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생오지 뜸부기(6회) – 문순태 > 아메리카 이민문학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아메리카 이민문학


 

소설 [소설]생오지 뜸부기(6회) – 문순태

페이지 정보

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2,783회 작성일 10-04-01 17:59

본문

전편에 이어..

“뜸부기는 아직 못 찾았어요? ”
오영기 부부가 돌아 간 뒤에 수박을 먹으며 처조카가 뚜벅 물었다.

“뜸부기 우는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은 더러 있는데 아직은....”
“인터넷에서 알아보니까 뜸부기가 천연기념물 4백46호로 지정이 되어 있데요? 그렇게 귀한 새인 줄은 몰랐어요.”
“옛날에는 흔했었지.”
“앞으로 저랑 같이 열심히 찾아 봅시다요.”
“글세, 찾기가 쉽지는 않을 거야. 내가 여기 와서 3년 동안 찾고 있지만 아직 울음소리 한번 못 들었으니까.”
“기다리면 언젠가는 오겠지요. 희망을 가집시다.”
“희망? ”
“예. 저는 희망을 갖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습니다.”

처조카는 어쩌면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무엇을 찾기 위해 버려진 농촌으로 내려오기로 한 것인가. 그가 말하는 희망이 뜸부기가 아닌 것만은 분명한 것 같은데 말이다. 처조카 부부는 주변을 한번 돌아보고 어둡기 전에 돌아오겠다면서 트럭을 몰고 나갔다.

나는 혼자 무료하게 벚나무 밑 그늘에 앉아 있었다. 아까부터 정수탱크 앞 뽕나무밭 언덕배기에 희끔희끔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나는 눈에 힘을 주어 언덕배기를 바라보았다. 직각으로 굽은 허리에 지팡이를 짚고 꼼지락꼼지락 언덕배기를 올라가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오영기의 노모가 아닌가.

그곳에 밭이 있는 것도 아닌데 노인이 무엇 때문에 그 높은 곳까지 올라가고 있는 것인지 의아심이 생겼다. 나는 더럭 불안한 생각이 들어 등산화로 바꿔 신고 서둘러 뽕나무밭 언덕배기로 올라갔다. 노인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물탱크 뒤쪽으로 가보았다. 노인은 밤색 몸빼에 목이 헐렁하게 늘어지고 누리끼리하게 색이바랜 러닝 차림으로, 물탱크 뒤 손바닥만한 오리나무 그늘 밑에 두 다리를 쭉 뻗고 퍼질러 앉아 있었다.

“할머니, 여기서 뭣하세요? ”
내가 가까이 다가가며 묻자 노인은 소스라치듯 놀랐다. 노인은 원망과 서글픔이 엉켜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고향을 떠나기가 싫으시죠? ”

노인 옆에 앉으며 물었다. 노인은 아무 반응 없이 무연히 마을을 내려다보고만 있다.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한여름 대낮의 집들은 땅바닥에 돌멩이처럼 가라앉아 있다. 마을 입구 뒤집어 놓은 배 모양의 우리 집과 오래 된 느티나무 옆 정자며, 마을 안길 탱자울타리를 지나 명품 소나무가 서 있는 노인의 집까지 빤히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탱자울타리 지나 이장 집 블록 담 벽을 주황빛 능소화가 담뿍 덮고 있는 것도 보인다. 일곱 살짜리 오영기의 큰 아들 순득이가 목청껏 할머니를 외쳐 부르며 집 밖으로 나와 두리번거리자 이장 집 검둥이가 컹컹 짖어댄다. 개 짖는 소리에 놀랐는지 옆집 청국장 할머니네 수탉이 다급하게 꼬꼬댁거린다.

할머니를 찾는 목소리며 개 짖는 소리. 닭소리가 바람소리에 어울려 평화롭고 친근하게 들린다. 잠잠하던 개고마리가 성가시게 우짖는 소리도 싫지가 않다.

“큰 손자가 할머니를 찾고 있구만요.”
“떠나기 전에 언넝 죽고만 자퍼.”

노인은 내 말에는 대꾸 하지 않았다. 노인은 이 마을로 시집 와서 70년간 살아온 이야기를 한숨 섞어가며 푸념하듯 조단조단 털어놓았다. 노인의 남편은 태어날 때부터 외다리에다 말을 못하는 귀머거리로,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없었다.

노인의 친정이 땅 한 뙈기 없이 가난한데다가 자식이 칠남매나 되어, 부모는 입 하나라도 줄이려고 몸도 정신도 성치 못한 나이 많은 총각한테 서둘러 시집을 보냈다고 했다. 남편이 할 수 있는 것이란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이었다. 농사일은 전혀 못하는 사람이, 누구한테 배운 것도 아닌데 신통하게 나무 가꾸는 일만은 따를 자가 없었다.

다른 사람이 심으면 다 죽어도 남편이 심은 나무는 절대 죽지 않았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남편을 나무 박사, 나무귀신이라고들 했다. 죽어가는 나무라도 남편의 손이 닿으면 신통하게도 되살아났다. 마을 앞 5백년 된 노송이 죽게 되었을 때도, 마을 사람들은 남편만 살아 있어도 소나무를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안타까워했었다.

“시집 온 것이 아니라 머심살이를 온 것이였제. 까탈시런 시어머니흐고 뼛속에 진물이 괴이도록 농사를 지어서 포도시 묵고 살었당께. 그 통에도 누에를 쳐서 땅도 사고 집도 지었어. 그렁께 저 집은 내 한숨과 피눈물로 지은 집이여. 그런 전답과 집을 팔다니...”
“아드님이 자식들 장래를 위해 보다 넓은 세상에서 살고 싶어서 그러겠지요. 젊은 사람이 시골구석에 살자니 오죽 답답하겠어요. 아드님 소원이 그러니 맘 편하게 떠날 수 있도록 놓아주세요.”

나는 노인의 애잔하게 홀 맺힌 마음을 다독여주고 싶었다. 할머니를 찾는 노인의 큰 손자 목소리가 마을이 삐걱거릴 정도로 커졌다. 덩달아 이장 집 검둥이와 청국장 할머니네 닭들이 가까스로 가라앉은 마을을 한바탕 휘저어놓았다. 노인의 큰 손자가 할머니 찾는 것을 포기했는지 다시 집으로 들어가자 마을은 이내 조용해졌다. 언덕배기 아래 오동나무 가지에서 울어대던 개고마리도 울음을 그쳤다. 한여름 낮 한 때의 찐득한 정적 속에, 노인의 숨소리가 거칠게 느껴졌다.

“넓은 세상에 산다고 답답허지 않은 것이 아니여. 손바닥만큼 좁은 세상에서 살어도 마음을 넉넉허게 풀고 살면 답답허지 않은 벱이여. 나는 이날 이 때꺼정 생오지 골짝에서만 살었어도 담배씨만큼도 답답허지 않었어. 우리 앞 집 사는 청국장 할머니, 올봄에 광주 아들네 집에 갔다가 새장에 갇힌 것 맹키로 답답해서 울렁증이 생겨갖고 아파트에서 못 살겄다고 후딱 내려와뿌렀당께. 송충이는 솔밭에서 살고 배추벌레는 배추밭에서 살어야 신간이 편혀.”

그러면서 노인은 죽어도 서울로 가지 않겠다면서 이 마을에 방 하나 얻어서 혼자 남아있겠다고 했다. 나는 노인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오영기가 걱정 되었다.

“혼자 남아계시면 아드님이 어떻게 떠날 수 있겠어요. 그러면 아드님 희망이 사라지지요. 희망을 찾아서 저렇게 간절하게 서울로 가고 싶어하는데...아드님 희망을 꺾어서야 되겠어요? 그리고 며느리 생각도 좀 하셔요. 이번 기회에 앞 못 보는 며느리 친정어머니 눈도 고친다고 하지 않아요.”
“도회지가 좋으면 선상님은 왜 촌구석으로 오셨소? 아, 뜸부기 찾을 라고? 뜸부기 찾아서 뭣 허실라고? 뜸부기가 남자들헌테 좋다등만... 약에 쓸라고? ”

노인의 말이 어쩐지 나를 비아냥거리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어색한 표정으로 푸시시 웃음을 날렸다. 내가 뜸부기를 찾는 이유를 절절이 설명한다고 해도 노인은 결코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때로는 나 자신도 간절하게 뜸부기를 찾고 있는 이유를 잘 모를 때가 있다.

다만 내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새가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싶다. 어쩌면 내가 간절하게 찾고 있는 뜸부기는 산 넘고 바다를 건너서도 갈 수 없는, 다른 세상에서나 볼 수 있는 전설 속의 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뜸부기 찾는 것을 그만둘 수는 없다. 이제 뜸부기를 찾는 것 자체가 내 삶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죽은 후, 사람들 마음속에 ‘ 만년에 고향에 돌아와 뜸부기를 찾아 헤맸던 사람’ 이라는 기억만이라도 남겨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뜸부기를 찾아 나서기 시작하면서부터 문득문득 송광사의 심우도(尋牛圖)가 떠오르곤 했다. 심우도의 열 가지 그림 중에서 여섯 번째, 동자가 구멍 없는 피리를 불며 흰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우귀가(騎牛歸家)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구멍도 없는 피리에서 어떤 소리가 날까 하는 것이 무척 궁금했다. 스님에게 물었더니 그것은 육안으로 살필 수 없는 인간의 본성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라고 했다. 나는 스님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암튼, 나는 아직 심우도의 첫 번째 그림인, 동자가 소를 찾아 고삐를 들고 산속을 헤매고 있을 뿐, 소의 발자취도 찾지 못했으니, 아직 모든 것이 아득할 뿐이다.

뜸부기를 찾아 나서기 전까지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며 살아왔단 말인가. 아무것도 찾으려하지 않고 숨 가쁘게 시간에 쫓기면서 허송세월한 것이 후회스러울 따름이다. 허겁지겁 살면서 욕심껏 움켜쥐었던 것들은 어느새 모래처럼 시나브로 손가락 사이로 다 흘러버리고, 남은 것이라고는 회한과 아쉬움과 미망의 헛헛한 그리움뿐이었다.

어쩌면 내가 뜸부기를 찾아 나선 이유가 내가 시골에 머물러 있기 위한 자기변명이거나, 아내를 내 옆에 묶어두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두통이나 어지럼증 때문이라고 한 것은 옹색한 변명일 수도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치고 기계음 때문에 두통이나 어지럼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어디 나 하나뿐이겠는가.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별히 할일도 없으면서 한사코 아내를 옆에 묶어둔 채 시골에 머물러 있자니, 남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 싫어서인가. 그렇다고 생태계를 조사하고 복원하겠다는 거창한 꿈이 있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굳이 이유를 대라면 막연한 그리움 때문이라고 해야 옳다.

유년시절에 보았던 뜸부기에 대한 기억 역시 내게는 그리움의 대상이다. 기억 속의 뜸부기는 가끔 꿈에 나타나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뜸부기의 몸통은 새가 분명한데 얼굴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나 누나의 얼굴이 되기도 했고 오래전에 헤어져서 한번도 만나지 못한 친척들과 친구들 얼굴로 변하기도 했다. 꿈속에서 뜸부기는 자꾸만 하늘로 높이 날아오르려고 했다.

정년퇴직을 하고 나자, 모든 것들이 그리웠다. 지나온 삶의 궤적을 따라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면서 기억들이 하나하나 되살아났다. 내일에 대한 설렘이나 기대보다는 지난 세월에 대한 아쉬움이나 미련들에 한사코 마음이 갔다.

한 때 사랑했던 것, 오랫동안 잊고 살아왔던 것, 잊으려고 했던 것, 소홀히 했던 것, 집착했던 것, 욕심을 부렸던 것, 미워하고 싫어했던 것들까지도 애절하게 그리웠다. 특히 내 그리움의 대상은 많은 세월이 지났으나 본디 모습이 변하지 않고 원형 그대로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그런 것들은 거의 사라지고 다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지나간 세월의 매듭마다에 그리움은 슬픔이 되어 켜켜이 쌓여있는 것 같았다. 그리움의 중심에 뜸부기가 있었다. 끝내 뜸부기를 찾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연을 띄우다가 거친 바람에 연이 하늘로 날아가 버리자 끊어진 연줄만을 움켜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나는 뜸부기 찾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다. 오영기 노모처럼 세상 사람들은 이런 나를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그 비웃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뜸부기를 찾아 나서면서부터 나는 비로소 내 존재감을 확실하게 느끼기 시작했으니까.

“제가 뜸부기를 찾고 있는 거나, 아드님이 서울로 가고 싶어 하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곧 후회했다. 이 말은 나를 비아냥댄 노인에 대한 반격에서 나온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노인을 조롱한 셈이다. 물론 노인은 내 말을 이해할 턱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께, 시방, 우리 아들이 서울로 뜸부기 찾으로 간다는 말이여 뭣이여? ”
“서울에도 뜸부기가 있을지도 모르지요.”

나는 어깃장을 놓듯 계속 엇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물론 그것은 고의는 아니다. 순간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할머니는 뜸부기 많이 보았지요? ”
나는 노인을 조롱한 것 때문에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들어 정색을 하고 진지하게 물었다.

“ 젊은 시절에야 쌔고 쌨었제.”
“그 많은 뜸부기들이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요? ”
“사람들 욕심 탓이여. 욕심이 뜸부기를 없앤 것이여. 논 한 마지기에서 쌀 두 가마니만 내 묵어도 되는디, 네 가마니, 다섯 가마니씩이나 묵을라고 욕심을 부리는 통에...사람 욕심 땜시 없어진 것이 워디 뜸부기 뿐이간듸? 우리 젊었을 적에는 밤마다 집 앞꺼정 여시가 내려와서 캑캑해쌌고 밤에는 호랭이 무서워서 뒷간에도 못 갔어. 황새. 구랭이 못 본지도 오래 되었고 집집마다 있었던 풍구, 애기 낳을 때 쳤던 금줄도 볼 수가 없어. 물방애간도 없어지고 곧 재 너머 핵교도 없어진담서? ”

그러면서 노인은 오래 전부터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다는 것들을 하나하나 들먹이기 시작했다. 노인이 손가락을 꼽아가면서 말한 것들은 달구지. 연자방아. 원두막. 섶다리. 징검다리. 못줄. 똥장군. 가마솥. 다듬이. 인두. 조리. 멱서리. 지개. 나막신. 두레박. 당그래. 산태미. 바지개. 털메기. 쟁기. 가마. 상여소리. 못줄 넘기는 소리. 엿장수 가위질 소리. 다듬이 소리. 들노래 등이었다. 나는 노인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특히 옛날에는 흔했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동식물들이 너무 많았다. 포유류만 해도 호랑이. 표범. 늑대. 여우. 사향노루. 산양 등 10종이 사라졌거나 멸종 위기에 있고 조류 중에 제비. 참새. 황새. 흑고니. 매. 검독수리. 저어새. 두루미. 노랑부리 백로 등은 보기 어렵지 않은가.

나는 시골로 내려온 지 3년 동안 한번도 장수하늘소. 두 점박이 사슴벌레는 물론 미호종개. 꼬치 동자개. 퉁사리 등도 보지를 못했다. 또한 환경부에서 특정 야생식물 126종을 희귀종으로 지정하고 멸종 위기 16종, 감소추세 20종으로 분류했다고 한다.

하기야 나도 시골에 내려와 산과 들을 돌아다니면서도 으름난초. 솔나리. 노랑붓꽃. 진노랑 상사화.끈끈이귀개.산작약.순채.독미나리. 기생꽃. 미선나무. 황기. 미치광이풀. 금강초롱. 깽깽이풀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다음호에 계속..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