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민족성과 문화가 담긴 언어 [독일/김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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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3,524회 작성일 10-04-2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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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김해순] 민족성과 문화가 담긴 언어
고향을 떠난 지 어언 30년이 되었다. 나는 반평생 이상을 유럽인 독일에서 산 셈이다. 뒤돌아보면 세월이 말해 주듯 독일 문화에 잔뼈가 굳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 생각과 행동과 언어 사용하는 것을 보고 독일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꼭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끈끈하고 진한 영양분이 보이지 않는 정체성의 근간이 되어 나를 오늘날까지 지탱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그렇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나는 우리 한민족 문화와 유럽 문화의 융합의 산물이 아니겠는가 생각할 때가 있다. 민족성과 문화가 담긴 언어
살아오면서 느끼지만, 양쪽 문화는 나름대로 장단점을 가지고 있고 보완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양 문화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고 어떤 면은 상반된 뜻도 함유하고 있다. 이런 상이한 점은 때로는 갈등을 야기시키기도 한다. 이 차이점으로 인해 파생되는 갈등을 나는 자식을 키우면서 더 심각하게 겪는다. 나의 체험담을 여기서 잠깐 펼쳐 보고 싶다.
하루는 아들이 내 서재에 들어와서 전화가 왔다고 하면서 수화기를 불쑥 내밀었다. 수화기를 바꾸어 든 순간 저편에서 낯선 사람의 비난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의 목소리였다.
아이 교육을 잘못 시켜도 한참 잘못 시켰어요!
김 박사, 학생을 가르치면서 자식은 왜 저렇게 가르쳤어요? 나도 자식 농사 잘못 지었지만 그래도 애비 이름은 안 부릅니다. 저 녀석, 엄마를 해순이라고 하는데 말버릇 좀 고쳐야겠어요.
자식 농사를 언급하는 말투 속에서 나는 그 분이 누구인지 짐작이 같다. 몇 해 전에 그 분과 자식 교육 문제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 우리 동포셨다.
그 분은 3대 독자이고 가문이 유지되기 위해 아들이 자신의 대를 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러나 아들은 독일 여자를 사귀면서 독일식으로 아이 없이 살고 싶어 했고 자유롭게 자신의 주관대로 살기를 원했다. 그 분의 자식에 대한 불평은 우리가 외국에 살면서 듣고 경험하는 문제이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 철이 들 것이며 자신이 하는 일에 권리와 책임을 갖고 있는 성년이니 너무나 한국식의 교육을 종용하지 말라는 위로와 당부로 이야기를 맺고 헤어졌던 분이었다. 그래서 그 분은 나의 자식 교육에 긍정적인 기대를 갖고 계셨던지 김 박사님은 학자이시니 저와는 달리 아이를 잘 키울 것입니다.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우리 민족성(한국)이 뚜렷한 교육을 시켜 달라고 주문도 하셨다. 부모에게 공손하고 타인에게 예의바른 말씨를 쓰도록 하는 교육을 말하셨던 것이다. 그 분은 나의 민족성이 투철하지 못한 교육에 실망하고 내 아이의 말투에 불쾌감을 가지셨던 모양이다. 아들 교육을 잘 시키지 못한 질책감이 몰려와 순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상기해 보건대, 이런 지적은 처음이 아니다. 사실상 그 동안 여러 한국 분들이 나에게 자식이 엄마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잘못된 교육이라고 주의를 주었다.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당부를 한 적이 있었다. 한국 분한테서 전화가 오면 내 이름 부르지 말고. 마마(엄마) 바꾸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라고 교육을 시켰다. 그랬더니 아들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나는 외국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한국 사람인지 보지 않으면 분간 못해!
아들은 마마(엄마)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독일식으로 너라고 낮춤말(해라)을 했다. 내 이름을 부르겠다고 고집부리는 것은 사실상 변명 같기도 하지만 독일의 관습이고 아들에게 이미 길들여진 습관이다. 그러나 날 마마라고 부르라고 여러 번 당부했지만 들은 척을 안 했다. 나는 나의 부모님이 나처럼 부탁을 했다면 분명히 네 했을 것이고 또 부모가 시키는 대로 두말 없이 실천했을 것이다. 이런 교육에 젖어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아들도 나처럼 행동해 주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이런 나의 아들에 대한 기대는 종종 빗나갔다.
한국의 문화적인 차원에서 생각하면 많은 한국 분들의 지적이 맞다. 그래서 자식 농사 잘 못 짓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 이렇다 할 뾰족한 방안을 얻지 못해 갈팡질팡할 때도 있었다. 독일 사회에서는 자식이 부모 이름을 부르는 것은 일반화 되어 있고 대화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독일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들에게 한국식의 언어 생활을 관철시키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독일식으로 살 수밖에 없는 아들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이런 질책을 받을 때마다 나는 항상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양심의 가책을 받곤 했다. 우리의 겸손하고 상대방을 존경하는 언어 뒤에 숨겨진 한민족의 얼을 아들에게 심어 주지 못해 안타까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독일에서는 가족끼리, 친구 사이에 잘 아는 사람이면 서로 낮춤말(해라)을 사용하는 것이 관습이다. 이 점은 유교의 사회적인 윤리관과는 차이가 있다. 유교 원칙에 의해 우리는 부모에게, 나이가 많은 모든 사람에게는 존칭어를 사용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 사람이 되라라는 명언이 있듯이 나는 독일에서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독일의 관습대로 낮춤말(해라)을 사용한다. 특히 나의 시집은 다른 가족들보다 더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 남편의 형제는 1968년의 독일 학생 운동권의 세대로서 자식에게도 엄마라고 부르지 못하게 한다. 직접 본인들의 이름을 부르도록 한다. 내가 내 아들에게 큰어머니, 작은어머니, 큰아버지, 작은아버지라고 부르도록 시키면 그들은 당장 나의 말을 바로잡고 그들의 이름을 부르도록 요구한다. 이름을 부르도록 하는 그 이면에는 아이들을 한 인격체로서 동등하게 생각하며 한 독립된 개인으로 본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지성인들에게 흔히 볼 수 있다.
나의 시집 식구들에게 엿볼 수 있듯이 언어에는 사회적인 윤리와 인간관계의 질서가 나타난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과 가치관이 반영된다. 그래서 언어는 사회문화를 대변한다고 풀어 말할 수 있다. 아이들이 언어를 배우는 동안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고 어떤 규율을 지켜야 하고 어떤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는 것 등을 교육시킨다. 우리는 사회화의 과정에서 배웠던 이 모든 것을 어른이 되면 자식에게 가르치며 전승시키고자 노력한다. 가르치고 전승하는 작업은 언어를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이 모든 것을 문화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 행위는 역사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문화는 언어에 총 집합되어 있다고 보아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시대와 사회는 날로 변화한다. 인간의 사고와 정신 그리고 가치관과 행위도 달라진다. 아울러 인간관계의 질서도 바꿔진다. 이 흐름을 언어도 안 탈 수가 없다. 이런 변화는 전통을 고수하는 부모와 새로운 물결을 타고 자라는 아이들 사이에 역력히 나타난다. 세대간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대화와 화합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것은 그 하나의 예라 할 수 있다. 이 점은 한 문화권 내에서도 전통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물며 부모와는 다른 문화권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부모의 전통을 고집한다는 건 무리가 있다고 보여진다. 내 아들을 보고 알 수 있듯이 이중으로 문화 적응 문제가 따른다. 부모의 문화와 자라고 있는 현지의 문화를 동시에 익히기란 아들에게는 무리가 따른다. 아들은 서로 상반된 문화에 맞게 행동을 하기란 때에 따라서는 불가능하다. 이 현상을 아들이 유치원에 갈 때부터 나는 뚜렷하게 경험했었다.
아들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한국말을 곧잘 했었다. 물건을 두 손으로 어른에게 건네주는 연습과 함께 공손한 태도를 가르쳐 주었다. 모든 것을 잘 따라했었다. 그러나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아들은 한국말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유치원 선생님이 무엇을 시키면 이해를 못해 망설이기도 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가 없어 혼란을 빚기도 하고 때로는 실망하는 태도도 보였다. 그 때부터 내가 한국말로 하면 독일어로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아이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독일말만 했다. 내가 한국말로 하면, 나 이해 못해 하면서 들은 척을 안 했다. 이런 일이 빈번해졌다. 공손하게 물건을 갖다 주는 태도도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때로는 내가 시키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물건을 내 앞에 던져 버리고 방을 나가기도 했다. 초등학교를 들어갈 때쯤에는 우리말을 다 잊어버리는 것 같았다. 나는 정말로 우리말을 통째로 잊어버리지나 않을까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아들을 한 번 시험해 보기로 했다. 아들이 좋아하는 과자를 사다가 놔두고 그 과자를 꺼내오라고 했다. 물론 한국말로. 아들은 함박 미소를 지으며 달려가 과자를 꺼내오는 게 아닌가. 나는 그 때 알았다. 아들이 한국말을 안 하는 것은 싫다는 의미이고 그 언어에 동질성을 못 느낀다는 표현이라는 것을.
이런 현실에 부딪히면서 나는 나의 방법으론 아들에게 양쪽 문화를 심어 주기는커녕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마음을 가질수록 한국말을 배워 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은 커져만 갔다. 사실상 이것은 나의 커다란 염원이었으니까. 교육이나 극히 적은 자료나 책으로 언어를 배워 주고 수동적인 방법으로 다른 문화권을 이해시킨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나는 다른 방안을 고안해 냈다. 한국을 보내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다른 문화를 배우고 자신의 문화와 상이한 점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문화적인 문제를 풀어 가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현장에 가서 직접 부딪히고 느끼고 경험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그 길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언어를 배우면서 다른 문화권을 알게 하든지 아니면 다른 문화권을 경험하면서 언어를 서서히 배우게 하든지, 순서가 어떻든 상관없었다. 배우면 되는 것이다. 말 그대로 나의 모국어(한국어)를 배우도록 한국에 자주 보내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한국 말을 배우면서 그 안에 숨어 있는 정감을 대화를 통해서 느끼도록 하고, 얼과 정신을 이어받도록 하여 언어에 맞는 행동양식을 체득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 방법이 한국 민족성을 고양하는 교육으로도 아주 바람직하다고도 보았다. 그래서 나는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 한국에 혼자 보냈다. 혼자 보낸 이유는 한국 말을 더 배울 것 같은 생각에서였다. 같이 간다면 나는 틀림없이 아들의 통역관으로 전락되고 말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아들은 편하겠지만 한국 말을 한 마디도 안 할 것 같은 예감에서였다.
아들은 내 동생들(이모)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가기 전에 아들보다 나이가 더 많은 남자 조카들 이름 뒤에는 형자를 붙여 주고 여자 조카는 누나를 붙여서 이름 부르는 연습을 시켰다. 아들은 형 그리고 누나라는 개념이 이름인지 알았던 모양이었다. 한국에서 누나의 친구를 만나면 00누나라고 부르도록 했던 모양이다. 하루는 한국에서 전화를 하면서 왜 누나라는 똑같은 이름이 많으냐고 물었다. 누나는 나이 많은 여자 아이들에게 쓰는 존대어라고 했다. 그러자 아들은 자기에게 잘해 준 00누나와 00형은 그대로 누나와 형의 단어를 사용하고 어떤 누나는 아주 못되게 굴어서 이름만 부르겠다고 했다. 누나라고 호칭되어질 가치가 없다는 지적이다. 나는 어떤 형이고 누나든지 상관없이 그 단어를 이름 뒤에 붙이고 그들의 말을 잘 들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러자 아들은 어떤 여자 아이는 자기에게 오빠라고 하는데 오빠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나이가 많은 남자 아이에게 붙이는 존대어라고 했다. 그러자 어떤 여자 아이가 이모 집에 와서 한요 오빠라고 하면서 자기가 노는데 자꾸 방해를 놓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렸는데도 자기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하면서 내가 그 아이 오빠면 그 아이는 내 말을 들어야 하지 않아?라고 물었다. 존대어를 사용하면 그 말에 맞게 상대방에게 행동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며칠이 지나 아들과 전화를 했는데 아들이 나에게 물었다.
해순, 엄마가 무슨 말이야, 그 말이 마마라는 소리야?
라고 물었다. 몰라서 하는 질문은 아니었다. 이미 내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는 녀석이다. 분명히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렇게 질문을 해 오는 것이다. 나는 그의 의도를 모른 척하며 이렇게 응수했다.
그렇지. 듣기도 좋잖아. 너, 한국 갔다 오면 날 엄마라고 불러. 알았지!
아들은 한국에서 약 3주를 보내고 돌아왔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일부러 엄마라는 단어를 써가며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 놓았다고 알렸다. 그리고 아들의 눈치를 살폈다.
이모는 맛있는 떡볶이를 내가 원할 때마다 해 줬어. 되게 맛있었어. 이모가 최고야, 최고.
감탄의 연발이었다. 듣기도 좋았다. 정감이 담뿍 담긴 말씨였다. 그는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계속 이모의 음식 솜씨를 칭찬한다. 칭찬하는 모습도 아름다웠다. 이모 식구 모두가 최고로 잘해 주어서 또 가겠다고 했다. 언제 또 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이모는 누나와 형을 그들의 잘못이 없어도 야단을 친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누나와 형은 엄마 잘못 했어요. 엄마 미안해요.라고 한다고 경험을 들추어 내고 있다. 왜 그렇게 야단만 맞고 있더냐고 물었다. 아들의 눈에는 누나나 형이 잘못이 없어 보였지만 이모는 가르치는 입장에서 그 상황을 다르게 본다고 설명을 해 주었다.
해순, 그러면 한국식으로 엄마라고 하면 마마가 야단칠 때 나도 가만히 있어야 하잖아.
내 이름을 부르며 엄마라고 하지 않는 그 이면에는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아들이 전하고 싶은 의도는 엄마의 개념 뒤에 감춰진 권위가 싫다는 것이다. 그 점을 알리고 싶다는 그의 속셈을 내가 모를 리 있겠는가. 아들에게는 자식이 잘못한 일이 없어도 야단을 치는 부모의 태도와 일방적으로 규정된 부모의 규율이 못마땅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에게 엄마라는 개념이 부모의 정당하지 못한 권위와 권리를 합리화한다는 뜻으로 비춰진 것이다.
한요야, 네가 날 엄마라고 하면 난 널 야단치지 않을게.
해순, 그러나 마마가 잘못하면 나는 마마를 야단칠 수 있지?
부모와 자식의 상호관계에서 일방적인 규율을 세우겠다는 의도이다. 나는 자식이 엄마를 어떻게 야단치냐고 꾸짖었다.
마마가 잘못하면 그럼 누가 야단치는 거야?
부모의 권위가 일방적이라는 지적이다. 잘잘못을 가려서 야단을 치는 것은 사회적으로 언약된 가치판단에 기준을 두고 하는 것이다. 그 기준에 토대를 두고 부모만 아이들을 야단치는 것은 편협 적이다. 그러니 아들에게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하기야 교육이란 부모의 입장에서 그러니까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인간관계에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개념에는 어른들의 차원만 반영되어 있다. 그 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똑같다고 생각한다.
인간관계의 질서를 유지하고 그 가치관을 세우는데 동양에서는 유교의 윤리가 출현되었고 서양에서는 기독교 윤리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 윤리와 도덕은 영구하게 적용할 수 있는 점도 많다. 그러나 이 토대 위에서 항상 바람직한 교육 효과를 거두는 것만은 아니다. 윤리와 도덕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적절한 교육을 시키는데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기존의 것들은 때로는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데 제 구실을 못 하고 있는 점도 우리는 발견한다. 효과적인 수단이 결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윤리나 도덕이 적용되든지 상관없이 어느 사회에서나 자식 교육에는 항상 갈등이 따른다고 본다. 요컨대 이 갈등은 현대의 현상만도 아니고 어느 특정한 문화권이 경험해야 할 문제만도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교육 문제는 인간 생활의 일부분이자 인간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나는 간주한다. 소크라테스(기원전 470399에 그리스 아테네에서 출생)도 피력했다. 청소년들은 퇴폐했다고.
그러면 자식 문제가 정말 자식에 의해서만 파생되는가? 나는 교육자로서 나의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청소년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보는 부모가 그들을 제대로 이해를 못하는 데 기인한다고. 나의 전도된 명제를 듣고 학생들은 박수 갈채를 보내온다. 나는 그들의 눈높이에 맞게 나의 명제를 펼쳐 나간다. 학생들은 나에게 좋은 점수를 준다. 그러면 나는 나의 자식으로부터 인정받고 좋은 엄마로서 높은 성적을 얻고 있는가? 내 자식은 너무나 까다로운 채점자이다. 이 명제를 현실로 옮겨 놓는 데는 대단히 어렵다. 나는 자주 나의 모순 된 자신을 발견한다. 아들과 다툴 때 나의 강의를 아들이 어디서 듣고 오지나 않았나 하는 조바심도 있다. 그런데 노심초사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이율배반적이지 않다면. 나는 자식에게는 엄마이자 가르치는 사람이지, 이론가로서 주요한 명제를 펼치는 교수는 아니다. 나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나의 가르치는 역할은 다른가? 교육의 구조적인 면에 그 주요한 원인이 있는 듯싶다.
독일의 학교교육은 일반적으로 인성교육과 지식교육으로 분리되어 발전되고 있다. 원래 교육은 이 두 가지 의미를 함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산업화 되는 과정에서 사회는 복잡해져 가고 모든 사회적 기능이 세분화 되어 가고 있어 이 영향이 교육에도 미친다. 인간 됨됨이를 가르치고 건전한 정신과 육체 발육을 도모하고 지성과 감정이 함께 하도록 하고 사회의 가치관을 배워 주며 거기에 맞은 적절한 행동을 하도록 지도하는 것이 인성교육이라고 간단하게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오늘날 이 교육은 독일에서 주로 부모들이 부분적으로 학교에서 실시한다. 그러나 대학에서는 인성교육이 오늘날 거의 배제된 상태이다. 가정교육은 자식의 행위에 직접적인 책임을 안고 있고 학교교육은 사실상 부분적으로 맡고 있다. 이와 반면 대학은 학생들의 행위에 대해서 이미 성년이기 때문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나는 대학생들에게 이론적으로 지식전달을 하고 있다. 나의 명제를 학생들이 현실에서 제대로 옮기고 있는가를 통제할 이유도 없고 그들도 나의 명제를 내가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지 아닌지 그들이 논할 영역도 아니다. 학생들이 배우고 안 배우고 그리고 실천하고 안 하는 것은 그들에게 선택권이 있는 것이다. 환언하면 나는 지식 전달의 기능자이다. 그러나 자식과의 관계는 아주 다르다. 자식은 나의 명제가 현실에 옮겨지고 있는가를 관찰하고 나의 행동을 평가한다. 나는 부모들이 독재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이면 혹독한 비판을 하고 민주적인 태도로 교육을 시키는 부모이면 칭찬을 한다.
그러면 내 교육의 방법과 자식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이 점 피아제 Piaget, J., The Moral Jugement of the Child, London: Routledge & Kegan, 1932. 독일어: Die Entwicklung des raeumlichen Denkens beim Kinde, Stuttgart: Klett, 1973
와 버른슈타인 Bernstein, B., A Sociolinguistic Approach to Socialization: with some Refernce to Educability. In: Williams, F., Language and Poverty: Perspectives on a Theme. Chicago: Markham 1970, 2662쪽
의 이론에 반영해서 설명해 보자. 가정 내에서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피아제는 1930년도에, 버른슈타인은 1970년도에 이미 발표했다. 그 이론들을 대별해 보면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어서 볼 수 있다. 하나는 가족 성원의 위치를 바탕으로 부모와 자식간의 상호관계가 이뤄지고, 다른 하나는 가족 성원의 인격을 위주로 부모와 자식간의 상호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버른슈타인의 이론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가족 성원의 위치를 바탕으로 맺어지는 상호관계는 일반적으로 전통을 엄수하려고 하며 그들의 역할은 상하의 위계질서를 위주로 뚜렷하게 분할되어 있고, 부모의 권위와 권력을 바탕으로 자식의 행위가 결정되어진다고 했다. 가족성원의 인격을 위주로 한 모델에는 각 개인의 요구가 반영되며 어떤 점을 결정짓기 전에 가족 성원들 사이에 대화나 토론이 우선 시행된다고 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상호간의 어느 정도 동의를 얻어 낸 관계에서 어떤 결정이 내려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와 아들의 관계는 어느 유형에 속할까? 아마 그 중간쯤 될 것이다. 나는 자식에게 내가 생각한 대로 하도록 종용하지 않고 서로 의논을 하고 잘잘못을 가려서 그리고 올바르게 실천하도록 도우려고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들은 나를 그렇게 보지 않는다. 자주 독재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 점은 아들의 반항을 통해서도 제시된다. 아들의 차원에서 보면 나의 교육은 강요적인 면이 더 강할 것이다. 나 스스로 때로는 그렇게 느낄 때도 있다.
우리 모두 토론과 대화를 통해서 우리 가족 현안을 결정하도록 노력한다. 가족 모두가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민주적인 관계가 형성된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형의 가족관계를 일구어 내는 데는 쉽지 않다. 그 과정에 소모되는 시간과 정성은 엄청나다. 특히 인내가 요구된다. 아울러 내 자신도 우리가 규정해 놓은 규율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내가 그 규율을 어기는 것이다. 시간이 없을 때는 더욱더 그렇다. 이 점이 바로 자식에게 비판의 근거가 된다.
아이들은 부모의 행동이나 주위 환경을 보고 거기서 느낀 것을 바탕으로 그들의 행동 방향을 설정한다. 그 점을 아들의 생각에서도 읽어 낼 수 있었다. 아들은 이모 식구들이 잘해 주어서 언제 한국에 또 갈 거냐고 묻는다. 그러면서도 한 마디를 덧붙인다. 누나와 형이 잘못하지 않았어도 이모가 야단치면 형과 누나는 한 마디의 대꾸도 못 하고 빌고만 있었다고. 이 점이 아들에게는 못마땅했던 것이다. 아들은 이렇게 선언했다.
해순, 나는 가만히 있지 않을래. 네가 날 그렇게 야단치면.
아들의 말에서 부모들의 일방적인 규율에 대한 일종의 반항을 볼 수 있다. 하기야 반항 없이 어떻게 부모의 일방적인 압력과 권력을 제지하고 한계를 그을 수 있겠는가.
아들이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은 나와 동등하다는 표현이자 엄마의 권위를 해체시키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다. 푸코 Foucault, Michel (1983): Sexualitaet und Wahrheit. Bd. 1: Der Wille zum Wissen. Frankfurt am Main; (1986a): Bd. 2: Der Gebrauch der Lueste. Frankfurt am Main; (1986b): Bd.3: Die Sorge um sich. Frankfurt am Main
는 언어에서 권력이 형성된다고 하였다. 엄마의 개념은 단순하게 아기자기한 감정의 표현만을 함유하는 게 아니다. 그 속에는 엄마의 권력과 권위도 숨어 있다. 그래서 아들이 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습관에도 있지만 한 독립된 개체로서 보아야 한다는 함의도 있다. 아울러 반항도 포함되어 있다. 반항은 민주주의의 주요한 근본적인 행위이기도 한다. 민주적이지 못한 권위나 힘에 기인한 권력에 대결하지 않으면 권력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유리한 점을 포기하려고 하겠는가. 이 인식을 바탕으로 나는 민주적인 이론을 현실로 옮겨야 한다. 제대로 실천하는가는 아들과의 관계가 시금석으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
아들이 나의 긍정적인 면을 되도록 인정해 주기를 바라면서.
독일의 속담에 이런 뜻이 있다. 모든 공부는 위(장)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수염이 댓 자라도 먹어야 양반이 아니겠어. 저 녀석 깊은 곳에 엄마의 문화가 이미 자리를 잡았으니 어떻게 따지고 이치만 밝히고 지성만 중요하게 여기고 머리만 굴리면서 살겠어. 엄마의 애정과 가슴의 문화를 배척한들 좋을 리 있겠어. 그러나 나는 안다. 정적이고 지적인 면이 융합되어 총체적(holistic)인 문화가 되면 자식과 부모와의 관계는 수많은 아름다움을 이루어 낼 것이다. 언어는 더 풍성해질 것이고 그 안에 숨어 있는 내용도 다양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문화의 부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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