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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필] 죠지의 고민 (정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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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3,294회 작성일 10-06-06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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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지의 고민

 

어느날 골프장에서 죠지를 만났다. 사실 정년 퇴직해서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는 골프장은 그에게 있어서 친구를 만나러 나오는 사랑방이나 다름이 없다. 내가 갈 때마다 그는 늘 클럽하우스 밖에 놓여있는 둥근 의자에 앉아서 한가하게 오고 가는 사람을 다 쳐다보고 하루종일 붙박이마냥 앉아있기 때문이다. 그는 키도 크고 마음씨도 좋은 이태리계의 미국인이다.
사람 차별은 유태인이 많이 한다고 생각했는데 미국 속에 살아가는 자식들 말을 들어보면 아이리쉬 계통이 인종차별을 심하게 하고 그 다음이 흑인이라고 한다. 흑인이 인종차별을 당하는 줄 알았는데 자기보다 약자에게는 많이 하는 모양이다. 어쨌던 우리 클럽은 유태인이 태반인데 그들에 비해서 이태리계 사람들이 사람대접도 잘 해주고 친절한 편이라 나는 이태리 계통인 죠지와 가깝게 지낸다.
나만 보면 그날 하루 종일 골프장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쉴새 없이 해서 어떤 때는 성가시기까지 하다. 그런 그가 그날은 내가 오기를 무척 기다렸다는 듯이 반가워 하면서 손에 들고있던 책을 내밀었다.
"너의 나라와 너의 나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니까 한번 읽어봐."
'KOREA'라는 큰 제목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나는 조지가 왜 그 책을 사서 읽게 되었는지 짐작이 간다. 며칠전 일이다. 그 날도 죠지는 여느 날처럼 그렇게 앉아있다가 심심하니까 어슬렁 어슬렁 마지막 홀로 걸어가서 사람들이 퍼팅하는 것을 구경한 모양이다. 그가 앉아있는 테이블과 마지막 홀은 바로 코 앞이기 때문이다.
골퍼에게 있어서 퍼팅은 제일 신경 쓰이는 부분이고 짧은 길이의 퍼팅이 안들어 갈 때는 몹시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런데 마침 P가 그 짧은 퍼팅을 실수하고 말았다. 그걸 본 죠지는 장난기 어린 재스추어로 곤지 손가락 두개로 칼 가는 시늉을 하면서 "야! 챙피하게 그것도 못넣니?"하고 농담을 했다. 물론 큰 잘못을 할 때도 쓰지만 아주 작고 쉬운 일을 실수 했을 때도 악의 없이 "shame on you"라는 말을 미국 사람들은 격의없이 많이 쓴다.
P는 짧은 퍼팅을 놓친데 대한 민망함도 있는데 죠지가 보고 있다가 그런 말을 하자 정말 자기가 부끄러운 짓이라도 한 것처럼 느껴져 몹시 불쾌해 했다. 그는 자기의 불편한 심사를 남편에게 이야기했고 남편은 그 상황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부인말만 듣고 죠지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물론 마음씨 좋은 조지는 그런 뜻이 아니라고 정중히 사과해서 그 일은 무사히 마무리를 지었다고 한다. 농담 삼아 한 한마디가 이렇게 많은 파장을 몰고 올 수도 있구나 하고 크게 깨달은 죠지는 그 길로 책방에 가서 'KOREA'라는 책을 사 보게 된 모양이다. 한국 사람들은 대체 어떤 족속이길래 농담 한 마디에 그렇게 아우성들인가 우선은 알아야 된다고 생각한 그는 책방으로 달려 갈 수 밖엔 없었을 것이다.
우리 같으면 상종할 인간이 목된다고 아예 외면해 버릴 수도 있는데 그는 강자의 입장에 서 있으면서도 우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 깊은 감명을 받았다. 참으로 대국 사람다운 죠지의 처신에 머리가 숙여질 지경이었다. 그는 더불어 사는 법을 아는것 같다. 매일 마주치는 코리안들을 그래도 이해하려고 책을 사서까지 공부를 한 조지를 설령 그가 큰 잘목을 저질렀다해도 미워할 수가 없을것 같다.
그래서 그가 준 책 'KOREA'를 집에 와서 열심히 읽었다. 아니, 죠지를 생각해서도 열심히 읽어야 할 말이 있을것 같았다. 그런데 완전 실망이었다. 시몬 윈체스터가 쓴 이 책은 첫 페이지를 열자마자 낯 뜨거운 한국 사람의 결점부터 쏟아져 나왔다.
그도 그럴것이 '하멜 표류기'와 한국 전쟁 중 취재를 나갔다가 쓴 헤스팅의 글을 책머리에 인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몬 윈체스터 자신이 한국을 방문하기 위해 참고로 읽었던 이 책들을 보고 그도 두려워서 한국 방문을 포기하려다가 일본을 가는 길이고 해서 용기를 가지고 한국 방문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한국에 갔고 가서 직접 발로 전국을 누비며 한국을 보았고 책에서 읽은 것보다는 훨씬 문명국가이며 울산의 현대조선소를 보고는 놀랐다고 한다. 어쨌건 그가 한국을 방문한 해가 1988인데 그때까지도 한국을 소개하는 변변한 책자도 하나 없어 '하멜 표류기'를 참고 문헌으로 읽었다니 할 말이 없다. 아니 내가 할 말이 없는게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에서 할 말이 없어야 되는게 아니가 싶다.
조선왕조 인조때의 일이다. 하멜 일행이 탄 상선이 제주 앞바다에서 난파했다. 제주 관원은 생전 처음 보는 짐승같은 털보숭이들을 끌고 임금님이 계시는 한양으로 간다. 하멜은 끌려가면서 고생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해서 풀려나기까지의 그 지옥같았던 조선에서의 경험담을 글로 써서 책으로 남긴다. 서기로는 1668년, '하멜 표류기'는 이렇게 해서 최초로 서방 세계에 코리아를 알리는 책이 되었다.
그 책을 참고 서적으로 읽은 시몬 윈체스터는 하멜과 헤스팅의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인용해서 책의 서두를 시작하고 있다. 누구도 한국에 가고싶은 마음을 싹 가시게 하는 겁주는 문장들이다.
'한국은 아주 위험하고 까다로운 왕국이며 먹을거라고는 풀밖에 없고 가난하고 추운 나라인데다가 화를 잘 내는 민족'이라고 악평을 하고 있다. 죠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 그래서 그렇게 화를 냈구나'하고 머리를 끄덕였으리라. 한국전에 참전했던 맥스 헤스팅은 한술 더 떠 '한국은 전쟁의 상처를 입고있는 나라로 서방 세계의 사람들에게는 쓴 입맛만 다시게 하는 나라'라고 단정 짓는다.
시몬 윈체스터가 한국을 방문한 때가 20세기 말인데도 참고문헌으로 17세기에 쓴 '헨드릭 하멜의 표류기'와 6·25 때 쓴 '맥스 헤스팅의 한국전쟁' 밖에 책방에 진열된 한국에 대한 책자가 없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IT산업이 세계 최고다 하고 떠들어 대지만 말고 우선은 지금의 한국을 있는 그대로 세계에 알리는 일이 시급하다. 현대는 PR의 시대라고 하는데 세계 사람들이 이렇게 한국에 대해서 깜깜하다면 어떻게 해외에 사는 우리가 대접을 받을 수 있겠는가? 일본사람이냐 중국사람이냐고 묻지 너 한국사람이냐고 묻는 외국인은 하나도 없다. 이런 것들이 다 선전부족에서 온다는 걸 알면 국가 차원에서 코리아를 알리는 일에 좀 더 적극적이었으면 좋겠다.
자국의 발전상을 소개하는 책자 하나도 만들지 못해 윈체스터처럼 조마 조마한 심정으로 모험심을 가지고 오게 해서는 아무도 한국을 찾지 않을 것이다.
몇칠 후 다시 나를 만난 죠지는 책 다 읽었니? 어때? 하고 내 반응을 살폈다. 나는 할 말이 없어서 한국을 잘 모르는 영국 사람이 쓴 건데....뭐 하고 얼버무렸다. 죠지는 그래도 내 심장을 찌르는 소리를 나지막히 한마디 했다. '비교적 잘 쓴것 같은데...'
나는 그 말을 못들은 척 바삐 그 앞을 지나쳤다. 그 책을 읽고 한국사람을 어떻게 상대해야 되는지 죠지는 뭘 좀 배운게 있을까? 아주 가난하고 참을성 없는 나라에서 온 화 잘내는 민족들이 죠크 한 마디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면서 먼저 화를 낸다는 것 쯤은 이제 알았으리라. 가난하고 못사는 작은 나라에서 온 우리들이라 해서 기죽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약간은 겸손하고 예의 바른 사리판단은 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너무 꼴볼견으로 자기 아집에만 사로잡혀 있다면 사람 좋은 죠지라도 우리를 곱게 봐주지 않을 것이다.
남의 나라에 와 살면서 우선은 많이 배워 그 나라의 생활문화에 익숙해 져야만 하겠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갖가지 고통을 겪는 것도 공부요 아픔과 쓰라림의 능선을 넘는 것도 공부라고 한다. 많이 배워서 그들에게 친숙하게 다가 간다면 죠지의 고민도 우리가 해결해 줄 수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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