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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필]타조 발을 밟은 참새 - 나향/이기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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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2,922회 작성일 10-04-0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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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국제공항 출국심사대에서 심사관이 나에게 느닷없이 묻는다. “아주머니 시드니시내에서도 캥거루를 볼 수 있나요? 갑작스런 질문에 멍하니 그분을 쳐다보면서....“아니요. 저도 오랫동안 시드니에서 살았지만 시내에선 캥거루를 보지 못했거든요.

그렇다, 호주하면 먼저 오페라하우스와 캥거루를 떠올리는데 시드니에서2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도 나는 지금까지도 야생에서 뛰어다니는 캥거루를 보지 못했었다.

몇 년 전 동물원에서 캥거루를 본 것이 전부였다.

딸아이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웃으면서 한마디 한다.

“엄마가 그런 이야기 하니까 문득 한국에 있는 내 친구가 생각나네요.

내가 매일 오페라하우스를 바라보면서 하버브리지를 건너다니며 직장을 다닌다고 하니까 너무 부럽다고 말하는데.....나는 아무 말도 못했어요.

낮에는 학교로 밤에는 직장으로 피곤에 지쳐있었을 때였으니.....그때, 내 눈에 보이는 오페라하우스가 과연 아름답게만 보였겠어요. 요즘 보니까 시드니항구가 정말 아름답긴 하더군요.

어느 날 딸아이가 하얀 봉투하나를 내밀면서 일일여행 티켓이라고 했다. 단체관광을 떠나는 것이 처음인 나는 아침부터 분주하게 준비를 끝내고 약속장소로 갔다.

그날일정은 호주의수도가 있는 캔버라였다. 18년 전에 두어 번 다녀오긴 했지만 봄꽃 축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캔버라에는 세계 각국 대사관이 밀집되어있는 대사관 촌이 있는데 내가 처음그곳에 갔을 그때만하더라도 아주오래전이라 우리한국대사관이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했었다.

일본대사관이나 중국대사관은 전망 좋은 위치에 크고 우람하게 지어놓은 것에 비하여 우리나라대사관은 초라해보였지만 그때는 한호무역이나 한국경제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때와는 달리 이제는 우리한국도 세계경제대국 안에 우뚝섰다하니 자국의 얼굴인 우리한국대사관도 많이 달라졌겠지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그날 일정에 대사관방문은 들어있지 않았다.

그러면서 여행가이드는 대사관은 방문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다른 나라사람들에게 한국대사관이라고 말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초라하며 게다가 화장실까지 자물쇠로 채워져 있는 곳은 호주에서는 한국대사관 뿐이라는 말에, 왠지 씁쓰레한 마음으로 호주국회의사당과 전쟁기념관의 자유로운 방문에 부러움과 찬사를 아끼지 않는 여행자들 속에 서 있는 나는 분명 “호주시민”의 자격이었음에도 마음한구석이 아려오는 것은, 왜일까....?

코알라동물원에 갔다. 몇몇 코알라들은 유카립스나무에 붙어서 잠에 취해있었다. 또 어떤 코알라는 등에 새끼까지 업고서 깊은 잠에 빠졌는지 낮선 방문자들에게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오후2시30분에 코알라와 사진촬영을 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여자사육사는 유카립스 잎을 들고 코알라들에게 먹이를 주면서 여행객들에게 부탁한다. 절대로 코알라머리는 만지지 말고 등만 곱게 쓰다듬어보란다.

여행객들이 앞 다투어 코알라와 사진을 찍으려고 몰려든다. 원래 천성이 게으르면서도 예민한 코알라들을 어떻게 사육하고 훈련을 시켰기에 코알라는 예쁜 포즈까지 취해준다. 보기만 해도 못생기고 어둔해 보이는 놈들이다.

한쪽 옆에선 호주의 전형적인 농부가 양털 깎기 쇼를 하기위하여 준비 중이다. 농부는 앞에 앉은 노랑머리 아이들과 연실수다를 떤다. 이빨은 성큼성큼 빠져서 말을 할 때마다 잇몸사이로 반쯤 흘려버리는 발음으로 자신이 지금 보여주려는 양털 깎기 시범은 전형적인 호주농촌스타일이며 년도별로 이런 가위를 썼노라고 가위까지 보여주면서 설명을 끝내고 양털을 깎기 시작한다.

그때 누군가가 내 등을 살살 건드리기에 깜짝 놀라 돌아보니 키가 훤칠한 타조(駝鳥)란 놈이 아닌가....나에게 뭔가를 달라는 건지 건들건들 입을 벌리면서 큰 눈알을 굴린다.

타조란 놈 또한 뒷머리까지 홀딱 벗겨진 것을 보니 나이는 꾀나 먹은 놈인가 본데 양털 깎기 쇼하는 농부나 타조나 촌스럽기는....그래, 네놈이 캥거루와 쌍벽을 이루는 그 타조란 놈이구나....그런데 색깔까지 그게 뭐냐....150킬로그램이나 되는 그 큰 덩치로 날지 못하는 비애까지....?

마음은 펄펄 뛸 것 같으면서 뛰지 못하는 내 신세나 큰 날개가지고도 하늘높이 비상하지 못하는 너 신세나 오십보백보가 아니겠느냐고 비웃고 서 있는 이방인(異邦人)의 마음을 너 어찌 알겠느냐.....순간, 타조(駝鳥)가 긴 목을 빼면서 두 눈알보다도 작은 머리통을 치켜들고 나를 노려본다.

(타조(駝鳥:Emu)는 새 중에 가장 큰 새 과의 동물로 영리한 처세술과 지구력을 가졌으며 초원이나 사막 어디에서나 삶의 적응력이 대단하고 절박한 상항에서는 시속90킬로미터로 질주할 수 있는 대처능력을 가졌으며 “호주를 상징하는 새, Emu”이다.

참새 몇 마리가 타조 울타리 안으로 날아왔다. 참새한마리가 내 앞에 서 있는 타조 등에 앉았다. 습관처럼 다정하게 타조 등에서 뭔가를 콕콕 쫒아먹고 있었다.

나는 유심히 참새를 쳐다보았다. 잠시 후에 참새는 다시 타조 발등으로 내려앉는다. 내 눈은 계속 참새를 따라갔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타조 발을 보았는데 분명 타조의 발가락은 양옆으로 갈라진 두개뿐이었다.

참새가 타조발위에서 애교스럽게 몸을 흔들며 사뿐사뿐 춤을 춘다. 타조는 목과 다리가 길어서인지 자신의 발은 보지도 못하고 참새에게 발등을 밟히고 쫒아 먹히면서도 멍청하게 큰 눈알만 굴리며 낮선 이방인만 쳐다본다.

참새와 타조와의 공생관계를 어찌 알까마는 분명 내 눈에 비춰진 것은, 호주를 상징하는 그 등치 큰 타조가 작고 가냘픈 참새에게 발등을 밟히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옛날 내고향집 앞마당 멍석위에서 벼를 쫒아먹던 그 어여쁜 참새를 닮은 시드니의 참새가, 타조의 등과 발등을 마음대로 밟고 다닌다는 것만 내 눈에 비춰졌다. 그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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