침입한 게릴라들의 세상이 된다. 사슴, 너구리, 토끼, 오소리 등등 다국적 '챨리'들이 종횡무진 다닌다. 이들에 대한 보복 심리가 깔려 있어서, 이번에는 말랭이들을 꼭 지키려고 했다.   피난 갔다 오니 장에 박아 놓은 무가 말…
작성자Angel 작성일 21-05-30 22:40 조회 161 더보기
오늘은 가이드를 따라 나가지 않았다. 버스 타고 두 세시간 가야 할 피터호프 궁전이 별로 궁금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며칠 붙어 다녔더니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싶었다. 유럽의 장인을 불러다 지었다고 하니 비슷비슷할 것이고, 여기저기 발라 놓은 황금색 페인트 밑에 문화적 열등감을 숨겨놓은 캐서린 여왕의 여름 궁전을 이미 보고 난 후였다. 유럽에서 제일 늦게까지 왕조가 있었고 한 시절 지성인이라면 앞을 다투어 열광했던 공산주의 나라, 한때 갈 수 없었던 나라였기에 이다지도 사람들이 몰리는가?   오늘은 글을 쓰…
작성자Angel 작성일 21-05-30 22:55 조회 174 더보기
9월 노동절(Labor Day)이 되면 긴장한다. 다음날 어김없이 새 학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소집된 회의에 선생들은 아직도 방학 중임을 시위하듯 반바지, 슬리퍼 차림으로 나타났다. 카페테리아에 베이글, 소시지, 에그, 커피가 차려져 있다. 소위 말하는 브런치 미팅이다. 칭찬과 웃음에 후한 미국 선생들, 썸머 쟙을 뛰었고 어디를 다녀왔고 학생들만큼 시끄럽다. 교장이 앞에 나간다. 새 학년의 아젠다가 시작된다.   이 고등학교는 블루리본 스쿨이다. 우수학군에 자부심을 얹어놓은 교장은 매년 새로…
작성자Angel 작성일 21-05-30 22:55 조회 161 더보기
나는 한 벽을 차지한 가계도에 눈이 끌린다. 얼마 전 아들이 페밀리 트리에 대해서 물었기 때문이다. 아들에게 보여주려고 사진부터 두어 장 찍었다. 미술관 벽에 그려진 족보는 중세의 피렌체 마을에서 시작된다. 맨 위에 있는 고조 할아버지가 약장수를 했다. 약장수였기에 메디치라는 이름이 생긴 모양이다. 당시에 키우던 약용 오렌지가 가문의 문장에 보인다. 3, 4대쯤 가서는 인물이 나온다. 정식부인이 낳은 큰아들은 대를 이을 정치가로 키우고, 밖에서 낳아 온 아들은 신에게 바쳐서 교황을 만들었다. 프랑스로 시집가서 여왕이 된 딸도 …
작성자Angel 작성일 24-05-13 02:43 조회 27 더보기
높은 돌층계를 오르고 있다. 미국에서 온 선교사가 세웠다는 채플이 층계 꼭대기에 보인다. 담쟁이에 가려서 모습이 확 드러나지는 않는다. 채플 창문 앞으로 백목련과 홍목련도 보인다. 저 두 나무는 따로 피었다. 흰색 꽃이 지고 나면, 붉은 꽃이 피었다. "저기 가는 저 여자가 이번에 새로 온 교수야" 친구가 말한다. 그녀의 생머리 단발과 미디스커트가 찬 공기에 들썩인다.  "우리 과 출신이야. 우리보다 학번이 몇 개 위야." 너무 젊다. 머리에서 철커덕하고 네거티브 필름이 돌아간다.  "남편도 S …
작성자Angel 작성일 24-05-13 02:41 조회 29 더보기
그것은 지난 여름부터 말썽의 징후를 보였다. 물방울이 송송 맺혔고, 바닥에 물을 흘렸다. 평소 32~33도였던 것이 50도로 올라갔다. 전문가를 불렀더니 모터가 늙었다고 한다. 새 모터로 바꾸라는 희망적인 의견을 주었다. 의사가 다녀간 후에 멀쩡해지는 …
작성자Angel 작성일 24-05-13 02:40 조회 24 더보기
"이거 언제 수확해?" 열무인지 풋배추인치 모를 풀들이 마구 자라고 있다. '더 자라야 해'라는 남편의 대답이 돌아왔다. 마당의 주인은 남편이니까 나는 두말도 하지 않았다. 팔뚝만 한 잎이 한 켠으로 누렇게 쳐질 무렵, 남편이 수확하는 날이라고 했다. 나는 천일염에, 한국산 고춧가루에, 통통한 새우젓을 준비했다. "그래, 정성껏 담근 김치, 바로 이거야" 나에게 늘 뭐를 주는 친구가 있다. 커피 가루가 씹히는 쪼콜렛, 반짝이 양말, 눈가 주름 펴는 한방 팩. 이런 것도 있나 싶은 신기한 물건이다. 나는 뭘 줘야 …
작성자Angel 작성일 24-05-13 02:39 조회 18 더보기
"나 요즘 좀 그래, 살맛이 안나" 포스트 팬더믹이라고 환호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의외다. 중단했던 모임을 다시 하자고 단톡에 올렸더니, 총알같이 반응했던 지인들이 답이 없다. 그들의 목소리가 밝지 않다. 그간 집에 갇혀서도 잘 지내고 있다던 사람들이 몸도 좀 아프고, 나가려니 귀찮고, 어설프다고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멀쩡하던 무릎이 발목을 잡는다. 만사가 시들해지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어릴 적부터 수도 없이 들었던 '정신력'으로 버티라던 말이 언제부터인가 싫어졌다. 정신력은 뒤 끝이 있어서…
작성자Angel 작성일 24-05-13 02:38 조회 22 더보기
내 방에는 오래된 가방이 하나 버티고 있다.  이십 년 동안 내 손에 들려 있던 가방. 이젠 바깥출입을 하지 않아도, 나의 행보를 매일 지켜본다.   뉴저지에 선생으로 취직이 된 첫해, 엄마는 살림을 봐주겠다고 미국에 오셨다. 엄격하고 독선적인 엄마가 나를 이렇게 생각하는 줄 몰랐다. 엄마를 떠올리면 애정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사 후퇴 피난길에서 외할아버지네는 삼랑진에 잠시 머물렀다. 사춘기 소녀였던 엄마 눈에 기차역에 붙은 광고가 들어온다. 정예부대에서 무용단원을 모집…
작성자Angel 작성일 21-05-30 22:54 조회 159 더보기
'글을 굳이 안 써도 될 사람이 쓴다면, 그의 세계는 삐걱거릴 것이다. 반면 글을 꼭 써야 할 사람이 안 쓰고 있다면, 그의 세계 역시 삐걱거린다.'  삐이걱 쿵! 금방 멈출 듯한 엘리베이터가 불안하여 눈을 돌리던 중에 이 문장이 들어왔다. 육중한 엘리베이터의 벽면은 작가들의 명언으로 도배가 돼 있었다. 픽션 라이브러리에서 하는 미술사 강의를 들으러 다닐 때였다. 허구를 지어내는 소설만 소장하는 이 도서관 건물은 어둡고 침침했다. 어느 구석에 몇백 년 된 소설의 인물이 웅크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nbs…
작성자Angel 작성일 21-05-30 22:47 조회 160 더보기
들들들... 들들들...  소리가 온 종일 계속된다. 쌓아둔 헌 옷이 후줄근한 가리개로 다시 태어난다. 작년 초 팬더믹이 닥치자, C 씨는 마스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마스크가 품절이라서 그의 아내도 하고 다녔다. 뉴스를 보지 않던 아내가 TV 앞에 쪼그리고 앉는다. 텐트를 친 임시 병동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고 구호 물품을 받으려는 줄은 끝이 없다. 아내는 눈앞이 까매지고 어지러워 주저앉는다. C 씨는 방에 박혀서 재봉틀에 몰입했다. 필터가 있어야 하고, 감이 쫀쫀해야 하고, 마스크 규정이 나왔다. 누구에게 줄 수도 없…
작성자Angel 작성일 21-05-30 22:41 조회 157 더보기
"이제 그만 돌아갈래?" "아니 더 갈 거야" 주황 노랑 입고 바닥에 누운 잎들이 아직도 버티는 제 동무들을 올려보는 자갈길을 아이와 함께 걷는다. 아무리 야산이지만, 돌아가려면 한참인데, 아이가 못 간다고 할까 봐 조마조마하다. 팔다리가 나뭇가지만큼이나 삐죽한 아이를 업을 자신이 없어서다. 꾀가 떠올랐다.    "우리 미로 찾기 게임할까? 어디로 가지? 곰 발바닥 좀 찾아봐." 아이는 그림을 찾으러 폴작 거리며 뛰어간다.  "여기 있어!" 흥분해 …
작성자Angel 작성일 21-05-30 22:39 조회 153 더보기
(2013년 10월 26일 뉴욕 중앙일보 칼럼 - 전 노던벨리 고교 교사 김 미연)   남편 알렉스는 톱 연주를 즐겨한다.   최근 몇 년은 톱 연주가로 이름이 나서 뉴욕, 뉴저지의 각종 행사에 연주해달라는 초청이 심심치 않게 들어온다. 그가 톱을 연주한 세월이 어느덧 30여년이 지났고, 지금은 그래도 들어줄 만한 소리를 낸다. 사람들은 어쩌다가 그런 희한한 악기를 연주하게 되었냐고 질문을 할 때도 있다.  삼남 이녀의 막내인 알렉스가 초등학교를 시작할 무렵, 명동성당의 사목 회장님으로 성당 일…
작성자최고관리자 작성일 13-11-01 04:52 조회 2839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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