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생오지 뜸부기(5회) – 문순태 > 아메리카 이민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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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소설]생오지 뜸부기(5회) – 문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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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2,744회 작성일 10-04-01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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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이어..

“우리 남편이가 소나무 팔라갖고.... 몽골 엄마 서울에 모셔와 갖고 ....눈 수술 해주기로 해써요. 소나무 못 팔며는 우리 엄마 눈 못 고쳐요.”
멍징라가 큭큭 소리 내어 울면서 말했다. 아내가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걱정 말아요. 우리 조카한테 소나무 값 별도로 더 주라고 할 테니까.”
아내가 멍질라의 어께를 다독거리면서 달랬다.

“죽은 시 아버지가 우리 엄마 위해서... 옛날에 소나무 심어 놓은 거 같어요. 그러고 하늘나라 간 우리 아버지가 나를 오영기씨한테 시집보내 주어다고 생각해요. 이거는 운명이고 소중한 인연입니다.”
우리 집을 나설 때 멍질라의 표정이 새뜻하게 밝아졌다. 아내는 집 밖 다리 건너까지 멍질라를 배웅해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한 마디도 못하고 마당에 나와 벚나무 가지 사이로 땅껍질을 벗기듯 신발 앞부분으로 땅을 툭툭 차며 걷는 멍질라의 뒷모습만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집을 나설 때 그녀가 인연에 대해 한 말이 내 머릿속에서 부스럭거렸다.

어쩌면 그녀의 말대로, 오영기의 아버지가 소나무를 심은 뜻은 훗날 멍질라 어머니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버거운 짐을 진 듯 힘겹게 걸어가는 멍질라의 뒷모습에서 앞을 보지 못하고 다듬거리는 그녀 어머니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문득 작년 추석날 몽골 전통의상인 푸른색 테들렉에 꼭대기가 산봉우리처럼 뾰족하고 빨간 리본을 단 모피 모자를 입고 혼자 마당을 서성이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명절날 고향에 가지 못하는 아픔과 그리움을 삭이지 못해 전통의상을 입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멍질라는 요리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끔 우리 집에 들르곤 했다. 어떤 날은 아내가 멍질라가 오는 시간에 맞춰 미리 집 밖에 나가 있다가 그녀를 맞아 집에 데리고 들어오기도 했다. 멍질라가 우리 집에 오는 날이면 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주곤 했다. 아내와 멍질라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큰 소리로 웃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아내가 멍질라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멍질라 때문에 아내가 변해가고 있었다.

골짜기의 한여름 대낮은 햇빛 속에 고즈넉하게 엎드려 있다. 새들도 더위에 목이 타는지 울음을 그쳤다. 어느새 풀벌레와 매미가 한낮의 소리 공간을 완전히 제압해버렸다. 풀벌레 중에서도 여치의 목소리가 제일 크다. 겨우 2개월 동안 살수 있는 여치는 그 짧은 삶에서 서둘러 짝짓기를 끝내고 알을 낳아야하기 때문에 울음소리마저 다급하다.

나는 문득 어렸을 때 여치를 잡아 보릿대로 집을 만들어 마루 위 기둥에 걸어놓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여치보다 더 귀를 자극하는 것은 말매미 소리다. 토종매미인 참매미는 매암 매암하고 가락에 맞추듯 제법 구성지게 우는데 남방계열인 말매미는 마치 사이렌 소리처럼 자극적으로 신경을 오랫동안 계속해서 득득 긁는다.

더욱이 한 마리가 울면 다른 말매미들도 경쟁적으로 따라 울어, 꼬챙이로 마구 귀를 뚫는 것 같다. 이들은 산에서만 운다. 농약이나 제초제 영향으로 시골이라고 해도 논이나 밭, 집 주변에서는 매미도 풀벌레도 울지 않는다.

작년 여름 서울 강남 처가에 갔을 때 처남 말이, 해마다 여름이면 어찌나 매미가 극성스럽게 울어대는 바람에 깊은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푸념했다. 나는 도시 사람들로부터 해가 갈수록 매미가 더욱 극성스럽게 울어댄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온 터였다. 확실히 도시 아파트 주변에 매미들이 신경질적으로 사납게 울어대는 것을 들을 수가 있었다.

농촌의 매미소리보다 도시의 매미소리가 더 극성스럽다. 더욱이 농촌 매미는 주로 낮에 우는데 도시의 매미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밤낮을 구별 할 수 없을 정도로 환하게 불을 밝혀 놓고 있으니 매미들도 헷갈릴 수밖에. 도시 매미들 울음소리가 더 높고 요란한 것은 차량 소음 등 기계음으로 심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매미 자신들이 어쩔 수 없이 울음소리를 키웠는지도 모른다.

처남은 또 강북 매미보다 강남 매미 소리가 더 시끄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남매미가 강북 매미보다 더 시끄러운 이유?’ 라는 제목의 신문기사를 보여주기도 했다. 신문기사를 보니 소리 측정결과 강북 매미 소리가 66,8 데시빌인데 비해 강남 매미는 87,6데시빌이나 되었다. 그것은 강남에 말매미가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강남의 가로수가 양버즘나무나 버드나무 등 활엽수가 많아 말매미들이 좋아하는 수액을 빨아먹기 위해 몰려들기 때문이란다.

강남에 비해 강북 쪽은 침엽수나 은행나무 가로수가 많은 편이다. 도시에서는 자동차 배기가스 등 환경오염으로 많은 곤충이 사라지고 있는데 반해 유독 매미가 번성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매미는 일생을 대부분 땅 속에서 보내기 때문에 환경오염에 잘 견디는 편이다. 매미의 천적인 조류가 급격히 줄어든 이유도 있다. 그렇지만 신경 줄을 끊는 듯 아무리 듣기 싫은 말매미소리라고 해도, 기계음에 비하면 훨씬 부드러워 견딜만하다.

오전 중에 온다던 처조카는 해가 설핏할 때까지 소식이 없다. 시골로 내려온 후, 아직까지 누구를 간절하게 기다려본 일이 없는 아내는 아까부터 앞마당 느티나무 그늘 밑에 앉아서 마을로 휘어 들어오는 길모퉁이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멍질라의 부탁 때문에 조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멍질라가 우리 집에 왔다 간 후 아내가 조금씩 달라져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것부터가 큰 변화인 것이다.

해넘이 무렵 전화벨이 다급하게 울려서 받아보았더니 또 운곡리 최 노인이다. 방금 미루나무 밑 논에서 뜸부기를 보았다면서 빨리 오라고 성화다. 이번에는 확실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나는 가볍게 콧바람을 불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어둠이 두꺼워지기 시작하는 집에서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혼자 외롭게 서성거리고 있는 최 노인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어쩌면 최 노인이 나보다 뜸부기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간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매정하게 전화를 끊어버린 것을 후회했다.

3

다음날 오후 늦게 처조카 부부가 헌털뱅이 청색 트럭을 몰고 왔다. 지금 살고 있는 연립주택을 매입할 사람이 있어 계약을 하고 오느라 늦었다고 했다. 아내는 다짜고짜 조카에게 소나무 값을 제대로 쳐주라는 부탁부터 했다. 아내한테서 멍질라 친정어머니 이야기를 듣고 난 조카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연립주택 값을 잘 받은 듯 조카 부부는 기분이 약간 달떠보였다. 시골로 내려오게 된 것이 마냥 즐거운 듯싶었다.

“시골로 오는 게 좋아?”
“그럼요, 고모님. 전 지금 희망에 부풀어 있어요. 여기서 우리 두 사람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 될 텐데요. 서울에서 실패한 인생을 시골에 와서 보상받고 싶어요. 막상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을 하고 나니, 하루도 더 머물러 있고 싶지가 않아요. 자동차 빵빵대는 소리도 진절머리 나고, 극성맞게 울어대는 말매미소리도 듣기 싫어요. 헌데, 여기 오니까 공기도 달고 새소리 매미소리도 정겹게 들리네요. 마치 천국에 온 기분이랍니다.”
“천국이라고? 천국이 이렇게 지옥처럼 지루하고 답답하고 고달픈 곳인가?”
“ 여기서 살면 아무 근심걱정이 없을 것 같아요.”

나는 아내와 처조카가 주고받는 말을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한 공간이 아내한테는 지옥 같고 처조카한테는 천국 같다니, 이렇게 생각이 다를 수 있단 말인가. 그 같은 차이가 무엇 때문인지 분명하게 알고 싶었다.

“시골로 내려오면 욕심부터 버리기로 했어요. 두 사람 기거할 집과 딱 일궈 먹을 땅이 조금만 있으면 충분할 것 같아요.”

처조카는 연립주택을 매도한 돈으로, 오영기 집과 논 4백 평, 밭 1백 평 외에, 산 1천 평 정도 샀으면 좋겠다고 한다. 논 두 마지와 밭 한 마지기에 농사를 지으면 두 식구가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1천 평의 산에는 옻나무를 심어 꿈을 키워가겠다고 한다. 그는 옻나무 제배법과 수익성에 대한 정보도 충분히 수집했다고 말했다. 처조카의 귀농에 대한 계획은 소박하고도 구체적이다.

나는 점심을 먹고 나서 오영기 부부를 우리 집으로 불렀다. 처조카 부부가 오영기 집을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했으나 오영기 노모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계약은 쉽게 이루어졌다. 물론 소나무 값은 오영기가 요구한대로 쳐주기로 했다.

“소나무 값을 별도로 쳐주는 대신 꼭 멍질라 친정어머니를 한국에 모셔 와서 눈 수술을 해드리겠다고 약속해주세요. ”

아내가 멍질라를 보며 오영기한테 다짐을 받아냈다. 멍질라는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아내를 보며 거듭 고개를 주억거렸다. 눈빛과 얼굴 표정에 고마움이 찐득하게 깃들어 있었다. 아내도 기분이 좋은지, 얼굴이 안개 걷힌 소나무 숲에 아침 햇살이 쏟아지듯 한껏 밝아졌다. 아내의 그런 얼굴을 본 것은 시골로 내려온 후 처음인 것 같다.

나는 그 멋진 명품 소나무가 우리 마을에 그대로 남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뻤다. 한 그루의 소나무가 여러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나도 오영기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을 닮은 소나무 한 그루를 마당 귀퉁이에 심어 잘 가꾸고 싶다. 내가 심어놓은 소나무 한 그루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누구인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시골에 와서 깨달은 것은 나무와 새, 곤충들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사람과 돈뿐이라고 생각했었다. 자연이 주는 행복감은 잔잔한 여운을 주고 시간이 흐를수록 한없이 부풀어 오른다는 것도 알았다. 어떤 경우에도 이것들은 사람을 배신하거나 실망을 안겨주지 않는다는 것도.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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