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메리벨 할머니: 조 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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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yale 댓글 0건 조회 4,578회 작성일 11-03-03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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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벨은 내 아내 씬디의 시어머니였다. 씬디는 전남편이 바람을 피워 이혼을 하는 마당에, 그동안 절친하게 지내왔던 시어머니 메리벨과도 관계가 어색할 수 있었을텐데, 둘은 앞으로도 계속 좋은 친구로 관계를 유지하자고 합의했다 한다.
씬디는, 두 아들들과 함께, 이혼한 후에도 일년에 두번씩 시카고에 계신 전 시어머니 메리벨을 방문하곤했다.
이혼후 3년만에 나랑 결혼하게 된 씬디는 메리벨은 마음씨가 참 좋은 시어머니였다고 내게 말했다. 딸이 없는 메리벨도 씬디를 친 딸같이 사랑했다.
그런 집안이었는데, 씬디의 남편은 직장에서 만난 여자랑 바람을 피어, 급기야 이혼을 결심하고, 씬디와 두 아들을 떠나, 그 여자와 동거에 들어감으로 결혼은 이혼으로 막을 내렸다.
다분히 한국적인 정서에 젖어 있는 나는 자기를 버리고 떠난 전 남편의 어머니를 한결 같이 사랑하는 씬디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메리벨도 자기 아들의 결혼이 이혼으로 깨어진 것에 대해 씬디를 비난하지 않고, 한결같이 씬디를 친 딸처럼 사랑했다.
그래서 며느리가 재혼하는 결혼식에 70중반의 노인이 40중반의 둘째 아들과 차로 다섯시간을 운전하여,씬디와 나의 결혼식에 와서 축하를 해 주었다.
메리벨은 풍채가 넉넉한 데다 함빡 웃음을 머금은 복스런 할머니였다. 결혼식장인 우리 교회 친교실에서, 씬디와 나를 한꺼번에 끌어 않는 넉넉한 가슴은 씬디와 나를 마치 딸과 사위로 끌어 안으려는 것 같았다. 메리벨과 시동생 앤디는 결혼 축의금과 정성어린 결혼 선물로 우리의 결혼을 축하해 주었다.
나한테는 시카고에 있는 자기 집에 씬디랑 한번 다녀 가라고 했다. 한국적인 정서가 다분한 나한테는 내 아내의 전남편 어머니집에 가서 2박 3일간 숙식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온다는 일이 소름끼치고 닭살 돋는 일처럼 불편하게 느껴졌다.
씬디는 내 마음 편할데로 하라고 했다. 혼자 집에 있던지, 아이들과 자기와 함께, 메리벨을 방문하고 오던지 좋을데로 해도 이해해 주겠다고 했다.
나는 휴가기간중 나 혼자 집에 있기도 싫고, 약간의 호기심도 발동하여, 아내의 전 남편(어머니)집에 가서 2박 3일간 씬디랑 함께 다녀 오기로 했다.
좀 긴장이 되고 불편했으나, 색다른 인생경험을 한다 생각하고 불편함을 극복하기로 했다. 메리벨과 앤디는 우리를 반기고 정성으로 대접했다. 자기들이 출석하는 교회도 구경시켜주고, 점심도 사 주고, 쇼핑 몰에도 데려다 주었다. 요즘에도 성탄절과 내 생일에 메리벨 할머니와 앤디는 내게 생일카드와 선물을 꼬박 꼬박 부쳐 준다. 나는 씬디에게 이 따위 선물 안 받아도 좋으니, 날 좀 가만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고 불평을 하면서도, 선물공세에 입이 배시시 벌어진다.
메리벨은 아마도 나를 사위쯤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혼자된 딸같은 며느리에게 연민의 정을 느껴, 씬디를 거두어 준 내한테 고마움을 느껴서 일까?
사실은 내가 씬디한테서 많은 도움을 받고 사는데…(예를 들면, 독신으로 지낼 때는 빨래하기 귀챦아 내의를 삼사일까지 입었으나, 요즘은 씬디가 빨래를 해 주니, 매일 갈아 입는다.)
“세상은 상처입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The world is full of broken hearts.)고들 한다.
깨어진 가정으로 인해,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씬디와 전남편, 아들 둘, 시동생 앤디는 그들대로, 또 버림받은 씬디와 결혼하게 된 나는 나대로 마음의 상처를 감싸 안은 채 평생을 살아 가야 한다.
그 와중에도 용서와 친절과 사랑이 냉냉하고 어두울 수 밖에 없는 이혼가정에 한 줄기 빛으로 비쳐진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상처가 있는 곳에 위로를 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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