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낙수 ( 제 4 신 ) - 지금 이 길이 무슨 길인가? 선을 추구하는 신앙의 행적이 더덕 더덕 덧칠해진, 발로 선행의 역사를 기록해 온 길이 아니던가! > 아메리카 이민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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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산티아고 순례길 낙수 ( 제 4 신 ) - 지금 이 길이 무슨 길인가? 선을 추구하는 신앙의 행적이 더덕 더덕 덧칠해진, 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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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 댓글 0건 조회 1,210회 작성일 14-10-06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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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한 소리에 잠이 깨니 주방의 소음이 들리고, 바로 옆 침대 아랫 칸에서는 키 큰 남자가 등과 고개를 활처럼 숙이고 떠날 채비 하는게 눈에 들어온다. 시선이 마주치자 Guten Morgen! 하는 생소한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이럴 때는 나도 “안녕하시오?” 하고 싶은데 어쩐지 어색하다. 엷은 웃음기로 Good Morning! 하고 답해주니, 또 Buen Camino ! 라는 말이 되돌아오네. 금방 해득이 안되다 몇 초 지나서야  ‘좋은 길’  즉, 탈 없이 순례길을 가시오! 라는 스페인 말뜻이 뒤늦게 생각나네. 몇 마디 익힌 Spanish도 타이밍이 맞아야 써먹지.. .

서둘러 아침 단장하고 짐 꾸려 나서니, 10월 초의 아침7시가 칠흙이다. 인근 까페cafe 로 가서 입구에 배낭과 모자와 스틱을 내려놓고 들어서니 벌써 몇몇 테이블엔 순례객들이 아침을 들고 있다. 나도 커피와 버터 바른 바겟트( 빵 )를 씹으니 정말로 순례자의 소박한 아침식사라는 느낌을 갖게 됩디다. 

형식이 내용을 규제한다는 말이 있지. 벙어리들의 조찬인가? 말소리가 거의 없다. 분위기가 영화에서나 접했던 수도원의 아침처럼 조용하다. 누가 무어라 지시한 적 없는데 이런 경건한 마음은 어디서 오는걸까?  비장감 마저 드네.

아직도 여명의 어슴푸레한 7시 50분경, 드디어 성루같은 성모마리아성당 밑의 터널을 통과하여 급류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자, 그 옛날 로마군대가 돌로 포장한 고행의 언덕길이 시작되었지. 해발170m 의 출발점에서 1450m의 고개를 넘어서야 ‘피레네 고원’으로 진입한다. 11kg의 등짐으로 오르니 15분도 채안되어 등줄기와 앞가슴에 땀이 흐른다. 

오늘길 25.1km가 평지로 환산하면 32.0km라고 표시가 되어있다. 짐꾼이라도 있었으면...  히말라야 등반대는 짐꾼들이 많던데...순례길은 안되나? 푸념이 절로 나온다. 첫날부터 기를 죽인다. 어느 순간 감색과 흰색으로 멋지게 디자인된 유니폼을 입은 젊은이가 뒷바퀴 양쪽에 짐을 실은 자전거를 경쾌하게 몰며 “Well Camino!” 라며 스쳐 지나간다. 부럽구나.

출발한지 두 시간쯤, 벌써 evian 500cc 물병이 비었다. 이제 한 병 남았네. 가게도 행상도 없다. 아니 인가도 없는 산 언덕길이다. 더러 인명피해도 발생하는 고갯길이다. 목에서 단내가 난다. 누가 쉬는 모습만 보이면 힘들게 걷던 의지가 꺽이면서 함께 쉬게 된다. 어느 지점에서는 마치 picnic 나온 것처럼 열댓 명이 통성명 하면서 일어설 생각을 안한다. 그 중 한 사람은 역사 지식을 동원하여 선동조의 불평을 한다. 

그 분 - St. James 곧 야고보님의 영문표기 - 은 이 길로 가지 않았다고!  로마군이 대리석을 운반하던 배를 타고 곧바로 ‘땅끝’ (Finis Terre) 에 갔다고. 왜 우리들이 이 힘든 길로 가야하느냐며 불평이 담긴 말을 던진다. 

그 사람 아무래도 여기 올 사람이 아니구나 생각하며 일어났지. 오늘 구간의 반쯤(고도 약 1,050m 지점) 되는 곳에 순례자 숙소가 하나 나타나더군. 뜻을 관철하지 못 할 불쌍한  영혼들을 보살펴 주려는 하나님의 자비라 생각 됩디다.

고도 1,340m 지점이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인데, 기대와 달리 표시판외에는 검문소도 없다. 간간이 눈과 비에 대비한 간이대피소(shelter)가 있는데 예외 없이 또 하나의 간판이 붙어있다, ' 버리는 곳' 이라고. 버려진 내용물을 들여다보니 많은 책들과 여성들의 화장품, 여분의 운동화, 스틱, 식품 캔 등. 한곳은 마음(욕심)도 버리라는 싸인이 깊게 각인 됩디다.

이것들 - 과욕의 물품들 - 은 교회가 좋은곳에사용한다고. 그러면 버려진 그마음(욕심) 들은 어디에다 쓰나..?

저 언덕 위 넓은 구빗길 잔디에 널푸러진 검은색 불가사리는 또 뭘까?  어깨끈은 파고들고…발은 천근이고… 숨은 가쁘고!  저 빤히 보이는 거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네.. .

드디어 당도하니, 오전에 그렇게도 생기있게 언덕을 질주하듯 오르던 자전거 아니던가?! 

미동도 없이 두 팔과 두 다리를 다 뻗고 있네. 표본실에 꽂혀 있는 마른 불가사리 모양이다. 자전거는 길 건너편에 누워있고 짐 하나는 이 쪽에... 그 부럽던 활력은 어디로 가고...삶을 포기한 자세다. 그 뻗어있는사람 주변에 하나 둘 도착하는 순례객들이 힘없이 무너진다. 

아무도 그 불가사리에 눈길을 안 준다. 이윽고 이상하다 느낀 한 남자가 접근하여 가슴에 손을 대려는 순간 두 눈을 뜨는데 소 눈만큼 크다. 일순간 긴장했던 주위에 폭소가 터진다. 

얼마나 힘들었기에..! 내 짐 11 kg 보다 저 사람의 자전거가 오르막에선 더 괴롭구나.
God bless you!

나도 모르는 새  잠이들었다 깨어보니  주변에 있던 얼굴들이 모두 바뀌었네. 잠시가 아니었나보다. 이럴 때 의리를 찾을 수 도 없고.. .  좀 떨어져서 아시안 여성 둘이 서툰 영어로 대화하고 있네. 한 손을 들어 아는 체를 하니 한 여성이 머리를 끄덕하며 이를 드러낸다. 틀림없는 한국인이다. 짐은 놔둔 채 몸을 일으켜 접근하니 수줍게  인사를 한다.

한 여성은 말없이 웃음만 짓고. “이 길에서 처음 만난 한국인일세! 이 분은?” 하고 물으니, 타이완에서 온 여성이란다. 둘이 어제 숙소에서 만나 서로 의지하며 오르고 있는 길이란다. 혹시 물 여분이 있는가 물으니 대만 여성이 조그만 오렌지쥬스 캔을 뻗어온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쥬스가 다시 있을까! 거듭 거듭 감사를 표하고 이 빚을 갚겠노라  약속했지. 이 길에서는 반드시 그 사람이 아니라도 다른 이들에게 베풀면 되는 것이 peregrino (순례자의 스페인어) 들의 선행이다. 베푸는 자가 더 위안을 받는다.

인간은 배가 충족되면 진선미를 추구하는 욕구를 하나님으로 부터 부여받은 인간만의 특전을 누리며 살아오지 않았나?  지금 이 길이 무슨 길인가? 선을 추구하는 신앙의 행적이 더덕 더덕 덧칠해진, 발로 선행의 역사를 기록해 온 길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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