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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필: 공원묘지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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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3,048회 작성일 10-06-0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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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토요일 하늘은 기막힌 봄소식을 전해주고 있다. 나무엔 물이 오르고 파란 싹들은 파릇파릇 나뭇가지에도 잔디밭에도 생명의 기지개를 펴고 있다.

내가 사는 곳에서 걸어서 3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에 욕-공원묘지가 있다.
그곳엔 친정어머니와 시부모님의 산소가 있다. 우리 부부가 묻힐 유택도 마련된 곳이기도 하다. 남편과 함께 점심을 싸들고 소풍을 갔다.
엄마에게 먼저 들렸다. 친정어머니는 아직도 엄마라고 부르고 싶다.

“엄마! 나도 엄마처럼 품위 있게 노년의 세월을 살다 갈께요” 엄마 손등처럼 비석을 쓰다듬었다. 목욕 시켜드리듯 비석을 닦고 싶었는데 4월의 변덕스런 날씨 믿을 수 없는지 아직도 수돗물은 열리지 않았다.
비석 앞 작은 꽃밭 흙을 고르고 잡풀을 뽑아주며 어머니날 다시와 엄마가 좋아하는 꽃을 심겠습니다 말씀드린 후 시부모님께 들려 인사 올렸다. 비석 양쪽을 감싸듯 작은 상록수가 제법 싱그럽다.
고인의 삶의 흔적을 유택(幽宅)에서 다시 떠올리며 묘지를 택했음은 가신 분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떠나보낸 남은 자들을 위한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석과 비석사이 벤치위에 점심을 펼쳤다. 김밥도 커피 맛도 일급이다. 우리들이 묻힐 땅을 딛고 앞을 바라보면 시원하게 탁 트인 정면으로 십자가 새김이 선명한 전몰장병 기념탑이 우뚝 서 있다.
언제 일지 모르나 우리가 떠난 후 아직도 우리를 기억하고 있는 아이들과 친구들에게 공원묘지 산책 구실을 제법 줄 것 같지 않겠느냐며 마주 보고 씨익 웃었다.

비석사이를 거닐며 얼마나 살다 갔나, 비문엔 뭐라고 적혀있나, 후손들은 얼마나 있나, 하나하나 살펴봄은 공원 산책의 또 다른 맛을 더해준다.
그런데 한 분의 비문 앞에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거기엔 영어로 “To live, To love, To strive, To end with dignity” 라 쓰여 있다. 참으로 열심히 살며 사랑하며 최선을 다하여 살다가 품위 있게 생을 마감했다는 고인의 깔끔했던 살아생전의 모습이 어렵지 않게 떠올랐다. 참 마음에 와 닿는 비문이다.

갑자기 내 무덤에 세워질 비석이 그림처럼 떠올랐다.
나는 비문에 뭐라고 적어 달랄까? 그래서 훗날 우연히 내 무덤 곁을 지나던 한 나그네가 지금의 나처럼 큰 소리로 비문을 읽으며 ‘참 잘 살다 갔나보네’ 중얼거릴지도 모르지. 그 중얼거림이 잊지 못할 씨앗 되어 가슴에 싹 티어 줄 작은 방 마련 할 구실이 될 수 있다면...
그런데 어림도 없다는 내 삶의 모습이 마음의 거울에 비추어지며 발상 자체가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다.
진솔한 한 줄의 비문을 창출하기 위해서라도 정성스럽게 주어진 남은 삶을 살아야 할 과제를 안고 돌아오면서 어머니가 그리울 때 찾아 갈 수 있는 공원묘지에 유택이 있음을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수필가 민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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