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소설]생오지 뜸부기(3회) – 문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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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2,740회 작성일 10-04-0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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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이어..
2
내가 광주를 떠나 골짜기 마을 생오지로 옮겨온 것은 두통과 어지럼증 때문이었다. 정년을 하고 아파트에 칩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심한 두통과 어지럼증에 시달렸다. 처음에는 머리가 약간 먹먹하다가 망치로 얻어맞은 듯 띵하더니 정수리 쪽이 콕콕 쑤시다가 우지끈 우지끈 골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도 머리를 꽉 조이는 듯하면서 빠개질 듯 아팠다. 통증은 처음에 뒷머리에서부터 지끈거리다가 전두엽으로 옮겨진 후, 얼굴 전체로 퍼졌다. 심할 때는 얼굴과 코 주위까지도 지끈지끈 아팠다. 이럴 때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 싸고 비명 아닌 괴성을 지르며 괴로워했다. 딱따구리 새가 날카로운 부리로 골을 쪼아대는 것 같기도 하고 심할 때는 호비칼로 머리를 후벼 파는 듯했다. 처음에는 게보린을 복용하면 효과가 있었다. 차츰 약효가 떨어져서 진통제를 한줌이나 먹어도 소용없게 되었다.
뇌에 이상이 있는가 싶어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았으나 특별한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두통의 원인은 편두통. 긴장성두통. 중이염이나 축농증. 치주염. 충치. 뇌수막염. 뇌염. 뇌 기생충 질환. 뇌진탕. 뇌좌상. 뇌출혈. 지주막하 출혈. 뇌종양. 고혈압. 가스중독. 알콜 중독. 니코친 중독. 외부압박. 한냉 자극성. 기침. 심한 운동. 성교 등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그러나 의사는 원인불명의 두통이라는 결론을 내렸을 뿐, 끝내 병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문헌을 뒤져보았더니 중세 이전에는 치료가 되지 않을 정도로 두통이 심한 경우에는 ‘머릿속에 악마가 산다 ’ 고 하여, 두개골에 구멍을 뚫었다고 했다. 나도 두통이 심할 때는 내 머리에 구멍이라도 내고 싶을 정도였다. 여러 차례 끌로 뇌에 구멍을 내는 꿈을 꾸기도 했다.
두통은 점점 더 심해졌다. 처음에는 주로 늦은 오후에나 저녁에 몰려오던 두통은 한달 쯤 지나자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아파트 안에 있으면 통증이 더욱 심해지는 것 같아 밖으로 나돌아 다니기 시작했다. 목적지도 없이 지치도록 종일 쏘다니다가 저녁에 들어오는 날에는 고단함 때문인지 쉽게 잠이 들곤 했다.
그런데 밖으로 나돌아 다니기 시작한 후 갑자기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주변이 빙빙 도는 것 같아 걷는데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세상이 도는 것 같았다. 나를 중심으로 산도 나무도 사람들까지 빙글빙글 돌아 지팡이를 짚고도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어지럼증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가보았다. 의사는 현훈증( 眩暈症)이 아니면 균형 장애 때문일 가능성이 많다면서 ct촬영을 하자고 했다. 현훈증일 경우, 뇌졸중이나 뇌종양, 간질 또는 말초신경정신 장애가 원인이고, 균형 장애는 다발성 뇌경색이거나 자율신경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촬영 후에도 의사는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여름 날, 친구들이 피서를 가자며 한사코 싫다는 나를 억지로 자동차에 태우고 지리산 깊은 골짜기로 들어갔다. 친구들은 소나무와 편백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찬 계곡에서 맑고 시린 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피서를 즐겼다.
그날 밤 우리들은 계곡의 숲 속에 자리 잡은 통나무집에서 민박을 했다. 몇 달 만에 두통 없이 잘 잤다. 개울물 소리와 새들이 낭자하게 울어대는 소리에 잠이 깼다.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솔새와 박새 우는 소리였다. 새소리는 촬-촬-촬 계곡물 흐르는 소리며 적당하게 불어온 바람소리와 함께 어울려 듣기에 참 좋았다. 내 몸이 바람에 실려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처럼 편안해졌다. 그 소리들은 하모니를 이루어 내 머리와 핏줄 속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어찌된 일인지 어지럼증도 두통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통나무집에서 가까운 편백나무 숲속에 들어가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 채 턱 끝을 쳐들고 걸을 수가 있었다. 골짜기 주변을 뛰어다닐 정도로 조금도 어지럼증을 느끼지 않았다. 오랜만에 머릿속이 아침 햇살에 눈부신 꽃잎처럼 맑았다. 머릿속에 침투해 나를 괴롭히던 악마가 홀연히 빠져나가버린 기분이었다. 나는 휘파람을 불어대며 향기로운 숲속을 거닐었다.
도시로 돌아오자 어지럼증과 두통은 다시 계속되었다. 지리산 골짜기에서 들었던 아름다운 새 소리.물소리. 바람소리가 몸살 나도록 그리웠다. 아파트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는 모두가 날카롭고 뾰족뾰족한 기계음뿐이었다. 건너편 아파트 공사장에서는 새벽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산자락을 허무는 굴삭기와 바위를 깨고 파쇄하는 대형 뿌레카 소리가 나를 괴롭혔다. 공사장 주변 산에서는 앵앵거리며 나무를 자르는 전기톱 소리도 들렸다.
공사장의 온갖 소음과 지축을 흔드는 진동소리 때문에 잠시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 답답증과 두통 때문에 미칠 것 같아, 비척거리며 밖으로 나갈라치면, 자동차들이 빵빵대고 가게마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며 장사치들이 떠들어대는 확성기 소리 때문에 귀가 먹먹해졌다. 도시 전체가 기계음으로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날선 칼날처럼 서슬 퍼런 쇠 소리며 총소리처럼 따끔거리는 금속성의 파열음 등 온갖 소리들이 쉴 새 없이 나를 덮쳐왔다. 이럴 때면 날카로운 쇠꼬챙이로 내 머릿속을 들쑤셔대는 것만 같아 나도 모르게 괴성이 터져 나왔다.
통증과 함께 어지럼증까지 겹쳐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 싸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버르적거렸다. 온갖 기계음들이 칼날처럼 번뜩이며 나를 공격해왔다. 도시의 모든 소리들이 무기로 변해 일제히 나를 찌르며 상처를 냈다. 이럴 때는 지리산 골짜기의 숲과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간절하게 그리웠다.
나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침 일찍 숲길 ‘소리산책’에 나선다. 숲길은 우리 집 뒤에서 골짜기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졌다. 숲길 산책을 하는 동안 나는 되도록 눈에 들어오는 풍경보다는 귀에 들어오는 소리에 신경을 집중한다. 숲속의 여러 가지 소리들을 듣기 위한 산책인 것이다.
고로쇠나무 두 그루가 두껍게 그늘을 깔고 찔레덩굴이 얼크러진 골짜기 초입에 들어서자 가파르고 거센 물소리가 왁자지껄하게 세상을 지배해버린 것 같다. 계곡이 좁은데다가 바닥에 바위가 깔리고 낙차가 심해서 물 흐르는 소리가 콸콸, 춸춸, 좔좔 요란하다. 숲 속의 모든 소리들을 물소리가 다 삼켜버린 것만 같다. 마을 근처에서 울어대는 새소리마저도 아득하게 들릴 뿐이다.
계곡 옆 밋밋한 언덕에 하얀 망초 꽃이 무더기로 피어있고 길 양쪽으로 남보랏빛 원추리 꽃이며 엉겅퀴 꽃, 노란 나리꽃과 달맞이꽃들이 띄엄띄엄 피어있다. 소나무 몸통을 휘감기 시작하던 칡덩굴은 하룻밤 사이에 가지를 타고 우듬지까지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칡덩굴은 길바닥에도 납작하게 배를 깔고 엎뎌 혓바닥을 널름거린다. 여름날 칡덩굴을 보면 뱀처럼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 같아 징그럽기까지 하다. 그래도 보랏빛 칡꽃의 상큼한 향기가 콧속을 간질인다.
나는 귀를 활짝 열고 골짜기 안으로 쉬엄쉬엄 들어선다. 깊숙이 들어갈수록 새소리는 점점 약해지고 물소리가 드세어진다. 이따금 까치와 소쩍새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릴 뿐이다. 20분쯤 올라가 계곡이 시작된 지점에 이르러 오리나무며 소나무. 참나무. 떡갈나무. 쥐똥나무 등 잡목이 빼곡한 등성이 길로 휘움하게 접어들자 물소리가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그곳에 쪼그리고 앉아서 가느다란 물줄기에 손을 적시고 나서, 물소리를 듣기 위해 허리를 바짝 구부린다. 검은 빛 나는 바위틈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또르르 돌 위를 구르더니 몽글몽글한 모래와 흙 사이로 잘잘 흐른다. 나는 물이 흙 속으로 스며들면서 내는 아주 미세한 소리까지 듣기 위해 개울 바닥으로 귀를 바짝 댄다. 작은 웅덩이 옆에 서 있는 쥐똥나무 뿌리가 추적추적 아주 천천히 물을 빨아올리는 소리까지도 들리는 것 같다.
나는 다소 경사가 심한 등성이 길을 추어 올라간다. 어느덧 물 흐르는 소리는 사라지고 바람소리가 되살아난다. 처음에 나는 멀리서 숼숼숼 물이 흐르는 소리로 착각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아서야 그 소리가 바람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람은 나무 이파리들과 어우러지면서 여러 가지 소리를 낸다. 떡갈나무며 참나무. 오리나무 등 활엽수 숲에서 바람에 잎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가늘게 떠는 소리가 마치 저음의 첼로 소리처럼 아련하게 들린다.
소나무 숲에 이르러 바람이 드세어지자 바늘처럼 가늘고 뾰족뾰족한 잎들이 급히 회전하면서 현이 떨리듯, 날카로우면서도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그러다가 숲 전체가 소용돌이치고 마치 호흡이 섞인 것처럼 휘휘거리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나는 지난겨울 눈보라 치는 소나무 숲에서 소름끼치도록 장엄한 합창 소리를 들었다. 아, 무수히 많은 솔잎들이 바람에 떨며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이 소리. 나는 겨울의 솔바람소리를 좋아한다. 솔바람에서 상큼한 솔향기가 핏속으로 스며드는 기분이다.
등성이를 넘어서자 분지 모양으로 움푹한 곳에 붉은 빛 몸통의 소나무 숲이 나왔다. 그곳에 들어서니 한줌의 바람조차 느낄 수가 없다.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둔탁한 내 발자국소리와 발에 밟히며 으스러지는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뿐이다. 나는 내 숨소리까지도 느낄 수 있다.
바람이 잠든 소나무 숲 속에서 소리를 내는 것은 내 몸뿐이다. 나는 소리를 듣는 입장에서 소리를 내는 존재로 바뀐 것이다. 내 몸속의 모든 세포와 뼈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것만 같다. 어느덧 내가 나무가 되어 바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숲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자 반 아름쯤 되어 보이는 죽은 소나무가 길게 누워있다. 누구인가 밑동을 톱으로 자른 흔적이 보인다. 누가 무엇 때문에 백년도 더 되었음직한 이 소나무를 잘라 내버린 것일까. 껍질이 벗겨진 채 시체처럼 길게 누워있는 죽은 소나무를 보자 갑자기 슬퍼졌다.
나는 요즘 죽은 나무나 새, 심지어는 여치 같은 곤충들이 죽어 있는 모습을 보면 왠지 울컥 슬픔이 복받치곤 한다. 시골로 내려온 후부터 마음이 약해진 것일까. 두통과 어지럼증이 말끔히 사라진 대신, 마음이 풀잎처럼 여려져서 작은 일에도 상처를 받기 십상이다.
얼마 전에는 우리 집 개 진국이가 수탉을 물어 죽였다. 마을 사람들은 삶아 먹으라고 했지만 내 손으로 기른 닭을 차마 먹을 수가 없어 땅에 묻어주었다. 죽은 닭을 생각하며 며칠동안 울적해 있었다. 새벽마다 높은 음 자리로 어둠을 가르며 동이 터오는 것을 알려주던 수탉이 죽은 후, 어쩐지 우리 집에 아침이 더디게 오는 것만 같았다.
나는 죽은 소나무 밑동부리를 쓰다듬어주고 그 위에 앉았다. 슬픔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심장 맥박이 빨라진다. 맥박이 요동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해저처럼 깊은 정적 속에서 소리를 내는 것은 내 몸뿐이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몸이 오싹해진다. 너무 무서워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생각뿐이다. 순간 소리가 죽어버린 세상을 상상해본다. 무덤 속 같이, 소리가 없는 세상은 너무 무서워서 살아갈 수가 없을 것 같다.
나는 새삼스럽게 새소리며 물소리. 바람소리 등 내 몸 안의 소리들 자체가 거대한 하나의 생명체임을 깨닫는다. 나는 두려움에 무겁게 짓눌림을 당하는 것만 같아 더 이상 정적 속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다시 야트막한 등성이로 올라서 아름드리 소사나무 밑으로 갔다. 내 ‘소리산책’ 의 종점은 소사나무가 서 있는 작은 등성이다.
이곳에 올라오자 다시 바람이 살아났다. 가까이는 단숨에 건너 뛸 것 같은 별산이, 멀리는 야청빛으로 출렁이는 모후산이 보인다. 등성이 아래 화순 이서 쪽으로 아스팔트가 햇볕 속에서 뒤척이고 있고 농협창고의 초록빛 슬레이트 지붕이 무척 뜨거워 보인다. 아스팔트로 군내버스가 뿌연 매연을 뿜으면서 달리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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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광주를 떠나 골짜기 마을 생오지로 옮겨온 것은 두통과 어지럼증 때문이었다. 정년을 하고 아파트에 칩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심한 두통과 어지럼증에 시달렸다. 처음에는 머리가 약간 먹먹하다가 망치로 얻어맞은 듯 띵하더니 정수리 쪽이 콕콕 쑤시다가 우지끈 우지끈 골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도 머리를 꽉 조이는 듯하면서 빠개질 듯 아팠다. 통증은 처음에 뒷머리에서부터 지끈거리다가 전두엽으로 옮겨진 후, 얼굴 전체로 퍼졌다. 심할 때는 얼굴과 코 주위까지도 지끈지끈 아팠다. 이럴 때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 싸고 비명 아닌 괴성을 지르며 괴로워했다. 딱따구리 새가 날카로운 부리로 골을 쪼아대는 것 같기도 하고 심할 때는 호비칼로 머리를 후벼 파는 듯했다. 처음에는 게보린을 복용하면 효과가 있었다. 차츰 약효가 떨어져서 진통제를 한줌이나 먹어도 소용없게 되었다.
뇌에 이상이 있는가 싶어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았으나 특별한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두통의 원인은 편두통. 긴장성두통. 중이염이나 축농증. 치주염. 충치. 뇌수막염. 뇌염. 뇌 기생충 질환. 뇌진탕. 뇌좌상. 뇌출혈. 지주막하 출혈. 뇌종양. 고혈압. 가스중독. 알콜 중독. 니코친 중독. 외부압박. 한냉 자극성. 기침. 심한 운동. 성교 등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그러나 의사는 원인불명의 두통이라는 결론을 내렸을 뿐, 끝내 병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문헌을 뒤져보았더니 중세 이전에는 치료가 되지 않을 정도로 두통이 심한 경우에는 ‘머릿속에 악마가 산다 ’ 고 하여, 두개골에 구멍을 뚫었다고 했다. 나도 두통이 심할 때는 내 머리에 구멍이라도 내고 싶을 정도였다. 여러 차례 끌로 뇌에 구멍을 내는 꿈을 꾸기도 했다.
두통은 점점 더 심해졌다. 처음에는 주로 늦은 오후에나 저녁에 몰려오던 두통은 한달 쯤 지나자 이른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아파트 안에 있으면 통증이 더욱 심해지는 것 같아 밖으로 나돌아 다니기 시작했다. 목적지도 없이 지치도록 종일 쏘다니다가 저녁에 들어오는 날에는 고단함 때문인지 쉽게 잠이 들곤 했다.
그런데 밖으로 나돌아 다니기 시작한 후 갑자기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주변이 빙빙 도는 것 같아 걷는데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세상이 도는 것 같았다. 나를 중심으로 산도 나무도 사람들까지 빙글빙글 돌아 지팡이를 짚고도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어지럼증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가보았다. 의사는 현훈증( 眩暈症)이 아니면 균형 장애 때문일 가능성이 많다면서 ct촬영을 하자고 했다. 현훈증일 경우, 뇌졸중이나 뇌종양, 간질 또는 말초신경정신 장애가 원인이고, 균형 장애는 다발성 뇌경색이거나 자율신경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촬영 후에도 의사는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여름 날, 친구들이 피서를 가자며 한사코 싫다는 나를 억지로 자동차에 태우고 지리산 깊은 골짜기로 들어갔다. 친구들은 소나무와 편백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찬 계곡에서 맑고 시린 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피서를 즐겼다.
그날 밤 우리들은 계곡의 숲 속에 자리 잡은 통나무집에서 민박을 했다. 몇 달 만에 두통 없이 잘 잤다. 개울물 소리와 새들이 낭자하게 울어대는 소리에 잠이 깼다.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솔새와 박새 우는 소리였다. 새소리는 촬-촬-촬 계곡물 흐르는 소리며 적당하게 불어온 바람소리와 함께 어울려 듣기에 참 좋았다. 내 몸이 바람에 실려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처럼 편안해졌다. 그 소리들은 하모니를 이루어 내 머리와 핏줄 속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어찌된 일인지 어지럼증도 두통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통나무집에서 가까운 편백나무 숲속에 들어가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 채 턱 끝을 쳐들고 걸을 수가 있었다. 골짜기 주변을 뛰어다닐 정도로 조금도 어지럼증을 느끼지 않았다. 오랜만에 머릿속이 아침 햇살에 눈부신 꽃잎처럼 맑았다. 머릿속에 침투해 나를 괴롭히던 악마가 홀연히 빠져나가버린 기분이었다. 나는 휘파람을 불어대며 향기로운 숲속을 거닐었다.
도시로 돌아오자 어지럼증과 두통은 다시 계속되었다. 지리산 골짜기에서 들었던 아름다운 새 소리.물소리. 바람소리가 몸살 나도록 그리웠다. 아파트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는 모두가 날카롭고 뾰족뾰족한 기계음뿐이었다. 건너편 아파트 공사장에서는 새벽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산자락을 허무는 굴삭기와 바위를 깨고 파쇄하는 대형 뿌레카 소리가 나를 괴롭혔다. 공사장 주변 산에서는 앵앵거리며 나무를 자르는 전기톱 소리도 들렸다.
공사장의 온갖 소음과 지축을 흔드는 진동소리 때문에 잠시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 답답증과 두통 때문에 미칠 것 같아, 비척거리며 밖으로 나갈라치면, 자동차들이 빵빵대고 가게마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며 장사치들이 떠들어대는 확성기 소리 때문에 귀가 먹먹해졌다. 도시 전체가 기계음으로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날선 칼날처럼 서슬 퍼런 쇠 소리며 총소리처럼 따끔거리는 금속성의 파열음 등 온갖 소리들이 쉴 새 없이 나를 덮쳐왔다. 이럴 때면 날카로운 쇠꼬챙이로 내 머릿속을 들쑤셔대는 것만 같아 나도 모르게 괴성이 터져 나왔다.
통증과 함께 어지럼증까지 겹쳐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 싸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버르적거렸다. 온갖 기계음들이 칼날처럼 번뜩이며 나를 공격해왔다. 도시의 모든 소리들이 무기로 변해 일제히 나를 찌르며 상처를 냈다. 이럴 때는 지리산 골짜기의 숲과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간절하게 그리웠다.
나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침 일찍 숲길 ‘소리산책’에 나선다. 숲길은 우리 집 뒤에서 골짜기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졌다. 숲길 산책을 하는 동안 나는 되도록 눈에 들어오는 풍경보다는 귀에 들어오는 소리에 신경을 집중한다. 숲속의 여러 가지 소리들을 듣기 위한 산책인 것이다.
고로쇠나무 두 그루가 두껍게 그늘을 깔고 찔레덩굴이 얼크러진 골짜기 초입에 들어서자 가파르고 거센 물소리가 왁자지껄하게 세상을 지배해버린 것 같다. 계곡이 좁은데다가 바닥에 바위가 깔리고 낙차가 심해서 물 흐르는 소리가 콸콸, 춸춸, 좔좔 요란하다. 숲 속의 모든 소리들을 물소리가 다 삼켜버린 것만 같다. 마을 근처에서 울어대는 새소리마저도 아득하게 들릴 뿐이다.
계곡 옆 밋밋한 언덕에 하얀 망초 꽃이 무더기로 피어있고 길 양쪽으로 남보랏빛 원추리 꽃이며 엉겅퀴 꽃, 노란 나리꽃과 달맞이꽃들이 띄엄띄엄 피어있다. 소나무 몸통을 휘감기 시작하던 칡덩굴은 하룻밤 사이에 가지를 타고 우듬지까지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칡덩굴은 길바닥에도 납작하게 배를 깔고 엎뎌 혓바닥을 널름거린다. 여름날 칡덩굴을 보면 뱀처럼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 같아 징그럽기까지 하다. 그래도 보랏빛 칡꽃의 상큼한 향기가 콧속을 간질인다.
나는 귀를 활짝 열고 골짜기 안으로 쉬엄쉬엄 들어선다. 깊숙이 들어갈수록 새소리는 점점 약해지고 물소리가 드세어진다. 이따금 까치와 소쩍새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릴 뿐이다. 20분쯤 올라가 계곡이 시작된 지점에 이르러 오리나무며 소나무. 참나무. 떡갈나무. 쥐똥나무 등 잡목이 빼곡한 등성이 길로 휘움하게 접어들자 물소리가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그곳에 쪼그리고 앉아서 가느다란 물줄기에 손을 적시고 나서, 물소리를 듣기 위해 허리를 바짝 구부린다. 검은 빛 나는 바위틈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또르르 돌 위를 구르더니 몽글몽글한 모래와 흙 사이로 잘잘 흐른다. 나는 물이 흙 속으로 스며들면서 내는 아주 미세한 소리까지 듣기 위해 개울 바닥으로 귀를 바짝 댄다. 작은 웅덩이 옆에 서 있는 쥐똥나무 뿌리가 추적추적 아주 천천히 물을 빨아올리는 소리까지도 들리는 것 같다.
나는 다소 경사가 심한 등성이 길을 추어 올라간다. 어느덧 물 흐르는 소리는 사라지고 바람소리가 되살아난다. 처음에 나는 멀리서 숼숼숼 물이 흐르는 소리로 착각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아서야 그 소리가 바람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람은 나무 이파리들과 어우러지면서 여러 가지 소리를 낸다. 떡갈나무며 참나무. 오리나무 등 활엽수 숲에서 바람에 잎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가늘게 떠는 소리가 마치 저음의 첼로 소리처럼 아련하게 들린다.
소나무 숲에 이르러 바람이 드세어지자 바늘처럼 가늘고 뾰족뾰족한 잎들이 급히 회전하면서 현이 떨리듯, 날카로우면서도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그러다가 숲 전체가 소용돌이치고 마치 호흡이 섞인 것처럼 휘휘거리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나는 지난겨울 눈보라 치는 소나무 숲에서 소름끼치도록 장엄한 합창 소리를 들었다. 아, 무수히 많은 솔잎들이 바람에 떨며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이 소리. 나는 겨울의 솔바람소리를 좋아한다. 솔바람에서 상큼한 솔향기가 핏속으로 스며드는 기분이다.
등성이를 넘어서자 분지 모양으로 움푹한 곳에 붉은 빛 몸통의 소나무 숲이 나왔다. 그곳에 들어서니 한줌의 바람조차 느낄 수가 없다.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둔탁한 내 발자국소리와 발에 밟히며 으스러지는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뿐이다. 나는 내 숨소리까지도 느낄 수 있다.
바람이 잠든 소나무 숲 속에서 소리를 내는 것은 내 몸뿐이다. 나는 소리를 듣는 입장에서 소리를 내는 존재로 바뀐 것이다. 내 몸속의 모든 세포와 뼈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것만 같다. 어느덧 내가 나무가 되어 바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숲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자 반 아름쯤 되어 보이는 죽은 소나무가 길게 누워있다. 누구인가 밑동을 톱으로 자른 흔적이 보인다. 누가 무엇 때문에 백년도 더 되었음직한 이 소나무를 잘라 내버린 것일까. 껍질이 벗겨진 채 시체처럼 길게 누워있는 죽은 소나무를 보자 갑자기 슬퍼졌다.
나는 요즘 죽은 나무나 새, 심지어는 여치 같은 곤충들이 죽어 있는 모습을 보면 왠지 울컥 슬픔이 복받치곤 한다. 시골로 내려온 후부터 마음이 약해진 것일까. 두통과 어지럼증이 말끔히 사라진 대신, 마음이 풀잎처럼 여려져서 작은 일에도 상처를 받기 십상이다.
얼마 전에는 우리 집 개 진국이가 수탉을 물어 죽였다. 마을 사람들은 삶아 먹으라고 했지만 내 손으로 기른 닭을 차마 먹을 수가 없어 땅에 묻어주었다. 죽은 닭을 생각하며 며칠동안 울적해 있었다. 새벽마다 높은 음 자리로 어둠을 가르며 동이 터오는 것을 알려주던 수탉이 죽은 후, 어쩐지 우리 집에 아침이 더디게 오는 것만 같았다.
나는 죽은 소나무 밑동부리를 쓰다듬어주고 그 위에 앉았다. 슬픔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심장 맥박이 빨라진다. 맥박이 요동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해저처럼 깊은 정적 속에서 소리를 내는 것은 내 몸뿐이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몸이 오싹해진다. 너무 무서워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생각뿐이다. 순간 소리가 죽어버린 세상을 상상해본다. 무덤 속 같이, 소리가 없는 세상은 너무 무서워서 살아갈 수가 없을 것 같다.
나는 새삼스럽게 새소리며 물소리. 바람소리 등 내 몸 안의 소리들 자체가 거대한 하나의 생명체임을 깨닫는다. 나는 두려움에 무겁게 짓눌림을 당하는 것만 같아 더 이상 정적 속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다시 야트막한 등성이로 올라서 아름드리 소사나무 밑으로 갔다. 내 ‘소리산책’ 의 종점은 소사나무가 서 있는 작은 등성이다.
이곳에 올라오자 다시 바람이 살아났다. 가까이는 단숨에 건너 뛸 것 같은 별산이, 멀리는 야청빛으로 출렁이는 모후산이 보인다. 등성이 아래 화순 이서 쪽으로 아스팔트가 햇볕 속에서 뒤척이고 있고 농협창고의 초록빛 슬레이트 지붕이 무척 뜨거워 보인다. 아스팔트로 군내버스가 뿌연 매연을 뿜으면서 달리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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