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수필] 삼바실 - 이런 이름을 지키자 (김 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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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3,075회 작성일 10-06-0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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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바실 - 이런 이름을 지키자
삼바실은 내 고향 마을 이름이다. 사십 여년 전 떠난 마을이지만 아직도 고향 마을 꿈을 꾼다. 아쉬운 것은 고향의 정겨운 이름이 잊혀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점점더 “전평리”라는 공식 이름으로만 불리어지고 있다.
천안 삼거리에서 호남쪽으로 가는 옛 조선시대의 일번 국도를 따라 차령고개를 넘자 마자 나오는 곳이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이다. 삼바실은 차령재 - 지금은 터널이 뚫려서 차령 터널을 지나 공주 쪽으로 10분쯤 차를 몰면 나오는 동네다. 무성산 자락에 수 많은 작은 골짜기 중의 하나이다.
틀림없이 삼 밭이 많았던 동네 였을 것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까지도 할머니들이 삼을 베어 삶아서 껍질을 벗기던 기억이 있다. 삼밭이 많던 동네, 그래서 그 이름도 삼바실. 얼마나 정겨운가 괜히 아는 것만 많은 글쟁이들이 한문으로 마전 (麻田)이라고 쓰기 시작했지만, 동네 사람 그리고 이웃 동네 사람들은 ‘삼바실’이란 이름을 지켜왔다. 그러던 것이 아마 일제시대 행정체계를 만들면서 급조된 이름 전평(田坪)으로 변한 것 같다. ‘전’이란 말은 ‘마전’에서 따왔을 것이고, ‘평’은 왜 갖다 붙혔는지 알 수가 없다.
그 후로 삼밭도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삼으로 베를 만드는 일은 이제는 민속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되어버렸다. 삼을 본적이 없는 세대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그들의 아이가 자랄 때가 되니 ‘삼바실’이란 말도 그저 뜻 모르는 마을 이름이 되어 버렸다.
사라지는 것이 어찌 삼바실 뿐이랴. 동네 골짜기마다 붙어 있는 이름들, 그 것들도 이제는 부르는 사람이 없는 낮선 이름들이 되어가고 있다.
“모새독고리” - 삼바실 사람들만 아는 곳이다. 모새독고리는 삼바실 동네 초입에 있는 원형의 제단이며 쉼터였다. 한꺼번에 50명 정도의 사람이 안기에 넉넉한 공간이었다. 중학교 때 역사 시간에 배운 어쭙잖은 지식으로 혹시 먼 옛날 “소도”라는 성스러운 장소가 아닐까 하고 생각도 했었다. 아쉽게도 이미 “모새독고리”라는 말은 뜻 모르는 죽은 말이 되었다.
‘숫둘봉’, ‘뒤짓골’, ‘승지골’, ‘구리얄’, ‘무섬대’, ‘증골’, ‘가래울’- 모두 정겨운 이름이지만 이제는 왜 그런 이름이 붙혀졌는지 알길이 없다. 그리고 뜻 모르고라도 그런 이름을 불러줄 사람도 없어진다.
정겨운 우리말 이름이 사라지는 것은 삼바실의 일만은 아니다. 우리가 ‘새말’이라고 부르던 이웃 마을은 이제 ‘신흥리 (新興里)’로 굳어졌고, 우리 어머니가 태어나신 “지름재”는 “유룡리(油龍里)”로 알려지게 되었다. 새말은 물론 새로 생긴 마을이고, 지름재는 충청도 말로 “기름”하고 상관이 있을 것이다. 삼바실에서 고개 넘어 있던 산골 “달월”은 “쌍달리(雙達里) 라는 엉뚱한 이름으로 남아있다. “달”과 “월,” 그래서 달이 두개라는 억지 논리로 “쌍달”이 되었다고 한다. 1914년 행정 개편을 하면서 마을 이름을 꼭 한자로 만들기 위해서 공무원들이 무더기로 만들어낸 한자화된 지명들일 것이다.
그렇게 한자화된 이름들이 한세대 두세대 지나다 보면 원래의 뜻은 알길이 없게 된다. 그리고 그 마을 고유의 역사가 사라진다. 아직 원래 이름과 뜻을 알 수 있는 곳 만이라도 옛날 이름을 찾아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제는 자기가 태어난 고향에서 살다가 죽는 사람보다는 고향을 떠나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훨씬 많아졌다. 고향 뿐만 아니라 나라를 떠나 이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미국의 대도시에 살건, 남미의 어느 시골 마을에 살건, 우리가 떠나온 고향은 거기 그대로 있다.
고향 마을의 이름도 생각해보고, 그 고향 마을 어느 고샅, 어느 골짜기의 자기만 아는 기억을 더듬어 보는 일도 필요하다. 고향 마을의 정겨운 이름이 뜻모를 한자어로 변해서 굳어 버리면 어릴 때 맨발에 따스하게 와 닿던 고향 땅의 감촉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마을 이름 뿐만아니라 우리말 자체도 우리 고유어들이 한자어에 자리를 빼앗기고 요즈음은 영어에 밀리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중국어를 배우고, 일본어를 배우고, 영어를 배우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말을 하면서 좋은 우리말을 두고, 한자어나 영어로 쓰는 것은 못 마땅하다. 조금만 생각하면 좋은 우리말이 있는데도 굳이 아주 낮선 한자어나 영어를 써야, 행세를 하는 듯한 세태가 야속하다.
“갓길”이라는 말을 생각해보자. 한국에도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주행선 옆으로 영어로 “shoulder”라고 하는 부분이 생겼다. 처음에는 영어말을 유식하게 한자어로 번역해서 “로견 (路肩)”이라는 말을 썼다. 영어로 “shoulder”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리고 한자를 곁들이지 않으면 이해가 안되는 말이었다. 그러나 “갓길”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 사람도 자동차를 운전해본 사람이면 금방 이해가 가는 말이다.
외국에 오래 살다보면 우리말을 잊어버릴 수도 있고 대화중 또는 글을 쓰는 중에 무의식적으로 외국어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 가서 일상의 한국말이 변하는 것을 보면 가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이나 컴퓨터등 새로운 기술에 따라서 생기는 새로운 말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런 것과 거리가 먼 상황에서도 불쑥 튀어 나오는 영어 말들을 들으면 웃음과 한숨이 함께 나온다.
라면과 김밥을 파는 서울의 간이 식당에 내걸린 말이다. “물은 셀프입니다.”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에 알아듣기 좋은 “삼바실”이 “전평리”로 바뀌었다. 우리 세대와 우리 아들 세대에는 우리 말이 반쯤 영어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
삼바실은 내 고향 마을 이름이다. 사십 여년 전 떠난 마을이지만 아직도 고향 마을 꿈을 꾼다. 아쉬운 것은 고향의 정겨운 이름이 잊혀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점점더 “전평리”라는 공식 이름으로만 불리어지고 있다.
천안 삼거리에서 호남쪽으로 가는 옛 조선시대의 일번 국도를 따라 차령고개를 넘자 마자 나오는 곳이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이다. 삼바실은 차령재 - 지금은 터널이 뚫려서 차령 터널을 지나 공주 쪽으로 10분쯤 차를 몰면 나오는 동네다. 무성산 자락에 수 많은 작은 골짜기 중의 하나이다.
틀림없이 삼 밭이 많았던 동네 였을 것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까지도 할머니들이 삼을 베어 삶아서 껍질을 벗기던 기억이 있다. 삼밭이 많던 동네, 그래서 그 이름도 삼바실. 얼마나 정겨운가 괜히 아는 것만 많은 글쟁이들이 한문으로 마전 (麻田)이라고 쓰기 시작했지만, 동네 사람 그리고 이웃 동네 사람들은 ‘삼바실’이란 이름을 지켜왔다. 그러던 것이 아마 일제시대 행정체계를 만들면서 급조된 이름 전평(田坪)으로 변한 것 같다. ‘전’이란 말은 ‘마전’에서 따왔을 것이고, ‘평’은 왜 갖다 붙혔는지 알 수가 없다.
그 후로 삼밭도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삼으로 베를 만드는 일은 이제는 민속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되어버렸다. 삼을 본적이 없는 세대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그들의 아이가 자랄 때가 되니 ‘삼바실’이란 말도 그저 뜻 모르는 마을 이름이 되어 버렸다.
사라지는 것이 어찌 삼바실 뿐이랴. 동네 골짜기마다 붙어 있는 이름들, 그 것들도 이제는 부르는 사람이 없는 낮선 이름들이 되어가고 있다.
“모새독고리” - 삼바실 사람들만 아는 곳이다. 모새독고리는 삼바실 동네 초입에 있는 원형의 제단이며 쉼터였다. 한꺼번에 50명 정도의 사람이 안기에 넉넉한 공간이었다. 중학교 때 역사 시간에 배운 어쭙잖은 지식으로 혹시 먼 옛날 “소도”라는 성스러운 장소가 아닐까 하고 생각도 했었다. 아쉽게도 이미 “모새독고리”라는 말은 뜻 모르는 죽은 말이 되었다.
‘숫둘봉’, ‘뒤짓골’, ‘승지골’, ‘구리얄’, ‘무섬대’, ‘증골’, ‘가래울’- 모두 정겨운 이름이지만 이제는 왜 그런 이름이 붙혀졌는지 알길이 없다. 그리고 뜻 모르고라도 그런 이름을 불러줄 사람도 없어진다.
정겨운 우리말 이름이 사라지는 것은 삼바실의 일만은 아니다. 우리가 ‘새말’이라고 부르던 이웃 마을은 이제 ‘신흥리 (新興里)’로 굳어졌고, 우리 어머니가 태어나신 “지름재”는 “유룡리(油龍里)”로 알려지게 되었다. 새말은 물론 새로 생긴 마을이고, 지름재는 충청도 말로 “기름”하고 상관이 있을 것이다. 삼바실에서 고개 넘어 있던 산골 “달월”은 “쌍달리(雙達里) 라는 엉뚱한 이름으로 남아있다. “달”과 “월,” 그래서 달이 두개라는 억지 논리로 “쌍달”이 되었다고 한다. 1914년 행정 개편을 하면서 마을 이름을 꼭 한자로 만들기 위해서 공무원들이 무더기로 만들어낸 한자화된 지명들일 것이다.
그렇게 한자화된 이름들이 한세대 두세대 지나다 보면 원래의 뜻은 알길이 없게 된다. 그리고 그 마을 고유의 역사가 사라진다. 아직 원래 이름과 뜻을 알 수 있는 곳 만이라도 옛날 이름을 찾아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제는 자기가 태어난 고향에서 살다가 죽는 사람보다는 고향을 떠나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훨씬 많아졌다. 고향 뿐만 아니라 나라를 떠나 이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미국의 대도시에 살건, 남미의 어느 시골 마을에 살건, 우리가 떠나온 고향은 거기 그대로 있다.
고향 마을의 이름도 생각해보고, 그 고향 마을 어느 고샅, 어느 골짜기의 자기만 아는 기억을 더듬어 보는 일도 필요하다. 고향 마을의 정겨운 이름이 뜻모를 한자어로 변해서 굳어 버리면 어릴 때 맨발에 따스하게 와 닿던 고향 땅의 감촉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마을 이름 뿐만아니라 우리말 자체도 우리 고유어들이 한자어에 자리를 빼앗기고 요즈음은 영어에 밀리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중국어를 배우고, 일본어를 배우고, 영어를 배우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말을 하면서 좋은 우리말을 두고, 한자어나 영어로 쓰는 것은 못 마땅하다. 조금만 생각하면 좋은 우리말이 있는데도 굳이 아주 낮선 한자어나 영어를 써야, 행세를 하는 듯한 세태가 야속하다.
“갓길”이라는 말을 생각해보자. 한국에도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주행선 옆으로 영어로 “shoulder”라고 하는 부분이 생겼다. 처음에는 영어말을 유식하게 한자어로 번역해서 “로견 (路肩)”이라는 말을 썼다. 영어로 “shoulder”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리고 한자를 곁들이지 않으면 이해가 안되는 말이었다. 그러나 “갓길”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 사람도 자동차를 운전해본 사람이면 금방 이해가 가는 말이다.
외국에 오래 살다보면 우리말을 잊어버릴 수도 있고 대화중 또는 글을 쓰는 중에 무의식적으로 외국어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 가서 일상의 한국말이 변하는 것을 보면 가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이나 컴퓨터등 새로운 기술에 따라서 생기는 새로운 말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런 것과 거리가 먼 상황에서도 불쑥 튀어 나오는 영어 말들을 들으면 웃음과 한숨이 함께 나온다.
라면과 김밥을 파는 서울의 간이 식당에 내걸린 말이다. “물은 셀프입니다.”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에 알아듣기 좋은 “삼바실”이 “전평리”로 바뀌었다. 우리 세대와 우리 아들 세대에는 우리 말이 반쯤 영어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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