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기 북방 화가들 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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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7,457회 작성일 10-10-07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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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회화사 9th hour : Northern Painters in the 11th Century 11세기 북방 화가들
악양루 Yueyang Tower
11세기 당나라, 송나라의 성리학, 공자, 유교가 퍼지고 있을 때 유럽에서는 중세의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900년에 러시아에서는 러시아정교 Orthodox Christianity 가 생기고 1100년 대는 노르만 민족의 남부 침략시기 였다.
중국 역사에서 시는 당나라 때 다 끝냈고 그림은 송나라 때 다 했다는 말이 있다. 북송3 대가로 불리는 관동, 이성, 범관의 그림이 산수화의 교과서 canon 가 되어 후대에 오는 화가들이 모사를 하면서 공부를 했다. 또한 유교적 세계관이 그림에 나타난다.
형호 Jing Hao 910-940, Travelers in Snow-Covered Mountain, 오대십국 시대
오대십국 시대에 지형상 산이 험악한 북쪽은 하북산수로 불리고 둥글둥글하고 강을 끼고 있는 남쪽은 강남산수라 불린다. 하북산수의 대가인 형호의 웅장한 규모의 산그림을 거비파 산수화 Monumental Landscape 라고 부르며 전에는 옆으로 퍼진 족자에 그림을 그렸으나 이 시기에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Hanging Scroll 이 나온다. 또한 오대십국시기에 붓을 쓰는 여러가지 필법이 나타난다.
형호, Mount Lu
동진시대 사람 종병(375-443)은 누워서 그림을 본다는 뜻의 와유산수에 대한 책을 썼다. 그림 안에서 유토피아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보고 내가 득도하는 과정을 의미하며 산으로 들어가 도를 닦는 도가적 사상이 짙었다. 그러나 송나라에 와서 관동이 나타나면서 그림에 유교적 사상이 묻어 나온다. 유교적 산수의 특징으로는 제일 큰 산이 주인공으로 가운데 버티고 중간에 안개와 물이 있고 아래에 아주 작게 그린 집과 사람이 있다. 중국의 산수는 왼쪽 귀퉁이 밑에서 시작하여 같이 산을 타는 기분으로 차츰 위로 올라가면서 감상한다.
근본 이념은 도가, 불가와 비슷한데, 거기에 유학개념 하나를 더 붙인다. 山 산은 아버지, 왕의 존재이며 水수는 balance 를 맞추기 위해 필수이다. 송의 강력한 왕중심의 정치 이념과 맞아 떨어지는 왕, 하늘, 산을 신하, 땅, 물이 거스릴 수 없다. 신하는 수신하고 제가만 하면서 밑사람이 윗사람을 따르게 하는 사상이다.
Guan Tong 관동, Travel to Guanshan, 관산행려도, 북송 3대가
산을 같이 타야 하므로 올려다 보고, 똑바로 보고, 내려보는 여러가지 시점이 들어가 있다. 시선을 따라서 산, 계곡, 물을 경험할 수 있는 산수를 그리며 산의 재현이 목적이 아니다. 와유산수의 개념과도 맞아 떨어져 산에 가지 않고 집에서 보아도 산에 있는 것 처럼 느낀다. 하나의 점으로 모아져야 하는 서양의 과학적 시점으로는 말이 안된다. 서양에서는 시점의 중첩은 피카소 때나 되어야 나온다.
그림은 모사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경험한 산수를 그리기 때문에 산수화가들은 관동을 위시하여 거의가 산에서 살았다. 주인공 산이 압도하며 인물은 점에 불과한데 그래도 사람을 꼭 끼워 넣는 이유는 자연 앞에 인간은 하나의 점에 불과하며 자연의 순리를 따라서 살아야 하는 대상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산수화의 기본 개념인 가르침과 meditation 을 깔고 있으며 종병의 와유산수의 개념과 비슷하다.
이성, Li Cheng 919-967, Buddhist Temple in Mountain, 북송 3대가
이성은 당나라 이씨 왕조의 귀족으로 당나라의 번영을 누리다가 몰락 또한 다 지켜 보는데 인간이 하찮은 존재임을 느낀다. 행동이 기이하여 술을 많이 마시고 떠돌다가 객사를 한다. 송나라 시대로 넘어가 얼마 안 되어 죽었는데 그림을 하나도 안 남겼기에 소문만 무성했다. 전문 화가도 아닌 이성이 천하 제일의 산수화라는 전설을 달고 있었는데 실제로 진작을 본 사람은 거의 없다. 이성의 모작이 몇 백점 무수히 나돌지만 송나라 미블이란 화가가 이성의 진작 2점을 본 적이 있으므로 모작을 가려낸다. Buddhist Temple in Mountain 은 드문 진작 중의 하나이며 아직도 시시비비가 있다.
미블이 말하기를 이성의 산수를 가르켜 천리가 지척에 있는 산수, 천리지척 이라고 했는데 과학적으로 볼 때는 시점이 안 맞는다. 이성 산수의 특징은 권운준이라는 붓을 쓰는 기법인데 산세를 그릴 때 항상 구름에 싸이듯 그리는 준법이다. 관동의 관산행려도는 산이 쏟아질 것 같이 압도함이 특징이지만 이성의 Buddhist Temple in Mountain은 민가와 다리가 밑에 있으며 산의 중간이 끊어지는 듯 중턱에서 쉬어주고 나무가 꼭 등장한다. 후대에 오는 화가들이 이성의 산수를 role model 삼아 비슷하게 그렸다.
중국산수화가들은 시, 서 화를 다 잘 해야 하므로 대가의 그림을 모방을 하면서 연습을 했다. 당태종이 왕휘지의 글씨를 구하려고 갖은 노력을 하고 후대 산수 화가들은 이성의 진작을 보고 혼자 공부를 하거나 혹은 도제가 되려고 힘들게 찾아가 배운다.
이성, 한림평야도 Reading the Stele, Osaka Museum
앙상한 겨울 나무이며 황망하고 척박하다. 이성의 시기는 5대십국시기로 도망 다니는 시기였기에 산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낄 여유가 없었다. 이성의 겨울 산수는 자신의 처지를 반영하는데 이성의 그림을 공부하는 북송의 화가들은 나무를 다 저렇게 그린다.
사람들은 이성에게 그림을 사겠다, 달라고 했지만 이성은 주지 않고 버렸다. ‘I am a Confucian Scholar who paints only for my own pleasure. How could people summon me to deploy pigments in their homes and to be treated as a professional painter.’ 나는 유가를 공부하는 학자이며 즐거움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 그림은 공부하는 사람이 갖추는 한가지 덕목이며 그림의 이치를 깨쳐가는 하나의 활동일 뿐 나를 화공 취급하지 말라. 철저한 문인화가의 입장에서 이성은 수치심을 느꼈다.
후대 화가들이 이성의 산수를 보고 고전 canon 을 형성하고 그대로 답습해 간다. 이런 이유로 산수는 송나라 때 이미 끝냈다고 하며 원, 명, 청에 와서도 그대로 그린다. 이렇게 형성된 북방 산수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왼쪽에서 시작하여 보는 사람이 같이 산을 타는 듯하게 오른쪽으로 옮겨가며 나무모양이 척박하고 게 모양 같으며 산 중간이 끊기며 항상 구름에 싸여 있다.
범관, Fan Kuan 990-1020, 계산행려도 Travelers Among Mountains and Streams, 북송 3대가
그림이 너무 어두워 길과 산이 구분이 안 된다. 범관과 이성의 산수의 canon 의 첫째는 산과 물이 같이 있고 계곡이 흘러야 한다. 둘째는 작게라도 산을 오르는 사람, 정자나 민가의 모습 등 사람의 흔적이 있어야 한다. 셋째는 구름, 바위, 나무가 들어간다. 넷째는 하늘과 땅이 꼭 들어간다. 단순한 산 그림이 아니라 동양적 세계관이 녹아 있다. 유학에서 말하는 기순환이 산수화에도 나타난다. 하늘과 땅, 산과 물의 음양과 상하 hierarchical 계급이 그림에 보인다. 남자, 왕, 아버지는 상위구조이며 여자, 신하, 아들은 하위구조이다. 주인공 산은 왕적 개념이며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족자의 형식도 계급을 의미한다.
훌륭한 산수화는 보는 사람을 산으로 데려간다. 내가 마치 산을 올라가는 듯한 experience 를 준다. 대나무 그림으로 유명한 소식은 대나무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대나무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물아일체, 사물과 내가 일체가 되는 도가적 사상이다. 나의 존재는 자연을 이루는 톱니바퀴 같은 것, 가장 좋은 산수는 인간에게 겸손과 자연 순응의 마음을 가르친다.
악양루 Yueyang Tower, Yueyang, Hunan Providence 후난성
유에양 도시의 풍정호수에 가면 악양루라는 탑이 있다. 삼국시대 위, 촉, 오나라 때에 지은 탑인데 북송 때 재건을 하면서 현판에 범증범의 시와 두보의 시 등악양류를 새겨 넣었다.
Yueyang 유에양, 후난성
당나라 시인 두보가 악양루에 가서 지은 시로 삼국지 손권과 그의 부하 노숙의 이야기이다.
두보 712-770, 등악양루 登岳陽樓
昔璞庭水, 今上岳陽樓. 吳楚東南坼, 乾坤日夜浮親朋無一字,
老病有孤舟. 戎馬關山北, 憑軒涕泗流
옛날에 동정호에 대해 들었더니 이제서야 악양루에 오르는구나
오나라와 초나라가 동남쪽에 갈라졌고 하늘과 땅이 밤낮으로 떠 있다.
가까운 친구의 편지도 없으니 늙어감에 외로운 배 뿐이로다.
싸움터의 말이 북쪽에 있으니 난간에 의지해 눈물을 흘리노라.
범증범 Fan Zhongyan 980-1052
In the Northern Song Dynasty, when Teng Zijing restored Yueyang Tower, he invited Fan Zhongyan, the then literary giant to write a preface. At the invitation, Fan wrote his monumental On Yueyang.
북송의 시인 범증범은 다음과 같은 시를 악양루 정자에 썼다. ‘천하의 근심을 앞서 근심하고 천하의 즐거움을 뒤에 즐긴다.’ 유교의 학자답게 걱정을 먼저하고 즐거움은 나중에 라는 통치자적 사고 방식이다. 세상을 다스리는 마음이 묻어나 있다.
두보와 범증범의 시는 악양루 정자에 나란히 씌여져 있지만 사상이 전혀 틀리다. 두보의 등악양루는 세상을 잊고 자연과 함께 라는 은자의 도가사상인데 범증범의 시는 물아일체가 되어 자연의 이치를 깨치고 세상을 다스리는데 써야 한다는 유교사상을 나타낸다.
장재 Zhang Zai 1020-1077, Book of Changes (I Ching 역경), Yin-Yang 음양, Taiji 태극, 理
북송의 관료인 장재는 과거 시험을 치룬 후에는 나라를 지키는 병법에 더 관심을 보이는데 두보가 와서 꾸짖는다. 벌써 병법에만 관심을 쓰면 안 된다고 하면서 사서오경의 중용을 읽으라고 권한다. 장재는 역경 Book of Changes (I Ching)을 공부해 해설서를 달고 다시 유학에 집중한다. 장재는 공자 맹자 급의 훌륭한 장재의 이론을 발전시켜 성리학으로 정리를 하며 주자학의 계보는 장재부터 시작된선생이며 100년 후 태어난 주자가 가장 존경한 인물로 주자는 다고 할 수 있다.
기원전 책인 사서오경은 너무 어렵고 와닿지 않았는데 왜 송에 와서 널리 퍼졌을까? 수당 시절에는 도교, 불교가 성했고 사서오경이 너무 어려웠지만 송나라 때 유교에 불교, 도교를 혼합되여 정치이념으로 자리잡은 성리학은 일상에서 practice 가 가능하다.
부처, 공자, 노자가 같이 식초를 담구어서 같이 맛을 본다. 부처, 공자, 노자가 하나이다—성리학이 표방하는 것이다. 성리학의 理는 사상, 개념이며 사리분별을 의미한다. 정재와 주자의 성리학은 음기, 양기 Yin-Yang 기의 개념을 중요시했다. 氣 기와 理 리는 한 쌍으로 氣가 겉 모습이며 그 안에 理가 있다.
역경은 세상의 이치가 변함을 말한다. 꽃이 피고 지는 사 계절과 음양, 태극, 팔괘를 말한다.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는 가족의 개념이 확장되어 우주적 질서로 넓혀가는 것이며 인간이 가족이 생기고 우주의 질서에 맞게 산다.
곽희 Guo Xi 1020-1090, Early Spring 조춘도 1072
나무를 ‘게’발 처럼 날카롭게 그리는 방법을 해조법(이성이 시작함)이라 하며 권운준은 산이 구름에 가려져 있는 필법이다. 삼원법은 Floating Perspective 로서 고원, 심원, 평원의 3가지 원법을 그림에 다 쓰는 방식으로 곽희가 유명해진 이유이다. 고원은 산을 올려다 보면서 그리고, 평원은 앞에서, 심원은 아래로 내려다 보면서 그리는 법이다.
임천고치 The Lofty Message of Forest and Streams 는 곽희가 산수를 그리는 법에 대해 설명한 것을 아들인 곽사가 받아 적어 정리한 책 이름이다. 산수훈 (산수의 훈령에 대한 chapter) 에서 포유어간을 설명한다. 산에 들어가 살다시피 하고 산의 사계절을 매일같이 시시각각 보고 어떻게 바뀌는지를 파악한 다음에 그린다는 뜻이다.
유교는 산수가 자연의 순리에서 그치지 않고 자연 안에서 깨우친 후 한걸음 더 나아가 치국 평천하의 의미를 부여한다. 자기 한 몸을 깨끗하게 하려고 속세를 벗어나 어진 사람으로만 머무는 것은 진퇴와 절의에서 벗어난다. 지식인으로서 사람을 계몽하고 다스리는 것을 배워야 한다. 도가의 와유 사상에서 벗어나 한 걸음 더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곽희는 조선과 일본의 화풍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곽희파도 있으며 곽희와 이성을 따르는 이곽파도 있고 후대에 오는 원, 명, 청의 산수의 전반을 이끈다. 이성과 곽희는 산수는 도를 닦는 것이라고 했다. 몇 년이고 봇짐지고 산을 떠돌아 다니다가 뭔가를 깨우쳤다 하면 그때 집에 와서 내 마음 속에 남아있는 이상적인 ideal 산수를 그린다. 서양의 풍경화 landscape 의 개념과는 와 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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