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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필: 굴을 채취하는 여자 [뉴질랜드/오 안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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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3,108회 작성일 10-04-2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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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오 안젤라] 굴을 채취하는 여자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의 성화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집안이 고요하다. 커튼을 제치고 창밖을 내다보니 제니의 까만 차가 있어야 할 자리엔 이슬 마른 흔적만 있을 뿐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그들 모자가 새벽부터 굴 채취하러 바닷가에 갔음을 직감한다.

항상 그렇듯이 내 마음이 또 불편해진다.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자주 바닷가에 나가 배낭 가득 굴을 담아오는지 모르지만 옆에서 보는 나는 늘 걱정이다. 요즈음 부쩍 감시가 심한 모양이다. 극성맞은 중국인들이 포대자루로 굴을 쓸어가는 바람에 이젠 들키면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들었다. 누군가는 재미로 조금 따다가 주민의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관에게 붙잡혀서 엉뚱하게 곤욕을 치렀다고도 하고, 어린 전복을 마음 놓고 잡아들고 나오던 어느 태국인은 추방을 당했다고도 들었다.

자연보호가 처절한 이 나라에서 동양인 이민자들의 불법행위를 언제까지나 묵과할 수도 없을 것이다.
 재식이 엄마,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 괜찮아요. 여지껏 아무일도 없었는데요, 뭘. 내 기우는 쓸데없는 노파심으로 번번이 묵살을 당한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괜한 잔소리로 들릴 수밖에.
 제니는 전라도 어느 해변가에서 유년을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어머니가 하시던 대로 흉내를 낸다는데, 큼직한 굴을 잘 골라서 따오지만 까는 작업은 귀찮고 어렵다. 눈치껏 알맹이만 꺼낸 것을 주둥이가 긴 플라스틱병에 담아서 두 개, 나머지는 배낭에 가득 차야 돌아오는데 보통 때보다 늦게 돌아오는 날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녀의 두둑한 배짱에 내 소심증이 늘 외면을 당하면서도 말이다.
 집안에 온통 비릿한 바닷냄새를 끌어들이고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나면 그것은 곧 싱싱한 상품으로 돈이 된다. 먹어 본 사람들이 미리 주문도 하고 인심 후하게 나눠 팔아도 4-50달러는 거뜬히 버는 것 같다. 더러는 야채를 듬뿍 넣고 초고추장에 무쳐서 멋진 굴요리 파티도 하고, 가끔씩 죽을 쑤어 노인들을 불러 대접도 하는, 시원시원 싹싹한 여자이기도 하다.
 갈 때마다 나를 데려가고 싶어 안달을 하는 것은 아마 망을 보아 달라는 것 같아 따라가 본 적이 있다. 아무렇게나 지천을 깔렸을 굴밭을 처음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 같아 아름다운 상상을 하며 차에 올랐다. 고요로운 새벽길,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하는 아침 해가 정글처럼 우거진 나무숲 사이사이로 눈부시게 쏟아져 내려 황홀하다. 자연만이 어우러져 숨쉬는 이 찬란한 아침에 불청객 자동차의 굉음이 민망하고 송구스럽다. 아직 잠에서 덜 깼음인가. 차분한 물살이 모래뻘을 핥고 넘나든다. 시퍼런 바다. 타스만 해(Tasman sea)의 끝없이 아득한 파도가 여명의 칙칙함 속에서 싸늘한 바람을 실어보낸다. 섬짓하게 차가운 바람이 오히려 머리를 맑게 해준다. 코끝에 묻어오는 그 특유한 냄새를 뭐라고 표현할까. 그냥 느낄 뿐이다.
 저 바다 위로 한없이 가다보면 거기 내 사랑하는 육친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가 너무 먼곳에 와 잇음을 새삼스럽게 실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가 너무 먼곳에 와 있음을 새삼스럽게 실감하기도 한다. 그녀는 뒤도 안 보고 혼자서 아주 멀리까지 자꾸만 걸어 들어가고 거친 굴껍질을 밟는데도 서툰 나는 더 따라갈 수가 없어 포기한다. 주변에는 갈매기들이 쪼았을까? 즐비한 게 전부 빈 껍질뿐이다. 바다 밭에도 작은 생명들이 무수히 꼼지락거리는 게 재미있어 툭툭 건드리며 놀다가 품속으로 파고드는 한기가 겁이 나서 서둘러 돌아나온다. 저렇게 멀리까지 가서야 그만한 굴을 따온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의 억척스럼움에 다시 놀란다.
 하지만 그녀가 바닷가에 자주 나가는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음을 알았을 때 측은하고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무도 없는 고요로운 새벽 바닷가. 철썩거리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혼자 고향생각도 하고 신세 한탄도 하다가 서러움이 북받치면 크게 소리 내어 울기도 한단다. 아무도 모르게 가슴속에 맺힌 한을 달래고 늘 씩씩한 척 사는 여자다.
 빈 속에 허기가 지면 껍질 속에서 안간힘을 하다가 꼬챙이에 찍혀나온 살아 있는 굴들을 입안에 털어넣어 배를 채운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바다의 우유, 생굴 덕인지 그녀는 건강해서 말같이 잘도 뛰어다니며 살아간다. 산다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그녀의 원래 직업은 미용사다. 한국에서 이십 년 넘게 미용업을 했다지만 여기서는 허가도 없이 가정미용을 해서 그럭저럭 살아간다. 나이 오십이 가까운데 여덟 살짜리 아들 재식이가 딸린 가족의 전부다. 늦게 시집가서 아들 하나 겨우 얻고 이혼을 했다고 하던가. 가슴 아픈 사연으 담고 혼자서 훌쩍 이곳에 왔다가 어찌어찌 정착을 한 모양이다.
 영주권도 없이 학생비자를 연장해가며 살면서도 추후에 아이마저 데려온 용감한 여인이다. 유학 교육비가 만만찮은데 아이를 학교에 보내며 열심히 산다고 쌀을 사주는 사람도 있고 교회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는 모양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늘 아슬아슬하고 불안해서 옆에서 지켜보기가 안타깝다. 손님이 없어 일손을 놓으면 금방 실의에 빠져 인생 넋두리를 하곤 한다. 회한의 설움이 북받칠 때마다 달려가는 곳이 핑계 삼아 가는 굴 채취. 돈도 조금 벌고 허허로운 시간을 메우기엔 그보다 더 좋은 게 없는가 보다. 바다가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이 얼마나 다행일까.
 제니의 꿈은 여기 현지인을 만나서 결혼하는 것이다. 한 남자에게 당한 배신감 때문에 이제 차라리 여자를 따뜻하게 대해주는 외국인을 만나서 사랑받으며 살고자 한다. 물론 본의 아니게 학생비자로 몇 달씩 버티며 살려니 그것 때문에라도 결혼을 꼭 영주권자와 해야만 한다. 기술을 인정받는 한국에 가서 떳떳하게 살면 좋으련만 그렇게 하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 묻지도 못한다. 남의 아픈 가슴을 헤집어 놓는 것 같아 할 짓이 아니다. 그저 옆에서 지켜보며 그래,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 봐라라고만 위로해 줄 뿐이다.
 뱃사람 할아버지 토마스를 만나게 된 것도 자주 바닷가에 나갔기 때문이리라. 그와 만난 지 얼마나 되었는지 많이 친해진 것 같았다. 풍채는 좋은데 나이가 십칠팔 년 위라서 아버지 같은 분이다. 가씀씩 집에 와서 영어도 가르쳐 주고 놀다가곤 하는데 심성이 괜찮아 보엿다. 친정 아버지처럼 집안을 둘러보고 무엇인가 도와주려고 애를 쓰는 고마운 분이다.
 어는 날인가 무거운 전기톱을 차에 싣고 와 뒷마당에 어지러운 땔감들을 잘라서 도끼로 뽀개 차곡차곡 쌓아주기도 했다. 얼굴에 흥건히 밴 땀이며 팔뚝에 톱밥으로 헝클어진 젖은 솜털을 보며 제니가 좋은 분을 만났구나, 하고 생각했다. 한국 음식, 김치에 밥도 잘 먹는 노인이었다. 오래전 부인하고 이혼하고 혼자 사신다던가. 부인은 이층에서, 노인은 아래층에서 남남으로 30년째 살고 있다나. 이 나라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우리와 너무나 달라서 놀란다.
 자기집 정원에 핀 꽃 한송이 꺾어들고와 그녀의 손에 들려주기도 하고 어느 때는 새벽에 배를 타고 나가서 잡은 싱싱한 물고기를 들고 오는 때도 있다. 제니가 밖의 창고에 나갔다가 물고기와 포도 송이가 든 비닐백을 빨랫줄에서 걷어오며 웃는다. 아무도 없을 때 왔다가 고양이에게 뺏길 까봐 그렇게 두고 간 것임을 알고 노인의 속깊은 정에 감동을 받기도 했다. 어느 저녁 나절토마스가 또 왔다. 얼마 있다가 배웅을 나갔는지 두 사람 다 나가고 집안이 조용했다.
 우리 엄마, 토마스하고 데이트 나갔어요. 아마 키스하러 갔을걸요. 묻지도 않았는데 지껄이는 아이의 말에 깜짝 놀란다. 저녀석 때문에 제 엄마 결혼은 쉽지 않겠다고 늘 생각했던 대로다. 어린 것이 너무 영악스러워 한대 쥐어박고 싶었다. 그런 소리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제니의 표정은 전보다 밝아졌고 토마스는 더 자주 집에 온다. 토마스하고 결혼하고 싶어요. 아버지처럼 모시고 정 붙이며 살았으면 해요. 그녀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 잘 해보라는 말밖엔 뭐 어쩌겠는가.
 토마스한테 프로포즈 해봐. 우리는 그런 말을 수없이 나누지만 결론은 늘 No이다. 아이를 낳고 살면서도 프렌드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들이기에 결혼 같은 것은 쉽게 안 하려 드는게 여기 사람들이다. 불법 체류자들이 더럽혀 놓은 사례들이 많이 알려져 있는 것도 문제고, 이쪽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이미 다들 알고 있는 터다. 그녀가 원하는 법적 결혼이라니, 되기나 할 소린가. 비지 만료일이 다가오는데 벌이는 신통치 않고 제니의 마음이 허공에 떠있다. 정도 많이 들었고 배 타고 놀러도 가자고 보채는 입장이니 한번 고백이나 해볼까. 밤잠을 설치며 연구를 해본 모양이다.
 어느 날, 큰 배낭을 메고 돌아오는 줄 알았는데 초죽음이 된 그녀가 한나절이 되어 돌아왔다. 저, 오늘 죽고 싶어요. 그녀가 한 마디 툭 던지고 사라졌다. 방으로 쫓아 들어가 물어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되지도 않는 영어를 사전을 들춰가며 말을 만들어 써가지고 아침 일찍 그의 집으로 갔다. 아버지 같은 노인에게 막상 결혼을 결심한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배가 몇 척이고 집도 있으니 재산 때문에 결혼은 안 할 거라는 말로 노인의 배경을 은근히 자랑하기도 했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것들이 오히려 그녀의 결심을 부채질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우리의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환자라고 하면서 거절을 하더라는데, 그렇게 건강해 보이는 데 사실이었을까. 언젠가 때가 오면 그런 방법으로 해결을 할 수 있다는 공식론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울면서 상관없다고 매달려 보았다는 제니의 자존심 죽인 발버둥이 우리들 모두를 슬프게 했다.
 그 이후 토마스가 발길을 끊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녀는 많이 우울해 했지만 느긋하게 슬픔 속에 빠져 있기에는 현실이 너무 촉박하기만 했다.
 제니는 이제 다른 바닷가로 굴채취를 나가는 모양이다. 정말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 볼 날이 올 것인지? 꼭 그렇게 되기만을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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