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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싸이가는 소리없이 죽는다. : 카자흐스탄/정장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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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2,372회 작성일 10-04-30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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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가는 소리없이 죽는다.

“우르릉~궁궁…….우르르~우…….”
초원이 갑자기 진도한다. 끝없는 황량한 대지가 끊어 번진다. 이른 새벽부터 구름 한 점 없이 파랗던 팔월 하늘이 순식간에 누런 머지 투성이 된다. 광활한 평원이 그늘에 잠긴다. 찌는 듯한 가혹한 햇살을 받아 손바닥이 쑥쑥 들어가도록 턱턱 갈라진 땅 위에서 먹이를 찾아 꾸벅꾸벅 헤매던 까마귀들이 누런 하늘에 까만 점을 찍으면서 사라진다. 누렇게 마른 풀 속에서 조심스레 동정을 살피던 겁쟁이 토끼들이 미친 듯이 갈팡질팡한다. 싹싸울나무의 희미한 그늘 속에서 등을 깔고 네 발을 쩍 벌려 달콤하게 졸고 있던 여우들도 힐끔힐끔 뒤돌아보면서 여덟 팔자 줄달음을 친다. 헐떡이던 늙은 승냥이는 “이때다!”하듯이 귀를 쫑긋 추켜세우고 냉큼 혀를 집어물고 일어서서 뇌성병력이 연속 터져오는 그 족으로 핏기 서린 눈살을 쏘아보낸다. 물을 찾아 어슬렁어슬렁 점잖게 황제 걸음을 하던 초원독수리도 퍼드득 솟아올라 또다시 대지의 주인 노릇을 하느라 공중 시찰을 한다. 오직 천진난만한 초원거북만 “내겐 무슨 상관이 있어?” 하듯이 어슬렁어슬렁 제 갈길만 기어가고 있다.


 목숨 붙은 모든 것이란 제 멋대로 살아가는 법이니까 삶에 대한 반응도 제각기 다르리라.


 “우르렁쿵쿵……쿵쿠웅…….”


 뇌성병력은 점점 더 거칠어져 온다. 돈키호테는 낮잠을 잘대로 다 잤는지, 아니면 홀로 있기에 싫증이 났는지, 싸구려 술병을 두손으로 가슴에 안은 채 비틀거리면서 둥그렇게 큰 검은 눈을 겨우 찌푸려 뜨며 훤칠한 키를 펴고 일어섰다. 벌판의 햇살에 그을릴 대로 그을려 흑인의 사촌쯤이나 가는 듯했다. 시커먼 바탕에 회백색이 뒤숭숭한 아래위 수염이 잡초같이 상판을 뒤덮고 덥수룩한 흑백 머리카락은 바람결에 흩어져가는 새둥지를 연상시켰다. 코가 덩실하여 주름살이 더 깊어보였다.


 그는 털이 뒤숭숭하게 난 왼손으로 병 목구멍을 마른 입술에 댔다.


 ‘외손잡이가 아닌 이상 술을 왼손으로 마시는 건 알코올 중독자의 징조일 거야.’


 구타페르카 마개를 이빨로 물어뺐다. 한 모금 들이키더니 “퉤”하고 내뱉었다. 그늘 속에서 50도를 오르내리는 초원의 이 날씨에 잠시 자는 동안 포도주가 텁텁해졌던 것이다. 다른 손으로는 궁둥이를 썩썩 긁었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반바지 같은 기다란 팬츠는 아마 여름이 시작되고는 한 번도 빨지 않았을 거야’


 검은 옷이 이젠 회갈색이 났다. 땀이 배고 먼지가 묻어 빳빳했다. 벗어서 세워놓으며 꿋꿋이 서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런 적막한 곳에서 팬츠고 넥타이고 분간해서는 뭘 해. 회갈색이면 어떻고 회황갈색이면 또 어때. 동서남북 아무 곳에나 대고 대낮에 -죄송하구려- 그 거러 빼 쥐고 내갈겨도 사방 150여 킬로미터가 완전 무인지경인데. 이런 데서 바지는커녕 아래에 달린 것도 달랑달랑 내놓고 시원히 지내고 싶었으나 그놈의 버릇없는 벌레들 때문에, 젠장..... 셔츠는 아예 입을 생각도 없었고, 자고 싶으면 자고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남의 눈길 피할 필요도 없으니, 아마 원시생활에도 나름대로의 멋은 있었을 거야.’


 마누라라도 있었으면야.


 “글쎄 그건 살아 가다가 보면…… 그런데 싸이가…… 고까짓 싸이가 놈이야 뭐. 내가 잠을 자든 말든 올 놈이면 오고, 갈 놈이면 갈 게 아니냐. 하긴 그 밀렵꾼들이…… 에라 제기랄! 오늘은 오늘 맛에 살고, 내일은 내일 팔자에 살아가는 싸이가도 있잖아. 오늘은 유수같이 흐르고 내일은 낙엽같이 날려가면 되는 거지 뭐. 가다가 걸리면…….”


 바깥 그늘 속에서 이런 생각 끝에 밑바닥에 조금 남은 술병을 안고 마른 풀 위에 누운 그는 “하, 내가 이렇게 달라졌나. 세상 일에 이렇게까지 무관심해졌어? 마음이란 신기한거야. 흠.” 하고 자기신세를 비웃는 건지, 세상만사가 쥐새끼 볼때기만큼이나 돼보인다는 건지 코웃음을 하며 이렇게 입 속을 중얼거리면서 잠 세계에 빠져들어 갔던 것이다.


 그저께 수렵회사에서 양식을 싣고 왔던 운전기사가 금요일 날 손님이 온다고 전했다.


 “특별 손님이라 하면서 사장이 너한테 정신을 바짝 차리라더군.”


 회사는 사냥도 했고 밀렵자도 경계했다. 그러나 회근에는 체제가 무너지면서 여러 가지가 엉망이 되었다. 겨울에 승냥이가 인가의 양우리를 공격하기가 예사지만 자금이 부족해 잡을 수도, 밀렵자를 경계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러던 중 털보가 매일 수당으로 포도주 한 병과 월급 몇닢에 초원에서 혼자 살기를 승낙했으니 천만 다행이었다.


 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도 언덕 하나 볼 수 없는, 당구알이라도 굴러갈 듯 반반한 이 초원에 수림으로 둘러싸인 낮으막한 산이 하나 있다. 대자연의 신기이다. 거기에 이전에 고위급 당 간부 휴식처를 마련하여 ‘궁궐’을 덩실하게 지어 놓았던 것이다. 그것이 지금은 수렵사의 소유물이자 돈키호테의 거처가 되었다. 거기에 ‘귀중한 손님’이 든다는 것이었다.


 “우르르쿵쿵쿵…….”


 싸이가 무리가 파도치고 있었다. 돈키호테는 망원경을 들었다.


 “수백 마리군. 염소보단 좀 큰 편일까. 코가 대단히 크고 높아, 그러니 이 건조한 중앙아시아 환경에서도 공기 속의 수분을 흡수해 저장한다지. 먼 거리를 쉬지 않고 몇 시간씩 달릴 수 있는 것도 그때문일 거야. 사람도 젏게 물 없이 오래 견딜 수 있었으면, 신경이 예민하고 조심스럽다지. 빠르기도 하고 그야 당연하지. 그렇지 않고서야 모조리 승냥이 밥이 될 수밖에. 아무튼 온순하고 예뻐.”


 하며 털보는 심심풀이 삼아 중얼거렸다.


 불시에 잠잠해졌다. 영양들은 풀을 뜯기 시작했다. 끝없는 초원에 평온이 깃들였다. 고요, 그 속에선 태풍의 씨앗이 싹트고 있는 법이다.


 돈키호테는 금요일 날 아침에 늦게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마음이 쓸쓸했다. 저 멀리 영야 무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악독한 게 인간이야. 하긴 내게 무슨 상관이 있어.”


 문뜩 저쪽에서 짚차가 두 대 달려왔다. 한 물류회사의 사장 경호원들과 함께 이십대 요리사 미녀 두명이 나왔다. 술과 안주, 그리고 영양도 몇 마리 내려놓았다. 엽총도 여러 자루 집 안에 들여놓았다. 군용 자동총도 있었다.


 얼마 후 여러 대의 짚차가 들어왔다. 손님과 함께 여남은 명의 아가씨들이 떠들썩하게 소란을 피우면서 내렸다. 경호원도 몇 명 되었다.


 “그래 어때. 괜찮아?”하며 목소리를 낮추고.


 “오늘은 술 냄새가 안 나는군.” 하면서 목소리를 낮추고.


 “귀중한 손님들이다. 정신차리라구. 망신시키지 말구. 알겠어?”


 “그럼요. 뭐 첫 번두 아니구…….”


 “그래, 많아?”


 털보는 양손을 쩍 벌리면서 머리를 기울여 싸이가 무리쪽을 가리켰다.


 트럭이 또 여러 대 도착했다. 목욕탕용 욕조가 몇 개 실려 있었다.


‘먹자회’가 벌어졌다. 음악소리. 웃음소리. 말소리가 왁자하게 들려왔다. 사내들이 도중에 잡은 영양으로 불고기를 했다. 자그마한 키에 히틀러식 콧수염을 한 수렵회사 사장 예게린 포크로 잔을 두드리고 일어섰다.


 “오늘 벌어질 멋진 사냥과 이화려한 죄석의 주인은 내가 아니요. 무역회사 사장인 우리 임 올레그 친구라구. 얘. 올레그. 축배제의하지.”


 새로 채용한 미녀 비서의 허벅다리를 쓰다듬고 앉아 있던 임 올레그는 잔을 들고 무게 있게 일어섰다. 항상 내리 드리워 있는 그의 아랫입술을 꽉 다물어져 있었다. 사기치기를 못하면 배를 않는 그는 사적소유를 허용치 않은 구 소련 시대에 벌써 뭉칫돈을 벌어놓았었다.


 “이와, 사냥터를 내줘서 감사해. 그리고 저 마라트 이브라예브 세관 부관자이라든가, 저 퉁소 눈깔 좀 보라구. 해먹게 생겼지.(불법상품을 통과시켜 줘서 감사하다는 암시였다.) 앞으로 협조를 믿네.” 하며 그는 귀리 알 같은 좁은 눈으로 부관장에게 의미 깊은 시선을 보냈다. (“호주머니에 톡톡히 찔러넣어 줄테니 부하들을 단단히 단속하라.”) 이 아가씨들 얼마나 포동포동해. 저 샬바이 오마로브 세무서장 기호에 딱 맞는 미녀들이야. (“세금을 면세해 줘서 인사차로 창녀를 끌어들였어.”) 감사해, 그리구 먼데서 오신 윤 사장, 이런 장수들 주먹에 의지하기다믄 잉게서 못해 내 일이 없으꾸마. 법은 멀구 주먹은 가까운 게임둥? 걱정 마르구 그 쪽 몫만 담당하께나.“ 하며 함경도 사투리로 떠듬떠듬 지껄이면서 ‘오뉴월에 축 늘어진 쇠불알’ 같이 번들거리는 대머리를 한 손으로 쓰다듬었다. 긴장할 때마다 하는 버릇이다.


 윤씨 또한 유명하다. 40대에 머리카락이 하얗고 콧수염이 허연 장사꾼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마중 나온 사람에게 먼 데서 손가락을 머리 위에 높이 쳐들어 V자를 만들어 보이곤 해서 유명해졌다. ‘아가씨 둘을 데리고 놀고 싶으니 찾아달라’는 암시였다. 꼭 러시아아가씨를 흰 베개에 흩어진 황금색 머리카락을 보는 시선의 충격으로 죽었던 뿌리가 빳빳하게 살아나는 기운을 새삼스레 느낀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무역 파트너인 임 올레그의 도움으로 중국에서 멋진 영양각 장사를 벌려볼 작정이었다. 그리하여 영양뿔 과련 상황을 검토하러 온 것이다. 영양이란 말만 들었지 처음이었다. 하긴 임 사장의 으은어를 이해하기엔 순진한 데도 있었다.


 임 사장은 통역까지 하면서 계속했다.


 “인생이랑게 하고플 땐즉슨 가능셍이 없구, 가능셍이 있게데믄 의욕이랑게 없는 법이지비. 사냥 하구 싶으믄 짐셍이 없구 싸이가가 나타나게다믄 시간이 없지비. 오늘은 이것두 저것두 다 있으니까디 행복이제이오? 항상 의욕과(내 비즈니스와) 가능셍이(너희들의 도움이)짝으 무어 서로 따라다니기르 기원하메. 이 잔으 들으자구…….”


 이윽고 손님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 차에 여럿이 타면 그 날쌘 놈을 따라잡을 수가 없으니 한 명씩 타라구. 돈키호테. 넌 여기 나하고 같이 타.” 하며 예게린이 지령을 내렸다.


 미련한 동물들은 코 밑에 바싹 닥쳐오는 참사를 예감치 못하고 태평스럽게 소리없이 풀을 뜯고 있었다. 짚차들은 제각기 갈라져 화살 같이 무리를 찔러 들어갔다. 예게린이 메가폰으로 자동차 움직임을 조절했다. 무리에는 두목이 있는 법이다. 그 놈이 무리를 이솔한다. 그러나 제 아무리 재주가 좋다 해도 메가폰으로 자동차 움직임을 조절했다. 무리에는 두목이 있는 법이다. 그 놈이 무리를 인 솔한다. 그러나 제아무리 재주가 좋다 해도 메가폰 연락을 당해내랴. 무리 또한 두목이 없이는 갈팡질팡 할 뿐 피할 방향을 찾지 못한다. 그리고 영양이 빨라 봤자 70여 킬로 이상 더 낼까. 평온의 삶터는 순식간에 깨어져 아수라장이 되었다.


 “우르르~궁궁…….”


 부연 먼지가 또 하늘을 뒤 덮는다. 온 대지가 파도친다.


 “030, 030, 왼쪽으로 돌아, 좌회전!”


 “716, 716, 너무 빨라, 좀 늦춰.”


 “829, 우회전.... 저기 20여 마리 보이지? 떼내라. 갈라 내. 두목을 못 따라가도록.”


 “612, 듣나? 저 20여 마리가 두목을 잃었어. 꼼짝 못해. 바싹 다가가. 쏴.”


 “탕.”


 “쿵.”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온다. 서로 밀치고 붐비어 거꾸러진다. 아마 금년에 태어난 새끼인 모양이다. 또 총알에 맞아 쓰러진다.


 “030, 조금 더. 오케이. 두목을 못 보게 막아. 사격.”


 “탕.”


 “타탕.”


 “쾅.”


 돈키호테는 고립 무원한 상태에서 수라장을 굽어보기만 하고 있다. 차는 약 5미터 가까이 무리에 다가갔다. 사장이 차를 세우고 겨누기 시작한다. 영양은 헐떡헐떡 하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빤히 쳐다 본다. 눈이 햇빛에 번쩍인다. 눈이? 아니다. 눈물이다. 숨이 차서 헐떡일 때마다 반짝반짝 한다.


 ‘분명히 눈물이야. 애걸의 눈물! 털보가 잘 못 몰 수 없어.’


 사장은 숨을 죽이고 겨눈다. 불씨에 털보는 사장이 앉은 앞 의자를 무릎으로 슬쩍 흔들어 놓았다.


 순간 “탕.”


 영양은 달아났다.


 아! 그제야 털보는 자기도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을 인식했다. 두 손바닥에는 땀이 쥐여 있었다.


 “앞으로 더. 됐어.”


 사장은 또 겨누었다.


 순간 돈키호테는 재치기 흉내를 내면서 어깨로 사장의 의자를 흔들어 놓았다.


 “탕.”


 “이 새끼가……. 조심 못해? 내려! 꺼져버려!”


 사장은 눈을 부릅뜨고 내질렀다. 총알은 빗나가면서 영양의 궁둥이 살을 찢어 놓았다. 빨간 피가 쪼르륵 흘러 다리를 타내려간다. 털보가 여는 문에 놀란 영양은 펄쩍 뛰어 도망쳤다. 그 자리에는 빨간 피가 바짝 마른 누런 땅 속으로 새어 들어가고 있었다.


 “쾅.”


 “웅.”


 수라장은 어느덧 저 멀리 옮겨 가고 있었다.


 “개자식들, 얼마나 배 터지게 처먹겠다고. 먹을 만큼 죽였으면 됐지 또 얼마나 더 죽여?”


 임 사장과 한 차르 탄 윤씨는 창 밖을 우두커니 내다보고만 있었다. 그는 길에서 헤매는 집 없는 개를 보면 상점에 들어가 소시지를 사서 던져주곤 했다. 그는 기분이 흐렸다. 그러나 사냥을 못하게 할수도 없었다. 더욱이 남의 나라에 와서. 어차피 사냥은 사냥이니까.


 여기저기에 주검이 스산하게 널려 있었다. 수십 마리였다. 누렇게 마른 풀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풀포기 사이, 쩍쩍 갈라진 흙 틈으로 어겨져 가는 피가 새어 들어가고 있었다. 비린내가 물씬물씬 했다. 아직 숨이 넘어가지 않은 놈들도 많았다. 바로 앞에 거꾸러진 영양은 머리와 왼쪽 앞다리는 움직일 수 없어 당에 대고 오른 쪽 앞다리와 두 뒷다리로만 한 자리에서 뺑뺑이를 치고 있었다. 그 옆에 쓰러진 짐승의 코와 입에선 숨을 내쉴 때마다 발간 액체가 흘러나와 낯판대기와 목과 가슴의 담녹색 털을 빨갛게 적시고 있었다. 그 뒤에선 늙은 수놈이 피 흐르는 찢긴 주둥이와 앞다리로만 땅을 허비면서 이미 죽은 뒷몸을 끌고 기어가려고 허비적거리다가 풀썩 거꾸러지면 한쪽 뿔로 흙을 파헤치면서 다시 머리를 들고 저둥질한다. 그럴 때마다 한 치 한 치 앞으로 가는데 찢어진 배를 뚫고 나와 땅에 깔린 창자가 늘어져만 간다.


 “아, 목숨이란 모질기도 하구나! 세상에 저렇게도 존귀한 게 곧 하나 밖에 없는 늙대! 사람이 평생에 선한 일도 다 못하고 저승귀신이 되는 법인데 하물며 저렇게 악한 짓을 하는 거야? 사람은 양심이 있어 짐승과 다른 것인데 인간이라는 게 어떻게 저 야수 같은 짓을 할 수있느냐 말야, 어떻게?”


 털보는 자기 눈이 믿어지지 않았다.


 “주워먹지도 않고 버릴 텐데 먹으려고 잡았는가. 심심풀이로 한짓이지.”


 돈키호테는 주검들을 파묻어 주기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인간이 어떻게 시체를 그저 지나갈 수가 있어.”


 털보는 이미 숨진 놈부터 끌어다 몇 마리씩 모여놓고 드문드문 외롭게 서 있는 싹싸울나무 가지를 꺾어다 덮어주었다. ‘초원의 철강’이라는 이 식물은 너무나 단단해 팰 수없다. 어두울 때 도끼 등으로 때려 부수면 불꽃이 번쩍거린다. 게다가 가시까지 앙상해 찌리고 뜯기면서 수십 마리의 ‘장례’를 치르고 나니 해는 벌써 서산에 걸렸다. 저 멀리 사냥꾼 행렬이 먼지를 날리며 돌아갔다. 돈키호테는 반항할 수 없는 자신의 연약함을 저주했다.


 그는 영양이 불쌍했다.


 “이 지역의 ‘네 발 철새’나 다를 바 없는 영양. 봄바람이 한들한들 털을 쓰다듬으면 북쪽으로 올라가고, 대자연이 단풍옷을 입기 시작하면 남쪽으로 대가리를 돌려 수천 수만 리를 생의 무대로 삼아 정처 없이 삶을 이어 헤매는 ‘네 발 철새’, 아니 이를 테면 ‘철양’이라 할까. 미친 폭풍이 휘몰아 살판치는 인척이 없는 거친 들에서 하루 아침에 소문도 없이 조용히 태어나, 한 생을 끝없는 길에서 모진 삶의 풍파와 싸워 뜯기도 찔리고 물리고 맞아 허덕이면서도 여태껏 서로 의지하고 추울 때면 옆구리를 이불 삼아 서로 붙이고 누워 쪽잠을 자며 풀 한 포기를 나누어 먹으면서 간신히 목숨을 이어가다가 어느 한 이름 모를 벌에서, 아니 운명의 모충이에서 저 멀리 씩씩하게 떠나가는 형제들을 맥없이 바라보면서 마지막 한숨을 쿠쉬- 내쉬며 하소연도 없이,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은 채 풀썩 거꾸러져 항상 뒤를 쫓는 승냥이, 초원독수리의 밥이 되고 마는 가련한 동물!”


 초원에서 빠른 다리가 구제자라곤 하지만 세상엔 기는 놈 위에 뛰는 놈, 뛰는 놈 위엔 나는 놈 있는 법이 아닌가. ‘두 발 맹수’는 더 무서운 총도 가지고 있고, 초원의 승냥이가 잔인하다곤 하지만 ‘두 발 승냥이’보다 잔인한 존재가 하늘 아래에 더 어디 있으랴. 싸이가의 맛은 양고기와 비슷하나 그보다 뀌어나고 더 영한고 즙이 많으며 지린내 없음으로 써 사람의 눈길을 이끈다. 또 뿔은 정격 강장제라고 한다. 그리하여 영양각 장사꾼들이 모여드는 것이다. 이게 곧 영양의 자랑이자 비극의 원천이다. 달리 보면 인간의 선과 악을 갈라놓는 시금석이기도 하다. 이것은 돈키호테의 판단이었다.


 그는 허둥지둥 걸었다. 길 아닌 길가에 싸이가가 눈워 있었다. 목을 틀어 낯판대기를 하늘로 향하고. 매끈한 위족 회록색 옆구리에 영깉 피를 파리가 빨아먹고 있었다. 입에서는 계속 빨간 줄기가 가느다랗게 흘러나왔다. 능숙한 조각가가 정성을 다하여 깎아놓은 듯 우미하고 갓난 어린애 손목같이 약한 앞다리는 부러져 있었다.


 쭈구리고 앉아 들여다보았다. 문뜩 감았던 눈이 슬그머니 띄었다. 명랑한 동그란 눈, 아름다운 신부의 눈이었다. 짙은 녹색인지 흑갈색인지, 아니면 밤색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습기 어린 까만 속눈썹이 시르르 떨렸다. 그럴 때마다 수정같이 깨끗한 까만 눈동자에 비낀 발간 저녁 햇살이 반짝반짝했다.


 돈키호테는 자신의 시선을 뗄 힘이 없었다.


 “이것들이 없으면 이 땅이 얼마나 쓸쓸할까. 이놈들이 바로 꽃다운 꽃 하나 제대로 피지 않는 메마른 이 중앙아시아 벌판의 꽃이 아닌가. 이 땅 지구의 꽃다발이야. 우주의 화관, 아니 인류의 미의 원천이다. 이걸 어떻게 마구 찔러 죽이고 쏴 죽이고 때려 죽이고 차로 깔아뭉개 죽여? 미를 어떻게 말살할 수 있느냐 말야?”


 문뜩 영양의 왼쪽 눈에서 한 방울의 눈물이 조용히 흘러나와 쪼록 타내려 사라졌다.


 돈키호테는 그 어떤 전류가 몸에 짜르르 흐르는 것을 감촉했다. 싸이가가 자기를 원망하는 것만 같았다.


 “나를 왜 죽였어, 왜? 살아 숨쉬는 숨통을 왜 끊어? 무슨 죄가 있다고?”


 시간 가는 줄도 , 낮 더위에 흠뻑 젖은 셔츠가 밤바람을 받아 등을 싸늘하게 식혀주는 것도 감촉하지 못하고 정신 없이 그 아름다운 눈만 들여다보고 있던 돈키호테는 저도 모르게 지난날의 회상ㅢ 마디마디를 한 치 한 치 더듬어 빠져들어갔다. 무거운 추억이었다.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뒤로 히뜩 드러누웠다. 땅은 따뜻하고 포근하기까지 했다. 하늘엔 벌써 주먹만한 별이 총총했다. 손을 들면 달 수도 있듯이 바로 머리 위였다. 초원에선 별이 유달리 크고 가까워보인다. 잘도 저만치 떠 있었다. 털보는 아름다운 밤이 쓸쓸하기만 했다.


 



 그는 수염과 깊은 주름살 때문에 ‘할아버지’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었다. 실상 아직도 50대 미만이었다. 돈키호테는 어린 시절부터 장미색 안경을 통하여 세상을 내다보았다. 쾌활하게 자라나면서 만사에 원칙성과 공정감이 남달리 강했다. 키가 훤칠하게 크고 싱글벙글 거리는 미남으로서 동네 아가씨들의 눈물도 많이 짜냈다. 일찍 석사가 되었다. 학술 논문을 끝내어 선배 박사에게 보였더니 그는 몇 가지를 지적하는 체하면서 중얼거렸다.


 “햇내기가 발표를 하려면 권위있는 학자의 이름도 써넣어야 순조롭게 되는 걸세. 그것도 자기 이름 앞에다가 말이야. 내 이름이 편리하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그 뭐 반대를 해서야 되겠나. 자네의 장래를 봐서라두……. 이건 전통이야.”


 ‘이렇게까지 파렴치할 줄이야!’


 반항심은 화산처럼 터졌다. 결국 발표커녕 정문을 쾅 닫아 치우고 말았다. 이것이 꼭대기였다. 여기서부터 내리막길이 시작된다는 것을 그때 그는 생각조차 못했다. 새로 취직을 한 여러 연구소도 매일반이었다. 곳곳마다 틀을 박고 있는 위선, 관료주의, 뇌물 행위, 아첨과 무관심성을 두 주먹으로 치고 박고 싸웠으나 남은 건 혹뿐이었다. 남의 일도 화살같이 곧은 강직성을 구부리지 않고 자기 일같이 동조했다. 아무튼 ‘돈키호테’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은 지도 그때부터였다. 한 동창생이 귀에 찔러준 말은 지금도 생생하다.


 “이 세상엔 똑똑한 사람은 잉여인간이야. 돈키호테 같은 인물은 필요 없는 세상이란 말일세. 한 마디로 하나의 큰 ‘두르돔(정신병원)’이야”


 결국 마누라까지 볶아대기 시작했다.


 “밥벌이도 못하는 가짜똘똘이를 끼고 한 지붕을 덮고 사는 내가 등신이야.”


 사나이의 고통을 채원 넘치게 한 마지막 방울이었다.


 “그 말이 옳아. 난 불운자야.”


 아픔을 술로 씻기 시작했다. 하루는 거나하게 취하여 돌아오니 현관에 돈키호테의 큰 가방이 두 개 던져 있었다. 자기의 소지품이 분명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빠빠(아빠), 가지 마.” 하면서 세 살이 좀 지난 아들애가 내뻗친 눈물 묻은 두 손이 아비의 가슴을 후비어 뜯는다. 그는 그 손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는 한 안사람을 재취할 생각을 포기했다. 어린이 가슴에 상처를 입히지 않으려고.


 “더러운 놈의 세상!”


 그는 세상을 저주한 나머지 속세를 등지고 초야 속에 묻혀 술과 함께 살아오고 있는 것이었다. 이따금 심장의 한 구석에서 희미한 그 무엇이 꿈틀거릴 때마다 “이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그 놈의 세상이야 될 대로 되라지.” 하며 세상만사를 잊으려고 은둔의 세계로 점좀 더 멀어져 들어갔다. 그 속에서 삶의 안식처를 찾았다.


 그럴수록 사람이란 감동이 긴장할 때면 까맣게 잊고 있던 일들이 추억의 구석에서 새삼스레 살아나는 법이다.


 ‘그때가 언제였더라. 대여섯 살이나 되었던가.’


 거의 죽어가는 새끼싸이가를 아버지가 안고 왔었다. 저녁마다 김 알렉세이와 돈키호테, 그리고  어머니인 러시아 여인 안나 보리쏘브나 - 세 식구는 ‘환자’를 보살피노라 여념이 없었다. 이듬해 봄이 왔다. 어린이는 완쾌한 영양을 밖에 대리고 나가 ‘싸이-싸이-싸이’하면서 희희낙락하면 고놈은 짤막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졸졸 따라다녔다. 그러다가 아이가 자빠지면 깡충깡충 뛰어와서 뺨을 핥아주곤 했다. 따뜻하고 간질간질한 그 혀가 그리도 정겨웠다. 그러다가 ‘철양’ 무리가 올라올 때 딸려 보냈다.


 돈키호테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이게 고놈이나 아닐까!”


 하늘을 향해 추켜들었던 주둥이는 피 밴 땅에 떨어져 있었다. 아름답던 눈은 감겨져 보이지 않았다.


 “흠, 무슨 놈의 엉뚱한 생각이야? 이 넓은 들에 요놈들이 몇십만마리라구. 아니, 글쎄. 그때가 언젠데.”


 그는 풀을 뜯어 시체를 덮어주었다. 어느덧 동이 트면서 따스한 햇살이 얼굴에 닿았다. 그제야 긴장을 느낀 그는 마른 풀에 드러누워 무거운 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안 s라 도살을 마치고 돌아온 ‘귀중한 손님’들은 술판을 벌였다. 서로 만히 잡았노라고 떠들썩한다. 아가씨들을 마구 끌어안는다. 그 푸둥푸둥한 엉덩이를 덥석 만져본다. 젖가슴에 손을 밀어넣는다. 돼지 멱 잘리는 소리를 지른다. 쓰다듬고, 주물고, 빨고…… 하나씩 벗고 벗겨지고 너 나 없이 알몸이 되었다. 엎친 데 덮치고 범벅이 되어 누가 누군지 누가 위고 어느 놈이 아랜지, 그 중에는 임 사장의 비서도, 그 미녀요리사도 끼어 있었다.


 “헤-헤-헤-…….”


 “아-아아…….”


 “으으-음…….”


 원시시대에도 단체 섹스가 있었던가.


 러시아 여자를 좋아하는 윤씨건만 역겨워 빠져 나와 풀방석 위에서 밤하늘을 덮고 시원하게 초원잠을 잤다. 늦게 깨어나 좀 먹으려고 집안에 들어가니 밤새도록 바쿠스 장난을 친 무리는 그 자리에 그대로 거꾸러져 코를 골고 있었다. 도로 나가서 산책을 했다.


 손님들은 토요일 날 저녁녘에야 비로소 한 명씩 깨어나 하부에 시트만 걸치고 앉았다.


 해장술 한 잔이 또 폭주가 되어버렸다.


 임 올레그가 “어전 잉게루 오오.” 하면서 일어났다. 아가씨들도 왁자하게 따라갔다.


 “아, 윤씨, 딱 자르(잘) 왔스꾸마. 날래 오오.”


 경호원이 욕조에 싸이가의 피를 쏟아 부었다. 절반쯤 찼다.


 “윤씨, 먼저 들어가오.”


 “뭐?”


 올레그는 아가씨의 젖가슴을 덥석 끌어안으면서


 “이 포동포동한 것들을 다룰 힘이 나야 하제이 아이겠소? 이게 강장제오.” 하고는 아가씨에게 “이 겁쟁이 신사를 도배해라”하면서 아가씨를 윤씨에게 밀었다.


 비틀거리는 대여섯 창녀들은 엄살을 부리며 달려들어 억지로 옷을 벗기고 피 속으로 밀어 넣었다……손님 모두 ‘정력을 보강’했다. 바쿠스가 기지개를 편 것이다.


 어느덧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자, 이젠 체조나 좀 할까요.”


 예게린이 일어섰다.


 여섯 손님은 트럭을 하나씩 탔다. 윤씨만 임 사장과 한 차에 올랐다. 트럭마다에 총 대신 삽과 뾰족한 쇠몽둥이와 도끼가 실려 있었다. 싸이가 무리를 찾아 떠났다.


 “이 도 살장을 떠나가야 해 그러나 저 먼 길을……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장도 해야겠고, 하지만 저놈들 때문에…….”


 꿍꿍이를 앓고 있던 돈키호테는 행렬이 떠나가자 들어가 빵과 물병을 망채에 넣고 총을 메고 나왔다. 탄환도 많이 챙겼다.


 트럭들은 불을 끄고 싸이가 무리에 다가갔다. 일시에 불이 커졌다. 짚차를 타고 있던 경호원들도 사방에서 불 공격을 들이댔다. 수백 개의 눈이 불빛을 반사하여 불바다를 이루었다. 갑자기 밝아지니 눈이 멀어 도망칠 엄두도 못했다. 사냥꾼들은 이틈으로 타서 닥치는 대로 트럭 위에서 내리 갈겼다. 삽으로. 쇠몽둥이로. 도끼로.


 “그만 합시다.”


 윤씨가 말했다.


 도시를 향해 걷던 털보는 사냥차의 불을 발견했다.


 “다문 한 마리라도 살려야해.” 하고 결심하고 그쪽으로 달려가면서  영양을 쫓아버리려고 헛방을 탕탕 쐈다.


 “아, 불쌍한 놈을……. 그만두세요. 짐승을 잡아도 분수가 있지.”


 임 사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후닥닥 내리쳤다. 또 한 쌍의 불이 꺼졌다.


 “차를 세우세요.”


 도끼를 높이 든 팔을 휘어잡아 당기면서 다호하게 고함을 쳤다.


 “아, 어째 이러오.”


 윤씨는 그만 뛰어내렸다. 방향도 모르고 절뚝절뚝 절며 걸었다.


 “윤씨, 윤씨.”


 “……”


 돈키호테는 계속 쐈다.


 “저 새끼…….”


 누군가가 고함 질렀다.


 동틀 무렵까지 죽였다. 때려서, 찔러서, 바퀴로 뭉개서…….


 털보는 풀 위에 앉았다. 고요했다. 수십 마리가 죽어 널려 있었다. 자기의 허약이 안타까웠다.


 “하긴 사람 목숨도 저런 것이지. 강자는 약자를 잡아먹는 것이니까. 더러운 놈의 세상이야.”


 잠시 피로를 가시려고 누웟다가 잠에 떨어지고 말았다.


 “너희 인간은 야수…… 태어난 때부터 기고 걷고 뛰고 나는 것이란 모조리 죽일 줄만 알고…… 강간, 전쟁…… 핵무기 실험이랍시고 풀도 자라지 모하…… 자연을 약탈…… 아랄해가 죽어가고 그 지역에서 날려간 먼지를 북빙양에서 발견…… 그러니 체르노블 원자력발전소 사고……유해물질이 미국, 한국, 오스트레일리아까지도 가지 않을 수…… 우리형제를 마구 죽이고…….”


 “사람도 먹어야…….”


 “…… 몇 마리만 잡아먹으면 됐지 수백 마리는 왜 죽여. 오락 삼아, 목적 없이. 인간도, 싸이가도 대자연 일부…… , 식물이 있어야 동물을 아끼고 배려하고 보호할 의무……. 인간과 식물계와 동물계는 하나의 생활권 안에서 불가분의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다. 그것이 파괴되면 인간도 살아 남지 못한다는 걸 대대손손 기억하라…….”


 털보는 헬리콥터 소음에 깨어났다. 집 앞에 잠시 내렸다가 싸이가 무리쪽으로 날아갔다.


 “아, 저 악한들이 공중사냥을…….”


 돈키호테는 총을 들고 있는 힘을 다 내어 그 쪽으로 달려갔다. 헬기는 무리 위에서 맴돌았다. 총소리가 콩 볶듯했다. 싸이가는 뛰다가 쓸어져 갔다.


 “아, 다 죽겠다. 다 죽어. 이젠 진짜 다 죽겠어. 개새끼들아-아-아.”


 그는 저도 모르게 적중 사격을 들이댔다. 총알은 빗나가기만 했다. 한참 후 헬기는 그의 머리 위에 내리기 시작했다. 몇 명의 경호원이 털보를 붙잡았다. 도살자들은 욕설을 퍼붓고 우롱을 했다. 그는 단호히 대항했다.


 “네놈들은 사람 가죽을 뒤집어만 썼지 인간이 아니야, 악마야, 악마!”


 경찰 대령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저 국내전쟁 때 백파들이 빨찌산들을 잡아 거꾸로 달아매놓고 고춧가루를 물에 타서 콧구멍에 부어넣어도 소용이 없더래. 그래서 산속에 끌고 가 옷을 벗기고 나무에 얽어 매놓으니까 모기가 헤-헤-헤……. 새까맣게 달라붙을 게 아냐. 모기는 못 견디더래.”


 모두 경쾌하게 한바탕 웃었다.


 털보를 헬기에 태워 십여 킬로미터 되는 곳에 가서 옷을 벗기고 전봇대에 동여맸다.


 히틀러를 닮은 수렵사장이 노발대발했다.


 “나를 개망신시키고도 무사할 줄 아니. 이 바짝 마른 땅에 모기가 별로 없으니 모기 앞에 절이나해.”


 “당신은 밀렵자요. 잘못 될 것이오. 두고 보세요.”


 도살자들은 몇 시간 후 한 잔 잘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털보 앞에 내렸다. 영양을 끌고 왔다. 경호원이 싸이가의 목을 따서 몸덩이를 높이 들엇다. 피는 돈키호테의 머리에 쏟아져 줄줄 타내려 갔다.


 “히-히-히”


 “헤-헤-헤”


 헬기는 날아가버렸다.


 어두워졌다. 가려워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털보를 전율케 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달이 뜨자 저 멀리 불덩어리 같은 것이 번쩍거렸다.


 “저게 뭘까. 살아 남은 싸이가는 멀리 갔는데. 스-스-승냥이 눈?”


 겨울에 이 지역에서 그 놈이 사람을 잡아먹었다. 털보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먹을 것이 많은 여름철에야 사람에게 달려들 까만 피 냄새가 위험하게 자극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 윤씨는 여러 갈래의 갈림길에서 서슴거렸다. 망원경으로 내려 보고 있던 임 사장이 그를 발견했다. 그는 다시는 이 나라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영양각 장사도 걷어치웠다 한다. 행방 모를 그 어디서 황금색머리카락을 회상하면서 남모를 미소를 짓고 있는 지…….


 달빛은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이따금 귀뚜라미소리만 초원의 정적을 깨뜨렸다. 불덩어리들은 돈키호테가 얽매어 있는 쪽으로 점점 움직이고 있었다. 반짝반짝. 깜빡깜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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