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세계를 흔들 때, 다다이즘 10/5/10 > 김미연 아트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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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세계를 흔들 때, 다다이즘 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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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7,420회 작성일 10-10-09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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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현대 미술로의 초대  8th hour: We Shook the World, Dadaism   전쟁이 세계를 흔들 때, 다다이즘

photomontage 포토몽타쥬, 신문과 잡지의 사진 이미지를 오려서 중첩을 시켜 붙이는 방법
readymade 이미 만들어져 있는 object 를 조합해 작품을 만듬 objets trouves (found object) 와 같은 의미이다.
assemblage 아상블라쥬, 여러종류의 material 을 조합해 붙여서 입체적인 작품을 만듬
New Objectivity (Neue Sachlichkeit) 신즉물주의, 일차 대전후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일어난 예술 운동으로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Weimar Republic (1918-1933년) 일차 대전 직후에 독일은 바이마르 공화국이 서고 1933년에 히틀러가 정권을 잡는다.

1차 세계 대전 (1914-1918년) 과 2차 세계 대전(1939-1945년) 사이는 20년 동안이며, 패전국 독일은 바이마르 공화국이란 이름으로 지속되고 1933년에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6년 후 2차 대전을 일으킨다. 

Zurich Dada (1914-18)

Hugo Ball reciting the poem Karawane at the Cabaret Voltaire, Zurich 1916
 

독일의 시인 유고 발은 일차 대전이 터지자 스위스 취리히로 망명을 가서 1914년에 dada 운동을 시작한다. 뒤상과 피카비아는 1915년에 뉴욕으로 가서 뉴욕다다를 만들고 전쟁이 끝나자 예술인들은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 베를린 다다, 파리 다다를 만드는데, 다다운동은  각 도시마다 성격이 틀리게 전개된다.  문인, 희곡가로 시작된 다다운동은 미술가, 음악인, 무용가 등 여러 장르의 예술인이 함께 한 종합예술 운동이 된다.

우스꽝스런 옷을 입은 유고발이 볼테르 캬바레에서 dada manifesto 를 읽고 가라와네 시를 암송한다. 가라와네는 마치 아이들 옹알이 같은 아무 내용이 없는 소리를 반복하는 시이다.  일차 대전으로 인해 유럽은 불구덩이 속 같았고, 스위스로 망명 온 사람들은 거의가 지성인, 예술인들로서 중립의 입장에서 반전에 대한 생각만 가득했다. 이들은 무정부주의적 사고를 표방하는 예술운동 다다를 시작한다. 사전에 knife 를 찔러 그 페이지를 폈더니 dada 라는 단어가 나왔다. 다다는 20세기 미술 전반을 가르는 용어가 되며 2차 대전 후에 Neo Dada 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난다.

Marcel Janco, Mask 1919

                                    
 
젱코는 가면을 쓰고 볼테르 캬바레 무대 위에 올라가 공연을 한다. Performance art 를 최초로 시작한 다다는 우연 chance 을 중요한 개념으로 한다. 망명 온 High Intellectual  예술가들은 이제껏 고뇌로 세상을 바라봄이 아무 필요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피카소, 칸딘스키, 마티스 등 많은 예술가들이 ‘이런 식으로 세상을 살면 안된다’ 경고 했어도 결국 전쟁은 터지고 말았다. 르네상스, 계몽주의 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인간의 합리적 사고가 전혀 먹혀 들어가지 않았고 결국 전쟁이라는 종착역까지 갔다. 그래서 서구를 지탱해 온 모든 가치에 anti 를 건다. 다다는 반예술주의 anti-art movement 이며, 인간이 몇 백년 동안 공들여 쌓아 온 모든 것에 반대하겠다는 운동이다. 무대에서 악기도 없이 연주하는 흉내를 진지하게 내면서 ‘우리 무대가 말이 안 되는 것이 아니고 지금 우리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이 말이 안 된다.’ 라고 한다.

전쟁이 세상을 흔들고, 다다는 인간을 흔든다. 기존의 도구, 수단, 방식을 다 버리고 새로운 방식을 차용한 다다는 20세기 중 후반의 모든 예술가에게 영향을 미친다. 

Hans Arp (1886–1966)
 

Jean(Hans) Arp, Collage Arranged according to the Laws of Chance 1916-17  
                                                  

한스 아프는 원래 그림을 그리는 화가인데 다다운동을 하면서 우연의 법칙에 의해 배열된 꼴라쥬를 한다. 자신의 작품을 찢어서 바닥에 던져 떨어지는 모양 대로 붙인다. 피카소는 세밀한 계산 하에 꼴라쥬를 했는데, 한스는 계산을 던져 버리고 우연한 chance 에 의지한다.

Jean(Hans) Arp, Fleur Marteau 1916
 
캔버스 위에 나무 판대기를 오려서 붙이고 색을 칠했다. 그림도 아니고 조각도 아니다. ‘뭐 이런 작품도 다 있어?’ 충격요법 shock effect 이다. 

Sophie Taeuber-Arp (1889-1943)                   

                                                   
한스아프는 스위스에서 소피태버를 만나 결혼을 한다. 소피태버는 의상 디자인을 공부했으며 카바레에서 활동하던 무용가, 안무가 였는데 한스를 만나 다다운동을 같이 한다. 러시아는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예술을 표방하지만 다다는 계급과는 상관이 없이 인간 human being 자체가 대상이었다. 주 관객은 잉여자본 잉여시간이 있어서 leisure activity 를 할 수 있는 층으로 저녁에  공연을 보러 올만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

Sophie Taeuber  Dada Head 1920       

                       
다다이스트가 충격을 주고 싶은 사람은 브르조아 였다. 취리히에 망명 올 정도로 돈 있는 자들에게 ‘정신 좀 차리세요’ 라고 말한다. 노동자 계급은 일차 대전에 참전 중 이었고 애국심이 가장 강한 집단이 되어 버린다. 이 노동자들이 나중에 독일이라는 이름 아래 단결을 해서1933년에 히틀러를 뽑는다. 브르조아는 국가에 관심이 없고 오직 돈에 관심이 있었다. ‘전쟁 중에 내 공장은 어떻게 돼나’

1919-1939년 양차 대전 사이 독일에서는 여러가지 일이 벌어진다. 1917년에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는데 바로 옆의 독일은 큰 영향을 받는다. 독일의 지배계층은 노동자가 들고 일어날까봐 위기감을 가진다. 독일은 1870년 보불전쟁 이후 연방제국이 형성되었지만 여전히 카이저 중심으로 무늬만 의회, 민주주의였지 군주제로 계속 가고 있었다. 독일에는 socialist 당이 있었고 전 유럽적인 좌파운동 international socialism 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유럽 전반에 걸쳐 socialist 들은 전쟁을 반대하였지만 방어적 의미로는 전쟁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일차 대전이 터진 이 시점에서 독일에게 제일 시급한 일은 적국 러시아가 전쟁에 참전을 안 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대표적 반전주의자인 레닌을 러시아에 보내는 일이었다. 취리히의 카바레 볼테르 앞의 Inn 에 묵고 있던 레닌은 혁명을 구상하고 있던 중이었다. 취리히에서 러시아 St. Petersburg 까지 그 먼 길을 가지면 독일을 통과해야 했는데 독일정부는 레닌이 무사히 러시아에 가도록 기차 한칸을 다 봉쇄를 시키면서 보호를 한다. 레닌은 직행으로 러시아에 가서 10월 혁명을 성공시킨다. 독일은 러시아 내부의 정신없는 상황을 보고 잘 됐다고 생각하며 지도자가 반전주의이므로 이제는 프랑스, 영국만 잘 처리하면 된다 라고 생각한다. 1917년에 미국이 참전을 하고 독일은 점점 다급해지는데 역사는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독일의 노동자들이 러시아 혁명의 성공을 보고 동요하기 시작한다.

1918년에 독일에 혁명이 일어나고 1년도 채 안 되어 11월 혁명이 일어나 30만 노동자가 총파업에 들어간다. 카이저는 머리가 돌 것 같고 전쟁이 끝나면 민중의 직접 투표를 약속하며 황제를 내려 놓겠다는 엄청난 deal 을 일차 대전 중에 한다.

독일에서 기나긴 좌파의 역사가 시작되고 로자 룩셈부르크 Róża Luksemburg (1870-1919년 폴란드 출신의 독일 마르크스주의, 정치이론가이며 사회주의자, 철학자 또는 혁명가)가 등장한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독일 공산주의를 창당한다. Polish Jew 로서 부잣집의 막내딸이며 취리히 대학의 박사이며 사민당에 들어가 한눈에 사람을 사로잡고 좌파운동을 하다가 살해되어 라인강에 던져진다. 사회주의 좌파들은 전쟁의 핵심을 보는데, 일차 대전은 국가 대 국가의 전쟁이 아니라 돈의 흐름에 의해 일어난 자본 전쟁, 영토를 넓히기 의한 제국주의 Imperialism 전쟁임을 파악한다.

Elite, Power  계층인 보수주의자와 카이저는 좌파가 국민들을 분열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좌파 정치인들을 감금, 체포하고 발언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신문과 언론에서도 이들의 글을 실어주지 않아 좌파들은 불법 전단지를 무수히 배포를 한다.

일차 대전 후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1933년 히틀러가 나타날 때까지 가장 발달한 것이 인쇄업이다. 독일인들은 둘, 셋만 모여도 얘기로 끝내지 않고 활자화하고 인쇄물을 만든다. 일차 대전 후 바이마르공화국의 거리에는 상이군인이 비일비재했으며 폭격을 맞은 건물이 즐비했고 전후에도 여전히 전쟁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전쟁 여파와 좌파의 분열로 정신이 없는 시기였다
 
Berlin Dada 1919-1922

First International Dada Fair, Berlin, 1920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베를린 다다, 신즉물주의, 바우하우스 운동 등 미술사적으로 굵직한 운동이 일어난다. 베를린다다는 좌파 예술가들로서 사회에서 볼 때 맘에 안드는 그룹이었다. 로자 룩셈버그를 위시하여 공산당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하였다. 위의 사진에서 천장에 있는 경찰이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한 가지 의견만 필요했다. 좌파들이 내놓는 다양한 의견이 시끄럽고 골치가 아팠다. 독일정부는 민주주의 개념인 의견의 공존을 막아야 했다. 의견을 자유롭게 내놓기 시작하면 혁명이 일어나게 되고 power 계층은 세상이 바뀌는 것이 싫었다. 베를린 다다는 신흥 브르조아, 무감각한 대중, 보통 시민들을 target 으로 계몽운동을 벌인다.
  
Raoul Hausmann 1886 –1971 The Spirit of Our Times, Mechanical Head, 1919

         

다다운동 참가작가 라울 하우스만이 우리시대의 정신( zeitgeist) 이란 제목으로 나무머리를 내 놓는다.  하우스만이 만든 것이 아니고 마네킹의 머리에 자와 실패의 기존의 object 를 붙였다.  Ready made 는 일상 사물을 가져와서 조합하는 아샹블라쥬 assemblage 이다. 다다의 대표적인 정신을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하우스만은 인간의 두뇌를 뒤집어 놓았다. 인간의 머리 속에는 사물을 측정하는 도구인 brain 이 있는데 그 도구인 자와 실패를 머리 밖으로 가져와서, 이제 머리 속은 텅빈 인간이 되었다. 다다이스트는 대중을 empty brain 이라고 불렀다. 더 할 나위 없는 무감각, 무지 속에서 대중이 이렇게 가다가는 독일에 더 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경고한다. 그런데 실제로 그 경고가 들어 맞아서 1933년에 민중들은 히틀러를 뽑는다.

Hannah Höch, Cut with the Dada Kitchen Knife through the Last Weimar Beer-Belly Cultural Epoch in Germany, 1919 (독일의 배불뚝이 시대의 다다의 모습)

사진의 인쇄물을 오려서 조합한 포토몽타쥬이다. 당시의 바이마르 공화국의 신문 잡지에 나타난 이미지와 글을 오려서 덕지덕지 붙였다. 당시의 유명 정치인, 여자댄서, celebrity 등으로 아는 얼굴이 나타난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엄청난 인쇄술의 발달과 더불어 당시에 권력자들은 신문을 호도의 도구로 이용했다. 일단 화려하게 만들고 순환속도 circulation 을 빨리 해서 대중이 새 정보를 소화하기 전에 또 새로운 것을 내 놓았다.

하나호가 신문, 잡지에서 유명인사의 이미지를 오려 붙인 정신없는 중첩을 통하여 기존의 매체에 개입 intervene한다.  대중들은 잡지에서 예쁜게 정돈된 배열을 매일 같이 보고 소비 하는데 이것은 좀 달라 보인다. Shock effect 중의 하나인 낯설기 효과, 속격효과 alienation 이다.  포토몽타쥬 기법은 잡지 신문의 내용을 오려서 어울리지 않는 반대의 이미지(정치가와 댄서)를 중첩시켜 다른 context 에 놓아 달라 보이게 하는 효과를 노린다.

Bertolt Brecht 1898-1958    
                                  

러시아인 Marxist  베톨티 브레히트가  그의 연극에서 속격효과 alienation 를 시작한다. 관객에게 황당한 설정을 만들어서 정신적 자극을 줌으로서 낯설게 해서 정신 차리게 한다. 보통의 관객은 연극에 몰입을 하고 자신과 동일시 identical 하는데 이야기가 안 와 닿으면 불편해진다. 관객을 unfamiliar 한 상황으로 몰아 간다.

Bertolt Brecht, Three Penny Opera, 1928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를 보는 관객들은 너무 불쾌하고 얼떨떨해 진다. 노동에 지쳐 떨어진 사람들이 휴식은 먹고 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레져 leisure 의 개념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레져 중에도 생각하기를 멈추지 말라고 경고한다.  브레히트가 새로운 개념의 연극을 내놓아 사회를 비판하고 프롤레타리아에게 충격을 주어서 정신을 확 들게하는 각성 효과를 노린다.

20세기 전반의 지성인들의 딜레마는 어떻게 대중과 소통할 것인가 이다. 말을 해도 안 통하고 그림을 보여줘도 무감각하고 피곤해 한다. 지성인들은 답답하고 자괴감이 들지만 끈질기게 tenacious 방법을 모색한다.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없음을 이미 알고 있는 바 그러나 나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또 있음을 알고, 후대에 영향을 끼침을 알고 있다.  이런 선상에 20세기 미술이 서 있다.

대중은 절대로 예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예술이 나의 레저의 한 부분이길 바란다. 모처럼 휴일에 시간을 내 뮤지엄에 갔더니 나보고 empty brain 이라고 한다. 마음에 안 와닿고 심기가 불편해 진다. 20세기 미술은 대중의 기대를 저버리는 예술이다. 사회전반에 대한 강한 통찰력을 가져야 미술 안에 담긴 메세지를 이해할 수 있다. 20세기 미술 작품 하나를 제대로 이해함은 400 페이지 책 한권을 읽는 것과 맞 먹는다.

Hanover Dada 1919-1925

Kurt Schwitters, Hanover Merzbau (Merz Building) 1931  

             


Kurt Schwitters, Merzbild 25 A, 1920
               


Hanover Dadaist 인 커트 슈비터스는 길거리의 쓰레기, 끈등을 가져다가 붙인다. Merz 는 쓰레기 배설물 이란 뜻과 chance 라는 뜻이 있는데 길거리에서 뒹구는 신문의 조각에 commerce 라는 글자에서 앞부분이 잘려 나가고 남은 merce 에서 따온 것이다. 자신의 작품에 Merz building, Merz picture 라고 이름을 붙인다. 신문, 노끈, 쓰레기를 줒어다 붙여서 assemblage 작품을 만드는데 1960년 미국 서부 California 의 junk art 의 효시가 되며 미니멀리즘, 구축주의에서도 또 만난다. 일차 대전 이후의 다다이스트의 작품들이 이차 대전 후의 1960-80년대에 나오는 예술의 요소 요소를 제공한다.

New York Dada 1915-1921

Marcel Duchamp Fountain, porcelain urinal 1917  3rd version after lost original of 1913            Bicycle and Wheel   1913

                                        

Readymade 개념은 다다에서 출발했다. 뒤샹이 남성용 변기를 사서  R. Mutt 라는 이름으로 서명을 하고 1917년 연도를 붙여서 독립 화가협회 Independent Art Association 에 제출 했다.  제출만 하면 심사없이 다 받아 준다고 했는데 뒤샹의 샘 Fountain 이 거절을 당했다. 뒤샹은 예술가가 서명을 하고 박물관에서 전시가 되면 예술 작품이 아니냐고 반문을 하면서 내것이 왜 예술작품이 아니냐고 딴지를 건다. 뒤샹의 의도는 ‘내 변기를 받아 주세요’ 가 아니라 이때 것 예술을 지탱해온 정의가 작품 자체보다도 외적인 요소인 작가의 이름, 전시되는 장소에 의해 죄우되었음을 말하면서 그의 변기가 길거리에 놓이면 쓰레기이지만 박물관에 놓이면 작품으로 본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다다는 반예술 anti art 이다. 예술가의 elite 적 신적 위치를 부수고 관람객으로 하여금 나도 하겠다는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다다는 1960년대 Fluxus 운동, 백남준과도 만나며 Everybody is an artist 의 개념에 맞아 떨어진다. 이런 개념을 불편해 하는 사람은 elite 들이다. 나 정도는 되어야 예술을 이해했는데 그 누구도 ‘샘’ 을 보고 어렵다고 느끼지 않는다. 뒤샹은 예술가와 박물관의 높은 지위를 강등시키고 스툴 위에 자전거 바퀴를 꽂아 놓는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니네, 나도 할 수 있겠네’ 이렇게 읽는 것이 제대로 감상하는 것이다. 기존의 stereotype 에 도전장을 내미는 작품을 뒤샹피엔 duchampian 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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