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소설] 엄마의 다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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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3,624회 작성일 10-06-0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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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이 되어서야 눈이 떠졌다. 발치에 놓아둔 두 개의 트렁크와 그 뒤로 다락문이 먼저 눈에 띄었다. 트렁크 하나에는 급히 구겨 넣은 옷과 내복들이, 다른 하나에는 지난 몇 년 어딜 가나 끌고 다니던 공책 몇 권과 소형녹음기 따위가 들어 있었다. 머리맡에는 다리만 남은 오징어와 복숭아쥬스 깡통이 뒹굴고 있었다. 어젯밤 늦도록 쏘다니다가 식당들이 모두 문을 닫은 뒤에야 어느 길모퉁이의 편의점에 들어갔고, 거기서 맥주깡통을 집었다가 다시 과일쥬스로 바꿔 샀던 생각이 났다.
그때도 그랬고 그 장면을 기억하는 지금도 어이가 없긴 마찬가지였다. 어쩌자는 말인가. 어쩌자는 말인가. 아일 품고 여길 찾아와서는 어쩌자는 말인가. 서울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공항대합실에서도, 짐을 꾸리면서도, 아니 그보다 훨씬 전 병원문을 나서면서도 나는 같은 말을 뇌고 있었다.
임신에 대한 확신이 서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폴을 피했다. 그의 손길을 피하고, 그의 얼굴을 피하고, 급기야는 그의 목소리를 피하고, 그의 숨소리까지 피해 다녔다. 가장 먼저 그 사실을 알렸어야 할 사람인데도 나는 그에게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생각은 해도 말은 깊은 우물 속에 빠진 쇳덩이처럼 목구멍 아래에 걸려 넘어와 주려 하질 않았다. 그가 기뻐하리라는, 한없이 기뻐서 얼굴을 웃음으로 터뜨려 버릴 듯이 길길이 날뛰리라는 생각을 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한편으론 하루하루 목구멍을 넘어오지 않는 말과 함께 아이마저도 녹이 슬어 가고 있을 것만 같은 조바심도 났지만, 그와 함께 아이를 낳아 키우고, 엄마 아빠가 되어 늙어 가는 그림 같은 장면들을 상상해 봐도 소용없긴 마찬가지였다. 몇 번인가 갑작스레 폴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고 싶은 충동에 그의 집 쪽으로 핸들을 꺾기도 했었다. 발레리나가 된 누나를 샘내며 자랐다는 안경 낀 곱슬머리 소년. 그의 두려움 없는 밝은 눈을 보면 한 가닥쯤은 아이를 낳아도 좋을 이유가 생겨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몇 번인가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묻고 싶었다. 너희 집에도 다락이 있었니? 혹시 네 누나도 다락에 숨어서 몰래 발레를 했니? 그냥 숨바꼭질이 아니라 터질 듯한 심장으로 웅크리고 앉아서 어둠과 먼지 속에 질식해 가는 엄마의 그림을 마주봐야 하는 그런 다락이 네게도 있었니? 찾아줄 술래도 없이 언제까지고 숨어 있어야 하는 그런 다락이 있었니? 그렇지만 나는 아직 아무 것도 그에게 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아이를 낳을 이유는 무엇이고 낳지 말아야 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집과 병원 사이를 수도 없이 오가며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했지만 머릿속은 점점 더 뒤죽박죽으로 엉켜들 뿐 아무런 이유나 결론도 나와주질 않았다. 아이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은 무엇인지. 별이 빛나고 꺼지는 것은 또 무엇인지. 그것이 내게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며 무엇일 수 있는 것인지. 이 세상에는 내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 아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이라도 누군가 내게 아기를 안기려고 할 때 나는 늘 겁이 났었다. 아기가 내 마음속까지 다 비추어낼 듯 호기심 어린 맑은 눈을 뜨고 있거나, 밑도 끝도 없는 신뢰감으로 온몸을 맡기고 쌔근쌔근 잠들어 있거나 상관없이 내 몸은 아이의 보드라운 살결에 닿는 순간 날카로운 무엇에 찔린 애벌레처럼 반사적으로 움츠려 들었다. “떨어뜨릴까 봐요.” 그때마다 나는 흐흐 겸연쩍게 웃으며 무안과 일말의 분노가 스치는 아이 부모의 얼굴을 향해 어설픈 변명을 늘어놓곤 했다. 차라리 온몸이 바알간 열 덩어리가 되어 울고 있는 아이를 보면 울컥 안고 싶은 마음이, 더러는 끌어안고 함께 울고 싶은 마음까지도 치밀 때가 있었지만, 우는 아이에겐 항상 울음의 신호가 울리기가 무섭게 달려오는 부모가 있게 마련이었다. 그럴 때면 내 눈엔 또 다른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를 안고 어르는 부모의 등뒤에서 혼자 울음을 삼키는 아이. 그 아이의 몸은 늘 유리병 속에 든 코일같이 작게 웅크려져 있었다.
물음표로 꼬부라진 그 코일을 펴보려고 안간힘을 쓰며 거리를 헤맸지만 나는 여전히 집과 병원 사이를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뱃속의 아이와 병 속의 아이와 밤거리를 헤매는 나의 삼각구도. 내가 안으려 할 때마다 뱃속의 아이는 내 손에서 미끄러져 차창 밖 어둠 속으로 떨어지고, 병 속의 아이는 더 작게 몸을 웅크렸다.
몇 번인가 신경질적인 경적소리가 들렸고, 무심한 건물과 무표정한 얼굴들이 불빛을 끌며 떠내려가듯 지나간 뒤, 나는 또 다시 병원 앞에 와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병원 앞에는 분수와 베고니아, 셀비어로 제법 멋을 부린 널따란 잔디밭이 놓여 있었다. 만약 가끔 TV에서 보듯이 낙태반대자들이 농성을 한다면 수십 명은 충분히 잔디 위에 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끌어가려는 경찰에 항거하면서 그들은 누운 채로 물을 뿜는 분수처럼 외칠 것이다. “아이는 생명이다. 선택이 아니다!”
정신없이 잔디밭 위까지 몰고 간 차창에 와락 분수가 쏟아지는 순간 문득 나는 내가 그때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됐다. 나는 내 뱃속의 아이를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라, 병 속의 아이, 아니 어느 새 내 엄마가 되어 그녀 뱃속의 아이, 나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낳아야 할 것인가, 낳지 말아야 할 것인가. 한 여자의 초췌한 얼굴이 자꾸만 검은 유리창에 흩어져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그 길로 짐을 싸고 황급히 열쇠를 찾아 이 집을 찾게 된 계기가 되었겠지만, 나는 아직도 나 자신을 향해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젯밤 마지막 발길이 닿은 곳도 병원이었다.
한림대학병원. 그 병원 뒤편 아카시아 숲 깊숙한 곳에 한림원이 있었다. 한가한 숲, 겨울 숲? 오래 전 내가 받아 본 몇 통 안 되는 편지에서 엄마는 그 집을 뭐라 불렀던가. 여느 가정집 같이만 보이는 작은 요양소. 심한 정신의 상처를 앓았거나 앓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조그만 정신공동체라고 했다. 아래 위층으로 방은 기껏해야 예닐곱도 되어 보이지 않았다. 붉은 벽돌로 만든 집은 그림같이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엄마는 깨어있을 때나 잠들어 있을 때나 나무 사이로 지나는 바람소리를 듣는다고 했었다. 낮이면 바람을 타고 가는 빛의 흔들림을 보고, 깜깜한 밤이면 바람소리 사이로 빛의 소리를 듣는다고 했었다. 때로 빛은 폭포처럼 쏟아지고, 때로는 낙숫물이 되어 뚝뚝 엄마의 얼굴을 적시며 떨어진다고 했다.
“들어봐, 들어봐.”
전에도 엄마는 옷감을 자르던 가위를 손에 든 채로 귀를 세우곤 했고, 나는 행여 그 속에 대문으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섞여 있달 까봐, 그래서 엄마가 내게 또 숨으라고 할까 봐 마음을 조이곤 했었다. 그런 날 엄마는 쌓여 있는 일감을 모두 팽개쳐둔 채 누워 버리기가 일쑤였다. 더러는 옷을 만들어 달라고 손님들이 맡겨놓고 간 옷감들을 좁은 방안 가득 펼쳐 놓고 또 그것으로 몸을 휘감으며 방안을 데굴데굴 굴러다니기도 했다. 그런 때면 나는 신이 났다. 색색가지의 옷감들을 온몸에 두르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방안을 뛰어 다녔다. 아무도 가르쳐 준 일이 없지만 내가 생각해낸 파랑춤을 추고 노랑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빨강의 펄럭이는 손짓과 보라의 고요한 쉼표 사이로 이 세상의 색깔들을 섞으면 온종일 부르고 춤을 추어도 모자를 만큼의 춤과 노래를 지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렇지만 대개의 경우에 엄마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온종일을 펼쳐 놓은 옷감 위에 누워서 보냈다. 해가 지붕 위를 지나가는 동안 옷감 위에 누운 엄마의 눈물로 번들거리는 얼굴이 펼쳐놓은 옷감 색을 따라 차례로 색깔을 바꾸어갈 뿐이었다. 그런 날이면 나는 혼자 다락에 올라가곤 했다. 방안에 빛이 사위어 엄마 얼굴에서 색깔이 사라진 뒤에도 다락 창에는 아직 한 뼘쯤 저녁 빛이 걸려 있기 마련이었던 것이다. 다락에 올라가서 창에 남은 해 길이를 재면서 나는 내가 온종일 초인종 소리나 문 두드리는 소리, 하다못해 엿장수 가위소리라도 들려주기를, 그래서 엄마를 깨워주기를 얼마나 기다렸는가를 깨닫곤 했다.
엄마와 헤어져 백부를 따라 미국에 가고 난 뒤에도 나는 꽤 오랫동안 누워 있는 엄마를 꿈에 보곤 했다. 다시 보면 깜깜한 방바닥에 하얀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을 뿐인데 그게 엄마라고 했다. 그 종이는 바람소리가 들릴 때마다 군데군데 각기 다른 색깔로 둥근 무늬를 그리며 물들어 갔다. 분홍, 파랑, 보라, 그리고 흑자주...... 색깔 위에 색깔이 점점 더 빠르게 번져가면서 곧 아무런 색깔도 형태도 알아볼 수 없게 되어버렸고 온갖 색깔로 흠뻑 젖은 종이는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위태로웠다. 그런데도 자꾸만 쉬익쉭 바람 소리가 들려왔고, 혀를 날름거리는 뱀처럼 종이는 또 자꾸만 바람소리를 따라 고개를 들었다.
한림원을 둘러싼 숲은 깊고 울창했다. 나무들은 빛과 함께 소리마저 삼켜버린 듯 얼마 전까지 나를 따라다니던 거리의 소음이 이곳에서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바람결에 혀를 떨고 선 나무들 사이로 단 하나 아직 불이 켜진 창이 보였다. 창을 가린 얇은 커튼 너머로 그림자 하나가 서성거리고 있었다. 창 밖의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듯 그림자는 창가로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엄마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앉았던 나무둥치에서 일어섰다. 젖은 나뭇잎 마냥 찰싹 나무에 붙어 서서 발뒤꿈치를 들고 창가로 다가오는 그림자를 살폈다. 내게 열쇠를 보낸 사람. 문득 어쩌면 엄마는 열쇠를 내게 보낸 삼 개월 전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그렇게 서성거리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옛집으로 부른 사람. 나를 죽도록 사랑하고 또 죽도록 미워한다고, 옷을 찢으며 울부짖었던 사람. 피가 흐르는 손목으로 나를 때리고 나를 끌어안으려 했던 사람. 엄마에게 무슨 일이,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따륵 따륵. 여태 들리지 않던 귀뚜라미 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따륵 따륵. 힘겹게 병 뚜껑을 돌리는 듯한 벌레울음 소리를 따라서 바람 소리도 들렸다. 엄마에게 가기엔 너무 늦었노라고, 내일 다시 오리라고, 나는 자신에게 사정하듯 중얼거리며 주춤주춤 발길을 돌렸다. 빛은 어둠 속 어디엔가 숨어 보이지 않고 돌아서는 발걸음을 막으며 솨아솨아 숲이 흔들리는 소리만 들렸다.
다시 깜빡 잠이 들은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더러운 벽지 위로 어느 새 얼룩얼룩 어둠이 번져 있었고, 그 위로 벌레 한 마리가 기어가고 있었다. 엄마가 이 집에서 마지막으로 잠을 잔 건 언제였을까? 나는 창호지 바른 문짝이 나직이 흔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기억을 되짚어 갔다. 더듬이를 길게 뽑은 벌레는 조심조심 벽에서 천장으로 거꾸로 몸을 뒤집고 있었다.
철이 들고 백부에게서 독립하고 나서도 여러 해가 지나서야 나는 조금씩 엄마에 대해 듣기 시작했다. 내 엄마나 아버지에 대한 말이 나오면 언제나 입을 다물어 버리던 백부가 빈집의 외로움을 두려워하는 나이가 되면서 무겁기만 하던 그의 입이 숨겨진 기억의 통로들을 함부로 열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핑계는 물론, 그게 바로 나 자신의 일이며, 내가 이미 성인이 됐고, 게다가 그만한 것은 알아두어야 할 작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나는 그가 그때까지 혼자 지니고 살아온 기억의 무게와 두려움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집에 돌아와 다락문을 마주 보고 있는 지금도 나는 그때 그의 두려움을 알만 하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미대 재학 중이던 스무 살에 국전에 입선한 화가였다. 스물 한 살이 되기 전에 임신을 했고, 곧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라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비난과 경멸의 대상으로 화단에서 소외되기 시작했다. 아이의 아버지가 국전의 심사위원이었다는 이유로 그녀의 재능은 재빨리 부정되었다. 그림을 핑계로 아버지가 가족과 함께 불란서로 떠난 뒤 엄마는 숨어서 나를 낳았다. 서너 번 아버지의 가족들이 보낸 사람들이 아이를 찾겠다고 들이 닥쳤다. 아버지를 망신시킨 엄마의 그림까지도 내어놓으라고 발을 굴렀다. 엄마는 그때마다 황급히 나를 다락에 감췄다. 그림도구들도 모두 다락에 감추고, 그림은 물론 그림을 그렸던 흔적도 지웠다. 아이를 뺏으러 오는 사람들을 향해 엄마는 자신이 아닌 척 했다. 엄마는 자신을 포함한 온 세상을 향해 나는 그림을 그렸던 누구누구가 아니오, 내 아이도, 내 그림도, 나도 이 자리에 없소, 하고 외치고 싶었던 것이다.
거기까지 백부에게서 들었을 때 나는 얼굴을 붉혔다. 은퇴 후 할 일이 없어진 백부가 연속극을 너무 보았거나 소설 몇 편으로 겨우 작가 소리를 듣게 된 조카를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스스로 어설픈 연속극을 쓰고 있는 거라고도 생각했다. 그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내 출생이 바로 연속극이었음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를 볼 때마다 그날 분의 막을 올리지 못해 안달하는 백부의 말에 어쩔 수 없이 귀를 기울이면서도 나는 수치심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 내용의 천박할 정도의 상투성이 부끄러웠고, 내 출생의 꼼짝없는 상투성에 화가 났으며, 그렇게 집안의 부끄러운 역사를 당사자를 향해 아무렇지 않은 듯 줄줄이 늘어놓는 그의 쪼글쪼글 주름잡힌 입에 대해서는 참을 수 없이 화가 나고 부끄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언제부턴가 매일매일 그의 입이 열려주기를 나도 모르게 기다리는 나의 조바심과 무력한 수치심이 부끄럽고 화났다.
적어도 어느 날 백부가 딱딱하게 굳어진 물감통과 자신의 오래 된 습작품을 보여 주기까진 나는 그저 그의 천박스런 무대 앞에 결박된 무력한 관객일 뿐이었다. 그러나 자신도 한때는 화가가 되려고 했었다는 그의 고백은 놀라우리 만치 깊은 울림을 가지고 내게 들려왔다. 아마, 떨리는 손으로 붓을 만져보는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면, 은밀한 고통과 죄책감과 기쁨으로 범벅된 그 표정을 보지 못했다면, 그 표정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백지와 마주 앉을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나는 그에게서 들은 얘기로부터 지금보다는 훨씬 쉽게 자유로워질 수 있었을 것이다.
엄마는 차츰 그림을 그렸던 흔적을 마음에서까지도 지워갔다. 깊이 감춘 그림과 그림도구들을 다시 꺼내려고도 하지 않았다. 다니던 학교에는 물론, 한때 함께 어울리던 화가들의 화실이나 전시회에도 발을 끊었다. 자신을 따돌리고 손가락질하는 그들이 아니라도, 그림이 아니라도 살 수 있다고 자신에게 말했다.
낡은 재봉틀 한 대를 사다놓고 간판 없는 의상실을 차렸다. 동네 여자들이 들이미는 조야한 싸구려 옷감들을 서걱서걱 자르면서 엄마는 메두사의 머리칼처럼 엉켜드는 생각들도 그렇게 서걱서걱 잘라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 여자들이 새 옷을 받아 입고 엉덩이를 흔들며 깔깔거리고 웃을 때 자신도 그렇게 웃을 수 있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걸 잊으리라고, 그림도 잊으리라고, 나는 그림을 그렸던 누구누구가 아니라고, 누구를 사랑한 적도 없노라고, 잠시나마 믿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밤새도록 여자들의 옷에 깃을 달고 소매를 달고 다리를 붙일 때, 엄마는 새로운 팔, 다리와 날개를 만들고 있었다. 단추를 꿰매고 튼튼한 실기둥을 만들어 붙일 때, 엄마는 이 세상에, 다락이 아닌 이 지상에, 그렇게 튼튼한 자신의 자리를 꿈꾸었다. 일에 열중해 있을 때 엄마의 얼굴은 평화로웠다.
엄마의 의상실에 조금씩 더 많은 사람들이 꼬여들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호기심 많은 옛 그림 동료들도 한두 명 섞여 있었다. 엄마는 차근차근 그들의 치수를 재며 자신의 마음을 쟀다. 얼만큼 왔나, 그들에게서, 자신에게서 얼만큼 멀리 왔나. 그들이 내미는 옷감을 어루만지며 엄마는 깔깔 웃어 보였다. 고작해야 천장 위 다락에 숨겨둔 아이와 그림과 고통스런 자신의 소리를 지우려고 엄마는 더 크게 깔깔 웃으며 그들이 전하는 화단 소식에 콧방귀를 뀌었다. 내겐 상관없어. 너희들이나 잘해 봐.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엄마는 옷감을 자르는 가위가 자신의 가슴을 자르고 있음을 느꼈다. 재봉틀을 달달 돌릴 때 자신의 가슴이 달달 박히고 있음을, 튼튼하게 솔기를 박을 때마다 자신의 입이 견고하게 봉쇄되고 있음을, 갈증난 목줄기와 가슴을 파고드는 통증으로 깨달았다. 그럴 때면 며칠이고 일에서 손을 놓았다. 펼쳐 놓은 옷감 위에 죽은 듯이 누워서 아침이 저녁으로 바뀌고 다시 밤이 아침으로 바뀌는 것을 지켜보았다. 흘러가는 냇물 밑바닥에 가라앉은 작은 돌멩이처럼 무심한 얼굴로 시간이 그녀를 스쳐 흘러가게 놓아두리라 생각했다. 그게 내 삶이니까. 색깔도 모양도 없이 흘러가는 것. 지우고 또 지워서 이젠 색깔도 모양도 알아볼 수 없는 제 삶의 실체에 대해 그녀는 초점 흐린 무심한 시선을 띄울 뿐이었다. 그녀는 차츰 자신이 물밑바닥의 고요를 찾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런 평화도 오래 가지 않았다. 다락을 들락거리던 아이가 누워 있는 그녀의 품을 파고들었다. 아이는 배가 고프다고 칭얼대다가 겨우겨우 잠이 들더니, 어느 새 깨어나서는 표정 없는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무섭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어디 갔어, 엄마, 우리 엄마. 아이의 울음은 물 젖은 동아줄처럼 꽤나 끈질기게 그녀의 신경줄에 매달렸다. 그 바람에 잠들었던 머릿속 메두사의 머리칼들이 꿈틀댈 즈음 그녀는 우는 아이를 놓아두고 집을 나섰다. 꿈틀거리는 생각의 미끈덩거리는 몸뚱아리들을 꾹꾹 밟으며 멀리 멀리 조금이라도 더 집에서, 자신을 숨겨 놓은 그 집의 다락에서, 멀리 가려고 기를 썼다. 몇 날 며칠 길거리를 헤매느라 발이 부르터도 엉켜드는 생각들이 지쳐 모두 혼수상태에 빠질 때까지는 집에 돌아갈 수가 없었다.
초인종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갑작스런 소리에 심장이 오그라들 듯 놀랐으나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몸을 뒤척이며 머리맡을 살피다가 툇마루에 놓아둔 우동그릇 생각이 났다. 낮에 중국집에서 시켜다 먹은 우동그릇을 찾으러 온 모양이었다. 갑자기 속이 쓰리고 배가 고팠다. 누군가 뱃속에서 칭얼거리며 몸을 비틀기 시작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새 방안 가득 쌓인 어둠 때문에 몸은 형편없이 무거웠다. 천장을 기어가던 벌레는 이제 다락문 앞에서 작은 어둠 덩어리가 되어 웅크리고 있었다. 착각이었을까? 어둠 속에서 벌레가 길고 가는 더듬이 끝을 조심스럽게 다락문에 대어 보는 것을 본 것만 같았다.
가까스로 대문을 열자 벌써 중국집 문으로 들어서려던 사내가 양철통을 흔들며 다가왔다. 사내의 째진 눈과 허연 옷이 어둔 골목을 기어온 흰 뱀을 연상시켜서 나는 흠칫 놀랐다.
“계셨구만요.”
사내는 내 얼굴을 훑어 보며 괜스레 낄낄거렸다. 그 역시 유령을 본 듯한 놀라움과 놀람으로 인한 무안감을 웃음으로 얼버무리려는 듯 했다.
낮에 식당에 들어갔을 때도 사내는 주문을 받으며 낄낄거렸다. 그리고 ‘그 집 말입니까?’ 하고 몇 번을 다시 물었다. 그런 우스운 말은 처음 들어본다는 투였다. 그 집에 배달을 가다니요, 그 집에서 음식을 먹다니요, 사내의 웃음은 그렇게 반문하다가, 어느 새 눈을 반짝거리며, 거기 정말 집이 있었습니까, 하고 묻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뱀집, 아니 뱀의 행방에 대해 물으려던 생각을 꿀꺽 삼켜 버리고 말았다.
낮에 겪은 당혹감 때문에 나는 다시 얼굴을 붉히며 사내에게 빈 그릇을 내밀었다.
“아니 전 또 그새 집을 아주 비우셨나 해서요.”
사내는 한 손으로 자신의 뒷덜미를 문지르며 묻지도 않은 말을 중얼거렸다. 사내의 등뒤로 몰려든 은회색 구름이 곧 비가 올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곳 철거 날짜가 이틀밖에는 남지 않고 해서......”
사내는 더 이상 이유를 헤아릴 수 없는 웃음을 연상 낄낄 흘리며 회색건물 속으로 사라져 갔다.
사내에게서 들은 도시계획 소식이 귓가에서 윙윙거렸지만 나는 더 묻지도 못하고 방에 돌아와 다시 눕고 말았다. 따륵따륵. 다락문 앞에서 귀뚜라미가 울고 있었다.
다음 날은 온종일 지붕을 두드리며 비가 내렸고, 저녁이 되자 비의 주렴을 걷어올리며 방안 가득 주홍빛 노을이 밀려 들어왔다. 비가 내리는 동안 나는 풍랑을 만난 배 마냥 불안스런 집에 누워 수도 없이 잠 속으로 자맥질을 했고, 심한 배멀미를 하듯 먹은 것을 토해내곤 했다. 잠결에 몇 번인가는 댓돌에 벗어놓은 구두가 젖겠구나 생각했고, 또 몇 번인가는 따륵따륵거리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너 아직 거기 있구나 안심했었다. 그러다가 다시 잠이 들면 꿈속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배고픈 아이울음소리처럼 벨소리는 가늘고 질겼다. 그 울음소리 사이로 끈질기게 나의 부재를 주장하는 자동응답기의 목소리가 엉켜 들었다. 지금은 집에 없사오니...... 집에 없사오니...... 없사오니...... 한 여자가 그 말을 되뇌며 나무 사이 불켜진 창가를 서성이고 있었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차를 몰다가 마주 오는 트럭을 들이받고 즉사했다. 백부가 아버지의 그 소식을 가지고 우리 모녀를 찾았을 때 우리는 둘 다 가사상태에 빠져 있었다. 집안에는 음식 한 톨 남아 있지 않았고, 다섯 살 난 아이는 눈물과 물감으로 얼룩진 몸을 웅크리고 물감튜브를 빨면서 잠이 들어 있었다. 아이를 안아 올릴 때 아이가 얼굴을 묻고 있던 옷감뭉치가 움찔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 백부는 아마 그 옷감 속에 엄마가 숨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 나는 창호지문을 타고 방안 깊숙이 스며든 아침햇살에 잠이 깨었다. 이 집에 와서 꼬박 사흘을 보내고 나서야 밤낮이 제자리를 찾은 셈이었다. 밖에서는 벌써 퉁탕거리며 물건들이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와 먼 데 사람을 소리쳐 부르는 목소리가 났다. 나는 아마 중국집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제 봉제공장은 빗속에 이사를 떠났고 중국집에 배달을 부탁하러 갔을 때 그 건물도 이미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어렴풋이 잠이 깰 때마다 어둠 속을 떠다니던 다락문이 지금은 붉은 아침노을에 젖어들고 있었다. 오늘은 열어보아야 할 문. 그리고 그 앞에 아직 열지 않은 트렁크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문과 마주 앉았다. 문짝에 흘러내리는 노을 빛을 따라 또렷이 돋아난 나뭇결들이 몸을 뒤척였다.
자다말고 아이는 이부자리에서 일어나서 가만히 문짝에 손을 대 보았다. 손가락 끝으로 나무의 숨결이 느껴졌다. 비오는 날이면 웅덩이마다 담기는 파문처럼 수 없이 많은 파문들이 굳어지고 옹이진 나뭇결 속에서 힘겹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머릿속에서 웅얼거리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마 언젠가 내가 썼다가 던져 버린 어느 얘기의 서두가 그랬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서로 엉켜 고통스럽게 몸을 꿈틀거렸던가. 그리고 어둠에 묻혀 갔던가.
그런데 나무의 숨결 사이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높아졌다, 낮아졌다, 울음소리를 따라 문짝이 들썩거렸다. 아이는 더 잘 들으려고 귀를 바싹 문짝에 갖다 붙였다. 그새 입에 솜덩어리를 물은 듯 울음소리는 삐죽삐죽하던 소리의 모서리를 잃고 한결 둔하고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아이는 저만치 멀어진 울음소리가 오히려 더 불안했다. 전처럼 엄마가 약을 먹었으면 어떻게 하나. 또 나더러도 같이 죽자고 하면 어떻게 하나. 아니, 엄마가 지금 다락 속에서 혼자 죽어가고 있는 거라면...... 아이는 다락문 고리를 거머쥐었다. 죽음이 뭔진 몰라도 아이는 그것이 두려웠다. 눈을 뜬 채 온종일 움직이지 않고 누워 있는 엄마의 낯선 얼굴, 엄마가 없는 빈 방, 깜깜한 밤에 다락에 갇혀서 혼자 잠이 드는 게 아마 죽음일 거라고 아이는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다락문을 열자 그 안에 고여 있던 먼지와 곰팡이냄새가 울컥 쏟아졌다. 나는 숨을 몰아 쉬고 다락 속의 어둠에 눈이 익기를 기다렸다.
아이는 조심조심 어둠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다락문 안쪽에 놓아둔 앉은뱅이 책상을 밟고 훌쩍 다락으로 뛰어오르는 일도 오늘은 다른 날처럼 어렵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이는 마치 제 몸 속에 어른이 들어온 것처럼 그것을 당연하게 느꼈다. 어둠 속에 숨어 있는 괴물들과 싸워 이겨서 엄마를 구해내야 한다고, 그럴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고 아이는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앉은뱅이 책상을 밟고 상체를 다락 속으로 밀어 넣었다. 지붕과 다락 사이에는 별로 공간이 크지 않아서 나는 상체를 펴지도 못하고 엎드린 채로 팔꿈치로 몸을 끌어올리듯 다락 속으로 기어올라야 했다. 키가 큰 편이었던 엄마가 어떻게 밤마다 다락에 들어가 몇 시간씩 견딜 수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다락 한가운데에 몇 개의 상자가 보였고, 그 상자 모서리마다 손바닥만한 다락 창을 타고 들어온 아침햇살이 부옇게 부서지고 있었다.
숨죽여 울던 엄마는 어디 갔는가. 아이는 어둠 속에서 두리번거리며 엄마를 찾았다. 먼지 쌓인 상자며 트렁크 사이사이를 살피고 열 수 있는 모든 상자를 열어보았지만 엄마는 그 속에 없었다. 비틀어진 물감튜브며 털이 빠진 붓, 색색가지 물감이 엉켜있는 크고 작은 나뭇조각 같은 것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아마 그 제일 밑바닥, 항상 잠겨 있는 트렁크 속에 숨은 게라고 아이는 생각했다.
녹슨 고리를 힘껏 잡아당기자 트렁크는 그다지 애먹이지 않고 열려 주었다.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옷감이 삭은 헌옷가지들 밑으로 딱딱한 것이 만져졌다. 네모난 그것을 싸놓은 한지를 벗기자 인쇄된 쪽지와 그림이 드러났다.
‘1957년 국전 입선작품’. 불꽃이었다. 화면 한 귀퉁이에서 시작된 불꽃은 수많은 꽃잎의 혀를 날름거리면서 화면 전체를 태울 듯이 거대한 꽃으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꽃잎들이 제각기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환희로 두 팔을 치켜든 사람, 고통으로 몸을 비트는 사람, 슬픔으로 웅크린 사람...... 사람들이 꽃씨처럼 꽃에서 떨어져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림 밑으로 헌옷 몇 가지를 더 들어내자 그 밑에 흩어진 사진 몇 장이 보였다. 어느 미술관 앞에서 여럿이 찍은 흑백사진. 엄마 뒤에 선 백부를 닮은 중년남자가 아버지라는 걸 나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나머지 사진들은 모두 흔들리는 차에서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찍은 듯 초점이 흐리고 영상이 흔들려 있었다. 내가 맨 끝으로 본 그 사진마저 그랬다면 나는 그 사진들을 통 알아보지 못하고 말았을 것이다.
어린 여자아이의 뒷모습이었다. 아이는 대문에 손을 얹고 무슨 소리를 들은 듯 뒤로 고개를 돌리려 하고 있었다. 낮은 대문밖에 대문을 등지고 서 있는 남자의 그림자가 아이의 얼굴을 흔들리는 음영으로 갈라놓고 있었다.
건성으로 지나쳤던 사진들을 다시 보면서 나는 찰칵찰칵 카메라 셔터 소리를 들었다. 사진 속 아이의 등뒤에는 다락이 있었고 다락 속에는 엄마가 있었다. 인형을 찾으러 왔던 아이는 인형을 손에 쥐고도 수십 번도 넘게 방 안 구석구석을 살피고 나서야 방문을 열었다. 방문턱 밖으로 한 발을 내밀었던 아이는 또 무엇이 미진한지 되돌아섰다. 방안을 두리번거리던 아이의 시선은 다락문에 가서 멎었지만 아이는 곧 시선을 거두고 방을 나섰다. 그 아이는 며칠 집을 떠나 백부와 지내는 동안 문득 다락문 저쪽이 두려워졌던 것이다. 댓돌에서 신발을 신는 아이, 수돗간에 멈춰 서서 물이 새는 수도꼭지를 한번 더 비틀어 보는 아이, 지붕을 올려다보는 아이. 엄마는 아이의 작고 하얀 이빨이 얹혀 있는 지붕을 머리 위에 이고 찰칵찰칵 셔터를 눌러댔다. 다시는 볼 수 없을 아이의 모습이 그렇지 않아도 먼지로 부연 창 너머에서 자꾸만 흐려졌다. 조급한 마음에 손이 심하게 떨렸다. 마침내 아이가 대문에 손을 얹자 문고리가 삐걱거리며 신음소리를 냈고, 그녀는 참지 못하고 조그만 다락 창을 열어 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입술을 비틀어 울음을 삼키며 재빨리 셔터를 눌렀다. 그나마 반쯤 고개를 돌린 아이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또렷이 찍을 수 있었던 게 다행스러웠다.
먼지 낀 다락 창으로 그 동안 거세어진 아침햇살이 날카롭게 눈을 찌르며 파고들었다. 골목에는 이삿짐을 실은 트럭이 한 대 지루한 듯 서 있었고, 우동을 나르던 사내가 느린 동작으로 ‘산동반점’이라고 빨간 글씨로 쓴 간판을 이삿짐 사이에 찔러 넣고 있었다. 사내는 어제 내게 배달한 우동그릇은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이삿짐트럭이 골목을 떠난 뒤에 나는 엎드린 채로 몸을 끌 듯 기어서 다락문을 향했다. 마침 손에 잡힌 손전등으로 발판이 있는 문 쪽을 비추다가 나는 그만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리고 말았다.
다락에 올라갈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그 곳, 다락문 안쪽에 여자아이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무슨 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 반쯤 고개를 돌린 모습. 그림은 몹시 힘차면서도 정교하여서 손전등 불빛이 닿는 자리마다 아이의 모습은 문짝의 나뭇결과 함께 숨을 몰아쉬며 되살아나고 있었다. 아이의 모습은 문짝의 숨결을 듣고 있는 듯도 했고, 그 너머의 무엇을 숨죽여 기다리는 듯도 했다. 그리고 아이의 머리 위에서는...... 아, 그 불꽃, 엄마의 폭죽 같은 불꽃이 터져 오르고 있었고, 그 불꽃에 비친 아이의 얼굴은 기쁨과 호기심의 홍조로 발갛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몸을 비틀어 그 자리에 누워버리고 말았다. 머리가 아찔하고 가슴이 쿵쿵 뛰면서 숨이 가빠왔다. 엄마는 나를 보내고 저 다락문에 딸을 향한 축문을 그려 넣고 있었던 것이다. 굽이치는 나뭇결 하나 하나와 함께 호흡을 하면서, 다락문 밖을 향한 그 오랜 두려움과 옹이진 고통들을 저렇게 찬란한 축복으로 바꾸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다락 안의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불씨를 저렇게 다시 키워 놓고야 말았던 것이다.
나는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기껏해야 두 치 높이도 안 되는 천장이 마주 보였다. 부연 아침 햇살이 번지는 그 곳에도 엄마의 불꽃이 너울너울 빛나고 있었다. 온 천장 가득 퍼져나간 불꽃이 기뻐하고 슬퍼하고 고통으로 웅크린 사람들의 모습으로 방울방울 내 얼굴 위로 떨어져 내렸다. 엄마는 내게 이 불꽃을 보게 하려고, 이 집과 다락이 사라지기 전에 그 뜨거운 열기를 쪼이게 하려고, 열쇠를 보냈던 것이다.
정오가 되기 전에 나는 트렁크를 양손에 나누어 들고 집을 나섰다. 아침까지 열지 않았던 트렁크에는 이제 몇 장의 사진과 함께 엄마의 불꽃그림이 담겨 있었다.
보도블럭이 깨어진 자리마다 어제 내린 비로 작은 웅덩이가 생겨 있었다. 울퉁불퉁한 길은 웅덩이마다 새파란 하늘을 담고 짜부라질 듯 낡은 집을 나서서 보얗게 마른 몸을 비틀며 조심조심 골목 밖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골목 끝에 이르렀을 때 머릿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지 마, 소금 기둥이 될라. 뒷덜미가 뻣뻣해졌다. 나는 그 목소리를 뿌리치듯 거센 동작으로 몸을 돌리고 고개를 들어 집을 돌아보았다. 늙은 소나무 가지 사이로 먼지 낀 다락 창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나는 눈이 아프도록 열심히 그 창을, 그 속에 숨어 있는 아이를 마주 보았다. 그렇게 서서 아이가 내게로 와주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한 뒤에야 나는 골목 밖을 향해 돌아섰다. 이제는 다락 속의 그 아이와 함께 이 길을 따라 엄마를, 그리고 또 다른 다락 속에 숨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나의 아이를 만나러 갈 차례였다. 그들과 함께 나무 사이로 들리는 바람 소리를, 바람 사이에 묻어나는 불꽃을 마주할 차례였다.
그때도 그랬고 그 장면을 기억하는 지금도 어이가 없긴 마찬가지였다. 어쩌자는 말인가. 어쩌자는 말인가. 아일 품고 여길 찾아와서는 어쩌자는 말인가. 서울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공항대합실에서도, 짐을 꾸리면서도, 아니 그보다 훨씬 전 병원문을 나서면서도 나는 같은 말을 뇌고 있었다.
임신에 대한 확신이 서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폴을 피했다. 그의 손길을 피하고, 그의 얼굴을 피하고, 급기야는 그의 목소리를 피하고, 그의 숨소리까지 피해 다녔다. 가장 먼저 그 사실을 알렸어야 할 사람인데도 나는 그에게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생각은 해도 말은 깊은 우물 속에 빠진 쇳덩이처럼 목구멍 아래에 걸려 넘어와 주려 하질 않았다. 그가 기뻐하리라는, 한없이 기뻐서 얼굴을 웃음으로 터뜨려 버릴 듯이 길길이 날뛰리라는 생각을 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한편으론 하루하루 목구멍을 넘어오지 않는 말과 함께 아이마저도 녹이 슬어 가고 있을 것만 같은 조바심도 났지만, 그와 함께 아이를 낳아 키우고, 엄마 아빠가 되어 늙어 가는 그림 같은 장면들을 상상해 봐도 소용없긴 마찬가지였다. 몇 번인가 갑작스레 폴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고 싶은 충동에 그의 집 쪽으로 핸들을 꺾기도 했었다. 발레리나가 된 누나를 샘내며 자랐다는 안경 낀 곱슬머리 소년. 그의 두려움 없는 밝은 눈을 보면 한 가닥쯤은 아이를 낳아도 좋을 이유가 생겨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몇 번인가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묻고 싶었다. 너희 집에도 다락이 있었니? 혹시 네 누나도 다락에 숨어서 몰래 발레를 했니? 그냥 숨바꼭질이 아니라 터질 듯한 심장으로 웅크리고 앉아서 어둠과 먼지 속에 질식해 가는 엄마의 그림을 마주봐야 하는 그런 다락이 네게도 있었니? 찾아줄 술래도 없이 언제까지고 숨어 있어야 하는 그런 다락이 있었니? 그렇지만 나는 아직 아무 것도 그에게 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아이를 낳을 이유는 무엇이고 낳지 말아야 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집과 병원 사이를 수도 없이 오가며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했지만 머릿속은 점점 더 뒤죽박죽으로 엉켜들 뿐 아무런 이유나 결론도 나와주질 않았다. 아이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은 무엇인지. 별이 빛나고 꺼지는 것은 또 무엇인지. 그것이 내게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며 무엇일 수 있는 것인지. 이 세상에는 내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 아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이라도 누군가 내게 아기를 안기려고 할 때 나는 늘 겁이 났었다. 아기가 내 마음속까지 다 비추어낼 듯 호기심 어린 맑은 눈을 뜨고 있거나, 밑도 끝도 없는 신뢰감으로 온몸을 맡기고 쌔근쌔근 잠들어 있거나 상관없이 내 몸은 아이의 보드라운 살결에 닿는 순간 날카로운 무엇에 찔린 애벌레처럼 반사적으로 움츠려 들었다. “떨어뜨릴까 봐요.” 그때마다 나는 흐흐 겸연쩍게 웃으며 무안과 일말의 분노가 스치는 아이 부모의 얼굴을 향해 어설픈 변명을 늘어놓곤 했다. 차라리 온몸이 바알간 열 덩어리가 되어 울고 있는 아이를 보면 울컥 안고 싶은 마음이, 더러는 끌어안고 함께 울고 싶은 마음까지도 치밀 때가 있었지만, 우는 아이에겐 항상 울음의 신호가 울리기가 무섭게 달려오는 부모가 있게 마련이었다. 그럴 때면 내 눈엔 또 다른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를 안고 어르는 부모의 등뒤에서 혼자 울음을 삼키는 아이. 그 아이의 몸은 늘 유리병 속에 든 코일같이 작게 웅크려져 있었다.
물음표로 꼬부라진 그 코일을 펴보려고 안간힘을 쓰며 거리를 헤맸지만 나는 여전히 집과 병원 사이를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뱃속의 아이와 병 속의 아이와 밤거리를 헤매는 나의 삼각구도. 내가 안으려 할 때마다 뱃속의 아이는 내 손에서 미끄러져 차창 밖 어둠 속으로 떨어지고, 병 속의 아이는 더 작게 몸을 웅크렸다.
몇 번인가 신경질적인 경적소리가 들렸고, 무심한 건물과 무표정한 얼굴들이 불빛을 끌며 떠내려가듯 지나간 뒤, 나는 또 다시 병원 앞에 와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병원 앞에는 분수와 베고니아, 셀비어로 제법 멋을 부린 널따란 잔디밭이 놓여 있었다. 만약 가끔 TV에서 보듯이 낙태반대자들이 농성을 한다면 수십 명은 충분히 잔디 위에 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끌어가려는 경찰에 항거하면서 그들은 누운 채로 물을 뿜는 분수처럼 외칠 것이다. “아이는 생명이다. 선택이 아니다!”
정신없이 잔디밭 위까지 몰고 간 차창에 와락 분수가 쏟아지는 순간 문득 나는 내가 그때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됐다. 나는 내 뱃속의 아이를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라, 병 속의 아이, 아니 어느 새 내 엄마가 되어 그녀 뱃속의 아이, 나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낳아야 할 것인가, 낳지 말아야 할 것인가. 한 여자의 초췌한 얼굴이 자꾸만 검은 유리창에 흩어져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그 길로 짐을 싸고 황급히 열쇠를 찾아 이 집을 찾게 된 계기가 되었겠지만, 나는 아직도 나 자신을 향해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젯밤 마지막 발길이 닿은 곳도 병원이었다.
한림대학병원. 그 병원 뒤편 아카시아 숲 깊숙한 곳에 한림원이 있었다. 한가한 숲, 겨울 숲? 오래 전 내가 받아 본 몇 통 안 되는 편지에서 엄마는 그 집을 뭐라 불렀던가. 여느 가정집 같이만 보이는 작은 요양소. 심한 정신의 상처를 앓았거나 앓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조그만 정신공동체라고 했다. 아래 위층으로 방은 기껏해야 예닐곱도 되어 보이지 않았다. 붉은 벽돌로 만든 집은 그림같이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엄마는 깨어있을 때나 잠들어 있을 때나 나무 사이로 지나는 바람소리를 듣는다고 했었다. 낮이면 바람을 타고 가는 빛의 흔들림을 보고, 깜깜한 밤이면 바람소리 사이로 빛의 소리를 듣는다고 했었다. 때로 빛은 폭포처럼 쏟아지고, 때로는 낙숫물이 되어 뚝뚝 엄마의 얼굴을 적시며 떨어진다고 했다.
“들어봐, 들어봐.”
전에도 엄마는 옷감을 자르던 가위를 손에 든 채로 귀를 세우곤 했고, 나는 행여 그 속에 대문으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섞여 있달 까봐, 그래서 엄마가 내게 또 숨으라고 할까 봐 마음을 조이곤 했었다. 그런 날 엄마는 쌓여 있는 일감을 모두 팽개쳐둔 채 누워 버리기가 일쑤였다. 더러는 옷을 만들어 달라고 손님들이 맡겨놓고 간 옷감들을 좁은 방안 가득 펼쳐 놓고 또 그것으로 몸을 휘감으며 방안을 데굴데굴 굴러다니기도 했다. 그런 때면 나는 신이 났다. 색색가지의 옷감들을 온몸에 두르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방안을 뛰어 다녔다. 아무도 가르쳐 준 일이 없지만 내가 생각해낸 파랑춤을 추고 노랑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빨강의 펄럭이는 손짓과 보라의 고요한 쉼표 사이로 이 세상의 색깔들을 섞으면 온종일 부르고 춤을 추어도 모자를 만큼의 춤과 노래를 지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렇지만 대개의 경우에 엄마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온종일을 펼쳐 놓은 옷감 위에 누워서 보냈다. 해가 지붕 위를 지나가는 동안 옷감 위에 누운 엄마의 눈물로 번들거리는 얼굴이 펼쳐놓은 옷감 색을 따라 차례로 색깔을 바꾸어갈 뿐이었다. 그런 날이면 나는 혼자 다락에 올라가곤 했다. 방안에 빛이 사위어 엄마 얼굴에서 색깔이 사라진 뒤에도 다락 창에는 아직 한 뼘쯤 저녁 빛이 걸려 있기 마련이었던 것이다. 다락에 올라가서 창에 남은 해 길이를 재면서 나는 내가 온종일 초인종 소리나 문 두드리는 소리, 하다못해 엿장수 가위소리라도 들려주기를, 그래서 엄마를 깨워주기를 얼마나 기다렸는가를 깨닫곤 했다.
엄마와 헤어져 백부를 따라 미국에 가고 난 뒤에도 나는 꽤 오랫동안 누워 있는 엄마를 꿈에 보곤 했다. 다시 보면 깜깜한 방바닥에 하얀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을 뿐인데 그게 엄마라고 했다. 그 종이는 바람소리가 들릴 때마다 군데군데 각기 다른 색깔로 둥근 무늬를 그리며 물들어 갔다. 분홍, 파랑, 보라, 그리고 흑자주...... 색깔 위에 색깔이 점점 더 빠르게 번져가면서 곧 아무런 색깔도 형태도 알아볼 수 없게 되어버렸고 온갖 색깔로 흠뻑 젖은 종이는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위태로웠다. 그런데도 자꾸만 쉬익쉭 바람 소리가 들려왔고, 혀를 날름거리는 뱀처럼 종이는 또 자꾸만 바람소리를 따라 고개를 들었다.
한림원을 둘러싼 숲은 깊고 울창했다. 나무들은 빛과 함께 소리마저 삼켜버린 듯 얼마 전까지 나를 따라다니던 거리의 소음이 이곳에서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바람결에 혀를 떨고 선 나무들 사이로 단 하나 아직 불이 켜진 창이 보였다. 창을 가린 얇은 커튼 너머로 그림자 하나가 서성거리고 있었다. 창 밖의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듯 그림자는 창가로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엄마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앉았던 나무둥치에서 일어섰다. 젖은 나뭇잎 마냥 찰싹 나무에 붙어 서서 발뒤꿈치를 들고 창가로 다가오는 그림자를 살폈다. 내게 열쇠를 보낸 사람. 문득 어쩌면 엄마는 열쇠를 내게 보낸 삼 개월 전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그렇게 서성거리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옛집으로 부른 사람. 나를 죽도록 사랑하고 또 죽도록 미워한다고, 옷을 찢으며 울부짖었던 사람. 피가 흐르는 손목으로 나를 때리고 나를 끌어안으려 했던 사람. 엄마에게 무슨 일이,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따륵 따륵. 여태 들리지 않던 귀뚜라미 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따륵 따륵. 힘겹게 병 뚜껑을 돌리는 듯한 벌레울음 소리를 따라서 바람 소리도 들렸다. 엄마에게 가기엔 너무 늦었노라고, 내일 다시 오리라고, 나는 자신에게 사정하듯 중얼거리며 주춤주춤 발길을 돌렸다. 빛은 어둠 속 어디엔가 숨어 보이지 않고 돌아서는 발걸음을 막으며 솨아솨아 숲이 흔들리는 소리만 들렸다.
다시 깜빡 잠이 들은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더러운 벽지 위로 어느 새 얼룩얼룩 어둠이 번져 있었고, 그 위로 벌레 한 마리가 기어가고 있었다. 엄마가 이 집에서 마지막으로 잠을 잔 건 언제였을까? 나는 창호지 바른 문짝이 나직이 흔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기억을 되짚어 갔다. 더듬이를 길게 뽑은 벌레는 조심조심 벽에서 천장으로 거꾸로 몸을 뒤집고 있었다.
철이 들고 백부에게서 독립하고 나서도 여러 해가 지나서야 나는 조금씩 엄마에 대해 듣기 시작했다. 내 엄마나 아버지에 대한 말이 나오면 언제나 입을 다물어 버리던 백부가 빈집의 외로움을 두려워하는 나이가 되면서 무겁기만 하던 그의 입이 숨겨진 기억의 통로들을 함부로 열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핑계는 물론, 그게 바로 나 자신의 일이며, 내가 이미 성인이 됐고, 게다가 그만한 것은 알아두어야 할 작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나는 그가 그때까지 혼자 지니고 살아온 기억의 무게와 두려움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집에 돌아와 다락문을 마주 보고 있는 지금도 나는 그때 그의 두려움을 알만 하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미대 재학 중이던 스무 살에 국전에 입선한 화가였다. 스물 한 살이 되기 전에 임신을 했고, 곧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라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비난과 경멸의 대상으로 화단에서 소외되기 시작했다. 아이의 아버지가 국전의 심사위원이었다는 이유로 그녀의 재능은 재빨리 부정되었다. 그림을 핑계로 아버지가 가족과 함께 불란서로 떠난 뒤 엄마는 숨어서 나를 낳았다. 서너 번 아버지의 가족들이 보낸 사람들이 아이를 찾겠다고 들이 닥쳤다. 아버지를 망신시킨 엄마의 그림까지도 내어놓으라고 발을 굴렀다. 엄마는 그때마다 황급히 나를 다락에 감췄다. 그림도구들도 모두 다락에 감추고, 그림은 물론 그림을 그렸던 흔적도 지웠다. 아이를 뺏으러 오는 사람들을 향해 엄마는 자신이 아닌 척 했다. 엄마는 자신을 포함한 온 세상을 향해 나는 그림을 그렸던 누구누구가 아니오, 내 아이도, 내 그림도, 나도 이 자리에 없소, 하고 외치고 싶었던 것이다.
거기까지 백부에게서 들었을 때 나는 얼굴을 붉혔다. 은퇴 후 할 일이 없어진 백부가 연속극을 너무 보았거나 소설 몇 편으로 겨우 작가 소리를 듣게 된 조카를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스스로 어설픈 연속극을 쓰고 있는 거라고도 생각했다. 그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내 출생이 바로 연속극이었음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를 볼 때마다 그날 분의 막을 올리지 못해 안달하는 백부의 말에 어쩔 수 없이 귀를 기울이면서도 나는 수치심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 내용의 천박할 정도의 상투성이 부끄러웠고, 내 출생의 꼼짝없는 상투성에 화가 났으며, 그렇게 집안의 부끄러운 역사를 당사자를 향해 아무렇지 않은 듯 줄줄이 늘어놓는 그의 쪼글쪼글 주름잡힌 입에 대해서는 참을 수 없이 화가 나고 부끄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언제부턴가 매일매일 그의 입이 열려주기를 나도 모르게 기다리는 나의 조바심과 무력한 수치심이 부끄럽고 화났다.
적어도 어느 날 백부가 딱딱하게 굳어진 물감통과 자신의 오래 된 습작품을 보여 주기까진 나는 그저 그의 천박스런 무대 앞에 결박된 무력한 관객일 뿐이었다. 그러나 자신도 한때는 화가가 되려고 했었다는 그의 고백은 놀라우리 만치 깊은 울림을 가지고 내게 들려왔다. 아마, 떨리는 손으로 붓을 만져보는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면, 은밀한 고통과 죄책감과 기쁨으로 범벅된 그 표정을 보지 못했다면, 그 표정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백지와 마주 앉을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나는 그에게서 들은 얘기로부터 지금보다는 훨씬 쉽게 자유로워질 수 있었을 것이다.
엄마는 차츰 그림을 그렸던 흔적을 마음에서까지도 지워갔다. 깊이 감춘 그림과 그림도구들을 다시 꺼내려고도 하지 않았다. 다니던 학교에는 물론, 한때 함께 어울리던 화가들의 화실이나 전시회에도 발을 끊었다. 자신을 따돌리고 손가락질하는 그들이 아니라도, 그림이 아니라도 살 수 있다고 자신에게 말했다.
낡은 재봉틀 한 대를 사다놓고 간판 없는 의상실을 차렸다. 동네 여자들이 들이미는 조야한 싸구려 옷감들을 서걱서걱 자르면서 엄마는 메두사의 머리칼처럼 엉켜드는 생각들도 그렇게 서걱서걱 잘라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 여자들이 새 옷을 받아 입고 엉덩이를 흔들며 깔깔거리고 웃을 때 자신도 그렇게 웃을 수 있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걸 잊으리라고, 그림도 잊으리라고, 나는 그림을 그렸던 누구누구가 아니라고, 누구를 사랑한 적도 없노라고, 잠시나마 믿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밤새도록 여자들의 옷에 깃을 달고 소매를 달고 다리를 붙일 때, 엄마는 새로운 팔, 다리와 날개를 만들고 있었다. 단추를 꿰매고 튼튼한 실기둥을 만들어 붙일 때, 엄마는 이 세상에, 다락이 아닌 이 지상에, 그렇게 튼튼한 자신의 자리를 꿈꾸었다. 일에 열중해 있을 때 엄마의 얼굴은 평화로웠다.
엄마의 의상실에 조금씩 더 많은 사람들이 꼬여들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호기심 많은 옛 그림 동료들도 한두 명 섞여 있었다. 엄마는 차근차근 그들의 치수를 재며 자신의 마음을 쟀다. 얼만큼 왔나, 그들에게서, 자신에게서 얼만큼 멀리 왔나. 그들이 내미는 옷감을 어루만지며 엄마는 깔깔 웃어 보였다. 고작해야 천장 위 다락에 숨겨둔 아이와 그림과 고통스런 자신의 소리를 지우려고 엄마는 더 크게 깔깔 웃으며 그들이 전하는 화단 소식에 콧방귀를 뀌었다. 내겐 상관없어. 너희들이나 잘해 봐.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엄마는 옷감을 자르는 가위가 자신의 가슴을 자르고 있음을 느꼈다. 재봉틀을 달달 돌릴 때 자신의 가슴이 달달 박히고 있음을, 튼튼하게 솔기를 박을 때마다 자신의 입이 견고하게 봉쇄되고 있음을, 갈증난 목줄기와 가슴을 파고드는 통증으로 깨달았다. 그럴 때면 며칠이고 일에서 손을 놓았다. 펼쳐 놓은 옷감 위에 죽은 듯이 누워서 아침이 저녁으로 바뀌고 다시 밤이 아침으로 바뀌는 것을 지켜보았다. 흘러가는 냇물 밑바닥에 가라앉은 작은 돌멩이처럼 무심한 얼굴로 시간이 그녀를 스쳐 흘러가게 놓아두리라 생각했다. 그게 내 삶이니까. 색깔도 모양도 없이 흘러가는 것. 지우고 또 지워서 이젠 색깔도 모양도 알아볼 수 없는 제 삶의 실체에 대해 그녀는 초점 흐린 무심한 시선을 띄울 뿐이었다. 그녀는 차츰 자신이 물밑바닥의 고요를 찾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런 평화도 오래 가지 않았다. 다락을 들락거리던 아이가 누워 있는 그녀의 품을 파고들었다. 아이는 배가 고프다고 칭얼대다가 겨우겨우 잠이 들더니, 어느 새 깨어나서는 표정 없는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무섭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어디 갔어, 엄마, 우리 엄마. 아이의 울음은 물 젖은 동아줄처럼 꽤나 끈질기게 그녀의 신경줄에 매달렸다. 그 바람에 잠들었던 머릿속 메두사의 머리칼들이 꿈틀댈 즈음 그녀는 우는 아이를 놓아두고 집을 나섰다. 꿈틀거리는 생각의 미끈덩거리는 몸뚱아리들을 꾹꾹 밟으며 멀리 멀리 조금이라도 더 집에서, 자신을 숨겨 놓은 그 집의 다락에서, 멀리 가려고 기를 썼다. 몇 날 며칠 길거리를 헤매느라 발이 부르터도 엉켜드는 생각들이 지쳐 모두 혼수상태에 빠질 때까지는 집에 돌아갈 수가 없었다.
초인종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갑작스런 소리에 심장이 오그라들 듯 놀랐으나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몸을 뒤척이며 머리맡을 살피다가 툇마루에 놓아둔 우동그릇 생각이 났다. 낮에 중국집에서 시켜다 먹은 우동그릇을 찾으러 온 모양이었다. 갑자기 속이 쓰리고 배가 고팠다. 누군가 뱃속에서 칭얼거리며 몸을 비틀기 시작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새 방안 가득 쌓인 어둠 때문에 몸은 형편없이 무거웠다. 천장을 기어가던 벌레는 이제 다락문 앞에서 작은 어둠 덩어리가 되어 웅크리고 있었다. 착각이었을까? 어둠 속에서 벌레가 길고 가는 더듬이 끝을 조심스럽게 다락문에 대어 보는 것을 본 것만 같았다.
가까스로 대문을 열자 벌써 중국집 문으로 들어서려던 사내가 양철통을 흔들며 다가왔다. 사내의 째진 눈과 허연 옷이 어둔 골목을 기어온 흰 뱀을 연상시켜서 나는 흠칫 놀랐다.
“계셨구만요.”
사내는 내 얼굴을 훑어 보며 괜스레 낄낄거렸다. 그 역시 유령을 본 듯한 놀라움과 놀람으로 인한 무안감을 웃음으로 얼버무리려는 듯 했다.
낮에 식당에 들어갔을 때도 사내는 주문을 받으며 낄낄거렸다. 그리고 ‘그 집 말입니까?’ 하고 몇 번을 다시 물었다. 그런 우스운 말은 처음 들어본다는 투였다. 그 집에 배달을 가다니요, 그 집에서 음식을 먹다니요, 사내의 웃음은 그렇게 반문하다가, 어느 새 눈을 반짝거리며, 거기 정말 집이 있었습니까, 하고 묻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뱀집, 아니 뱀의 행방에 대해 물으려던 생각을 꿀꺽 삼켜 버리고 말았다.
낮에 겪은 당혹감 때문에 나는 다시 얼굴을 붉히며 사내에게 빈 그릇을 내밀었다.
“아니 전 또 그새 집을 아주 비우셨나 해서요.”
사내는 한 손으로 자신의 뒷덜미를 문지르며 묻지도 않은 말을 중얼거렸다. 사내의 등뒤로 몰려든 은회색 구름이 곧 비가 올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곳 철거 날짜가 이틀밖에는 남지 않고 해서......”
사내는 더 이상 이유를 헤아릴 수 없는 웃음을 연상 낄낄 흘리며 회색건물 속으로 사라져 갔다.
사내에게서 들은 도시계획 소식이 귓가에서 윙윙거렸지만 나는 더 묻지도 못하고 방에 돌아와 다시 눕고 말았다. 따륵따륵. 다락문 앞에서 귀뚜라미가 울고 있었다.
다음 날은 온종일 지붕을 두드리며 비가 내렸고, 저녁이 되자 비의 주렴을 걷어올리며 방안 가득 주홍빛 노을이 밀려 들어왔다. 비가 내리는 동안 나는 풍랑을 만난 배 마냥 불안스런 집에 누워 수도 없이 잠 속으로 자맥질을 했고, 심한 배멀미를 하듯 먹은 것을 토해내곤 했다. 잠결에 몇 번인가는 댓돌에 벗어놓은 구두가 젖겠구나 생각했고, 또 몇 번인가는 따륵따륵거리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너 아직 거기 있구나 안심했었다. 그러다가 다시 잠이 들면 꿈속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배고픈 아이울음소리처럼 벨소리는 가늘고 질겼다. 그 울음소리 사이로 끈질기게 나의 부재를 주장하는 자동응답기의 목소리가 엉켜 들었다. 지금은 집에 없사오니...... 집에 없사오니...... 없사오니...... 한 여자가 그 말을 되뇌며 나무 사이 불켜진 창가를 서성이고 있었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차를 몰다가 마주 오는 트럭을 들이받고 즉사했다. 백부가 아버지의 그 소식을 가지고 우리 모녀를 찾았을 때 우리는 둘 다 가사상태에 빠져 있었다. 집안에는 음식 한 톨 남아 있지 않았고, 다섯 살 난 아이는 눈물과 물감으로 얼룩진 몸을 웅크리고 물감튜브를 빨면서 잠이 들어 있었다. 아이를 안아 올릴 때 아이가 얼굴을 묻고 있던 옷감뭉치가 움찔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 백부는 아마 그 옷감 속에 엄마가 숨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 나는 창호지문을 타고 방안 깊숙이 스며든 아침햇살에 잠이 깨었다. 이 집에 와서 꼬박 사흘을 보내고 나서야 밤낮이 제자리를 찾은 셈이었다. 밖에서는 벌써 퉁탕거리며 물건들이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와 먼 데 사람을 소리쳐 부르는 목소리가 났다. 나는 아마 중국집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제 봉제공장은 빗속에 이사를 떠났고 중국집에 배달을 부탁하러 갔을 때 그 건물도 이미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어렴풋이 잠이 깰 때마다 어둠 속을 떠다니던 다락문이 지금은 붉은 아침노을에 젖어들고 있었다. 오늘은 열어보아야 할 문. 그리고 그 앞에 아직 열지 않은 트렁크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문과 마주 앉았다. 문짝에 흘러내리는 노을 빛을 따라 또렷이 돋아난 나뭇결들이 몸을 뒤척였다.
자다말고 아이는 이부자리에서 일어나서 가만히 문짝에 손을 대 보았다. 손가락 끝으로 나무의 숨결이 느껴졌다. 비오는 날이면 웅덩이마다 담기는 파문처럼 수 없이 많은 파문들이 굳어지고 옹이진 나뭇결 속에서 힘겹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머릿속에서 웅얼거리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마 언젠가 내가 썼다가 던져 버린 어느 얘기의 서두가 그랬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서로 엉켜 고통스럽게 몸을 꿈틀거렸던가. 그리고 어둠에 묻혀 갔던가.
그런데 나무의 숨결 사이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높아졌다, 낮아졌다, 울음소리를 따라 문짝이 들썩거렸다. 아이는 더 잘 들으려고 귀를 바싹 문짝에 갖다 붙였다. 그새 입에 솜덩어리를 물은 듯 울음소리는 삐죽삐죽하던 소리의 모서리를 잃고 한결 둔하고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아이는 저만치 멀어진 울음소리가 오히려 더 불안했다. 전처럼 엄마가 약을 먹었으면 어떻게 하나. 또 나더러도 같이 죽자고 하면 어떻게 하나. 아니, 엄마가 지금 다락 속에서 혼자 죽어가고 있는 거라면...... 아이는 다락문 고리를 거머쥐었다. 죽음이 뭔진 몰라도 아이는 그것이 두려웠다. 눈을 뜬 채 온종일 움직이지 않고 누워 있는 엄마의 낯선 얼굴, 엄마가 없는 빈 방, 깜깜한 밤에 다락에 갇혀서 혼자 잠이 드는 게 아마 죽음일 거라고 아이는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다락문을 열자 그 안에 고여 있던 먼지와 곰팡이냄새가 울컥 쏟아졌다. 나는 숨을 몰아 쉬고 다락 속의 어둠에 눈이 익기를 기다렸다.
아이는 조심조심 어둠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다락문 안쪽에 놓아둔 앉은뱅이 책상을 밟고 훌쩍 다락으로 뛰어오르는 일도 오늘은 다른 날처럼 어렵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이는 마치 제 몸 속에 어른이 들어온 것처럼 그것을 당연하게 느꼈다. 어둠 속에 숨어 있는 괴물들과 싸워 이겨서 엄마를 구해내야 한다고, 그럴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고 아이는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앉은뱅이 책상을 밟고 상체를 다락 속으로 밀어 넣었다. 지붕과 다락 사이에는 별로 공간이 크지 않아서 나는 상체를 펴지도 못하고 엎드린 채로 팔꿈치로 몸을 끌어올리듯 다락 속으로 기어올라야 했다. 키가 큰 편이었던 엄마가 어떻게 밤마다 다락에 들어가 몇 시간씩 견딜 수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다락 한가운데에 몇 개의 상자가 보였고, 그 상자 모서리마다 손바닥만한 다락 창을 타고 들어온 아침햇살이 부옇게 부서지고 있었다.
숨죽여 울던 엄마는 어디 갔는가. 아이는 어둠 속에서 두리번거리며 엄마를 찾았다. 먼지 쌓인 상자며 트렁크 사이사이를 살피고 열 수 있는 모든 상자를 열어보았지만 엄마는 그 속에 없었다. 비틀어진 물감튜브며 털이 빠진 붓, 색색가지 물감이 엉켜있는 크고 작은 나뭇조각 같은 것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아마 그 제일 밑바닥, 항상 잠겨 있는 트렁크 속에 숨은 게라고 아이는 생각했다.
녹슨 고리를 힘껏 잡아당기자 트렁크는 그다지 애먹이지 않고 열려 주었다.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옷감이 삭은 헌옷가지들 밑으로 딱딱한 것이 만져졌다. 네모난 그것을 싸놓은 한지를 벗기자 인쇄된 쪽지와 그림이 드러났다.
‘1957년 국전 입선작품’. 불꽃이었다. 화면 한 귀퉁이에서 시작된 불꽃은 수많은 꽃잎의 혀를 날름거리면서 화면 전체를 태울 듯이 거대한 꽃으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꽃잎들이 제각기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환희로 두 팔을 치켜든 사람, 고통으로 몸을 비트는 사람, 슬픔으로 웅크린 사람...... 사람들이 꽃씨처럼 꽃에서 떨어져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림 밑으로 헌옷 몇 가지를 더 들어내자 그 밑에 흩어진 사진 몇 장이 보였다. 어느 미술관 앞에서 여럿이 찍은 흑백사진. 엄마 뒤에 선 백부를 닮은 중년남자가 아버지라는 걸 나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나머지 사진들은 모두 흔들리는 차에서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찍은 듯 초점이 흐리고 영상이 흔들려 있었다. 내가 맨 끝으로 본 그 사진마저 그랬다면 나는 그 사진들을 통 알아보지 못하고 말았을 것이다.
어린 여자아이의 뒷모습이었다. 아이는 대문에 손을 얹고 무슨 소리를 들은 듯 뒤로 고개를 돌리려 하고 있었다. 낮은 대문밖에 대문을 등지고 서 있는 남자의 그림자가 아이의 얼굴을 흔들리는 음영으로 갈라놓고 있었다.
건성으로 지나쳤던 사진들을 다시 보면서 나는 찰칵찰칵 카메라 셔터 소리를 들었다. 사진 속 아이의 등뒤에는 다락이 있었고 다락 속에는 엄마가 있었다. 인형을 찾으러 왔던 아이는 인형을 손에 쥐고도 수십 번도 넘게 방 안 구석구석을 살피고 나서야 방문을 열었다. 방문턱 밖으로 한 발을 내밀었던 아이는 또 무엇이 미진한지 되돌아섰다. 방안을 두리번거리던 아이의 시선은 다락문에 가서 멎었지만 아이는 곧 시선을 거두고 방을 나섰다. 그 아이는 며칠 집을 떠나 백부와 지내는 동안 문득 다락문 저쪽이 두려워졌던 것이다. 댓돌에서 신발을 신는 아이, 수돗간에 멈춰 서서 물이 새는 수도꼭지를 한번 더 비틀어 보는 아이, 지붕을 올려다보는 아이. 엄마는 아이의 작고 하얀 이빨이 얹혀 있는 지붕을 머리 위에 이고 찰칵찰칵 셔터를 눌러댔다. 다시는 볼 수 없을 아이의 모습이 그렇지 않아도 먼지로 부연 창 너머에서 자꾸만 흐려졌다. 조급한 마음에 손이 심하게 떨렸다. 마침내 아이가 대문에 손을 얹자 문고리가 삐걱거리며 신음소리를 냈고, 그녀는 참지 못하고 조그만 다락 창을 열어 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입술을 비틀어 울음을 삼키며 재빨리 셔터를 눌렀다. 그나마 반쯤 고개를 돌린 아이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또렷이 찍을 수 있었던 게 다행스러웠다.
먼지 낀 다락 창으로 그 동안 거세어진 아침햇살이 날카롭게 눈을 찌르며 파고들었다. 골목에는 이삿짐을 실은 트럭이 한 대 지루한 듯 서 있었고, 우동을 나르던 사내가 느린 동작으로 ‘산동반점’이라고 빨간 글씨로 쓴 간판을 이삿짐 사이에 찔러 넣고 있었다. 사내는 어제 내게 배달한 우동그릇은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이삿짐트럭이 골목을 떠난 뒤에 나는 엎드린 채로 몸을 끌 듯 기어서 다락문을 향했다. 마침 손에 잡힌 손전등으로 발판이 있는 문 쪽을 비추다가 나는 그만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리고 말았다.
다락에 올라갈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그 곳, 다락문 안쪽에 여자아이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무슨 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 반쯤 고개를 돌린 모습. 그림은 몹시 힘차면서도 정교하여서 손전등 불빛이 닿는 자리마다 아이의 모습은 문짝의 나뭇결과 함께 숨을 몰아쉬며 되살아나고 있었다. 아이의 모습은 문짝의 숨결을 듣고 있는 듯도 했고, 그 너머의 무엇을 숨죽여 기다리는 듯도 했다. 그리고 아이의 머리 위에서는...... 아, 그 불꽃, 엄마의 폭죽 같은 불꽃이 터져 오르고 있었고, 그 불꽃에 비친 아이의 얼굴은 기쁨과 호기심의 홍조로 발갛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몸을 비틀어 그 자리에 누워버리고 말았다. 머리가 아찔하고 가슴이 쿵쿵 뛰면서 숨이 가빠왔다. 엄마는 나를 보내고 저 다락문에 딸을 향한 축문을 그려 넣고 있었던 것이다. 굽이치는 나뭇결 하나 하나와 함께 호흡을 하면서, 다락문 밖을 향한 그 오랜 두려움과 옹이진 고통들을 저렇게 찬란한 축복으로 바꾸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다락 안의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불씨를 저렇게 다시 키워 놓고야 말았던 것이다.
나는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기껏해야 두 치 높이도 안 되는 천장이 마주 보였다. 부연 아침 햇살이 번지는 그 곳에도 엄마의 불꽃이 너울너울 빛나고 있었다. 온 천장 가득 퍼져나간 불꽃이 기뻐하고 슬퍼하고 고통으로 웅크린 사람들의 모습으로 방울방울 내 얼굴 위로 떨어져 내렸다. 엄마는 내게 이 불꽃을 보게 하려고, 이 집과 다락이 사라지기 전에 그 뜨거운 열기를 쪼이게 하려고, 열쇠를 보냈던 것이다.
정오가 되기 전에 나는 트렁크를 양손에 나누어 들고 집을 나섰다. 아침까지 열지 않았던 트렁크에는 이제 몇 장의 사진과 함께 엄마의 불꽃그림이 담겨 있었다.
보도블럭이 깨어진 자리마다 어제 내린 비로 작은 웅덩이가 생겨 있었다. 울퉁불퉁한 길은 웅덩이마다 새파란 하늘을 담고 짜부라질 듯 낡은 집을 나서서 보얗게 마른 몸을 비틀며 조심조심 골목 밖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골목 끝에 이르렀을 때 머릿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지 마, 소금 기둥이 될라. 뒷덜미가 뻣뻣해졌다. 나는 그 목소리를 뿌리치듯 거센 동작으로 몸을 돌리고 고개를 들어 집을 돌아보았다. 늙은 소나무 가지 사이로 먼지 낀 다락 창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나는 눈이 아프도록 열심히 그 창을, 그 속에 숨어 있는 아이를 마주 보았다. 그렇게 서서 아이가 내게로 와주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한 뒤에야 나는 골목 밖을 향해 돌아섰다. 이제는 다락 속의 그 아이와 함께 이 길을 따라 엄마를, 그리고 또 다른 다락 속에 숨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나의 아이를 만나러 갈 차례였다. 그들과 함께 나무 사이로 들리는 바람 소리를, 바람 사이에 묻어나는 불꽃을 마주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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