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낙수( 제 9 신 ) - 수녀님 몇 분은 아예 맨발로 걷는다 저 얼음같이 차거운 진탕속을.., > AMERICA 이민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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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산티아고 순례길 낙수( 제 9 신 ) - 수녀님 몇 분은 아예 맨발로 걷는다 저 얼음같이 차거운 진탕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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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 댓글 0건 조회 1,453회 작성일 14-10-06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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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며칠은 낮은 고원의 길이라서 고생이  덜 하겠다 싶더니 연일 내린 빗물과 천년 이상을 인마의 발바닥과 수레바퀴가 갈아놓은 석회석 가루가 반죽이 되어 신발에 무겁게 달라 붙는다.
 
몇 걸음 마다 돌과 나무 줄기에 발바닥을 문질러 흙을 떼어내려니 무척 짜증스럽다. 이태리에서 온 수녀님 몇 분은 아예 맨발로 걷는다. 저 얼음같이 차거운 진탕속을.., 매우 안쓰럽구나. 길주변 잡풀이 난 덤불속으로 걸으면 낫겠다 싶어 들어가니 사막성기후의 날카로운 가시들이 옷을 찢으려 든다. 오늘 목적지는 언제 도착할지 난감하네. 한발 두발 골라 딛으며 가려니 경치와 풍광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비맞은 중처럼 연신 불평조의 넋두리가 중얼중얼 튀어나온다.

한낮, 메마른 넓은 초원에 당도해서야 늦은 점심을 들면서 친밀한 위로의 말들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 흐뭇한 모습이다.

죽으란 법은 없다지? 오후 중반쯤 사질의 구릉을 오르는데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 철지난 포도잎엔 녹색과 갈색반점이 무늬를 만들어 오히려 시월 하순의 절기를 잘도 표현하네. 길 주변 포도넝쿨이 흩어진 모습이 자주 눈에 띄는 것으로 짐작컨데 급하게 서리한 까닭이렸다. 한참을 가려니 늦은 종자의 백포도가 탐스럽게 늘어져 있다. 견물생심!  행동할 때가 지금 아닌가. 한 송이를 따 먹으니 알은 잘지만 무척 달다. 스쳐가는 청년에게 손을 뻗어 먹어보라하니 벌써 먹었다며 씩 웃는다. 공범이구나. 갑자기 네 살 먹은 막내 손녀 얼굴이 떠오른다. 그 놈 포도를 너무도 좋아하는데.. . 일순 단 맛이 달아나며 콧등이 맵다. 그립구나..!

멀리 숲과 바위가 어우러진 부채모양의 산 중턱에 높은 성채 비슷한 건물이 엄청난 규모의 포도원을 내려다보며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막고 우뚝 서있다. 서둘러 오르는데 8 kg 의 배낭이 18 kg 만큼 무겁게 느껴지더군. 회백색 건물이 시야를 꽈 채우는 거리에 다다르니 저만치에 20여명의 남녀가 줄서있는 모습이 들어온다. 2,3층 높이부터 창문이 나있고, 실히 5,6층은 될성싶은 건물 벽 가슴높이 쯤에 오래된 청동 수도꼭지 두개가 나와 있고 그곳에 사람들이 줄 지어있네.

한 쪽은 물이 나오고 그 밑의 이끼 낀 돌여물통에 물이 넘치는데 동물은 없고, 다른쪽은 아주 가늘게 붉은 포도주가 졸졸 내리고 있는데, 마침 포도주를 받고 있는 이들은 일전 성당에서 소리내 떠들던 한인 남녀 6명 일행이라 막 반가움을 표시하려는데 한 30대 녀석이 500cc 물병을 덤불숲에다 쏟아버리고 있더군.  하나님 맙소사..! 이 포도주는 고행하는 구도자를 위로하고자 흘려주는 자비의 선물로 목을 축이고 가라는 것인데, 이것을 커다란 병으로 받아가려는 저 추한 욕심! 또한 쏟아 버리는 그 물이 어떤 물인데!  뒤에서는 한 잔 받으려 조그만 그릇 - 심지어 페트병 뚜껑 - 을 들고 기다리고있는데 이 무슨 천벌 맞을 짓거리 들이란 말인가! 그동안 수행하며 얻은 마음의 평화가 산산 조각나는 느낌이 듭디다. 

한 녀석은 나를 면식이 있다고 자기들 무리에 끼우겠다고 소리쳐 오라는군. 대꾸를 않고 손등으로 어서 꺼지라고 표시하고는 고개를 돌렸지. 마음속으로 " 동족이라 하기엔 부끄럽고  거칠은 저들 무리를 솎아낼 방도는 없겠습니까, 하나님 ! " 하고 저주스런 기도를 드렸구만.

그 한인 패거리가 사라지니 타인종들의 분위기가 살아난다. 사전지식 없이 닥친 곳이라, 포도주를 몇 모금 받아 마신 후 뒷사람에게 물어보니, 여기가 이라체 수도원(Monasterio Irache )으로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속세를 접하지 못하는 수녀원이라네.  가엾고 애처로운 마음에 울컥 눈물이 솟는다. 먼 산으로 시선을 돌리는데 흐르는 눈물을 주체치 못하겠더군.  

눈물은 영혼이 눈을 통하여 표현하는 호소라지? 고행으로 닳아빠진 이 길을 힘들게 가다보면 감정이 폭발하여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일을 자주 겪게 되더군.  더욱 오늘은 그 힘든 진창길에서의 푸념, 점심때의 친밀한 위로, 포도원에서의 손녀 생각, 수녀원 벽에서 겪은 젊은 동포들에의 저주스런 한탄 등 감정의 기복이 너무 심하였던 까닭이리라.
  
하나님, 저를 정결케 하소서!  그리고 마음의 담을 헐고자 떠나온 제가 더 이상 담을 쌓지 않도록 이해와 용서와 사랑의 폭을 키워 주소서!

역시 염려한데로 목적지에 못미쳐 어둠이 내려앉아   중도의 알베르게에 들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같은 입장이라 서로의 고생을 위로하고, 순례자식탁에 자리를 잡아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데 일본여인 모습의 키 작은 30대 여자가 서툰 표현으로 “ I am Miss Cho, Korean!” 한다.  내 소개 끝내고 그녀 옆으로 자리를 옮겨 메뉴 선택을 도와주니 무척 감격스런 표정이다.

지금까지 음식을 어떻게 골라 들었냐고 물으니 주로 햇반과 라면으로 떼웠다고 하는 말이 가슴을 아리게 파고 들더라. 울음기가 베어있어 화제를 돌렸지. 나도 홀로 왔지만 어떻게 혼자 결행을 했는가 물으니 주저없이 노조활동을 하다가 고발을 당하여 피신차 여길 오게 되었고 - 체류비용도 아주 저렴하고, 비자기간 걱정도 없어 - 흔히 좌파활동이나 노조생활 하던 사람들에게 이곳이 잘  알려져 있단다. 내가 그런 사람들 잡으러 왔을지도 모르는데 내게 속 내막을 다 풀어놓느냐고 농조로 물으니, 내게 대뜸 교수님이나 신부 아니냐 반문하더군. 싫지는 않았지만 당신과 상반 되는 고용주였노라 말하니, 이 길은 전부 삶의 현장을 떠나 선하게 바뀌니까 괜찮단다. 

화제를 돌려  여지껏 남을 위해 살아 왔으면 이제는 자신을 위한 진로도 생각하라고 충고를하고, 고용주도 말 못할 어려움이 많은 울타리 안의 어른이니 적으로 대하지 말라고 평소의 내 뜻을 말해주며, 이제는 투쟁에서 벗어나 여성 본래의 부드러운 심성을 회복하라 타이르고는 지니고 있던 시집 안에서 정희성 시인의 『민지의 꽃』페이지를 뜯어주니 그 자리에서 읽다가 통곡에 가까운 울음을 터뜨려 식당안의 온 시선이 집중되는 민망한 분위기를 만들었다오. 슬픔이 가득 채워져 있던 심금을 내가 건드렸나보다.

다음 날 아침 눈두덩이 부은 얼굴로 작별인사를 하면서, 산티아고길을 끝내면 다시 포르트갈 순례길을 거꾸로 갈것이라며 먼저 나서는 그녀의 뒷모습이 몹시 측은해 마음이 무거웠네.

어제 밤 기온이 많이 떨어졌나보다. 온 포도잎과 줄기가 하얗게 서리에 덮여있다. 저것들 미쳐 못 딴 포도!  걱정을 하니 함께 걷던 화란인이 겨울 포도주( Ice Wine )용 이라네. 특히 단맛이 더하다며, 내가  떠나온 뉴욕지역을 큰 허리케인이 때려 극심한 피해가 난 소식을 아느냐 묻네.  순간 사업과 가족은 당분간 체념키로 먹었던 마음이 요동을 칩디다.

전화기는 있어도 이 구간이 불통지역이라 더욱 답답하여 걸음을 재촉했지. 체력의 한계점까지 세 시간여 속보로 걷고 반 뛰고 하여 도심지 인근에 다다르니 비로서 문명세계와 접선이 되더군. 허겁지겁 간이판매점(kiosk)을 찾아 영어 신문을 구하니 손사레를 친다. 급한데로 스페인어 신문을 사보니 첫장부터 온통 피해기사와 사진이다. 전화통화를 하니 몹시 기다렸다며 골프장에도 나무 80여그루가 뿌리채 뽑혔고 지붕 일부분이 날아가고 정전이란다. 몸을 버티던 힘이 빠져 나가더군. 어찌하나..? 근심이 천근이고 걱정이 만근이네.  그동안 내려놓고 비워버리려 애쓴 마음에 먹구름이 스며들더군. 

“ 만강!  어찌하겠소?” 하고 자문자답을 거듭하였지요.

오늘의 목저지 ‘만시야’의 호스텔에 초췌한 모습으로 당도하니  투숙인은 나 혼자다. 외로워서 사람들이 많이 있을 인근의 알베르게를 방문하니 그곳도 별로 많지 않고 반가운 구면들이 몇몇 눈에 띈다. 내 숙소로 다시 돌아와 까닭을 물으니, 엊그제의 폭설과 추워진 기온으로 로컬 순례자들 - 인접한  벨지움, 프랑스 및 스페인의 순례객들 - 은 차후의 계획으로 미루고 집으돌아갔다나?!

 그 말 끝에, 일반적으로 유럽과 아메리카주에서 오는 순례자는 보통 2회에서 5회로 나누어 한다네. 그간 430 km를 걸어온 내 의지를 흔드는 일만 생기더군. 다시 미국과 통화를 하니 뉴욕, 뉴저지, 코네티캇 3개주에 극심한 피해를 준 태풍 - 허리케인 샌디 - 이 최대급인 5등급으로 인명손실도 50여명이라며, 지금 귀국해도 할 일이 없다고한다. 정전에다 유류 및 가스공급도 안되어 차량통행이 최소 상태며, 내게 어떻게 미리 알고 피난했느냐고 탄식 섞인 농을 던진다.  기다리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이 간절함.  참으로 긴 시간 기도를 드렸네. 

날씨가 점점 더 추워진다. 아침이면 새우처럼 웅크리고 나간다. 내 그림자도 같은 모양새를 하고있어 사진을 찍어 두었지. 햇살이 퍼지면 한기가 조금 누그러져 오그렸던 앙가슴이 아프다. 저만치 호스텔과 까페 간판이 눈에 띈다. 따끈한 커피가 간절해 들어가니 나만이 아닐세. 크게 환영의 몸짓을 하는 사람의 식탁에 악수를 나누며 앉으니, 말이 통하지 않는 서반아 5,60대의 거구가 무슨 술병을 들고 아주 작은 잔에 부어주며 마시란다. 단맛 뒤에 목을 태울듯 스치며 위장부위 부터 몸을 덥혀오더군. 6명 일행 중 한명이 단어 몇 개로 소통을 하는데 내게 국적을 묻기에 Korea라 답하니, 북이냐 남이냐고 다시 물어오더군. 북쪽은 나처럼 배낭메고 나설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고 말해주었지만, 통역을 하는 수초간 비애스런 느낌이 들더군. 분단국가, 분쟁지역으로만 알려지고 문화는 알려진 것이 없는 민족으로 그네들 뇌리에 새겨져 있어 가슴이 답답해집디다.

그들은 한 직장에 근무하다  정년퇴직한 동아리인데, 스페인길 - 불란서와의 국경도시 혼세스 바이예스 에서 산티아고까지 - 을 5년에 걸쳐 매년 일주일씩 함께 걷고 있다네. 참 부럽더군. 

따뜻한 가슴을 지닌 Spanish들이여, 행운이 깃들기를..!  하지만 퇴직도 좀 늦게들 하시고 일을 더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국민들 스스로 나서서 금 갹출운동으로 외환위기극복에 일조도 했다오.

오후에 접어들면서 잿빛하늘로 변하더니 또 눈발이 흩날리며 기온이 급강하한다. 잘못되면 이 길에 무덤하나 더 추가할것 같다. 나는 비문에 무어라 남길 것인가? 한기가 머리를 때리니 생각이 돌지 않고, 오직 오늘의 목적지 레온(Leon) - 로마의 제 7 군단 ( 레히온Legion ) 이 있던 갈리시아 지역의 중심지로, 잘 알려진 ‘율리우스 씨저’ 와 그의 부관이었던 ‘부르투스’ 도 이곳 사령관을 지냈다고 한다.  Leon은 Legion이 변형된 것이고 - 만 바라보며 살아 남으려는 본능으로 걸어갔다오.

고원지대의 추위는  사뭇 다르다. 무겁고 싸늘하게 옷 속까지 파고드는데 가을철 복장으로는 감당이 안되네.  현지인들은 모두 털옷과 가죽옷을 걸치고 있습디다.  오늘 길 절반은 기억 할 것도 추억 거리도 만들 여유 없이 허겁지겁 걸어갔지요.  아직은 더 살고 싶어서.. .

                             정희성의 < 민지의 꽃>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기슭 / 덜렁 집 한 채 짓고 살러 들어간
        제자를 찾아갔다 / 거기서 만들고 거기서 키웠다는 다섯 살배기 딸 민지
        민지가 아침 일찍 눈을 비비고 일어나 / 말없이 손을 잡아끄는 것이었다
        저보다 큰 물뿌리개를 나한테 들리고 / 질경이 나싱개 토끼풀 억새….
        이런 풀들에게 물을 주며 / 잘 잤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게 뭔데 거기다 물을 주니? / 꽃이야, 하고 민지가 대답했다
       그건 잡초야, 라고 말하려던 내 입이 다물어졌다
       내 말은 때가 묻어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지 못하는데
       꽃이야, 하는 그 애의 말 한마디가 / 풀잎의 풋풋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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