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소설]생오지 뜸부기(7회) – 문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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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2,702회 작성일 10-04-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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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이어..
언젠가 신문을 보니, 1990년대 이후 지구상에서 6천 여 종의 양서류와 조류 및 어류가 사라졌다고 했다. 이 중에서 1백70종의 양서류는 절멸했다. 세계 곳곳에서 동식물들이 대규모로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환경변화에 민감한 생물 종이 위기에 처해있다고 했다.
이것은 다윈이 말한 ‘자연도태’ 가 아니라, 갑작스런 명멸에 가까워 문제가 심각하다고 했다. 동식물들이 대량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것은 백악기에 공룡이 사라졌던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이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대로 간다면 동식물의 멸종이 인간의 멸종으로 이어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사라진 것들이 어디 이 뿐이랴. 콩 볶아 먹는 날. 머슴 날도 없어지고 전을 부쳐 먹었던 백중과 중구 날을 쇠는 사람도 없다. 제삿날 단자며 복토 훔치기 풍속도 없어졌고 마을에서 어른이라는 존재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콩 한조각도 열 사람이 나눠먹는다는 시골 인심이 사라진 것이 아쉽다.
오영기와 계약을 끝낸 처조카 부부는 다음날 떠났다. 그들은 오영기의 집과 뒤꼍의 텃밭, 그리고 논 5백 평도 싸잡아 샀다. 이사는 입추 날 오기로 했다. 아내는 조카 부부에게 우리 집에 빈 방이 많으니 추석 전에라도 내려오라고 당부했다. 내 예감에 처조카 부부가 내려오게 되면 아내의 상태도 한결 나아질 것 같았다.
처조카가 떠난 다음날 새벽부터 비를 머금은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마른번개가 번쩍거리며 하늘을 난도질 해댔다. 농사꾼들은 벼가 마른번개의 번쩍이는 빛을 먹고 자란다고 했다. 나는 시골에 와서야 논의 벼가 번개 빛을 먹고 자란다거니, 콩이 자갈 오줌을 먹고 자란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으나 지금은 그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아침을 먹고 나자 물 먹음은 남풍이 감나무 가지를 줴흔들며 드세어지더니 메마른 땅에 후두둑-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졌다. 나는 응접실 창문을 훨쩍 열어젖히고 서서 비가 내리는 모습을 바라본다. 빗방울이 감나무 잎에 떨어지는 소리가 경쾌하다. 잔가지들이 비바람에 흔들리며 타란텔라의 춤을 추는 것 같다. 잎이 뾰족한 침엽수보다는 잎이 넓은 활엽수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더 리드미컬하다. 바람의 강약에 따라 박자가 빨라지고 느려진다.
메마른 땅에 부옇게 흙먼지를 일으키며 떨어지는 빗소리는 휘모리장단의 장고소리처럼 시원하다.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목이 마른 땅이 쪽쪽 빗물을 빨아들이는 해갈(解渴)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연못에 떨어지는 빗소리도 귀를 맑게 씻어준다. 빗방울이 떨어질 때 박자에 맞춰 튀어 오르는 물방울을 보고 있으면 괜히 가슴이 설렌다.
나는 양철지붕과 시멘트 바닥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싫어한다. 양철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총소리처럼 너무 요란하고 시멘트 바닥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군화 발자국 소리처럼 둔탁하다. 빗방울 굵기에 따라 빗소리도 다르다. 장대비처럼 빗방울이 굵으면 스타카토가 분명하여 경쾌하면서도 흥겹기까지 하지만, 빗방울이 가늘면 바람소리인지 빗소리인지 구별하기가 힘들고 듣기에도 지루하다.
그런가하면 보슬보슬 내리는 봄비나,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는 연인들끼리 속삭이는 것 같기도 하고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것 같아 귀를 기울이게 된다. 계절에 따라 다르고, 빗방울의 굵기에 따라 여러 가지 소리를 내는 빗소리 역시 새소리 못지않게 자연이 내는 아름답고 신비한 음악이다.
오늘처럼 비 오고 바람 부는 날이면 지난 세월과 사라져간 것들이 더욱 그립다. 이런 날에는 아무데도 안 가고 방바닥에서 뒹굴며 어머니가 만들어준 보리개떡이 먹고 싶어진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들큼하고 쫄깃쫄깃 씹히는 맛이 있는 어머니의 보리개떡은 다시 먹을 수가 없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보리개떡을 마지막 먹은 지가 언제쯤이었을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나는 창문을 열어놓고 무연하게 서서 빗소리를 들으며 비 오는 날의 추억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았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비가 쏟아져 토란잎을 뜯어 삿갓처럼 머리에 쓰고 뛰었던 일이며, 고등학교 시절 비를 맞고 가는 세일러복을 입은 여학생한테 우산을 받쳐주었던 기억을 떠올리면 왠지 가슴 밑바닥이 간질간질해진다.
비가 오면 풀벌레와 새들은 울지 않는다. 새들은 비를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날개가 비에 젖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골짜기 마을에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질 때는 빗소리와 바람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비가 그치고 나면 물이 불어난 개울은 골짜기 안통이 떠나갈 듯 무섭도록 소리의 폭이 넓어진다. 비 온 뒤, 물가의 온갖 허섭스레기를 옴씰하게 쓸어가며 내는 개울물 소리는 거칠고 힘차다. 한동안 개울물 소리는 골짜기의 모든 소리들을 제압한다. 그 소리는 오래 가지 못한다. 물이 메마르면 다시 비가 내릴 때까지 개울물 소리는 한동안 약해져서 겨우 가느다랗게 숨소리만 낸다.
비가 그치자 나는 인터넷으로 그동안 뜸부기에 대한 관찰 기록들을 훑어보았다. 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흔한 새였던 뜸부기는 80년대 들어, 산업화 바람으로 서식지를 상실하거나 훼손으로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환경부가 2005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다.
2000년 이후의 관찰기록 중에서 신빙성이 있는 것은,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한국 뜸부기를 43년만에 관찰되었다는 2005년 9월28일의 기록이었다. 남제주군 안덕면 산천리 공사 현장에서 몸과 날개, 다리에 부상을 입은 것을 발견하여 김포에 있는 야생조류보호협회로 옮겨졌다고 했다.
그리고 2006년 5월 전남 신안군 흑산면 홍도리에서 관찰되었다는 알락뜸부기의 기록도 있다. 알락뜸부기는 1930년 이후 국내에서 관찰기록이 한 건도 없었다. 홍도에서 관찰된 뜸부기는 등과 날개에 어두운 갈색에 검은 새로 줄과 흰색의 가느다란 가로줄 무늬가 있고 턱과 배가 흰색인 것으로 보아, 알락뜸부기가 틀림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 2008년 봄에 충남 아산과 고창, 의왕 백사천에서 뜸부기를 관찰했다면서 사진까지 찍어 올려놓았지만 이에 대한 조류학자들의 언급은 없었다. 2008년 7월 13일 충남 아산에서 암수 한 쌍이 관찰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매추리 알보다 1.5배 정도 큰 알 6개의 사진도 올려 졌다. 그리고 경기도 의왕에서 야조회 회원들이 뜸부기를 잡아 모기장에 가두어 놓고 엎드려서 사진 촬영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잠수나 헤엄을 잘 치고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것은 물닭일 가능성이 크다.
4
중복이 지나자 더위는 연일 33도를 넘었다. 한낮의 태양은 참나무 불잉걸처럼 이글거렸다. 태양이 뜨겁게 달아오를 무렵에는 바람마저 숨을 죽였다. 2주 넘게 비 한방을 내리지 않아 개울물이 바짝 말라붙어 물 흐르는 소리조차 들을 수가 없다. 짝짓기가 거의 끝나서인지 이 무렵에는 새들의 울음도 누꿈해졌다. 매미와 여치 등 풀벌레들만 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새워 목청을 돋을 뿐이다.
내리꽂히는 불볕더위 속에서도 매미와 여치가 한껏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보니 어느덧 여름도 끝자락에 다다른 것 같다. 매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유년시절, 매미를 먹으면 목소리가 좋아져서 노래를 잘 한다는 말을 믿고 참매미만 골라 구어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 무렵 우리 마을 아이들은 몸에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잡아먹었다. 개구리를 먹으면 멀리 뛰기를 잘하고 거미를 구워 먹으면 똥고가 막히지 않으며 뱀의 눈을 뽑아 먹으면 눈이 밝아지고 굼벵이를 먹으면 오줌줄기가 멀리 나간다고 했다.
나는 더위를 피해 벚나무 밑 그늘에 앉아 자울 자울 졸았다. 더위가 정점에 오를 무렵인 오후 2.3시쯤, 갑자기 현악기의 줄이 끊어지듯 세상의 모든 소리가 툭하고 멈췄다. 소리의 끈이 끊겨버린 골짜기 안은 한순간 무거운 정적의 늪 속에 깊숙이 잠겼다. 매미와 풀벌레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울음을 멈추었다.
개울의 물 흐르는 소리도 멈춘 지 오래 된데다 바람마저 숨을 죽여, 온 세상이 진공 속처럼 적막한 느낌이다. 너무 조용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다. 시간이 멈추어버린 것 같다. 나뭇가지도 풀잎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지상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제히 소리를 감추어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극성스럽게 울어대던 새들과 곤충들이 모두 죽어버리고 식물들도 광합성 작용을 멈춰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리가 없는 세상은 죽음처럼 쓸쓸하고 공허하다. 공허감을 뚫고 공포감이 엄습해 온다. 이 순간처럼, 세상에서 자연의 소리들이 모두 사라져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내 자신이 숨쉬기를 멈춘 기분이 든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로봇 새와 로봇 곤충을 만들어 울게 할지도 모른다. 기계음을 통해서 새소리와 풀벌레소리, 바람소리와 물소리를 듣게 될지도. 무섭도록 가라앉은 정적은 30분 가까이 계속되었다. 나무그늘 밑에 앉아 있던 나는 소리가 되살아나기를 기다렸다. 소리에 집중하다보면 가끔 불시에 세상이 정적 속에 가라앉을 때가 있다. 그 때마다 나는 이것을 경고 메시지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그 때 골짜기 초입 쪽에서 앵앵 사이렌소리가 정적을 깨고 울리기 시작하더니 점점 가까워졌다. 이윽고 119 구급차가 먼지를 일으키며 마을 안길로 들어갔다. 구급차는 오영기 집 앞에 멈추었다. 구급차 사이렌소리와 함께 골짜기 안의 소리들이 하나씩 되살아났다. 나는 불안한 예감에 사로잡혀 서둘러 마을 안길로 뛰어갔다. 마을 사람들이 오영기 집 앞으로 몰려왔다. 오영기 어머니가 들것에 실려 집 밖에 세워둔 구급차에 옮겨지고 있었다. 순간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은 듯했다.
오영기 부부는 해가 떠오르기 전에 집을 나간 어머니가 점심때가 지나도 들어오지 않자, 논밭을 다 둘러보았지만 찾지 못했다고 한다. 마을 뒷골 아버지 산소 쪽에서 까치들이 떼를 지어 머리가 빠개지도록 울어대기에 혹시나 하고 가보았더니, 어머니가 잡풀 하나 남기지 않고 벌초를 다 해놓고 의식을 잃은 채 묘지에 엎드려 있더라고 했다. 뙤약볕에 묘지의 풀을 말끔하게 이발하듯 베고 나서 기함해 쓰러지고 만 것이다.
“시상에 노인이 무슨 청승으로 묫등 풀을 다 베었을까잉. 아들이 어련히 알아서 벌초를 허고 떠날턴디...”
“서울로 가기 전에 자꼬 죽고 잪다고 해쌌등만, 영감 옆에서 죽을라고 그랬구만 그랴.”
“그 심정 알겄구만.”
멍질라한테서 노인이 구급차에 실려 가게 된 연유를 들은 마을 사람들이 혀를 찼다. 오영기 어머니를 생각하니 날선 가위로 오장을 잘라내는 것처럼 내 속이 아팠다. 나는 마음속으로 가슴을 치며 내 탓이오 내 탓이오 하는 말을 거듭 되뇌었다.
오영기 어머니는 이틀 후에 퇴원을 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병문안을 갔다. 노인은 눈을 꼭 감은 채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로도 한동안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계속 누워만 지냈다. 듣기로는 아사(餓死)를 각오한 듯 식음을 전폐한 채 식구들하고 한마디 말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오영기가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서는 서울로 떠나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오영기는 내게 아무 말도 없었다. 서울 가는 것을 포기하자면 계약을 취소하고 싶다고 말 할 터인데, 나를 만나서도 그런 눈치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만약 오영기가 내게 계약을 취소하고 싶다고 한다면 나는 적극적으로 조카를 설득시켜볼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사 갈 날이 바짝 다가왔지만 오영기로부터서는 끝내 아무 말이 없었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바람이 소소해지면서부터 더위가 서서히 퇴각하고 있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명주실처럼 가늘어지고 명징한 햇살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습윤한 기운이 한껏 가라앉은 듯하다. 무엇보다 가을이 오고 있음을 소리로 확연히 느낄 수가 있다.
어느새 매미 울음이 사라지고 여치도 띄엄띄엄 울었다. 늦여름이나 초가을에 풀밭을 지나다 보면 싸락싸락 삽사리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메뚜기처럼 생겼고 황색 몸에 회황색 날개를 가진 삽사리는 뒷다리를 앞날개에 비벼대어 싸락싸락 하는 소리를 낸다. 밤에는 귀뚜라미가 맨 먼저 계절이 바뀜을 큰 소리로 알려주었다. 귀뚜라미 중에서도 왕귀뚜라미 소리가 가장 크고 아름답다.
새들의 울음도 한결 누꿈해졌다. 먼 산의 새들은 좀처럼 울지 않았으며 참새며 박새 굴뚝새 등 집 주위의 새들만 산자락 찔레덩굴에서 낮은 목소리로, 그것도 이따금씩 여유롭게 울었다. ‘낮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서 울고 밤에 우는 새는 임이 그리워 운다’는 노랫말처럼, 열매가 익어 먹을 것이 포실하니, 이제는 새들이 배가 고프지 않은 때문일까. 아니면 새끼가 부화되어 더 이상 임이 그립지 않은 것일까.
새들과 곤충들 울음이 뜸해지면서 수시로 건들바람이 불어 나뭇잎 흔들어대는 소리가 여름의 퇴각을 재촉했다. 소리가 가라앉은 가을 골짜기는 조금은 공허하고 쓸쓸하다. 소리 대신 화려한 빛깔로 새로운 계절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여름이 소리의 세상이라면 가을은 빛깔의 세상이다. 우리 집을 에둘러 서 있는 벚나무 잎들도 알록달록 물들기 시작했다.
나는 여름이 가기 전에 뜸부기를 찾기 위해 아침과 저녁때에는 어김없이 들을 헤매고 있다. 가을이 오면 뜸부기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골짜기 마을 어디에서도 뜸부기는 보이지 않았다.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는 뜸부기들이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무지개 타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을까.
아침 산책을 마치고 집에 오자 아내가 집 밖에 나와 있었다. 반바지와 민소매 티셔츠 대신 베이지색 투피스로 갈아입은 아내를 본 나는, 또 집을 떠나려는가 싶어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오영기 씨 집에 좀 가보려고요.”
아내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그래? 그럼 나랑 같이 갑시다. 오영기 노모님 병문안도 할 겸...”
“나 혼자 갔다 오겠어요.”
아내는 그러면서 서둘러 마을 안길로 접어들었다. 나는 아내를 뒤 따라 가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아내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지금까지 아내 혼자서 마을 나들이를 간 적이 한번도 없었기에 의아스럽기는 했지만 두고 보기로 했다. 한 시간이 지나도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걱정이 되어 오영기 집으로 가볼까 싶었지만 꾹 참고 벚나무 밑에 서서 기다렸다. 아내는 두 시간 쯤 지나서야 돌아왔다.
“소나무가 꼭 두 날개를 쫙 펴고 있는 학 같습디다. ”
아내가 활짝 밝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예전으로 돌아간 듯한 아내의 밝고 맑은 모습에 나는 너무 놀라고 기뻐서 아내를 덥석 안아주고 싶었다.
“그 집에 소나무 보러 갔었소? ”
흥분된 내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오영기 씨 어머니랑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요. 마침 집에 혼자 있습디다.”
“그래? 지금까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왔는데? ”
“친정어머니 눈 뜨게 해줄라고 낯선 타국 땅에 시집온 며느리를 생각해서라도 더 이상 아들의 꿈을 막지 말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아들 따라서 서울로 가겠다고 합디다.”
그러면서 아내는 여전히 해맑은 얼굴과 눈빛으로 주황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앞산의 잡목 숲을 바라보았다. 나는 아내가 오영기 어머니와 두 시간 동안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음호에 계속..
언젠가 신문을 보니, 1990년대 이후 지구상에서 6천 여 종의 양서류와 조류 및 어류가 사라졌다고 했다. 이 중에서 1백70종의 양서류는 절멸했다. 세계 곳곳에서 동식물들이 대규모로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환경변화에 민감한 생물 종이 위기에 처해있다고 했다.
이것은 다윈이 말한 ‘자연도태’ 가 아니라, 갑작스런 명멸에 가까워 문제가 심각하다고 했다. 동식물들이 대량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것은 백악기에 공룡이 사라졌던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이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대로 간다면 동식물의 멸종이 인간의 멸종으로 이어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사라진 것들이 어디 이 뿐이랴. 콩 볶아 먹는 날. 머슴 날도 없어지고 전을 부쳐 먹었던 백중과 중구 날을 쇠는 사람도 없다. 제삿날 단자며 복토 훔치기 풍속도 없어졌고 마을에서 어른이라는 존재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콩 한조각도 열 사람이 나눠먹는다는 시골 인심이 사라진 것이 아쉽다.
오영기와 계약을 끝낸 처조카 부부는 다음날 떠났다. 그들은 오영기의 집과 뒤꼍의 텃밭, 그리고 논 5백 평도 싸잡아 샀다. 이사는 입추 날 오기로 했다. 아내는 조카 부부에게 우리 집에 빈 방이 많으니 추석 전에라도 내려오라고 당부했다. 내 예감에 처조카 부부가 내려오게 되면 아내의 상태도 한결 나아질 것 같았다.
처조카가 떠난 다음날 새벽부터 비를 머금은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마른번개가 번쩍거리며 하늘을 난도질 해댔다. 농사꾼들은 벼가 마른번개의 번쩍이는 빛을 먹고 자란다고 했다. 나는 시골에 와서야 논의 벼가 번개 빛을 먹고 자란다거니, 콩이 자갈 오줌을 먹고 자란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으나 지금은 그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아침을 먹고 나자 물 먹음은 남풍이 감나무 가지를 줴흔들며 드세어지더니 메마른 땅에 후두둑-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졌다. 나는 응접실 창문을 훨쩍 열어젖히고 서서 비가 내리는 모습을 바라본다. 빗방울이 감나무 잎에 떨어지는 소리가 경쾌하다. 잔가지들이 비바람에 흔들리며 타란텔라의 춤을 추는 것 같다. 잎이 뾰족한 침엽수보다는 잎이 넓은 활엽수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더 리드미컬하다. 바람의 강약에 따라 박자가 빨라지고 느려진다.
메마른 땅에 부옇게 흙먼지를 일으키며 떨어지는 빗소리는 휘모리장단의 장고소리처럼 시원하다.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목이 마른 땅이 쪽쪽 빗물을 빨아들이는 해갈(解渴)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연못에 떨어지는 빗소리도 귀를 맑게 씻어준다. 빗방울이 떨어질 때 박자에 맞춰 튀어 오르는 물방울을 보고 있으면 괜히 가슴이 설렌다.
나는 양철지붕과 시멘트 바닥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싫어한다. 양철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총소리처럼 너무 요란하고 시멘트 바닥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군화 발자국 소리처럼 둔탁하다. 빗방울 굵기에 따라 빗소리도 다르다. 장대비처럼 빗방울이 굵으면 스타카토가 분명하여 경쾌하면서도 흥겹기까지 하지만, 빗방울이 가늘면 바람소리인지 빗소리인지 구별하기가 힘들고 듣기에도 지루하다.
그런가하면 보슬보슬 내리는 봄비나,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는 연인들끼리 속삭이는 것 같기도 하고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것 같아 귀를 기울이게 된다. 계절에 따라 다르고, 빗방울의 굵기에 따라 여러 가지 소리를 내는 빗소리 역시 새소리 못지않게 자연이 내는 아름답고 신비한 음악이다.
오늘처럼 비 오고 바람 부는 날이면 지난 세월과 사라져간 것들이 더욱 그립다. 이런 날에는 아무데도 안 가고 방바닥에서 뒹굴며 어머니가 만들어준 보리개떡이 먹고 싶어진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들큼하고 쫄깃쫄깃 씹히는 맛이 있는 어머니의 보리개떡은 다시 먹을 수가 없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보리개떡을 마지막 먹은 지가 언제쯤이었을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나는 창문을 열어놓고 무연하게 서서 빗소리를 들으며 비 오는 날의 추억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았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비가 쏟아져 토란잎을 뜯어 삿갓처럼 머리에 쓰고 뛰었던 일이며, 고등학교 시절 비를 맞고 가는 세일러복을 입은 여학생한테 우산을 받쳐주었던 기억을 떠올리면 왠지 가슴 밑바닥이 간질간질해진다.
비가 오면 풀벌레와 새들은 울지 않는다. 새들은 비를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날개가 비에 젖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골짜기 마을에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질 때는 빗소리와 바람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비가 그치고 나면 물이 불어난 개울은 골짜기 안통이 떠나갈 듯 무섭도록 소리의 폭이 넓어진다. 비 온 뒤, 물가의 온갖 허섭스레기를 옴씰하게 쓸어가며 내는 개울물 소리는 거칠고 힘차다. 한동안 개울물 소리는 골짜기의 모든 소리들을 제압한다. 그 소리는 오래 가지 못한다. 물이 메마르면 다시 비가 내릴 때까지 개울물 소리는 한동안 약해져서 겨우 가느다랗게 숨소리만 낸다.
비가 그치자 나는 인터넷으로 그동안 뜸부기에 대한 관찰 기록들을 훑어보았다. 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흔한 새였던 뜸부기는 80년대 들어, 산업화 바람으로 서식지를 상실하거나 훼손으로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환경부가 2005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다.
2000년 이후의 관찰기록 중에서 신빙성이 있는 것은,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한국 뜸부기를 43년만에 관찰되었다는 2005년 9월28일의 기록이었다. 남제주군 안덕면 산천리 공사 현장에서 몸과 날개, 다리에 부상을 입은 것을 발견하여 김포에 있는 야생조류보호협회로 옮겨졌다고 했다.
그리고 2006년 5월 전남 신안군 흑산면 홍도리에서 관찰되었다는 알락뜸부기의 기록도 있다. 알락뜸부기는 1930년 이후 국내에서 관찰기록이 한 건도 없었다. 홍도에서 관찰된 뜸부기는 등과 날개에 어두운 갈색에 검은 새로 줄과 흰색의 가느다란 가로줄 무늬가 있고 턱과 배가 흰색인 것으로 보아, 알락뜸부기가 틀림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 2008년 봄에 충남 아산과 고창, 의왕 백사천에서 뜸부기를 관찰했다면서 사진까지 찍어 올려놓았지만 이에 대한 조류학자들의 언급은 없었다. 2008년 7월 13일 충남 아산에서 암수 한 쌍이 관찰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매추리 알보다 1.5배 정도 큰 알 6개의 사진도 올려 졌다. 그리고 경기도 의왕에서 야조회 회원들이 뜸부기를 잡아 모기장에 가두어 놓고 엎드려서 사진 촬영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잠수나 헤엄을 잘 치고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것은 물닭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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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복이 지나자 더위는 연일 33도를 넘었다. 한낮의 태양은 참나무 불잉걸처럼 이글거렸다. 태양이 뜨겁게 달아오를 무렵에는 바람마저 숨을 죽였다. 2주 넘게 비 한방을 내리지 않아 개울물이 바짝 말라붙어 물 흐르는 소리조차 들을 수가 없다. 짝짓기가 거의 끝나서인지 이 무렵에는 새들의 울음도 누꿈해졌다. 매미와 여치 등 풀벌레들만 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새워 목청을 돋을 뿐이다.
내리꽂히는 불볕더위 속에서도 매미와 여치가 한껏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보니 어느덧 여름도 끝자락에 다다른 것 같다. 매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유년시절, 매미를 먹으면 목소리가 좋아져서 노래를 잘 한다는 말을 믿고 참매미만 골라 구어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 무렵 우리 마을 아이들은 몸에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잡아먹었다. 개구리를 먹으면 멀리 뛰기를 잘하고 거미를 구워 먹으면 똥고가 막히지 않으며 뱀의 눈을 뽑아 먹으면 눈이 밝아지고 굼벵이를 먹으면 오줌줄기가 멀리 나간다고 했다.
나는 더위를 피해 벚나무 밑 그늘에 앉아 자울 자울 졸았다. 더위가 정점에 오를 무렵인 오후 2.3시쯤, 갑자기 현악기의 줄이 끊어지듯 세상의 모든 소리가 툭하고 멈췄다. 소리의 끈이 끊겨버린 골짜기 안은 한순간 무거운 정적의 늪 속에 깊숙이 잠겼다. 매미와 풀벌레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울음을 멈추었다.
개울의 물 흐르는 소리도 멈춘 지 오래 된데다 바람마저 숨을 죽여, 온 세상이 진공 속처럼 적막한 느낌이다. 너무 조용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다. 시간이 멈추어버린 것 같다. 나뭇가지도 풀잎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지상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제히 소리를 감추어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극성스럽게 울어대던 새들과 곤충들이 모두 죽어버리고 식물들도 광합성 작용을 멈춰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리가 없는 세상은 죽음처럼 쓸쓸하고 공허하다. 공허감을 뚫고 공포감이 엄습해 온다. 이 순간처럼, 세상에서 자연의 소리들이 모두 사라져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내 자신이 숨쉬기를 멈춘 기분이 든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로봇 새와 로봇 곤충을 만들어 울게 할지도 모른다. 기계음을 통해서 새소리와 풀벌레소리, 바람소리와 물소리를 듣게 될지도. 무섭도록 가라앉은 정적은 30분 가까이 계속되었다. 나무그늘 밑에 앉아 있던 나는 소리가 되살아나기를 기다렸다. 소리에 집중하다보면 가끔 불시에 세상이 정적 속에 가라앉을 때가 있다. 그 때마다 나는 이것을 경고 메시지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그 때 골짜기 초입 쪽에서 앵앵 사이렌소리가 정적을 깨고 울리기 시작하더니 점점 가까워졌다. 이윽고 119 구급차가 먼지를 일으키며 마을 안길로 들어갔다. 구급차는 오영기 집 앞에 멈추었다. 구급차 사이렌소리와 함께 골짜기 안의 소리들이 하나씩 되살아났다. 나는 불안한 예감에 사로잡혀 서둘러 마을 안길로 뛰어갔다. 마을 사람들이 오영기 집 앞으로 몰려왔다. 오영기 어머니가 들것에 실려 집 밖에 세워둔 구급차에 옮겨지고 있었다. 순간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은 듯했다.
오영기 부부는 해가 떠오르기 전에 집을 나간 어머니가 점심때가 지나도 들어오지 않자, 논밭을 다 둘러보았지만 찾지 못했다고 한다. 마을 뒷골 아버지 산소 쪽에서 까치들이 떼를 지어 머리가 빠개지도록 울어대기에 혹시나 하고 가보았더니, 어머니가 잡풀 하나 남기지 않고 벌초를 다 해놓고 의식을 잃은 채 묘지에 엎드려 있더라고 했다. 뙤약볕에 묘지의 풀을 말끔하게 이발하듯 베고 나서 기함해 쓰러지고 만 것이다.
“시상에 노인이 무슨 청승으로 묫등 풀을 다 베었을까잉. 아들이 어련히 알아서 벌초를 허고 떠날턴디...”
“서울로 가기 전에 자꼬 죽고 잪다고 해쌌등만, 영감 옆에서 죽을라고 그랬구만 그랴.”
“그 심정 알겄구만.”
멍질라한테서 노인이 구급차에 실려 가게 된 연유를 들은 마을 사람들이 혀를 찼다. 오영기 어머니를 생각하니 날선 가위로 오장을 잘라내는 것처럼 내 속이 아팠다. 나는 마음속으로 가슴을 치며 내 탓이오 내 탓이오 하는 말을 거듭 되뇌었다.
오영기 어머니는 이틀 후에 퇴원을 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병문안을 갔다. 노인은 눈을 꼭 감은 채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로도 한동안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계속 누워만 지냈다. 듣기로는 아사(餓死)를 각오한 듯 식음을 전폐한 채 식구들하고 한마디 말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오영기가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서는 서울로 떠나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오영기는 내게 아무 말도 없었다. 서울 가는 것을 포기하자면 계약을 취소하고 싶다고 말 할 터인데, 나를 만나서도 그런 눈치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만약 오영기가 내게 계약을 취소하고 싶다고 한다면 나는 적극적으로 조카를 설득시켜볼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사 갈 날이 바짝 다가왔지만 오영기로부터서는 끝내 아무 말이 없었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바람이 소소해지면서부터 더위가 서서히 퇴각하고 있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명주실처럼 가늘어지고 명징한 햇살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습윤한 기운이 한껏 가라앉은 듯하다. 무엇보다 가을이 오고 있음을 소리로 확연히 느낄 수가 있다.
어느새 매미 울음이 사라지고 여치도 띄엄띄엄 울었다. 늦여름이나 초가을에 풀밭을 지나다 보면 싸락싸락 삽사리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메뚜기처럼 생겼고 황색 몸에 회황색 날개를 가진 삽사리는 뒷다리를 앞날개에 비벼대어 싸락싸락 하는 소리를 낸다. 밤에는 귀뚜라미가 맨 먼저 계절이 바뀜을 큰 소리로 알려주었다. 귀뚜라미 중에서도 왕귀뚜라미 소리가 가장 크고 아름답다.
새들의 울음도 한결 누꿈해졌다. 먼 산의 새들은 좀처럼 울지 않았으며 참새며 박새 굴뚝새 등 집 주위의 새들만 산자락 찔레덩굴에서 낮은 목소리로, 그것도 이따금씩 여유롭게 울었다. ‘낮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서 울고 밤에 우는 새는 임이 그리워 운다’는 노랫말처럼, 열매가 익어 먹을 것이 포실하니, 이제는 새들이 배가 고프지 않은 때문일까. 아니면 새끼가 부화되어 더 이상 임이 그립지 않은 것일까.
새들과 곤충들 울음이 뜸해지면서 수시로 건들바람이 불어 나뭇잎 흔들어대는 소리가 여름의 퇴각을 재촉했다. 소리가 가라앉은 가을 골짜기는 조금은 공허하고 쓸쓸하다. 소리 대신 화려한 빛깔로 새로운 계절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여름이 소리의 세상이라면 가을은 빛깔의 세상이다. 우리 집을 에둘러 서 있는 벚나무 잎들도 알록달록 물들기 시작했다.
나는 여름이 가기 전에 뜸부기를 찾기 위해 아침과 저녁때에는 어김없이 들을 헤매고 있다. 가을이 오면 뜸부기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골짜기 마을 어디에서도 뜸부기는 보이지 않았다.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는 뜸부기들이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무지개 타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을까.
아침 산책을 마치고 집에 오자 아내가 집 밖에 나와 있었다. 반바지와 민소매 티셔츠 대신 베이지색 투피스로 갈아입은 아내를 본 나는, 또 집을 떠나려는가 싶어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오영기 씨 집에 좀 가보려고요.”
아내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그래? 그럼 나랑 같이 갑시다. 오영기 노모님 병문안도 할 겸...”
“나 혼자 갔다 오겠어요.”
아내는 그러면서 서둘러 마을 안길로 접어들었다. 나는 아내를 뒤 따라 가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아내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지금까지 아내 혼자서 마을 나들이를 간 적이 한번도 없었기에 의아스럽기는 했지만 두고 보기로 했다. 한 시간이 지나도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걱정이 되어 오영기 집으로 가볼까 싶었지만 꾹 참고 벚나무 밑에 서서 기다렸다. 아내는 두 시간 쯤 지나서야 돌아왔다.
“소나무가 꼭 두 날개를 쫙 펴고 있는 학 같습디다. ”
아내가 활짝 밝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예전으로 돌아간 듯한 아내의 밝고 맑은 모습에 나는 너무 놀라고 기뻐서 아내를 덥석 안아주고 싶었다.
“그 집에 소나무 보러 갔었소? ”
흥분된 내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오영기 씨 어머니랑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요. 마침 집에 혼자 있습디다.”
“그래? 지금까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왔는데? ”
“친정어머니 눈 뜨게 해줄라고 낯선 타국 땅에 시집온 며느리를 생각해서라도 더 이상 아들의 꿈을 막지 말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아들 따라서 서울로 가겠다고 합디다.”
그러면서 아내는 여전히 해맑은 얼굴과 눈빛으로 주황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앞산의 잡목 숲을 바라보았다. 나는 아내가 오영기 어머니와 두 시간 동안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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