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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필] 먼저 먹은 후덥덥이 : 윤학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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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3,089회 작성일 10-06-0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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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먹은 후덥덥이
        
먹는 것이나 일 하는 것이나 모든 생활이 제때 제때 이루어져야 후회도 손해도 없는 것이다.  슬쩍 빼 놓거나 꾸물꾸물 망설이면 원님 행차 후에 나팔처럼 되는 것이다.
        
그래서 법대로 살라는 것은 수(水)+거(去)=법(法)이라는 말이다. 이 세상 모든 일이 물 흐르듯 순리대로 따라야 실수가 없고, 많은 사람들이 가는 대로행(大路行)이면 특별히 손해가 없는 것이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장에 다녀 오시면서 군고구마를 사 오셨다. 식구들 수에 맞게 사 오셨으므로 누구나 두개씩 배당이 돌아갔다.
        
우리는 형제가 많아서 형제가 한 자리에 모이기가 힘들었다. 성급한 나는 형제들이 오기 전에 내 것부터 달라고 졸라대면서 먼저 먹어치웠다.
        
식구들이 모두 모여서 군고구마를 먹는데, 나는 먼저 먹었으니 내 몫은 당연히 없다. 맛있게 먹는 식구들의 얼굴만 쳐다보고 군침을 삼킨다.
내 시선이 할머니 눈과 마주쳤다. 할머니는 사슴이 눈 같이 가련하게 쳐다보는 나를 보시고 할머니 몫 중에서 하나를 내게 주시면서 "먼저 먹은 후덥덥이야" 하셨다.
        
나는 고맙거나 미안하다는 생각보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스스럼 없이 냉큼 받아서 먹었다. 속으로는 식구보다 하나 더 먹었다는 쾌감을 느끼면서....
        
마흔이 넘어서 늦깍이 이민자로 시작한 미국 생활에는 모르는 것 뿐이다. 영어를 못하는 것은 기본이고 아무런 기술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 어찌 어찌해서 샌드위치 가게를 시작했지만 아내는 빵 종류와 이름에 혼동을 가져왔고 나는 계산기를 찍을 줄 몰라서 옆에다 종이를 놓고 더하기 셈을 해서 돈을 받기도 했다. 세금 더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빠질 수 밖에 없다.
        
한참 되어서부터 독수리 타법으로 계산기를 찍었지만 틀리면 고치는 조작법을 몰라 다시 찍고 다시 찍고 하다 보니 저녁에 총계는 실지 매상에 10배가 넘는 계산이 나올 때도 있다. 이런 실수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런 엉터리 계산으로 세금을 낼 수는 없으니 적당히 매상을 만들어 세금 보고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일년에 한번씩 Income Tax 보고하는 것도 담당한 회계사에게 적당히 해서 세금을 내면서 수입과 지출은 해마다 적자 생활로 보고 됐다.
        
그런데 은퇴연금을 내지 않은 것이 이렇게 후회가 될 줄은 몰랐다. 가난한 이민자로 지금까지 먹고는 살았는데 늙어서 은퇴하면 받아 먹어야 할 은퇴연금 내는 것을 무시했던 것이다.
        
- 내가 그때까지 미국에서 살런지도 모르고, 그 전에 죽을지도 모르는데 무슨 은퇴연금이냐! 아이들 공부 끝나면 우리 부부는 한국에 돌아가서 살아야지. 늙어서까지 이 지긋지긋한 이민살이를 하겠느냐!-
        
이런 막연한 생각에 잘못된 미국생활이 이제야 후회를 가져오는 것이다. 또 당시 세금 보고를 해주는 회계사도 강력하게 알려주거나 권유하지도 않았고, 당시에는 한 푼이 아쉬운 때라서 세금을 내거나 은퇴연금을 내는 것은 마치 도둑 맞는 것 같고 헛된 짓 하는 것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파트 값 내고 자동차 월부 값 내고, 보험료 내고, 아이들 공부시키고, 먹고 살기에도 힘든 생활이니 30년 후를 내다보는 여유나 지혜가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한국 사람들의 기질은 내일 보자는 것 믿지 않았고, 65세 지나서 은퇴연금 받아먹고 산다는 것은 상상도 해 보지 못했다.
        
그래서 한 푼이라도 나라에 바치는 세금이나 은퇴연금에는 인색했고 그날 그날 살아가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은퇴 할 나이까지 미국에서 살게 되었고 한국에는 돌아 갈 명분도 능력도 없다. 이제는 번듯한 집도 하나 없고, 모아놓은 돈도 없고 은퇴연금도 없어서 참으로 한심한 늙은 백수가 되었다. 누구를 탓 하겠느냐, 모든 것이 내 탓이요 내 탓이로소이다.
        
미국생활에서 먼 앞을 내다 볼 줄 모르고 언 발에 오줌싸기로 살아 온 하루살이 인생철학이 늙으막에 이렇게 되었으니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라고 억지로 자위는 하지만, 이것이 모두 무지(無知)의 소치이고 '먼저 먹은 후덥덥이'로다.
        
25년 미국생활에 세금도 양심적으로 내고 생활도 절약해서 은퇴연금도 꼬박꼬박 잘 냈더라면 지금와서 이렇게 부끄러운 늙은이가 되지는 않았을 터인데 말이다.
        
세금이나 은퇴연금 내는 것이 아까와서 그때 그때 먼저 먹어치운 후덥덥이가 당연히 받아야 할 사필귀정(事必歸正)이로다.
        
이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 나의 이런 잘못된 미국생활을 우리 후배나 동포들이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세금도 은퇴연금도 잘 내고 은퇴연금 받아서 늙으막에 걱정없이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끄러움 무릅쓰고 잘못살이를 속죄하는 넉두리를 해 보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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