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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소설: 드림 하우스 : [캐나다/장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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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3,453회 작성일 10-04-30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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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장명길]드림 하우스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다. 그녀는 잠결에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들을 조심스레 지나, 부엌 탁자 밑에 놓인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헬로우!”
 ......... 이게 무슨 소리인가? 청소용역 회사라 했다. 오늘 집안청소를 하기로 되어 있단다. ....... 누구 맘대로? 그녀는 그런 부탁한적 없노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 얘가 또 시키지도 않은 짓을 했어. 이젠 아주 지 멋대로라니까. 못된 것!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화장실 자명종 시계를 보았다. 바늘이 막 10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여성회 세미나가 있는 날이다.


 하긴, 호후 스케줄이므로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생각난 듯 어젯밤에 오전 11시에 울리도록 맞춰 놓았던 알람을 껐다. 뜻밖의 전화로 인해 한 시간 남짓 더 여유가 생긴 셈이다. 어쨌든 잠을 설친 탓인지 몸이 찌뿌드드하다. 기지개를 힘껏 해본다.


 화장실 바닥 한 구석에 그녀의 핸드백이 도도록하니 있었다. 취침 전 핸드백마큼은 꼭 자기 곁에 챙겨두는 것이 그녀의 오래된 버릇이기도 하다. 지금처럼 화장실 구석에서 웅숭그린 채 새우잠을 자고 나면 으레 뒷골이 묵직해져 왔다.


 습관처럼 핸드백을 집어 올린다. 그녀의 다급한 손놀림 때문이닞 핸드백이 툭 하고 힘없이 열렸다. 이내 밤새 갇힌 것에 대한 저항이 라도 하듯, 내용물들이 바닥으로 와그르르 쏟아져 나왔다.


 포켓용 티슈, 손톱 깎기, 반 토막 난 껌, 생전에 남편이 애지중지 하던 가스라이터, 당장 내야 할 납세 고지서와 영수증 뭉치들, 거기다 그녀의 화장품 일체등.......


 그녀는 그 속에서 타이레놀 두 알을 꺼내 삼킨다. 벌써 오래 전부터 두통이 올 때마다 하는 버릇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그녀의 핸드백은 새내기엄마들이 어깨에 걸머지고 다니는 기저귀 가방만큼이나 빵빵했다.


 사실 엄밀히 따져 이제 이 집에서 그녀에게 남은 생활 공간이라고 해봐야, 한 평 남짓한 지금의 화장실 한쪽 구석이 전부였다.


 하지만 밖에서 보면 이 집은 그림 같은 호수를 끼고, 야트막한 언덕 위에 반듯하니 올려지은 고풍스런 대저택이었다. 지금 당장 내어놓는다 해도 손에 백만 불 이상은 너끈히 쥐어질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처음이집을 장만할 때 하던 복덕방 말 그대로, 엄연한 <드림 하우스>로써 아무런 손색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희희낙락하던 그녀와는 달리, 처음 이 집을 사고자 할 때 심드렁하니 그저 오래도록 올려다보기만 했다.


마치 자기가 이 집에서 죽어 나갈 것임을 미리 예견이라도 하듯이.


남편이 이 집을 그렇게 소 닭 보듯한 데에는, 자기 재주로는 서너 번 죽었다 깨어난다 해도 결코 이루어낼 수 없는 일이엇기에 그러했는지도 모른다. 하긴 이민 오기 전 그 알량한  초등학교 평교사의 박봉으로는 언감생신 꿈이나 꾸어 볼 일이겠는가.


타이레놀을 두 알 삼키고 나서, 차츰 모든 사물이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래 전부터 정물이 되어버린 채,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중한 것들, 변함없다는 것은 배반하지 않음이었다. 그 때문인가,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녀의 하루는 먼지가 뽀얗게 쌓인 그것들을 정감어린 눈길로,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지상 이층, 방 여섯 개짜리 대저택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거실 바닥과 모든 가구 위에는 정크메일, 구겨진 포장지, 비닐봉지에서 꺼내지도 않은 케케묵은 신문, 누렇게 바랜 영수증, 낡은 남자구두, 한쪽 다리가 부서진 흔들의자 등이 산더미처럼 집 안 곳곳에 쌓여있어 유일한 통로인 현관문을 열기조차 힘들다.


문득 낡은 흔들의자에 걸터앉아 황망한 눈길로 바깥세상을 내다보던 남편 모습이 떠오른다. 그 아쉬운 흔적들, 이젠 망가진 저 흔들의자도 언젠가는 남편처럼 떠나갈 것이다. 누군가의 홀대 속에 자취도 없이......


저토록 낡아 보잘것없는 것이 한때 남편이 즐겨 앉아 해바라기하던 의자였음을 알기나 할 것인가.


 하지만 그녀는 남편이 죽은 지 햇수로 3년이 다 되어 가건만, 아직도 그 실감이 좀체 가슴에 와닿질 않는다. 잠시 어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 것만 같다. 그래서 어느 때고 불쑥 돌아와, 그때처럼 저 흔들의자에 앉아 망연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 어찌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해서 버리지 모한 채 쌓여 온 것이 여기저기 집 안 구석구석을 메우어 왔다.


 그러다 보니 부엌 바닥엔  오래된 쓰레기로  가득하고 싱크대, 조리대와 오븐도 더러운 접시와 지저분한 비닐봉지 등에 가려 보이지 않은 지 오래다. 냉장고도 무언가로 가득 차서 틈새로 보이는 그 안이 빼곡하건만, 그 앞에 낡은 전화번호부와 책 더미를 그 크기만큼 쌓아올려 문을 열 수가 없다.


 아무튼 거실 바닥은 무론 복도나 침실, 의자, 테이블, 피아노 등 모든 가구 위에도 온갖 잡동사니들이 빈틈없이 쌓여 잇다. 그러므로 그녀는 그나마 유일한 공간으로 남아 있는 화장실 한쪽 귀퉁이에서 새우잠을 잘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 한 순간 정지되어 버린 일상, 그후 쉽게 버리지 못한 채 차곡차곡 쌓여오기만한 생필품 따위의 쓰레기들이 마침내 그 집을 덮쳐버린 것이다.


그녀의 유년기는 이런 재활용품과 낯설지 않았다.


 엿장수였던 아버지는 서툰 가위질 소리로 골목골목의 너저분한 쓰레기들을 집 안까지 끌어오기도 했다. 그런 날은 술 취한 아버지를, 리어카가 끌고 온 게 아니가 싶었다. 그나마 비가 오거나 눈 오는 날은 아예 법정 공휴일이 되어 온종일 구들장을 짊어지었다. 깡소주와 함께, 그러다가 뭔가 심사가 뒤틀리기라도 하면, 가뜩이나 손 댈 것도 없는 밥상이 홀라당 뒤집어지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아물 말 없이 쏟아진 국그릇과 김치쪼가리들을 쓸어 담았다. 그 무언의 행위는 끝내 사람을 우습게 보는 건방진 수작이 되어 주먹질과 발길질이 가해졌다.


 지금도 그녀의 기억에 어머니의 얼굴은, 노상 시퍼런 멍을 누가에 달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주먹질이 잦아지면서 어두컴컴하던 단칸 셋방에 아버지가 늘 뒹굴고 있었다. 그 대신 어머니가 사과행상을 나섰다. 어떤 날은 팔다 남은 벌레 먹은 사과 몇 알이 양은다라 속에서 아버지처럼 뒹굴곤 했다.


 아버지밖에 없는 그 집에 들어가기가 죽기보다 싫었던 그녀는 학교가 파한 후에도 할 일 없이 거리를 배회하곤 했다. 그런 중에 스스로 깨닫게 된 한 가지가 있었다. 길가에 버려진 웬만한 물건들이 고물상으로 가져가면 돈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엔 사이다 병이나 활명수 병 따위를 줍기 시작했는데, 나중엔 제법 물건 보는 안목도 생겨 값나가는 것들을 주워 가져가면 대뜸 그만한 값을 쳐주곤 했다. 그럴 때 고물상 주인은 셈을 치르고 난 후, 뒤늦게 동전 한 닢을 더 얹어주며 꼭 한 마디씩 달곤 했다.


 “이것은 니 중핵교 갈 때 보태 쓰라는 장학금인께, 공부 열심히 하더라고 잉.”


 그녀는 그놈의 중학교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져, 돈 받는 즉시 쪼르르 구멍 가게로 달려가 사이다를 벌컥벌컥 들이켜야 했다. 그러고 나면 그나마 숨통이 뚫리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일 뿐, 이내 빈 속에서도 트림이라고 끄윽 올라오면 그 고약한 냄새에 여지없이 기분이 잡쳐버리곤 했다. 그때마다 자신의 굶주린 뱃속에서 헤매던 회충이, 더는 견디지 못하고 시체가 되어 썩는 냄새일 거라는 생각을 영영 떨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동네 막다른 골목집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냥 무심히 들여다본 것이였는데, 그 대문 안쪽 멀지 않은 곳에 세숫대야가 얌전히 놓여 있는 것이다. 순간 그녀의 마음은 어느 새 고물상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등골에 진땀이 배이며 골목길을 거의 벗어날 때쯤이었다.


 “도둑년!”


 억센 손아귀가 그녀의 목덜미를 꽉 움켜쥐었다. 사십대로 보이는 깡마른 사내였다. 그가 도로 빼앗아 든 세숫대야로 그녀의 머리통부터 후려갈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어디를 얼만큼 맞았는지 가늠조차 할 수가 없었다. 단지 머리 속엔 세숫대야로 맞을 때마다 울리던 소리만 오래도록 남아 있을 뿐.


  텅! 텅! 텅!


 참으로 슬프고도 공허한 울림이었다. 한참을 길바닥에 퍼질어 앉아 울던 그녀가 울음을 뚝 끊고 눈물을 말끔히 지우기 시작했다. 이빨에선 이드득 소리가 났다. 그녀가 주린 배를 움켜진 채, 광주 역상행열차로 몰래 숨어든 것은 그날 밤이었다.


 남편은 누구보다도 그녀의 가난을 잘 알고 있었다. 따져보면 남편을 만나게 해준 것도 그 가난 때문이었다.


 무작정 상경 이후 남의 집 식모살이를 시작으로 여러 곳을 전전하며  피복공장의 시다를 거쳐 미싱사를 할 때쯤, 못 배운 것에 대한 설움이 치밀어올랐다. 그래서 나가게 된 곳이 야간 천막학교였다. 자꾸 감겨지던 눈을 비비고 생살을 꼬집어가며 해내던 공부, 그런 그녀를 눈여겨본 남편의 눈길이 먼저였는지, 언제나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려던 젊은 자원봉사자 선생님의 열성에 감동한 마음이 먼저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서로를 잘 아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그후 그녀가 재단사가 되었을 무렵, 마침내 고등학교 검정고시 합격증을 따냈고, 그날 남편은 그녀를 깊고 뜨겁게 포옹했다.


 처음 ‘이민’ 말을 꺼냈을 때, 남편은 며칠째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술 냄새를 풍기고 들어와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당신이 어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좋아요. 꿈나무인 그 아이들, 그 새싹을 키우는 보람이라는 게, 그 무엇에 비할 바가 아니란 말이오. 물론 항상 박봉이 문제이긴 하지만...... 어쨌든 남의 나라에까지 가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영 마음에 내키지 않을뿐더러 솔직히 자신이 없어요.”


 “그래요. 당신이 자신 없다해도 좋아요. 그냥 따라만 오세요. 어차피 저한테 온 초청장이고 그 일은 제가 할 일이잖아요. 하늘이 도운 거라고요. 다시 이런 기회는 오지도 않을 거구요. 설령 당신이 못 간다해도 저는 가겠어요. 그리고 어떻게 나의 자식 귀한 줄만 알고 제 새끼 걱정은 눈곱만큼도 안하냐고요. 간신히 밥 먹고 살기도 힘든 그 봉급가지고, 앞으로 어떻게 저 애를 가르칠 건지 생각이나 해봤어요? 정말이지 가난이라면 이젠 넌더리가 난다고요. 말 안 해도 아시잖아요.”


 그때 남편은 한때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처음 며칠은 그나마 밖에서 몰래 피우는 듯하더니, 이내 드러내 놓고 아무데서나 마구 피워대었다. 속타는 심사가 그만큼의 연기가 되어 나온다는 듯이.....


 “당신이 그렇게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면 저라도 먼저 가서 자리를 잡겠어요. 3년만 고생하자고요. 그 동안 어린 것을 시댁에 맡겨야 하는 것이 마음에 거리지만, 그렇다고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잖아요.”


 남편은 다시 말이 없어진 대신 수수방관하는 자세로 돌아섰다. 한 때 그녀가 몸담고 있던 곳에 사장이 이민을 가, 일 처리 꼼꼼하고 억척스럽던 그녀를 수소문해 초청장을 보내 온 것이었다.


 “저 혼자 잘 살아보겠다고 이러는 거 아니잖아요. 맘 편하게 보내주세요. 사실은 ....... 저도 겁이 나요.”


 어쩔 수 없이 공항까지 나왔던 남편은, 그제서야 억지로 웃어 보이며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당신이 가서 자리잡는 대로 나도 여길 정리하리다. 모쪼록 건강 신경쓰고.....”


 남편이 그렇게 정리를 한 후, 같이 합류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다시 4년 만이었다. 거의 마지못해 온 셈이었다. 그리고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그 동안 남편은 한 가지를 더 정리해 버리고 왔다. 어느 날 예비군 훈련장에서 실시한 정관수술을 해버린 것이다. 술김이라고 했다. 이른 새벽 훈련장 입구에 줄지어 선 순두부장수의 손수레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따스한 김. 그것이 한물간 퇴역 군인들의 썰렁한 속을 건드렸고, 그 속에 끼어들어 몇 잔 마신 술 때문이라 했다. 거기엔 비록 말은 안 했어도,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떠나가 버린 아내에 대한 원망도 함께 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남편과 뒤늦게 합류하면서 그녀는 그 동안 모아둔 것을 작은 밑천 삼아, 무스코카 관광지에 편의점을 마련했다. 그 당시 경기는 호황 국면으로 돈의 흐름이 좋았다. 그녀는 그 돈 흐름의 큰 줄기로 유명 관광지를 택했던 것이다. 그땐 한국사람 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그곳을 점찍으면서, 그녀는 일생일대의 투기를 한 셈이었다. 어렵사리 은행돈을 끌어낸 것이 결정적 요인이 되긴 했지만, 그 보다도 무언가 감당할 수 없는 확신이 자꾸 그녀를 밀어 붙였던 것이다.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시차 적응조차 어렵던 남편마저도, 그 당찬 행동에 불안을 느꼈던지 조심스레 재검토해 볼 것을 권유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은 적중했다. 휴가철이 시작되자마자 두 대의 금전등록기로는 조저히 찍고 자시고 할 시간이 없었다. 캐시레지스터 밑에 아예 빈 박스들을 갖다놓고 그대로 돈을 쓸어 내렸다. 돈이 아니라 늦가을에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 같았다.


 더럭 겁이 났다. 그 상황이 그토록 불안하고 무서울 수가 없었다.


 ‘이건 내 분수가 아냐. 너무 벅차.’


 그녀는 재빨리 창업자금으로 빌렸던 은행돈부터 갚았다. 그러고 나니 조금 홀가분해지며 차오르던 숨결을 고를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내 분수껏 사는 거다. 남의 돈 무서운 줄 알고.’


 “최소한의 기본 생계비만 빼고 나머지는 몽땅 모아두었다가, 때가되면 무조건 부동산에 투자하겠어요.”


 “때가 되다니?”


 남편은 심드렁하니 물었다.


 “언제까지 오르기만 하겠어요. 지금이 오를 대로 다 오른 시세라고요. 그러면 곧 빚더미에 앉은 매물들이 쏟아져 나올 테고....”


 아니나 다를까. 불과 삼 년 남짓 만에 경기는 통째로 곤두박질쳤다. 그렇게 해서 알토란 같은 순수 자기 자본으로만 장만해 나간 부동산은 그후 어김없이 금쪽같은 땅덩어리가 되고 건물이 되어 돌아왔다. 그렇게 몇 번 되팔기를 하고 나니 건물 임대료만으로도 생활비가 남아돌아, 아예 일손마저 놓아버린 것이다. 그로 인해 남아도는 시간과 여유를 교민사회 활동에 참여하며 나름대로 입지를 넓혀갔다.


 그러나 남편은 달랐다. 그 일이 있은 후, 아예 나 몰라라가 되어버렸다. 어쩌다 그녀가 의논할 일이 생겨 넌지시 물어봐도, 혼자 잘하면서 왜 물어? 하기 일쑤였다. 더욱이 답답할 노릇은 본디 타고 난 성격 탓도 있었겠지만, 도대체 사람 모이는 자리를 꺼려 했다. 몇 번인가 그녀의 잔소리 끝에 마지못해 기웃거리는 듯하다가 버럭 역정을 내곤 했다.


 “모두 다 잘난 사람들만 있는 자리에 나같이 마누라 덕에 사는 팔푼이가, 어디 낄 자리가 있다고 자꾸 이러는 거야. 제발 가만 좀 내버려 두라고. 저 생긴 대로 살게.”


 그녀가 집 근처 헬스클럽에서 간단한 운동과 샤워를 끝낸 후, 막 커피숍을 들어서려 할 때 휴대폰이 울렸다.


 “맘, 저예요.”


 딸아이였다.


 “어쩐 일이냐? 네가 전활 다하고. 그래 회계사 사무실을 냈다며?”


 “........”


 “못된 것. 빈 말이라도 이 에미한테는 한 번 다녀가란 말도 없냐........ 어쨌든 랄프도 잘 있고?”


 “.......”


 “아, 네 서방 말이다...... 그래 무슨 일이냐? 넌 꼭 무슨 일이 있어야만 전화하잖니.”


 “.......”


 “아니, 얘가?”


 “오늘 어디 나가시면 안 돼요. 그래서 전화했어요.”


 “어쨌든 절대 나가시지 말라고요. 제가 거기 갈 때까지 기다리세요.”


 “무슨 소리야? 여긴 왜 와? 그리고 오늘 여성회 세미나가 있다고.”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요. 알았어요?”


 “뭐라고? 얘가........ 도데체?”


 “가서 말할 게요. 그러니 집 비우면 안 돼요.”


 “아니, 그런데 누가 집 청소를 하라던? 여긴 내 집이야. 그리고 네 아빠가 함께 살던 곳이란 말이다.”


 딸아이가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맘, 이제 그 집은 혼자 사시기엔 너무 커요. 제대로 관리도 안 되잖아요. 그러니 편리한 아파트로 옮기세요. 그게 편해요.”


 “누구 맘대로! 여긴 내가 알아서 한다고. 알겠니?”


 얼마간 다시 침묵하더니. 어쨌든 알았으니 집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전화를 마친 후 늦은 아침 겸 점심으로, 야채수프와 샌드위치를 시켜  창가쪽 자리를 찾아 앉았다. 헬스클럽과 커피숍 코스는 매일처럼 반복되는 그녀의 일상기도 했다. 잿빛 하늘 때문일까. 캐나다의 겨울은 갈수록 깊고 우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부터 워낙 말수가 적고 제 일 제가 알아서 커온 아이였다. 그러다 보니 명색이 외동딸이건만 다정다감이라든가 싹싹한 맛하고는 애당초 거리가 멀었다. 처음엔 그게 의연해 보이기도 해 대견하기까지 했으나, 나중에야 그것이 의도적인 단절임을 알았다.


 이제껏 공부하라는 소리 한 번 못해 보고, 저 혼자 알아서 장학금으로만 대학을 마친 아이였다. 그런 딸아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고 말았지만, 중학교 때 웬 백인 사내아이를 집에 데려온 적이 있었다. 여기 아이들이 거의 다 그렇기는 해도, 정말이지 허여 멀건하니 잘도 생긴 놈이었다. 처음 당해보는 일이라 공연히 혼자 들뜬 탓도 있었지만, 어쨌든 잘 커주는 딸아이가 데려 온 귀한 손님이고 보니 정성스레 과일을 내어 방문을 노크했던 것이다. 한참만에야 방문이 열렸다.


 “뭐예요?”


 뭐라니? 딸아이는 이내 양미간을 찌푸렸다.


 “애기 애들, 남의 집에서 주는 것 함부로 안 먹어요. 가져가세요.”


 뜻밖의 반응에 어이가 없더니,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아니, 여기에 독약이라도 들었다던?”


 “어쨌든.........”


 안쪽에서 백이아이가 말갛게 웃고 있었다. 물론 여기 애들의 습관이기도 하겠지만. 그 웃음 때문이었을까. 내친김에 딸아이를 밀치다시피 들어가, 백인아이 앞에 과일접시를 건네주었다. 백인아이가 얼른 고맙다고 인사를 해왔다.


 “거 봐라.”


 딸아이가 팔짱을 낀 채 째려보고 있었다. 못된 것. 금방 돌아 나오려다가 불쑥 괜한 오기가 생겨 그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어떤 사이냐고........ 백인아이는 좀 멋쩍었던지 어깨를 들썩했다. 이윽고 딸아이가 다가 와 귓속말처럼 말했다.


 “그 말도 안돼는 영어 그만하고, 어서 나가요. 당장!”


 생각해 보면 잘못한 처사였다. 그날 무슨 버르장머리를 고쳐보겠다고 그리했는지, 기금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하얗게 사색이 되어 이층으로 올라간 그녀를 본 남편이,저윽이 놀란 얼굴로 물어왔다. 왜 그러느냐고. 분이 채 풀리지 않은 그녀는 그 사실을 이실직고해 버렸다. 남편은 당장 그 자리에서 백인아이를 내쫓다시피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딸아이에게 무릎꿇고 사과할 것을 채근했다. 하지만 딸아이는 딸아이대로 남자친구와 함께 당한 황당한 사태에 기가 막힌 듯, 새파래져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런데도 무릎꿇고 사죄하라니.......


 거기다가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가 아니던가.


 “No!"


 비명이요. 발악이었다.


 그 순간 남편의 손이 딸아이의 뺨을 후려쳤다.


 “못된 것! 노 라니.”


 퍽,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진 딸아이가 독기 서린 눈으로 남편을 노려보았다.


 “아니, 이것이 그래도..... 무얼 잘 했다고. 너 당장 가서 회초리 가져오지 못해!”


 그 말이 채 끝나기 무섭게 벌떡 일어 선 딸아이가 스치듯 짧게 웃더니, 뚜벅뚜벅 밖의 차고를 향해 걸어나갔다. 이윽고 뒤뜰 텃밭에 받침대를 쓰려고 챙겨둔 대나무 가지 하나를 들고 와 제 아비 앞에 함부로 내던졌다. 그 태도에 더욱 화가 난 남편이 힘껏 딸아이의 종아리를 후려치기 시작했다. 딸아이는 꼿꼿하게 선 채 그 매를 고스란히 맞고 있었다. 어금니를 악문 채. 그제서야 제 정신을 차린 듯 그녀가 허겁지겁 말리는 바람에 가까스로 매질을 멈추긴 했지만, 정작 큰일은 그 다음에 일어나고 말았다.


 다음 날 딸아이가 학교에 간 지 두어 시간이 채 못되어, 집 앞에 경찰순찰차가 멈춰섰다. 이윽고 두 명의 경관이 불쑥 집 안으로 들어와, 대뜸 남편의 손을 비틀어 수갑을 채웠다. 미성년자 폭행죄.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날 학교에서 딸아이의 종아리를 본 담임선생이 곧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한다. 그 일로 남편은 딸아이에게 접근금지 명령이 내려져, 시골의 작은 별장을 얻어 한동안 혼자 살다와야 했다.



 그후 딸아이는 가뜩이나 없는 말수를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니 평소 마른 북어 같던 제 아비와 부뚜막에 세워둔 부지깽이처럼 항상 제 자리를 꼿꼿이 지켜가던 딸아이와의 사이에 무어가 좋고 말고 할게 있겠는가. 그나마 모녀지간이라는 것도 그 일 이후, 이처럼 사무적인 용건이 있을 때만 간신히 몇 마디하고는 이내 딸깍 소리만 길게 남기고는 했다.


 그래서 생전의 남편이 그런 말을 자꾸 입에 올렸는지 모른다.


 “쟨 내 자식 같지가 않아.”


 물론 영어로 대화해야 하는 언어소통의 벽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단지 그 탓으로만 돌릴 일이 아님을 진작부터 알고 있는 터였다. 그 때문인지 정감있는 대화 한 마디는커녕, 나중엔 웬만하면 같이 자리하는 것조차 서로 피하는 기색이었다. 더구나 딸아이는 혼자 제 방에 들어가 붙박여 있는 시간이 많아, 드러내놓고 표나지 않은 게 다행이다 할 정도였다. 대화의 단절. 그로 인해 항상 조용한 집안 분위기였지만, 그걸 결코 화목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금테 안경이 유난히 번쩍거리던 젊은 의사가, 한참동안 차트를 들여다본 후 나직이 물어왔다.


 “무언가를 버리면 나중에 후회를 하게 되거나, 인생에 해로울 것이란 생각이 들어 물건을 자꾸 모으게 되는 것이죠?”


 진찰실 벽에 걸어놓은 정물화에 공연한 눈길을 주고 있던 그녀의 시선이 흔들린 건 그때였다.


 그녀는 대답 대신 저만큼 보호자석에 앉아 이쪽을 주시하던 딸아이를 쳐다보았다. 딸아이는 다시 의사에게 눈길을 건네듯하고는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맘은 너무 지쳐 있어요. 그러니 솔직히 말씀드리세요.”


 마치 네 죄를 다 알고 있으니 순순히 자백하라는 투로 들렸다.


 “무얼?”


 “아니, 그럼 지금 그 집안 꼴이 정상이라고 생각하세요?”


 “정상?”


 그때 의사가 딸아이를 향해 손을 들어 보이며 제지하였다. 끼어들지 말라는.


 “그러니까 평소 우울하시거나 공연한 두려움으로 마음이 불안해 질 때가 없으신가 해서 묻는 겁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그녀도 공감하는 바가 있었다. 그녀 역시 남편이 죽고 난 후부터 부쩍 우울해졌음을 잘 알고 있는 터였다. 처음엔 원치도 않는 이민을 와서 시름시름 살다가 결국 자신의 뜻대로 살아보지 못하고 간 남편에 대한 자책감이, 그가 쓰던 물건들에 대한 애착으로 나타나 하나도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 지경에 이르고 만 것이다. 그녀 자신도 한때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정하고 개선해 보려고 노력도 해보았지만, 청소를 한다거나 물건을 버린다는 것이 왠지 너무도 두렵기만 했다.


 그래도 그렇지. 그렇다고 해서 현재 그녀가 사회활동을 하는데 지장이 있다거나, 예전에 우울증 같은 정신병력을 가진 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상상을 초월하는 집안의 살벌한 분위기와는 달리, 그녀는 매사에 의욕적이며 아직도 깔끔한 매무새를 갖추고 각종 공동체 활동에 활발히 참여해 왔다.


 특히 교민여성단체에서는 그녀가 없으면 당장 곤란해질 정도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녀가 아직까지 손대고 있는 부동산 투자 부문에서도 나름대로 일가견을 가진 매니아이기도 했다. 물론 그녀 자신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이러한 처지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제는 자신의 건강을 위협하고, 점차 정상 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가는 현실이 한편 걱정스럽기도 한 것이다.


 그녀는 한참 만에야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질문이 몇 가지 더 이어진 후, ‘저장하기’ 병이라는 희한한 병명을 알려 주었다. 일반적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 병은 아직도 원인도 모른 채 단지 심리적 상태에서 오는 병으로 알고 있을 뿐이라 했다. 더 난감한 것은 어떤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수집가와는 또 다른 경우로 분류되어, 그냥 강박장애의 특수형으로 이름지어 놓은 것이 고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통계상으로 어린 시절에서 비롯된 습관으로, 저장자의 80%가 가족 중 누군가가 물건을 모으는 가구에서 자라났다는 공통점이 있다했다. 또한 주로 죽음이나 이혼 등 비극적인 사건 이후에 숨어 있던 그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때 의사는 아직 확실한 원인은 모르지만 그래도 행동치료요법으로 축적물을 스스로 감소시키는 실제 연습을 통해, 사고방식을 구축하는 방법으로 효과를 보고 있는 추세이므로 입원치료를 적극 권장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왕성한 사회활동 등을 내세우며, 곁에서 은근히 부추기던 딸아이를 따끔하게 나무라는 식으로 완강히 거절을 했다.


 “다시 들를게요.”


 딸아이는 그 말만 허공 중에 던져놓고, 급히 차를 몰아 가버렸다.


 “오지 마라. 못된 것. 지 에미한테 정신병원이라니.”


 그렇게 불쑥 찾아온 딸아이가, 많이 피로해 보인다며 함께 병원에 가 건강 체크를 해보자던 그 말이, 왜 그리도 감격스럽던지.........


 그 때문에 얼떨결에 따라 나섰다가 졸지에 당한 휘둘림 탓인지, 아직까지 정신이 아득해 왔다. 그녀는 한동안 딸아이가 사라져버린 빈 언덕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리 쉼도 할 겸 집 앞 벤치에 털썩 앉았다. 호수 저편 자작나무숲이 저녁놀에 곱게 물들어 있었다. 저 만큼 호숫가 가장자리에선 백조 한 쌍이 얼음이 풀린 물에 들어가 푸덕푸덕 날개짓을 해댔다. 그림 같은 풍경. 한때 자신이 그토록 꿈꾸어 왔던 피안의 경계가 아닌가.


 그녀는 불현듯 새삼스러운 마음이 되어 자신의 집을 우두커니 올려다보았다. 언젠가 남편이 이처럼 오래도록 바라보았던 집...... 왠지 눈물이 핑 돌았다.


 ‘지까짓 것이 제 아비의 손때 묻은 흔들의자의 깊은 냄새를 알기나 할 것인가.’


 무수한 날을 혼자 외로움에 떨던 남편이었다. 그 앙상한 등을 쓸어 내려주던 한 조각 따스한 햇빛. 흔들의자는 그런 남편이 그 햇살과 함께 가장 오래 머물던 자리였다.


 ‘그런데 당장 갖다 버리라니. 못된 것. 정작 정신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고. 계산기같이 틀림없는 너라고. 알아. 다시는 오지마라. 다시는!’


 깊은 한숨 끝에 바라 본 수목 밑으로, 한 움큼의 잔설이 햇볕을 피해 숨어 있었다.


 아마 딸아이가 처음 캐나다에 오던 해, 겨울이었을 게다. 엄청 쏟아져 내리는 눈발을 보던 아이가, 눈사람을 만들겠다며 좋아라 밖으로 나간 후 잔뜩 울상이 되어 돌아왔다.


 “엄마, 이상하게 눈이 안 뭉쳐져. 그래서 눈사람을 만들 수가 없어. 어떡해?”


 건조한 기온 때문이리라. 아이 말처럼 이곳의 눈은 아무리 힘껏 움켜쥐어 봐도, 이내 푸스스 흩어져 버리곤 했다.


 건조함과 흩어짐.


 문득 그녀가 살아 온 저간의 세월이란 게, 그런 게 아니었나 싶었다. 끈끈하고 단단하게 뭉쳐지지 않는.....


 



 언제부터인가 남편은 늘 혼자였다. 교민봉사활동과 부동산 관계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그녀와는 달리, 혼자 난을 가꾸고, 혼자 뒤뜰에 나가 정원 손질을 하며 소일했다. 아니면 한국 비디오테이프를 잔뜩 빌려다 놓고 하루 종일 애꿎은 담배나 피워대며 혼자 보고 있기 일쑤였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부터 바깥출입이 잦아졌다. 급기야는 외박을 하고 들어오기도 했다. 처음엔 멋모르고 반색을 하던 그녀도, 툭 하면 외박하는 사태가 거듭되자 낌새가 다름을 알고 추궁하기에 이르렀다. 카지노 출입을 했노라고 했다. 알고 보니 그 사이에 적잖은 돈이 빠져나가 있었다. 아무리 그렇기로, 이건 아니다싶어 삼가라고 일러주자 뜻밖의 말을 해왔다.


 “물주가 하지 말라면 못하는 게지. 알았다고.”


 그후 남편은 그나마 몇 마디하던 말조차 굳게 다물어버렸다. 그리고는 온종일 창가에 붙어 서서 우두망찰하듯 바깥을 내다보는 게 일이었다. 절간이 따로 없었다.


 “도대체 당신 왜 이러는 거예요? 무어가 불만이냐고요?”


 “내가 무얼 어쨌다고 또 이러는 거야. 옳아. 네까짓 것이 무어가 불만이냐 그건가?”


 “여보! 왜 이래요. 어쩌자고 모든 게 다 시비조예요. 당신, 사람이 변했다고요. 그건 알아요?”


 “뭐, 변해? 허, 그래. 그나마 돌아버리지 않은 게 다행이지.”


 “제 말은..... 제발 그러고만 있지 말고, 바깥으로 산책이라도 좀 다니시고 그러란 말이에요.”


 “알았다고. 하면 될 것 아냐.”


 매사가 이런 식이었다. 보다 못해 무어라고 한 마디하면 하라는 대로 마지못해 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며 겨울이 다 갈 무렵. 남편의 패밀리닥터한테서 전화가 왔다. 정기 종합검진 결과가 좋지 않다며 면담을 하자고 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찾아간 그녀에게 의사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좀더 정밀검사를 해봐야 하겠지만 간암 말기 같다고. 머리 속이 먹먹했다. 창졸간에 당하는 일이 늘 그렇듯, 의사의 그 어이없는 한 마디는 그대로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혀왔다.


 도저히 그냥 돌아갈 수가 없어서였겠지만, 한 시간쯤 무작정 하이웨이를 달린 후 어딘지도 모를 낯선 곳에 차를 세웠다. 시퍼런 물이 호수 저편으로 끝간 데 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 앞에서 신음처럼 불쑥 튀어나오던 한 마디.


 “미안해요.”


 그녀의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회오리 쳐 올라온 말이었다.


 삶이 무언지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살아가는데 있어 진정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했어야 하는 거라면, 더 할 말이 없었다.


 



 만약 그때 남편이 원하던 대로 이민을 오지 않았더라면, 지금 별 일없이 잘 지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모든 병이 마음에서 온다하지 않았던가.


 매양 겉돌던 삶과 자괴감. 그에 따른 소외와 고독. 그것만으로도 그가 병들기엔 충분했으리라. 그렇다면 그는 이민 이후 나머지 인생을 살다간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시간의 생애를 마지못해 메우고 간 것이었다. 그가 언제 동반자로서 확실한 자기 역할을 해본적이 있었던가. 항상 뒤편에 처져 우두커니 바라만 보았다. 그렇게 꿈이 박제된 삶처럼.


 흔히들 얘기하듯 아이를 위해 그리 살아 온 것도 아니었다. 딸아이는 저대로 저 혼자 알아서 커 왔으니 달리 신경쓸 일도 없었다. 마치 저 혼자 살 수 있는 날을 손꼽는 아이처럼, 가족을 외면한 채 철저히 은둔하다가 슬며시 나가버린 게 끝이었다.


 아마 모르긴 해도 그 동안 대부분의 동포 자녀들이 홍역처럼 거쳐가는 과정을, 저 혼자 끙끙 앓아가며 이 악물고 이겨냈을 것이다. 처음에 제 부모의 외모가 캐내디언이 아님에 실망하고, 한동안 저 혼자라도 캐내디언이 되기 위해 발악하다가, 마침내 그 한계에 절망하고 마는.....


그리하여 혼자 설 수 있을 때쯤이면 본연의 제 뿌리를 찾아 기웃거리거나, 아니면 동포 사회에 보다 높은 단절의 벽을 쌓고 델타의 삼각주에 숨어버리는 케이스.


 딸아이는 그 후자에 속했다. 지독하리만치 한국적인 것에 대해 철저히 배척했다. 한국의 고유 음식이나 관습 등, 심지어는 단 한 명의 한국인 친구도 갖지 않는 아니, 아예 그들의 접근을 무시함으로써 일찌감치 차단해 버리는.......


 어쨌거나 그래도 그 애가 어렵다던 회계사 자격증을 따내고, 이름 깨나 날린다는 영국계 변호사 사위를 얻던 날은 마치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아무리 끼리끼리 만나 사는 게 인연이라 해도 어쩌면 저럴 수가 있나싶을 정도로 둘은 붕어빵을 찍어낸 듯했다. 그나마 결혼식 날 본 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차라리 남이라면 뱃속이나 편하지 싶었다. 하지만 지금껏 이골이 나다보니, 그 덕에 신경쓸 것이 없어 좋다는 셈치고 지내온 터였다. 하긴, 제 아비 장례식에도 어쩔 수 없어 참석했을 뿐 눈물 한 방울 안 흘린 딸아이였다.


 그때 두고두고 잊을 수 없던 것은, 어찌 저러고도 내 속으로 난 자식인가 싶어서였다.


 



 그녀가 막 집 안에 들어서는 순간, 낯설음이 와락 달려들었다.


 여기가 어디인가? 동시에 스르르 다리에 힘이 풀리며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니, 이것이...... 기어이.”


 텅 빈 듯한 공간. 삽시간에 말끔하게 정돈된 실내. 이게 무슨 일인가? 그녀의 눈길은 허둥거리며 어느새 흔들의자를 찾고 있었다. 없다. 아무 곳에도 없다. 순간, 손에 식은땀이 고이며 숨이 턱까지 차 오른다.


 그때였다. 전화벨이 자지러지게 울렸다. 그녀는 부들부들 몸을 떨며 가까스스로 걸어갔다. 전화기가 어느 틈에 탁자 위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었다.


 어렵사리 전화 수화기를 들자, 때뜸 낯선 목소리가 고압적인 자세로 나왔다.


 복덕방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법정 후견인의 의뢰를 받고 전하는데, 사람들이 그곳에 가면 거절하거나 방해하지 말라 했다. 아울러 바로 후속 조치가 되긴 하겠지만, 일단 연락해 두는 거라고.


 “....... 법정 후견인이라니? 누가?”


 그것까지는 알 것 없고, 어쨌든 당신은 법적으로 ‘한정치산자’ 이므로, 이제 그 집에 대한 소유권이 없다는 거였다.


 “뭐, 뭐라고?”


그리고는 좀더 높은 톤으로 어쨌든 알겠냐는 소리와 함께 전화가 뚝 끊겼다. 무얼 잘못 들었지 싶어서 다시 곰곰 생각해 보았다. 틀림없는 그 소리였다. 무언가 아쓱한 기운이 등줄기를 훑었다.


 ‘도대체 이게 뭔가?’


 차츰 어떤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엄습해 오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전화 다이얼을 애써 또박또박 눌렀다. 손 끝이 파르르 떨려왔다. 마침 총무인 미세스 양이 전화를 받았다.


 “응, 난데, 나 아무래도 오늘 못 나갈 것 같아서... 일 처리 좀 부탁해요.”


 전화를 끊고 나자 목구멍이 썰썰한 게 괜한 헛증이 치밀었다.


 그제서야 병원에서 돌아오던 길에, 이젠 모든 걸 자기한테 맡기라던 딸아이의 말이 떠올랐다.


 ‘아니, 그래서 무얼 어쩌자는 거야? 누구 맘대로.’


 순간, 잘 정돈되어 있는 집기들이 어떤 공포물이 되어, 그 섬뜩함이 겨드랑이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탁자 위에 전화기를 한동안 노려보았다.


 “못된 것! 이게 다 무슨 개수작이냐고!”


 “와장창!”


 전화기가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며 흉물스럽게 부셔졌다.


 그때 갑작스레 밖에서 소란한 기척이 느껴졌다. 설핏, 앰뷸런스 사이렌소리 같기도 했다.


 ‘이건 또 무슨 소리....?’


 딩동! 딩동!


 차임벨이 다급하게 울리고 있었다.


 딩동!.....


 틀림없는 바로 자신의 집이었다. 그 순간 졸가리진 나뭇가지처럼 다리께가 후들거렸다.


 딸각!


 밖에서 문 따는 소리가 나더니 두 명의 건장한 백인 사내가 급히 들어왔다.


 “누, 누구예요?”


 배추색 가운을 입은 두 사내가 그녀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헉!”


 그녀가 듣기에도 숨막히듯 질려버린 자신의 목소리였다. 두 사내의 억센 팔뚝이 그녀의 겨드랑이를 파고드는 순간, 정신을 놓아버린 듯 온 세상이 아득해졌다. 어떻게 끌려 나왔는지도 모른 채 밖으로 나왔고, 하늘엔 무수히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온통 잿빛이었다.


 ‘아, 지겨운 이 겨울.’


 등 뒤로 금속성 소리가 나더니 앰뷸런스의 뒷문이 열렸다. 가까스로 가쁜 숨을 내쉬며 자세를 추스르려는 순간, 못 볼 것을 본 듯 등골이 서늘해져왔다. 딸아이였다.


 “제니, 얘야......?”


 오도카니 팔짱을 낀 채 이쪽을 찬찬히 바라보고 있었다. 무표정. 일말의 감정도 실리지 않은.....


 한순간 그대로 질리며 더 이상 말이 되어 나오질 않았다. 그 딸아이 옆으로 알 듯 말 듯한 새하얀 설핏, 아는 체를 하듯 야지랑스런 눈길을 주고 있었다.


 “그래, 넌 내 변호사 사위...... 헉! 이건 아냐! 이게 아니라구!”


 갑자기 그녀의 온 몸이 붕 뜨는 느낌이다가 이내 깜깜해졌다.


 철거덕!


 그렇게 철문 잠기는 소리와 함께 단박에 온 세상이 차단되었다. 이윽고 사이렌 소리만이 거리에 길게 남았다.


 마치 추락하는 비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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