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즉물주의 1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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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5,765회 작성일 10-10-15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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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현대 미술로의 초대 8th hour: New Objectivity 신즉물주의
New Objectivity (Neue Sachlichkeit) 1923-1933 신즉물주의, 일차 대전후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일어난 예술 운동으로 사실적인 묘사로 돌아간다.
Return to Order (Le Rallep a l’order) 프랑스의 장꼭또가 일차 대전 후의 예술적 분위기는 질서로의 회귀, 즉 고전주의로 돌아간다고 표현했다.
일차 대전(1914-1918) 은 지각변동 이상의 충격이었고 지성인들은 인간 자체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이제까지의 역사를 지탱해 왔던 모든 가치와 믿음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돌아본다.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라 믿었고 과학과 산업 발전이 좋은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종교에 대한 혐오감 또한 강렬하게 표출된다. 지성인들은 허무주의로 돌고 비이성적인 것을 추구하며 광기를 옹호한다.
Otto Dix, The Skat Players – Card Playing War Invalids, Berlin, New Objectivity 1920
패전국인 독일에는 상이군인들이 넘쳐났고, 당시에는 성형수술도 의족 의수도 없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거리에서 위의 그림과 같은 사람들을 보는 것은 일상생활이었다. 전후의 상이군인은 일자리도 없었고, 신체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불구였다. 그들은 모여서 술먹고 카드놀고 길거리에서 행패를 부리는 등 사회적 issue 가 되었고, 독일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암울하였다.
George Grosz, Fit for Active Service, Faith Healers 1916-17 Otto Dix, Dr. Mayer-Hermann 1926
오토딕스는 1차 대전 참전 화가이다. 피카소를 제외한 그의 모든 친구들은 전쟁에 참전을 하였다. 아폴리네르는 참전을 하여 시민권을 받고 초현실주의 운동을 시작한 앙드레 브렝똥도 참전하여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눈으로 본다. 오토딕스와 죠지그로스는 군대에 징용이 되지만 정신적 발작을 일으켜 군대에서 일찍 나온다. 이들은 정부관료의 눈에는 애국심이 모자라고 나약하여 사회에 적응이 안되는 outfit 으로 비쳐졌다.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을 객관적 Objectivity 으로 구경을 했다. 일차 대전 전에는 청기사파, 다리파가 유럽의 미술 운동이었는데 지금은 그들이 그렸던 추상에 대한 혐오감이 극도에 달한다. 영적인 세계, 새 세상의 꿈이 전쟁으로 허망하게 부서진 지금 독일표현주의에 대한 반대 운동인 New Objectivity 신즉물주의 운동이 나타난다. 독일인 스스로가 독일인에 대한 혐오가 넘치고 오토딕스는 눈하나 빠지고 피 철철흘리는 그림을 그린다. ‘내가 내 눈으로 본 것들이다.’ 1918, 1919, 1920년의 독일 거리에는 다리 하나 없는 사람들이 비일비재 했고 그런 사람들을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지성인들은 전쟁을 겪었음에도 독일인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영화나 TV 산업에 현혹이 되는 현실을 가슴 아파했다.
일차 대전을 마무리 짓는 베르사이유 조약이 1918년에 열리는데 전쟁 이후의 보상, 배상 문제를 논의한다. 프랑스는 1870년 보불 전쟁에서 독일에게 빼앗긴 알자스 로렌 지역을 돌려 받고 독일의 아프리카 식민지 카메른을 영국과 나누어 가지고 조선, 아프리카 등의 식민지 문제는 일체 언급이 되지 않았다. 독일의 chancellor 는 peace agreement 에 사인을 하고 나오면서 이것은 평화협정이 아니라 휴전하는 것이다 라고 했고 정확히 20년 후에 2차 대전을 일으킨다. 결과적으로 Treaty of Versailles 는 외교사적으로 실패한 조약이다.
국제연맹 league 가 생기지만 법적 제재가 없으므로, 미국은 가입을 하지 않는다. 일차 대전 10년 후인 1929년에 경제공황이 나타나고, 미국은 대공황으로 들어간다. 일차 대전 후의 세계 정세는 냄비 끓듯이 아슬아슬한 상황이었고, 식민지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대국들은 철저히 침묵을 하고, 지성인들은 인간을 한없이 추악한 존재로 본다.
초상화, 풍경화가 다시 돌아왔다. 신즉물주의는 이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에 있는 여러 type 의 일반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그것을 넘어서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죠지 그로스츠의 Fit for Active Service Faith Healers는 관료, 군인, 장관들의 흉악성을 보여주는 캐리켜쳐 caricature 인데 해골, 시체 같은 사람들을 전쟁에 보내기 위해 심사를 하고 있다. 신즉물주의자들은 풍자, 조롱, 비꼬기일 수 였으므로 독일정부는 그들을 미워했다. 지배계층은 지금은 ‘우리가 단결할 때’ 를 외치는데, 사회는 공산주의, 사회주의로 나뉘고 예술가들은 사회비판이나 하고 노동자들은 들썩이고 하는 상황에서, 1933년에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신즉물주의를 금지시키고 10년 동안의 운동은 막을 내린다.
August Sander, Pastry Cook 1928 Albert Renger-Patzsch, Irons Used in Shoemaking, Fagus Works, 1925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직업을 가진 수 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으로 이름이 나오지 않고 누군지 모른다. 인간의 identity 가 없어지고 직업이 사람을 구분하는 유일한 standard 가 되어버린 무개성의 사회에서 히틀러가 전폭 지지를 받는다. 인간이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고 빵을 벌기 위해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독일의 민중들은 정치적 이야기에 쉽게 현혹이 된다.
신즉물주의는 사진을 아주 사실적으로 찍는다. 신발 만들 때 쓰는 인두를 확대하여 보인다. 오토딕스, 그로스, 레노파츠, 쟌더는 매일 보는 제빵사, 상이군인, 의사들을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려서 사실보다 더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거리에서 보면 스쳐가는데, 그림으로 그려 놓으니 끔찍해 보인다. 신즉물주의 화가들은 집단 마취제를 맞은 사람처럼 무감각하게 사는 독일 사람들이 더 무섭다고 말한다. 정부관료는 국민들에게 자꾸 remind 를 시켜 주는 그들이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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