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수필 : 보석보다 아름다운 것 [미국/윤학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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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3,289회 작성일 10-04-2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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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김령] 보석보다 아름다운 것
“여보, 내 팔찌 없어졌어. 잃어버렸나 봐.”
“차 안에 가봐.”
“벌써 다 봤어. 차에도 없고 차고에도 없어.”
“…… 잊어버려. 전화해 봐도 모른다고 할거야. 그걸 누가 돌려 주겠어. 그리고 밖에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잖아.”
“그럼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다시는 팔찌 안 살 거야. 정말 팔찌 사는 것 바보짓 같아.”
그 팔찌를 결혼기념일에 선물해 준 그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나는 이렇게 애써 표현하고 있었다. 그가 달래며 또 사주겠다고 할까봐 짐짓 아주 미련이 없는 것처럼.
살다 보면 우리는 뜻하지 않게 소중한 것을 잃을 때가 있다. 돌이켜보면 조그만 부주의로 바보짓을 하게 된다. 모임 내내 후배의 팔찌를 쳐다보며 멋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 손목의 팔찌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 이제야 생각난다. 어디쯤에서 잃어버렸는지 알 수가 없다. 차에 서 걸어간 것뿐인데, 걸어가며 풀어져 떨어졌다면 알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어쩌면 식탁 근처에 덜어져 있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알 수가 없다.
잊기로 했다. 그러면 미련도 없고, 안타깝지도 않고, 누가 주웠을까 하는 필요 없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이는 고맙게도 더 이상 팔찌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우리 한국인들은 유난히 패물을 좋아한다. 그것도 아주 크고 비싼 것만을 가지려 한다. 우리 민족의 패물 심리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계속되는 정변, 변란, 흉년.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벼슬 등이 여분의 돈을 패물로 바꾸어 땅 속 깊이 묻어둔 원인이 되었다.
이곳 미국에 와서도 겹치기 일을 해서라도 큰 보석을 마련하는 것을 보게 된다. 보석에 대한 한도 풀고, 자녀들에게 물려주면 부모 노릇 한 것 같다는 보상 심리에서인 것 같기도 하다. 그게 또 여자 아니든가. 나도 극성은 아니지만 어물어물 그런 속에 끼었던 샘이다.
우리 민족의 패물 심리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큰 도둑 조세형의 진술이나 신창원의고백에서도 알 수 있다. 가까이는 IMF금 모으기 운동 때 쏟아져 나오던 금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큰 도둑들이 숨어든 재벌들의 집 금고에서 본 패물에 비하면 금 모으기 때 전국에서 거둔 금은 조족지형이라고 하니, 우리 민족의 또 하나 서글픈 역사와 함께 질긴 패물 애호심리를 보는 것 같다.
유대인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 몫으로 적은 돈이라도 뚝 떼어 투자를 해준다. 그 돈이 20년 후, 50년 후 학자금이 되고, 사업자금이 되고, 은퇴금이 되기도 하여 늘 기를 펴고 살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이 패물이 얼마나 마련한 투자인지 절실히 깨닫게도 된다.
인간은 영원을 꿈꾼다. 생명도 사랑도 부와 명예, 권력까지도. 그래서 변하지 않는 보석이나 금을 선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대 ‘트라키아(Thracians)'''' 인들은 금세공에 뛰어난 재주를 가졌다. 남러시아에 살던 ’스키타인(Scythians)''''인들도 찬란한 황금 유물을 남겼다.
우리 민족도 그렇다. 신라 시대의 금관은 세계적인 솜씨이다. 요즈음 미국인들까지 합세하여 최첨단 장비로 안데스 산맥을 샅샅이 뒤지는 작업은 다름 아닌 잉카의 황금을 찾고 있는 것이다.
금을 찾아 안간힘을 쓰는 것은 고대인이나 현대인이나 다를 게 없음을 엿볼 수 있다. 신전(神殿) 전체를 황금으로 덮을 만큼 금이 많았던 잉카제국은 피사로에게 정복되었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 금제품은 녹여 그의 조국 스페인으로 보냈다. 잉카의 유물을 잃은 것은 인류의 불행이다. 잉카인들을 세계에서 말살했던 피사로가 그의 금을 탐낸 부하에게 암살되어 그가 마지막 잉카의 왕을 처형했던 광장 구석 석관 속에 누워 있다.
지금은 누가 그 금의 주인이 되어 있을까.
모파상의 ‘진주목걸이’, 작품 속 주인공 ‘르와젤’은 또 얼마나 처량한가.
팔찌를 잃은 일을 계기로 패물을 더 늘리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이 지났다. 팔찌에 대한 미련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아무도 그런 것 본 사람이 없다는 대답을 들어도 섭섭하지 않을 것 같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전화의 버튼을 눌렀다.
“우래옥입니다.”
“저어 지난 주말, 일주일쯤 되었는데요. 거기 회의하러 갔다가…….”
“아하, 팔찌를 잃어버리신 분이시군요?”
나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팔찌를 찾았다는 기쁨은 순간에 사라지고 착한 사람을 찾았다는 기쁨이 더 크게 가슴을 덮쳐오고 있었다. 마치 파도처럼. 그 사람이 내 동포라는 사실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열흘 후에 그곳에서 문인회 행사가 있었요. 그때 찾아뵐게요.”
팔찌를 찾으로 일부러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내게 있는 것처럼 안전하다는 믿음에서였기보다는 한 때나마 믿음을 잃었던 내 자신의 부끄러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전화를 끊고 난 나는 그러고도 한없이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에 어쩔 줄 몰라 방 안을 서성거렸다.
누구에게인지 모를 이 죄책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내 동포를 믿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것은 커다란 아픔이었다.
먼 옛날 초등학교 운동장이 떠오른다. 전교생에 대한 월요일의 교장선생님 훈시는 어느 정직한 외국인의 사례였다. 우리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셨을 터이다. 분명 한국인이 정직하지 않다고 하신 것이 아니었는데, 그 훈시를 나는 왜 한국인은 그렇게까지 정직하지 않다고 하신 말씀처럼 이해하고 있었을까. 수 십 년 동안 내 동포를 반신반의 했던 죄를 어떻게 하면 씻을 수 있을까. 나는 이 괴로움을 그이에게 토로했다.
“여보! 나 참 죽겠어…….”
“나도 바로 그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중이야…….”
그의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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