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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소설] 엄마의 다락 -1 (김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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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3,467회 작성일 10-06-0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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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 다가서면서 나는 어느 새 늙은 뱀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골목 입구 뱀집의 유리병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리병 속에는 둥글게 몸을 말아 올린 하얀 뱀이 눈을 치켜 뜨고 어딘가를, 아마도 진열장 밖이거나 적어도 유리병 밖이라고 짐작되는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렸을 적에 골목 밖의 세상을 몰랐던 나는 그 뱀이 바라보고  있는 곳이 틀림없이 우리집일 거라고 생각했다.

뱀이 한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용수철처럼 몸을 풀어  유리병의 뚜껑을 열고, 어쩌면 허연 껍질까지도 벗고, 그 속의 신묘한 약이 된다는 몸뚱아리를 끌며 어둠침침한 뱀집을 나선다면 설사 밤새 울퉁불퉁한 길을 생살이 벗겨지도록 기어간다 해도 도달할 곳은 골목 끝의 우리 집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지친 걸음을 끌고 골목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뱀집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새 턱없이 비대해진 상점 건물들에 가려 빛이 잘 들지 않는 골목이 짜장면과 양파, 그리고 묵은 기름냄새가 한데 뒤섞인 후덥지근한 숨결을 내뿜으며 이빨 빠진 노파 마냥 음험한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골목 안의 어둠을 향해 눈을 껌뻑거렸다. 안개를 거두며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외딴섬처럼 그늘 속에서 골목 안의 윤곽이 천천히 내게로 다가왔다. ‘산동반점’, ‘경기당구점’, ‘제일봉제’, ‘한미식품’. 집은 중국집이 있는 6충 건물과 맞은 편 봉제공장의 우중충한 회색건물 틈새에 금방이라도 짜부라질 듯 조그맣게 웅크린 모습이었다.

나는 집까지의 길을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보았다. 깨진 보도 블록들이 꿰어 맞춰야 할 요령부득의 지그쏘오 퍼즐같이 울퉁불퉁 박혔고, 그 사이로 흙바닥을 드러낸 길은 앓는 뱀처럼 듬성듬성 비늘이 벗겨진 모습으로 집을 향해 지친 듯 늘어져 있었다. 봉제공장으로부터 달달거리는 재봉틀의 진동이 길의 맥박인 듯 희미하게 발 밑을 훑고 지나갔다.

그 길의 끝, 칠 벗겨진 쪽문이 난 담에는 때 지난 영화광고 벽보가 덜 벗겨진 허물 마냥 너덜거렸고, 담 너머로는 늙은 소나무가 검은 가지를 뒤틀며 집을 가리고 서서 누런 머리카락 같은 잎을 처마 위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 틈새로 다락의 먼지 낀 유리창이 늦여름의 긴 석양에 번득이는 시선으로 이쪽을 쏘아보고 있었다.
  
나는 주머니 속의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그 시선을 마주 보았으나 곧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꼬챙이같이 날카로운 햇빛에 눈이 멀 것만 같았다. 땀으로 끈적끈적해진 열쇠가 자꾸만 내 손에서 미끄러져 실밥이 풀린 주머니 귀퉁이에 숨으려 들었다. 가슴부분이 찢겨진 벽보 속의 배우가 입술 끝으로 늦여름 긴 석양을 흘리며 흐믈흐믈 웃고 있었다. 나는 열쇠를 대문에 꽂은 뒤 문에 뚫린 우편함 구멍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초인종을 찾았다. 종소리는 디잉동 하고 목이 잠긴 소리를 끌며 좁은 집안을 한바퀴 돌아 내게로 되돌아 왔다.
  
그건 오래 전, 동행이 있다는 엄마의 신호였다. 누군가와 함께 집에 오게 되었을 때 엄마는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편함을 살피는 척하면서 그렇게 초인종을 울렸고, 나는 그때마다 훈련 잘 된 다람쥐 마냥 재빨리 다락으로 올라갔다. 그것은 참으로 이상한 놀이였다. 초인종 소리를 신호로 내가 숨으면, 엄마는 그때부터 철저하게 시치미를 떼고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나는 다락 속에 숨어서 먼지 나는 어둠 속에 코를 박은 채 콩닥거리는 내 심장 소리 사이로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다.

“어서 들어와요. 방이 누추해서.”

그러면서 엄마는 흩어져 있던 내 장난감들을 구석에 놓인 옷감보따리나 벽장 속으로 쑤셔 넣었다. 이왕 치울 거면 다락 속으로 던져 주어도 좋으련만 엄마는 한번도 그러지 않았다. 마치 나와 함께 내가 숨어 있는 다락마저도 그 순간 그녀의 의식에서 깡그리 지워버린 것 같았다.

가끔은 이런 말도 들렸다.

“아, 이거요. 누구 아이를 좀 봐주었더니......”

그러면 나는 얼굴이 달아올라서 헉헉 숨을 몰아 쉬었다. 내가 엄마가 아닌 누구의 아이인가 하는 갑작스런 혼란은 극히 짧은 순간 머리를 스쳤을 뿐이었다. 그보다는 영리한 엄마의 지혜로 우선은 위기를 모면했지만, 내 한순간의 불찰로 우리의 비밀이 폭로 나면 우리는 초인종과 다락의 놀이에서 지고 마는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내 가슴을 터질 듯 아프게 했다.

우리가 또다시 놀이에서 지면 엄마는 언젠가처럼 또 밥도 먹지 않은 채 울기만 하다가 집을 나가버릴 지도 모를 일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그 후로 엄마를 찾아오는 손님들은 나를 찾아내지 못했고, 단 한번 나를 찾아내서 나와 엄마를 번갈아 보다가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 가버린 엄마 닮은 늙은 여자는 다시는 우리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라도 놀이에 져서 며칠씩 엄마 없는 방에 혼자 있느니, 손님이 갈 때까지 몇 시간이 되건 다락 속에서 꼼짝 않고 어둠과 마주앉아 있는 편이 훨씬 나았다. 이제 곧 손님이 가고 나면 엄마가 다락문턱에서부터 나를 끌어안고 착하다, 예쁘다며  입을 맞추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었다. 엄마의 한숨은 다락 속에서 나를 짓누르며 굳어가던 어둠을 참 쉽게도 풀어내었다.  천년 만년 묵은 호리병에서 풀려 나오는 요술쟁이나 밤이면 뱀집의 유리병에서 몸을 푸는 뱀의 느낌이 이런 걸 거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집에 손님이 올 때마다 엄마는 나를 다락으로 올려보냈다. 손님이 남자건 여자건, 무엇 때문에 찾아온 손님이건 상관없었다. 대문에서 초인종 소리나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엄마는 “다락, 다락” 하고 내게 다급하게 외쳤고, 나는 놀란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다락으로 올라갔다. 엄마의 표정과 목소리가 드러내는 절박함에서 내가 엄마를 구해낼 수 있는 방법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다락으로 숨어주는 것뿐이었다. 나는 착하고 예쁜, 엄마의 충실한 한편이었던 것이다.

내 발로 다락 문 앞에 놓여진 앉은뱅이 책상을 밟고 올라갔던 걸 생각하면 그때 내  나이가 적어도 서너 살은 됐던 걸로 짐작되지만 그 전이라고 내가 “다락” 이란 엄마의 다급한 외침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으리라고는 상상하기가 어렵다. 언제 어떻게 시작된 일이었건, 내 기억이 닿는 한 초인종 소리나 문 두드리는 소리, 하다못해 어쩌다 골목을 잘못 들어 쉬어가려는 대문 앞의 인기척마저도 다락의 퀴퀴한 어둠과의 연결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따금 엉뚱한 상상을 했다. 능숙한 곡예사 마냥 잘도 비밀의 줄을 타며 시치미를 떼던 엄마가 어느 날 다락문을 가리고 서서 “여기 내 딸 없어요.” 하고 외칠 지도 모른다는 아찔한 상상. 얼룩진 천장 어디쯤, 아마 장마철에 빨랫줄을 묶어 놓았던 구석에서 마술의 가위가 나와서 한 순간에 싹둑, 엄마와 내가 조심조심 걸어가던 팽팽한 비밀의 줄을 끊어 버리는 것이다.  처음에는 나를 전율케 하던 그 상상은 언제부턴가 내 가슴속에 은밀한 기대의 날개를 키우며 자라기 시작했다.

기대의 한쪽 날개 위에서는 즐거운 웃음이 터져 올랐다. 투가리 속의 된장찌개 마냥 처음에는 보골거리며 띄엄띄엄 솟아오르던 웃음이 급기야는 서로 다투어 미친 듯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그 바람에 호리병이 깨지고 유리병이 깨지고 요술장이며 뱀이며 다  함께 나와서 엄마와 나와 나는 한 번도 본 일 없는 엄마의 손님과 더불어 웃으며 춤을 추었다. 아아, 거기 있었군요, 이렇게 예쁘고 착한 딸이 거기 꼭꼭 숨어 있었군요. 모두들 한바탕의 즐거운 놀이 끝에  폭죽처럼 웃으며 깃털처럼 춤을 추며 깜깜한 어둠을 가르는 웃음을 타고 날아오르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키우던 기대의 다른 한쪽 날개에서는 나는 줄곧 추락을 면치 못했다. 웅크리고 앉은 다락에서 다락을 오르는 발판 위로, 때로는 그것마저도 없이 곧바로 방바닥 위로 굴러 떨어졌다. 손도 발도 없는 조그만 돌멩이나 달팽이처럼 속절없이 데굴데굴 떨어져서는 착지의 순간에 누군가의 손에 덜썩 덜미를 잡혔다. 거기있었구나.  그럼 그렇지. 그는 사납고 고약한 요술쟁이처럼 눈을 휘번덕거리고 뱀 같은 혀를 날름거리며 군침을 삼킨다. 그리고는 나를 한 입에 꿀꺽 삼켜 버리거나 만약 식욕이 나지 않는다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 깜깜한 어둠 속으로 팔매질해 버리는 것이다.

엄마가 찾아온 손님과 차를 마시며 깔깔 웃고 때로는 식사까지 대접하는 동안 나는 다락 속에서 숨을 죽이고 양쪽 날개를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폭죽과 돌멩이 사이, 깃털과 달팽이 사이를 오가면서 내가 어느 쪽 날개를 타고 있는 순간에 마술의 가위가 싹둑 비밀의 줄을 끊어 버릴까, 마음을 졸였다. 이왕이면 폭죽이나 깃털 쪽에 한 순간이라도 더 머물고자 상상을 짜냈지만, 때로는 다락에서만 나갈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내가 숨을 쉴 때마다 다락은 좁아졌고 자꾸만 무거워지는 어둠은 다락 속의 잡동사니들이 토해내는 온갖 먼지와 퀴퀴한 냄새와 이상스런 상상과 함께 나를 찍어누르며 내 몸 속으로 파고들어 왔던 것이다.        
  
나는 언젠가 이런 기억들을 글로 써보려고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 내 딴에는 그 속에 내 의식의 수면 위로 건져 올려 주어야 할 무엇이 있으리라고 느꼈고, 어렴풋이 나마 작품세계의 열쇠는 그 작가의 어린 시절에 있다는 어느 심리학자의 말에 동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이 오래된 우물 속처럼 유난히 고요하고 적적하게 느껴지던 어느 날, 나는 그 고요의 밑바닥에 백지를 펼쳐놓고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기억 속의 그 다락문을 건드려 보았었다. 그날부터 나는, ‘내가 미처 닫지 못한 다락문을 엄마가 닫고 일부러 느리게 신발을 끌며 대문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서서히 가라앉는 다락의 어둠 속에서 내 심장은 가슴을 뚫고 뛰쳐나올 듯 파닥거렸다.’ 라는 문장을 쉰 번도 넘게 고쳐 썼다. 고맙고 미안스럽게도 그 당시 내 글의 편집인이었던 폴은 그 첫 구절을 보고 환호성을 올렸다. 그는 그 환호성의 근거를 새롭게 독자를 끌어들이는 신비스런 긴장감이니 어린아이의 천진한 눈을 통한 독자와의 교감이니 하고 떠들었지만, 나는 그가 기뻐하는 진짜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만큼 그는 날이 갈수록 관념적으로 비비틀려만 가는 내 글의 미로에 지쳐 있었고, 다른 한편으론 한번도 내 입을 통해 들을 수 없었던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해 꽤나 목말라 있었던 것이다.

목말라 있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기대만큼 실패의 예감도 컸다. 첫 페이지를 백 번도 넘게 고쳐 쓰면서 나는 내가 또 하나의 헤어날 수 없는 미로 속에 빠져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두 타스의 연필을 깎고, 채워지지 않을 공책을 여섯 권 째 사면서 나는 내가 이 글을 끝내지 못하리라는, 해서는 안될 자기 암시적인 생각을 하고야 말았다.

글 속의 아이는 끊임없이 다락으로 숨어들어 갔지만 다락 속의 어둠에 눈이 익고, 그래서 그 속의 기억들을 만지거나 알아보기도 전에, 전화벨 소리나 당장 돈이 될 만한 새로운 일거리나 그렇고 그런 세상사에 덜미를 잡혀 끌려 내려오기가 일쑤였다. 아니, 미로에 갇혔다고 생각하는 나의 불안감이 끊임없이 자질구레한 일상을 향해 구원요청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더 적당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자 언제부턴가는 다락문 앞에 억지로 앉혀 놓아도 아이는 다락 속에 들어갈 생각도 안하고 딴청만 하기 시작했다. 온종일 빈 컴퓨터 화면과 천장을 노려보다가 기껏 자판기를 두드려 쓴다는 게 ‘나는 다락문에 기대앉아 바느질하는 엄마를 황홀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엄마는 방안 가득 펼쳐 놓은 색색가지 옷감 때문에 얼굴이 막 피어난 꽃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정도가 고작이었다. 물론 그런 문장들은 마침표를 찍기가 무섭게 화면에서 지워져 버렸다. 나는 다락의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아이를 놓아둔 채, 색깔타령이나 하고 있는 또 다른 아이를 용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차츰 다락은 야단 맞은 아이처럼 내 의식의 중심을 벗어나 겉돌다가 마침내는 보이지 않는 구석에 처박힌 또 하나의 시커먼 어둠 덩어리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찰칵, 열쇠가 맞물려 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다락 창을 올려다보았다.  다락을 가리고 선 소나무 가지 사이로 콩닥거리는 누군가의 심장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나는 그 소리를 지울 듯이 다시 한 번 길게 초인종을 울렸다. 나는 문을 두드리는 사람보다는 초인종을 누르는 사람을, 이왕이면 초인종을 길게 눌러주는 사람을 좋아했었다. 그런 사람이라면 천천히 문을  열어주어도 되고, 나 역시 조금은 더 여유 있게 숨어도 될 것 같았던 것이다.  

대문을 열자 고꾸라질 듯 코앞에 바짝 붙어서 부엌과 수돗간이 보였고 그 뒤로 신발 한 짝, 그림자 한 점 어른거리지 않는 댓돌이 보였다. 누군가 있어 숨은 거라면 그런 대로 완벽한 솜씨였다.

나는 햇빛에 하얗게 질린 댓돌을 밟고 마루로 올라섰다. 마루에 두 개의 트렁크를 내려놓고 나는 삐꺽대며 깨어나는 집을 마주 보았다. 삼십 삼 년 만이었다.
  
처음 열쇠를 받았을 때만해도 나는 내가 이 집을, 그것도 이렇게 빨리, 다시 찾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보낸 사람의 이름도 주소도 없이 그저 한국의 우편소인만 찍힌 작은 소포덩이를 나는 석 달이 지나도록 열어보지도 않은 채 책장 한구석에 찔러 두었다. 보낸 사람이 누구일 거라는 짐작은 있었지만, 그걸 확인하고 싶지도, 그렇다고 송두리째 부인하고 내던질 각오도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 즈음 나와 내 글의 관계가 그랬고, 오랜 세월 나와 엄마의 관계가 그랬다. 내 머릿속엔 쓰여지지 않은 글들이 산적해 있었고, 그 밑에는 묵은 기억들이 뒤죽박죽으로 엉켜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풀어내고 정리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그렇다고 말끔히 잊어버리고 지낼만한 배포도 갖추지 못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풀어내지 못할 거면 잊어버리자고 돌아서면 덮어두었던 공책이며 꺼버린 컴퓨터 화면을 열고 불쑥불쑥 목소리가 튀어나오고 인물이 나타났다. 현실 속의 누구라고는 집어 말할 수 없어도 결코 낯설다고는 할 수 없는 인물들, 언젠가 한번쯤은 내가 만나 보았음직한, 그래서 그들의 말이나 생각이나 행동으로 작품 속의 한 구절쯤은 상상할 수 있었던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돌아서는 나를 불러 세운 그들은 언제나 나를 부르는 것을 끝으로 입을 다물어 버렸고, 입을 다무는 것을 끝으로 내 의식 속에서 모습을 감추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어린 시절 다락 속의 잡동사니들 사이에서 불쑥불쑥 고개를 들던 그림자들과의  숨바꼭질 같은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어린 시절 그 어느 날인가 다락 속에서 손전등을 발견해 낸 건 내겐  행운이었고 동시에 불운이기도 했다. 손전등이 뿜어내는 빛은 마술지팡이처럼 닿는 자리마다 어둠과 먼지범벅 속에서 잠들어 있던 물건들을 깨워냈고, 그 물건들 하나 하나의 윤곽과 함께 그것들이 품고 있던 그림자를 동시에 드러냈던 것이다. 아마 그 순간부터 나와 다락 속에 남긴 내 어린 시절과의 오랜 숨바꼭질은 시작됐을 것이다.  

낡은 책 더미 사이에서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인형을 발견했을 때 나는 너무 기쁜 나머지 소리쳐 엄마를 부를 뻔했다. 한때 단 한순간도 내 손을 떠나지 않았던 그 인형은 가슴을 덮은 헝겊이 닳아지고 터져서 하얀 솜을 쏟아내던 언제부턴가 자취를 감추어 버렸던 것이다.  나는 다시 만난 옛친구의 손을 잡고 손전등을 비추며 다락을 순례했다.

고장난 라디오와 시계가 지친 얼굴로 누워 있었고 그 위에 팔다리가 구겨진 헌옷가지들이 퀴퀴한 곰팡내를 풍기며 눕거나 엎어져 있었다. 그리고 수 없이 많은 종이와 상자들이 있었다. 종이마다 빼꼭이 글씨가 쓰여져 있거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아직 글을 읽지 못했던 나는 당연히 그림 쪽에 더 흥미가 끌렸지만, 글씨도 그림도 엄마 것이란 것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엄마는 어쩌다 내가 잠든 밤에만 글씨를 쓰고, 그림도 옷감을 가지고 옷을 만들어 달라고 찾아오는 여자들을 위해서만 그릴 뿐이었지만, 거침없이 쓱쓱 그어내는 몇 개의 선만으로 윤곽을 드러내는 엄마의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선들을 나는 다락의 그림 속에서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열어본 몇 개의 상자 속에는 색색가지의 물감들이 더러는 말라비틀어지고 또 더러는 아직 통통한 튜브의 모습으로 들어 있었고, 또 다른 몇 개의 상자 속에는 수많은 풍경과 사람들 사진이 들어 있었다. 사진 속에는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 웃고 있었다.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한 화려한 모습으로 엄마가 웃고 있기도 했다.

나는 그 사진이며 그림들을 손전등에 비춰보고 물감튜브들을 조물락거리는 것으로 다락에서의 시간들을 소일하게 되었다. 물감튜브들은 색색가지의 병정들이 되거나 이상한 동물들이 되어서 나와 함께 사진의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곤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해낸 새로운 놀이였다. 그러니까 그때까지도 나는 물감튜브를 열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거니와, 물감튜브의 겉에 색색가지의 종이가 말려 있다는 것만 알았을 뿐 그 속에서 실제로 겉과 같은 색깔이 구불구불 몸을 풀며 나올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했던 것이다.

사진 속의 풍경이며 사람들을 엄마의 그림 속에서 다시 찾아내는 것도 내겐 즐거운 놀이였다. 사진 속에서는 무심히 지나쳤던 빛과 어둠이 엄마의 그림 속에서는 섬뜩하리 만치 강한 대립을 벌이고 있었고, 평범하고 밋밋하던 사람들의 얼굴은 더러는 일그러지고 더러는 부풀거나 쪼그라든 채로 가지가지의 밝고 어둔 색깔이 어우러져 있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엄마의 얼굴이었다.  곱게 웃고만 있던 엄마의 얼굴은 그림 속에서 타오르는 듯한 붉은 뺨과 종이를 뚫고 나올 듯한 눈빛 그대로 푸른 어스름 속에 잠겨 있었다. 그건 마치 물 속에 잠긴 꽃을 마주 보는 것과 같은 전율이며 아픔이었다. 그때 그 그림에는 아직 물감이 마르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마당으로 내려서서 수도꼭지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파이프와의 이음새에 녹이 벌겋게 슬어 있는 수도꼭지를 비틀자 오래 잠겨 있던 파이프에서 쿨럭쿨럭 기침소리와 함께 누런 흙물이 쏟아져 나왔다. 물을 흐르게 놓아 둔 채로 나는 고개를 들어 처마 위를 살폈다. 참새 두 마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날아와서 이끼 낀 기왓골을 깡총깡총 뛰어다니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 두 번 엄마가 나를 위해 그 앞에서 팔을 휘두르며 노래를 불렀다. 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 어린 마음에도 그때 엄마가 부르는 노래가 그다지 공정한 흥정 같지는 않았지만, 나는 엄마가 내 이빨을 손에 들고 그렇게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즐거워서 이빨 빠져 허전한 입을 마냥 벌리고 웃으며 처마 위로 반짝이며 날아가는 내 이빨을 바라보았었다. 그리고 입 속에 손가락을 넣어 남아있는 이빨들을 하나씩 만져 보았다. 그 숫자만큼 나는 엄마의 노래와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었다.

아직도 처마 위에 그 이빨들이 있을지. 고개를 주억거리던 참새들이 날아간 뒤, 지붕 위에는 번쩍거리던 저녁 햇빛도 자취를 감추고 이제는 조그만 분홍구름 한 덩이가 소리 없이 지나고 있었다. 그렇게 아랫니 둘을 갈고, 윗니 하나가 흔들거릴 즈음에 나는 이 집을 떠났었다.  
  
땅거미가 마당을 반 너머 채운 뒤에야  나는 저녁을 먹으려고 집을 나섰다.  부엌 찬장을 둘러보긴 했지만 빈집에 먹을 것이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남아 있다 해도 밥을 차려 먹기엔 집의 느낌이 너무 서먹서먹했다. 마루나 문짝의 삐걱거림이며 방벽에 박아놓은 옷걸이 못까지 전과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지만, 그 오랜 세월에 잠긴 집의 얼굴은 깊은 우물 밑의 하늘처럼 쉽게 깨우거나 다가설 수 없는 표정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도 퍼런 형광등 빛이 내비치는 산동반점과 제일봉제 건물을 지나 골목을 빠져 나오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집을 바라보아야 했다. 이제는 꺼멓게 빛을 잃은 다락의 손바닥만한 창에서 누군가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자꾸만 목덜미를 휘감았기 때문이다.

소금기둥이 될라. 나는 혼자 소리내어 흐흐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건 언제부턴가 내가 자신에게 최면을 걸 듯 뇌까리는 말이었다. 김빠진 웃음 끝에 문득, 오래 전 이 집을 떠날 때도 뒤 한번 돌아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났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나는 그 때나 그 이후에도 뒤를  돌아보는 일이 늘 두려웠었다.

미국서 무작정 짐을 싸들고 나설 때도 그랬다는 생각이 들자, 곧이어 지구의 반대편 빈 아파트에서 혼자 돌아가고 있을 자동응답기 생각이 났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메시지를 남겨 주십시오.’ 나는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자동응답기의 목소리를 따라 중얼거렸다. “메시지를 남겨 주십시오.” “메시지를 남겨 주십시오.” 한 번 두 번 되풀이하면서 빈방에 남겨 둔 감정을 지워나갔다. 나는 녹음기입니다. 나는 당신을 모르는, 당신과 상관없는 녹음기일 뿐입니다. 그 말끝에 매달리려는 폴의 목소리와 숨소리도 함께 지워나갔다. 나는 녹음기일 뿐입니다. 나를 혼자 남겨 주십시오.

“메시지를 남겨 주십시오”. 를 세 번 되풀이했을 때 봉제공장의 직원으로 보이는 잠바 입은 사내가 지치고 성가신 표정으로 흘끔 나를 쳐다보고 지나갔다. ‘뚜우’ 하고 길고 또렷한 전화의 종결음이 내 귀를 뚫고 사내가 사라진 골목의 어둠 속으로 달려갔다.

골목 밖의 밤거리는 눈이 부셨다. 당구장과 실내낚시터와 노래방, 영어로 쓰여진 무슨 카페와 또 무슨무슨 레스토랑이며 룸살롱들이 저마다 악을 쓰듯 사나운 불빛을 번쩍거리며 고개를 들이밀었다. 분명 오래 전 큰아버지의 손을 잡고 이 길을 걸어갔을 테지만 이제 와서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골목 안과 골목 밖, 아니 집과 집밖의 세상에는 두 개의 다른  타임머쉰 정거장처럼 전혀 다른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나마 네거리의 플라타너스와 그 밑의 오징어장수를 보지 못했다면,  나는 내가 집에 돌아온 것이 아니라 이상한 꿈을 꾸고 있거나 전혀 알지 못하는 곳에 불시착한 거라고 믿고 말았을 것이다. 네거리의 빵집에서 큰아버지는 내게 크림빵과 우유를 사 먹이고 택시를 잡아 문을 열어주고 타라고 했다. 나는 차에 타지 않으려고 울상이 되어 엉덩이를 뒤로 뺐고, 그 바람에 택시 기사에게 욕을 먹으며 차를 놓쳐버린 큰아버지는 플라타너스 밑으로 달려가 가슴을 누르면 삑삑 가냘프게 우는 원숭이 인형을 사다 주었다. 그때 플라타너스 밑에는 행상들이 돗자리를 깔고 한가롭게 모여 앉아 장기를 두고 있었고, 내 가슴에 안긴 원숭이 인형에게서는 오래도록 연탄불에 오징어 살 타는 냄새가 났었다.

나는 행인들 사이로 목을 빼고 네거리를 살폈다. 제과점이 있던 자리에는 한 블록을 다 차지하는 대형건물이 서 있고, 건물 앞에는 제복을 입은 수위가 차렷자세로 꼼짝 않는 유리문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 외따로 쭈그려 앉은 오징어장수에게 다가가 몸통이 유난히 희게 보이는 오징어 한 마리를 가리켰다. 오징어는 네온을 삼킨 듯이 연탄불  위에서 발갛고 투명하게 빛나다가 조그맣게 오그라들었다. 내내 고개를 들지 않던 오징어장수는 내게서 돈을 받을 때 눈이 부신 듯 얼굴을 찡그렸다. 거울을 붙인 건물 외벽에는 울긋불긋한 네온사인에 상처 난 구름덩어리들이 소리 없이  어둠 속으로 부서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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