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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필]꽃게장과 가족 - 이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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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2,827회 작성일 10-04-0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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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 들 모양이다.

난데없이 요리며 살림살이를 직접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기는가 하면 자꾸 떠밀어내기만 하던 가족들을 껴안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런 작심을 한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더구나 아니다. 자신도 이상하여 가만히 지난 시간을 더듬어보니 얼마 전 게장을 담그면서 생긴 자신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섬에서 담근 게장을 산 적이 있었다. 팔아주어야 할 자리라 어쩔 수 없이 샀다는 게 맞다. 게장은 간장을 세 번 달여 넣어야 완성된 게장이 됨에도 한 번만 간장을 달여 부어 놓은 것을 강매 당하여 샀으니 미완성 게장을 산 것이었다.

간단히 해먹는 요리 이외에 솜씨를 부려야 하는 요리에는 젬병이인 내가 미완성 상품을 샀으니 집으로 들고 오면서 ‘누구를 주어버릴까.’ 고민이 말이 아니었다. 식탁에 올려두고 한숨을 쉬니 남편이 돕겠다고 팔을 걷어붙인다. 간장을 냄비에 따르고 끓이기는 했으나 영 맛이 엉망이다. 늦은 시간이지만 할 수 없이 앞집의 갑장을 불러 부탁을 하였다.

흔쾌히 이것저것 재료를 넣으며 간을 맞추어 준 덕에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문제는 게장을 달이는 과정을 직접 보며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거기에 남편이 용기를 북돋워주는 바람에 신바람이 났다는 게 맞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세월의 부추김이 아닐까.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음식 솜씨가 유난히 좋은 시어머니를 만나는 바람에 시집온 이래로 김치며 여러 가지 반찬거리를 여태 얻어먹고 살았다. 덕분에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고 살긴 했으나 살림도 제대로 못하는 무능한 주부로 낙인 찍혀 살았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요리나 살림에는 곁다리나 놓는 격이 되었고 솜씨가 전혀 없다고 자신을 못 박기도 해서인지 살림 앞에 늘 주눅이 드는 것이었다.

어느 날 친정어머니께 ‘나이는 들어가는데 한심하다.’라고 넋두리를 하였더니 한 오십이 넘으면 손맛이 저절로 나올 때가 있으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오히려 한 수를 더 떠주시는 것이 아닌가. 쉬어가는 길에 아예 눕는다고 노력은커녕 세월만 믿기로 했다.

그런데 그만 시어머니께서 덜컥 병이 나시며 그 아까운 솜씨조차 헤실해지는 바람에 몸이 바짝 달아져 고민이 말이 아니었다. 그때쯤 게장 사건으로 해서 용기를 얻은 셈이며 그 후 소량의 꽃게를 사서 두어 번 연습을 해보았더니 솜씨가 제법이다.

주부의 어쭙잖은 실력 덕분에 특별한 음식을 얻어먹지 못한 식구들은 게장을 그야말로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워버렸다. 수저를 들고 아쉬워 쩝쩝대는 꼴이 안타까워 주말에 게장을 직접 담가 볼 요량으로 시장을 들러 살아있는 암꽃게 4킬로쯤을 샀다. 손질을 하고자 싱크대에 냅다 쏟아 놓으니 시글시글 소리를 내며 게거품을 내는 꼴이 영 못마땅하다는 태도다.

몸을 가만히 웅크리고 있다가 건드리면 사정없이 집게발을 허공에 휘젓는 꼴이라니 허세 떠는 양반 지팡이 쳐드는 꼴이다. 전 같으면 남편을 부르며 자지러졌을 터인데 의무가 가져다준 자신감 때문일까 사정없이 손을 봐주어야 허세를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고무장갑으로 무장하고 수세미로 온몸을 닦달하니 잠잠해지는 것이 아닌가.

물기를 쏙 빼고 냉장고에 넣어 놓고는 꽃게에 부을 간장을 달인다. 너무 짜지 않고 그렇다고 싱겁지 않게 그리고 비릿한 맛이 없어야 제격이다. 간장과 물을 적당히 비례해 넣고는 각종 양념과 한약제, 사과 등을 넣고 푹 끓이는데 너무 센 불도 아닌 약한 불과 중불을 오가며 근 한 시간여를 달이니 짭짤하나 약간의 단맛과 어우러진 개장간장이 완성된 것이다. 이제 식히고서 게에 붓고 하루 반나절 숙성시키고 다시 간장을 달여 식혀 붓기를 삼차에 걸쳐 하고 나면 일주일쯤 되는 날부터 꺼내 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잔뜩 기대를 하며 꺼내 먹는 날을 기다리던 중 시어머니의 생신날이 다가왔다. 모두 모여 외식할 준비를 하고 있던 터라 큰 걱정이 없었는데 남편이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우리 게장만 준비해서 집에서 먹으면 어떨까.’ 하면서 말이다. 사실 근간 얼마 동안 집안일의 짐을 혼자 지는 게 속상하여 집에서 행사를 치르던 것을 마다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몸은 한없이 편했으나 마음 한 편이 왠지 찝찝하고 역할을 다하지 못한 느낌이어서 입장이 어정쩡하기는 했었다. 생각을 바꾸고도 싶었지만 몸과 마음이 힘들 것을 생각하면 냉정해 지는 것이어서 가족을 다시 안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멀어지곤 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 병줄을 잡고도 집안일에 집착하던 어머니가 든든한 자리를 놓는 바람에 안주인의 사명감 같은 것이 내게 생긴 것일까. 그만 흔쾌히 승낙을 했다.

오랜만에 가족을 위해 상차림을 하고 이부자리를 준비하며 보일러 온도가 오르듯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이다. 사람은 어떤 자리에 앉혀 놓으면 그만한 능력을 발휘한다더니 전에 없이 가족을 생각하는 속내에서 어머니 같은 마음이 새록새록 솟는 것을 보면 말이다.

창 밖에 눈이 쌓여 운치가 더해지는 거실에서 붉은 알이 촘촘히 박힌 게장 맛에 취한 식구들을 보니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둥둥 떠가는 느낌이 드는 바람에 밥을 세 번이나 다시 지어내면서도 몸은 가볍디 가볍다. 난생처음 솜씨 좋은 시댁식구들에게 대단한 칭찬을 받으면서 말이다.

세월은 참 웃긴다. 마치 게장을 담그는 과정처럼  어느 순간  고통을 주어 마음을 다져두게 한 후 숙성기간을 걸쳐 철이 들게 하여 한 없이 다 안을 수 있는 자신감과도 같은 힘을 주니 말이다. 그것은 그 어떤 하나의 힘도 아닐 것이다.

여러 가지 양념과 꽃게의 헌신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였듯 수직의 대(代)와 수평의 대(代)가 서로에게 다 내어주는 희생과 양념과도 같은 사랑을 적당한 시간을 두고  숙성시킨 때문 아닐까. 그러니 가족 간에 잘 잘못이란 얼마나 부질없음일까. 웃기는 세월은 요리의 기회를 줌으로써 앞으로 가족 사랑을 얼마나  슬기롭고 지혜롭게 헤쳐나가야 할지를 가르쳐준 셈이다.

주부에게 요리는 냄새를 풍겨줌으로써 가족을 모여들게 하고 맛을 보여줌으로써 화목을 이루게 해주는 것인가 보다. 요리의 오묘한 이치를 삶으로 끌어들였으니 다음에는 어떤 요리를 해서 식구들을 불러 모을까. 벌써 재주를 넘으려 한다. 싹싹 핥아먹은 게 껍데기를 분리수거하는 남편의 얼굴이 영락없는 대보름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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