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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오정근:수필] 나는, 무음(無音)의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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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3,030회 작성일 10-06-0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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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에 거주하면서 나이아가라 폭포를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큰 혜택이다. 세계적인 명소인 그 곳을 한 해 동안 세 차례나 가 보았다. 폭포를 구경하고 나이아가라 온더레이크라는 작은 마을을 둘러 본 첫 느낌은 옛 정취가 주는 편안함이었다. 폭포의 웅장함을 느끼고 난 이후라 그런지 마을의 분위기에서 한층 여유가 느껴졌다. 작은 마을에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교회나 연중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파는 상점 등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제법 눈에 들어왔고, 매년 7개월간 버나드 쇼의 작품만을 무대에 올리는 전용 극장(850)을 갖춘 것이 흥미로웠다. 인구 5천 명의 작은 마을에 4개의 공연장 그것도 좌석수가 도합1,600석이나 된다니 놀라웠다. 음악 공연을 포함해 연극 수요가 많다는 점에 문화명소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공연이 성행할 정도로 자리매김한 이유는 나이아가라 옆에 위치하고 있다는 이유도 그렇지만 연극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매력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흔히 인생을 연극과 같다고 하지만 연극에서처럼 우리가 각본에 따라 삶을 산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의 인생각본에 따라 살아간다고 말한 학자가 있다. 캐나다 출신 정신과 의사인 에릭 번 박사는 유아기에 자신을 양육해준 부모로부터 쓰여진 인생각본을 각자의 무의식에 저장해 놓고 산다고 했다. 인생각본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자신과 세상에 대해 긍정적 혹은 부정적 태도를 지닌 채 평생을 산다는 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부모로부터 영향을 받은 낡은 각본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의 각본을 새로이 써야 함을 그는 강조했다.

 

이제 겨우 이민생활이 일년 반 남짓한 내 경우, 이민선배들의 회고를 통해 그들의 고단했던 삶과 정신을 배우게 된다. 그들을 연극에 비유한다면 평생 무대에 몸을 바친 일급배우임에 틀림없다. 또한 인생각본을 새로이 쓴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무대설정을 캐나다로 옮겨 놓고 치열하게 살아온 덕에 이제 완전한 뿌리를 내리고 안착을 했다. 아니 안착을 넘어 활착을 한 셈이다. 연극으로 비유하여 말하자면 이민고참들은 고정배역을 맡은 사람이요, 뒤 늦게 이주해 온 나는 나이든 중늙은이가 배역 하나 맡지 못한 어정쩡한 존재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아직 뚜렷한 직업이나 사업에 진입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고국에서 명퇴 이후 사회적 역할이 멈추자 심리적 공백도 컸다. 이민을 와서도 안식년이라 생각하고 조급함을 버리자 생각으로 마음을 진정시킨 적이 많았다. 뜻하지 않게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닥치니 내 원래 의도가 흐트러졌다. 안식이 2년 차에 들어서자 불안함이 커졌다. 이른바 연극 극단에서 배역을 못 맡은 신세라는 생각으로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사업을 아직 시작하지 않은 것이 약이 되었을 성 싶기도 하다. ‘서두르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안식을 하며 지내는 동안 책 읽는 일과 글 쓰는 일에 취미를 들이게 되었다. 다행히 바로 집 앞에 도서관이 있어 횡재했단 기분으로 다니곤 했다. ‘누구나 꿈꾸는 하루의 일상이라는 생각도 했다. 좋은 책을 읽으며, 새롭게 깨달음을 주는 글이나 좋은 문장을 메모해두는 기쁨은 엔도르핀 그 자체였다. 독서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독서는 작가라는 사람을 만나 오랫동안 알찬 이야기를 듣는 일이요, 글을 쓰는 일은 나를 치유하는 훌륭한 작업이란 걸 깨달아갔다.

 

얼마 전 수필집의 고전으로 잘 알려진 피천득님의인연이란 책을 다시 손에 잡았다. 쉰 줄에 읽는 느낌은 새로웠다. ‘플루트 연주자제목의 수필을 읽던 중 인생은 연주와도 같다는 암시를 받았다. 피천득님이 마치 나를 위해 써 놓은 말 같았다. 인생각본을 인생악보로 바꿔 생각하는 단초를 주었다.

 

남의 파트가 연주되고 있는 동안 기다리는 것도 무음을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 야구팀의 외야수같이 무대 뒤에 서 있는 콘트라베이스를 나는 좋아한다 라는 글이었다. 무대에서 배역을 받지 못했단 생각으로 초초해 하는 마음을 비로소 내려놓게 되었다. 어쩌면 일을 벌이지 않아 금융위기를 쉬며 지나는 중이라는 위안이 커졌다. 나는 지금, 어찌 보면 무음을 연주 중인지 모르겠다. 오케스트라 단의 연주자로 엄연히 존재는 하되 악보에 있는 대로 내 차례를 기다리며 연주를 잠시 멈춘 나는, 무음의 연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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