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목수와 봉황의자 (강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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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2,553회 작성일 10-06-06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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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와 봉황의자
어제 저녁의 세찬 비바람도 화사한 아침 햇살에 꼬리 감춘 개 모양으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싱그러운 나뭇잎들이 오월의 따스한 태양아래 유난히도 반짝이고 있는 것이 아름다움을 느끼게 까지 했다.
온통 회색으로 장식된 도시의 한 복판에 서 있노라면 이따금 걷잡을 수 없는 외로움이 슬퍼지기도 하는 이 곳에서 동혁은 후배양성에만 전력하고 있었다.
구로동! 인생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진실한 시민의 생활들을 피부로 느끼며 유신 교육원이라는 조그마한 종합 학원을 경영하면서 취미생활인 미술과 소설을 습작하고 있었다. 물론 대여섯 명의 선생님들이 풀타임 혹은 파트타임으로 11개의 교실에서 성의를 보이고 있었지만 먹고살기 위한 수단이요 아르바이트란 명목으로 그저 시간 때우기를 하고 있는 선생들도 있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이곳에서 자리를 잡은 지 수년을 지나다 보니 무시 못할 터주대감, 아니 사 교육 기관의 지역 사령관으로 군림하는 편이었다. 그 날도 동혁은 중간고사를 비롯한 시험결과 및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원생들의 지능검사와 적성검사의 작성에 관한 요령을 점검하고 있었다.
빽-빽하고 벨이 울렸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수업시간 외에 찾아오려면 닫혀진 철문을 열어야 하는데 문을 열어 달라는 신호였다.
“누가 왔나봐요”
원장선생님의 잔심부름을 해 주며 잠자는 시간만 빼고는 학원에서 생활을 하다시피 하는 재수생 박 지혜의 말이었다.
“나가 봐 이 시간에 누가 왔을까!”
눈짓으로 박 양에게 문을 열어 주라는 시늉을 하며 작성하고 있는 답안지에서 다시 눈을 떼지 않는 동혁은
“선생님 손님 오셨어요” “아이 참 원장 선생님! 손님 오셨다니 까요!”
박 양이 몇 차례나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을 그제야 들었는지 고개를 들고 낯선 손님을 바라보았다.
“아, 예, 어서 오십시오 여기에 앉으시겠습니까?”
“저 강 동혁이라고 합니다. 이 학원의 원장올습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동혁은 언제나 그렇듯 이 학원을 운영하고 경영하는 최고 책임자로서 예의 범절을 잘 갖추어서 깍듯이 자리를 권하며 손님을 영접하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저.... 저희들은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렀습니다. 유신 교육원이라 해서 혹.... 무엇을 하는 곳인가, 하고.”
그의 말투가 질문을 하는 것인지 대답을 하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라 동혁은 좀 이상하다고 느꼈다. 뭔가 잘못 됐다는 느낌이다. 동혁이 손님을 맞으며 ‘어서 오십시오, 제가 아무갭니다’라고 하기 이전에 상대방에서 먼저 ‘원장 선생님 되십니까? 저는 아무개라는 사람입니다’라든지 ‘아 그렇습니까. 만나 뵈서 반갑습니다.’라고 하든가 했어야 하는데 다짜고짜 지나가다 들렸다느니, 아니 교육원이란 말과 책걸상만 봐도 교육하는 곳이란 것은 삼척 동자도 알아먹을 판국인데........
아래위를 힐끔 보고 나서야, 이 양반들 키 한번 되게 크군! 구척 장신이군, 거기다 상큼한 정장을 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어디에 종사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겠다는 느낌이다.
한 사람도 아닌 두 명씩이나.........동혁은 앉아 있는 이들에게 담뱃갑을 내 놓았다.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지만 손님 접대용으로 한산도란 담배를 늘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으므로 그 담배를 내 놓은 것이다.
“저 태우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여기 있습니다.”하고 자기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이들은 아직까지 자신들의 신상을 밝히지 않고 있었다.
“인천 쪽을 가다가 유신 교육원이라 씌어 있기에 뭘 하는 곳인가 하고 들어 왔습니다. 유신이란 말이 붙어 있어서요...........”
“네......? 뭐가 잘못 되었습니까? 다만 학원 이름입니다만, 그리고 선생님들은 누구신지요?”
“아....예 그냥 지나가던 사람입니다...”
“이런 싱거운 사람들을 봤나!”
“보아하니 교육하는 학원 같은데..... 학원 이름은 누가 지었지요? 유신이라구.......”
“왜요? 제가 지었는데요..........”
“그렇습니까 어떤 의미에서 유신이라고 지었나요?”
“어떤 뜻이라뇨, 꼭 그걸 선생님들께 밝혀야 합니까? 새 ‘유’자에 믿을’신’자로 새로운 세상, 새롭게 믿으며 비젼을 갖고 살자는 뜻에서.......”
“아! 그래요 참 좋은 의미군요..... 그런데 허가는 받고 합니까?”
갈수록 가관이었다. 이 작자들이 누구이기에 능구렁이 담 넘어가듯 물어 오는 것일까! 동혁은 눈으로 벽에 걸린 서울시로부터 발급 받은 자격증과 허가증을 주시했다. 그들도 동혁의 눈길을 따라 하얀 액자에 넣어져 벽에 걸린 증서들을 보았다.
“그렇군요 시로부터 교육위원회로부터.......”
“ 참 이상하군요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이봐요..... 당신들은 누구 신데..... 아니 그럼 우리가 자격증과 허가증을 위조하여 영업을 한단 말입니까?”
동혁은 화가 치미는 것을 참으며 되묻는 말이었다.
“광고를 보니 영등포 역에서 구로 역까지 2색 도로 된 광고를 많이 붙였던데 유신이란 말이 빨간 글씨더군요........”
아무래도 이상했다.
“혹시, 관에서 나오셨나요, 위생과에서 나오셨나요?”
“아....... 아닙니다. 그저........”
“말씀해 주십시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조사차 나오신 것 같은데.........”
동혁이는 안되겠다 싶어 떠져보기로 했다.
“말씀해 보십시오, 바쁘실 텐데.......”
“저런 광고 아직도 많이 남아 있지요?”
벽에 붙어 있는 광고 포스터를 보았다.
“없습니다 몇 장 남아있던 것 마저 붙였습니다.”
“이거 왜 이러십니까, 원장 선생님, 있으면 내어 주십시오.”
“네, 뭘 내 놔요?그걸 무얼 하시려 구요?”
서로 신경전을 벌이듯 탐색을 하다가 한참의 침묵이 흐른 다음, 그들은 상의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어 들었다. 그리고 그걸 동혁이 앞에 내밀면서 이런 사람이라고 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동혁이는 명함을 받아 들고 자세히 읽어보았다. ‘한국 문화 교류 연구소‘라고 씌어 있고 통제구역 표시처럼 두 줄로 된 빨간색 사선이 오른쪽 상단에서 왼쪽 하단으로 그어져 있었다. 말하자면 두 줄의 붉은 색 사선이 명함의 장식임과 동시에 그들의 신분인데..... 주소는 동대문구 석관동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상하다고는 느끼면서 확실한 감은 잡지 못했다. 잠시 후 그도 머리 속으로 하나 둘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학교 같은 곳이나 흔히 일반적으로 들어오던 이야기가 생각 난 것이다.
중앙정보부가 이문동에 있다느니, 중정은 서릿발같다느니, 남산에 끌려갔다 나오면 병신이 되어 나온다느니, 남산에 불려간 사람은 인간이하의 취급을 당한다느니, 가족들의 면회까지 거절되고 인격적인 대우는 사치라 해도 동물취급도 안 한다느니, 자신들의 행적과 숫자도 파악을 하지 못한다느니, 등등........
자신도 그런 꼴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섬광처럼 뇌리를 스쳤다. 그는 발 빠른 판단 하에 무엇인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저희들은 시로부터 그리고 교육위원회로부터 정식으로 허가를 받고 수업을 시키고 있습니다만,.... 뭐가 잘못 된 것입니까? 말씀해 주시면 당장 시정토록 하겠습니다.”
“유신이란 말입니다. 이 단어는 아무나 사용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대통령각하께서 창안해 낸 단어입니다. 그런데 왜 일개 학원이 유신교육원이라고 이름지어 허가를 받았는지, 아니면 어떻게 해서 허가나 자격증을 내어 주었는지 모르겠군요! 어째든 이런 것을 확인하는 것이 우리 임무이니 각하께 보고를 해야 하겠습니다. 광고 용지가 남아 있는 것은 모두 내 놓으시요”
명령조다. 이런 명령을 듣고 있는 동혁으로서는 참으로 난감했다.
“선생님들 정말입니다. 다른 이유에서도 아니고 또 광고 용지도 남은 게 없습니다.”
그도 저 자세로 변해가고 있었다.
“왜 이러십니까. 포스터 말입니다.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주시지요!”
“정말 입니다. 제가 왜 있는 것을 없다고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런 거짓말을 할 일은 앞으로 없을 것입니다....”
동혁이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했다가 백짓장처럼 창백해졌다. 그리고 예감이 이상했다. 자꾸만 서릿발같은 횡포가 자신의 주위를 맴 돌고 있었다.
동혁이는 서랍에서 봉투를 꺼냈다. 그리고 그 봉투 안에 8천원을 담았다. 봉투를 닫아 겸손하게 그리고 겸연쩍게 내밀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우를 범하지 않겠습니다. 지역사회 개발에 앞장선다고 생각해주시고 선처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들은 봉투를 다시 동혁이 앞으로 밀어 놓으며
“점잖으신 분이 왜 이러십니까? 더구나 교육자가 이러시면 안 되지요! 청렴과 결백을 모범으로 보이시야지요!”
정말 다급해짐을 느꼈다. 곧 일어서며 ‘잠깐 갑시다 동행해야 되겠습니다’ 그들로부터 이런 말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낭패다 이제까지 지역 사령관이란 자부심을 가지고 정정당당하게 살아온 동혁이 마음에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가슴이 가파르게 뛰었다. 눈도 캄캄해졌다.
학원 학생들 중에는 장학사의 아들도 교육감의 딸도 교장 교감에 경찰 경감 정보과장에, 사회 각층에서 활동하는 자제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고 있었던 터라, 웬만해서는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생활해 왔는데 이번만큼은 정말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다. 다급해졌다. 동혁이는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길은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담배를 권해도 봉투를 내밀어도 노숙하게 거절하며 유신이란 단어만 되풀이하는 이들에게 어떤 특별한 지혜와 대책도 막무가내란 생각이 들었다.
정말 허사라 생각되었고 그 보다도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까지 부지하기 힘들 것이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태풍처럼 몰려 왔다. 앞이 안 보인다. 온통 세상이 노란 것이었다. 이러니 하는 말이지만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사람에게 사죄를 빌어 보긴 처음이었다. 자존심이 상한다는 생각은 객관적일 때 해보는 사치다. 그러니
“선생님 이거 죽을 죄를 졌습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요. 내일부터 학원 문을 닫으라 하시면 닫겠습니다. 그리고 전봇대와 담벼락에 붙은 광고 포스터도 깨끗이 제거하겠습니다. 한번만 용서하여 주십시오. 젊은 사람 한번만 살려주십시오 내. 한번만 용서해 주시면 정말 정당하게 살겠습니다.”
이처럼 같은 뜻의 내용을 수 십번도 더 반복하며 차례 상에 올려놓은 제물에 붙은 파리 앞발을 비비는 것처럼 손을 싹싹 비비며 빌고 또 빌며 살려줄 것을 요청했다. 저승사자라도 만난 것인가! 아니 저승사자가 따로 없는 것 같았다. 동혁에게는 그들이 저승사자였다.
그렇게 생명을 비는 것이니 비는 것도 진실이었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처분만을 바라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의 침묵이 흘렀다. 얼마나 흘렀을까! 동혁은 다리에 쥐가 나는 줄도 몰랐다. 그냥 용서를 베풀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무엇을 잘 못했는지도 사실은 알지 못했다.
누가 동혁이의 잔등이를 툭툭 쳤다. 그리고 잡아 끌었다. 일으켜 세웠다. 동혁이는 저려 오는 다리를 조심스럽게 세우며 의자에 앉았다. 앉은 게 아니라 앉혀 진 것이었다.
‘젊은 사람이 그렇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화끈하게 봐 달라고 하니 화끈하게 봐 주겠오. 아무리 죄를 지었어도 죄지은 사실을 알고 뉘우치며 용서를 빌면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게 사람이 사는 곳 아니요? 인간 사회에 파렴치한 일들이 좀 많습니까? 화끈하게 용서를 빌고 화끈하게 봐 달라면 우리도 화끈하게 봐 줍니다.”
하는 말을 들은 동혁이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뭘 잘못했으며 뭘 그렇게 간절히 빌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원장 선생님, 우리도 젊은 시절을 다 겪은 사람들이요. 얼마나 좋습니까! 후배들의 교육에 앞장도 서고, 하신 말씀대로 교육은 곧 이 나라의 자산인데 사회 발전에도 앞장을 서는 일이 아닙니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사실은 나도 이 근처에서 살고 있습니다. 가끔은 이 근처를 지나 곤 하지요. 나는 선생님의 실력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어떤 과목에 편중하지 않고 전반적인 교육을 지향한다는 사실도. 영어와 수학에만 치중하는 여타 학원과는 달리 전인교육에 목적을 두고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는 사실도, 토요일에는 교과수업을 벗어나 부서별로 토론회를 개최하여 발표력과 청취력 이해력을 통한 인내를 훈련하고 이런 훈련을 통하여 자기의 의견을 조리 있게 상대에게 전달하는 교육을 하며 또 격주에 한번은 방송국이나 신문사 같은 언론기관을 찾아가거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원이나 극장 등 여러 곳을 찾아가 생활 현장 체험을 쌓고, 적성검사나 지능검사를 통하여 진로에 도움을 주는 것 등.....”
“아니 그런 걸 다 어떻게!........’
“우리가 아는 것은 그것뿐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유명한 사립대학 즉 명문교 국문학과를 졸업하여 시나 소설 등을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하시기도 하고 군 복무 중에는 삼선개헌을 지지하는 강사로서 부대주변 중 고등학교를 순회하면서 유신 헌법에 따른 우리의 각오를 강의하셨고 ...... 휴가 때도 쉬지 않고 인근 중 고등학교를 방문하여 의식 계몽에 앞장을 서 주위로부터 각광을 받기도 하고, 국가 비밀 문서를 취급하는 1급 비밀 취급 인가자이기도 하고요........”
이들은 동혁에 대한 개인 신상에 관한 것이나 학원을 운영하는 방침에 대하여 세부적인 것까지 상세히 알고 있어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있자니 놀란 입이 절로 벌어졌다. 이것이 중앙정보부란 곳에서 일하는 사람의 통찰력이구나 싶었다. 세상을 자기 손바닥을 바라보는 것처럼 상세히 보고 있으니 당하는 사람의 입장은 기가 찰 노릇이다.
“아이구, 그만하십시오, 송구스럽게......”
‘정말 훌륭하신 분입니다. 이해하십시오. 직업이 직업인지라 우리가 한다고 하는 것이.... 그저 이런 일이고 보니!”
“그나저나 선생님 학원 문을 닫게는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학원 이름을 바꾸는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름을 바꾼다면 뭘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터져 나온 말이었다.
“하하! 이 양반 물에 빠진 사람 건져 놓으니 보따리 내 놓으란 식이군, 살려 놓으니 이제 학원 이름까지 지어 달라네...... 그래요, 제작해 놓은 광고 포스터도 남아 있을 거고 그 광고 용지를 사용할 방법을 생각해 봐요. 예를 들어 획을 하나 더 그어서 좋은 이름을 지어 봐요.”
“글쎄요 생각이 잘 나 질......... 유신을 윤신, 육신 유산 유.........”
동혁은 아무리 해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들도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한참 후 그들 중, 키가 장대처럼 후리후리하게 큰사람이 입을 열었다.
“좋은 게 생각이 났습니다. 신자에 점을 하나 사용하여 ‘선’자로 만드시지요 착할‘선’자로....
‘아! 그게 좋겠군요 새 ‘유’자에 착할 ‘선’이라.........”
이 지역에 산다고 자기를 소개한 김무신이란 사람이 옆에 있는 이찬일이라는 사람을 힐끔 쳐다보며 한 말이다. 동혁이는 이 사람들이 나를 이제 잡아가지는 않겠지 하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반격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새 ‘유’자에 착할 ‘선’, 새롭고 착하게 살자고......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사는 뜻에서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죽을 목숨 살려 주시고 작명까지 해 주시니.....”
동혁의 말을 다소곳이 듣고 있던 이 찬일이 이렇게 말했다.
“화끈하게 봐 달라면 화끈하게 봐 줍니다. 용서를 빌고.....”
“암, 그렇지요 우리도 사람이니까요!......”
김 무신이란 사람도 응답을 했다.
“좋습니다만..... 유신이란 말이 각하께서 창안 해 내신 단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만... ..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일본 놈의 말 중에 명치유신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뭐요? 이 사람 죽을 목숨 살려주니 이제 막 기어오르려고 하네”
“또 그 좋은 이름을 학원가에서 사용하는 게 뭐가 나쁩니까? 교육은 국가의 자산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신성한 교육기관에서 사용하려는 것을 왜 막으려 하십니까?”
항의 조로 퍼붓는 동혁의 말에
“이 봐요 젊은 사람이 못하는 소리가 없어, 유신이란 각하가 창안해 낸 단어로 정부 교육기관이나 연구기관에서나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한 단어요. 암 학생들을 지도하는 곳도 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지, 그렇지만 차원이 다르잖아요!”
햐 이 세뇌된 자들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요, 동문서답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밥을 먹고사는 방법도 여러 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동혁을 보고 목공소에 가 보았느냐고 물었다. 동혁은 목공소엘 내가 왜 가냐고 오히려 그들에게 반문을 했다. 그들의 대답은 목공소에 가면 봉황이 그려져 있는 의자를 만들어 낼 수가 없다고 했다. 봉황의자는 국부인 대통령밖에 앉을 수 없는 의자라 하여 유사한 봉황의자를 만들어 팔아도 법에 저촉이 된다고 했다.
이런 소리를 듣고 있으면서 정말이지 서릿발같은 중정 전성시대에 얼마나 많은 양민과 지식인이 고통받고 투옥되었나를 생각할 때 세월이 흐른 후에야 역사가 귀결지을 문제라 생각되었다. 정치는 시대의 흐름을 역행할 수 없다는 것이 진리이고 보면, 중정의 포악한 이 현상도 국민의 수준이고 만다.
봉황의자와 목공소, 목공소와 봉황의자!
정치현황과 국민의 의식수준, 국민의 의식 수준과 정치 현황! 정말 보이지 않는 함 수 관계요 그 시대가 잉태한 하나의 사회를 대변해주는 부산물인 것임은 틀림이 없다.
어째든 어려운 일이나 애로사항이 있으면 이곳으로 연락을 하라며 주고 간 그들의 명함을 받아 주머니에 넣으며 동혁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분노와 젊은이로서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더불어 사는 세상에 독보적인 존재가 활개를 친다고 생각을 하니 정말 한심스러웠다. 그 후 전화위복이 된 것인지 학원 운영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위생 검열을 받을 때도 동네 어귀의 파출소로부터 전갈을 받기가 일수였다. 언제 위생 검열을 나오니 찜빠 당하지 않게 하라고.........
지적을 당하면 내가 당할텐데 왜 그들이 걱정을 한단 말인가! 그렇게 하는 것이 시민의 지팡이 구실을 잘하는 것이란 말인가! 한 마디로 웃기는 일이었다. 오히려 행정기관에서 부탁을 해 오니 말이다. 그들도 그럴 게다. 감히 뒤를 봐주는 무리가 누구라고. 누구의 명령이라고...... 이러니까 역으로 말하면 중 정이란 곳에서 근무하는 말단이 치안 행정부처를 모두 주무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런 생각을 하다 동혁은 고개를 가로 젖고 있었다. 무언가 잘 못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군대 생활을 할 때 혼자 돌담 근처를 서성이고 있노라면 종종 사진부에서 사진을 찍는 낌새를 느꼈고 술집 테이블에 앉아 친구를 기다릴 때도 누군가 따라붙어 자신의 거처를 확인하는 느낌을 자주 받곤 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간첩과 접선이 가능한 지역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오래 방치한다면 친 북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나 진짜 간첩과 접선할 수 있기 때문에 의심을 받게 된 것이다.
국가비밀, 그것도 일급비밀 취급 인가자가 남모르게 겪는 아픔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일이다. 동혁은 한사람의 독재자가 만들어낸 피라미드 형태의 사회구조가 언제 끝이 나 이와 같은 부조리의 형태가 붕괴되어 줄지 기다림에 갈증이 난다. 이러한 갈증 속에서도 현세대가 겪어야만 하는 고통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마치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깨닫지 못한 자신이 파리처럼 그들에게 빌어야 했던 것이 그 예다.
분단된 나라! 한국의 국방을 책임진 군인들의 특정 집단에도 조직이 연계되어 감시와 함정과 술수가 난무했으며 그 속에서도 꼭두각시가 되어야 했었다. 심지어 삼선개헌 투표를 할 때는 기표한 용지를 부대장에게 보여야 하고 참정권 안에 포함된 투표의 비밀을 보장받을 권리를 박탈당한 비 민주주의의 실태가 지나간 후 생각하니 농익은 꽈리 모양으로 분통이 터질 것 같았다.
동혁이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모세관 혈관처럼 민중 속에 파고들 때는 미세하지만 염통의 힘을 믿고 설치다가 미세한 혈관이 터지는 곳에서의 민중은 죽음이다. 그와 같은 조직의 끄나풀! 저들도 집으로 돌아가면 수고했다는 인사를 받을 가장이 아닌가!
그리고 가족 중에, 더러는 천진하고 때묻지 않은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 것이고 그 고귀한 손에 저 더럽게 거두어들일 악의 화신을 채워 줄 것이다. 동혁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하여 흘려온 피는 고귀하다.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하여 씌어진 재물은 가치를 다한 것이다.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하여 받혀진 지혜는 사명을 다한 것이다. 이 세상에 무지개가 피어오르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하여 정의를 회복하여 진실된 마음으로 저들을 가르쳐야 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원장 선생님 안녕하세요? 우리 수길이는 요즘 어때요? 워낙 개구쟁이라서 말썽은 안 피우는지 원.........”
“선생님 우리 민자 말이에요, 대학입학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한강 대학은 무난할까요?”
한 시대의 흐름을 통하여 그 흐르는 역사에 순종하는 사람과 거슬러보려 노력하는 사람 사이에서 맑게 흐르는 시냇물이 되도록, 부단히 노력해야할 책임이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밤새 휘몰아쳤던 비바람이 싱그러운 잎새의 생명이 되는 근원이며 아침 태양에 영롱한 이슬로 다시 태어나는 본질이다. 이런 섭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기도 하고,,,,,,,,,,,,
저 하늘 높은 곳에서 아름다운 새들의 노래 소리가 온 누리에 울려 퍼지고, 사람들이 행복해 웃는 웃음소리가 함께 반죽이 되어 평화가 지속되는 세상이 다가오리라는 희망이 실현되기 위하여, 서로가 신뢰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을 우러러, 변질될까 두려운 자신의 내면을 향해 매질을 하고 또 매질을 한다.
온통 회색으로 장식된 도시의 한 복판에 서 있노라면 이따금 걷잡을 수 없는 외로움이 슬퍼지기도 하는 이 곳에서 동혁은 후배양성에만 전력하고 있었다.
구로동! 인생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진실한 시민의 생활들을 피부로 느끼며 유신 교육원이라는 조그마한 종합 학원을 경영하면서 취미생활인 미술과 소설을 습작하고 있었다. 물론 대여섯 명의 선생님들이 풀타임 혹은 파트타임으로 11개의 교실에서 성의를 보이고 있었지만 먹고살기 위한 수단이요 아르바이트란 명목으로 그저 시간 때우기를 하고 있는 선생들도 있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이곳에서 자리를 잡은 지 수년을 지나다 보니 무시 못할 터주대감, 아니 사 교육 기관의 지역 사령관으로 군림하는 편이었다. 그 날도 동혁은 중간고사를 비롯한 시험결과 및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원생들의 지능검사와 적성검사의 작성에 관한 요령을 점검하고 있었다.
빽-빽하고 벨이 울렸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수업시간 외에 찾아오려면 닫혀진 철문을 열어야 하는데 문을 열어 달라는 신호였다.
“누가 왔나봐요”
원장선생님의 잔심부름을 해 주며 잠자는 시간만 빼고는 학원에서 생활을 하다시피 하는 재수생 박 지혜의 말이었다.
“나가 봐 이 시간에 누가 왔을까!”
눈짓으로 박 양에게 문을 열어 주라는 시늉을 하며 작성하고 있는 답안지에서 다시 눈을 떼지 않는 동혁은
“선생님 손님 오셨어요” “아이 참 원장 선생님! 손님 오셨다니 까요!”
박 양이 몇 차례나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을 그제야 들었는지 고개를 들고 낯선 손님을 바라보았다.
“아, 예, 어서 오십시오 여기에 앉으시겠습니까?”
“저 강 동혁이라고 합니다. 이 학원의 원장올습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동혁은 언제나 그렇듯 이 학원을 운영하고 경영하는 최고 책임자로서 예의 범절을 잘 갖추어서 깍듯이 자리를 권하며 손님을 영접하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저.... 저희들은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렀습니다. 유신 교육원이라 해서 혹.... 무엇을 하는 곳인가, 하고.”
그의 말투가 질문을 하는 것인지 대답을 하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라 동혁은 좀 이상하다고 느꼈다. 뭔가 잘못 됐다는 느낌이다. 동혁이 손님을 맞으며 ‘어서 오십시오, 제가 아무갭니다’라고 하기 이전에 상대방에서 먼저 ‘원장 선생님 되십니까? 저는 아무개라는 사람입니다’라든지 ‘아 그렇습니까. 만나 뵈서 반갑습니다.’라고 하든가 했어야 하는데 다짜고짜 지나가다 들렸다느니, 아니 교육원이란 말과 책걸상만 봐도 교육하는 곳이란 것은 삼척 동자도 알아먹을 판국인데........
아래위를 힐끔 보고 나서야, 이 양반들 키 한번 되게 크군! 구척 장신이군, 거기다 상큼한 정장을 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어디에 종사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겠다는 느낌이다.
한 사람도 아닌 두 명씩이나.........동혁은 앉아 있는 이들에게 담뱃갑을 내 놓았다.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지만 손님 접대용으로 한산도란 담배를 늘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으므로 그 담배를 내 놓은 것이다.
“저 태우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여기 있습니다.”하고 자기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이들은 아직까지 자신들의 신상을 밝히지 않고 있었다.
“인천 쪽을 가다가 유신 교육원이라 씌어 있기에 뭘 하는 곳인가 하고 들어 왔습니다. 유신이란 말이 붙어 있어서요...........”
“네......? 뭐가 잘못 되었습니까? 다만 학원 이름입니다만, 그리고 선생님들은 누구신지요?”
“아....예 그냥 지나가던 사람입니다...”
“이런 싱거운 사람들을 봤나!”
“보아하니 교육하는 학원 같은데..... 학원 이름은 누가 지었지요? 유신이라구.......”
“왜요? 제가 지었는데요..........”
“그렇습니까 어떤 의미에서 유신이라고 지었나요?”
“어떤 뜻이라뇨, 꼭 그걸 선생님들께 밝혀야 합니까? 새 ‘유’자에 믿을’신’자로 새로운 세상, 새롭게 믿으며 비젼을 갖고 살자는 뜻에서.......”
“아! 그래요 참 좋은 의미군요..... 그런데 허가는 받고 합니까?”
갈수록 가관이었다. 이 작자들이 누구이기에 능구렁이 담 넘어가듯 물어 오는 것일까! 동혁은 눈으로 벽에 걸린 서울시로부터 발급 받은 자격증과 허가증을 주시했다. 그들도 동혁의 눈길을 따라 하얀 액자에 넣어져 벽에 걸린 증서들을 보았다.
“그렇군요 시로부터 교육위원회로부터.......”
“ 참 이상하군요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이봐요..... 당신들은 누구 신데..... 아니 그럼 우리가 자격증과 허가증을 위조하여 영업을 한단 말입니까?”
동혁은 화가 치미는 것을 참으며 되묻는 말이었다.
“광고를 보니 영등포 역에서 구로 역까지 2색 도로 된 광고를 많이 붙였던데 유신이란 말이 빨간 글씨더군요........”
아무래도 이상했다.
“혹시, 관에서 나오셨나요, 위생과에서 나오셨나요?”
“아....... 아닙니다. 그저........”
“말씀해 주십시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조사차 나오신 것 같은데.........”
동혁이는 안되겠다 싶어 떠져보기로 했다.
“말씀해 보십시오, 바쁘실 텐데.......”
“저런 광고 아직도 많이 남아 있지요?”
벽에 붙어 있는 광고 포스터를 보았다.
“없습니다 몇 장 남아있던 것 마저 붙였습니다.”
“이거 왜 이러십니까, 원장 선생님, 있으면 내어 주십시오.”
“네, 뭘 내 놔요?그걸 무얼 하시려 구요?”
서로 신경전을 벌이듯 탐색을 하다가 한참의 침묵이 흐른 다음, 그들은 상의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어 들었다. 그리고 그걸 동혁이 앞에 내밀면서 이런 사람이라고 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동혁이는 명함을 받아 들고 자세히 읽어보았다. ‘한국 문화 교류 연구소‘라고 씌어 있고 통제구역 표시처럼 두 줄로 된 빨간색 사선이 오른쪽 상단에서 왼쪽 하단으로 그어져 있었다. 말하자면 두 줄의 붉은 색 사선이 명함의 장식임과 동시에 그들의 신분인데..... 주소는 동대문구 석관동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상하다고는 느끼면서 확실한 감은 잡지 못했다. 잠시 후 그도 머리 속으로 하나 둘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학교 같은 곳이나 흔히 일반적으로 들어오던 이야기가 생각 난 것이다.
중앙정보부가 이문동에 있다느니, 중정은 서릿발같다느니, 남산에 끌려갔다 나오면 병신이 되어 나온다느니, 남산에 불려간 사람은 인간이하의 취급을 당한다느니, 가족들의 면회까지 거절되고 인격적인 대우는 사치라 해도 동물취급도 안 한다느니, 자신들의 행적과 숫자도 파악을 하지 못한다느니, 등등........
자신도 그런 꼴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섬광처럼 뇌리를 스쳤다. 그는 발 빠른 판단 하에 무엇인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저희들은 시로부터 그리고 교육위원회로부터 정식으로 허가를 받고 수업을 시키고 있습니다만,.... 뭐가 잘못 된 것입니까? 말씀해 주시면 당장 시정토록 하겠습니다.”
“유신이란 말입니다. 이 단어는 아무나 사용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대통령각하께서 창안해 낸 단어입니다. 그런데 왜 일개 학원이 유신교육원이라고 이름지어 허가를 받았는지, 아니면 어떻게 해서 허가나 자격증을 내어 주었는지 모르겠군요! 어째든 이런 것을 확인하는 것이 우리 임무이니 각하께 보고를 해야 하겠습니다. 광고 용지가 남아 있는 것은 모두 내 놓으시요”
명령조다. 이런 명령을 듣고 있는 동혁으로서는 참으로 난감했다.
“선생님들 정말입니다. 다른 이유에서도 아니고 또 광고 용지도 남은 게 없습니다.”
그도 저 자세로 변해가고 있었다.
“왜 이러십니까. 포스터 말입니다.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주시지요!”
“정말 입니다. 제가 왜 있는 것을 없다고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런 거짓말을 할 일은 앞으로 없을 것입니다....”
동혁이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했다가 백짓장처럼 창백해졌다. 그리고 예감이 이상했다. 자꾸만 서릿발같은 횡포가 자신의 주위를 맴 돌고 있었다.
동혁이는 서랍에서 봉투를 꺼냈다. 그리고 그 봉투 안에 8천원을 담았다. 봉투를 닫아 겸손하게 그리고 겸연쩍게 내밀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우를 범하지 않겠습니다. 지역사회 개발에 앞장선다고 생각해주시고 선처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들은 봉투를 다시 동혁이 앞으로 밀어 놓으며
“점잖으신 분이 왜 이러십니까? 더구나 교육자가 이러시면 안 되지요! 청렴과 결백을 모범으로 보이시야지요!”
정말 다급해짐을 느꼈다. 곧 일어서며 ‘잠깐 갑시다 동행해야 되겠습니다’ 그들로부터 이런 말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낭패다 이제까지 지역 사령관이란 자부심을 가지고 정정당당하게 살아온 동혁이 마음에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가슴이 가파르게 뛰었다. 눈도 캄캄해졌다.
학원 학생들 중에는 장학사의 아들도 교육감의 딸도 교장 교감에 경찰 경감 정보과장에, 사회 각층에서 활동하는 자제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고 있었던 터라, 웬만해서는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생활해 왔는데 이번만큼은 정말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다. 다급해졌다. 동혁이는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길은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담배를 권해도 봉투를 내밀어도 노숙하게 거절하며 유신이란 단어만 되풀이하는 이들에게 어떤 특별한 지혜와 대책도 막무가내란 생각이 들었다.
정말 허사라 생각되었고 그 보다도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까지 부지하기 힘들 것이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태풍처럼 몰려 왔다. 앞이 안 보인다. 온통 세상이 노란 것이었다. 이러니 하는 말이지만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사람에게 사죄를 빌어 보긴 처음이었다. 자존심이 상한다는 생각은 객관적일 때 해보는 사치다. 그러니
“선생님 이거 죽을 죄를 졌습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요. 내일부터 학원 문을 닫으라 하시면 닫겠습니다. 그리고 전봇대와 담벼락에 붙은 광고 포스터도 깨끗이 제거하겠습니다. 한번만 용서하여 주십시오. 젊은 사람 한번만 살려주십시오 내. 한번만 용서해 주시면 정말 정당하게 살겠습니다.”
이처럼 같은 뜻의 내용을 수 십번도 더 반복하며 차례 상에 올려놓은 제물에 붙은 파리 앞발을 비비는 것처럼 손을 싹싹 비비며 빌고 또 빌며 살려줄 것을 요청했다. 저승사자라도 만난 것인가! 아니 저승사자가 따로 없는 것 같았다. 동혁에게는 그들이 저승사자였다.
그렇게 생명을 비는 것이니 비는 것도 진실이었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처분만을 바라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의 침묵이 흘렀다. 얼마나 흘렀을까! 동혁은 다리에 쥐가 나는 줄도 몰랐다. 그냥 용서를 베풀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무엇을 잘 못했는지도 사실은 알지 못했다.
누가 동혁이의 잔등이를 툭툭 쳤다. 그리고 잡아 끌었다. 일으켜 세웠다. 동혁이는 저려 오는 다리를 조심스럽게 세우며 의자에 앉았다. 앉은 게 아니라 앉혀 진 것이었다.
‘젊은 사람이 그렇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화끈하게 봐 달라고 하니 화끈하게 봐 주겠오. 아무리 죄를 지었어도 죄지은 사실을 알고 뉘우치며 용서를 빌면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게 사람이 사는 곳 아니요? 인간 사회에 파렴치한 일들이 좀 많습니까? 화끈하게 용서를 빌고 화끈하게 봐 달라면 우리도 화끈하게 봐 줍니다.”
하는 말을 들은 동혁이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뭘 잘못했으며 뭘 그렇게 간절히 빌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원장 선생님, 우리도 젊은 시절을 다 겪은 사람들이요. 얼마나 좋습니까! 후배들의 교육에 앞장도 서고, 하신 말씀대로 교육은 곧 이 나라의 자산인데 사회 발전에도 앞장을 서는 일이 아닙니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사실은 나도 이 근처에서 살고 있습니다. 가끔은 이 근처를 지나 곤 하지요. 나는 선생님의 실력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어떤 과목에 편중하지 않고 전반적인 교육을 지향한다는 사실도. 영어와 수학에만 치중하는 여타 학원과는 달리 전인교육에 목적을 두고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는 사실도, 토요일에는 교과수업을 벗어나 부서별로 토론회를 개최하여 발표력과 청취력 이해력을 통한 인내를 훈련하고 이런 훈련을 통하여 자기의 의견을 조리 있게 상대에게 전달하는 교육을 하며 또 격주에 한번은 방송국이나 신문사 같은 언론기관을 찾아가거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원이나 극장 등 여러 곳을 찾아가 생활 현장 체험을 쌓고, 적성검사나 지능검사를 통하여 진로에 도움을 주는 것 등.....”
“아니 그런 걸 다 어떻게!........’
“우리가 아는 것은 그것뿐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유명한 사립대학 즉 명문교 국문학과를 졸업하여 시나 소설 등을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하시기도 하고 군 복무 중에는 삼선개헌을 지지하는 강사로서 부대주변 중 고등학교를 순회하면서 유신 헌법에 따른 우리의 각오를 강의하셨고 ...... 휴가 때도 쉬지 않고 인근 중 고등학교를 방문하여 의식 계몽에 앞장을 서 주위로부터 각광을 받기도 하고, 국가 비밀 문서를 취급하는 1급 비밀 취급 인가자이기도 하고요........”
이들은 동혁에 대한 개인 신상에 관한 것이나 학원을 운영하는 방침에 대하여 세부적인 것까지 상세히 알고 있어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있자니 놀란 입이 절로 벌어졌다. 이것이 중앙정보부란 곳에서 일하는 사람의 통찰력이구나 싶었다. 세상을 자기 손바닥을 바라보는 것처럼 상세히 보고 있으니 당하는 사람의 입장은 기가 찰 노릇이다.
“아이구, 그만하십시오, 송구스럽게......”
‘정말 훌륭하신 분입니다. 이해하십시오. 직업이 직업인지라 우리가 한다고 하는 것이.... 그저 이런 일이고 보니!”
“그나저나 선생님 학원 문을 닫게는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학원 이름을 바꾸는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름을 바꾼다면 뭘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터져 나온 말이었다.
“하하! 이 양반 물에 빠진 사람 건져 놓으니 보따리 내 놓으란 식이군, 살려 놓으니 이제 학원 이름까지 지어 달라네...... 그래요, 제작해 놓은 광고 포스터도 남아 있을 거고 그 광고 용지를 사용할 방법을 생각해 봐요. 예를 들어 획을 하나 더 그어서 좋은 이름을 지어 봐요.”
“글쎄요 생각이 잘 나 질......... 유신을 윤신, 육신 유산 유.........”
동혁은 아무리 해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들도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한참 후 그들 중, 키가 장대처럼 후리후리하게 큰사람이 입을 열었다.
“좋은 게 생각이 났습니다. 신자에 점을 하나 사용하여 ‘선’자로 만드시지요 착할‘선’자로....
‘아! 그게 좋겠군요 새 ‘유’자에 착할 ‘선’이라.........”
이 지역에 산다고 자기를 소개한 김무신이란 사람이 옆에 있는 이찬일이라는 사람을 힐끔 쳐다보며 한 말이다. 동혁이는 이 사람들이 나를 이제 잡아가지는 않겠지 하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반격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새 ‘유’자에 착할 ‘선’, 새롭고 착하게 살자고......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사는 뜻에서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죽을 목숨 살려 주시고 작명까지 해 주시니.....”
동혁의 말을 다소곳이 듣고 있던 이 찬일이 이렇게 말했다.
“화끈하게 봐 달라면 화끈하게 봐 줍니다. 용서를 빌고.....”
“암, 그렇지요 우리도 사람이니까요!......”
김 무신이란 사람도 응답을 했다.
“좋습니다만..... 유신이란 말이 각하께서 창안 해 내신 단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만... ..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일본 놈의 말 중에 명치유신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뭐요? 이 사람 죽을 목숨 살려주니 이제 막 기어오르려고 하네”
“또 그 좋은 이름을 학원가에서 사용하는 게 뭐가 나쁩니까? 교육은 국가의 자산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신성한 교육기관에서 사용하려는 것을 왜 막으려 하십니까?”
항의 조로 퍼붓는 동혁의 말에
“이 봐요 젊은 사람이 못하는 소리가 없어, 유신이란 각하가 창안해 낸 단어로 정부 교육기관이나 연구기관에서나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한 단어요. 암 학생들을 지도하는 곳도 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지, 그렇지만 차원이 다르잖아요!”
햐 이 세뇌된 자들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요, 동문서답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밥을 먹고사는 방법도 여러 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동혁을 보고 목공소에 가 보았느냐고 물었다. 동혁은 목공소엘 내가 왜 가냐고 오히려 그들에게 반문을 했다. 그들의 대답은 목공소에 가면 봉황이 그려져 있는 의자를 만들어 낼 수가 없다고 했다. 봉황의자는 국부인 대통령밖에 앉을 수 없는 의자라 하여 유사한 봉황의자를 만들어 팔아도 법에 저촉이 된다고 했다.
이런 소리를 듣고 있으면서 정말이지 서릿발같은 중정 전성시대에 얼마나 많은 양민과 지식인이 고통받고 투옥되었나를 생각할 때 세월이 흐른 후에야 역사가 귀결지을 문제라 생각되었다. 정치는 시대의 흐름을 역행할 수 없다는 것이 진리이고 보면, 중정의 포악한 이 현상도 국민의 수준이고 만다.
봉황의자와 목공소, 목공소와 봉황의자!
정치현황과 국민의 의식수준, 국민의 의식 수준과 정치 현황! 정말 보이지 않는 함 수 관계요 그 시대가 잉태한 하나의 사회를 대변해주는 부산물인 것임은 틀림이 없다.
어째든 어려운 일이나 애로사항이 있으면 이곳으로 연락을 하라며 주고 간 그들의 명함을 받아 주머니에 넣으며 동혁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분노와 젊은이로서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더불어 사는 세상에 독보적인 존재가 활개를 친다고 생각을 하니 정말 한심스러웠다. 그 후 전화위복이 된 것인지 학원 운영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위생 검열을 받을 때도 동네 어귀의 파출소로부터 전갈을 받기가 일수였다. 언제 위생 검열을 나오니 찜빠 당하지 않게 하라고.........
지적을 당하면 내가 당할텐데 왜 그들이 걱정을 한단 말인가! 그렇게 하는 것이 시민의 지팡이 구실을 잘하는 것이란 말인가! 한 마디로 웃기는 일이었다. 오히려 행정기관에서 부탁을 해 오니 말이다. 그들도 그럴 게다. 감히 뒤를 봐주는 무리가 누구라고. 누구의 명령이라고...... 이러니까 역으로 말하면 중 정이란 곳에서 근무하는 말단이 치안 행정부처를 모두 주무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런 생각을 하다 동혁은 고개를 가로 젖고 있었다. 무언가 잘 못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군대 생활을 할 때 혼자 돌담 근처를 서성이고 있노라면 종종 사진부에서 사진을 찍는 낌새를 느꼈고 술집 테이블에 앉아 친구를 기다릴 때도 누군가 따라붙어 자신의 거처를 확인하는 느낌을 자주 받곤 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간첩과 접선이 가능한 지역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오래 방치한다면 친 북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나 진짜 간첩과 접선할 수 있기 때문에 의심을 받게 된 것이다.
국가비밀, 그것도 일급비밀 취급 인가자가 남모르게 겪는 아픔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일이다. 동혁은 한사람의 독재자가 만들어낸 피라미드 형태의 사회구조가 언제 끝이 나 이와 같은 부조리의 형태가 붕괴되어 줄지 기다림에 갈증이 난다. 이러한 갈증 속에서도 현세대가 겪어야만 하는 고통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마치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깨닫지 못한 자신이 파리처럼 그들에게 빌어야 했던 것이 그 예다.
분단된 나라! 한국의 국방을 책임진 군인들의 특정 집단에도 조직이 연계되어 감시와 함정과 술수가 난무했으며 그 속에서도 꼭두각시가 되어야 했었다. 심지어 삼선개헌 투표를 할 때는 기표한 용지를 부대장에게 보여야 하고 참정권 안에 포함된 투표의 비밀을 보장받을 권리를 박탈당한 비 민주주의의 실태가 지나간 후 생각하니 농익은 꽈리 모양으로 분통이 터질 것 같았다.
동혁이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모세관 혈관처럼 민중 속에 파고들 때는 미세하지만 염통의 힘을 믿고 설치다가 미세한 혈관이 터지는 곳에서의 민중은 죽음이다. 그와 같은 조직의 끄나풀! 저들도 집으로 돌아가면 수고했다는 인사를 받을 가장이 아닌가!
그리고 가족 중에, 더러는 천진하고 때묻지 않은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 것이고 그 고귀한 손에 저 더럽게 거두어들일 악의 화신을 채워 줄 것이다. 동혁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하여 흘려온 피는 고귀하다.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하여 씌어진 재물은 가치를 다한 것이다.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하여 받혀진 지혜는 사명을 다한 것이다. 이 세상에 무지개가 피어오르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하여 정의를 회복하여 진실된 마음으로 저들을 가르쳐야 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원장 선생님 안녕하세요? 우리 수길이는 요즘 어때요? 워낙 개구쟁이라서 말썽은 안 피우는지 원.........”
“선생님 우리 민자 말이에요, 대학입학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한강 대학은 무난할까요?”
한 시대의 흐름을 통하여 그 흐르는 역사에 순종하는 사람과 거슬러보려 노력하는 사람 사이에서 맑게 흐르는 시냇물이 되도록, 부단히 노력해야할 책임이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밤새 휘몰아쳤던 비바람이 싱그러운 잎새의 생명이 되는 근원이며 아침 태양에 영롱한 이슬로 다시 태어나는 본질이다. 이런 섭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기도 하고,,,,,,,,,,,,
저 하늘 높은 곳에서 아름다운 새들의 노래 소리가 온 누리에 울려 퍼지고, 사람들이 행복해 웃는 웃음소리가 함께 반죽이 되어 평화가 지속되는 세상이 다가오리라는 희망이 실현되기 위하여, 서로가 신뢰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을 우러러, 변질될까 두려운 자신의 내면을 향해 매질을 하고 또 매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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