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오정근: 수필] 캐나다 형사법정 견학을 마치고
페이지 정보
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3,330회 작성일 10-06-07 10:44
본문
건물 복도에는 다른 곳보다 유난히 넥타이 맨 남자들이 눈에 띄었다. 대기 의자에는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 두서 명씩 앉아 노심초사하는 눈빛으로 두런두런 속삭였다. 시간이 되어 법정 문 개방을 알리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나왔다. 그날 내가 견학할 법정에서는 보석(Bail)여부를 결정하는 심리였다. 법정 밖에는 당일 진행될 재판의 피의자 이름과 범법행위 따위가 종이에 붙여졌다. 10시부터 시작되는 오전 재판에만 48명이 심리대상이었다. 법정의 풍경은 깔끔하니 여느 분위기와 색다르게 느껴졌다. 우선 법대가 있는 벽에는 사법심볼이 고급스런 문양으로 큼지막하게 붙어있었다.
왕관과 깃발을 사자와 말이 떠받드는 모양이었다. 흰색과 푸른 색이 섞여 있어 권위적이라기 보다 오히려 산뜻한 느낌이었다.
판사의 법복은 우리 조국과 조금 색다르다. 법복위로 흰색 목받침(디키)과 수박색 어깨띠를 반쯤 두른 모습이 특이했다. 판자 바로 앞 한 계단 낮은 자리에는 법복을 입은 서기 2명과 속기사가 방청객을 마주보고 일을 본다. 여성 속기사가 감기에 걸렸는지 코와 입 위에 수증기를 쏘이는지 연신 붙였다 떼기를 반복했다. 그러니까 한 손은 늘 입가 주변에서 맴돌았다. ‘아마 감기 때문에 오늘은 속기를 못하고 녹음해둔걸 나중에 작업할 모양이다’라고 생각했다. 참 우습기도 하고 좀 무식한 생각이었다. 재판 후에 알게 된 사실은 고국과는 달리 캐나다에서는 속기를 타이핑하지 않고 속기사가 진행되는 모든 말을 입으로 따라 한다는 거였다. 입 마스크처럼 생긴 물체를 입에 대고 검사, 변호사, 판사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반복녹음을 했던 거였다. 말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두터운 스폰지 같은 것으로 방음처리한 물체였기에 그렇게 보였다. 속기를 하는 이유는 재판 후에 검사나 변호사측에서 속기록을 요구하면 그 때 그걸 풀어서 속기록 제공서비스를 유료로 한다고 했다.
법정 출입문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엉덩이를 뒤로 내밀며 가볍게 목례를 하며 그 권위에 존경심을 보인다. 법정판사가 입장하거나 퇴장할 때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모두 사법 권위를 존중한다. 마침 그날 초등학생들도 견학을 왔다. 6학년생들과 2학년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교대로 참관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매우 효과적인 학습장면이란 생각이 들었다. 법정에 출두한 피의자들은 3명씩 들어왔다. 그 가운데 피의자는 양손에 수갑을 찬 상태로 입장하여 피의자석에서 손을 높이 들어 방탄복을 입은 경찰이 수갑을 풀어주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법 정신을 배울 수 있겠다. 또한 이 학생들도 출입하며 목례를 배우는 과정에서 존경에 대한 의미도 배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속적부심이라 하는 재판에서 검사는 구속 또는 보석타당성을 논고한다. 보석을 원하면 보석보증인과 보석금을 예치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자식이 말썽을 부리는 엄마가 방청하고 있는 걸 확인한 검사는 피의자인 아들에게 학교와 일하러 가는 것을 제외하고 30일간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서 설거지, 쓰레기 버리기 등 소일거리를 할 것을 명령했다. 피의자가 수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자 보석이 허락되었다. 그런 논고는 일상적인 것은 아니고 약간은 부모입장을 고려해 그런 명령을 내린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피의자는 1991년도에 살인혐의자였다. 그 당시 범인 3명 가운데 유일하게 체포되지 않은 상태였다가 사흘 전에 구속되었다. 재판 후 캐나다에 공소시효가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니 범법자는 살아있는 한 반드시 처벌을 받도록 하는 것이 법 정신이어서 시효란 것이 없다고 한다. 나도 의당 그래야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죄를 짓고 도망 다니도록 부추길 필요가 없다. 도망 다니는 그 자체가 형벌이라고 하지만 진정 뉘우쳤는지 시효가 지난 이후 다시 범죄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는가.
보석허가에 대한 기준을 알아보니 첫째는 도주 가능성, 둘째는 재범 가능성, 셋째는 법 감정을 고려해 결정한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구속 이후 재판을 받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가급적 보석금을 영치하고 보석허가를 해 준다고 한다.
그 경우 1년이 넘어서야 재판을 받게 되는 게 캐나다 현실이란다. 만일 보석허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에는 3개월 이내에 재판을 함으로써 억울한 옥살이를 하지 않도록 한다. 항소하려면 3천불이상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것이 어려운 피의자 경우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하소연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이른바 자본주의에 약점이란 생각이다. 어찌하건 죄를 짓지 않고 살아야 하지만,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돈도 충분히 마련하고 살아야 한다는 점도 교훈이었다. 또한 보석신청자 가운데 부모나 형제가 아닌 사촌인 사람도 있는 걸로 보아 평소 인간관계도 잘 하고 살아야 남들도 어려울 때 도와준다는 것에서도 교훈을 얻는 하루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