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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쿠바 한인의 후예를 찾아서 9 (민혜기)] 쿠바 한인의 후예를 찾아서 9 (마지막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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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3,771회 작성일 10-06-07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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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시가 거리 정렬적인 음악과 함께 광대들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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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밍웨이가 기거 했다는 호텔
 
03.JPG▲ 어네스트 헤밍웨이 초상화
 
 
헤밍웨이와 아바나(Havana)
 
고층 건물이 즐비한 신도시 보다 우리들의 관심은 스페인 통치 시대 모습을 간직한 구 하바나 거리를 걷는 것이 더 컸다. 쿠반 발음대로 아바나(Havna)라 불리는 인구 2백 10만의 쿠바 제1의 도시 이곳을 소요하면서 사회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혁명광장’을 둘러보았다. 쿠바정부 청사 벽엔 체 게바라(Che Guevara)의 큰 초상화가 걸려있다. 얼핏 카스트로보다 체 게바라를 쿠바국민들은 더 숭배하는 것처럼 보였다. 엄청난 규모의 캐톨릭 성당은 59년 쿠바 혁명 이래 방치해 두었던지 건물은 낡았고 앙상하기만 했다.
 
쿠바는 어찌 보면 아주 재미있는 나라다. 쿠바를 말할 때 피델 카스트로와 체게바라 그리고 현 라올 카스트로를 빼놓을 수가 없단다. 형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의 목소리며 얼굴이며 정신이고 아우 라올 카스트로 현 대통령은 혁명을 위해 뽑은 단검이며 체 게바라는 두뇌란다. 이 3두 정치가가 힘을 합쳐 쿠바를 제이의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쿠반들에겐 이런 강력한 정신적인 지도자가 있어 쿠반들의 애국심은 대단하다는 것이며 또한 이들은 아름다운 카리브해 섬사람들이어서 그런가 샤샤 음악과 함께 현실을 받아드리는 낙천가들이다. 하바나 구 도시엔 관광객들로 넘쳐흐르는 사이사이 광대들의 음악과 춤이 익살스럽다.

날씨가 을씨년스러워 따끈한 커피 한잔 마시러 카페를 찾았다. 조용히 한잔 나눌 자리도 없이 음악과 사람들로 가들 할 뿐 아니라 담배연기는 목구멍까지 매큼하게 해주며 코 속을 자극했다. 쿠바의 시가는 유명하다 담배를 꼬나문 손님들로 가득한 카페의 풍경은 흡연을 장려하는 듯 자욱한 연기가 금연지역에서 살다온 우리로서는 감당키 어려웠다.
 
나는 무엇보다 헤밍웨이의 체취를 어서 느끼고 싶었다. 결국 차 한 잔 나누지 못하고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7년 동안 머물며 집필 생활에 전념했다는 Hotel Ambos Mundas를 서둘러 찾아갔다. 5층 511호 호텔 방 입구엔 헤밍웨이의 실물크기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그의 이름이 적혀있다. 마침 안내인과 함께 우린 그 가 기거했다는 침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싱글 베드와 책상 그 위엔 그가 썼을 타이프라이터 그리고 소장했던 책들이 가지런히 넣어진 책장이 있고 벽에는 네 여인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아름답게 생긴 벽안의 안내인은 헤밍웨이에 대해서 전문인인 냥 자세히 설명해준다. 나와 실버 팀 중 Mr 박과 단둘을 놓고 마치 그녀에게 초청받은 사람 앞에서처럼 성의 것 이야기해주고 있다. 우연이나 행운이란 생각이 들었다. 헤밍웨이 여인 편력은 대단 했던가 보다. 그는 네 여인과 결혼했고 이들과 사랑에 빠졌을 때 가장 좋은 작품을 썼다 한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도 이곳에서 집필했고 ‘에덴의 정원’ ‘강 건너 숲‘ 모두가 그 때 쓰여 졌다는 것이다. 
 
‘강 건너 숲’은 말년에 사랑했던 이태리 미녀 마드리나 이반치에 대한 연모가 이 소설을 낳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의 가장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바다와 노인] 역시 실제 인물을 모델로 아바나에 머무는 동안 썼다. [무기여 잘있거라]도 전쟁에 참전한 소설 속 주인공 헨리는 바로 자신을 모델로 한 전쟁문학의 걸작 품 중 하나다.  

쿠바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고 아바나를 관광의 명소로 한데는 단연 헤밍웨이의 공로가 으뜸이다. 그는 1899년 시카고에서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지만 그가 자살로 생을 마쳤던 1961년 까지 인생 후반부 20년 동안 쿠바에 살면서 그의 찬란한 명작들이 창작 되었으니 나도 이를 계기로 헤밍웨이를 다시 살펴보게 되었다. 

도피코 목사는 우리에게 놀라운 뉴스를 전해주었다. 대전 오페라 단이 쿠바 ‘팔리아치’ 공연을 하기위해 이곳에 와 있다는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 보다 폐쇄 국가인 사회주의 쿠바 정부가 외교 관계도 없는 한국의 한 예술 단체를 4년째 초청 아바나 대 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다는 이 말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 왔다. 정말 쿠바 아바나 대극장(Grand Teatro de Habana) 정문엔 오페라 공연 사진이 크게 걸려있다.
 
공연을 감상 할 수는 없었으나 한창 공연 연습에 바쁜 단원들과 만나고 잠시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퍽 다행이었다. 이번 공연은 1월 31일부터 2월 8일 까지 6회 공연 예정이라며 쿠바예술인들과 함께 공연 할 것이란다. 최남인 단장과 만난 이영수 토론토 재외동포 신문 편집장은  인터뷰 기사를 상세히 말해주었다. 쿠바문화부와 쿠바국립오페라단  공동초청으로 무대에 오르는 ‘팔리아치’는 국내 정상급 오페라 가수인 김지호 한예진 오승룡 조병주 이정환씨 등이 출연 임명직씨 지휘 아래 쿠바국립오페라단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협연한단다. 때가 맞지 않아 감상 할 수없이 유감이었다.
           
카리브해의 석양은 아름다웠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항만의 불빛들이 하나씩 둘씩 바닷물 속에 떠오르고 있다. ‘배를 저어 하바나를 떠날 때...’여고 시절 즐겨 불렀던 노래가 절로 나왔다.
아바나 시를 조금 벗어나 우리 일행과 합류한 쿠바에 유일한 한국계 무역업체 문윤미 엠펠로스 부장은 마침 한국 출장 중인 김사장을 대신해서 어느 바닷가 아바나 중국 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시장기는 우리를 적당히 피곤하게 했고 만찬의 기대는 그 피로를 풀게 해주는 앤돌핀이 되었다. 우리를 초대해 준 엠펠로스(Ampelos Group)사 김동호 사장은 대전오페라단 협찬까지 해주는 사업가다.
 
 헤밍웨이가 즐겁게 찾아왔다던 낙시 터에 자리 잡은 고급스럽게 생긴 중국식당은 외모만 봐도 훌륭했다. 7일 동안 서양식단에 조금은 식상해 있던 우리들로선 중국음식이 여간 반갑지 않았다. 식당에 들어서니 뜻 밖에도 또 한 구릅의 한국 사람들이  와서 건배를 들고 있다. 왼 일인가 싶었다. 우연치고는 재미있다. 알고 보니 현대중공업 직원들이었다. 어느 직원의 승진 축하회 회식이라 했다. 현대중공업은 2005년 9월에 쿠바 정부로부터 8억 달러 상당의 발전설비를 수주했다. 2006년부터 설치를 시작 금년 안으로 설치공사가 끝나면 기술지원 인력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철수하고 완전 철수는 2010년 에 하게 된단다. 쿠바는 발전소의 현대화로 일종의 전기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낙후된 이 나라가 삶의 조건은 열악하나 카리브해의 진주라고 불리우리 만큼 빼여난 경관은 세계인들에게 동경의 섬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설사 사회주의 국가로 외교적인 고립상태에 있다지만 그 언젠가는 이웃 나라 미국과 소통이 되고 문호가 개방된다면 늦어도 10년 후의 쿠바는 지금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새 모습으로 태어날 것이란 막연한 기대가 헛된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틈틈이 남편의 휠체어를 밀고 바라데로 호텔 근처를 산책하는 길과 숲과 야자수 사이사이 화사하게 우리를 반기는 이름 모를 빨간 꽃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즐겼던 우리들만의 시간 역시 잊을 수없는 귀한 시간이었다. 비록 7박 8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보고 경험했다. 토론토로 귀환한 나는 쿠바 여행 중 뇌 속 정비(Brain Tun-up)를 하고 돌아온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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