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수필 : 새봄의 언덕에 [중국/이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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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2,966회 작성일 10-04-26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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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미옥] 새봄의 언덕에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은 이제 더 이상 혹독히 시리기만 한 겨울 바람이 아니다. 그 길게만 느껴지던 한겨울도 떠나가고 자연의 섭리대로 봄이 오는 것인가? 따뜻한 한 가닥 바람이 햇살과 같이 쏟아지면 이제 마음까지도 환하게 밝아진다. 봄과 함께 모든 것이 변화하고 있음을 새삼스레 느껴 본다. 하늘이 내려주는 축복은 따뜻한 햇살만으로 얼마나 풍성한 것이며 얼마나 호사스런 것이었던가? 그 사실을 툭하면 잊고 지내는 일상이 부끄럽다. 이렇게 아름다운 날씨를 주시는 신은 분명 인간더러 잘 살아 보라고 말없이 다독이고 있는 것일 것이다. 이 땅의 모든 생명을 가진 이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삶도 다른 이들의 삶은 나의 사소한 일상도 거창한 날들도 모두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이렇게 밤을 새워서 글을 쓸 수 있는 건강도 젊음도 열정도 더없이 소중한 것이라고 말없이 중얼거리고 있으니 세상을 다 가진 듯 배가 불러 온다.
지난 한해는 어땠는가? 이제 지난 1년은 다 저물어 갔지만 오늘이나마 그 시간들을 되새겨 보지 않는다면, 지금이나마 반성하는 여유를 갖지 않는다면 이번 한 해도 쉽게만 흘러가 버릴 것 같다. 내가 지난 한 해 동안 얼마나 사람들을 사랑했고 얼마나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았는지, 또 얼마만큼이나 꿈에 충실했고 현재를 소중하게 여겼으며 희망을 잃지 않았는지, 얼마나 외로움을 잘 견뎌 냈고 어려움에 몸을 사리지 않았으며 순간에 최선을 다 했는지, 얼마나 아픈 이들에게 관심을 가졌고 그들에게 다가섰으며 가족에겐 따뜻하게 대했는지. 그 모든 것을 되돌아보아야 내가 조금이라도 나은 모습으로 다가오는 시간 앞에 충실할 수 있을 것 같다. 거울을 보듯 반성하는 일, 언제부터 그렇게 비추는 모습에 게을러졌는지 이제 나의 거울은 거의 녹이 슬어서 잘 비춰지지도 않는다.
거울 같은 건 비춰 보지 않아도 어련히 예쁘게 성장할 거라고 생각을 했을까? 시간이 흘러서 성장하고 조금 변하고 그러면 다라고 생각했을까? 어른이라고 불리고 대접을 받을 만한 나이가 되어서 그런 행세를 하면 정말로 성숙한 것이라고 생각되었을까? 비추지 않은 마음은 그리고 비추지 않은 나의 모든 행동과 언어와 생각들은 잡초처럼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데도 나는 충분한 자양분으로 쑥쑥 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을까?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나의 모든 것이 변하고 또 변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캄캄한 나이가 되었을 때 그 때 마음마저 보석처럼 빛나고 아름답지 않다면 이 한 생 내가 남길 것은 과연 무엇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늘 외모나 말솜씨 등 표면적인 것보다는 그 깊은 곳에 우물처럼 고여 있는 마음의 깊이가 더 중요한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내 자신의 마음의 우물은 들여다보지 않았던 수없이 많은 시간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하는 일없이 마음과 머리마저 텅텅 비워 두었던 더 많은 시간들, 유난히 그런 시간들이 많았음을 가슴 아프게 되새겨 본다.
정말로 허약한 것인지 어떤 것인지 조금만 무리해도 툭하면 잔병치레를 하여 더 많은 공부와 경험을 할 수 없었던 시간도, 자아연민에 빠져서 무기력하게 흘려 보낸 시간도 참으로 많았다. 우울한 생각으로 그냥 그렇게 흘려 보낸 시간과 게으름으로 아무 의미없이 사라진 시간들. 세상에는 그토록 살고 싶지만 살지 못하고 죽어 가는 이도 많다는데 나는 허구한 날 권태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가끔씩 삶의 허무에 치를 떨었으니 건방지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19년 겨우 살았으면서 한 생을 다 산 노인네가 된 듯 궁상을 떨고 앉아 어른들을 가르치려고 들 때도 있었으니 내 젊음에 정말 미안한 일이다. 아프고 외로운 이들은 그렇게 많은데 혼자 다 힘든 척 지지리도 회의하고 방황했으니 진정 아픈 이들에겐 한없이 부끄러운 일이다.
사랑하는 일에도 게을러서 따뜻하게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 스쳐 지나 버린 많은 사람들,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있을 과거의 친구에게 조금의 시간적 여유도 내지 못하는 말도 안 되는 나의 분망함은 또 어디서 그렇게 뻔뻔스럽게 온 것일까? 손을 잡았던 친구들도 멀어져 가고 앞으로 만나게 될 새로운 만남에 대해서조차 심드렁한 이 썰렁한 심장은 누구를 위해서 뛰어야 되는 것이었는지. 먼저 다가서지 못하고 촌스럽게 서성대는 나의 수줍음마저 이제는 버려야 되지 않은가?
한 것도 없이 늘 분망하고 아름답지 못한 초조함으로 여유도 없었던 마음의 방을 이젠 새롭게 도배를 해야 될 것이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밝고 따뜻한 새로운 것으로 변화를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좀더 넓고 따뜻해서 다른 이도 들어 올 수 있는 널찍한 마음의 방, 늘 부지런히 닦고 손질해서 투명하고 알른알른한 방,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 차서 향기가 나는 행복한 방, 좋은 것은 언제든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활짝 열린 커다란 창도 달린 방이어야겠다. 어둠을 막을 수 있는 커튼도 있어야 하고 언제 들이칠지 모르는 폭우와 폭설을 견디어 낼 수 있는 튼튼한 지붕도 있어야 되지 않을까? 마음의 찌꺼기는 바로바로 내보낼 수 있는 근사한 굴뚝도 꼭 있는 방이어야겠다.
이제까지 수많은 시작을 꿈꾸어 왔고 실망과 절망이라는 누추한 감정들도 적지 않게 겪어 갔지만 새롭게 다가오는 봄 앞에서 나는 다시 꿈을 꾸고 희망을 바라보는 갓난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 거쳐 간 시간에는 때묻지 않은 순수한 어린애의 모습으로 다가올 모든 것들의 앞에 나서야겠다.
이 봄이 끝나고 다시 겨울도 오겠지만 가을의 아름다운 황금빛을 보기 위해서 그 빛나는 결실들을 위해선 오늘의 젊음과 땀방울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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