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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방인 : [중국/양룡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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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2,445회 작성일 10-04-30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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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양룡철] 이방인

공자가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한 번은 동쪽 나라에 놀러 갔을 때였다. 두 어린이가 길가에서 서로 말다툼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공자는 타고 가던 수레를 세워 두고 그 두 아이에게 이방인 너희 두 어린이는 무엇 때문에 다투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 중의 한 아이가 나와서 말했다.
예, 딴 것이 아니오라, 저는 하늘의 해가 처음 떠오를 때에는 땅에서 거리가 멀고 해가 하늘 한가운데 떠 있을 때에는 가깝다고 했습니다.
공자는 또 다른 아이에게 물었다. 그 아이는 역시 말했다.
예, 저는 해가 처음 뜰 때에는 둥근 수레 뚜껑같이 크지만 해가 하늘 한가운데 오면 둥근 소반같이 작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물건은 멀리 있으면 작게 보이고 가까이 있으면 크게 보인다는 이치에 따라서 그렇게 주장합니다.
그러자 또 다른 아이는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해가 처음 뜰 때에는 서늘하고 하늘 복판에 오면은 끓는 물같이 뜨겁습니다. 이것이 어찌 열이 있는 물건이 가까우면 뜨겁고 멀면 덜 뜨거운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공자는 두 어린이의 말이 어느 편이 옳고 어느 편이 그른 것인지 판결을 하질 못했다.



1


보잘것 없는 한 사내의 생은 아무런 치장도 없이 한 줌의 재로 사라져 갔다. 삶이 고단하다거나 정직했다는 한 마디의 허사도 없이 그저 오던 대로 되돌아갔다. 아버지의 유언 대로 골회를 두만강에 띄우면서 박영규는 시새도록 파란 하늘을 다시 한번 보았다.
인생은 참 세상사 티끌이로구나.
하늘로부터 그런 중얼거림이 들리는 듯했다. 세지 않은 바람이 이마의 머리칼을 날리고 키차게 자란 갈숲이 강가를 따라 뻗어 있었다. 갈대 끝에 돋아난 솜털 같은 갈꽃들이 바람에 쏠리고 있었다.
멀어져 가는 골회암을 바라보며 영규는 숨결을 골랐다. 그리고는 장갑을 벗어 강물에 뿌렸다. 장갑은 인츰 강물에 자취를 감추었다.
이만큼 살았은께 한이 없는기라, 내가 죽거든 묘()를 쓰지 말고 례()도 지내지 마라. 배운 게 없어 고국과 조국이 어떻게 다른지 모르는 놈팽인께 그저 두만강에나 훨훨 띄워 보내라. 그게 마음이 더 편한기라.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했다. 영규는 두만강 물결이 그대로 아버지 인생이라고 했다.
강 굽이에 한 무더기 개버들이 강바람에 웅크리고 있었다. 개버들 숲 속에는 지난해 마른 풀잎과 바람이 가득 차 있었다. 그 건너편으로 마을이 보였다. 남평, 그러나 늙은이들은 잔무더기[]라고 불렀다. 두만강가에 자리잡은 이 마을은 영규의 아버지 박팔식이,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충청 북도에서 간도에 이민 와 첫 터전을 잡은 마을이고 영규의 고향이기도 하다.
영규는 이를 악물었다. 아버지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다. 환청처럼 달라붙는 기억을 털어 버리려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것은 짙은 안개 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전어의 잔비늘 같은 물방울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는 바깥의 일처럼 선명하지 않았다. 일곱 살의 그의 눈에 잡힌 그것들은 바늘에 찔린 듯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무슨 죄를 지었는지, 그 해 여름 내내 바깥 출입을 하지 않았다. 밖에 나갔던 어머니가 아랫목에 누워 있는 아버지에게 귀엣말을 해 주면 잔뜩 주눅이 든 목소리로 오소, 시끄럽네. 하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규가 두만강에 나가 애들과 함께 멱을 감고 집에 들어서는데, 아버지가 팔에 붉은 완장을 두른 청년들에게 둘러싸인 채 사립문을 나서고 있었다.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청년들에게 자꾸 통사정을 했고 그들은 허옇게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아버지가 성을 내며 우는 어머니를 꾸짖고 있었다.
아버지가 강선대 언덕바지를 넘어 멘스빛 저녁 노을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영규는 집안으로 달려들어가 홑이불을 푹 뒤집어 쓰고 잠에 들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잡혀 간 뒤 어머니는 하루에 세 번씩 꼬박꼬박 밥 보시를 해들고 강선대 언덕을 넘어갔다 넘어오곤 했었다. 아버지한테 갔다 올 적마다 어머니는 울었는지 빨갛게 된 눈으로 영규를 바라보다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푹푹 내쉬곤 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학교 강당에 고깔모자를 쓴 아버지가 붉은 완장을 두른 홍위병들에게 결박을 당한 채 끌려나왔다. 머리는 산발되어 있었고 어디에 심하게 맞았는지 허리를 잔뜩 웅크린 채 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특무 박팔식 투쟁대회
강단 위에 매단 커다란 플래카드에는 이런 글이 씌어져 있었고 아이들은 특무를 보았다는 흥분감에 웅성거리고 있었다. 영규는 영문 없는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고 가끔씩 터지는 야유와 침의 세례를 받아야 했다.



2


차는 고향 마을을 뒤켠으로 한 채 팔십령을 톱고 있다. 서북쪽으로 천천히 기어가는 검은 구름장들 사이로 저녁 무렵의 해가 잠깐 얼굴을 내밀었다. 우중충한 수리봉 위로 소나기 줄기 같은 뽀얀 빛살이 쏟아졌다. 영규는 차창에 얼굴을 붙인 채 뒤로 물러가는 고향의 풍경을 체념 상태로 일별하고 있다. 목덜미가 깁스하기 시작하며 어깨 위가 뻐근해졌다. 어제 저녁에도 하얗게 날을 밝혔던가? 담배 한 개비 뽑아 물며 차 안을 둘러보았다. 기억의 저켠에 아리송한 얼굴들이 가끔씩 보였다. 고향을 등진 지도 이젠 20년이 훨씬 넘었으므로 그 사이 인가는 많이 바뀌었고 어둡고 질척였던 동년도 이젠 잊혀질만도 하련만 영규는 그것이 잘 되어 주질 않았다. 어둠이 슬몃슬몃 기어드는 황톳길처럼 끊기지 않고 여지껏 기억에 뿌리박은 아픔들을 생각하며 자신도 참 모진놈이라고 생각했다.
저, 영규 아님둥? 박영규 맞지예?
시골 완행 버스가 팔십령을 지나 선경대 풍경 유람구에 들어설 무렵 아까부터 그를 주시해 보던 건너편 중년 남자가 짙은 함경도 사투리로 그를 부른다. 영규는 담배를 비벼 껐다. 꺼부수수한 머리의 진짜 시골 차림의 사내였다.
누구십니까?
글세, 영규라 했는기라, 나 홍만이.
사내는 반갑다고 침방울까지 튕기며 반색한다. 버스 안의 승객들의 눈길은 삽시에 영규를 향한다. 영규는 얼굴이 확 붉어졌다.
왜, 기억이 안 나? 장 과부집 호박골.
사내는 부끄럼없이 자신의 애시적 별명을 주어댄다. 영규는 그제야 생각났다. 소학교를 다닐 때 공부를 너무도 못해 2년씩 재학하여 호박골이라고 불리웠던, 석홍만 아버지가 특무로 몰리우고 영규도 새끼특무로 애들한테서 따돌림을 당할 무렵 영규 아버지는 특무가 아니야 하고 말해 동학들한테서 늘씬하게 두들겨맞던 홍만이, 그렇게 맞으면서도 자기의 고집을 꺾지 않던 녀석이 아니였던가?
어디 왔다 가누?
어 고향에.
고향에 왔으문 자고 가야제 이렇게 가문 쓰나? 이게 얼마만이누?
영규는 웃었다. 전례 없던 그 혁명이 끝나고 아버지가 특무의 모자를 벗은 뒤 영규의 아버지 박팔식은 선친의 산소에 제를 지낸 뒤 가족을 이끌고 매하구()로 이사 갔었고 거기에서 다시 요녕성 영구()로 이사를 가서는 동네와 크게 거래도 없이 여지껏 쭉 살다 갔었다.
너의 아버지는 잘 계시니?
대뇌피질이 아뜩하니 경련을 일으켰다. 아버지가 강금소에서 풀려 나온 뒤 어머니는 생지황 뿌리를 절구통에 넣고 절구공으로 찧은 다음 틉틉한 진흙 같은 것을 사발에 짜 넣거나 변소통에서 낚시에 걸린 고기 같은 유리병을 건져 올려서 그 속에 든 청주 같은 물을 사발에 붓거나 하여서는 아버지에게 드리곤 했었다. 그걸 마시면서 아버지는 이를 바득바득 갈곤 했다.
이자 금방 골회를 뿌리고 오는 길이다.
어메, 그 량반이 그렇게 됐나, 좆겉이 복도 없는 량반이다.
영규는 별로 할 말이 없었고 구태여 반갑다는거나 반갑지 않다는 생각도 없었다. 다만 영규를 두둔하다 동학들한테 늘씬하게 두들겨 맞은 대가라고나 할까, 박팔식이 조선전쟁에서 타 온 공훈 메달을 어머니 몰래 석홍만이한테 보여 줄 때 홍만이가 코를 풀쩍이며 부럽게 부럽게 바라보던 기억이 환청처럼 밀려올뿐이다.
업보여, 업보. 내가 죄를 그만큼 지었은께 특무로 몰리는 거여.
그 말이 아버지의 가슴 속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는 것을 엄마나 영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가끔씩 차돌빛처럼 섬뜩하니 번뜩이는 박팔식의 눈길은 가슴을 섬짓하게 했다.
전우들이 다 죽어 갈 때 나도 죽었어야 하는기라. 비겁해서 투항한 건 아니여, 나만이라도 살아서 죽어 간 전우들의 령혼을 길고 살아 있는 가족들에게 무언가 해 줘야 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술에 취한 날이면 박팔식은 늘 이렇게 구시렁거렸다. 적군에게 투항한 자신의 변명이 아니라고 애쓰는 모습이 확연했다. 적어도 그 때 영규의 눈에는 그렇게 비쳐들었었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는 산의 윤곽이 희미해지기 시작하고 그 산 위의 하늘은 은회색으로 묽어져 가고 있었다. 털썩거리던 황톳길이 끊기고 누연한 아스팔트 길에 버스는 들어섰다. 가끔씩 택시들이 치자빛 헤드라이트를 밝힌 채 껑충거리며 달리고 있다. 현성이 가까워진 모양이다.



3


풀색 옷을 입은 사람이 아버지의 뺨을 때렸다. 아버지의 입 귀로 검붉은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영규는 그러한 아버지가 전투에서 일등 공을 두 번이나 세운 영웅이라는 것이 도무지 믿겨지지 않았다. 커쿨진 아버지의 몸체가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붉은 가위를 씌운 수첩이 풀색 옷을 입은 사람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시방 뭘 묵고 사는 기여?
뮈 대충 먹고 살지.
영규는 굳이 자기가 지금 장춘 모 대학에서 교수로 산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옷차림을 본께 일반인 같지는 안 쿠만예.
석홍만이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린다. 영규는 지금 앉아 있는 음식점을 둘러보았다. 양고기 전문이여서인지 벽에 기름때가 보였고 그 어떤 말 못할 야릇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버스가 현성에 도착하자 홍만이는 오랜만이라며 술 한잔 하자고 영규를 끌었다. 현성에 아는 사람도 없고 저녁도 먹어야 하고 굳이 딴 일이 없는지라 영규는 홍만이가 이끄는 대로 버스부에서 가까운 이 곳 회족 음식점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넌 지금 무얼하고 사니?
나야 뭐, 배운 게 없는 기 할 일 있나, 땅 파먹고 산다.
땅 파먹고 산다는 홍만이의 말끝에 그 어떤 서글픔이 묻어 있었다. 그 서글픔은 바람처럼 영규의 가슴에 와 닿았다.
니 아부지 말이여, 참 좋은 량반이셨는데.
홍만이는 두 눈을 슴벅거렸다. 전등 불빛에 번득이는 물기가 내비쳤다. 영규도 머리를 주억거렸다.
다, 이데올로기의 희생품이다.
이데올로기? 그건 뭘하는 긴디? 배운 게 없어 모르갔지만 암튼 시대를 제대로 만났음 크게 될 량반이셔.
밖에는 어둠이 온전히 덮였다. 굽난 고량주 한 병이 상 위에서 뒹굴었다. 영규는 잠시 어둠이 가득 찬 창 밖을 바라보면서 주머니 속의 메달을 만지작거렸다. 아버지 박팔식이 625를 거치면서 전우들의 시체를 딛고 받은 훈장이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히 내뱉었다. 특무로 몰리면서도 박팔식은 이 훈장을 버리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주 모시듯 헝겊에 싸서 농짝 깊숙히 넣어 두었다. 그깟 철훈장 둬선 물해요? 그것 땜에 당신 이 모양 됐잖아. 아내가 투덜거릴 때마다 박팔식은 끙하고 안간힘을 쓰면서 눈을 감고 속으로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리곤 했다.
울어매 세상뜰 때 니 아부지를 찾아보라고 해서 매하구까지 찾아간 적이 있다.
홍만이는 고량주 병을 새로 뜯었다.
매하구에서 일 년 살고 영구로 이사 갔었다.
질긴 인연이여. 매하구까지 찾아갔다가 니 아부지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면서 어머니의 원을 풀어 드리지 못하는가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너를 만나다니.
홍만이는 이렇게 말하면서 술잔을 내밀었다.
자 들자.
영규도 술잔을 들었다. 그는 자신이 오늘 처음으로 이렇게 폭음을 한다고 생각했다. 홍만이가 반가운 건 아닌데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는 걸까?
아버지 박팔식이 생산대 대장으로 있을 때 마을에서는 박팔식이 장 과부와 배가 맞아 돌아다닌다고 했다. 영규의 어머니는 장 과부를 불여우라고 욕했다.
죄받어, 구렁이로 백 년, 개로 백 년, 꺼시렁이로 백 년 살 년아.
영규의 어머니는 장 과부의 머리끄덩이를 끌다가 남편 박팔식의 주먹에 눈통이 퍼렇게 된 후부터 이렇게 저주의 말을 퍼붓곤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영규는 온몸에 소름을 쳤다.
영규의 아버지는 장 과부를 아주머니라 부르며 그 집에 들락거렸다. 약진 시절에는 생산대 양식을 장 과부집에 가만히 빼돌린다는 설도 돌았었다. 영규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자기집도 양식이 모자라 옥수수를 잘게 찧어 끓인 죽물을 마시는데 그 귀한 양식을 왜 장 과부집에 줄까라고 생각했다.
술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술이란 참 좋은 물건인디, 내가 처음 술을 마셨을 땐 맵고 써서 혼났지라. 어마니한테 참 혼도 나고, 그게 아마 초중 2학년 땐가 이나깐 이젠 거이 40년이 되어 오는구나.
홍만이는 멀겋게 웃었다. 양고기 접시를 뒤적거리다 말고 영규는 홍만이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울 아부지 살았으믄 나도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텐데. 까마귀 같은 인생을 사는가 싶다. 새끼들이 키를 넘어 가면서 이 애비를 돈도 못 번다고 괄시할 땐 정말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죽어 부리고 싶기도 했다. 하기사 니가 내 마음을 알까?
그게 말이다.
영규는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가 특무로 몰리울 때 난 어찌했던가? 가슴 속에서 특무 박팔식을 타도하자는 소리가 소란스레 들리는 듯했다. 영규는 어느 새 주머니 속의 훈장을 상 위에 꺼내 놓았다. 일광등 불빛 아래 훈장은 차가운 빛을 뿜어 내고 있었다. 영규와 홍만이는 멍하니 상 위에 있는 박영규의 아버지 박팔식의 훈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4


1952년 10월 8일 포로 송환 문제로 정전이 휴효로 된 후 10월 14일 오성산 전투에서 박팔식은 포로로 되었다. 16살에 조선의용군 제5지대에 참군하여 해방전쟁 시기엔 해남도 전역까지 참가한 적이 있는 박팔식의 인생에 그번 전역은 치명타로 되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맺어지고 제1차 포로 교환시 고향에 돌아온 박팔식은 동네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비겁한 포로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박팔식의 눈길은 뾰족거리는 눈[]발처럼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구태여 딴 말은 없고   끙하는 알지 못할 소리를 할 뿐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러한 박팔식을 조금은 두려워했다. 서둘러 2백 리 상거한 골에서 부녀가 의지하며 사는 영규의 어머니와 얼굴도 모른 채 할아버지의 의사대로 결혼했고 이듬해 영규를 보았다.
영규가 태어난 이듬해부터 아버지는 말없이 며칠씩 어디론가 떠났다가는 조용히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몇 번 다녀온 후 묘한 일들이 하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프 차를 탄 군인들이 몇 명 다녀갔고 그의 집에 묵으면서 술상을 벌이기도 했다. 그 때로부터 장 과부의 집에 자주 다니기 시작했다. 오성산 전투에서 죽었다던 전우들이 북경 어딘가에서 큼직한 일을 한다는 설도 밑도 끝도 없이 마을 안을 유령처럼 떠돌았고 어느 날부터인가 생산대 대장일을 맡아 하기 시작했다.
아주머니, 홍만이는 걱정하지 마소. 내가 책임질기라.
술에 취한 뒤 장 과부를 보면 박팔식은 이렇게 구시렁거렸다.
형님의 핏줄이 아닙니꺼? 바쁜 일이 있으문 속에 넣지 말고 말하소.
박 대장, 말만 들어도 고맙슴더.
장 과부는 그 때마다 눈굽을 찍었다.
뒤에서 말이 많은께 넘 그러지 마소. 난 박 대장 마음 다 압니다.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유복자로 태어난 홍만이만 불쌍할뿐입더.
음력 대보름을 사흘 앞둔 어느 날 아침, 장 과부가 편지 한 장을 들고 영규의 아버지를 찾아왔었다. 편지를 읽은 후 박팔식은
분명, 내 눈으로 봤는데. 내 손으로 눈꺼풀을 쓸었는데.하면서 연신 머리를 흔들었다. 이튿날 한 되들이 고량주 병과 주먹밥을 바지게에 짊어지고 각반을 발에 감고 해가 찬란하게 떠오르는 두만강을 건넜다. 며칠 후 입에 역한 고량주 냄새를 풍기며 집에 돌아온 박팔식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시체더미에서 살아난 전우가 힘이 되라고 쓴 편진께 따게 생각하지 마소. 이건 전우가 형님의 유복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 홍만이한테 보내는 거라누만. 하면서 바지랑이 속에 가득 들어찼던 물건들을 장 과부한테 넘겨 주었다. 솜을 넣어 지은 점퍼 안주머니에서 엽초를 꺼내 말면서 아버지는 먼 산을 왼고개로 바라보았다.
뒷산에서 와와 소나무숲이 바람 달리는 소리를 냈다. 수리봉으로부터 내린 어둠은 바람찬 소나무숲을 지나 산골짜기로 번지고 점차 어지러움처럼 마을로 내려왔다.



5


니 아부지 어쩜 울 엄마 땜에 특무로 몰렸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술 한 방울까지 입에 털어넣고 홍만이는 이렇게 씨벌거렸다. 영규는 대뇌피질이 아뜩한 경련을 일으키듯 현기증이 왔다.그 어떤 둔중한 목기에 뒤통수를 얻어 맞은 듯했다.
전쟁에서 죽어빠진 울 아부지를 찾아 달라고 보채지만 않았어도 니 아부진 두만강을 건너지 않았을 거고 특무로 몰리지 않았을 게 아니니?
지나간 일이다. 더 말하지 말자. 모든 걸 잊고 싶다.
기래, 잊고 싶을 거다. 잊고 싶고 말고.
둘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어깨곁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선 소슬한 밤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영규의 손에는 아버지 박팔식의 훈장이 달랑이고 있었다. 훈장, 아니 아버지의 화신 같은 훈장, 내가 왜 아직까지 이 훈장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걸까? 영규는 자신에게 끝없이 물어 보았다.
헝겊 오라기에 보물처럼 꽁꽁 모셔져 있던 이 훈장이 언젠가 아버지의 손에 의해 불더미 속에 날아 들어갈 뻔한 적이 있다. 대륙을 휩쓸던 혁명이 끝나고 평반()이 시작되어 아버지의 역사가 다시 긍정받을 때에도 아버진 훈장을 꺼내들고 꺼이꺼이 울었었다. 그런데 89년 중한 수교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영규로부터 전해듣던 날 아버지는 오랜만에 술을 폭음했고 농짝에서 훈장을 싼 보시기를 그대로 불화로에 던져 버렸다. 다행히 영규가 인츰 발견하고 꺼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폐철로 되어 버릴 뻔했다.
이 좆 같은 잡놈새끼들아, 그럼 우린 무엇으로 되냐.
자신의 인생에 대한 부정이었을까? 거의 실성에 가까운 울음을 토했다.
그런데 정말 궁금한 게 하나 있다. 너 어머니하고 우리 아버지가 정말 바람이라도 피운 건 아닐 테지?
영규는 언제부터 묻고 싶었던 말을 종내 묻고야 말았다.
흐허허 이놈아, 배웠다는 눔이 그게 뭐냐. 바람피웠으면 어떻고 안 피웠으면 또 어떠냐? 고독한 울 엄마 적선 좀 한 셈하면 안되니?
밤바람은 찼다. 옷깃을 여미며 몸을 옹송그렸다. 아버지의 골회암이 어디쯤까지 흘러갔을까고 생각해 봤다. 그리고 훈장을 왜 함에 넣지 않았던가고 자신에게 다시다시 물어 봤다.
사실은 말이다. 이건 정말 사실인데.
길가의 가로수를 붙잡고 왝왝 욕지기를 해대던 홍만이는 갑자기 말을 꺼냈다.
녜편네가 엊그저께 죽었다. 한일 고생만 하다가 자궁암에 걸려 주사도 몇 대 못 맞아 보고 죽었다. 그래서 말인데.
홍만이는 잠시 말을 끊더니 담배 한 개비 꺼내 물었다. 그리고 먼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에서는 별찌 하나가 혜성처럼 길다란 꼬리를 그으며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아들집으로 가야겠는데, 디럽게 며느리 눈치가 보이는 건 어쩌니?
아버지의 모습이 혜성처럼 대뇌피질을 가르며 살아나고 있었다.세상이 갈라지기 전의 혼돈 같은 어둠 속에서 유령처럼 너울거리는 홍만이의 모습이 환영이기를 그리고 그가 지금 아버지의 골회를 뿌리려 고향에 왔다는 것도 환영이기를 바랬다. 그렇다, 환영이다. 환영이라고 생각하면 환영인 것이다. 그는 하늘에 대고 오줌 줄기를 뽑았다. 희뿌연 거품을 일구며 쏟아지는 오줌 줄기를 바라보며 그는 끼들끼들 소리없이 웃었다.



6


눈을 뜨니 동창에 황금빛 빛살이 번져 있었다. 지근지근 아파나는 머리를 손으로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보니 옆에서 홍만이가 코로 풀무질을 해대며 아직도 자고 있었다. 복도에서 누군가 퉁탕거리며 떠들고 있었다. 그는 배배 꼬인 넥타이를 손으로 문다져 펴며 홍만이의 자고 있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기름기라곤 조금도 없이 수척한 그를 보노라니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방을 빠져 나오려다가 영규는 주춤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는 호주머니를 뒤적여 아버지의 훈장을 꺼내들었다. 잠시 손 안에 꼭 쥐어 보았다. 선뜻한 냉기가 손바닥을 타고 심장까지 전해 왔다. 그는 훈장을 슬며시 홍만이의 머리맡에 놓았다. 그리고 방문을 열었다.
가슴 속에서 차돌 같은 덩어리 하나가 떨어지는 듯했다. 그리고 다리와 팔뚝을 감고 있던 철사 같은 줄이 풀려나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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