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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필] 살며 생각하며 - 고향을 찾아서 (김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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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3,359회 작성일 10-06-06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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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찾아서   

 

  

새로운 얼굴과 마주 앉아 주거니 받거니 조근조근 이어지던 대화가 고향을 묻는 말에 그만 리듬이 깨지고 만다. 갑자기 대답이 궁해진 것이다.
  고향이란 태어나고 자란 곳, 몸과 마음이 안식을 얻는 지리적 공간을 이르는 말인데.... 어디라고 해야하지? 선뜻 말이 안 나왔다.
  출생지 중국. 해방과 더불어 한국 땅을 밟았다. 할아버지가 사시던 황해도 사리원에서 일년을 보내고 해주를 거쳐 남하한 이듬해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에 와서 정착한지 삼 년째 되던 해에 6.25 전쟁이 일어났다. 피난 행렬에 끼어 부산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서울로 되돌아오기까지 통영, 수원, 안성 등지에서 짐을 풀고 꾸리면서 또 다섯 번쯤 해가 바뀌었다. 그 후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12년 쌓은 세월을 뒤로하고 이번에는 멀리 태평양을 건넜다. 전혀 계획에 없었던 미국 시카고에서 머물기 17년. 다시 시작한 서울생활은 바쁜 걸음으로 20년을 충실하게 채웠다.
  한데, 지금 나는 미국 시애틀에 살고 있다. 내가 한국에 나가있는 동안 공부하느라고 미국에 남겨두고 간 아이들은 장성하여 그들 나름대로 삶의 터를 잡았고 사랑스런 손자들과 합세하여 결국 나로 하여금 이곳까지 오게 했다.
  
  미국 땅에 처음 발을 디뎠던 시카고는 진한 연민과 더불어 내겐 각별하게 다가오는 곳이다. 낯선 언어와 문화의 높은 장벽을 몸으로 받아내며 치열한 전쟁터 한 가운데 있듯이 나는 언제나 긴장했고 때론 겁먹은 아이처럼 움츠려졌다. 육체의 한계에 지치고, 정신의 황폐함 속에 비참해져 하루를 끝내고 패잔병 같은 몰골로 귀가하는 날이 많았다.
  삶이 버거워 자꾸만 무력해지던 어느 날, 심신을 가누기 위해 낮게 엎드린 나의 무거운 이마를 받쳐주는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며 나는 고개를 들었다. 밝아진 눈으로 돌아본 내 모습은 형편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때묻고 얼룩진 스스로가 부끄러워 가슴이 메어져 내리는데 그런 나를 어르고 끌어안아 주신 분은 내가 의지하고 힘을 구하며 간절히 사모하던 나의 주님이었다.
  내 영혼이 환희로 춤을 추던 아파트의 그 침침한 방을 난 결코 잊을 수 없다. 갈등과 실의와 좌절, 감사와 희망과 감격이 고여 정든 곳, 시카고.

  

시카고는 또한 아름다운 자연과 인간의 솜씨가 어우러진 완숙한 도시로 한 폭 수채화로 담아내기 족한 곳이다. 잔잔한 수면을 긁으며 먹이를 낚아채는 버릇없는 갈매기를 말 없이 받아주는 넉넉한 미시간 호수는 언제부터 그 자리를 지켜왔을까. 주위에는 사람의 지혜를 동원하여 이룩한 기하학적 건축물들이 멋스러운 품위를 갖추고 기사처럼 버티고 서 있다. 유리상자 같은 고층빌딩은 이글거리는 태양을 되받아 박살낸 조각들을 호수에 내던지는데 여유 있는 율동으로 깨진 빛을 거두어들이는 호수는 정녕 어머니의 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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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들과의 소꿉놀이 등 어린 날의 꿈결같은 추억은 내가 태어난 중국의 송화강과 함께 떠오른다. 집에서 5분이면 강이 손에 닿았다. 강을 끼고 아스팔트길이 뻗어 있고 나란히 이어진 보도에는 네모난 불럭이 깔려 있었다. 그 길을 따라 나는 동생을 업은 할머니의 손을 잡고 어머니가 학교에서 퇴근할 때까지 왔다갔다 거니는걸 무척 즐겼다.
  푸라타나스의 여린 잎새가 굳은 나무껍질을 뚫고 삐죽이 입을 내미는 봄의 문턱부터 바깥 산책은 시작되었다. 여름날 오후에는 그늘을 찾아 종종 걸음을 떼었고 누렇게 물든 넓죽한 잎이 바람결에 한 잎 두 잎 떨어져 아스팔트에 뒹구는 소리를 들으면서 걷던 가을 길에는 할머니의 거칠어진 손에서 흘러오는 따뜻함이 나를 편하게 했다.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생이 된 후에는 코끝을 스치는 강바람에 끌려 옆집 중국아이가 벗해 주지 않아도 혼자 곧잘 강둑에 나가곤 했다. 겨울 내내 하얀 빙판이던 수면이 강남에서 번져오는 봄기운에 녹으면서 풋풋하게 비린내 묻은 흙 냄새가 강을 타고 건너왔다. 한여름, 삿갓을 눌러쓴 사공들이 노 젓는 나룻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저 노의 끝이 필경 강바닥을 짚을텐데 어째서 사람이 물에 빠져 죽을까 하고 이상하게 여겼던 기억도 새롭다.
  코발트색이던 물은 장마가 걷힐 무렵에는 강 밑바닥을 쑤셔 황토색으로 변했고 둑까지 불어 넘친 성난 물살은 닥치는 대로 훑어 갔다. 죽은 물고기, 옷가지, 모자, 깡통, 그리고 온갖 잡동사니 쓰레기들이 둥둥 떠 있다가 급류에 휩싸이는 것이 무슨 큰 볼거리였던지 하늘이 흙탕물을 닮아갈 때까지 물 구경을 하던 날도 있었다.
  절기마다 바뀌는 강의 색깔은 어린 나에게 무척 신기해 보였다. 가끔은 이웃 아저씨들 옆에 쪼그리고 앉아 낚싯대를 부리는 시원한 몸짓을 따라 나도 모르게 목을 빼고 함께 휘어보기도 했다. 운 나쁘게(?) 미끼에 걸린 물고기가 필사의 몸짓으로 팔딱거리는 걸 보면 야릇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게 동정이었는지 쾌감이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서울. 서울은 듣기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생명력을 품고 있다. 거리마다 물결치는 인파 속에 삶의 맥박이 들리는 듯 활기 차다. 순탄치 못한 나날을 이어갔지만 꿈을 포기하지 못한 나의 젊음은 세상을 헤쳐가며 아픔과 기쁨은 같은 눈물줄기에 뿌리가 있음을 깨우쳐갔다.
  겉으론 투박해 보이나 인정으로 속이 차 있는 사람, 사람들. 거기서 나는 사랑을 알았고 어른이 되었으며 신이 베푼 특권으로 생명을 잉태하여 창조에 동참하는 귀한 임무를 맡아 가꾸었다. 늦게 배운 우리말이기에 그 범상치 않는 소중함도 터득했다. 가는 곳마다 사람을 사귀었고 눈빛만으로 가슴을 전하는 친구도 생겼다.
  배움이 좋아서 배우며 가르치며 살아왔기에 허물없이 따라주는 제자가 있고 지금도 건재한 스승도 몇 분 있다. 삶에 활력과 보람을 보태준 교직생활의 대단원을 마감한 곳 또한 서울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어디를 찍어 그리운 고향이라고 딱히 내세울 수 있으랴. 한 곳에 진득하게 뿌리내리지 못하고 나그네처럼 살아온 별난 삶의 여정이지만 전전하며 밟아온 땅과 그 과정들은 특별한 의미로 나를 키우고 살찌게 했음에 틀림없으니 굳이 한 곳을 가려 고향이라 할 까닭이 있을까.
  성경은 우리에게 인간은 잠시 세상에 머물다 본향으로 돌아가는 나그네임을 인식시킨다. 창세기에 기록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나그네로 시작하여 결국 나그네로 일생을 마친다. 아브라함의 나그네 삶은 고달프고 불안할 수밖에 없었으나 고독한 여정에 동행한 여호와 하나님은 그에게 구원의 언약을 주었고 그 약속은 긴 역사를 타고 마침내 후손들에게 이루어졌음을 전해준다.
  인간이 본래 왔다 가는 존재에 불과한 나그네라고 하는데서 나는 적잖은 위로와 도전을 받는다. 그렇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미지의 세계를 동경한다. 그러나 막상 어렵사리 도달한 동경의 땅에서는 다시금 뒤를 돌아보는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여행을 앞둔 사람들의 들뜬 모습에서 타고난 나그네의 기질을 본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나그네는 한 곳에 미련을 갖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어차피 나그네의 본성을 사는 인간의 삶 안에서 우리는 행여 떠나 온 그곳에 대한 향수 때문에, 미지의 그곳에 대한 꿈 때문에, 주어진 ‘오늘’을 맥없이 흘리는 건 아닌지. ‘지금’ 내가 있는 ‘여기’에 소홀하지 않는가를 돌아보며 귀한 ‘오늘’을 살고 싶다.

  

누군가 다시 나에게 고향을 물어 온다면, 출생지요? 아니면 정든 곳, 그리운 곳이요? 하고 되물어 대답할 말을 가려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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