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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연 북리뷰


 

무명가수 - 이시구로의 <녹턴>을 읽고, 평화신문, 김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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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 댓글 0건 조회 232회 작성일 21-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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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전 환호는 지나갔다. 관중은 등 돌려 가고 있다. 이시구로의 <녹턴>은 유럽 전역을 떠돌며 베니치아의 광장에서 한 번쯤은 연주했던 음악가들이 등장한다. 음악은 감성을 건드리지만, 악보에는 치밀한 계산이 숨어있다. 혼자만의 지난한 연습 후에는 사람들 속으로 나가야 한다. 감성과 이성, 꿈과 현실을 다 극복한 자들은 세상에 이름을 알린다. 녹턴에 등장하는 음악가들은 어떠한가?

 

크루너


 베니치아의 상마르코 광장에 봄이 왔다. 집시 기타리스트 얀은 전설적인 토니 가드너가 자신의 악단 연주를 듣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하염없이 눈물 흘렸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얀은 음악이 끝나자 흥분해서 달려간다. 어머니 이야기를 하자 가드너는 관심을 드러낸다. 조금 후에 나타난 그의 아내 린디는 생면부지의 악사에게 딱딱거리고, 가드너는 그러지 말라고 언성을 높인다. 린디는 프라다 샆에 가겠다고 사라진다.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아름답다.

 

 뜻밖에도 가드너는 얀에게 연주를 제의한다. 오늘 밤 곤돌라에서 기타 반주에 맞추어, 아내에게 노래를 바치고 싶다고 한다. 대가와의 연주라니 무한한 영광이다. 결혼기념일 여행이냐고 묻자, 그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고전을 노래하는 가드너가 영원한 현역이라고 극찬하자, 그는 자신을 한물간 딴따라라고 표현한다. 아직 데뷔도 못 한 얀에 비하면 엄청나게 성공한 사람이다. 

 

 가드너는 좋은 공연을 하려면 청중을 알아야 한다며, 아내에 대해 알려준다. 린디는 미네소타 작은 마을 출신으로 할리우드 스타의 아내를 꿈꾸며 캘리포니아에 왔다. 웨이트리스를 하며 스타의 눈에 띄는 방법을 6년 동안 연구한 끝에 이류급 가수 디노와 결혼한다. 디노와 살면서 가드너를 만날 기회를 잡았고, 세상을 얻은 듯 삼십 년 동안 누리고 살았다.

 

 저녁에 곤돌라를 타고 팔라쬬의 창가에서 가드너는 아내를 부른다. 린디는 춥다고 하면서 들어가 듣겠다고 한다. 노래 곡목은 by the time i get to Phenix. 이별은 별거 아니니 잘 살라고 하면서 남자가 떠나는 내용이다. 연주와 노래가 진행되는데 방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얀은 부인을 감동시켰다고 좋아하는데, 가드너는 이 여행 후에 헤어지기로 했다고 한다.

 

 가드너는 흘러간 가수가 되어 관심에서 밀려난 자신이 견딜 수 없다. 젊은 애인과의 결혼을 세상에 발표하고, 재기할 것이다. 린디도 더 늙기 전에 남자를 만나야 한다. 사랑 없는 결혼이었지만, 살다 보니 둘은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가 흐느껴 운 이유를 알 것 같다. 얀은 황혼의 나이에 사랑을 버리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녹턴

 

 미국 할리우드 여름. 임시직 테너 섹소포니스티 스티브는 딱 두 번 무대에 섰다. 매니저는 스티브가 못 생겨서 출세를 못 하니 얼굴을 고치라고 말한다. 손바닥만 한 아파트에서 화장실만 한 연습장을 꾸며서 주로 거기에 들어가 있다. 돈을 대책 없이 써 빚까지 진 아내 헬렌은 전부터 알던 남자 동창과 눈이 맞아서 떠나갔다. 스티브가 스칠로폼을 댄 방음이 완벽한 부스에  들어가 있는 동안 둘이 일을 벌였다고 매니저는 암시를 준다. 헬렌은 스티브로 인해 자신들이 행복해졌다며, 남자 친구의 돈으로 할리우드 최고의 의사에게 성형을 시켜주겠다고 한다. 매니저는 얼굴을 고쳐서 성공하면 헬렌은 돌아올 것이라고 망설이는 그를 부추긴다.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은 스티브는 병원에서 주선한 일류 호텔 꼭대기 층에 묵는다. 야성적인 새 얼굴과 만들 앨범을 떠올리며 기분이 붕 떴지만, 약 기운이 빠지자 값싼 존재로 전락한 듯 비참하다. 간호사가 옆 방에 린디 가드너도 회복 중이라고 알려준다. 린디는 재능 없는 이류 배우다. TV와 패션 잡지에 등장하여 저속한 토크로 대중의 관심을 끌어 성공한 케이스다. 간호사를 통해 초대받은 그는 화려한 실내복을 입고 있는 린디를 만난다. 그는 자신의 CD를 들려주는데 예상외로 그녀의 반응은 냉담했다. 실망한 스티브가 방을 나오자, 그를 붙잡는다. 재능있는 사람을 보면 질투가 나서 무시하는 척하는 버릇이 있다고 진심으로 사과한다.

 

 방에서 답답하던 차에 둘은 자주 만난다. 그는 이 호텔에서 개최되는 황금 연주상을 받는 색소폰 연주자가 실력은 형편없는데, 인맥으로 올랐다고 비난한다. 린디는 신에게 재능을 받은 사람만 성공해야 하냐고, 실력 없는 사람은 다  포기해야 하냐고, 다른 면으로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하는지 아냐고 반박한다.

 

 다음 날 그녀는 연회실에서 훔쳐 왔다면서 재즈 뮤지션 트로피를 불쑥 내민다. 환상이 있어야 접근이 가능하니 가짜 트로피로 야망을 품으라고 충고한다. 아내는 잊으라고 사랑 타령만 하기에는 삶이 너무 크다고 말한다. 가드너와 이혼했지만, 음악계 영향력 있는 친구들을 소개하겠다고 한다. 한밤중에 둘은 트로피를 돌려놓으려고 연회장을 찾아간다. 린디는 그의 손을 끌고 금지된 구역을 돌아 다니며 소녀처럼 즐거워한다. 재기를 꿈꾸는 린디 역시 젊은 남자가 필요했다. 장래가 촉망되는 음악가라고 들었고, 부잣집 도련님이라고 추측했다. 앨범 속 사진은 젊지 않았고, 전처가 시켜주는 수술임을 알고는 실망한다. 스티브는 린디의 인맥으로 떴을까? 센치한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면 말짱하게 흩어지는 감정이 녹턴이다.


첼리스트


다시 산마르코 광장. 가을 무렵. 무명의 첼리스트 티보르가 일자리를 구하러 찾아온다. 런던 왕립 음악원을 졸업한 그는 오디션 삼아 첼로 연주를 했고, 호텔 매니저는 일자리를 알아보겠다고 했다. 당시 티보르는 수줍고 겸손한 음악가다운 분위기가 있었다. 그 미국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열댓 살 연상의 그 여자는 자신을 '엘로이즈 맥코믹' 이라고 힘주어 소개한다. 헝가리 출신 티보르는 미국의 유명 뮤지션들을 잘 모른다. 그녀는 로렌조성당에서 그의 연주를 들었는데, 뭔가 빠져 있다고 평한다. 한 수 배우고 싶으면 찾아오라고 엑셀시오르 호텔을 알려준다. 최고급 호텔이다.


 그는 그녀를 매일 찾아간다. 그녀의 지적은 추상적이지만, 연주에 도입시키면 효과가 놀라웠다. 손으로 연주를 따라 하며 심취한 그녀 앞에서 그의 연주는 더욱 탄력을 받는다. 방에 첼로가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이제 팔짱을 끼고 광장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동료들은 그들이 잠을 잤느냐 하면서 논쟁을 벌였다.

 

 어느 날 티보르가 한 악절을 연주하자, 엘로이즈는 '우리다움'이 없으니 다시 하라고 한다. 그는 수없이 망설였던 말, '직접 연주'해달라고 청한다. 그녀가 얼굴색이 변하자 그는 바로 사과한다. 그녀는 어릴 적에 첼로를 배웠지만, 선생들이 자신의 천재성을 망치려 해서 레슨을 끊었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베일에 싸인 거장이며, 지금 베일을 벗는 연습을 하는 중이니, 세상에 물들면 안 된다고 말한다. 41세의 그녀는 천재 첼로이스트로 데뷔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날은 저녁 무렵에 호텔을 찾아갔다. 호텔 프런트는 살짝 머뭇거린다. 방 안에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 오리건 주의 사업가이고, 엘로이즈의 약혼자라고 소개한다. 사라진 그녀를 드디어 찾아냈다고 껄껄 웃는다. 둘은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참이며, 곧 미국에 돌아가서 결혼한다고 한다. 음악적 수준이 맞지 않는 그 남자를 피해서 여행왔지만, 다른 선택이 없음을 알고 있는 그녀다.

 

 후에 티보르는 호텔의 실내악단에 취직이 됐다. 자신 같은 천재에게 호텔 일을 하면서 연주를 하라고 한다. 몇 년 후 산 마르코 광장에 그가 다시 나타났다. 후즐근한 양복을 입고, 거칠고 퉁명스러워 보인다. 첼리스트다운 면모는 싹 사라졌다.

 

 데뷔도 못 한 채 광장을 떠도는 얀이 있다. 골방에서 실력을 쌓지만, 현실을 뚫지 못하는 스티브도 있다. 모욕과 눈물을 삼키며 꿈을 이룬 린디지만, 남편은 노년에 다른 꿈을 꾼다. 음악도 사랑도 인생도 쫓다가 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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